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자가 없을 때
주께서 나의 훼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내 대적이 다 주의 앞에 있나이다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시 69:19-20)
녹취자: 박미은
계속해서 시인이 원수들에게 에워싸인 자신의 처지를 하나님께 토로하고 있습니다.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합니다. 그 대적들이 가만히 앉아서 시인이 망하기를 기다린다면 그거는 사실 대적이 아닙니다. 대적은 아주 구체적으로 이 시인이 멸망하려 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훼방한다 라고 하는 그것은 참 많은 그림을 담고 있는데 그 것은 뭐냐하면 아주 가깝게는 이 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서 그래서 나아가서 이 시인이 추구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삶의 많은 질서들을 흐트러트리는 역할까지 하는 겁니다. 그런 일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실행을 하면서 시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인은 마음이 상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여기에서 ‘마음이 상했다’ 라고 하는 이 표현은 히브리어로 보면 마음이 깨졌다, 뭐 이렇게 그릇 같은 것들이 떨어뜨려져 가지고 금이 가버리는 그런 상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깨뜨려진다 라고 하는 것은 그 아주 좋은 것입니다. 본인에게는 괴로울지 모르지만은 신앙적으로는 그것이 아주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깨진다고 하는 것은 결국은 마음이 가지고 있었던 그 어떤 작용이나 그 다음에 기능이 상실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깨어진다 라고 하는 그 말이 결국은 자기 사랑과 자기가 자신을 사랑의 대상으로 하는 것과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다 라고 하는 그 자기 의에 대해서 깨뜨려 지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자기 깨어짐이라고 합니다.
그런 자기 사랑과 자기 의에 대해서 깨뜨려지는데 그렇게 자기사랑과 자기 의에 대해서 깨뜨려지기 전에 먼저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 상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일상적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 생각, 살아가는 삶 이런 것에 대해서 깊이 회의를 느끼고 그것을 고통스럽게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종류의 그 상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자 하면은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막 인생을 살다가 옆에서 누가 죽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죽었다 죽고나면은 그 다음에 마음속에 갑자기 이 세상 속에 사는 것이 정말 덧없고 그리고 헛된 것 같은 마음이 들어옵니다. 그런 것들이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그런 마음 상함은 꼭 특별 은총이 아니라 일반 은총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을 생각할 때 느끼는 인생의 허무라든가 아니면 자기가 집착하고 좋아하는 것에 몰두할 때에 그 다음에 거기에 느끼는 허무감이라든지 이런 등등의 것들이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상하게 될 때에 인간은 그 상한 마음은 사실은 그 자체가 좋은 마음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나쁜 마음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중립적인 것들입니다. 그런 상한 마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신앙의 의해서 잘 이끌어질 때에는 주님을 간절히 찾고 구하는 마음으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그 마음이 미끄러져서 악을 행하고 죄를 짓고 하는 쪽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상한 마음의 작용이고 또 한계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인이 어쨌든 그런 훼방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시인은 두 번째 경우여서 이렇게 마음이 상했을 때에 주님을 간절히 찾는 신앙으로 이 마음에 상한 것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훌륭한 신앙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은 젊어서 놀자 그런 노래도 있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뭐 그 가사에 대해서는 이의도 많이 제기 하지만 뭐 어쨌든지 간에 이 세상이 허무하고 아주 헛되기 때문에 그러니 오늘을 즐기자 대게 그런 노래를 젊은이들이 부르는게 아니라 노인네들이 부릅니다. 자기가 살아온 세월에 대한 하나의 그 옳지 못한 반성이고 하나의 몸부림 입니다. 그런 것들은 신앙적인 반응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화) 이제 은퇴할 때가 얼마 안 남으신 목사님하고 누가 통화를 했습니다. 저도 잘 아는 분인데 요새 어떻게 지내세요 무슨 일 하세요 그랬더니 요새 예수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니까 이제 은퇴하고 죽을 때도 다가오는데 예수님 만나서 서로 누구냐고 물어보면은 되겠냐고 어디서 많이 뵙던 분인데 그러면 되겠냐고 열심히 예수님이 누군지를 잘 알다가 죽어서 만나면은 그냥 덥석 하고 안겨야지 버벅 되면 되겠냐고 그랬답니다.
이제 인생의 허무와 그 다음에 헛됨을 깊이 직시할 때 그때에 오히려 마음이 상하면서 그러면서 주님 밖에는 없구나 라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지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지 만약에 우리가 그렇지 못하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삶이 되겠는가 하는 것을 우리들이 한번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이 근심이 충만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찬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아도 우리는 여전히 약한 사람일 뿐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시지만 여전히 우리는 약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어거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때로는 그 일들의 시작과 결말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렵고 때로는 그것을 알아도 그것들이 자신의 인생을 휘두르는 그 힘과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이래서 마음의 근심이 충만해서 그 때에 마음에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위로를 얻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긍휼이 여길 자가 없을까 그리고 두루 사람들을 살펴보니 자기를 불쌍히 여겨 주는 사람도 없고 자기가 위로 받을 수 없을까 하고 두루 사면을 살펴보아도 사람들이 위로해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좋은 사람들을 보내어 주셔서 주님을 찾는 마음을 독려하고 그리고 더욱더 산장해 주실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주님을 향해 간절히 마음 상해하고 근심해 하는 사람들을 주님이 홀로 두심으로써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주님 앞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충분히 피할 수 있도록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사람에게로부터 오는 위로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를 대신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주님은 매순간 우리를 붙드시고 그리고 강한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깊이 만나게 하시는 방법이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그 큰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외로운 처지가 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이 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악인의 훼방이 마음을 상하게 하고 근심이 가득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또 사람들로 부터도 긍휼과 위로를 구하지만은 얻을 수도 없을 때에 정말 하나님께서 자기를 내치셨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더욱 더 당신만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곤경 가운데 두시고 하나님 아니면 아무 곳에서도 그 곤경을 해결할 수 없도록 주님이 그렇게 우리를 당신 앞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고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훼방과 근심과 고통들이 주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님을 간절히 구하고 그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