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TS 수련회 설교2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1-3)
녹취자: 김미영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여 장가를 들었습니다. 구스 여자라면 오늘날의 에티오피아쯤을 가리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이 구스 여자가 흑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충격이었을까요? 난 이 시간에 과연 여러 사람의 아내를 두는 폴리 단위가 그것이 왜 허락 되었는지, 그것이 윤리적으로 어떤 것인지 그것을 논할 시간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아직 하나님께서 허용을 하시던 때였고 그것이 하나님이 명백하게 지시하신 뜻은 아니었으나 허용되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아마도 인구를 고려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뜻은 한 사람의 남자가 한 사람의 여자를 만나 혼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와를 여럿 짓지 않으시고 하나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시기에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소극적으로 허용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쨌든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민족주의적인 편견에 꽤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커다란 충격이 되었겠죠? 심지어 미리암과 아론도 함께 비방하였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형제 자매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도 말씀하셨다고 말입니다. 영적인 권위에 도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비난을 받고 반역이 일어날 때 모세는 어떠하였습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원래 모세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열렬한 사람이었습니다. 애굽 군사들을 때려 죽이고 도망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혈기 충천하던 사람이 이렇게 변하여 온유할 뿐만 아니라 온유함이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마도 많은 연단을 받으며 그가 여호와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모세의 이 온유함은 본성적인 온유함이 아닙니다. 변화된 온유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역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갈등과 어려움들은 그럴 만한 어떤 뚜렷한 명분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이제까지 한국 교계에서도 많은 사람들과 일해 보았고 또 각 분야에서 많은 동역자들과 함께 일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뉘고 갈리고 합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그 나뉨에 어떤 뚜렷한 명분이 있다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분열과 나뉨은 지도자의 인격적인 미숙함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사역을 하면서 인격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은혜 받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충고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마음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 계시록에 의하면 그 분의 별명은 아멘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거기에 대하여 순종하셨던 분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든지 간에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 하라는 명령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깨달은 것입니다. 그 어떤 명령도 하나의 명령보다 더 크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이 세상 불신자들이나 혹은 신앙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요한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니 그 계명을 성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미 성취되고 숙념하고 있다면 그것을 당부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세의 이 온유함의 비결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는 신앙적인 순수성 때문입니다. 그들은 구스여자를 취한 것을 비난을 했지만 모세의 눈에는 그 여자는 분명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핏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분명히 이 여자는 신앙을 고백하고 이스라엘 무리 중에 들어온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스라엘 가운데는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 여자를 취한 것이 비난을 받은 것은 아마도 이 여자의 별다른 외모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가끔 목회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국수주의에 사로잡혀서 열을 내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중국이라는 나라도 있고 한국이라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각 그 나라에 살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위해 기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나라보다 더 중요한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 이 나라의 껍질을 벗고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는 끊임없이 흘러가고 변하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라만 영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면 어떻게 될까요? 중국인이나 미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아무 상관이 없을 겁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나라의 백성들만 기뻐할 것이기 때문이죠.
모세가 이렇게 온유할 수 있었던 또 한가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그들의 허물을 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만 하나님께 충성했던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발견되어서 죽게 되었을 때 그를 건져준 사람이 누구였죠? 그 사람이 애굽의 공주에게 이 아이를 입양시키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 모세가 있었을까요? 미리암이 그렇게 모세를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아론이 없었더라면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게 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 사람들은 평생을 모세를 도왔습니다.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의 편을 들어주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환상으로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도 말했다. 그러나 모세와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모세가 당신의 집에 온전히 충성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꿈과 환상은 간접적인 것이고 대면하여 말 한 것은 직접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영적인 특성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지극히 가까운 사람,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들었던 사람, 자기가 무엇을 말하든지 하나님이 들어주신 사람이었습니다.
