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침체에 대하여(질의응답)
녹취자: 백지영
이제까지는 여러분들이 영적인 침체에 있어도 교회 울타리 안에 있고 그래도 말씀을 들으면서 많이는 아니라도 조금씩 은혜를 공급받으면 한쪽으로는 계좌에 입금이 되고 지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입금이 끊어질 때 그때에는 파산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돈을 좀 많이 써도 계속해서 수입이 들어오면 버틸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 그렇게 되는데다가 이게 잘못해서 자신이 만약에 커다란 죄까지 짓게 된다면 그러면 이제 이 영적인 침체는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마치 브레이크 풀린 자동차가 굴러가듯이 더 나쁜 방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영적인 침체는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사는 게 재미가 없습니다. 지금 어떻게 꽃 같은 젊은 시절에, 젊음이 곧 지나가는데, 얼마나 젊은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삶 그리고 재미있는 삶이 많은데, 마치 도 닦는 사람처럼 그렇다고 신실하게 도도 안 닦으면서 그렇게 마치 내 인생도 아니고 남의 인생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인생을 살아갈 시간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과소평가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금방 물러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영적인 침체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도저히 우리가 넘지 못할 어마어마한 산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성경적인 인물들을 비롯해서 성도들, 그리고 여러분들을 지도하고 있는 목회자들까지도 이런 영적인 침체를 다 겪고 그것들을 극복하면서 살아온 증인들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너무 그것을 크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런 영적인 침체를 정확하게 해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우리들이 건강이 무너져서 지금 위급한 상태가 됐다고 하면 사실 우리에게 너무 필요한 것은 우리 몸 전체를 의사에게 맡기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 자신이 우리 몸에 대한 의학지식을 갖는 것입니다. "이 질병이 왜 생겼고 그리고 우리 몸의 전체의 구조와 기능이 어떻게 되었기 때문에 이 질병은 어떤 성질의 것이고, 이 질병이 어떤 합병증을 가져올 수도 있고, 그리고 이 질병은 평소에 내가 어떤 습관 때문에 생긴 것이고, 그래서 이 질병을 결정적으로 치료하는 것은 의사가 치료하지만 이런 병에 다시 걸리지 않기 위해서 내가 관리하려면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라고 하는 것은 지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지식이 없게 되면 계속해서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난 것 같다가는 그 다음에 다시 물러가서 빠져버리고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입니다. 무의미한 일들이 계속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신앙자체에 대해서 회의를 느껴버리고 신앙을 등지거나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이단에 아주 쉽게 빠져서 그래서 이런 힘든 것들을 단박에 해결하고 그리고 쉽게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데 유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에 속한 사람들의 일차 타깃이 무엇이냐 하면 교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 두 번째는 영적인 침체에 빠진 사람들, 이 사람들이 타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이런 힘겨운 싸움 없이 단박에 로또가 당첨되듯이 그렇게 신앙에서 단박에 천국을 걸어가는 것 같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오늘 열아홉 개의 질문이 있는데, 그래서 내가 건성으로 간단간단하게 핵심만 대답하면 내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약에 이야기가 길어지면 나머지 것들은 다음 우리가 12월 4일 모일 때 해도 되겠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우리들이 다음 주에도 절반이 모이고 그 다음 다음 주에 절반 모이니까 그때 우리들이 의견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질문) 목사님은 영혼의 침체기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경험하셨다면 어떤 느낌이셨는지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를 듣고 싶습니다.
