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행하라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찬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 26:12-13)
녹취자: 박연주B
너무나 잘 아는 그리스도께 향기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주목해서 볼 이야기는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여자가 행한 일은 기억하거라 명령형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미래형으로 표현하시면서 복음이 전파된다면 거기서 사람들이 이 여자가 내게 한 일을 기억하지 않겠느냐 이런 의미입니다. 그럼 이 여자가 무슨 일을 하였을까요? 이 여자는 죄인이면서 아마도 창기로서 자신의 삶을 힘겹게 영위해 가며 그리고 향유를 모으던 여자였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보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비참하게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은 물질적인 여유가 생기면 인생이 변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지지 않겠습니까. 이 여자도 아마 돈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향유를 모았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향유를 재산축적의 수단으로 삼았고 유동성 있는 재화였기 때문에 시장에 나가면 언제든 현금과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 여자가 바로 그런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고 몸과 영혼의 고침을 받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무엇보다도 용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자 이 여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던 옥합을 들고 와서 식사하시고 계시던 예수 그리스도께 부어 버렸는데 삼백 데나리온이나 더 될 것이라는 가치 평가를 내렸으니까 지금으로 따지면 삼천만 원되는 액수의 커다란 값이 나가는 그런 귀중한 향유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여자의 병을 고쳐 주고 또 이 여자를 용서해주시고 복음을 깨닫게 하시면서 그 대가로 이것을 요구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은혜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받고 볼 때 이 여자의 마음속에 자각이 생긴 것입니다. 그 자각이 무엇이냐면 사랑의 중심축의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자기를 사랑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죄의 용서를 통해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를 드린다고 할 때 그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소유가 있으면 자신이 행복한데 주님께 쏟아 놓으면 자신을 불편해 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희생입니다. 그것을 감수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여자도 역시 향유가 인생의 앞으로의 삶의 기반이 자기가 기대하는 변화된 삶의 기반이 될 터인데 그것을 다 주님께 다 부어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 하면 이제는 그런 식의 삶의 변화를 지양하는 인생을 살아야 할 의미는 없다. 그러면서 여자의 마음속에 있던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봐야 할 대목은 예수님은 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기억하리라 정말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면 놀랍게 이기적인 복음으로 변하고 복음을 잘 가르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 그 은혜를 자기의 옳지 않은 삶을 정당화 하는데 이용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면 그 속에서 자기 사랑이 깨뜨려지고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가서 예전의 자신이 행복을 추구하던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주님을 찾고 추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결국은 복음이 올바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에도 이 복음이 전해질 터인데 내가 전하는 것 같은 복음을 그리스도인들이 전한다면 그 복음을 듣고 감화를 주는 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이 여자처럼 삶의 목적과 방향이 바뀌어서 자기 사랑에서 돌이켜서 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최고의 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과 이 이웃을 위한 삶이고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명을 완수하는 삶이다. 그럼 한번 반성을 해 봅시다. 정말 복음을 우리들이 전하고 있는데 그 복음을 순수하게 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이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면 이 복음을 듣는 사람들 마음속에 복음에 의한 감화와 부흥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랑의 중심축이 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던 추루한 자기 사랑에서 돌이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런 신앙으로 바뀔 때 그것이 진정한 복음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애쓰고 힘쓰며 사역하는 마지막 보람이 무엇일까요? 결국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예전의 자기를 행복하게 할 줄 알았던 모든 헛된 삶에서 돌이켜서 그래서 참스런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사역의 목표가 아니겠어요? 그 일을 위해서 설교를 하고 성도들을 심방하고 목양을 하고 그렇게 하도록 출판실에서 책을 만들고 연구실에서는 연구를 하고 연구 자료를 찾고 자료실에서는 그것들을 데이터화 하고 홍보실에서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모든 교회의 기능이 여기에 수렴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돌아봅시다.