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이 떨어져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녹취자: 조봉수
I. 본문해설
예수님께서 마지막 당신의 죽음이 가까운 것을 아셨을 때, 그 때에 구체적으로 당신의 고난에 대해서 예고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기독교의 가장 유명한 성경구절 중에 하나인 하나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정확한 말씀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농촌에 살면서 모두 경험하지만 무슨 곡식이든지 간에, 자기 안에 씨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땅콩이나 콩, 팥 이런 것처럼 씨앗 속에 씨눈을 가진 것도 있고, 쌀이나 감자, 고구마처럼 자기 밖에 씨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 씨눈이 바로 이제 종자를 퍼뜨리는 바로 그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감자나 고구마를 보자면, 심기 전에 통째로 감자나 고구마를 심는 것이 아니라, 자릅니다. 자를 때, 씨눈이 있게끔 칼질을 해야지 씨눈이 없게끔 칼질을 해봐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씨눈이 한 두개씩 있도록 칼질을 해서, 재에다가 잘 묻혀서 그래서 감자를 심습니다. 그러면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온도와 습도가 맞게 되면 거기에 있는 감자 모두는 썩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자 전체가 썩는 것이 아니라, 썩으면 썩을수록 씨눈은 썩는 감자의 몸에서 양분을 빨아드리면서 그걸로 자기의 양식을 삼아서 싹을 내고 줄기가지 잎이 뻗어서 자력으로 뿌리를 내려 땅에서 물기와 양분을 빨아드릴 수 있을 때까지 그를 성장시키는 밑천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씨눈을 곡식 속에 가지고 있는 모든 팥이나 콩, 겉에 가지고 있는 쌀, 밀도 마찬가지입니다.
쌀, 밀 눈은 아주 티끌같이 작고, 밀은 큽니다. 그 많은 밀이 티끌같이 작은 밀 싹을 나게 하는데 썩음으로써 이바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알의 밀이 모두 썩는 것이 아니라, 씨눈은 계속 살고 씨눈이 살기 위해서는 그 씨눈을 가지고 있는 밀 전체가 썩어서 씨눈에 양분에 공급해 줄 때에,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노학자가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니깐, 볍씨 한 알을 심으면, 차이는 있지만 2400알에서 3000알의 곡식이 달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참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한 알의 볍씨가 썩어야지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썩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만약에 썩는데 씨눈이든지, 씨든지 모두 썩어버렸다면 그러면 아무 열매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만약에 씨눈은 죽었는데, 씨는 살았다고 해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정확하게 씨눈은 살고 씨는 완전히 죽을 때, 그때 그 씨눈이 싹을 틔어서 그렇게 30배, 60배, 100배가 아니라, 100배, 1000배, 2400배, 3000배의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굉장히 중요한 기독론적이고 교회론적인 그림을 담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한 알의 말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구원받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구원받을 자기의 제자들을 포함한 그 땅의 모든 사람들을 당신 자신과 한 몸을 이루 있는 것으로 내다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 자신이 한 알의 밀이 되고 당신 자신이 잘 죽으심으로 당신이 구원하고자 하는 백성은 씨눈이 되어서 그들을 통해서 수 많은 구원받은 백성들을 열매 맺게 되는 것을 기독론적으로 묘사하신 것입니다.
