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영혼의 회복과 의로운 생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3)
녹취자: 조원정
하나님이 자신의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2절에서부터 시인이 고백을 하고 있는데 2절에서는 공급해주시는 은혜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이 사랑하시는 목자이심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3절은 영혼을 소생시켜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의 목자임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신앙이 어렸을 때에는 먹고 입고 마시고 쓸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좀 더 신앙이 깊어지면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곤고한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자신의 영혼을 보호해주셔서 하나님 때문에 은혜로운 생활을 하게 해주는 것,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영적으로 느끼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라고 합니다. 제일 먼저 그는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소생하다. 라는 말은 원래 성경에 쓰여진 히브리어로 하야라는 동사인데 살아나게 했다, 살리다. 그런 뜻입니다. 직역을 하면 주님께서 나의 영혼을 살아나게 하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영혼을 살아나게 하셨다는 이 의미는 이미 그 뒤에 이 시인의 영혼이 죽은 것 같은 때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이 육체는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부어서 영혼을 부여하심으로 영혼과 육체가 만나서 아울러 살아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 육체와 영혼이 만나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육체는 처음부터 만들어질 때 땅에 있는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땅의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찬송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활기차게 웃어도 일주일만 굶기면 눈이 퀭하고 사람들 만나서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저 이렇게 가만히 누워 있고만 싶고 한 100일쯤 굶기면 죽습니다. 하루만 물을 안 마셔도 거의 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화려하게 밥을 먹고 사는 것은 너무 맛있고 좋은 것을 많이 먹으면 욕망대로 먹으면 몸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어렸을 때는 살이 쪄도 골고루 찌는데 나이가 들면 이상하게 조금 먹어도 살이 한 곳으로 뭉칩니다. 뭘 또 배를 만지고 그럽니까? 안 만져도 됩니다. 몸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적당히 먹고 절제를 하며 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게 육체입니다. 육체가 그렇게 먹고 마시고 해야지만 육체의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추우면 적절하게 몸을 가려해주고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사업을 하고 돈을 벌고 적자나서 어떡하나 어떻게 해야 남보다 더 많이 벌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돈이 넉넉히 있으면 필요할 때 육체를 위해서 거의 모든 것을 사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자라면 인생이 고달파지기 시작합니다. 추운데도 제대로 몸을 보호해 주지 못하고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못 먹고 고달프게 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돈을 벌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돈을 적절히 자기 건강과 육체를 위해서 사용하면 얼굴도 덜 늙어 보이고 건강도 잘 유지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인간이 어리석은 것은 육체를 위해서는 참 많이 애를 씁니다. 세월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얼굴을 발라도 세월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50이 되면 학력 평준화, 좋은 대학 나온 사람 나쁜 대학 나온 사람의 차이가 있는데 50이 되면 전부다 머리가 나빠져서 깜빡해지기 때문에 똑똑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60세가 되면 외모 평준화, 뭘 바른 사람이나 안 바른 사람이나 비슷합니다. 80이 되면 빈부평준화입니다. 어차피 기운이 없어서 못 움직이기 때문에 돈이 있으나 없으나 집안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육체를 위해서는 이렇게 많이 애를 쓰고 노력을 합니다. 어디 좀 맛있는 거 있다. 좋은 볼거리가 있다고 하면 열심히 따라가서 보고 먹고 그런 재미로 삽니다.
똑같이 인간의 영혼도 뭔가 계속 먹여줘야 합니다. 그래야지 영혼의 생명을 유지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이 세상의 자원이지만 영혼은 그 자체가 하늘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는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 자원이 단순히 이 지상의 자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천상의 자원도 함께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주 재미난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죽는다고 하면 숨이 끊어지고 심장의 박동이 멎고 온몸의 신진대사가 다 끝납니다. 시체가 부패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육체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영혼은 그런 식으로 죽지 않습니다. 영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점에서는 무시, 시작이 없는 다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시작이 있는 유시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이 인간의 영혼을 창조하실 때는 영원히 죽지 않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지옥에 던져 진다하더라도 그 지옥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유시무종한 존재입니다.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존재입니다. 당연히 육체가 죽었다고 할 때에 그 말의 의미와 영혼이 죽었다고 할 때 그 말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우리 집에는 쌀이 없어.”라고 하는 말과 “네 마음속에는 사랑이 없구나.”라고 하는 말의 ‘없다’는 의미는 똑같은 의미가 아니듯이 죽었다고 하는 것이 육체가 죽었다는 그런 식의 똑같은 개념으로 영혼이 죽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인간의 육체는 죽으면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영혼이 죽으면 수많은 행실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 죽은 행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영혼은 죽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이 죽었다고 하는 의미는 육체처럼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똑바로 살아있지 못하는 것을 죽었다고 합니다. 똑바로 살아있는 것이 무어냐 하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영혼을 주실 때 영혼에게 기대하고 생각하셨던 데로 영혼이 작동하고 움직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게 하는 모든 것을 죽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혼이 그런 의미에서 죽은 상태로 태어나고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상태의 인간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만 무능한 상태로 태어나도 이 세상에서 도덕이나 윤리 이런 것들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받고 인간이 사는 길을 터득하게 되면 죄를 노골적으로 지으면서 방탕한 삶은 안 삽니다. 예수를 안 믿더라도 여전히 인간에게는 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이 죽은 영혼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요동을 치면서 수많은 사건들을 만들어 냅니다.
