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TS 아침예배
“주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롬 16:12)
녹취자 : 조원정
저는 오늘 아침에 12절중 하반 절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주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사도 바울은 열정적으로 복음 사역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편지 로마서는 3차전도 끝날 무렵 57년경에 기록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 편지가 학자들은 고린도에서 기록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해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사실상 모든 편지의 내용은 15장에서 끝이 났습니다. 16절은 편지 끝에 사랑하는 여러 지체들에게 인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위대한 신학자,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가 아니라 목회자로서의 사도바울의 모습이 보입니다. 16장에는 20명 정도 되는 동역자들의 이름이 거론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각각 자신이 전할 인사와 그 사람의 인격적인 특성을 이야기하는 몇몇 수식어들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오늘 여기 나오는 버시라고 하는 사람에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버시라고 하는 이름이 성경에 또 반복되어 나오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어 사도바울의 동역자가 되었는지 우리는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깊이 사랑하던 사람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12절에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는 수고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그러나 버시에게는 매우 특별한 수식어가 둘이나 더 붙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사람을 주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씩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사도바울의 마음속에 버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많이 수고한 사람이었습니다. 단순히 수고라고 하지 않고 ‘많이’라고 부사를 덧붙였습니다. 아마도 사도바울의 마음속에 버시라고 하는 인물은 충성스럽게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겼던 인물로 기록되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상적으로서의 수고가 아니라 매우 특별한 헌신으로 수고한 인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많이 라고 하는 부사를 특이하게 덧붙인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많이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흔하지 않습니다. 물론 헌신하고 일합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신앙을 고백했고 그리고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어떤 일이 주어졌습니다. 누가 그 일을 안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냥 일할 뿐입니다.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이 가고 또 다른 사람이 오면 잊혀지는 사람들입니다. 버시는 사도바울의 마음에 그렇지 않았습니다. 많이 수고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있는 사역지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언젠가 이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함께 있었던 교인이나 목사님이 여러분들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을 하겠습니까? 그 사람이 매우 특별히 수고한 사람입니까? 그 사람이야말로 매우 희생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버시는 사도바울의 마음에 기억되었지만 여러분들은 지금 주님의 마음에 기억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공간이 좁아서 큰 빌딩 하나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 사장을 저하고 같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이야기 했습니다. 회사에 와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 회사를 사랑하고 특별히 충성하는 사람은 아주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래도 가끔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 만날 때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자신의 간이라도 떼어서 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런 마음입니다.
대부분의 사역자들이 평범합니다. 아주 특별한 사람은 특별히 소수입니다. 버시는 사도바울의 마음속에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돈이 많고, 사회적인 지위가 높고, 지식이 탁월했기에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충성스럽게 섬겨서 사도바울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신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든지 기도 많이 하고 결정하십시오. 그리고 거기가 하나님이 보내신 곳이라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쉽게 떠나지 마십시오. 거기서 죽도록 충성하셔야 됩니다. 세월이 흐른 다음에 여러분들을 담임 목사님이나 교인들이 볼 때에 여러분들이 교회에 했던 헌신을 기억하며 눈물이 흐를 정도의 인상을 남겨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사도 바울에게 버시는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알다시피 이것은 희랍어로 ‘아가페토스’ 라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가페의 사랑을 입었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어로 넘어가면 그 유명한 ‘하시드’라는 단어입니다. ‘하시드’는 헤세드를 입은 사람입니다. 피동분사입니다. 그럼 여러분 헤세드가 무엇입니까? 아가페가 무엇입니까? 결국은 하나님 안에 있는 참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입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을 준 주체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로마에 있는 교인들입니까? 사도바울입니까?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사랑이 아닙니다. 무엇이 얼마든지 이 세상에서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여러분들을 신학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습니까? 무엇이 여기에 있는 선생님들로 하여금 먼 나라에서 여기에 와서 강의를 하고 여러분들을 섬기게 만들었습니까? 여러분들과 피도 살도 섞이지 않는 열린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많은 물질적인 헌신으로 여기에 신학교를 세우고 이렇게 헌신하게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또,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와서 설교를 하도록 나의 마음을 움직인 그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의 부모님과 교인들이 여러분을 여기에 보내고 뒷바라지 하면서 눈물로 기도하게 한 것은 무엇이 시킨 것입니까? 각기 다른 종류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이고 헤세드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그 모든 일을 하게 하였고 그래서 우리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버시에게 그런 사랑이 덧입혀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입은 사람이었고 많은 성도들과 사도바울의 사랑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이름을 떠오를 때 마음에 근심이 되고 괴로워하면서 기도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이름을 떠오를 때 마음에 기쁨이 차오르고 감사가 솟아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성도들을 사랑하고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버시는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종종 교회에서는 충성한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람들과의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은 잘 하지만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처럼 섬기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사람들의 편을 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버시는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주 안에서 이루어졌던 일들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사도바울을 존경했지만 사도바울의 똘마니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안에서 이 모든 헌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았지만 그 모든 일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그런 섬김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가 생각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고 보스가 되려고 하는 그런 기질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섬김으로 모두 묶어 주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버시라고 하는 이름입니다. 주석가들은 버시라고 하는 이름이 페르시아 사람의 이름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럼 버시라고 하는 이 사람은 페르시아의 여자일 가능성이 제일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람이 로마에서 이 편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아마도 페르시아에서 팔려온 노예로서 회심하여 예수를 믿게 된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부심이 강한 유대인도 아니었고, 헬라인도 아니었고, 로마인도 아니었습니다. 정말 하잘 것 없는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자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 이름은 사도바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가슴속에 빛나는 이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복음 사역의 목표는 이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그런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 이 세상에 있는 자랑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자랑을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요즘은 한국도 편안한 신앙을 좋아해서 이런 찬송가가 거의 잊혀졌습니다. 그러나 한 30여 년 전 한국 전체에 뜨겁게 불렸던 찬송이 있습니다.
(찬양)
부름받아 나선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종의 몸에 지닌것도 아낌없이 바치리다
종의 몸에 지닌것도 아낌없이 바치리다
이런 정신으로 사역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는 기억해 주지는 않아도 예수님의 마음에 기억이 되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