II. 몸으로 본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
여러분들은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 우리를 하나의 몸으로 그리고 있는 장면들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라는 표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것들을 내다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우리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적용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가 씨눈이 되고,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모든 성도들이 씨앗이 되어도 우리가 예수를 위해서 잘 죽음으로써 씨눈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열매를 맺어 이 땅에 선교적인 결실들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주님을 위해서 잘 죽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 때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가 잘 사십니다. 그러나 만약에 교회에 잘 죽는 사람들이 없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죽으라고 인간들이 고집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의 몸은 큰 고통과 그리고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는, 우리의 몸 전체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이야기하기는 하는데, 약 6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 세포는 죽고 다시 살아나고, 또 죽고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뇌세포는 한번 죽으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뇌세포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몸의 세포는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데, 3개월이 지나면 우리 몸 전체에서, 3개월 전에 있었던 세포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 것은 몸의 일부가 계속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이 일을 되풀이 하는 것이 살았다는 의미이고, 사람이 숨이 끊어져 죽고 나면 세포도 더 이상 죽지 않고 모든 세포가 한꺼번에 괴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온몸은 마치 60조개의 꼬마전구로 이루어 진 것처럼 깜빡깜빡하면서 죽고 사라지고 또 생겨나는 세포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저녁 때, 고기라도 먹고 혁대를 풀고 잔뜩 밥을 잡수어 보십시오. 아침에 몸이 많이 늘어난 것이 느껴집니다. 자는 사이에 세포들이 계속 생겨나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쉬운 말로, 살이 쪘다, 배가 나왔다고 표한합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우리의 몸에 세포가 죽는데, 그 죽는 것이 2종류라고 합니다. 하나는 외부의 충격에 의하거나 노쇠현상에 의해서 죽는 것이 있다면, 어떤 세포는 죽어야할 이유도 없고 아직도 생명력이 많은데 스스로 죽는다고 합니다. 이것을 세포의 자살이라고 합니다. 그 세포가 자살을 하고 죽어버리면 바로 옆에 있는 세포에게 화학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전기 삼아서, 옆에 있는 세포가 공장을 돌려서 세포를 생산하고 세포를 지탱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열이 이루어집니다. 그러고 나면 또 다른 세포가 죽어서 에너지를 만들어서 또 옆에 있는 세포를 살리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깜빡깜빡하면서 우리의 온 몸이 생명을 유지하고 기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이 망가지고 나면은, 어떤 세포들은 덩어리가 되어서 아무도 안 죽겠다고 몸부림치는 덩어리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엄청나게 많은 양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세포들이 온몸에서 영양분을 빨아드립니다. 영양분을 빨아드리니깐 당연히 그 세포는 더 빨리 증식하고 그 종자를 받아서 태어난 세포는 또 안 죽겠다고 몸부림치는 종자들만 계속 생겨나서 그런 세포의 덩어리들이 점점 커집니다. 그것을 우리는 암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은 안 죽겠다고 몸부림치는 세포들이 서로 안 죽기 때문에, 마지막에 우리의 몸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사람이 안 죽겠다는 세포가 많이 늘어나게 되면 절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쉬운 말로 간암으로 죽었다. 위암으로 죽었다. 폐암으로 죽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III.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그러니 죽는 것은 곧 사는 것이다고 한 이 사도 바울의 이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 이것이 우리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 뿐이겠습니까? 밤하늘을 보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들만 약 6천개라고 합니다. 우주 전체에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별들이 떠있습니다. 그래서 작게는 1~2억개의 별들로 시작을 해서, 많게는 수십억, 수백억의 별에 이르기까지, 은하들이 있는데, 그런 은하들이 1천억쯤 있는 것이 우주라고 생각을 합니다. 별들이 생겨나는 것은 하늘에 있는 별이 폭발하고 남은 먼지들이 있는데, 별이 죽을 때에는, 큰 폭발을 일으키면서 별이 사라집니다. 