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5 새벽예배 →단편인 경우
지금은 하나님을 찾을 때 1 (2012.5.1 주일오전) →시리즈인 경우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시 80:13-14)
녹취자: 윤수현
어제에 이어서 시인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구원을 탄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멧돼지의 비유를 통해서 앞에 나오는 담을 허신 이야기보다도 훨씬 진전된 약탈 광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담을 헐었기 때문에 보호자가 없어서, 그래서 이 민족들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정해주신 영역에 들어와 그 실과를 따고 포도밭을 해칠 뿐 아니라 이번에는 아예 멧돼지들이 들어와서 그리고 온갖 들짐승들이 들어와서 이 포도나무를 해지며 그 열매를 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이민족에게 약탈당하고 있는 광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주전 15C경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거기 정착을 해서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던 물론 그 이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722년에 망합니다만 605년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가고 나라가 완전히 망하게 되는 주전 586년까지 약 천년동안을 거기에서 버텼다는 것 자체가 역사를 보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보면 이미 수많은 나라들이 앗시리아를 비롯해서 신 바벨론 그 다음에 메디아, 페르시아 이런 나라들이 수 없이 주변에 일어나면서 정복과 전쟁을 벌였고 그 속에서 손톱만한 나라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정말 놀라운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이렇게 앗시리아나 신 바벨론, 메디아, 페르시아 같은 이런 나라만 융성했던 것이 아니라 수시로 작은 나라들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특히 블레셋과 같은 나라들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밑에서는 에굽 같은 나라들이 치고 올라왔고 위에서는 앗시리아, 바벨론, 이후에 이어지는 메디아, 페르시아 등 엄청난 전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이들이 손톱만한 나라로서 그렇게 살아남아 있을 수 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지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원수들의 손에 내어주셨고 그리고 이 원수들은 이제 마음 놓고 이스라엘을 훼파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멧돼지들이-멧돼지, 들짐승, 이것은 모두 이성 없는 사람들, 이성 없는 군대들, 이방 나라들을 묘사하는 자주 사용되는 표현들입니다. 이렇게 야성을 가진 짐승들이 거칠 것 없이 작물을 해치며 손해를 끼치는 것처럼 이제 이스라엘이 이렇게 이민족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인도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을 극복하거나 변혁할 수 있는 어떤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향해 ‘돌아오소서’, ‘돌이키소서’, 심지어 ‘깨소서’, ‘깨어 일어나소서’라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교훈적인 적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에서 ‘accommodate’라고 하는데 말을 듣는 대화하는 상대가 워낙 수준이 낮으면 자기를 낮추어서 그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나 방식으로 대화를 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적응 ‘accommodate’라고 합니다.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을 ‘돌아오소서’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좀 우숩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무슨 표현이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난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결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해가 뜬다.’ 혹은 ‘해가 진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준이 되신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지만 우리를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이 멀리 떠나셨기 때문에 ‘하나님, 돌아오소서.’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인은 비로소 이렇게 나라가 이방 민족에게 짓밟히고 이방 군대에게 유린되면서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지기 시작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해 주시는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큰 영광이요 그리고 안전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굽어 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굽어보신다는 표현이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이 땅의 모든 질서를 당신 마음대로 재편하고 움직이실 수 있는 통치의 주권을 가지신 분으로서 이 땅을 굽어보시는 것입니다.
옛날의 임금들은 어느 나라건 높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신하와 백성들은 그 높은 용상 아래에서 모두 부복하고 왕은 그 높은 보좌위에서 눈을 아래고 향하여 굽어 살피며 그러며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이것은 결국 무엇을 보여 주냐면 왕이 그 높은 용상에 앉아서 자기의 나라를 통치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늘의 창을 이렇게 열고 밑을 들여다보시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보좌에 앉으셔서 이 땅의 모든 것을 당신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권세와 위엄을 가지고 통치자로서 이 세계를 굽어보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능력과 주권을 가지신 분으로서 당신의 통치를 받는 세계를 주목하실 때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 통치의 질서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렇게 굽어보시는 것이 커다란 두려움과 그리고 심판의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고 억압 받고 고통 받는 자기를 사랑한 백성들에게는 원한을 풀어주고 원래의 사물들의 질서대로 돌아가 그들을 하나님의 통치아래 행복하게 해 주신다는 표징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이 굽어 살피시는 것은 질서의 변혁을 의미하고 하나님이 이 모든 세계를 굽어 살피시는 왕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신원의 날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지상 통치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국면입니다.
이와 유사한 말로서 하나님이 당신의 얼굴로 대면하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도 악인에게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 심판을 의미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언약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직면하신다는 이것이 하나의 은총에 대한 기대 혹은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굽어보시고 그리고 특별히 이 세상 중에서도 이 포도나무,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 ‘왜 하나님이 그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셨을까?’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사야 5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도원이라고 부르시고 그리고 그 포도원을 삼으신 것이 의와 공평의 열매를 바라셨기 때문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알다시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1m 올라가면 12m까지 가지가 뻗어나갔다고 했고 특별히 이스라엘에서는 이 포도 농사가 아주 잘 되었습니다. 에스골 골짜기 같은데서는 지금은 모르겠는데 한 120년 전에 나온 주석에 의하면 그 당시에도 포도 한 송이에 4,5kg짜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면 질이 좋은 포도주들을 싸게 팝니다.
