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교직원예배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1-5)
녹취자: 박지성
요즘 여자대학에서 ROTC가 되려고 여학생들이 치열합니다. 몇 십대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워낙 숫자가 적으니까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ROTC가 되고 싶어 하느냐면 요즘 수출은 잘 된다고 하지만 일자리가 워낙 없으니까 힘들어서 그것도 공무원이라 안정적이고 하니까 아마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또 다른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ROTC를 나온 사람들이 취업을 하면 공직사회에서도 환영을 하고 개인 회사에서도 아주 좋은 혜택을 받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무원 생활을 할 때도 보면 ROTC를 나와서 군 장교출신들이 전역을 하면 대개 대위에서 전역을 하는데 사무관으로 특채를 줬습니다. 그 사무관은 행정고시를 봐야 갈 수 있는 자리인데 굉장히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그 때가 군사정부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ROTC 출신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명령에 살고 죽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어떤 일을 해내야 되겠다는 책임감이 비교할 수 없이 강합니다. 엉터리 군인들은 말고 표준적인 군인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군대라는 사회 속에서 되지도 않는 환경에서 일을 하라고 지시를 받으며 단련되어 왔기 때문에 일반 사회에서 일하는 것은 군대보다 훨씬 융통성이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아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중풍병에 걸린 사람이 있었고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친다는 소식을 들어서 함께 왔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가족일수도 친구일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그 사람을 가지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갔습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줄이 늘어서 있고 문으로 들어가려니까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습니다. 그 정도면 자기일도 아닌데 “에이, 해 보니까 너무 사람이 많아서 못 들어간다.”하면서 접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위로 올라가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거기에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네 줄로 묶어서 달아 내렸던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세치기이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인데 예수님은 이것을 보시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사랑은 모든 창조적인 생각의 원천입니다. 그것이 바로 열정입니다.
워치만 니는 신학 사상적으로는 개혁신앙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지만 우리나라에 변변한 경견서적이 없을 때 그 사람이 쓴 ‘육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이 한국교회를 거의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성화관을 한국교회에 두루 퍼지게 하는 데 상당히 이바지한 책입니다. 그 사람의 신학사상은 경건주의 후기의 달비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젊은 사람이었는데 일찍이 죽습니다. 30대 정도에 죽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산당의 핍박을 받아서 죽었는데 영어를 아주 잘했습니다. 그래서 원서들을 아주 많이 읽으면서 섭렵했고 경견주의 후기의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는데 추종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행진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 달, 6개월 정도에 걸쳐서 대륙을 횡단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번 그렇게 행진을 하면 수천 명이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그런 표적이 따라다녔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전도할 수 있었느냐 물었더니 그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영혼을 구원한다는 예수님의 사명을 가슴에 품으니까 지혜가 생겼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지혜는 열정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예전에 하던 일을 계속해서 아무런 변화 없이 해나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정이 있는 사람은 이 모든 문제를 가지고 깊이 고민하면서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경우에 “할 수 없어서 그러므로 그만뒀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여기에 보면 할 수가 없어서 그들은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창조적인 방법으로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갔고 그것을 예수님은 믿음이라고 여겨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사역의 수종을 드는 것은 우리들이 본질적으로 생각하면 어명을 받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분 앞에서 그 일을 감당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명을 받드는 것입니다. 그런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우리들이 일을 한다면 우리들이 할 수 없을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그것을 접어버리고 좌절하고 꺾어지고 하는 것이 결국은 환경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어명을 받드는 마음 자세와 열정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까?
(예화) 언젠가 돌아가신 옥목사님이 노회에 있는 교회 이야기를 하시면서 많이 답답하셨는지 그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장사를 해도 그렇게 하면 안 되겠더라. 장사를 해도…”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 장사를 해도 한참을 해본 다음에 안 되면 그 장사를 바꿔보는데, 어떻게 되지도 않는 것을 계속해서 하느냐. 그게 어떻게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그 당시에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방법론의 문제를 이야기했던 것이 아니라 믿음과 열정이 없는 사람들이 창조적인 생각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던 일을 계속 해나가는 것은 하던 일도 안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그것은 마음속에 그 일에 합당한 열정을 하나님 앞에서 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다 더 높은 완전에 도달하도록 그렇게 몸부림을 치면서 일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보편적인 마음으로만 하나님께 헌신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보편적으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그런 마음이 개별적인 사람들 하나하나 속에 배어 나와서 그것이 입증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일들에 있어서의 완전함의 추구는 보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섬김의 삶을 살고자하는 마음의 발현입니다.
