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훼방한 그 훼방을 저희 품에 칠배나 갚으소서 그러하면 주의 백성 곧 주의 기르시는 양 된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로 전하리이다 (시 79:12~13)
녹취자 : 임종찬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은 시편79편의 마무리입니다. 말씀드린바와 같이 이 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민족들로 인해 고통을 받을 때에 쓴 탄원시입니다. 12절에서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훼방한 그 훼방을 저희 품에 칠배나 갚으소서”라고 말합니다. 보복을 위한 기도라고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데 이미 79편을 설교하면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이것은 단순한 사랑 없음, 영적인 미성숙에서 오는 단순한 미움의 보복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시인의 마음 속에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갈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때에는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이 충분히 계시되지 않은 때이고 또 하나님의 경륜을 해석함에 있어서 유대주의의 선민의식들이 깊이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도가 나오기도 하였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고 하는 간절한 갈망과 몸부림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이와 같은 구절을 해석해야 합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께 탄원할 때에 자신의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이웃은 이방나라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의 이웃이라기 보다는 이미 10절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이방나라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그러며 주의 종들을 피흘려 죽게 하는 이 모든 만행을 저지를 사람들을 이웃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친근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이웃이라기 보다는 히브리어로 보면 국경을 두고 가까이 있는 나라들을 그저 거리적인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보복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이번에는 비방이었습니다. 12절과 13절을 함께 묶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비방, 그리고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님의 목장의 양이니 주님의 명예를 위하여 살겠습니다.’라는 간구가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방나라 백성들은 주님을 모욕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예를 전하며 그 이름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나쁜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을 비방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손해가 나겠습니까? 온 땅과 만물 위에 계셔 홀로 드높으신 하나님이 이 개 같은 인간들이 짖어 하나님을 욕한다고 한들 하나님에게 털끝만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에 그런 피조물들로 인해서 하나님이 오히려 영광을 받으신다면 그 분을 어찌 온 땅과 만물위에 초월하신 광대하신 하나님이라고 아뢸 수가 있겠습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이 주를 비방한 비방이 하나님에게는 추호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많이 더럽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도 없지만 하나님의 이름,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평판에 대해서는 이들이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 것이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면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존귀히 여김을 받고 그렇지 못하면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업신여김을 받게 되죠. 여기에서 바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시인은 지금 이 이웃나라가 자신에게 입힌 손해에 대해서 가슴아파하고 낙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시인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개 같은 이웃나라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욕했기 때문에 이 주님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예에 대한 중대한 훼손이었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일천한 사람들에게 주님을 구체적으로 비방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무지로 말미암아 덩달아 하나님을 향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한 그 죄를 하나님 앞에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이름의 명예를 현저하게 훼손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7배나 갚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7배는 최고의 보복을 가리키는 것이고 무한한 복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것을 그들의 품에 갚아달라고 하는 이 기도는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고 모욕했기 때문에 받을 수치와 불명예가 그들의 마음에 사무치도록 깊고 본질적인 것이 되게 해달라는 간구요,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결국 이방백성들에 대한 미움으로부터 나왔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에 대한 사모함,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는 그 간절한 사모함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음으로 간구하는 이 시인의 기도를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그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고 영광을 받기를 바라고 그 반대가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인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한 간절한 소망을 품은 사람이고 사실 이 시인과 선지자들의 가슴에 불타는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위한 간절한 탄원은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주기도문에서 첫 번째로 가르쳐졌던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라고 하는 첫 번째 간구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번째, 세번째 간구는 그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 지를 보여준 것이고, 그것이 바로 그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성취된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 반대의 상황이 이 시인의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그 분의 이름을 결과적으로 더럽히고 있는 이 이방백성들을 주님께 했던 그들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7배나 그들에게 갚아 그들의 마음에 사무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 주님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갈망을 이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자기 바깥에 있는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갈망은 자기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에 비례합니다. 