얼마 전에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죽여서 보험금을 타내서 아주 사치스런 생활을 했는데 그것도 두 남자나 죽여서 보험금을 탔습니다. 마지막에는 딸까지 죽이려고 하다가 잡혔습니다. 이런 사람을 뭐라고 하는가 하면 영혼이 죽었을 때 인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엊그제 예비군 훈련장에서도 자기는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일어서서 다 죽여 버리겠다고 하고 사람을 3명이나 죽이고 자기도 자살했습니다. 영혼이 완전히 굶주리고 생명을 잃어버렸을 때 인간이 어떤 상태의 인간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목사님 우리는 남편을 독살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을 죽일 의지가 없습니다. 그럴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여러분 은혜가 떨어져 보십시오. 은혜가 떨어지면 기도도 안 됩니다. 교회에서 무슨 봉사를 하라고 해도 못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인색해집니다. 불평과 불만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삶의 질서들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영혼이 생명에서 멀어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영적인 침체라고 부릅니다.
신앙생활에서 너무 중요한 것은 지식입니다. 그 지식이 믿음을 대신하는 지식이어서는 안 되지만 잘 믿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식이 필요하고 이 지식이 있어야지만 하나님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된 사람들은 일평생 하나님에 관해서 배우면서 사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배우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함으로서 우리의 영혼이 생명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얘기해서 쌀을 끓이면 밥이 되는데 밥하고 김치만 먹으면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충분합니다. 우리 장인어른은 마지막에 몸져누우시고 못 일어나셨는데 야쿠르트만 먹고 8개월을 사셨습니다. 하루에 한 병씩 야쿠르트만 먹고 8개월을 사셨습니다. 충분히 삽니다. 여러분 중에 매일 하얀 밥하고 김치만 먹고 사는 사람 없습니다. 오늘도 저녁 몇 가지 반찬 먹었습니까? 개구리 반찬 드셨습니까? 여러 가지 먹습니다. 인간이 간사해보입니다. 고기를 국도 끓이기도 하고 볶기도 하고 굽기도 하고 지지기도 하고 말리기도 하고 온갖 난리를 쳐서 고기를 요리해 먹습니다. 야채도 그냥 삶아서 먹고 튀겨서 먹고 국 끓여 먹고 부쳐서 먹고 온갖 난리를 치는데 왜 그럽니까? 어떡하든지 이 몸에 필요한 양식을 얻기 위해 그런 것 아닙니까?
여러분이 제일 중요한 것은 예배시간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하나가지고 여러분이 완전한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까? 바울 같은 사람이 와서 직접 설교를 한다거나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설교를 하시면 감흥할지 모르나 나나 우리 목사님은 그런 정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설교만 들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 와서 성경공부를 해야 합니다. 성경 공부할 뿐만 아니라 성경을 잘 풀이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어떤 청교도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밥이라면 책은 반찬이다.” 밥맛이 없을 때 반찬이 좋으면 밥을 먹고 싶어진다. 지금 이야기 한 것은 다섯 여섯 가지 밖에 안 됩니다. 여러분 반찬 가지 수보다 훨씬 적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여러분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설교를 듣고, 휘 듣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잘 듣고 그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의 마음에 계속 새깁니까? 집에 돌아가서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고 가끔 눈물도 흘리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 기도합니까? 수시로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씩 하나씩 학생처럼 배워가고 매일매일 손에 들고 있는 책이 있습니까? 또 교회 와서 교리도 배우고 구역예배에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받고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지성 속에 집어넣어주어야 합니다. ‘아 그거였구나. 정말 은혜 받았다. 아 내 인생의 곤고하고 괴로운 것이 목자가 없었기 때문이었구나.’ 이런 것을 깨달으면서 눈물 흘리고 은혜를 받고 이럼으로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날 살아가는 것을 자식들이 다 보고 있습니다. 아니면 출가해서 이미 다 보고 가버렸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죽은 다음에 추모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난 그런 것도 별로 안 좋아하지만 어쨌든 자식이 엄마 아빠 생각이 나서 추모 예배를 드립니다. 그때 그 자식들에게 받는 여러분의 엄마, 아빠 그 인상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아빠는 집에만 오면 계산기만 두드리는 기억밖에 안 난다. 엄마는 만날 화장하고 계군들하고 몰려다니면서 맛있는 거나 먹으러 다니고 하는 기억밖에 안 난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찬양)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니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여러분 죽으면 자식들이 모여서 눈물 흘리며 그런 찬송을 부를 수 있겠는지 가슴에 손을 한번 얹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우리 엄마 세상 계실 때 우리 엄마 세상 계실 때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일을 읽으며 눈물을 많이 흘렸었는데 하는 엄마가 될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 엄마 살아 계실 때 매주 토요일이면 계군들하고 몰려다니면서 맛있는 것 먹으러 다녔는데 그런 기억이 낫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는 다니지만 자기의 영혼이 죽은 것 같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리고 먹고 입고 마시고 하면 그저 뭐든 것이 풍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인생을 사니까 영혼이 기력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의 삶이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하는 것은 건강한 육체 그리고 생명 충만한 영혼이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는다고 해서 우리의 육체가 항상 팔팔하고 이십대의 젊음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도 육체는 부패해가고 언젠가는 이 생명이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마흔 여섯 살 까지는 평생소원이 병원에 한번 입원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얀 침대에 누워서 좀 기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꽃도 가져오고 관심어린 얼굴로 내 손을 잡고 기도해주는 것이 평생소원이었습니다. 요즘은 그 소원이 너무 자주 이루어져서 문제입니다.
