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택 안수집사 MT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골 1:24-25)
녹취자: 김명진
이 편지를 쓸 때 사도바울이 로마의 옥 속에 있었습니다. 한 번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옥 터 위에는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가 있기 전에는 지하가 감옥이었는데, 완전 지하이고 지하 위쪽에는 통기구가 있고, 넓이는 이런 책상 8개~10개 정도 될 정도의 크기의 방에 있다가 거기서 끌려 나와서 거기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서 사형을 당했다고 전설에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 편지를 쓸 때에는 사도바울은 신학적으로 원숙해질 대로 원숙해져 있는 상태이었고 에베소서가 교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면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신앙이 깊어져 가면서 신학적인 깨달음도 함께 심화되어 갔는데, 심회된 깨달음 가운데 하나가 교회와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에 관한 신비입니다. 저도 가만히 생각하면 20년 전에 교회를 개척할 때에는 관심사가, 내가 깨어나고 나니까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병적으로 잠들어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속의 화두가 각성과 부흥이었습니다. 어떻게 마른 뼈 같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을까? 매일 매일 예배가 부흥회였고 설교시간에 사람들이 울어서 설교를 전달하는데 방해된 적도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때는 은혜가 많았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의 목회자나, 신자나, 그리스도인이나 하나님이 데려가실 때 한꺼번에 진리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모두 다가 오도록 가르쳐 주지 않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셔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무지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가난해보 나면 돈의 소중함에 대해 깨닫고, 건강을 잃어보고 나면 건강의 소중함에 대해 깨닫고, 외톨이가 되고 나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인간이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도 역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흥과 각성이 화두였습니다.
20년 전의 설교 테잎을 들어보면 정보의 양이 지금의 30~40%정도 정보의 양이 많았습니다. 말이 엄청나게 빨랐기 때문에 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렇게 부흥을 외쳤는데 목회를 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하고 돌아다녔을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깨지고 부흥을 만나고 성령을 받아도 그렇게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존 오웬을 그 전에도 만났지만 깊이 만나면서 인간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구나 하면서 성화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의 설교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좋은 평가, 나쁜 평가는 다 제쳐두고 공통적으로 듣는 이야기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하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때 인간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하게 해주는 사람이 개척교회 때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동훈 집사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사실은 열린교회에 와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도 옵니다. 교회가 크고, 교통이 편리하고, 시스템도 잘 되어 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는 오고 싶지 않은데 아이들을 생각해서 열린교회에 오는 것이 좋다고 하기 때문에 온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지하로 내려가고, 예배드리다가 산소가 모자라서 쓰러지기도 하고 했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설교하면 보통 90분, 100분, 길면 120분까지 했습니다. 갈 때까지 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그때 온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쁘다는 것이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상태가 매우 나쁜 지경까지 간 사람들이었고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좋은 점이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와서 불평을 했습니다. 너무 하나님에게 열중해서 옆에 있는 사람이 뵈지도 않는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주일예배고 새벽기도회고 옆 사람과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지 말라고 헌법에도 나옵니다. 그렇게 해서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목숨을 걸었으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뭐든지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영미자매가 생각이 나는데 문산에서부터 토요일 마다 전도를 하러 왔습니다. 수요예배도 오는데 설교가 끝나기 전에 조용히 일어나서 집에 가야합니다. 설교 끝나고 나가면 집에 가는 차가 끊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했는데 목회를 해보니까, 내가 부흥회만 하러 다녔으면 몰랐을 텐데 그렇게 주님을 놀랍게 만났는데 은혜가 떨어지니까 옛날에 나빴던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건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가, 그러면서 탐구의 동기를 많이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배우게 되었고 누구도 설명도 내가 직면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큰 섭리 속에서 존 오웬을 깊이 만났습니다. 우리나라에 존 오웬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 입니다. 우리교회에 케네디라고 오리지널 잉글리시가 나왔습니다. 그 책을 읽으라고 했더니 400년 전의 영어니까 읽지 못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한참 존 오웬에 빠졌을 때는 금요일에 보따리 싸서 강원도에 가서, 물론 설교 준비도 했지만 존 오웬의 책을 펼쳐놓고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떤 때는 저녁 8시에 시작해서 그 다음 토요일 새벽 여섯시까지 뜬눈으로 정리를 한 것입니다. 무슨 출판을 하려고 책을 쓴 것이 아니라 그냥 정리를 한 것입니다.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아침에 세수하고 한잠도 안자고 강원도 오대산에서부터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내려오면 졸음이 하나도 없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예배시간이 수요일에도 만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설교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주일 설교를 일주일에 한번씩 밖에 못하나. 