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과 악인의 대조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시 37:21-22).
스스로 자기를 위한 자원을 조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쉽게 자원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은 남의 돈을 꾸고 갚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떼어먹는 일은 오래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고조선이니까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나라라고 하는데 고조선에서 통용되던 8조 법금이라고 하는 8개의 조항으로 된 법문서에 보면 재물을 꾸고 갚지 않는 자는 몸을 상하게 하라. 형벌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돈 떼어먹는 역사는 오래된 것입니다. 그것이 자원을 필요로 하지만 스스로 조달할 능력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조달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해나가는 것이죠. 그게 이제 악한 사람들이 인생을 사는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이 의외로 자기 능력 밖의 자원을 얻게 되었으면 어떤 사람은 그것을 잃게 됩니다. 돈을 떼어먹은 사람은 이익이지만 그 돈을 떼인 사람은 그야말로 자기 생명이 쏟아지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얼마 안 되는 돈이라면 문제가 아니지만 큰 돈이 되어서 자신의 생활이 위협을 받고, 심지어는 자기도 자기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옮겨서 떼어먹힐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여기서 시인이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악인의 특징은 돈을 꾸고 갚지 않는 것이다. 더 나쁜 경우는 갚을 능력이 충분히 되는데도 그것을 갚지 않는 것이 악인의 특징입니다. 그것을 보면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 다릅니다. 우리나라에 지금도 굴지의 기업입니다. 유리를 만드는 회사인데, 그 창업자의 전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은행에서 꽤 많은 돈을 빌려서 사업을 하는데 전쟁이 났습니다. 6․25가 난거죠. 사람이 도망을 가고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 사람은 피난가기 전에 은행에 먼저 갔습니다. 여기서 내가 이만큼의 돈을 빌렸는데 갚으러 왔다. 은행에서 짐승보듯 하더래요. 저 사람이 정신이 나갔나. 그 분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이제 전쟁이 났는데 지금 안 갚으면 전쟁이 나고 폭탄이 떨어져 다 흩어질텐데 내가 누구한테 이 돈을 갚느냐. 그러니까 전쟁은 났지만 아직까지 부서지지 않았으니 빨리 갚아야지. 그렇게 양심적으로 기업을 하니까 그 기업이 오래도록 정신을 물려받아서 남아있는 것입니다. 요새 삼성특검을 보면 그렇게 수치스러울 수가 없어요. 대한민국 수출의 4분의 1을 그 회사에서 수출하는데, 그렇게 해서 돈을 1년이면 몇 백억씩 몇 천억씩 모아서 여기저기 뿌리고 하면서 그 굴지의 기업을 유지했다라는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수치심. 그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에 대해서 수치심 그런게 있어요. 그러니 그렇게 어마어마한 굴지의 기업이 그렇게 기업을 굴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뿌리면서 기업을 지탱했다면 그만한 힘이 없는 회사들은 오죽이나 더 했겠어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정직한 기업이 그리워져요. 그런 정신이 있는 기업이죠. 그래서 정신이 없는 기업은 절대로 튼튼하게 오래서지 못 합니다 .만약 튼튼하게 오래 선다면 사회가 썩어서 그런 기업을 먹여 살려서 세워주는 거예요. 혹시 사회가 부패해서 그런 기업이 세워진다고 할지라도 돈은 벌수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로 존경은 받을 수 없죠. 그것이 삶의 원리예요. 그래서 오늘 성경이 악한 자와 선한 자를 대조하고 악한 자는 돈을 꾸고도 갚지 않아요. 왜 갚지 않을까요? 여기서 이야기 하는 것은 능력이 있어도 갚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악한 자의 특징이죠. 그것은 바로 자기만을 위하려는 이기적인 욕망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이기적인 욕망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바로 악인의 특징이죠. 의인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누어주는 것. 의인들이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누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의인의 인격적인 특징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행복하고 잘되길 바랍니다. 요즘에 보면 형제들이 거의 남남처럼 살고 형제들끼리 갈등도 많잖아요. 왜 그럴까요? 효도를 가르치지 않아서입니다. 효도를 가르치면 부모를 생각해서라도 참아요. 부모님을 사랑하니까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생각하고 자기를 꺾고 자기 생각을 접습니다. 그것을 안 가르치니까 제멋대로 자기가 최고인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인심 사나운 세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안에 이웃도 있고 심지어는 이 세상에 모든 자연도 있습니다. 사람을 해치려다가도 '저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인데' 라고 생각하면 용서하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의롭게 살면서 선을 베푸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농사지을 땅을 준다는 것도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있는 많은 사람을 향한 감화력입니다. 옛날 농사를 지을 때는 사람의 선한 것과 악한 것의 구별이 더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처음 씨를 뿌리러 나갈 때는 목욕재계하고 나가서 씨를 뿌립니다. 농사가 잘 안되면 일 년 동안 굶으니까. 그러니까 심지어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러니까 이 사람이 땅을 직접 만지면서 농사를 지으니까 자기가 올바른 마음으로 농사를 지어야한다라는 것이 정신 속에 들어옵니다. 실제로 악한 사람이 땅을 만지면, 땅이 하나의 질서를 가지고 있어요. 악한 사람이 땅을 만지면 그 땅도 함께 악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악인이 농사를 짓는 것과 선인이 짓는 것은 차이가 납니다. 악인이 그 악으로 가득 찬 손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할 때에 땅과 접촉을 하면서 어떤 식으로든지 땅에 영향을 끼칠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땅의 운명은 인간과 함께 하는 운명입니다. 인간은 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땅은 인간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운명의 관계입니다. 인간이 악한 일을 행하면 땅이 기근이 들고 곡식을 내지 않아요.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하나님이 가장 먼저 내리신 것은 너희가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을 것이다. 가꾸고 너희들이 애를 써도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다. 그러면서 땅이 저주를 받는 것이예요. 그러니 악하게 살면서도 이 땅에서 자신은 번영하려고 하는 그러한 꿈 자체가 악한 자의 희망이지 선한 자의 진정한 소원은 아닙니다. 그래서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이제 선한 자는 땅을 얻지만 악한 자는 끊어지리로다. 끊어지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죠? 하나님께 올바로 살지 못하니까 자신의 이기심으로서 모든 것들을 움켜쥐고 남에게 베풀지도 않고 나누어주지도 않고 그렇게 악하게 살아가는데 결국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얼마나 악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악하게 살아가니까 땅도 그를 배척합니다. 그래서 복된 삶은 위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주님께 사랑을 받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이고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