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장 수련회 (새벽)
“나의 자녀들아 너의 속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갈 4:19)
녹취자: 유은수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알듯이 갈라디아 교회는 복음을 버리고 유대의 완전주의로 돌아가려고 했던 사람들 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들을 심하게 책망하느라고 특별한 인사말도 없이 갈라디아서를 시작을 했습니다마는 그들을 책망하고 또 타이르면서 4장까지 왔을 때에는 마음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고 그래서 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목회자로써 자신의 마음을 표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는 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나의 자녀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도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까 자녀를 가져본 적이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정말 부모의 마음을 잘 몰랐을 겁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 부모의 마음을 어떤 마음인지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배우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배우게 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온 마음을 다해서 우리부모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 사랑의 그림자인데 이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림자가 아닌 실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배운 그 마음이 진정한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날 가정에서 자녀 교육 때문에 힘들어 하고 또 아이들이 빗나가서 굉장히 힘들어 하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끼리 얘기지만 못된 부모도 많지만 못된 자식들도 많습니다.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이 목회자가 목회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자녀들을 대한다면 자녀들이 잘못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혹시 잠시 잘못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결국은 부모는 어떻게 보면 가정에서 자녀들이 돌아갈 마음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잠시 빗나갈 수 있지만 다시 돌아와 보니까 고향이 없어졌다면 아이들이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잠시 빗나갔어도 부모가 정말 참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자식들을 돌아본다면 그러면 충분히 그 자식들이 올바른 길로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 목양을 하는 사람의 마음도 바로 그런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빗나갔고 사도바울이 가르쳐준 복음의 도리를 떠난 것은 사도의 책망을 받아서 마땅한 것이고 오죽했으면 1장8장에서 ‘하늘의 천사들이라도 우리가 전해준 복음 이외의 다른 것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무서운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사도의 마음속에는 근본적으로 이들이 올바로 예수를 잘 믿어도 자기 자식이요 빗나가도 자기 자식이라고 하는 아주 분명한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 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 이 사도가 이런 책망을 한 후에 이런 사랑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목자의 마음입니다.
(예화)우리 종종 이럴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도 하는데 그리고 심방도 열심히 다니고 어느 구역장 순장 못지않게 영혼들을 챙기고 또 하나님의 말씀도 가르치려고 예습도 하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이상하게 나에게 맡겨진 영혼들이 모래알이 부스러져 나가는 것처럼 이렇게 부스러지고 하나가 안 되고 무엇인가 자꾸 이렇게 마치 기름칠하지 않는 기계가 돌아가긴 돌아가지만 소리를 내면서 억지로 돌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힘들게 사역이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사역이 아주 힘들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무슨 특별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한 가지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내가 돌보고 있는 영혼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부족하면 뭐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어도 이상하게 그것이 흘러나오는 과정이나 전달하는 이 모든 것들이 감동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양도 일인데 그 일이 단순한 일이 되지 않게끔 만들어주는 그것이 뭐냐 하면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말하자면 우리의 일을 목양이 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두말 할 나위도 없이 그 사랑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고 그 예수님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영혼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설교를 참 많이 준비 합니다. 요샌 이상하게 목회처음 했을 때보다 설교 준비하는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리는 거 같습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배에서 어떤 땐 세 배 이렇게 설교준비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것이 수요 예배든 주일 예배든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시간이 흐릴수록 점점 기억력도 희미해지고 실력이 없어지니까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예화) 어느 교인이 여러해 전에 부부가 나왔는데 남편이 그렇게 잘 안 믿었습니다. 부인이 애를 태우며 기도했는데 “여보 아무래도 나는 교회를 옮겨야겠어. 우리 목사님이 실력이 너무 없어.” 부인이 “왜?” 그러자 “시편23편에서 3주째 못나가고 있잖아.” 그래서 우리가 막 웃었습니다. 나중에 참 아름답게 변화 받고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근데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때는 잘 준비해서 준비하면 준비 할수록 길이가 계속 길어집니다. 어떤 땐 이 두 배쯤 됩니다. 근데 이상하게 설교를 했는데 만족이 안 됩니다. 그렇다고 교인들이 설교를 안 듣고 그러냐면 그런 건 아닌데 형언할 수 없이 만족이 안 됩니다. 어떤 때는 그만큼 준비를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빠서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좀 죄송하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탁 올라가서 성경을 폈는데 말이 술술술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다시 한 번 해보라고 그러면 전혀 안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설교할 때 내 마음속에 설교를 듣는 양떼들을 향한 사랑이 가득차고 마음에 눈물이 고이면 생각하지도 않았던 말들이 막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 큰 은혜가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내가 느낀 게 뭐냐 하면 아 하나님은 성실한 것도 좋아하시지만 기본적으로 영혼을 돌보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양떼를 사랑하는 뜨거운 사랑이구나. 그래서 한때 젊었을 때 30대 일입니다.