그 때, 어마어마한 폭풍이 불고, 이때 열이 나게 되는데, 이 열들이 먼지들을 자극해서 그 먼지들이 함께 모여서 휘돌면서 핵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열을 내면서 폭발을 일으키면서 별 구름에서 떨어져 나와 새 별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폭발하고 죽는 별이 없으면 다시 태어나는 별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목회할 때, 제일 먼저 은혜 받은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잘 죽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때에, 가정에서 평화가 오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잘 죽을 때에,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자기 안에도 두 요소가 함께 싸우고 있으니, 씨눈같은 그리스도와 썩어야할 밀알 같은 자기의 육적인 생각들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전자를 우리들이 거듭난 새 본성이라고 말하고 후자를 부패한 옛 사람의 본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죽음으로써 잘 사실 때, 그때에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30배, 60배, 100배, 1000배, 2000배, 3000배의 열매를 맺어,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어제도 집회에 내려오기 전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하는 어느 선생님의 고백을 담은 책을 잠깐 읽다가 내려왔습니다. 이것을 보는데, 참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정말 갈 곳이 없고 방황하는 많은 청소년들이 있는데, 선생님들의 수는 옛날보다 더 많이 늘어나는데, 아이들은 좀 더 좋은 교재로, 좀 더 나은 시설로, 좋은 밥 먹으면서 공부를 하는데, 우리 학교 다닐 때보다 방황하는 아이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우리 때야, 어디 급식이 있습니까? 도시락 싸가지고 오면 그것도 먹을 처지가 못 되어서 슬며시 밖에 나가서 수도가에서 그 수돗물을 마시고 점심에 주린 배를 때우는 학생들도 많이 있었고, 너무 가난하면 미국사람들이 보내준 옥수수가루를 가지고 빵을 만들어서 그것을 반쪽씩 그것도 전부다 주지를 못해서 번호별로 돌아가면서 그 빵을 나누어 주면 점심시간에 그것을 먹고 그렇게 끼니를 때우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렇게 넉넉한 생활이 되었어도, 학생들은 옛날보다 행복하지 않고 더 많이 방황하고 우리 때만 해도 이렇게 많이 아이들이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한 아이가 죽으면 전국이 떠들썩할 정도로 소문이 났는데, 이제 청소년의 자살의 뉴스거리에도 들어가지 않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많아도 밀알처럼 썩으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밀알처럼 썩으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사람들이 마음속에 전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고 높고 위대한 것에 박수를 보내지만, 하나님께서는 잘 주는 자들에게 박수를 보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교회를 사랑하게 했던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박수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나를 여기에 세우셨다 목회는 내가 여기있을수도 저기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치, 내가 이 남자하고 살고 우리 새끼들을 기르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는 것을 버린 아내처럼 그렇게 됩니다. 한 번 그 마음을 버리기가 힘들지 내가 꼭 이 사람하고만 살아야 하나, 이 새끼들이 내 행복을 책임져주나 하고 마음의 뿌리가 뽑혀버리면 2번도 시집을 가고, 10번도 시집을 갑니다.
IV. 결론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못나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밖에는 내가 갈 때 없는 줄 알고, 그리고 여기에서 떨어지면 죽는 줄 알고, 오라는데 많아도 거기는 못가는 곳 인줄 알고, 그렇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 남편보다도 잘난 사람 세상에 많습니다. 얼굴 잘 생기고, 키 크고, 돈 많이 벌고,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 받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미 가정을 가진 나하고 먼 상관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남이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함께 살아야할 자식새끼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안 그랬습니다. 목회를 이만큼 하고나서 한 교회에서 오래 있었던 분은 무조건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목회를 그냥 와락와락 해가지고 수많은 사람을 모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어도 둘 다 존경합니다. 그 목사님을 계속 데리고 있은 교인들도 존경스럽고, 또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에 무슨 사연은 없었겠습니까?
우리 노회에 어느 장로님이 있는데, 저를 참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로님은 교회에 얼마나 있었습니까?”
“목사님, 54년 째 다니고 있습니다.”
“아니 당신 나이가 얼만데 54 년째 입니까?”
“60이 좀 넘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갈등을 안 느꼈습니까?”
“목사님, 말도 마십시오. 왜 갈등을 안 느꼈겠습니까? 어떤 때는 그냥 떠나버리려고 보따리도 쌌는데, 하나님이 또 바꿔주시고, 또 바꿔주시고.”
“정말 잘하셨습니다.”
(찬양)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참고 또 참고 또 참으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찬송하면서 견뎌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목회는 까치발을 뜨고 하는 목회입니다. 내가 여기를 떠나서 어디를 갔으면 하고 까치발을 뜨고 있는 목회입니다. 거기에는 복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난도 슬픔도 있지만은 잘 견디면서 그러면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잘 죽어, 나는 죽고 그리스도는 모든 성도들 안에서 내 마음 속에 살아서 열매를 맺도록 이바지 하면서 살 때, 거기에 하나님의 큰 구원의 영광, 은혜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