(답변) 제가 영적인 침체를 경험한 것이 솔직히 말해서 제가 21살에 회심을 해서 은혜의 큰 부흥을 누렸습니다. 그것이 한 6-7개월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길게 잡으면 한 일 년 동안은 계속 된 것 같고 그리고 이제 직장을 다니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전에 없었던 환경에 접하면서 사실은 침체기에 들었습니다. 침체기에 들었다고 해서 교회를 안 거거나 아니면 술을 퍼마시고 곤드레가 되어서 취하고 이런 허튼 짓을 한 건 아닌데 교회 다니고 주일학교도 가르치고 했는데 마음에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스물 셋, 스물 넷, 스물다섯 한 3년 정도, 짧으면 2년 반 길면 3년 정도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어떤 느낌이었느냐 하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믿는데 왠지 하나님이 맨 처음 회심할 때처럼 가까이 계셔서 나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안 느껴지고 주님께 내 자신이 소외됐다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계속 졸음이 오고 무엇보다도 내게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경험들이 거의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가끔씩은 있었는데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회복을 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영적인 침체가 스물 둘, 스물 셋, 스물 넷 한 2년 반 정도 계속 되고 있을 때 점심 때 한 친구가 제가 말했습니다. 직장 동료인데 저보다 나이는 좀 세 살 많으신 분이었는데, 김남준씨 우리 점심시간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성경 공부하는데 혹시 오지 않겠느냐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서너 번 권함을 받았는데 별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직장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 만난다는 게 별로 썩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우연히 가고 싶었습니다. 앉았는데 이런 회의실이 아니라 물품을, 군대로 말하면 보급품을 소모품을 비치해 놓은 정돈이 잘 된 창고에서 하나씩 대충 앉을 것을 놓고 거기 앉아서 도시락가지고 온 것을 같이 나누어먹었습니다. 30분을 도시락을 먹고 그 다음 30분을 C.C.C. 교재를 가지고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도자가 청산유수로 가르치는 것은 아니고 한 문제씩 돌아가면서 풀고 그 다음에 각자 의견도 이야기하는 곳이었는데 저는 거기서 제가 신앙이 별로 없는 사람으로 자꾸 사람들 눈에 비치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듣고만 있다가 이제부터 나도 좀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그리고 얘기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예습을 안 해 갖고 가서는 할 얘기가 없으니까 예습도 해 가지고 가고 이러면서 하나님이 어느 한 순간에 확 하고 불을 부어주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시면서 말씀을 향해 마음을 열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거기 있는 사람들이 너무 좋다, 이 모임이 너무 행복하다 그런 마음이 들게 되었고, 그분이 허리가 아프셔가지고 이제 도저히 그 모임을 인도할 수 없게끔 되신 후에는 제가 그 모임 인도자가 되어서 열렬히 직장선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직장 다니면서 사람들이 나를 전부 다 김남준씨 그렇게 안 불러주고 전도사님 그렇게 불러주었습니다. 물론 스물일곱 살 때 제가 야간신학교 들어간 다음의 일이었지만. 거기서 저는 주님을 아주 깊이 만나고 그리고 영적인 침체에서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조금 조그마한 영적인 침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때처럼 그렇게 그런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확실하게 경험한 것은 내가 식었을 때에는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은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 것 그리고 말씀으로 교제하고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서부터는 제가 사명감을 가지고 침체에 빠진 사람들 있으면 편지도 길게 쓰고 선물도 주고 불러다가 밥도 먹이고 했습니다. 월요일 점심때부터 금요일까지 우리들이 모이는데 매일 모이지 않고 세 번씩 모였기 때문에 그래서 안 모이는 그 세 번 화, 목, 토 그때는 항상 상담 스케줄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상담을 하고 그 다음에 처방을 내려주고 같이 기도해 주고 이렇게 하면서 하고, 절기 때는 한 오십 명씩 모여서 목사님 모시고 예배드리고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나의 영적인 침체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과 함께 모이는 것이 너무 나에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침체에 빠지면 만나기가 싫습니다. 혼자 골방에 조용히 있고 싶고 가족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혼자 있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성도들의 교제 그리고 성경공부 그것이 내 마음을 열어서 그래서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에도 여러분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영적인 침체에 빠져서 여러분들이 세상 친구 계속 만나고 교회 친구에서 멀어지면 지금 여러분들이 상상도 못하는 또 다른 스테이지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질문) 삶이 무의미합니다. 매번 축 쳐지는 마음으로 삽니다. 때로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이 죄인가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기쁘고 행복한 것이 가능한가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나요?