결국은 이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의미하는 첫 번째는 열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나무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부르신 것은 이방 백성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그 열매를 기대하신 것입니다. 의와 공평, 자비와 사랑 이런 열매를 많이 맺게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함으로 모든 이방 백성들 앞에서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존재 하나님의 나라의 존재는 이 세상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미담거리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열매는 전시용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들이 순종과 믿음의 원리를 따라서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성품이 변하고 그들의 인간성의 본질이 변해서 삶 그 자체가 열매가 되는 생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반드시 위대하고 놀라운 일, 이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역사적으로 위대한 일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한 포도나무에서 기다란 줄기가 뻗어 거기에서 수 없는 포도나무 열매가 매달리게 되듯이 하나님의 은혜에 뿌리를 박은 백성들이 그들의 본성이 변하여서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그렇게 인격적으로 삶에 있어서 거룩함의 열매를 맺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포도나무가 가지고 있는 확장성입니다. 첫 번째가 결실성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는 확장성입니다. 그래서 이 포도나무가 주인이 심을 때도 기대하지 못했던 것처럼 한없이 뻗어나갑니다. 그래서 포도나무는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 포도나무는 반드시 넝쿨이 계속해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지지대를 세우고 줄들을 이어주어야 합니다.
오래전이에요. 남한산성을 넘어가고 있는데 겨울이었는데 멀리서 보니까 커다란 묘지같이 생긴 데에 수많은 하얀 십자가가 서있는 것입니다. ‘야 신기하다. 여기 무슨 묘지가 있나..’그러고 가까이 차를 타고 가니까 묘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 십자가가 뭔가?’ 그러고 그 이듬해 봄에 보니까 바로 그 십자가가 포도나무가 쭉쭉 뻗어갈 때 그 가지들을 지탱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사이사이로 철사줄이 연결되어 있고 그 줄에 포도나무가 매달리면서 옆으로 계속 뻗어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포도나무를 기르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가지고 있는 확장성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가나안 땅에 심으셨지만 하나님은 그 작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그들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실려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끊임없이 펼쳐 보이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 백성들이 살아가도록 그렇게 만드시고 그 영향력이 끊임없이 이방에까지 미쳐서 그래서 이것들이 영적으로 확장돼 가는 이런 나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리고 예수님도 우리 교회를 포도나무로 비유하셨던 것입니다. 선교적으로 대단히 의미가 있는 비유다 하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이 포도나무가 가지고 있는 필수성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알다시피 팔레스타인은 물이 매우 희귀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얻는 것이 매우 큰일이었습니다. 지금도 보면 물이 이스라엘에 풍부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일 년에 100mm이하의 강수량인 곳이 굉장히 많고 한 지역이 좀 풍부해서 헐몬산 아래로 거기에서 내려오는 물들로 이제 하는데 그래서 이 관계시설을 아주 잘해놨습니다. 그래서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독일은 일본처럼 저렇게 하지 않고 깨끗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을 하고 그리고 사죄하고 뭐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그 당시로서 이스라엘에게 배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그것을 받아서 한 푼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모두 거미줄처럼 이스라엘 전 영토에 수로시설을 만들어서 그래서 전국이 풍부한 농경지가 되도록 물이 풍부한 농경지가 되도록 그렇게 대규모의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들이 아는 이스라엘의 부강한 경제력이 거기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주요 수출품이 농작물입니다.
이렇게 물이 매우 소중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물이 생명처럼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물이 땅을 파면 물이 나오는데 판다고 해서 그 물을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잘못 먹으면 풍토병에 걸려서 다리가 퉁퉁 붇는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이것을 즙을 내서 포도주를 상용하면서 이게 음료를 대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너희를 위한 생명의 떡이요.’이렇게 말씀하실 때 그 떡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포도주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우리로 말하자면 밥이고 포도주는 우리로 말하자면 물처럼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그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슨 뜻이냐, 물론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피조물에도 당신이 의존하시는 분이 아니시지만 당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창조된 세계 안에 당신의 목적을 구현해 가시는데 있어서 이스라엘이 그렇게 필수적인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물이 꼭 필요하듯이 물이 우리보다 위대한 것은 아니지만 물이 꼭 필요하듯이 하나님이 이 창조하신 세계 안에 당신의 창조 목적을 드러내 보여주시는데 있어서 이스라엘은 그렇게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교회를 위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도나무로 여기셔서 돌보고 지키셨던 것처럼 또한 우리들도 그렇게 지켜서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도록 그리스도의 교회가 멧돼지와 들짐승들에 의해서 짓밟히고 먹히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교회를 다스리고 통치해 주시도록 그리스도의 교회를 매일 깨끗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시고 죄인들을 날마다 고치셔서 새롭게 하셔서 그래서 우리 모두 부족한 사람들이지만 우리들이 주님 안에서 점점 더 온전하게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영광이 당신의 교회에 나타나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