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성실하심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시 89:8)
녹취자: 차지현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89편 제 8절입니다. 시편 89편 제 8절입니다. 우리 모두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아멘. (시인은) 앞절에 이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는 이 말씀은 히브리어로 야훼 엘로힘 쩨바우트()입니다. 군대입니다. 군대의 복수형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많은 군대의 하나님이여’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냐 하면 하나님이 자기가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전쟁을 수행하시는 용사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의 목자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전사이십니다. 평온할 때 자기의 백성들을 사랑으로 다스리시다가 커다한 위기가 오면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백성들을 온화하게 돌보시다가 그 백성들을 헤치는 자들이 나타나면 당신이 거느리는 만군의 천사와 함께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하늘에 있는 정사와 권세와 그 모든 주관자들을 대하여 영적으로 싸우실 뿐만 아니라 또한 이 땅에 있는 모든 나라와 그리고 군왕들에 대해서 싸우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역사 속에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만은 이길 수가 없는 전쟁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대신 싸우심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기게 하시고 승리할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찬송은 자신들의 깊은 역사에서 나오는 노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긴 이스라엘의 역사 통해서 짓밟히고 멸망할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셔서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싸우는 모든 대적들을 자신의 적으로 삼아 그들과 더불어 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승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종 전쟁에서 패배하고 큰 실패를 경험하여 나라의 안위에 커다란 위협을 느끼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이신 그분이 이스라엘을 실패하게 하심으로써 그 전쟁의 패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굳게 붙들고 그분 안에 있는 한 하나님이 능력이 모자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그들을 위해 일하시는 주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이어서) ‘주와 같이 능력이 있는 자가 누구겠습니까?’라고 (시인은) 반문합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이 만군을 거느리고 하늘에 계시지만 그 하나님은 그냥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분이 아니라 실제로 이 땅에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싸우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이 위대한 싸움이 이제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아주 구체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구원을 설명함에 있어서 전투의 모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이 창조세계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대장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들과 그리고 당신의 성도들을 당신의 군사로 삼아 영적인 전쟁을 수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성령을 통해서 수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과 같이 능력이 있는 분이 누구이겠습니까?’ 라는 이 질문은 상상 속에서 나온 질문이 아니라 시인이 역사 속에서 전개되는 용사 같으신 하나님의 위대한 전쟁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그 능력을 확신했기 때문에 부르는 노래인 것입니다. 신자는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용사로서 싸우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으며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고 모자랄 때에도 그 하나님을 의뢰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성실함’이라는 말은 주일날 설명했던 에므나()라는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믿을만함, 혹은 충실함, 신뢰할 만함, 의지할 만함’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계신데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에 언제나 성실하시고 그 언약을 배반하신 적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찬란한 영광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신하들이 에워싸고 있는 그런 모습으로 해석을 합니다. 하지만 (제가 해석하기로는) 그게 아니라 하나님을 에워싸는 찬란한 영광을 나타낸다고 봅니다. 그림 같은데서 보면 할로우(hallow)라고 하는 것이 있지요? 하나님이나 혹은 천사, 혹은 성인이 있고 그 가장자리에 찬란한 빛이 나는 것 말입니다. 그처럼 그 영광이 그분을 에워싸는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주의 성실하심이 당신을 영화롭게 합니다’라는 말이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이 불순종해서 끊임없이 당신을 떠날 때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한번 맺은 그 언약에 성실하심으로써 모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당신의 성실하심을 배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혹은 그런 성실하심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신들 가운데 구별되어 찬란한 광채를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라는 뜻도 됩니다. 결국 이 시인도 그 긴 세월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변함없이 신실하신 분이심을 노래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모든 이 세상의 임금과 또 다른 신들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인이 찬양하는 하나님의 그 능력과 성실하심이 결국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한번 구원받은 자들을 끝까지 붙드셔서 주님의 나라의 백성 삼으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통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질 그 때에 (자신 속에) 신앙의 유무가 드러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낙심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온 땅과 만물위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나를 대신해 싸우시는 주님이심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흔들리고 연약해질 때가 있어도 믿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요동치고 흔들리는 파도위에 떠 있는 배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그 때에 우리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지 말고 주님의 성실하심을 바라보며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아갈 때에는 물결치는 파도나 배에 스쳐지나가는 그 물보라들을 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특히 배가 멈춰있을 때에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울렁거리면서 수 없이 토합니다. 그 때에는 눈을 들어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발이 지금 움직이며 출렁거려도 내 마음이 저 먼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가면 속이 좀 안정이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살지만 요동치는 우리 삶의 현실에 우리가 매몰되어서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매 순간 도우시는 하나님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하는 믿음의 낙관, 그 속에서 오늘 하루를 즐겁고 기쁘고 감사하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