(답변) 이 질문을 하신 분은 제가 보기에는 자기가 둘 중의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하셔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첫째는 아직 거듭남과 회심을 그러니까 회심을 경하지 못하신 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그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려면 옛날에는 안 그런 적이 있는지 이것을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반대로, 매번 업(up)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때로는 죽을까봐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살아 있는 것이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죽는 것이 두렵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으로 인해서 내가 너무 기쁘고 행복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단호하게 '예스'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분은 구원받은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 경우에는 저것은 진짜로 영적인 침체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그 질문에 대해서 '노우'라고 대답하면 그분은 아직 구원을 못 받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회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전자의 경우에는 침체에 빠졌으니까 이제부터 우리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영적인 침체를 극복하는 방식을 따르면 되지만, 두 번째에 해당될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깊이 돌아보면서 내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는 길이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번에 해당되는 경우라면 지금 우리가 계속 배우는 대로 따라오면 되고, 만약에 2번에 해당되는 경우라면 저는 '거듭남과 회심'이라는 시리즈를 예배하고는 너무 다르겠지만 그러나 집중해서 들으면서 하나님 앞에 내가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지 그리고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내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해야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질문) 상당 기간 신앙에 대한 열의가 생기겠지, 뜨거움이 있겠지 적어도 감사함이라도 생기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텨왔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점점 더 무력해 질뿐입니다. 이 무력감을 벗어버리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으며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두 번째 질문하고 아주 유사한 것입니다. 저 질문을 하신 분에게도 나는 두 가지에 자신이 어디에 해당되는지를 판단해 보라는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이 중요하냐? 성경과 교리를 통해서 볼 때 어떤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느냐 하면 거듭나고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죄와 싸워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핵심입니다. 그래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1번에 해당되는 경우라면 계속해서 앞으로 진도를 나가면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운명처럼 맡기지 말고, 만약에 여러분들이 2번에 해당되는 경우다, 거듭남이 필요한 경우라고 생각된다면 제일 중요한 것은, 구원의 복음이 선포되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구원이 무엇이고, 그리고 내가 왜 구원받아야 하고,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먼저 이치적으로 깨닫고 마음에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서 그렇게 주님의 구원을 경험하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에 또 다른 국면으로 우리가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추천하는 것은 '거듭남과 회심'시리즈 설교도 있고, 두 번째로는 나는 설교를 듣기를 훨씬 권하는데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도 설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은혜와 부패'라는 시리즈의 설교도 있는데, 세 시리즈 모두 지금 가지고 있는 이런 질문에 주는 답들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은 그런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시리즈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여러분들이 말씀 앞에서 그런 문제를 능히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큰 뜻이 있어서 교회 바깥에 버려진 사람들로 남지 않고 하나님이 거두어 들어서 교회 안에서 이렇게 말씀을 들으며 목회적인 유익을 얻게 하신 것은, 여러분들이 구원에 매우 가까이 있다고 하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질문) 경건생활을 잘 지키고 싶은데 삶이 너무 바쁘고 육신적으로 너무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삶을 정돈할 수 있을까요?
(답변) 이게 이제 사실 오늘 우리가 세미나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는데 뭔가 한방에 모든 것을 날려버릴 수 있는 비결이 있을 것이라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흩어지기 전에 여러분들이 여기서 결심을 해야 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경건생활을 잘 하고 싶은데 사실을 솔직히 이야기하면 기도도 잘 안 되는데 기도할 수 있는 시간도 별로 없습니다. 또 시간은 어떻게 있을 수 있는데 마음이 흩어져서 그렇게 마음을 집중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손에서는 스마트폰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씩 계속 들여다보고 그것 가지고 또 직장일도 소통하고 친구들하고도 소통하고 이렇게 하면서 해야 되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하게 막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먼저 생활을 정돈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직장 다니시는 분에게는 휴직을 하라 그 이야기가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되 정돈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그 다음에 직장가고, 직장생활하고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그 다음에 퇴근하고, 그 다음에 정확하게 집에 들어오든지 아니면 교회를 가든지 이렇게 해서 의무적으로 직장에서 근무하는 시간을 딱 제외해 놓고는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만이 있는 절대적인 시간을 마련을 해야 합니다. 성경도 혼자 읽는 거고 기도도 혼자 하는 것입니다. 기도모임이 아닌 한. 그리고 묵상도 자기 혼자 있어야지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절대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직장을 8년 동안이나 굉장히 바쁘고 힘들게 한량하지 않게 그렇게 열렬하게 직장생활을 했고, 3년은 사표를 항상 써가지고 넣고 다니면서 무기력하게 했고, 그리고 나머지 한 5년 동안은 진짜 마치 내 자신이 요셉이 된 것 같은 착각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증거들을 보면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직장생활을 해서 승진을 해서 우체국장까지 지냈으니까 저는 직장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고 그것과 자기 교회 섬기는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지 저는 모두 잘 압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는 제가 일찍 퇴근하는 특권도 부여받았지만, 방학을 하면 밤 11시까지 직장에서 자기 밀린 일을 하면서 내가 승진하고 떠난 후에도 5년 동안 사람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일을 가르쳐달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의 심정을 깊이 이해합니다.