여러분 사십대에서 오십대에 모든 아픈 것은 정신의 문제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부교역자들이 뭐 아프다고 새벽기도 못나오고 하면, 야 이차돈은 모가지가 잘려도 6미터나 걸어갔다더라. 정신력이 없으니까 아픈 거지. 그랬는데 내가 아파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정신력이 있어도 아픈 것은 아픈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착해졌습니다. 아픈 사람 보면 너무 가엾고 이해가 갑니다.
인간의 영혼을 거의 죽은 것 같이 만드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 딱 한 가지만 얘기하면 죄 이외에 다른 것은 우리의 영혼을 그렇게 죽은 자처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목사님 나는 절대로 신문에 날 만한 죄를 지은 적도 없는데 확실한 것 하나는 영혼은 죽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향해 사명의식이 들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죄는 커다란 죄와 작은 죄가 있지만 그 성격은 다 똑같습니다.
(예화) 어떤 군인들이 계곡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병사 셋을 모아놓고 지시를 했습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빨리 가서 50키로의 돌멩이를 구해오너라. 실시. 첫 번째 사람은 무식하게 50키로의 돌멩이를 골라서 한 개를 담아 가지고 왔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30키로와 20키로 돌멩이 두 개를 주워왔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자잘한 공기 돌 천개를 모아가지고 50키로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다음 명령이 황당한 것입니다. 모두 돌멩이를 제자리에 갖다 둔다. 실시했습니다. 하나를 가지고 온 사람은 정확하게 자기 가지고 온 곳에 갖다 두었습니다. 두 개 가지고 온 사람도 좀 헷갈렸지만 제자리에 갖다 뒀는데 천개를 가지고 온 사람은 한 개도 제자리에 못 갖다 놓았습니다.
어느 대학 실험실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납작한 비커에다 차가운 물을 붓고 개구리를 올려놓았습니다. 물론 개구리는 마음만 먹으면 한 번에 뛰어서 비커에서 바깥으로 뛰쳐나올 수 있습니다. 불꽃을 조정해서 1초에 0.02도씩만 올라가게 해놨습니다. 한 시간 반 후에 개구리가 푹 삶아진 채 발견이 되었습니다. 논에서 개구리를 잡아다가 미지근한 물에 집어넣었으면 개구리가 미쳤다고 펄쩍 뛰면서 도망갔을 것입니다. 천천히 천천히 물이 따뜻해지는 것을 못 느끼면서 그 속에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덜컥하고 지은 큰 죄는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를 남기지만 그 사람의 의식 속에서 내가 이런 큰 죄를 지었다고 하는 뚜렷한 기억이 있고 양심의 외침이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자잘하게 죄를 지은 사람은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생각조차 안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할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살림해서 보면 잘 알지만 애들이 비 오는 날 흙탕물을 묻혀가지고 들어온 것은 닦기도 쉽습니다. 걸레질 한번 하면 깨끗이 지워집니다. 저기 싱크대 밑에 이사 올 때 한 번도 닦지 못한 곳을 이사 갈 때 한번 열어보면 심각합니다. 웬만한 것으로 벗겨지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심령도 마찬가지입니다.
테르툴리아누스라고 하는 2세기의 교주는 말하기를 나는 회개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그 말을 그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자신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스르고 죄를 지으면서도 스스로 그런 사람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매일매일 찬란한 말씀의 빛을 받으면서 자기 자신을 비추어서 회개하고 뉘우치는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루에도 여러 번 거울을 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용모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비추어야지만 내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시고 죄를 지을 수 있는 마음을 우리의 마음에서 사라지게 함으로써 성결한 생활을 해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인 1년, 3년, 5년이 되도록 눈물 한 방울 안 흘립니다. 회개가 없으면 신앙생활이 뭔가 부족합니다. 회개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계속해서 회개를 안 하면 아주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교회를 나오든 안 나오든, 헌금을 하든 안 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마음 중심이 하나님 앞에 깨트려지고 주님 앞에 들려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모르는 채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이 시인이 사무엘하 11장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 다윗과 같은 인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이고 성경에서 다윗만큼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도 없었고 다윗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합하다는 의미가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다. 내가 그를 통하여 모든 일을 이루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실 정도로 하나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11장에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다윗이 인간으로서 불완전했기 때문에 많은 죄를 지었겠지만 성경이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죄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금하신 인구조사를 금하신 죄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인구를 조사하는 것은 행정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구조사를 하는 동기가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축복하셔서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만드셨고 이스라엘이 강성한 나라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다윗의 마음속에 인구조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입니다. 당시의 인구조사는 오늘날과 같은 그냥 인구조사가 아니라 전쟁에 나갈 수 있는 군인들의 수를 헤아리고 전쟁이 나면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을 측정하는 것이 인구조사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아셨기 때문에 다윗이 인구조사 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셨습니다. 다윗이 이제껏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스라엘을 이끌어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당신만 의지하며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나라가 정말 강성한 나라라고 하는 것을 한번 조사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죄를 짓게 되자 하나님은 다윗을 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온역으로 죽어갔습니다.
