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새벽예배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 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행 13: 40)
녹취자: 김용재
그 앞에서는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사심에 관해서 설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구약에 다윗임금과 예수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설교를 하는 겁니다. 왜 이렇게 다윗과 예수그리스도를 비교를 하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에도 흠모하는 시대가 다윗의 시대였고 다윗의 시대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지만 다윗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강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강하게 하셨고 또 이스라엘이 다윗왕국시대에 강성한 나라가 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세계 역사 전체 맥락에서 본다면 참 우스운 얘기입니다. 기껏 해서 팔레스타인 레반뜨 지역의 땅을 일부차지하고 그러면서 나라들에게 조공을 받았다고 하지만 아주 작은 마을이라고 밖에 불릴 수 없는 정도의 작은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때를 그렇게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때가 강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의 통치의 시대를 그리워한 것은 그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해주시는 아주 현저한 은혜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현저한 은혜가 이 땅에 있는 나라 이 지상에 있는 나라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강하고 영향력 있는 백성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의 나라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들 생각에 메시아가 오신다면 그렇게 그런 왕국의 시대로 돌아가게 해주시는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윗의 시대 때에 통일된 왕국이었다가 솔로몬의 시대에 이미 나라가 갈라질 준비를 마치고 그 후에 나라가 북 왕국과 남 왕국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다윗의 시대에 누렸던 것과 같은 그런 영광스러움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갈라지고 나서 북 왕국이 망하고 그 다음에 남 왕국이 망하고 그 다음에 바벨론 시대로 들어가고 그 다음에 메데 바사를 거쳐서 헬라나라 그 다음에 로마시대 한 번도 제대로 된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것이 2500년 가까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940년대에 흩어진 시온주의자들이 모여서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교를 듣고 있는 시간에도 이 예수님시대 아닙니까. 그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의 나라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설움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상에 있는 대부분의 민족 같았으면 2500년 동안에 나라도 없이 떠돌아다녔다면 그 민족이 모두 다 흩어져서 동질성을 상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2500년까지는 안됐고 600년 정도 됐을 때 일입니다. 그 정도에서 다윗을 꿈꾸고 있을 때의 바로 그걸 얘기하는 것입니다. 다윗보다 더 큰 이가 계시다 그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신데 그분이 자기의 백성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너희들이 나무에 매달아 십자가에 죽게 하신 바로 그 예수그리스도시다. 그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모세보다도 더 큰 이고 다윗보다도 더 큰 이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나라가 이루어 질 것이다. 다윗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루어졌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강한 국가가 되는 것이었지만 이미 다윗이 벌써 자기보다 더 큰 왕이 오셔서 영원히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다윗의 길을 다스릴 것을 말씀해 주셨다. 그 분이 바로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시다. 너희들이 그 분을 알지 못해서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 이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잘못됐고 그는 하나님 앞에 올바른 분이시다 인정받은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설교를 마지막으로 적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뭐냐 하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두렵다. 왜냐하면 그렇기 때문에 두렵다 왜냐면은 예수그리스도를 많은 사람들이 강퍅해져서 예수님이 와도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지 않을 것조차도 이미 성경에 예언된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마음을 강퍅하게 해서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일 리가 없다고 믿어버릴 까봐 염려된다. 그러면서 하박국서에 나오는 성경구절을 인용을 한 것입니다. 내용은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것이다. 그 행하신 일이 뭐냐면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서 그 분이 메시아의 역할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하셨다고 믿는 메시아의 역할과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의 역할이 매우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시대 때에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메시아의 역할은 이 세상에 와서 로마나라사람들을 다 때려엎고 강한 세상나라를 이루는 것이 바로 메시아의 임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외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냈을 때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것은 육체로 난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은 끝났고 이것은 씨앗으로 말하자면은 밀알입니다. 씨눈을 싹트게 하기 위해서 썩어야할 밀알입니다. 그것이 충분히 썩고 그 썩은 이스라엘의 육적인 껍질을 깨고 그리고 거기에 예수그리스도의 나라가 찬란하게 영적인 왕국이 서야했단 말입니다. 영적인 이스라엘 왕국이 서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이 왕국을 이루는 방법이 다윗이 왕국을 이루는 방법하고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지 만 그들이 하나님과 멀어졌던 사이의 화목이 오게 되고 그들이 죄를 용서받고 진정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정말 그 일을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오신 우리를 구원하시는 메시아라고 하는 사실을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면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들이 꿈꾸고 있는 구원에 대한 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다른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과 사귀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이러해야 하고 우리는 옛날 다윗시대처럼 나라가 부강해야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예수님을 미워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수님을 향한 태도가 종잡을 수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베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축복을 베푸셔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일 때 남자만 오천 명이라고 했으니까 사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일만 오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두 임금 삼으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할 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찬양하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조금 이따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결국 무엇 때문입니까.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바라고 꿈꾸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그런 메시아가 되기를 원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예수님께서 관심 있으신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로마나라에 이스라엘이 박해를 당하든 그런 것보다도 영적인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미워한 것입니다. 그게 뭐냐면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을 때의 그 마음이 강퍅해진 것입니다.
이런 염려는 우리들에게도 언제든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굳어지고 강퍅해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는 그런 처지가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품을 멀리 떠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신앙을 가지려면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리고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이 어떻게 변할 것이고 또 변화된 우리 인생을 통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새롭게 하시길 원하는가는 것을 우리들이 깊이 깨달아 알 때 비로소 참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도 강퍅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