(예화) 영국의 전설적인 설교자 조지 위필드를 참 좋아했어요. 하여튼 요즘 젊은이들 말로 내가 광팬이었습니다. 그래서 책도 참 많이 사고 읽기도 많이 읽었습니다. 근데 그의 그 56살인가에 죽습니다. 일찍 죽습니다. 근데 15살에 설교자가 됩니다. 이 사람이 원래 뭐하던 사람이었냐 하면 술집 종업원이었습니다. 근데 얼마냐 술집 손님 흉내를 잘 내는지 손님들이 술 먹으러 와서는 ‘어이 위필드 내 흉내 내봐라’ 그러고 웃기면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답니다. 근데 나중에 주님을 깊이 만나고 회심하고 설교자가 됐습니다. 공부는 깊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정말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그래서 그의 일기를 보면 며칠씩 밤에 잠을 못잡니다. 그게 뭐냐면 우리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 놀라워서 잠을 못자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대한 기쁨이 감각을 일깨워서 밤새도록 며칠씩 잠을 못자는 것입니다. 그럴 정도로 주님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그 설교의 역사상 그렇게 헌신된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째든 그 사람이 일 년이면 약 1000편 ~ 1200편의 설교를 했다니까 내가 하루에 3번~4번 한 것입니다. 한번 설교의 길이가 두 시간에서 세 시간입니다. 굉장히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은 과로로 습니다. 마지막 죽는 그 모습이 정말 감동적 입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에 가서 집회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전하니까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그 집회가 충분히 끝난 다음에 2층으로 숙소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그 당시에 전기불이 없으니까 랜턴같이 호롱불을 들려주니까 등불을 들고 올라갑니다. 내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내 마음속에 그려진 거는 이렇게 가운데로 계단이 되어 2층으로 올라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존경심이 워낙 탁월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2층에 올라가서 배웅을 하는 것입니다. 중간쯤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니까 교인들이 가득 그 계단 올라가는 앞을 메우며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돌아서는 그 순간 마음에 눈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뭐냐 하면 아 저 불쌍한 영혼들 어둠속에 있는 영혼들 가엾은 영혼들 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등불을 들고 돌아서니까 이렇게 모였을 거 아녜요. 거기서 다시 설교를 하기 시작해요. 뭐 설교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잘 믿으라고 따뜻하게 권면하는 꽤 긴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러니까 설교자가 되기를 운명 지어진 사람이었습니다. 더 유명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잘 아는 피뢰침을 발견한 벤자민 플랭클린이 광팬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미국에 있고 그러니까 미국에 집회를 가요. 그 당시에는 영국이 엄청 어려웠습니다. 미국이 영국보다 더 잘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그때였습니다. 18세기니까 가정들이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고아들이 수없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막 버리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그래서 그렇게 고아원을 만들었어요. 돈이 없으니까 미국에 가서 집회를 해서 돈을 걷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근데 위필드가 온다. 소리를 들으니까 그분 설교를 너무 좋아하고 이 사람은 부자였습니다. 인쇄소도 하고 발명품도 만들고 피뢰침도 만들었잖아요. 그래서 집회에 안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갔어요. 가면서 ‘내가 요번에는 헌금을 하나봐라’ 그러고 갔습니다. 설교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설교가 중간쯤 갔을 때 ‘나는 마음을 바꿨다. 은화만 내기로 했다. 돈주머니를 꽉 붙들고, 그러다가 설교가 끝났을 때는 나도 모르게 주머니째 가지고 가서 헌금함에 넣어 버렸다.’ 그렇게 설교에 아주 큰 은사가 있었습니다. 근데 그 사람이 올라가다 쭉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니까 유리하고 고생하는 양떼로 보인 것입니다. 근데 목사가 줄 수 있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돈을 주겠어요. 아니면 무슨 코미디를 해서 그들을 즐겁게 해주겠어요? 떡볶이를 가끔 해서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영혼에 그렇게 크게 도움이 되겠어요? 떡볶이도 그래. 다섯 가마를 했는데도 모자랐어요. 나중에 우리는 모든 사람이 와서 한 번씩만 먹고 간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청년이 와서 “목사님 저 오늘 여섯 번째에요.” 또 달라는 겁니다. 말씀을 그렇게 먹었으면 정말 많이 컷을 텐데.