그런데 확실한 것 하나는, 영적인 침체를 여러분들이 극복하려고 하면 점심시간도 잘 관리를 해야 합니다.물론 사교도 필요하고 모든 것이 필요하지만 솔직히 그것을 한 40일 정도 우리가 정돈하고 산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다 파괴되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4년을 지속한다면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40일 정도는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직장생활하면서 8년 동안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자만 그러나 집중적으로 내 영혼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시간에는 점심시간마다 금식을 하면서 그 시간 동안에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가서 문을 두드리고, 내가 여기 직장 다니는 사람인데 하나님께 12시 10분서부터 50분까지 기도해야 될 테니까 나를 위해서 문을 좀 열어주면 안 되겠느냐고 그리고 내가 공무원 신분증까지 보여주면 대부분의 교회는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진실하게 호소하면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당시 공무원증보다 가장 신빙성 있는 게 별로 없었으니까 공무원증 보여주면 확실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 직장이니까. 그렇게 해서 점심에 금식을 하고 그리고 12시 땡 하자마자 달려가서 교회에서 40분 동안 기도하고 그리고 늦지 않게 1시 전에 돌아오고 그 다음에 오후일과를 시작하고, 그 정도의 결심 없이 여러분들이 영화 관람하듯이 이야기나 듣고 하면서 영적인 침체에서 물에 떠밀려가듯이 극복되는 길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진짜 이런 영적인 무기력을 떨치고 일어나서 나는 진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되겠다고 하는 아주 확실한 의지의 수립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까 밥 먹으면서도 잠깐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사실 이렇게 침체 속에서 산다고 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 슬픈 것입니다. 저는 저 뿐만이 아니라 제가 만난 많은 청년들, 지금 40대 들어간 사람들에게 20대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하면 'No thanks '입니다. 아주 absolutely하게 'No thanks'입니다. 나는 젊은 시절 10대 그 다음에 10대 후반, 중동고등학교 다니면서 많은 추억도 있었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그 다음 20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 삶을 다시 한 번 살아 보겠냐 'No thanks'입니다. 만약에 주님이 그렇게 하실 리도 없지만 다시 한 번 주마고 하신다면, "주님, 제발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한번으로 충분합니다."
그 이야기는 무슨 얘기입니까? 재미가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주님을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막 허랑방탕하게 술 먹고, 물론 가끔 먹었지만, 그렇지만 먹고 거리를 헤매고 아무데나 나뒹굴고, 그때 클럽도 없었지만 그런 춤추는데 다니고 그런 사람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모여 앉아서 한잔씩 술을 놓고 서너 명이 앉아서 술이 돌아가기 전에 한시 한편씩을 짓는 그런 식의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꿈꾸는 것은 선비의 삶이었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기쁨을 주지 않았고, 선배들이 캠핑 가서 "너 춤출래, 빳다 맞을래?" 그러면 나는 깨끗이 엎드려서 빳다를 맞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저렇게 모닥불을 펴놓고 주위에서 미치광이처럼 춤추는 것은 선비의 할일이 아니다 그렇게 본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나는 잘난 척 하면서 그러면서 문학을 읽고 심지어 고등학교 때 철학을 읽고 사상을 읽으면서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면 말발이 꿀리지 않았지만 그러나 1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1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뭐냐 하면, 여러분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더군다나 저에 비해서 너무 일찍 진리가 무엇인지 알았고 확고하게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영적 생활만 잘 하면 이 젊음의 시간들을 너무 보람 있게 그러면서도 아름답게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 고상한 삶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적인 침체에 빠져서 내 인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남의 인생사는 것도 아니고, 살고 싶기도 하고 "너 그러면 죽을래?" 그러면 그것도 두렵고, 이러면서 일 년 이년 삼년 사년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절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뿐만 아니라 여러분 자신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첫 번째 주는 답입니다.
