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연대 세미나 질의응답
녹취자 : 오희열
우리들이 오늘날 설교에 있어서 몰역사성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역사의식이 너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좌파 쪽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 우파 쪽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 자체가, 초월성이 역사성과 나뉠 수 없는 것입니다.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까 피에티스무스(Pietismus)운동을 말씀하시면서, 박 총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과 걱정 때문에 선교의 구도의 변화가 온 것은 긍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피에티스무스 제도의 운동, 독일의 복지제도 운동을 대대적으로 만들어 놓고 오늘날과 같은 국가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본적으로 신학은 하나님의 지혜에 관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관한 일이고 그것에서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한 답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걱정되는 것은, 지금 목회자들의 마음속에는 이 시대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하는데, 예전에 30년 전 보다도 지금은 훨씬 더 현대인의 마음을 겉도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무연관성의 설교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30초 안에 마치자면 이것입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적인 생각은 relativism, 즉 상대주의입니다. 상대주의는 절대적인 도덕 규범이 없고, 이런 것들은 이미 20세기 초에 있었던 양자역학 논쟁이라든지 천문학적 논쟁, 물리학적 논쟁에서 이미 태동이 되고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면서 상대주의라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들이 이 신학 안에서와 철학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과학, 역사, 심지어는 수학, 음악, 예술, 요리, 미술, 모든 분야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은 절대가치에 대한 전적인 거부입니다. 인간은 무엇으로도 억압받지 않는 완전한 하나의 자유로운 인간의 상태로 두자는 것입니다. 하이데거의 표현에 의하면 모든 것을 부인하고 나면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운데, 그 자유는 좋은 자유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자유, 너무너무 무서운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실존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이런 현대 사상들을 깊이 이해하고, 이것들을 설교 속에서 녹여 내서 이미 설교자가 그런 쓰레기같은 인문주의 책들을 밟고 일어서서 그 위에서 뭔가 인간 고민에 대한 결정적인 답을 주고 있다고 하는 아우라가 느껴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우라 아십니까? 아우라는 일본말이 아닙니다. 이 아우라가 느껴져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쓴 “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420페이지짜리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