자기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 외적으로 자기가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기를 바라는 갈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진정한 갈망과 시련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은 그냥 사무적으로 그렇게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 진정한 갈망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의 목장의 양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두 가지인데 주님께 대한 감사와 주님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주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 이방나라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하나님이 어디에 있냐고 물을 정도로 비참한 침략을 당했는데도 주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때로는 이들의 만행을 통해 깊은 시련과 고난을 당했다 할지라도 한 가지 자신들을 억압하는 이방백성들과 이 시인이 속한 이스라엘 나라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외인이요, 자신들은 주님의 백성이며 주님의 목장의 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자신들을 현실적으로 침략해서 억압하고 있는 이 강한 이방백성들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백성이요 주님의 목장의 양입니다. 여기서 목장의 양이라고 말한 이유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장소적으로 한군데에 모으셨다는 것, 그러니까 신약에서 제시되고 있는 영적인 나라로서의 현실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과는 좀 다른 하나님의 나라의 영토개념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목장에는 하나님이 울타리가 되어서 이들을 보호하고 계시다는 개념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들판에 흩어진 양떼들은 공격을 하지만 목장에 있는 양들은 맹수들이 공격할 수 없도록 이미 보호되고 있다는 개념이 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고 하나님의 돌봄과 보호 속에 있는 것은 자신들보다 힘이 더 강하여 침략한 이방나라 백성들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영적인 특권이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이렇게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한 곳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 그리고 영적으로 함께 묶여서 하나의 지체를 이루며 각자 각자마다 임재해 계시는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 모든 모습들이 바로 주의 목장의 양이라고 하는 구약의 메시지들을 신약시대에 성취하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우리의 자랑은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께 있고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주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처지에서 우리는 주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감사는 하나님의 백성의 가장 중요한 표입니다. 왜냐하면 종종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못하고 혹은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악하게 해주셨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각자 욕심에 이끌려서 분량에 넘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심지어는 우리의 목숨까지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한 바와 같이 고유하게 우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죄밖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극심한 형편과 처지에 처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결국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고 주님의 이름에 명예를 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우리가 선하게 여기는 모든 것은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나쁜 것들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고 선한 것들이 나쁘게 된 것도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잘못 사용한 우리에게 책임이 있으니 우리는 주님앞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편견을 깨고 공정한 시각으로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눈물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들이고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우리의 생명을 포함한 좋은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깊을 때 그것은 곧 사랑의 마음이고 이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깊을 때 그것은 곧 주님을 향한 절대의존의 마음이며 이렇게 사랑과 감사와 의존의 마음이 깊을 때 우리는 주님의 명령에 무제한의 순종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님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처럼 선하신 분이시고 이처럼 자비하신 분으로서 그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영원하다고 하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여 그들도 하나님이 그러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그 분의 이름을 높이도록 그렇게 이바지하는 사는 것이 주의 백성의 의무요 본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의 것이 아니며 결국은 이 모든 것들은 이 세상에 두고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니 하늘에서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계속 될 것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알고 하나님의 명예를 온 세상에 전하여 그 분의 이름이 올바로 대접받게 하는 그 길이 하나님 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백성들이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더욱이 오늘 시인은 대대에 전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명예와 그 분의 영광이 자기들의 시대에만 드러나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후손들의 후손, 그 후손들의 후손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여호와와 여호와께서 조상들에게 행하신 일을 알지 못하므로 그 세대가 하나님 없이 교만하게 행하지 아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이 세상 사람들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지 몸부림치며 사는 우리의 일생을 통해서 우리가 새롭게 만나고 알게 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조상들이 남겨준 그 지식 위에 보태어 더 풍성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유산을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글과 책으로 된 표현할 수 있는 사상만이 아니라 삶의 모본을 포함하여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내면의 세계의 품질까지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를 통해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고 느낄 수 있어서 그것이 그 자식의 대에까지 물려지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한세대의 사람들이 가정에서 하나님을 믿었지만 자식들에게는 추호도 그 신앙이 전파되지 않는 가정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의 실패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아직 살아있고 자녀들이 있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다섯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이렇게 여러분들이 그냥 그냥 신앙생활하다가 마지막에 여러분들은 주님을 고백하고 죽었는데, 여러분 자녀들에게는 그 신앙을 전수하지 못하여 여러분들이 죽은 후에 하나는 불교신자가 되고, 하나는 무신론자가 되고 그랬다고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이런 일들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으로서 주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특권과 커다란 은혜이지만은 동시에 이것은 주님의 명예를 대대에 전하여야 할 중요한 책임을 우리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자녀를 위하여 많이 기도하고 그리고 여러분들의 자녀를 위하여 물려줄 만한 신앙을 가지며 사는 것, 이것은 너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가족적으로도 적용되어야 하고 교회적으로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시대에 자라나는 불신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이 땅의 자녀로 여기고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명예가 다음 세대에 우리의 세대보다는 훨씬 아름답게 그 하나님의 명예가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소망 속에서 우리들이 눈을 감아야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