그렇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성화에 대해 많이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좋은 신자가 되려고 노력을 하는데 교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을 보면서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고 그때는 어거스틴에 대해 깊이 심취했고, 그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많은 것을 받았고, 순간순간의 깨달음이 아니라 깊은 사상 속으로 들어갔고 충격을 받았고, 밤을 새워도 다 말하지 못할 정도로 사상적인 여정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나는 신학공부 이렇게 했다』 1000페이지짜리 책을 2년에 걸쳐 완성을 했는데 거기에 많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인간의 의무,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인간의 의무,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의미에 대해서 깊은 자각을 주시고, 그리스도가 모든 일에 있어서 세상과 우주와 창조와 만물에 있어서 중심이 된 것에 대해 깊이 눈뜨게 하셨고, 그것은 지금도 나에게 깊은 감동이 되었고, 그러면서 고린도전서 13장과 같은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현대 사회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하셨고 사상의 싸움, 철학에 대해서, 하나님이 풍성하게 이제껏 인도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지적인 것들에 호기심이 있고, 과학 속에서 나의 눈을 뜨게 해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 나의 남은 생애도 같은 식으로 인생을 살면서, 내가 가본 길이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세계 속에서 가장 작은 티끌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로 인도하실지 아직 알지 못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날마다 깊은 하나님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인도해 오셨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교회를 이끌어 올 수 있게 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과 관련해서 임직과 모든 것을 얘기를 해보면 오늘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고 했는데 말씀이라고 하는 단어는 일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단수로 나오는데 하나님의 일은 많은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것은 세계 구속의 경륜입니다. 그런 사실을 하나님이 깊이 눈뜨게 해주시면서 개인의 신앙과 역사, 우주, 이 모든 것들을 묶을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신 것을 나에게는 감사하고 사상에 대해서 설교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이 세계 구속에 관한 일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의 일꾼이 된 것도 세계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그 교회가 부름을 받았고 그 교회의의 한 사람으로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은 철저하게 미국식 개인주의에 의해서 세탁된 복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보는 것을 이미 에베소서에 나오지만 이미 초대교회와 중세시대에 풍부하게 발달을 하고 그것이 교회를 바라보는 정설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신학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역사적으로는 어쨌든 교회의 몸을 찢고 나오는데 개신교는 영원히 그런 역사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찢고 나오게 된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면서 강조점이 종교개혁자들도 교회의 일체성과 하나 됨에 대해서 자유롭고 풍부하게 말할 수 없었고, 그것을 영적인 의미로 해석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철저하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개신교는 그 나름대로의 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반성을 하면서 진정한 교회의 공교회성, 카톨릭성이, 카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외형적인 일치가 전체성의 폭력에 의해서 인간을 얼마나 억압을 하면서 짓밟았는지를 봤기 때문에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동의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다.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다 자기 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도 이 교회가 담임목사를 한 첫 번째 교회이고 마지막 교회가 될 가능성이 많은데, 나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내 양심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나오는 대로 이 교회가 개별교회가 아닌 보편 교회들 속에 있다는 것, 그리스도의 모든 공교회 속에 있는 교회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힘썼고, 성도들에게 그 교회의 진정한 사랑이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대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온 마음을 다해서 가르치려고 애썼고, 내가 만난 많은 교회를 보면 그래도 보편교회를 사랑하고 우주적인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이다.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보편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입증이 된다는 생각으로 사랑했고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존재인지 어제도 홍원석 집사님이 이야기했지만 자신들이 그렇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것은 사실은 진정한 의미에서 겸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저도 그런 위험들을 많이 보고 마음속으로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면 열린교회에 10년 정도 착실하게 교육받고,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성령체험하고, 철저하게 가르침에 따라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솔직히 얘기해서 한국 교회의 다른 교인들에 비해서 상당한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교리반까지 하고 일 년에 세 번에서 네 번 신학 책을 읽으면서, 심지어는 제가 아는 어느 집사님은 부흥과 개혁사에서 나오는 모든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그런 정도의 교인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집에서 10년 정도 되었다고 하면 책꽂이를 보면 한 칸 정도는 책으로 채워져 있고, 어마어마한 양의 테이프를 들었는데 정보의 양에 있어서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대화를 해도 교회를 20년 다녀 수많은 간증을 가지고 있어도 마치 수많은 체험들이 보따리 풀어놓듯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지 신학적으로는 정리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다른 교인들보다 낫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부심이 된다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향해서 교회를 깔보는 것이 된다든지, 그래서 마치 지식이 미약한 교회에 다니는 것이 헛된 신앙생활 하는 것처럼 보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외국에 나가서 신앙 생활하는 지체들에게 열린교회를 잊으라고 했습니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설교 듣는 것을 말리지는 않지만 그것을 듣는 것도 지금 있는 교회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차라리 그것을 끊어라. 