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를 드림보다 더욱 기쁘시게 할 것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 69:30-31)
녹취자 : 조원정
시인이 자기가 지금은 악인에게 고통을 받고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할 것이라 고백을 합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 앞에서 올린 기도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악인을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시고 주의 의에 들어오게 말아주시옵소서 하는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면 자신은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노래할 것이며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할 것입니다.
광대하시다고 하는 얘기는 하나님의 무한성입니다. 하나님이 아주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것을 찬송합니다 고백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한하시다고 하는 얘기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비록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악인들이 처처에 행하고 악들이 범람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대하신 하나님은 아무데도 안 계신 곳이 없으시다. 그래서 형언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모든 세계 안에 계시면서 하나님이 당신 자신의 통치를 실현해 가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들에게는 보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안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다면 왜 이렇게 세상이 어지럽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대적하는 인간들도 버젓이 살아서 오늘 이 시인에게 핍박을 가하고 고통을 주는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없는 사람들 눈에 보면 하나님이 이 세계를 통치하고 다스릴 뜻을 가지고 계시지만 세상을 통치하시는데 하나님이 뜻을 가지고 계실 텐데 어떻게 수많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도전하고 주님께 거스리고 이렇게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느냐 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그런 의문이 우리에게 들 수 있는 겁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 눈에 보면 이 세계는 하나님이 없는 겁니다. 심지어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생생하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속에서 경험하며 살지 못하면 모양은 하나님 살아 계시다고 고백을 하지만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계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이 시인이 고백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든지 이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세계를 다스리고 계신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크고 위대하셔도 세계를 직접 다스려 주지 않으시면 인간은 하나님의 그 크심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이해한다고 한들 그것이 인간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늘이 한없이 커서 온 지구를 뒤덮고 있어도 오늘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그 하나님이 당신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이 모든 세계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모든 세계를 기계처럼 창조하셔서 다스리시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다스려 가실 때에는 바꾸지 않기로 한 하나님의 의지가 있고 한 부분에서는 인간의 의해서 얼마든지 거절당하고 거역 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의지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보던지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하나님의 뜻이 계속 꺾이고 위반되고 하나님의 뜻이 인간에 의해서 수포로 돌아가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인간의 반역이 하나님의 뜻을 꺾는다기 보다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인간에 의해서 거절당하고 인간에 의해서 얼마든지 꺾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생각을 하게 되면 우리는 그런 의문이 드는 겁니다. 왜 그러면 왜 그런 인간들의 반역과 도전들을 하나님이 허락을 하실까? 형언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꺾고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의 더 큰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베드로 사도를 통해 말씀하시죠.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뜻을 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절하고 어떤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안 믿으려고 뜻을 세우고 그것만 놓고 보면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인데 인간들이 불순종하고 안 믿고 그러니까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를 생각하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믿는 일과 아는 일에 온전히 하나 되어 흠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전한 교회가 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느냐 입니다. 욕을 먹고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때로는 교회가 이 세상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그렇게 만드신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지만 처음부터 인간들이 순종하고 당신의 계획에 함께 참여함으로부터 하나님의 의지가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안하는 겁니다. 그렇게 안하고 거꾸로 살아가고 하면 잘 안되게끔 하나님이 허락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교회를 보존하시고 당신의 교회를 통해서 온 땅과 세상에 당신의 창조와 구속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개인적으로 우리의 과거를 이렇게 돌아보면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하시는 사랑이 그렇게 감격적으로 기쁘고 하나님 앞에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가 너무나 오랜 동안 무지와 어둠 속에서 살고 주님을 반역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반역한 것이 우리에게 선을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매순간 우리의 의지로 선택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도전하며 살았지만 결국은 형언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과거의 우리의 불순종과 하나님께 대항하는 의지가 있었던 우리의 과거를 미끄럼 삼아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용서하신 것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가 하는 것을 우리의 가슴 속에 심어준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이성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아주 신비한 방법으로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시인이 광대하시다 할 것입니다. 노래할 때 마음속에 있었던 그림이었던 겁니다.
(찬양)
온 땅과 하늘 위에 계셔 홀로 영원하신 이름
고백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곧 소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이 황소는 제사를 드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릴 수 있는 헌제 가운데 가장 큰 재물이었습니다. 속죄의 제사도 보면 하나님이 무리가 없으신 하나님입니다. 만약에 너희 죄를 속하기 위해서 죄를 용서받으려면 황소 한 마리씩 가지고 와서 바쳐야 된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은 어떡하겠습니까? 그래서 너희의 형편대로 할 것이다 하면서 여러 가지 재물들 아주 작은 새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황소까지 바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이 황소는 최고의 재물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커다란 그 황소 뿔과 굽이 있는 황소, 황소가 당연히 뿔과 굽이 있는데 그렇게 묘사한 이유는 재물이 완전한 재물이라는 것을 묘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황소가 완전히 다 자라야지만 뿔이 나오는데 재물 중에서도 최고의 흠 없는 자격을 갖춘 최상의 재물을 드리는데 그거보다도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임이라 찬송과 감사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 그것이 여호와께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황소를 드려도 그것도 하나님 당신의 것입니다. 사실은 물건이 하나님을 감동 시키는 게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것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신앙이고 믿음 생활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인이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찬양으로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에 대한 사랑은 주님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시편 23편에서 배웠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그분의 이름을 높여 드리는 그것이 하나님에게는 가장 받으심 직한 재물이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재물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에 신앙이 자리하고 그 마음에 불신앙이 자리하고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자리하고 세상을 향한 사랑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 마음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쏟아나고 그 마음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이 두 가지 것들이 치열하게 서로 다투는 전쟁터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키라고 우리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할 것입니다 고백을 하는 겁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제사가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이다. 이 시인은 원수가 파멸되는 것을 보고서야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거라고 고백을 했지만 신약시대의 그 큰사랑과 은혜를 받은 우리들은 주님 앞에 감사하면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원수들을 축복하고 하나님께 주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살아계신 광대함을 노래할 수 있다면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올렸던 제사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운 제사가 되겠는가 생각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