더 심각한 죄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한 사건이었습니다. 다윗은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했고, 오죽했으면 내 부모도 나를 버렸습니다. 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아내를 만났는데 아내는 자신의 신앙의 세계를 잘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식들이 있었지만 자식들은 무수한 칼로 자신의 마음을 찌르는 인간들이었습니다. 뱃속으로 낳은 자식은 자기 아버지인 다윗을 죽이고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마음 둘 곳이 없이 정말 상처투성이인 삶을 살았는데 한 여자를 보고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밧세바도 다윗이 싫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정말 미워하시는 불륜의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는 한 번도 들어가 본적이 없는 영혼의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기쁨 속에서 일생을 살면서 하나님만 의지했는데 그 구원의 기쁨이 모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기름 부으셔서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그 성령을 거두어 가실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자기의 전임자 사울에게서 그 하나님의 영을 거두어 가실 때에 여호와의 부리는 악신이 그에게 임하여 미치광이가 되는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다윗의 두려움은 더 컸습니다. 그는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회개를 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셔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다윗은 죄가 얼마나 무섭게 자기의 영혼이 죽음으로 데려가는지를 경험했습니다. 맨 처음에 이 사람은 제사를 믿었습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재산을 가지는 사람이었으니 제사를 드리러 갈 때 소가 없었겠습니까? 양이 없었겠습니까?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기름이라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죄를 지었어도 제사장을 시켜서 제사를 드리면 자기의 죄가 용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 있는데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이 죄가 짐승의 피로 씻겨지지 않는 다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니 기뻐하셨다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하나님이 원하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다윗은 그 범죄를 통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가서 두려움과 공포와 외로움 속에서 껴안고 그 고통스러운 시련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주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절실하게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무리 주홍같이 붉은 죄라 할지라도 철저하게 회개하고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용서를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죽은 것과 같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유일한 길이 회개하고 그 죄를 용서 받고 그러면 하나님이 다시 사랑해주셔서 그를 긍휼히 여기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죄는 아주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해주십니다.
(예화) 옛날 우리 어렸을 때 논밭이 많았습니다. 서울에도 밭이 많았습니다. 겨울에 애들이 대보름날 깡통을 돌리면서 밖에서 놉니다. 그때에 분뇨시설이 잘 안되어서 밭 한가운데 크게 구덩이를 파고 온 동네에서 똥 퍼는 사람이 똥을 파서 거기에 부어줍니다. 그것을 삭혀서 퇴비를 만들어 뿌립니다. 가을서부터 똥을 퍼서 부어 놓으니까 똥이 다 말라서 땅하고 같이 보입니다. 애들이 이것을 돌리고 캄캄한데 막 놀다가 동네의 한 아이가 거기에 푹 빠졌습니다. 여기 빠진 것이 아니라 아예 여기까지 빠졌다가 나왔습니다. 살려달라고 말하는데 아무도 손을 안 내밉니다. 어떤 애가 막대기를 긴 것을 내밀어서 간신히 그것을 붙들고 나왔습니다. 얘가 걸어 나오니까 애들이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한 사람이 달려가서 얘를 끌어안고 집에가 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는데 엄마입니다. 똥 묻었다가 다 그 애를 버렸는데 그 애 엄마는 똥이 더러운 거지 자기 아들이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데리고 가서 우물가에서 막 씻겨서 깨끗하게 해서 데리고 간 것입니다. 며칠 동안 그 애 옆에 아무도 안 갔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 애 엄마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멀쩡하게 있지만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똥 묻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 쓴 사람이 있고 발목에 살짝 묻히고 온 사람이 있고 차이는 있지만 모두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지만 그 사람은 사랑하십니다.
오늘도 저 같은 사람을 여기에 보내셔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인격적인 사랑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좋은 그리스도인은 늘 회개의 영이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눈물이 있는 사람, 예배 속에 회개가 있는 사람, 성경을 읽을 때 마음이 찔림이 있는 사람, 기도한 후에는 눈물을 닦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좋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비록 그 사람이 돈이 좀 없고,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하고, 얼굴이 잘 생기지 못해도 하나님은 그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은 배웠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죽은 자처럼 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죽은 것 같은 영혼으로는 기쁨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기쁘지 않습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영혼을 소생하는 길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회개하는 영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영혼에 충만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충만한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다음에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은혜를 부어주시고 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은혜로 부어주시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실 것 아닙니까?