그러나 그것을 소화하고 잘 섬길 수 있다면 병행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잊어버리라고 했습니다. 그 교회가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설교도 정리가 안 되어 있고, 교인들이 오락가락하고, 부흥사라로 오는 사람이 도저히 동의 할 수 없고, 그러면 다 정리하고 오던지, 아니면 거기에서 살려면 그것을 끌어안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하면서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그 교회를 통해서 이루고자하는 일은 구속 경륜입니다. 그 구속 경륜 속에는 복음을 전해서 예수를 믿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믿은 사람을 올바른 신자로 만들어서 교회다운 교회가 서서 그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참 소금이요, 빛으로 살아가서 이 세상이 변화되어가는 모든 경륜들이 다 포함되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팔복의 사람들에 대한 오늘날의 설교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팔복의 설교가 이제 끝나 가는데 마지막은 팔복의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시작을 하는데 마지막의 결론은 팔복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상급은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이 끝입니다. 참으로 진실하고, 참으로 복된 사람이 되면 참으로 변화된 팔복의 사람이 되면, 부귀와 영화와 수많은 세상의 칭찬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이질감으로 인하여 박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팔복의 사람의 현실입니다. 그런 박해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찬란한 계시의 빛을 비추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가시고 그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 부름을 받았고, 이제는 산에 나무가 심겨질 때에는 처음에는 나무가 산의 신세를 지지만 큰 나무가 되고 나면 산이 나무의 신세를 지는 것처럼, 여러분은 최소한 우리교회에 온지 6년 이상 된 사람들입니다. 6년 된 사람은 특별히 뽑힌 것입니다. 보통 10년 이상 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자랐습니다. 교회의 신세를 지면서 수많은 사람의 섬김을 받고 자랐는데 이제는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의 육체에 채우라.
부패한 죄인들이 모여서 사는 사회가 교회이고, 목회자인 나도 내가 싫은데 우리 중에 온전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너무 가슴 아픈 것은 교회 속에서 일어나는 아픔들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체의 결함이나 모든 것들을 공동체적으로 누리면서 이것이 나의 아픔이라고 느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떼어내고 싶은 귀찮은 존재로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교회를 향한 모든 불만과 고통과 원망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이야기는 떠나온 교회에 대한 부정적이고 가슴 아팠던 이야기, 이해는 갑니다. 너무 가슴이 아팠으니까, 그것을 목회자이니까 믿고 그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충분히 동정이 갑니다. 그런데 그것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우리의 영혼은 계속 고통을 받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큰 섭리 속에서 우리가 부름을 받지만, 우리가 더 어려운 일이 있고 더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더라도 우리의 사랑이 그 고통과 어려움보다 컸으면 우리가 각각 거기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도덕적인 선호를 능가해서 하나님의 큰 섭리로 우리의 인생을 움직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모두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지만 죄를 짓고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교회를 떠나온 모든 것이 십자가를 회피하고 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 하나는 우리의 생애를 돌아보면 더 어려운 일이 있었는데도 잘 견뎠는데 그것보다는 덜 힘든 일인데 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의 크기가 아니라 은혜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큰 고통도 이겼는데 작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섭리 속에서 여러분이 인도를 받았지만 마음속에서 항상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아프게 교회를 등지는 일이 우리들의 인생에서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여기가 마지막이 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에서 우리가 진리의 빛이 없었을 때는 진리를 찾아오고, 진리의 맛을 보고 진리를 알고 나서 싫증이 난 다음에는 또 다른 이유로 교회를 옮기는 것은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교회를 옮긴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카톨릭의 전통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교구에서 태어나면 그 교구의 교회를 다니는 것은 자기의 운명이었기 때문에 목회자가 어떻게 바뀌어도 그것과 상관없이 그때에도 설교를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 성격이 이상한 사람, 괴팍한 사람이 늘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교회의 개념이 누가 와서 목회를 하냐는 패러다임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중심이 항상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바울이 그런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채우라. 교회를 섬기는 동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교인, 자기를 도와서 협력하는 교인, 자기를 목회자로 인정하는 교인,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 때문에 자기를 구원하시고 십자가의 은혜로 살리신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자기가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인하여 괴로움을 당할 때에도 형제를 보고 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불러주셔서 이 교회를 삼으신 그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책에도 썼는데 너무 너무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정말 내 마음 속에는 사임까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면 교회를 다시 개척하고 싶었습니다. 