그런데 그들을 향해서 쏟아질듯 이 속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그런 말씀사역을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근데 정말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영혼을 가진 피조물이기 때문에 잠시는 모를 수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저 사람이 저 이야기를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면서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모를 수가 없습니다. 아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럼 내가 오늘 묻고 싶은 건 이것입니다. ‘정말 우리들이 우리의 양떼를 향해서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입니다. 이것은 무슨 육체의 자녀가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자녀입니다. 그런 사랑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런 부모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가. 부모의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그 모든 것을 주는 마음입니다. 당연하잖아요? 그 부모가 진짜 부모라면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에 자신이 대신 죽겠다고 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화) 전에 전도사로 있을 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가운데 담임목사님 아들이 있었습니다. 착실하고 공부도 잘하고 그러는데 아빠인 목사님 마음에는 안 드는 것입니다. 더 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데 갔으면 좋겠는데 나중에 훌륭한 의사가 됐습니다. 교수 되고. 근데 뺀질대고 공부를 안 한다고 느낌을 받았나 봅니다. 얘가 담임선생님이 얘기하는데 계속 없는 돈에 병원을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니 왜 부모님 몰래 병원을 다니냐?”고 그랬더니 아버지가 하도 화가 나니까 한차례 내려쳤는데 고막이 터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말을 못하는데 말을 못하는데 ‘이건 그런걸 아닌 것 같다. 내가 목사님한테 얘기를 드려야겠다.’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 아들 때리셨어요?” 내가 뭐 ‘때리시면 안 됩니다’ 전도사니까 그럴 수 있는 입장은 안 되지만 “때리셨어요?” 그러니까 목사님 고개를 훅 숙이고 “언제 말을 안 들어서 한대 때린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고막이 찢어졌답니다.” 그러니까 그때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낙심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목사님 몰래 병원을 다닌답니다. 목사님 아무리 화나도 때리지 마세요.” 목사님이 그렁그렁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내가 의사도 아닌데 나보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뭐좀 물어볼게 있는데요. 내 것을 떼다가 아이한테 붙이면 안 되겠습니까?”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참 신기하게 이 목양의 역사는 능력 있는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지 않고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회복 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입니다. 아멘.
두 번째는 뭐냐 하면 해산하는 수고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사랑이 단지 그저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의 실제로 애를 낳는 해산의 수고를 가져오는 그런 실천이 있는 사랑이다 이런 뜻 입니다.
(예화) 자매들이 언젠가 자매들은 아이를 낳아 봤을 것입니다. 근데 편도선을 수술을 하고 편도선 수술은 제가 심방도 안 갔습니다. 근데 내가 수술을 하고 났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가 설교하지 말라고 하는 걸 설교를 했더니 꿰맨 데가 터져서 피가 한 컵씩 쏟아지고 그랬는데 근데 그렇게 아파서 누워 있는데 어느 자매가 문병을 왔습니다. 그러더니 “목사님 아프시죠?” “어 그래. 생각보다 많이 아프다” 그랬더니 왔으면 ‘많이 아프시겠어요. 좀 쾌차하세요.’ 그러고 가면 되잖아요. “목사님 많이 아프시죠?” “어. 많이 아파.” “그거는 애기 낳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애기 낳을 때 그거 열배는 아파요.” 그래서 어떻 하라는 것이에요? 얼마나 아팠으면 그렇게 표현을 했겠습니까? 근데 육체로 애를 낳는 거는 그저 몇 시간 고통을 하면 됩니다. 심하면 10시간 고통을 하지만, 몇 시간 하면 되잖습니까? 근데 이 영혼을 목양하는 해산의 고통은 눈 감을 때 까지 계속 되는 것입니다.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고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힌 사람들이 하는 것이 사랑 없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예화)우 리 그 직원들 수련회를 갔는데 김찬웅 간사가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애기 하나 있는데 아직 애기 조그만데 하나 더 나아야지 그러고 애기를 가졌는데 쌍둥이였습니다. 