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 27:2-3)
녹취자: 김지혜
지난주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만한 이유는 하나님이 빛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원이시기 때문이다.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인이 고백을 했습니다. 이제 2절에서는 그 총론적인 고백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자신의 경험 속에 이루어졌는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악인들이라는 비교적 적은 무리로 시작을 하고, 3절에서는 군대라는 커다란 무리들로 시작합니다. 그다음에는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그림을 갖고 돌아옵니다. 악인들, 군대, 전쟁 이렇게 점층법으로 조금씩 조금씩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살을 먹는다는 것은 진짜로 식인종처럼 살을 뜯어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악인들의 무자비함과 그들에게 겪고 있는 자신의 고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의 살을 뜯어 먹겠습니까? 그런데 악인은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으리만치 잔인하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입장에서는 생사를 물어 뜯겨 그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경험할 뻔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시인이 힘이 있어서 그들을 때려잡은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발을 헛디뎌 넘어져 버려서 시인의 살을 뜯어 먹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스스로 그들의 걸음이 꼬이게 하여서 그렇게 넘어지게 만드셨기 때문에 시인은 그 고난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이야말로 빛이시고, 자기의 인생에서 구원이시고, 자신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일어나거나 혹은 사역에서 힘겨운 일이 일어날 때 모두 우리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너무 고통스럽고 커다란 위기가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상황인데 내가 나서지 않고 잠잠히 억울한 것이 있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것이 있고, 때로는 할 말이 많아도 벙어리처럼 되고, 장님처럼 되고, 귀머거리처럼 되어서 “나의 시대가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주님이 기쁘신 뜻대로 이 어려움을 해결하시옵소서.”라고 입을 닫고 묵묵히 하나님께 매달리노라면 하나님께서 악인들 스스로 스텝이 꼬여 주저앉아 실족하게 만들어 주시고, 또 오해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이 밝혀지게 하시고, 혹은 그들의 마음을 풀어 변화시켜서, 내가 원통함과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믿는 신앙입니다.
두 번째는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을 쳤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정말 무서운 광경입니다. 다윗은 전쟁터를 누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은 한 나라의 군대와 다른 나라의 군대가 싸우는 것입니다. 당연히 저쪽에 많은 군대들이 야영을 하기 위해서 텐트를 치고 진을 칩니다. 그러면 그 진의 크기를 보면서 군대가 얼마나 많은 수인가 하는 것을 헤아립니다. 당연히 그 반대편에는 아군이 진을 칩니다. 근데 이 전쟁은 아군과 적군의 전쟁이 아닙니다. 적군은 수없이 진을 쳐서 그 군대의 수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시인은 아무 우군도 없이 홀로 서 있는 가련한 신세였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을 위해 그렇게 많은 군대들이 필요할까요? 종종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의 문맥이 많은 주석가들이 상정하는 바와 같이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한 때였다고 한다면 국경선에는 이스라엘 압살롬의 군대들이 진을 치고 다윗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쪽 편 망명 온 땅에는 다윗과 일행들밖에 없으니 사실상 다윗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한 사람들, 군대와의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내 마음이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찬양)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이시며, 나의 구원이라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그다음에는 군대들이 멈추어 진친 것이 아니라 이제 모두 진을 걷고 일어서서 총 돌격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1 대 1의 전쟁이 아니라 1 대 다의 전쟁입니다. 한 사람 다윗과 수많은 군사들과의 전쟁이었으니, 그는 결코 승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서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그런데 그 번역이 좀 이상합니다. 바타흐라는 ‘의뢰하다’ 대개 목적어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다’라는 그 말의 분사가 쓰였습니다. 보테아흐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태연하다’라고 번역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 뜻이거나 혹은 ‘나는 의지합니다’ 컨피던트(confident) ‘나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도대체 군대가 대적하고 심지어는 전쟁이 일어나서 군대들이 쳐들어오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이러한 컨피던스(confidence)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그것은 시인이 마음 깊이 의지하고 있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이 전쟁이 일어나고 원수들에게 이토록 고통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이전에 하나님 앞에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죄를 지을 때는 자신이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아서 악을 행했는데 이제 이렇게 커다란 고난을 겪으면서 그는 비로소 하나님을 의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생명이시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의존할 때 하나님은 시인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가 겪는 고난 속에서 아파하는 다윗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잠시 하나님을 버렸으나 하나님의 마음에는 여전히 다윗이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자기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고난 속에서 연단하셔서 하나님 한 분만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임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시고, 진정한 자신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고난을 통하여 왕궁에 있을 때보다 더 큰 믿음을 갖게 만드셨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비참하게 보였으나, 그 비참한 곳에서 이 시인은 행복의 정수를 경험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종종 여러분들에게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때로는 ‘이것이 내 인생의 끝인가?’ 할 정도로 불행과 고난이 겹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상황은 우연히 일어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호할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인지는 우리가 모두 알 수 없지만,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이 일어나지 않는 것보다 여러분들에게 나에게 좋은 일이기 때문에 일어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 속에서 이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깊이 회개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이 나를 버리고 그분의 품 안에서, 그분의 품 안에 기대는 것에 있음을 고난을 통해 깊이 깨닫고, 그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얼마나 큰 능력의 여호와인가 하는 것을 깨닫고, 모든 환경은 불같은 시험을 동반하고 환란과 폭풍을 동반하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거기서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시련과 역경이 없었더라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을 하나님의 달콤함을 경험하면서, 그러면서 내 안에 나와 함께, 내 속에 나와 더불어 계신 하나님 때문에 컨피던트 “나는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 그 고난은 우리를 한 걸음 더 깊이 성숙하고, 사람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닥치는 모든 고난을 원망과 불평 속에서 낭비하지 말고, 그 고난 속에서 좋으신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배우라고 하시는지를 시인처럼 깊이 깨달아서 하나님 더 많이 알아가고, 결국은 하나님 때문에 견고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모든 시인들 가운데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묘사의 능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만난 하나님이 워낙 위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푸른 초장 풀밭에서 어린 양처럼 한가하게 풀을 뜯거나 엎드려서 쉬는 동안에 하나님이 당신의 아름다움을 전혀 계시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받았던 놀라운 복음의 빛들은 모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원수들이 살을 뜯어먹으려는 고통 속에서, 군대들이 진을 치는 두려운 광경 속에서, 칼과 칼을 창과 창을 들고 돌진하는 수많은 군인들의 전쟁터 속에서, 그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시고, 그 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을 자기 자신의 고난 속에서 보여주신다고 하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과 시련의 때를 절대로 낭비하지 말고, 그 속에서 주님의 품을 파고들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하나님이 나를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깊이 깨달으며, 평안할 때 못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고 남다른 인생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