(예화) 어느 날 아침에 초등학교 4학년 된 누구 집 아들이 학교를 가면서 엄마 손에다 편지를 하나 쥐어 주고 갔습니다. 이 녀석 제법이네. 하면서 엄마가 펴보니까 편지가 아니라 청구서입니다. 일, 아빠 구두 닦은 것 두 번 육백 원, 엄마 없을 때 동생 봐준 것 오백 원, 엄마 심부름 하러 슈퍼 갔다 온 것 사백 원, 도합 천 사백 원을 속히 결제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날 아들 학교 가는데 도시락을 주면서 얘야 그 도시락 속에 엄마가 답장을 썼다. 얘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펴니 진짜 편지가 나온 것입니다. 친구들이 야 네 엄마 멋쟁이다. 너한테 편지도 써주네. 딱 펼쳐보니 아들에게 보내는 청구서, 네놈 뱃속에 넣고 아홉 달 보름동안 낑낑거리고 다닌 것 공짜, 네놈 지금 현재 열두 살까지 먹이고 입히고 재운 것 공짜, 아파서 엠뷸런스 불러서 다섯 번 뛰어 간 것 공짜, 아들아 엄마는 네한테 청구할 게 없구나. 사랑해. 하며 쓴 것입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그날 저녁에 이 녀석이 숙제 안하고 만날 놀러 다니느라고 엄마에게 많이 맞았습니다. 엄마가 모든 것을 다 주고 이 세상 모든 것보다 더 사랑해 그래놓고 왜 때립니까? 왜 그럽니까? 너무 사랑하니까 거기에 기대가 있고 계획이 있습니다. 사랑은 원래 그 안에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는데 뭘 기대하겠습니까? 사랑하면 잘해주고 희생하면서 기대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어떤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 안하고 만날 까불고 노는 것입니다. 그러니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사랑과 은혜와 죄를 지었을 때는 용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면 우리를 너무 사랑하고 소중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은혜를 받기만 하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 기대하시는 바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시 말해서 의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놀라운 영혼의 영혼을 다시 살리시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번 부흥회 때 은혜를 받습니다. 참 좋았어, 그 목사님 한번 더 오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가면 두 달을 안 갑니다. 유효기간이 두 달을 안 갑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다음에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무지렁이 같은 나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셨을까? 하나님이 이제 나보고 어떻게 살아가라고 그러셨을까? 그리고 말씀을 공급받으면서 기도하면서 깨닫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삶을 살라고 은혜를 주셨구나. 생각하면서 “아멘.” 하며 그런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 앞에 매일 기도하면 그 은혜를 계속 우리에게 주시고 계속 살아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칙칙폭폭 하면서 기차가 힘차게 레일을 달리면서 연기를 뿜으며 가는 것처럼 힘차게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며 사는 최선의 길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길입니다. 순종하며 사는 길은 의의 길입니다. 의의 길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불의한 길의 반대입니다. 불법하지 않게 법대로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법?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짓고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인간을 창조했는데 그럴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것을 내버려 두면 하나님이 원래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의 목적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주셔서 영혼의 양식을 삼게 하시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셔서 육체의 양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아서 그렇게 생생한 영혼의 생명과 육체의 생명을 가지고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그런 은혜를 주시면서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시는데 그것이 율법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려고 애를 쓰면서, 물론 그 율법을 다 지킬 수는 없지만 그것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그 삶을 하나님은 의로운 삶이라고 여겼고 그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 욕심대로 사는 인생의 삶이 불의한 삶이라고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은혜를 많이 주신 것은 그 자녀들이 그 주신 많은 은혜를 가지고 그것을 힘을 삼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살라고 하나님이 그러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어떻게 사는 지를 한번 보십시오. 은혜는 은혜이고 사는 것은 사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눈물 흘리고 은혜를 열심히 받으면서도 세상에 나가서는 덕스러운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탈세하고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뇌물 받고 그런데 십일조는 냅니다. 그 십일조를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그렇게 살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한테는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음식점하면서 가짜 참기름 쓰고 탈세하고 뭔가 속이고 그런 식으로 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 뜻대로 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그렇게 살려면 은혜가 필요 없습니다. 그냥 살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비록 이 세상에서 아주 하잘 것 없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도 이 세상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존재의 울림을 듣는 것입니다. 쿵 하는 어떤 울림을 들으면서 내가 정말 잘못 사는구나, 하는 울림을 주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가 감정사였습니다. 건물 같은 것을 보고 얼마 나가는가를 평가해주는 것입니다. 평가해주면 그것을 가지고 은행에 대출을 받습니다. 조그만 것은 그다지 차이가 안 나지만 몇 천억 대 땅이나 공장 같은 것은 감정을 어떻게 해주냐에 따라가지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돈이 몇 백억이 왔다 갔다 합니다. 사업체가 위기에 처해서 이제 대출을 받기 위해 감정사를 불렀는데 이 감정에서 제대로 감정이 나와서 최대한 대출을 많이 받아야지만 회사가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방에 내려갔는데 밤중에 사장이 숙소를 찾아왔습니다. 감정사에게 명함을 내밀면서 제가 사장입니다. 