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시고 고치시는 하나님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시 30:1-2).
여기도 다윗의 시입니다. 신자의 일생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기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기리면서 살아가는 이 신앙생활은 누구든지 일생동안 계속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나님 앞에 낮아지지 않고는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아주 하찮아 보이고 주님이 위대해 보일 때, 거기에 복종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주 비천하고, 더러운 존재이고, 하나님은 순전하신 분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알려질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불결을 발견하고 주님 앞에 참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고 위대하시고, 우리는 아주 미천한 존재이고, 하나님은 지극히 순전하시고 완전하시며, 우리는 불결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의 핵심입니다. 그것을 수시로 깨닫게 될 때에 우리는 자기는 낮아지고 우리 주님을 높이고 기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아주 깊은 신앙의 단계는 이러한 것을 하나님 앞에서 아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것을 수시로 하나님 앞에 깨닫는 것입니다. ‘아. 내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구나, 주님은 위대하시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것을 이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통해서 그것을 자신이 사실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런 능력과 힘이 나오게 되는데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은 위대한 분이시고, 순전한 분이시며, 우리는 미천하고 불결한 인간이다라는 사실을 깊이 느끼지 못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그대로 놓아두면 우리는 더 깊은 죄에 빠지게 되고 우리의 인간적인 성품들은 망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은 당신이 그런 분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하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의 구원경험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죄 가운데 있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회적 구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그의 육체의 환경을 열어주셔서 그를 구출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늘 1절에서 시인이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원수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끌어내셨다고 하는 것은 깊은 웅덩이나 함정 같은 것을 놓고 시인을 기다렸는데 거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타력이 아니면 자력으로는 거기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자라도 그런 웅덩이에 빠지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어느 한 순간 찾아오셔서 인생의 커다란 위기 속에서 시인을 건져내 주신 것을 경험 한 것입니다. 그 때 그 위기 앞에서, 그 구원행동 앞에서 ‘아 하나님은 참 위대하시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틀린 것은 그런 웅덩이에 빠지는 것 같은 인생의 고난을 당할 때에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유일한 피조물인 것입니다. 내가 정말 불결하고 더러운 존재구나 라면서 하나님 앞에 깨닫는 것입니다. 그 구원행동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순전하신 분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거기에서 건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환란이나 시련 이런 것들은 우리가 어떤 태도로 그것들을 맞이하느냐에 따라서 이처럼 우리의 침체되었던 영혼들을 쇄신시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 하나님을 찬송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하나님이 자기를 치려 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끊임없이 외부와 접촉하고 그것에 대해서 감흥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고 거기에 반응하고 이 과정을 통해서 사람 자체가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환란과 시련이 닥치게 되면 그것을 끊임없이 견디고 이겨가는 가운데 사람이 아주 강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밖에 끊임없는 유혹이 있고 거기에 계속 넘어지고 항거하지만 쓰러지고 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되면 유혹에 약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감흥과 변양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격도 변하고 성품도 변하고 식성도 변하고 모든 것들이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환란을 만나게 되고 깊은 웅덩이에 빠진 것 같은 고통스러운 때가 되면 그것이 어떤 목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든지 간에 그것과 더불어 씨름하는 동안에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란과 시련을 헤치고 살아온 사람들은 웬만한 일에 굴복하지 않는 강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환경과 더불어 분투하며 강하게 살아온 동안에 사람이 얼마든지 거칠어 질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한편으로는 세워지면서 한편으로는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존재입니다. 사람이 아주 편안하고 무엇이든지 염려가 없는 환경 속에서 살면 그렇게 날카롭던 사람들도 아주 유순하고 부드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신 우유부단하고 게을러 질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시인의 경험에 의하면 그런 환란과 시련 속에서 자신이 망가졌을 경우에도 하나님이 고치셨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고쳤다는 의미의 ‘라파’ 라는 단어입니다. 성경 속에서 이 ‘라파’사상은 인간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과 마음까지 치료하는 전인적인 치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치료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그렇게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끊임없이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환란과 고난의 때에 하나님이 자기를 건져주시고 또 그 환란을 견디면서 망가진 자기 자신을 고쳐주시기를 갈구하면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