두 번째는, 바쁘고 육신적으로 피곤할 때가 있다고 했는데 사실은 바빠서 피곤하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연애 해 보셨습니까? 연애를 해 본 사람들은 내 설교를 더 잘 이해한다고 합니다. 내가 연애를 해 봤냐? 해봤습니다. 우리 집사람하고도 짧은 기간이지만 2월에 만나서 4월에 사랑을 하게 되고, 7월에 약혼을, 10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지금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래도 한 2년 정도는 연애를 하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연애반대론자였는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연애를 해보고 그리고 결혼을 하면, 그러면 거기엔 많은 암초가 있지만 그렇지만 그것을 다 극복하면서 확고하게, 이제 여자가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하는데,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 많이 기다리는데 왜 우리가 그래야 됩니까? 그리고 절대로 비교의식에 빠지지 마십시오. SNS 들여다보고 내 친구들은 호텔에서 밥 먹고 하와이 여행도 가고 비즈니스도 타고, 상당수가 사실은 뻥인 경우가 많고 뻥이 아니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네 인생이고, "나는 지금 열린교회에서 영적침체세미나에 참석하고 있고 그게 나의 현실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빠서 피곤한 게 아니라 사실은 나를 기쁘게 하는 그 무엇이 없기 때문에 피곤한 것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영적인 침체에 빠졌다고 무슨 사랑의 감정이 없습니까? 예쁜 자매를 본다든지 멋있는 남성을 보게 될 때 호감을 느끼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고 쳐 봅시다. 그러면 신앙에 의해서 통제되면서 가도 이게 연애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보통 생명력이 넘쳐야지만 그래야지만 이 연애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얼마나 이상한 남자들 그리고 이상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우리를 행복한 길로 이끌 수 있겠느냐 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성의 힘을 너무 무시하면 안 됩니다. 성경이 이성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 이성이 살아 있어서 자기와 모순되는 초자연적인 진리를 받아들일 때 이성이 그까짓 거가 뭐냐고 우기면서 안 믿으려고 하는 경우에 한해서 이성을 책망하고 이성을 너무 의지하지 말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하면 그런 진리들을 받아들인 신앙의 통제를 받는 한에서는 이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내가 이 사람하고 사귀어도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도해서 응답을 받는 것보다는, 이성적으로 이 사람과 내가 사귈 수 있을 때 그때 "이 사람이 정말 건전한 사람이고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이고 윤리적인 사람이고 남을 배려하고 우리가 서로 교통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는가?"라고 하는 것들을 판단하는 것이 기도해서 응답을 받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침체에 빠지게 되면 현저하게 이성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올바른 이성의 기능이.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 다음에 외부에 대해서 인연을 끊고 자꾸 파랑새 기질이 발동해 가지고 골방 속으로 계속 들어가는 것, 그것 이성이 시키는 것입니까, 감정이 시키는 것입니까? 감정이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의 기능이 가장 활발하게 건전하게 살아 있을 때는 하나님을 사랑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영적으로 회복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것은 삶의 에너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돈의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내가 수많은 영적인 침체에 빠진 사람들을 다루어보았습니다. 그 중에 어떤 경우에는 아주 극단적인 침체에 빠진 사람들도 다루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침체에 빠져서 진짜 매일매일 저녁이 염려가 되는, 심지어는 이상하게 우리 지체가 불안해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 울면서 "나 손목을 그었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 택시타고 달려가 보니까 화장실에서 손목을 진짜 그어서 쓰러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많은 사람들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다룰 때 그 경험을 잠깐만 나의 조언을 이야기할 테니까 여러분들이 도움이 되는지 잘 들어보십시오.