정말 회사가 죽느냐 사느냐가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네 잘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신문지 뭉치가 나오더니 당시 오만 원 권이 없을 때입니다. 백만 원짜리 열다섯 다발이 나오는 것입니다. 새 돈이 아니라 다 낡은 돈입니다. 이걸 받아 주십시오. 감정사가 청년이었는데, 네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사업을 하시면서 얼마나 어려우십니까? 제가 최선을 다해서 사장님 유리하도록 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감정을 해 드리겠습니다. 사장이 너무 고마워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장님 제가 이 돈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나도 돈이 너무 좋은데 받을 수 없는 이유가 두 가지가 아니고 딱 한가지입니다. 그게 뭡니까? 제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으면 벌써 받았을 것입니다. 이 방에 사장님은 우리 둘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가져가십시오. 그 대신 제가 잘 해드리겠습니다. 그때 그 사장이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이런 사람들이었구나. 라는 쿵하는 존재의 울림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예화) 제가 정말 가난하게 살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서른네 살에 신학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신학교를 갔는데 어떻게 사시냐고 하는데 방배동에 이천만원 전세에 방 두 개에 아이 하나하고 딸은 배속에 있고 아내하고 삽니다. 라고 했더니 학교에서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공부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겠습니까? 학교에서 오천만원을 십년 무이자로 빌려주는 것입니다. 그냥 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방배동에서 사십 평형 빌라를 전세를 얻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좋아가지고 어쩔 줄 모르는 것입니다. 동네방네 다니면서 우리 집 화장실 두 개라고 이 끝부터 저 끝까지 한참 걸어가야 된다고 자랑을 하고 다닙니다. 거기에서 몇 년을 살았습니다. 건너편에 같은 빌라인데 동만 달랐습니다. 맞은편에 있는 집인데 여 집사님이 살고 있었고 남편이 대학교수입니다. 어느 날 집사람한테 사모님 제가 기도를 하는데 이 집을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팔라고 합니다. 우리 집사람이 그럽니다. 하나님도 이상하시다. 살 사람한테도 얘기하시지 왜 팔 사람한테만 얘기하시나. 집을 살 생각이 없었는데 만날 나가라 들어가라 하는 것 꼴 뵈기 싫어서 샀습니다. 하나 무리해서라도 사자고 해서 샀습니다. 태어나서 집다운 집은 처음 사봤습니다. 그런데 세금이 그렇게 비싼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법무사 사무실에 갔는데 세금이 얼마나 됩니까? 그랬더니 얼마라고 그랬는데 아니 무슨 그 조그만 집이 그렇게 세금이 많습니까? 했더니 법무사에 있는 아가씨가 이렇게 쳐다보더니 아줌마 너무 많습니까? 많지요, 그 조그만 집에 무슨 세금이 그렇게 많습니까? 그럼 반만 내십시오. 무슨 세금이 그런 세금이 또 있습니까? 직원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계약서를 가짜로 다시 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중계약서, 요즘 나오는 다운계약서입니다. 2억원 집이면 다운해서 한 1억 5천정도 쓰면 세금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와서 우리 집사람이 여보 법무사 직원이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데 어떻게 할까? 그게 말이 되느냐, 집을 사는 사람은 목사이고 파는 사람은 집사인데 둘이 모여 가지고 가짜계약서를 쓰고 하나님이 정말 복을 주시겠다. 로마서 13장을 봐라, 공세를 바칠 자에게 공세를 바치라고 했지 않느냐, 갖다 내자. 진짜 돈이 없었습니다. 벙어리 저금통장까지 깨트려서 갖다 냈습니다. 돈을 들고 갔습니다. 법무사 아가씨가, 어 오셨네요. 이중계약서 써오셨습니까? 아니요. 그럼 어떡하실 겁니까? 그냥 세금 다 내겠습니다. 그랬을 때 그 여직원의 눈빛이 정말 애국자가 여기에 있네, 어찌 그리 존경스러우실까? 그랬겠습니까? 아니면 어이구 병신. 첫 번째이겠습니까? 두 번째이겠습니까? 두 번째입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제가 신학교 교수를 3년차쯤 되었을 때 일입니다. 졸업시험에 세 녀석이 컨닝을 했습니다. 명색이 목사 되겠다는 녀석들이, 졸업을 못하게 떨어트려버렸습니다. 얘들이 매일 9시에 교수 연구실에 와서 무릎을 꿇고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안 나갑니다. 사람 돌겠습니다. 나가라. 물론 내가 봐줄 테니 나가라고 하면 갈 겁니다. 난 죽어도 그렇게 못하겠는 것입니다. 목사님 한번만 봐주십시오. 뭘 봐주나? 너희들이 목사가 될 사람들이 컨닝을 하다가 걸렸는데 미국 같으면 퇴학이다. 졸업만 못하는 것이니 내년에 다시 시험을 봐서 졸업을 해라. 한번만 봐달라고 그러는데 마지막에 한 녀석이 대드는 것입니다. 교수님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봐달라고 하는 놈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드는 것입니다. 교수님 그렇게 의로운 분이십니까? 아니 나는 의롭지 않아. 하나님 앞에 죄인일 뿐이다. 그러면 교수님은 신학교 다닐 때 한 번도 컨닝 안했단 말입니까? 만약에 한번이라도 컨닝 했으면 어떡할 뻔 했겠습니까? 안했다. 정말 한 번도 안했습니까? 한 번도 안했다. 내가 의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신학교 7년 다니는 동안에 단 한 번도 컨닝 안했다. 하나님께 맹세할 수 있으니까. 만약에 컨닝 했다면 양심에 찔려서 뭐라고 그랬겠습니까? 요즘 장관할 사람 보면 불쌍합니다. 한 이십년 전에 장관할 거라고 했으면 그런 것 안했지 그때는 못할 것 같았는데 나중에 기회가 생겨서 장관 청문회에 나간 것입니다.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요즘은 집회를 잘 안다닙니다. 공부해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옛날에는 많이 다녔습니다. 충청북도의 어느 대학에 집회를 왔습니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서울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고속도로에 사고가 났는지 차가 꽉 막힌 것입니다. 간신히 지방도로로 나왔는데 시간이 초급한 것입니다. 막 달렸습니다. 저기 경찰이 서 있는데 속도를 막 줄이고 천천히 갔습니다. 딱 세우더니 면허증 좀 보여주십시오. 왜요? 과속하셨습니다. 아니 무슨 과속을 했습니까? 여기 60키로로 왔습니다. 여기에서는 과속을 안 하셨는데 산 너머에서 과속을 하셨습니다. 아니 산 너머에서 과속을 했는지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거기 자기 친구가 있는데 스피드 카메라로 딱 찍어서 자기한테 무전을 쳤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까지 말하는데 할 말이 없습니다.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대학에서 초청해서 강의를 가는 길인데 내가 시간이 없어서 과속을 했는데 미안하다고 딱지를 끊으라고 했습니다. 뭐하는 분이십니까? 저는 대학교 선생입니다. 교수님이시네요, 교수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벌점 없는 싼 것으로 끊어 드리겠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어쨌든 빨리 끊어달라고 했습니다. 딱 끊어 주면서 교수님 안녕히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하고 갔는데 간신히 제시간에 도착을 했습니다. 집회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벌금 딱지 끊은 것이 생각이 나서 벌금 내야지 하면서 교회 직원 시킬까? 