지도자의 가장 탁월한 특성은 바로 이것이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하나님 가까이 있다’ 라고 하는 따르는 자들의 확신 말입니다. 그 때에 그들은 지도자를 신뢰할 만 합니다. 그를 따라가면 주님의 뜻을 따라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질서는 이 세상의 질서와 다릅니다. 법이나 창, 칼로 다스리는 질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권력으로 다스리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지도자들이 세상의 지도자와 교회의 지도자 사이의 구별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힘도 권력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종교적인 권력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그릇된 방법으로 사용하시는 것을 슬퍼하십니다. 그 권력은 섬기라고 주신 권력입니다. 그것은 종 되라고 주신 힘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바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 모세를 다른 두 사람과는 다르게 대해 주셨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집에 충성함에 있어서 미리암과 아론은 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도 열심히 섬겼습니다마는 모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습니다. 그의 온 마음이 여호와의 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되기 위하여 섬겼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들을 위하여 중보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가 하나님께 인정받은 이유였습니다. 이 세상에 말만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기독교 지도자의 특성은 희생과 충성입니다. 사람을 향해서는 희생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좋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고 자신은 희생하는 것이 지도자의 미덕입니다. 그럴 때에 거기에서 완전한 하나님과의 평화, 사람을 향한 자유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화를 누립니다. 그래서 비난을 받더라도 온유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종종 교회에서 비난 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교회의 지체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질서를 잡아야 합니다.
뼈아픈 충고지만 난 여러분들이 중국 교회를 보면서 현저하게 질서가 없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은 매우 커다란 문제입니다. 질서가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질서가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지도자라는 이유 때문에 높임을 받는다면 그것이 공산주의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지도자가 높임을 받는 것은 그가 진리에 가까운 사람이고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진리와 관심이 없으면, 그러면 그는 지도자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사랑하는 성도들에 의해 진리를 중심으로 질서가 지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많이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위하여 많이 기도하고 교회에서 그 질서들을 세워가야 합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여러분들이 나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때 여러분들 중 누군가가 선교에 대해서 말씀하셨죠? 많은 지도자들을 파송하였지만 그들이 서로 분열을 일으켰다고요. 그런 것들이 무엇 때문일까요? 중국 지도자들이 유난히 신앙이 없거나 나빠서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질서를 배우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서에 대한 사랑은 진리에 대한 사랑과 비례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렇게 온유함이 지면에 승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비난 속에서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옳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고 백성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 질서에 어긋날 때 그것을 올바르게 잡아 주는 것은 지도자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하게 사랑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들을 미워하고 그리고 잘 못 다루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모든 누명을 벗겨 주시기까지 모세가 말하는 내용이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미리암과 아론에게는 커다란 재앙이 내렸습니다. 문둥병이 걸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문둥병자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살이 썩어 들어가고 입술이 뭉개지고 온 얼굴에 고름이 나오는 병입니다. 이것을 구약에서는 신에게 저주를 받은 병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는 모세가 한 마디가 나오는데 자기를 변호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을 고쳐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기의 회중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충성을 모든 지체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잘 따르고 순종하는 양떼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을 비방하고 괴롭게 하고 비난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 할 수 있을 때 그게 정말 하나님 사랑으로 사랑하는 인격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자기를 선대하는 사람들을 선하게 대해주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 이상의 것을 못한다면 어떻게 그 사람이 이 세상의 지도자와 다른 사람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이 모세에게서 침묵을 배우셔야 합니다. 비방을 받을 때에 침묵을 배우셔야 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그런 것들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 사소한 일이지만 나 자신을 변호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한 번 그런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변호하기 위해서는 사실을 밝혀야 하고 사실을 밝히다 보면 어떤 다른 사람들을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이 밝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 밝혀지면 나의 정당함을 모든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결국은 전체적으로 본다면 교회의 부끄러움만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허물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밝혀진 사람은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 참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참음이야말로 사랑의 최고의 특성입니다. 이처럼 모세는 오래 참으며 자기의 양떼들을 사랑했고 그래서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 잘 하는 사람들의 편이 아니라 충성하는 사람들의 편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그건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유익을 버리고 자기를 불러주신 그 분을 위하여 희생하며 봉사하는 것입니다.
