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새벽예배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히 12:4 )
녹취자: 박정윤
여기서 피흘리기까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 당시에 팔레라고 하는 격투기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부딪혀 싸우면서 결국 누구하나가 죽어야 싸움이 끝나는 그러한 종류의 격투기입니다. 씨름이라고도 하는데 격투라고 번역하면 좋을거 같습니다. 깊이 고민하면서 무엇과 대항해서 열렬히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그렇게까진 않했다란 뜻은 너희들이 믿음으로 산다고 했지만 11장에 나오는 허다한 구름같이 수많은 증인들과 다른점이 무엇이냐하면 그들은 죄와 더불어 싸우기를 피흘리기까지 싸우면서 열렬한 믿음을 유지했지만 너희들에게도 죄에대한 싸움은 있지만 이겨야겠다 반드시 이 죄에 의해 주장될수 없다라는 치열한 열렬함을 가지고 내가 죄를 죽이지 않으면 죄가 나를 죽일것이다란 적대적 반감을 가지고 싸워본적이 없지 않느냐 하는 얘기입니다. 결국 믿음에 주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삶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또렷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본다는 구체적 의미가 무엇이냐 믿음의 원저자이시고 그를 바라보면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그분을 쳐다보며 사는 삶이 무엇이냐 예수를 사랑하고 그를 추구하고 전심으로 따르고 그렇게 산다는 것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단어로 우리에게 표현하는데, 죄와 더불어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사는 삶이 예수를 추구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한다 고백하고 예수님께 은혜받는다 고백하고 자기 일생은 참신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고백하는데도 성화에 진전이 없고 그 믿음이 온전하여 지지 않는지를 확연히 알수 있게 됩니다. 앞에 나온거처럼 피곤함과 영혼의 싫증, 마지못해 하는 억지의 마음 이런것들이 늘어붙어서 죄나 그런거에 대한 인식은 있고 마지못해 툭툭치면서 싸우기는 하는데 이겨야겠단 결의가 없는것입니다. 반드시 이겨야하고 죄와 단순히 갈등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투쟁상태에 있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간간히 주셔도 영혼자체가 죄와 맞붙어 싸워서 이겨야겠다 영혼이 진정한 자유를 얻어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맞붙어 싸워야지만 마음
속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들이 죄를 죽이는데 사용되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툭툭건드리며 마치 격투가 아니라 게임을 하듯이 가볍게 싸우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셔도 그 은혜가 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죄와 더불어 갈등하느라 모두 소진되어 성화의 진전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삶에 있어서 결의와 결단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누구도 이것 없이는 영혼의 싫증과 피곤함을 면할수 없고 그런 영혼의 싫증과 피곤함 육체의 게으름이 있는곳엔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도 죄를 죽이는데 사용되지 못합니다. 구름같이 허다한 많은 증인을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성경이 말합니다. 죄와 더불어 싸우고 투쟁하지만 피흘리기까지 반드시 이겨야할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죄를 죽일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그것과 더불어 싸워 이겨야한다라는 결의가 부족합니다. 주님이 은혜를 주셔도 그 은혜를 가지고 죄를 죽이는데 끝까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적과 더불어 반드시 이겨야겠다 전쟁터에서 그보다 더 절실한 가치는 없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전쟁에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도저히 무기로 안되면 군인을 보내서 몸으로 막게끔 하는것입니다. 반드시 필전필승 각오가 없으면 많은 무기를 외국에서 공급받아도 그것들을 온전히 사용해서 전쟁에서 승리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망한 나라가 베트남인데, 베트남의 경우 미국이 무기를 공급해도 그 무기로 베트공이 쳐들어와서 그 무기를 술집에 팝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들의 군인이 그 총에 맞아 죽는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많은 물자를 쏟아 부어도 만일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지사필승의 전의가 없다면 반드시 패배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보면서 드는 생각이 죄와 더불어 싸우며 회개도 하면서 마음에 진실한 신자가 되고픈 소원도 있지만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사용해 꼭 그렇게 되어야겠다 필히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의미없다란 강력한 결의가 우리에게 있어 심각히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게됩니다. 일생을 죄와 더불어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않고 죄와 함께 괴로워 하며 사는 삶이었다면 믿음의 주여 온전케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생애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를 위한 어느 상급도 예비되어 있지 않고 결국 불안과 두려움속에 걸어들어가고 온전함을 이루고자 하는 진정한 기쁨과 안식이 무엇인지 일평생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를 추구하고 바라보며 산다 하는 의미는 죄와 더불어 피흘리기까지 싸우고 다투며 사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