그래서 쌍둥이가 한꺼번에 태어났습니다. 갑자기 애가 셋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러더니 자매가 그러더랍니다. 얼마나 힘든지 신앙이 없으면 내가 돌아버리든지 뛰쳐나가든지 뭘 했을 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만 해도 힘든데 이놈 재워놓으면 저놈이 울고 저놈 먹이면 이놈이 울고 그 혼자서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게 그렇게 진짜 신앙이 있고 자녀들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내가 이 새끼들 어미라는 자각이 있으면 그걸 할 수 있지만 쉬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힘들지?" "네. 되게 힘듭니다."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야 지금 힘든 건 육체적으로 힘든 거 아니냐. 근데 좀 자라봐라. 이제 이게. 정신적으로 애들이 괴롭힌다. 그것도 막 듀엣으로. 둘이니까 셋이니까 트리오로 괴롭힌다. 봐라" 마이클 호튼 교수가 아이를 낳는데 셋을 한꺼번에 난 것입니다. 세쌍둥이입니다. 둘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놈 재워놓으면 이놈이 울고 이놈 재워놓으면 저놈이 울고. 그 쉬운 게 아닙니다. 그 아이를 기르는데 들어가는 고생은 살을 찢는 해산의 고통은 순간이지만 자라나는 그놈들을 사람답게 기르기 위해서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괴로움을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되요.’ 그건 모두 힘들 때 위로하느라 그러는 것이고 초등학교 때 속 썩이는 것도 아주 기초적인 것입니다. 중학교 들어가면 아주 고차원적으로 속을 섞이고 고등학교 들어가면 부모가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해결이 안 되는 일로 괴롭히고 대학교 들어가면 성인이 다돼 그건 법적인 성인이지 정신적으로 그게 무슨 성인 입니까? 그게 시집장가 보내면 된다고. 시집장가 보내는데 그 애들 봐주러 가느라고 구역장 수련회도 못 오나요? 끝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끝이 없냐하면 엄마아빠 늙어서 아무 소용가치도 없을 때까지 괴로움이 계속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치매라도 걸려서 오락가락하면 찾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마 와서 애들 봐달라고 하지도 않겠지요. 그때까지 계속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언제 끝나겠습니까? 원로 목사된 분들 가만히 보면 원로목사가 되서 이렇게 보니까 후임자가 된 분이 와서 목회를 거지 같이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온통 분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도 죽을 맛입니다. 그분들이 원로목사들 되어서 나이가 70이 넘어서 80일 다 되가는 분들이 산속으로 30일 기도하러 올라가고 20일 기도하러 올라가고 그러니까 결국은 그만둬도 그 고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죽을 때 까지 죽은 다음엔 없어집니다. 천국에서는 그렇게 눈물 흘리고 괴로워하지 않을 테니까요. 끝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냐하면 목회는 하다가 잘 되고 은혜로우면 예외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예외적이다. 이건 하나님이 특별히 내가 너무 힘드니까 하나님이 위로를 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영원한거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어려움이 생기면 원래 그런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올게 온 거라고 생각하고. 애들 기르다가 애들이 보람을 안겨주고 기쁨을 안겨주면 예외다고 생각을 해야지 늘 이래야 된다고 생각하면 실망이 되서 애들 못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이기게 하는 것이 그런 해산의 오래된 고통을 감당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그것이 결국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까? 그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이 되기까지 그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다는 것이 어저께 얘기한 것이 회심의 은혜를 계속 보존하면서 예수님의 마음과 인격 삶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비밀스러운 은혜에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통해서 우리처럼 지금은 이렇게 내 옆에 있지만 어디엔가 가서 그렇게 나처럼 그렇게 영혼을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어제 보니까 처음 구역장 되었다고 일어서는 지체들이 있는데 정말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도 떠밀려서가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에 그 사랑 때문에 구역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이 구역장의 사명을 감당해 나아갈 때 그때 하나님이 그런 고난 속에서 우리의 영혼도 눈물이 있고 예수님의 아픔을 영혼을 통해 느낄 수 있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갈 때 기뻐할 수 있는 생명을 우리도 소유하게 만들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