봄페이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거기에서 두 가지 눈에 띄는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봄페이는 엄청난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벌써 약 5만 명의 인구가 모여 있는 큰 도시였다고 합니다.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베스비오스 화산이 폭발했습니다. 어마어마한 폭발이었습니다. 8킬로 밖에서 날아온 그 화산재들이 순식간에 봄페이를 덮어버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어떤 돌이 발견됐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웅크리고 죽은 모습이었습니다. 그 뜨거운 불 덩어리 같은 것들이 쏟아졌고 흙으로 덮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엄마하고 아이하고 다 타서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공간만 남은 겁니다. 나중에 그 공간에다가 석고를 채운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흙들을 다시 걷어냈습니다. 그랬더니 조각이 나온겁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이를 끌어안고 웅크리면서 인상을 쓰면서 죽어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왕궁을 지키던 어느 군사였습니다. 어마어마한 불비가 내리고 그리고 화산재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창을 들고 꼿꼿이 서서 죽었습니다. 그것도 그러한 방식으로 이제 조각물이 만들어졌습니다.
나는 그 두 가지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나는 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이고, 하나는 충성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사는 동네에 이렇게 불비가 쏟아지고 화산이 폭발한다면 난 영적인 자녀인 교인들을 저렇게 보호하다가 기꺼이 죽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군사로서 저렇게 불비가 쏟아지는 가운데도 흔들리지 않고 꼿꼿이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게 바로 충성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고려하는 사람들은 결코 충성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자신은 어떠해도 좋다고 하는 무제한의 헌신만이 이 충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은 하지 않고 깊은 영성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사행심입니다.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충성스럽게 사셔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날마다 버리고 양떼들의 유익을 구하여야 합니다. 종종 양떼들이 목회자인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이런 그림을 생각합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먹입니다. 아이가 점점 자라서 앞 이빨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이 이빨을 가지고 장난을 하기 시작합니다. 배가 고플 때는 엄마젖을 열심히 빨아 먹다가 배가 부르면 잇몸이 근질근질 해서 엄마젖을 꽉 깨물어 버립니다. 그러면 엄마가 자지러질듯이 깜짝 놀라고 아파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를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고 오는 엄마가 있겠습니까? 모르고 하는 것이니까 재밌는 것입니다.
종종 교인들이 그럴 때가 있습니다. 참는 것입니다. 또 한 번 젖꼭지가 물렸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니가 철이 들면 오늘 이렇게 행한 일에 대해서 매우 부끄러워 할 것이다 하면서 말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부모의 삶입니다. 아이가 그렇게 젖꼭지를 깨물었는데 엄마는 그것을 오래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기분 나쁘지도 않습니다. 사랑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 모든 온유함의 원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온유함은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여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하게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어야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사역을 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두 가지가 양립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희생을 많이 하면서 충성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경험이 있고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 하는 자기 중심성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사는 것과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것 사이의 구별을 잘 모릅니다.
누가 보더라도 모세는 쉽게 흔들리는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땅을 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땅 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친다는 뜻입니다.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입니다. 과연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 남자만 60만 명이 넘는 커다란 교회를 이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미리암파, 아론파, 모세파하고 이스라엘이 몇 조각이 났겠죠. 그런 점에서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온유하기가 어렵고 또 온유한 사람들은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중심을 잡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들은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성적인 특성이 아니라 거듭난 특성으로서 온유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세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 생각이 다르고 다양한 사람들이 이스라엘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치하게 모세를 따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당신의 큰 뜻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충성스러운 인격과 온유한 성품을 아울러 지녀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모두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를 사랑해주시고 오늘도 말씀으로 깨우치십니다. 은혜를 내려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 뜻대로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이루어가도록 우리가 한 알의 밀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는 죽고 주님은 사시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께 충성스러울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해 온유한 인격으로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에 세우게 해 주옵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우리가 지고 존귀와 영광은 주님께 돌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한 알의 밀알처럼 썩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더 많은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