진정한 양식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녹취자: 이정호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난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마 식사 시간 때가 되었었나 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식사를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여쭤보니까 예수님이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며 “누가 우리 모르는 사이에 몰래 예수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나 보다.” 이렇게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똑같은 말을 제자들과 예수님이 서로 다른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화법은 성경에서 자주 나옵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도 “사람이 어떻게 엄마 배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것과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하신 예수님의 용어는 똑같지만 의미가 완전히 다른 뜻으로 사용된 그런 화법들을 가지고 예수님이 독특한 교훈을 많이 전하셨습니다. 여기서도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먹지 않고는 생존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지만 시장하지 않고 원기를 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하는 한 이치를 가지고 우리의 인생에 가장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사명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에 뜻을 행하는 것이다.” 이 ‘뜻’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하나님과 연관될 때 항상 단수로 사용됩니다. 토 델레마 루센 레펠레마로 쓰이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것이라”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항상 단수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이것이 첫 번째 토막입니다. 그래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우주 전체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그 안에서 나라는 한 인간을 창조하시는 뜻이 무엇일까? 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세상에 한두 사람이 죽거나 없어진다고 해서 세상에 멈추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한두 사람에게도 아주 고유하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있고 그것을 행함으로써만 그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의식을 가리켜서 사명감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예수님이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에 뜻을 행하며” ‘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뭐냐 하면 나 개인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가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 개인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가. 그러니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꼭 해야 할 이 일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매우 방황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나는 하나님이 나를 향해서 이러이러한 뜻을 가지고 여기에 세우시고 나의 할 일은 이것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이 세상에 보내신 뜻이라고 믿고 그것을 보카치오, 소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보케이션 그것이 A자로 바뀌면 바캉스가 되는데 어쨌든 보케이션, 보카치오 하나님의 부르심이 그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신 부르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 그때 인생의 진정한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가끔 그런 생각하지 않습니까? 월급이 딸랑하고 들어왔을때 “아휴 더럽고 치사하다 내가 이것을 받으려고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보카치오가 너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이렇게 돈을 버는 것이 자기 인생의 의미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것을 보고 그런 여러 가지 감상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도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딸랑하고 들어오는 그 월급의 크기를 보면서 자기의 자존감이 상승하거나 내려가거나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의 고유한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직접 부여하신 사명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습니다.
양식이라는 말이 브로마라는 단어로 브로시스에서 왔는데 음식입니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로 하는 모든 음식을 통칭하여 가리키는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먹을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그 양식으로 산다’ 이 뜻입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사명이라는 그 양식을 먹으면서 내가 생명을 영위에 나가는 것이다’ 이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뜻이 이해가 되십니까? 무슨 얘기냐면 양식은 떡과 포도주입니다. 그 당시에 우리로 말하자면 물과 밥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육체의 양식은 그것이고 영혼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하나님의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 그것이 자기를 살게 하는 양식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실은 다른 말이 아니라 그 두 가지가 다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너무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너무 사랑하고 은혜를 받으면 즉각적으로 그것은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지 않고 그 사람의 삶에 적용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하면서 어떤 분은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적용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성경을 읽으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라고 설교를 하면 자기는 마지막 설교에서는 구체적으로 하루에 세 장씩 성경을 읽으라고 하는 말로 설교를 끝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예배자들을 아주 하수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은혜를 받으면 놀랍게 자기 자신에게 그 말씀을 적용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이냐 하면 나에게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큰 은혜를 받으니까 그 다음에는 내게 주신 이 알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내 바깥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그 일이 진짜 성취가 돼 그것이 예수님에게는 배부름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제가 신대원 다닐 때 3학년 그리고 Th. M. 1학년 다닐 때 하여튼 전기를 엄청나게 많이 읽었는데 읽으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이 뭐냐 하면 이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강력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더 학문이 못 미치는 사람도 있었고 나와 비교되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공통점은 아주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이 성취되고 나면 그들이 느끼는 말할 수 없는 행복 그리고 그것이 성취되지 않았을 때 그들이 느끼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그것이 제 마음을 강력하게 끌었고 그것이 바로 소명의 차이구나 하고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생각이 달라지게 된 것이 열정이라고 하는 것이 없는 것은 열정이 있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열정이 없으면 질병입니다. 영혼의 질병입니다. 열정이 없다는 것은 영혼의 질병 상태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이 나의 양식이다” 그럼 그 양식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시대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아직도 물론 있지만 별로 없습니다. 양식은 먹어서 육체를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는 영양학적인 측면도 있지만 또한 양식을 먹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영양만이 아닙니다. 즐겁습니다. 기쁩니다. 기쁨. 그래서 성경에서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지는 것은 항상 기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도 잔치를 벌이라고 합니다. 잔치가 무엇입니까? 음식이 평소와는 비교되지 않게 녹녹하고 다채롭게 차려지는 것 그것이 잔치입니다. 그러니까 양식 자체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양식을 힘입어 하루를 살아가시고 또 이 양식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당신 안에서 느끼면서 살아가시기에 고난도 이기고 역경도 이기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가 나오는데 “나의 양식은 A이고 또 B다” 나오는데 “A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 이것은 앞에 있는 말하고 거의 같은 이야기지만 차이를 이야기 하자면 앞에 있는 것은 예수님이 당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당신은 못 하지만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앞으로 해야 될 일들이 있는데 그것에 후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일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하고 있는 일 그 다음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할 일. 그 모든 일들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 ‘온전히’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자신의 양식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복음이 받아들여지고 그들이 믿음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서 기뻐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렇게 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올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의의를 이루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보면 열심이 있는 일꾼들도 자기 일에는 관심이 많은데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마치 제품들을 회사가 선전하는 것처럼 자사 제품 선전하기에 바쁩니다. 선교지에 가거나 어디를 가면 우리 교회가 이런 대단한 교회고 우리가 이런 대단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똑같은 정도로 이 땅에서 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나를 한번 귀 기울여서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실어주고 도울 마음을 갖고 도와줘야 되겠다는 마음의 뜻을 세우고 그들이 기뻐하는 일에 우리가 함께 기뻐하며 동참할 수 있을 때 그들의 슬픔에 우리가 함께 참여할 수 있고 그럴 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지를 나누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함께 가슴 아파해주고 기도해주고 하나님의 열매를 많이 거둔다 그럴 때 함께 기뻐해주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 때 우리 모두가 다 사람은 여럿이지만 우리에게는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양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우리 모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라는 고백을 갖는 것입니다.
살아보니까 정말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 되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고 마시지 않아도 목마르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마음속에서 큰 기쁨과 은혜와 감사를 우리에게 불러일으켜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이 마음을 가지고 무엇을 양식으로 삼으며 살아가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서 결국 마지막 인생의 끝에는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혹은 다니엘에게 했던 다리오 왕의 고백처럼 사시는 하나님의 종 아무게야 네가 항상 섬기는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더냐 이렇게 사람과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그것이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