개척에 대한 두려움은 티끌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너무 어렸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하지 않고는 얼마나 차이가 나냐 하면, 자식을 낳으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버릴 수는 있어도 뱃속에 다시 집어넣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식을 버리면 고아원에 보내야하는 나쁜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개척한 지 일 년이 되었을 때의 일인데 아직 학교에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학교에서 제안이 왔습니다. “김 교수, 이 년 동안 10만 불을 줄 테니까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오던지, 여행을 하고 오던지, 학교를 다니지 말고 조용히 외국을 공부를 하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같이 앉아서 밥을 먹던 교수들이 헐 했습니다. 저 사람은 솔직히 박사학위도 없는데 자기들은 구라파와 미국에서 박사학위도 받았는데 깜짝 놀란 것입니다. “당신들이 여기 박사학위를 받고 왔지만 나는 당신들 다하고 김남준 교수와 바꾸지 않는다.” 교수들이 헐~ 했습니다. 아무도 그런 제안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 말도 안 되는 환상적인 제안을 받고 몇 달 있다가 사표를 내러 왔습니다. 왜냐하면 돌아오면 말뚝을 박아야지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애를 벌써 난 것입니다. 애가 없었으면 할렐루야입니다. 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2년 동안 공부도 하고 책도 보면서. 제가 91년도에 그 학교에 갔고 95년도에 제가 사직을 했는데 그때 제 연봉이 4000만원이었습니다. 학교를 사직하고 교회를 들어오니까 1200만원을 주었습니다. 다 소용 없는 것이 이미 애기를 놓은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최초로,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30~40명이 되었는데 인원과 상관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는 세 명을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지만, ‘내 새끼구나. 못 가는구나. 이게 목회자의 운명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깊이 고통을 받고 괴로울 때 결정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열린 공간 마당에서 묵상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교육관에 있지만, 아침에 시편 2편을 읽고 있는데 “여호와는 나의 방패요 영광이시니라” 구절을 읽는데 한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분노와 이런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사실은 그때 교회를 돕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철모르는 장로님들이 갑자기 세워졌고, 그전까지는 교회 시스템 모든 것들을 거의 혼자 힘으로 세웠습니다. 월요일은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회의를 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대단한 집념으로 교회를 이끌어서 시스템을 세워 왔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일시에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데 “저는 이게 너무 괴롭습니다.”하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은 전혀 다른 것으로 물어 오셨습니다. “네 몸에 나 예수의 흔적이 있느냐” 처음에는 작은 물소리처럼 들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천둥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헌신하고 추호의 옷이나 음식이나 아무것도 탐하지 않고 교회를 위해서 나 자신을 쏟아 부으면서 일생을 왔는데 그렇게 헌신했다는 생각만 차있었고, 어떻게 내가 더 헌신할 것인가를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네 몸에 나 예수의 흔적이 있냐고 물으십니다. 그러고 돌아보니까 일은 했지만 예수의 흔적이 있나에 대해 반문하게 되었습니다. 6개월 이상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그때 쓴 책이『자기깨어짐』이었습니다. 두 달 만에 써버린 책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교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20년 동안 괄목할 만한 깊은 변화가 다섯, 여섯 번 정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번이 십 여 년 전에 겪으면서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가를 깨닫게 되었고, 교회에 대한 사랑을 다시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일체성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만이 아니라 주님을 깊이 만난 모든 사람들이 이 교회와 그리도와의 연합의 비밀에 대해서 너무나 문외한이구나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단어가 항상 단수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은 수 십 가지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것은 구속의 경륜입니다. 가족들 돌봐주신 이야기, 사업에서 성공한 이야기 등 수많은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제 안수집사가 되고 내가 마지막 강의 할 때 명복을 빈다고 이야기 했지만 농담이 아니라 진담입니다. 이번에도 장로들이 되고 나서 엄청 고생하고 있는데 그런 모든 과정을 통해서 신앙으로 승화시킨 사람은 비옥해 집니다. 땅에 쓰레기나 거름이 묻히고 이런 것들을 덮어버리면 땅이 소화를 하면 이 말도 안 되는 것 때문에 땅이 어마어마하게 기름져집니다. 특히 닭똥 같은 것을 삭혀서 땅속에 집어넣고 씨를 뿌리면 이파리가 시퍼렇게 올라옵니다. 그런데 소화를 못하면 땅 자체가 망가지고 씨앗이고 무엇이고 집어넣으면 썩어서 다 문드러집니다. 똑같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교회에 항상 있는데 그것을 소화시키면 그것이 놀라운 사랑과 은혜로 변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소화를 하지 못하면 그 자체가 여러분을 상처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우리들이 은혜생활을 잘 하면서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지고 이일을 감당하면서 하나님 앞에 산다면 인생을 살고 마지막에, 우리 장로님들에게도 “여러분은 참 복되다. 하나님 앞에 가면 내가 한 교회를 섬겼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장로님들뿐이겠습니까? 신실하게 교회를 섬기고 사랑한 모든 사람은 그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 교회가 여러분 인생에서 마지막 교회라고 생각하고 즐겁고 혜택 받는 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난 받고 아픈 일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면 바로 저것에 대한 십자가를 내게 지게 하려고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하며 감당해 나가면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지는 동안에 성도는 가장 아름다운 영혼이 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