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가 복음을 타협 없이 순수하게 전한다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정말 이 복음에 효과가 나타나도록 우리가 심방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우리가 상담하는 사람들 마음에 우리가 설교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그 사람들의 심령 속에 복음의 부흥이 일어나도록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러면서 이 복음을 전할 때 마다 이런 부흥과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래서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교회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고 그 하나의 사랑에 의해서 그의 삶의 목적이 성취되고 통합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70여권의 책을 번역한 번역가가 언제 나를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은 70여권의 책을 번역했으니 해박한 지식이 있겠네요. 라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이것도 물어보고 저것도 물어보고 나중에 고개를 푹 숙이면서 "목사님 솔직히 고백하는데 이상 한 게 있어요." "왜?" 70여권 책을 번역했는데 내용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계속 다루는 것과 그것을 마음에 품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목회를 하면서 혹은 사역을 하면서 수많은 진리들을 만집니다. 전달하기 위해서 수없이 나눕니다. 우편배달부와 같습니다. 배달부가 수많은 편지들을 오백 통 육백통 전달을 하지만 내용은 모릅니다. 그냥 전달만 해줄 뿐이고 그것을 뜯어본 사람은 통곡을 하고 울고 기절을 하고 너무 기뻐서 박수치고 희로애락이 일어나는데 배달부는 모릅니다. 우리가 그런 식으로 그런 식의 사람이 될 가능성이 정말 많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관한 일들을 계속 다루고 있다는 것과 여러분 정말 재미난 것이 책을 교정보면 은혜가 안 됩니다. 틀린 글자 찾느라고. 내용도 전체적으로 기억이 안 나고. 다릅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내말을 너의 마음에 두라. 마음에 둔다는 것이 아주 심오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심블레 히브리 성경에 나옵니다. 마음에 둔다고 하는 것은 아주 객관적인 진리의 작용이 아닌 주관적인 진리에 대한 헌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포도 알을 입에 넣고 아무리 그것을 입술에 혓바닥 사이에서 돌린들 포도의 맛을 보겠어요? 깨물어야죠. 진리의 말씀이 깊이 그 사람을 뚫고 들어가서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신물을 보니 기쁜 소식이 났습니다. 한국 교수들이 새로운 암 치료 물질을 개발했는데 나노급의 약물인데 나노급의 약물이 우리 몸속에 주입이 되면 천분의 이십삼 나노로 무지하게 작은, 나노가 십억 분의 일로 그것을 주입을 하면 암세포는 온도와 전기의 극이 틀려서 피 속에 녹아 들어가서 암세포 있는 쪽으로 갑니다. 가다가 암세포를 만나면 암세포는 빨리빨리 성장하기 때문에 구멍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 이 입자보다 훨씬 커서 쑥 빨려 들어갑니다. 들어가면 약은 플러스전기를 띄고 이것은 마이너스전기를 띄기 때문에 이 안에서 폭발을 합니다. 이것이 나노 수류탄입니다. 폭발을 하면서 항암치료제 맞으면 머리털도 빠지고 식욕도 없어지는 이런 부작용이 일체 없이 정확하게 들어가서 하는데 폭발할 때 형광물질을 내서 위에서 MRI로 스캔을 하면 정확하게 암세포가 어디 있는지 온몸에 지도를 다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럼 그곳에 약물을 투입하면 됩니다. 획기적인 발견이라 하는데 상용화 하는데 5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암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많은 희소식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회사역도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덩어리로 만들어서 자봐라, 수박만한 덩어리를 입을 벌리라고 수없이 침을 발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나노폭탄처럼 만들어서 지성이라는 이해 속으로 스며들어가서 죄와 악의 암세포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서 자폭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터져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 보면서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경험해야 합니다. 오늘도 교역자 스터디 하면서 이야기 했는데 아무리 지나간 설교를 갖다 놓고 듣고 요약을 하고 괴롭겠죠. 제가 다 압니다. 2년째 괴롭히고 있습니다. 매주 한 개씩 테잎을 듣고 이렇게 바쁜데 일이십 분짜리도 아니고 거의 구십 분짜리를 들으면서 괴롭겠죠. 투덜대기도 할 것입니다. 사실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내가 죽고 나면 아마 고마워 할 것입니다. 내가 아파서 새벽예배는 못 나와도 스터디 하러는 나오잖아요. 그것이 나에게는 그 시간이 즐거운 시간이 아니라 지루한 시간이고 다 아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질문을 하고 답을 해주어야 하니까요. 질문도 정확하게 요점을 찌르는 질문이면 모르는데 짜증나는 질문을 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때 그 말씀이 나노폭탄처럼 자기 속에 들어와서 온몸에 흩어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은 찾지 못했던 자신안의 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 들어가서 자폭을 하면서 자기 깨어짐의 변화가 생깁니다. 이것은 평면적인 말씀의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목마름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두 가지 어둠에 대해서 말 합니다. 하나는 객관적인 어두움이고 하나는 주관적인 어두움입니다. 객관적인 어두움은 말씀의 지식이 모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르치면 됩니다. 그럼 물러가는 것입니다. 주관적인 어두움은 잘못된 것을 집착하고 사랑하는데서 오는 어두움입니다. 이것은 진실한 자기 깨어짐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조명에 의해서 자신을 내려놓는 것 없이는 어두움에서 물러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이성의 능력에 뛰어나려고 믿음만 좋으면 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대장간에 쓸 칼이 없고 목장에 풀이 없다고 이야기 하듯이 우리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만지면서 살면서 그 사랑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 내 마음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라고 하는 것들을 깊이 성찰하면서 하나님 앞에 매순간 무릎을 꿇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