은행가는 길에 좀 내달라고 그럴까 하다가 에이 그거 내 일인데 그것을 뭐 또 시키나. 그때는 비서도 없었습니다. 제가 내러 갔습니다. 은행에 가서 범칙금 통지서를 내려고 했는데 너무 싼 것입니다. 그 당시에 속도위반하면 이만 원 정도 되는데 보니까 6천원입니다. 육만 원 아닌가 했더니 육만 원 짜리는 없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싼가? 그때 스쳐지나가는 것입니다. 교수님 걱정 마십시오. 싼 것으로 끊어 드리겠습니다. 아 그런 건가. 하며 이렇게 봤더니 진짜 6천원입니다. 돈을 내려고 그러다가 도대체 뭔데 이렇게 싼가하며 봤더니 범칙금 6천원, 범칙 내용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다가 들켰음. 그것을 만약에 우리 직원한테 보냈으면 얼마나 시험에 들겠습니까? 우리 목사님 어디 가서 담배 피다가 걸려가지고 딱지 끊겨 가지고 왔을까? 그렇게 생각할 것 아닙니까? 그때 딱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까지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그 다음에는 원칙을 딱 정했습니다. 모든 법규를 최대한 지킨다. 그러나 어겼을 때에는 법이 정한 정당한 처벌을 받는다. 여태까지는 나 개인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나만 지키려고 마음만 먹으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방배동에서 지하에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교인들이 너무 불어나서 도저히 그 예배당에 드릴 수가 없어서 이사를 갔습니다. 이사를 갔는데 이 정도 되는 교회당 건물이었습니다. 건축업자가 이것을 사가지고 부수고 빌딩을 지으려고 그러는데 IMF가 터진 것입니다. 누가 여기에 오겠습니까? 이것을 못 짓고 월세를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들어갔습니다. 교인 한 이백 명이 갔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삼년 반 만에 천명이 늘었습니다. 여기가 꽉 찼는데 더 이상 여기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매주일 마다 사람들이 전도해 오면 교통경찰들이 어떻게 아는지 전도한 사람 차만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여기 부수고 건물을 지으려고 하니까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땅을 알아봐라. 돈이 어디에 있습니까? 서울에서 목회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평촌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가기 싫은 곳이 안양이었는데 돈도 없지만 땅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당을 지으려고 하는데 복덕방 하는 사람이 땅이 없고 있다고 하면 엄청나게 비싼 것이고 또 돈이 맞으면 거기에 교회가 있을 자리가 아니고 지나가는 얘기로 그럽니다. 어떤 사람이 그 땅을 천 평쯤 내놨다가 그냥 도로 집어넣은 것이 있는데 아마 안 팔 것입니다. 주소 좀 적어달라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그 땅 주인을 만났는데 할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 이 땅 좀 파십시오. 안팝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아니 이 땅 내가 안판다고 했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합니까? 싫다고 하는데 그래도 한번만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땅을 팔면 당신들은 그 땅에다 뭘 할 것입니까? 교회를 지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입니다. 하면서 내 책을 줬습니다. 교회를 짓는다구요? 일주일만 좀 생각해 봅시다. 아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구나 하면서 일주일동안 열심히 기도하며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땅을 사가라고 합니다. 사연을 알고 보니 이 할아버지가 장로님입니다. 공장을 일평생 하다가 이제는 다 청산을 하려고 하는데 이 양반이 스물여섯 살 때 한경직 목사님이 안수해서 장로가 된 사람입니다. 자기가 이 사업을 모두 끝내면서 마지막으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답니다. 우리가 산다고 하니까 그냥 가져가라고 준 것입니다. 36억이라고 합니다. 알았다고 하면서 돌아와서 36억이 어디에 있습니까? 계약금을 3억을 줘야 하는데 미치는 것입니다. 교회 돈 통을 다 털어보니까 천오백 만원 나옵니다. 있는 것이라고는 믿음 밖에 없는 것입니다. 계약금이 여기에 있으니까 받으십시오. 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주면 그 사람이 받겠습니까? 돈을 줘야지 계약을 해주지. 교인 하나가 너무 딱하니까 3억을 빌려주겠다고 합니다. 그것을 갖다 계약금을 주고 문제가 뭐냐 하면 36억에 하자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30억이라고 계약금을 쓰고 6억은 비자금으로 달라. 이중계약서, 똑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니 왜 그래야 됩니까? 세금이 너무 많이 나오는데 이 땅을 대출 받았기 때문에 대출금을 갚고 이 땅 명의를 넘겨주는데 2억이 모자란답니다. 그러면 자기가 그냥 놔두면 계속 올라가는 것 뻔 한데 당신들이 교회를 짓는다고 넘겨주는데 그냥 넘겨줄 수는 있지만 내 돈을 보태서 이 땅을 넘겨줄 수는 없지 않느냐. 그 할아버지 사정도 딱합니다. 교회 돌아와 가지고 제직들을 불러 가지고 이것을 어떡하면 좋겠냐고 했더니 제직들이 목사님 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85%가 땅을 다 그렇게 땅을 거래합니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빨리 계약하십시오. 그리고 6억 원은 비자금으로 계약하십시오. 난 모르니까 지난번 사건도 있었는데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공인회계사를 불렀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했더니 목사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진짜 장부, 가짜 장부 두 개를 써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부동산에 대해서 모르지만 아 이건 아니구나.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 진짜 장부하고 가짜 장부가 있을 수 있나. 됐다. 안 된다. 그랬는데 이제 큰일 났습니다. 그래서 세금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3억입니다. 그 할아버지한테 가서 당신은 36억에 이 땅을 우리에게 판다고 그랬지만 우리 목사님이 39억을 준다고 합니다. 36억을 주고 가져가라고 한 땅을 39억을 주고 계약서를 쓴 것입니다. 별로 놀라지도 않습니까? 지금은 그것이 그렇게 큰돈이 아닐지 몰라도 그 당시 우리는 3억이 꿈도 못 꾸는 돈이었습니다. 그때에 제가 깨달은 것이 뭐냐 하면 우리가 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자. 머리띠를 매고 으싸으쌰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진짜 그렇게 사는 것은 힘이듭니다. 교인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은 불의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 충격적이어야 합니다. 올바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도록