그 중에 한 자매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있으면 내가 부자연스러울 텐데 다 외국으로 이민가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내가 얘기했습니다. 어떻게 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는 지금 기도도 안 되는데 네가 기도하면 계속 너는 주님께 버림받았다는 느낌밖에 안들 테니까 차근차근히 해라. 제일 먼저 집에 가서 네가 이사 갈 수가 없으면 네 방을 깨끗이 정리해라. 뭘 정리하느냐고 해서 다 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최대한 네 생각을 발휘해서 변화를 주어서 새롭게 만들어라. 그래서 벽지를 새로 바르던지 아니면 그것도 돈이 들어가니까, 그 자매는 직장 다니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네 방을 네가 있고 싶은 방으로 만들어라. 자기는 음악을 너무 좋아한다고 그래서 그러면 오디오를 조그만 것 하나 사라. 그리고 네 방을 편안하게 제일 먼저 만들어라. 그리고 그 사람 사진 다 치워버려라. 그리고 이제는 그 사람하고 상관없이 너 혼자 살아간다고 생각을 해라. 그리고 직장 끝나면 바로 네 집으로 돌아와라. 네가 거기서 기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너 혼자 있어서 편안한 방을 만들고 네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라. 음악을 들으면서 어떤 음악이 내 마음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하는지 찾아보고 그 음악을 반복해서 들어라. 그리고 그 다음에 성경을 읽어라. 열장씩 스무 장씩 읽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네가 한 장은 읽을 수 있지 않느냐? 어떻더냐고 일주일 만에 만나서 물어보았습니다. 앞으로는 기도를 해라. 당연히 긴 기도를 할 수 있는 힘이 없겠지요. 얼마니 깊은 침체에 빠졌는데. 그러면 너는 짤막짤막하게라도 기도를 해라. 그리고 이제 조금 발전되면 집에 돌아와서 네 책상에 조용히 앉아서 편지를 써라. 영적인 일기를 쓰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편지를 써라.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서 조용히 그 편지를 경건한 마음으로 교회 와서 읽어라. 교회하고 가까웠습니다. 수요 예배? 너 나오고 싶지 않으면 안 나와도 된다. 중요한 것은 네가 이제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끊어내고 모든 것을 정리해야 된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그 형제와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이민 갔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만약에 하나님 앞에 새로운 출발을 하려면 의지적으로 여러분의 삶을 정리해야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의 사용, 그 다음에 공간, 그리고 엄격하게 규칙을 따르는 삶,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규칙적이지 않으면 삶이 무너져버리면 그 다음에 기도시간이고 뭐고 다 뭉개져버리고 두세 번 그렇게 자신의 결심에 대해서 실패하고 나면 그러면 더 이상 도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제가 가끔 하는 일인데 깨끗이 정돈을 합니다. 그래서 버리고 싶었던 책들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태워버리고 싶었던 것 다 태워버리고 그리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 내어버리고 그리고 방을 다 깨끗이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페인트칠을 하든지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어쨌든 깨끗이 싹 정리를 하고 다른 공간을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새 출발을 하겠다는 것을 환경부터 먼저 정돈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정돈하고 새 출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원망하거나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거나 그렇게 생각을 하지 말고, 내가 왜 하필이면 이렇게 영적인 침체에 있을까, 심지어는 그때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심지어는 내가 그때 왜 그런 죄를 지었을까, 그런 생각 너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게 지금 주어진 현실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자꾸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고 이 현실을 그대로 수납하면서 내가 어떻게 이것을 극복해 나갈 것이냐를 생각하는데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사람을 안 만났으면 아니면 내가 다른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아니면 내가 다른 상황에 있었으면 그런 생각 백번 해 봐야 계속 정신적인 에너지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질문) 제가 개인적으로 방황할 때 상담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자기분석을 하고 자기내면을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서 대개 많은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문은 자아를 힘을 키워주고 자신에게 자아를 사랑하게 만드는 그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그게 성경에서 말하는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과 충돌이 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의문점이 항상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면서 내 자신을 수용하면서 자기를 같이 부인하는 것이 어떻게 잘 접목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방향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답변) 답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라고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기를 사랑하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이 리더가 김남준인 거 아십니까? 그래서 예전에는 ‘김남준’ 치면 내가 제일 먼저 나오고 걔는 저 밑에 나왔는데 지금은 걔가 완전히 도배를 해 버리고 나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내 생각에는 아마 한자도 똑같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름 쓰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제 이름이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위에서 코치를 하고 전문가들이 다 써주었겠지만 그러나 명연설이라고 불리는 것도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의 가르침하고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상담의 이론이나 심리들이 어디까지 유용하고 어디까지 아닌지를 제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기본적으로는 성경이 우리자신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죠이선교회의 J, O, Y가 바로 "Jesus, Others and You"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성경은 그냥 죠(J, O)라고 얘기하지 죠이(J, O, Y)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Jesus 혹은 데오스 혹은 하나님, God 그리고 Others 혹은 Neighbour 그리고 끝입니다. 