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짖는 자를 구원하심
역장수련회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19-20)
녹취자: 정은숙
2013.1.23.새벽예배
결국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깊은 절망에 이르게 되었을 때 결국 그는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고 마지막에 사망의 문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자신들이 미련한 자로서 죄악의 길을 걸은 것에 대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다든지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켜드린 것 때문에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통 때문에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자애, 자기사랑을 사용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훌륭한 방법인 것입니다.
사람마다 인생에 대한 견해와 생각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공통점입니다. 모두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렇게 공통점이 있어서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자신이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는 이미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영혼의 고통은 그것이 영혼의 고통이라고 제대로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어두운 마음으로라도 가장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는 것이 육체의 고통 그리고 이 세상살이 질서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없어도 깨어있지 않아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화롭지 않아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간섭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감화시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훈련하시지만 이러한 많은 방법들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 자체를 때려주셔서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마음을 갖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고통을 통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많이 달렸습니다. 병원에 갔는데 어느 의사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결국은 죽게 되어있는데 그때에 그가 신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특별한 질병이 없을 때 인간은 매우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 죽게 되었을 때 심장병이니 고혈압이니 심지어는 사고니 하는 이런 모든 것들을 이쪽에서 보면 너무 비참하고 불행한 것이지만 저쪽에서 보면 삶 이편에서 죽음 저편으로 어차피 가야되는데 그냥 자연적으로 죽는 것이 헤엄쳐서 가는 것이라면 질병은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이렇게 건너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의 신의 선물이다 그랬습니다. 굉장히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당하게 되는 많은 고통과 괴로움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들은 하나님이 우리들이 육신밖에 모르고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깨어날 줄 모르는 우리의 마음을 때려주시기 위해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고통이 없을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고 고통이 없을 때에는 전혀 느끼지 못하던 사물의 움직이는 질서 배후에 있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루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시련과 고난 때로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통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신을 때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기 위함이고 우리의 마음이 움직인 후에는 우리가 이제껏 찾았던 육신의 것보다도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때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여러분,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그랬습니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간절히 기도할 때는 그저 우선적인 기도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매달립니다. 물론 때로는 하나님이 한 마디의 기도로서 혹은 기도하지 않고 마음에 소원만 가져도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읽으시고 기도를 혹은 우리의 마음을 들어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고통의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것이 정말 고통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사람이 조금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다고 해서 즉시 하나님 앞에 열렬하게 매달린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상상이지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나면 할 수만 있으면 자기의 힘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은혜 안에 있으면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은 한계를 느끼고 도저히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없다 라고 하는 한계에 이르게 됩니다,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없다 라고 느끼는 한계,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없다 라고 느끼는 한도선상에 오게 되고 이렇게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 비로소 마음 깊은 것에서 절망과 함께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한 줄기 가녀린 빛 같은 소망을 품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들의 고통 때문에 부르짖는 부르짖음이 나중에는 자기 반성, 그리고 자기 처벌, 자기 심판으로 이어지게 만들어서 마지막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하나님을 멀리 떠나 불순종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떼어놓으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아와 자아가 대적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할수록 마음속에서 말하자면 내면 속에 있던 것들이 밖으로 나오면서 일종의 박피 작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희 어렸을 때 간식도 없고 그러던 때인데 시골에 감나무 밤나무가 있었습니다. 우리 땅에 심어놓은 것인데 산지기가 가을이면 항상 감 두세 자루와 밤 두어 자루 갖다 줍니다. 그러면 완전히 떫은 땡감인데 할머니가 그것을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서 겨우내 놔두십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겨울이 되면 땡땡 업니다. 그걸 하나 뜯어가지고 와서 차가운 물에 집어넣으면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속에 있는 얼음이 밖으로 막 나오는 것입니다. 차가운 물에 집어 넣으면 한참 있으면 유리로 코팅이 된 것처럼 얼음으로 완전히 감싸집니다. 그러면서 그 찬물에서 천천히 속에 있는 냉기가 밖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얼음을 얼리면서 자신은 얼음이 없는 맛있는 연시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러면 나중에 밖으로 꺼내서 톡톡 치면 유리처럼 깨지면서 껍질이 벗겨집니다.
마찬가지로 그런 간절한 기도의 맨 처음은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형통하는 것아었는데 그 시간이 오래 계속되며 하나님께 매달리다보면 마음이 이 세상에 붙어있을 때에는 자신의 욕망을 따랐기 때문에 보지 못하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욕망은 항상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도록 가슴 갈피갈피 감춰졌던 것들이 밖으로 나오기 사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자신이 정말 가슴에 품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들이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다 끄집어내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깊은 반성이 주어지고 회개를 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자기를 미워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에 의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셨습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보내심으로써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그랬는데 성경에는 샤라흐 다바르라고 해서 하나님이 말씀을 마치 물건이나 혹은 대리자인 사신처럼 파송하시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사랴흐라는 히브리 동사가 원래 파송하다는 그런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으로 고치신다 여기서 고치신다는 말이 라파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로페가 의사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고치듯이 고치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생명을 다루면서 고치는 것입니다. 기계는 생명이 없고 사람이나 생명이 있는 사물들은 생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고치는 목적 자체가 생명과 아랑곳없이 고치기만 하는 것은 기계지만 고치되 생명을 잃지 않고 고쳐서 생명이 더 풍성하게 북돋아지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고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입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종종 커다란 수술을 하게 되면 두려움이 옵니다.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의사는 우리들을 눕혀 배를 가르고 창자를 자르고 이렇게 하면서도 결국은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고통스러운 치료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질병 때문에 꺼져가는 생명을 다시 북돋우고 일으켜 사람답게 살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해서 고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위험한 지경에서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라고 말합니다. 78편을 하다 잠시 107편으로 건너왔는데 여기에서 읽어드리는 6절에서부터 20절까지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 떠난 고통 속에서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인간의 마음이 변하고 마지막에는 그 인간을 결국은 하나님께 간구하고 매달리게 하셔서 그래서 그 모든 고통에서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지에 대한 한편의 드라마처럼 여러분에게 6절부터 20절까지를 보여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정적인 이 치료의 역사를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어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까불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시련을 만나고 고통이 오고 하나님이 그 고통을 통해서 마음을 때려주셔서 마지막에는 돕는 자가 없고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의지할 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릴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움직였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보내어 하나님 앞에 다시 새롭게 살도록 하나님이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새롭게 살 수 있도록 더욱 더 주님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