(찬양)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교회적으로는 물론이고 우리 개인적으로 그렇게 구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손해를 많이 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 치러야 할 십자가요 제자들의 희생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나라가 잘못하면 바른 소리를 하면서 이 나라에 회초리를 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누구이든지 이 사회의 무엇이든지 잘못될 때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 사회에 회초리를 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입니다. 사업체 할 때에 목사님 모시고 개업 예배드린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법대로 하고 자기가 좀 나은 위치에 있다고 해서 갑질을 해서 하청업체를 피눈물을 나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때려주고 회초리질 해야 할 사람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자기가 그런 짓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을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면서 얼마나 기독교인들을 역겹게 생각하겠습니까? 그게 무슨 짓거리를 하면서 이 세상을 사는지 훤히 아는데 주일날이나 세상에 가면 벗어버리고 착한척하며 가서 가면을 쓰고 그렇게 부정하게 번 돈으로 교회에 헌금하고 온 만면에 미소를 띠고 예배당에 가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불신자들이 얼마나 토할 것 같은 역겨움을 느끼겠습니까? 그게 뭡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십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 성직자들의 세금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데 아마 통과될 것입니다. 전 십년 전에 고민을 했습니다. 이건 내는 것이 맞는 거라고 하며 내자. 세무서에 갔더니 그 세무서도 이상한 세무서입니다.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소득이 있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교인들이 이미 세금 낸 돈으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안 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슈퍼에 있는 아저씨들은 세금 낸 돈으로 컵라면이라도 사지 세금 안 낸 탈세 한 돈으로 삽니까? 말도 안 되는 얘깁니다. 신문을 보면 그리스도인이고 목사인 게 얼굴이 빨개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정당하게 수입이 있으니까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법으로는 아직까지 세금을 안내게 되어 있습니다.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 월급을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교회 형편으로는 그래도 중간 정도의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많이 드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세금을 안내니까 국세청에 무직자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세금을 안 내니까 가장이 무직입니다. 세금은 10원도 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온갖 혜택을 다 받는 것입니다. 어린이집 공짜, 임대주택이니 뭐니 막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당신이 어떻게 영세민이냐? 당신의 월급보다 절반이 안 되는 사람들이 이 동네에 많다. 그러면 당신들이 그 세금을 안내기 때문에 자녀를 어린이집에 공짜로 들여보내기 때문에 진짜 여러분보다 가난한 사람들 몇 명이 못 들어갑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사람들도 다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목사님 그거 잘못된 것 같습니다. 세금 냅시다. 그런데 세금이 교역자들 일년 분을 모두 합치면 육천 팔백만원이 나옵니다. 12월에 육천 팔백만원을 사례금을 올려 주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돈이 안 오른 것입니다. 세금 낸 것만큼만 올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모든 혜택이 다 없어진 것입니다. 어린이집도 공짜로 안 보내줍니다. 보조금도 안 나옵니다. 영세민 주택 들어가는 것도 소득이 있다고 못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너무 힘들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예수 믿는 십자가이다. 좋은 것도 있습니다. 카드를 잘 만들어 줍니다. 교역자가 대출을 받으면 염려를 안 합니다. 은행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한 칠팔천 만원 대출을 해줍니다. 대출 받아서 사택 얻고 이자는 교회에서 내주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힘들고 어렵습니다. 저도 굉장히 많은 세금을 냈습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쉽고 편한 길을 간다면 은혜가 무슨 필요합니까? 주님이 그런 은혜를 주실 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세상 사람과는 구별되는 똑바른 길을 걸어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능력을 주십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을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설탕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소금이다. 예수를 잘 믿으면 이 세상에서는 적당히 미움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표입니다.
학교 선생님들 모두 모아놓고 얘기했습니다. 당신들 절대로 학교에 가서 봉투를 받지 마십시오. 봉투를 가지고 오면 정중하게 몇 사람만 돌려보내라. 그러면 소문이 나서 안 가지고 온다. 그러면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빈부나 귀천이 없이 아이들을 사랑해줘 보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표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뭘 믿는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간절히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경을 써야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불교가 뭘 믿는지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이 안 그런 것처럼 무신론자들도 여러분이 뭘 믿는지 안 배우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가 가지고 있는 내용보다 더 빨리 안 믿는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삶을 올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과 고난이 필요한데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 매일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지만 그러나 그 은혜를 받은 후에는 어떻게 사시렵니까? 주님은 우리를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이 세상에 맛 잃은 소금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존재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가운데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고 그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이렇게 어두운 세상에 한줄기 빛처럼 맛 잃은 세상의 소금처럼 살아서 주님의 이름이 빛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