사람들이 우리 자신에 대해서 내리는 판단이나 평가가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편이기 때문에 우리가 제법 순수한 마음을 가진 줄 알아서 나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의 개별적인 작은 행동들을 보면서 알게 됩니다. 이렇듯이 우리가 우리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과대평가에 너무 심취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워하는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내리는 판단이 아프지만 훨씬 정확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개별적으로 우리들이 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엄격하게 평가를 하고 그것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의 어떠함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 대한 정확한 평가일 수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학개 선지자의 시대에 나타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짓다가 중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지을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학개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그리고는 외치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성전은 이렇게 황폐해졌고 너희는 판벽한 집에서 살고 있는데 이것이 가하냐?”하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너희들은 재물을 모아도 뚫어진 전대에 돈을 담는 것 같이 새어버렸고 하나님의 복이 없다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성전을 짓는 것, 판벽한 집에서 사는 것, 이것은 모두 개별적인 작은 사안들입니다. 그 개별적인 작은 사안들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자신들은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없었던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마음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섬기고 있는 모습은 그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 교역자들과 직원들이 있지만 여러분들이 일을 하다가 부주의하게 처리했거나 아니면 매우 나쁘게 처리했을 때 제가 마음이 많이 상해하는 이유는 일이 잘 안돼서 짜증이 나서 그러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여러분들의 하나님을 향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예화) 전에도 예를 들었지만 물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목사님, 나 물 한잔만 주세요.”해서 내가 주었습니다. 주는데 툭 하면서 컵이 쓰러져 쏟아졌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우! 미안해!” 그러면 끝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사람이 황제였다면 나는 사형일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서 물을 쏟은 것이 이 사람의 생명을 위협했습니까? 내가 물을 쏟아서 왕을 욕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까? 그런데 죽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죽임을 당합니까? 8대조 할아버지께 물을 쏟아도 죽임을 안 당하는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임금한테는 물을 쏟았다고 단칼에 목이 날아갑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임금을 깔봤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아니 어떻게 사람이 물을 쏟을 수도 있지 그것이 황제를 깔보는 것이 됩니까?”라고 묻겠지만 아랫사람이 물을 달라고 하면 그냥 줘도 되지만 임금에게 물을 바칠 때에는 온 마음을 쏟아서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깔본 것입니다. “먹고 싶으면 네가 떠먹지 왜 나보고 달라고 해!”하며 탁 가져다주는 것이 깔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황제의 입에 들어 갈 때까지 받들지 않은 것이 깔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아주 거대한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해서 하나님께 욕을 돌려야지만 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자기가 부주의해서 실수를 한 것은 의도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큰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섬기는 모습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마음의 질이 어떠한지 사랑의 깊이가 어떠한 지를 모두 보여주는 총체적인 증거입니다. 정성을 기울여서 어명을 받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온전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도 온전함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온전함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온전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화) 요즘 어떤지 모르지만 전에는 종종 야간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얘야.”하고 경비하는 곳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면 음악을 듣든지 드러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납니다. “저 불을 꺼야 되지 않겠니? 혹을 켜야 하지 않겠니?”하면 스위치를 못 찾습니다. “형제님, 여기 야간경비를 근무한지 얼마나 됐나?” 그러면 “석 달째 인데요.”합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행정실장 책임도 있습니다.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줘야하는데 안 가르쳐서 그렇지만 그런 삶의 태도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미래의 희망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살아갈 것입니다. 살아가는데 질 높은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적은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에서 급료를 받고 석 달이 지났고 밤중이 되면 불을 켜고 끄는 일이 자기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데도 그것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합니까? 그런 것들은 난센스입니다.
(예화) 몇 년 전에 교회에서 불이 났습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형 화재였습니다. 화재의 원인은 순찰 열쇠를 불이 들어오는 복도의 간판 위에 항상 놓았는데 그것을 잘못 건드려 구멍으로 빠졌고 구멍으로 빠진 열쇠가 내려가다가 전선에 붙어서 합선을 일으켜서 스파크가 나면서 불이 붙어 간판을 태우고 벽과 천정까지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때 사택에 살던 교역자들이 나오면서 보고 불이 났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강제시스템이니 불이 났다고 벨소리가 막 났습니다. 그러나 경비실에 있던 야간경비직원은 이 벨이 잘못 울리는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벨을 끄고 싶었는데 스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벨을 못 껐습니다. 그래서 이 벨을 어떻게 꺼야하냐고 난리를 치는데 위에서 사람들이 내려와서 3층에서 불이 나 벨이 울리는 것이라고 했고 올라와 보니 3층에 불길이 타고 있었습니다. 발견을 못했으면 3층이 다 탔을 것입니다.
정말 한국다운 화재사건입니다. 열쇠를 열쇠함에 보관을 해야지 왜 간판위에 올려놔서 구멍 속에 떨어뜨립니까? 이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벨이 울리면 당연히 몇 층에서 벨이 울렸는지 확인하고 사정없이 뛰어 올라가서 현장을 확인해야지 그것이 잘못 울렸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벨을 끄는 것은 무슨 일이며 끄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스위치를 못 찾아서 못 끄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보면서 우리들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우리들이 주님을 섬기며 살아갈 때 마음을 기울이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하고 또 온전하게 그 일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완전함을 우리의 모든 사역 속에서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것을 못하게 하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그 사람 안에 있는 진실성과 열정의 크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한번 깊이 우리자신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해서 섬기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