그러면 왜 성경은 자기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안 할까? 우리가 얼핏 보기에는 완전히 기독교는 가학적인 종교이고 그래서 자기가 설 자리는 없다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가지고 고등학생들하고 북 콘서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 얘기까지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긴 이야기가 돼서.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런 것입니다. 아주 굉장히 오묘한 진리가 그 안에 숨어 있는 것이지요. 뭐냐 하면, 만약에 한 사람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그 사랑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면 그 안에서 그 사람은 가장 많이 사랑을 받는 상태에 놓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인간의 이상이 무엇이냐 하면, 남을 사랑하지 아니하고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자기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만 제외하고? 하나님만 제외하고. 이건 굉장히 심오한 진리입니다.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너무 중요해서. 기독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최고의 이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만 하면 그 관계 안에서 그 사람은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최고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삶의 최고의 이상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 사랑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이미 하나님이 주신 사랑 때문에 이 사람도 너무 가엾고 저 사람도 너무 불쌍합니다. 여러분들은 또 충분히 불쌍할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영적인 침체에 빠졌으니까. 은진이도 가엾고 그 다음에 평강이도 가엾고 사라도 불쌍하고 승희도 안타깝고 이런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않아도 외롭지 않습니다. 그것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이 배신하는데도 마음 상한 기록이 하나도 안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은 이 속에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겠느냐? 주님과 꼭 같이는 못 살겠지요. 그러나 그 원리는 그대로 통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됐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님이 “마음과 뜻과 성품과 네 목숨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렇게 그 계명을 실현하면 자신이 전혀 외롭지 않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이외에는 자신이 누구의 사랑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가 이상적인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담학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안 하고 방탄소년단의 논리를 따라서 “너 자신을 믿어라. 그리고 너 자신을 사랑해라.” 그러면서 자애(自愛)의 삶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수용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은 만약에 그 자애의 길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부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그런 자애라는 표현을 너무 좋아하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 47.55) 영적으로 은진이가 회복을 하면 제일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노승환 전도사가 일을 시키기 좋아서 이득을 볼까? 아니면 이제 새로 부임하는 우리 오목사가 진짜 일꾼이 많아져서 이득을 얻을까? 네가 영적으로 회복이 되면 누가 제일 큰 이익을 얻을까? 너 자신입니다. 그러면 무슨 이야기냐 하면,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영적인 침체의 상태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청중이 아직 그렇게 사고 자체를 우주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수준이 안 되니까 마치 어린 아이에게 눈높이로 교육을 시키듯이 내려와서, “야, 영적인 침체에 계속 빠져서 사람 원망하고 부모님 원망하고, 왜 내가 이런 집안에서 태어났을까? 왜 내가 그 나이에 그 여자 만나서 이렇게 이 신세가 됐을까? 그런 식으로 계속 하고 있으면 너만 손해야. 그렇게 하지 마.” 소위 이야기하는 어콤머데이션으로, 눈높이로 낮아져서 그 수준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나는 accept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에게 좀 더 넓은 눈을 열어주어서 그래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 자신을 사랑하라”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모든 계명의 일차적인 수혜자는 우리 자신입니다. 설교 시간에도 내가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원수를 용서하면 첫 번째 혜택을 받는 사람은 원수가 아니라 나입니다. 용서하지 않았으면 계속해서 미워하는 죄를 품고 살았기 때문에 평강이 없었을 텐데 내 마음에서 그 끈을 끊어주고 놓아주는 것입니다. 내가 일차적으로 혜택을 입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런 자체를 완벽하게 부인해 버리고 쓸어버리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은 청취자의 이해하는 수준의 문제라고 봅니다. 나 같으면 그런 설명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그 안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그리고 과거에 상처를 받아서 마음 아팠던 일들도 그렇게 내가 주님 사랑하고 사람 사랑하면 상처가 생각이 안 나고 오히려 상처 때문에 만나게 된 하나님이 더 감사하고 기억에 남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영적인 침체에 빠지면 잊어버렸던 상처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용서했던 모든 사람을 모두 소환해서 다시 원수로 삼고 목에다 칼을 겨누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특히 우리 교회에 있는 상담사역 책임지고 있는 최민영 권사님 같은 분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여기서 상담학박사까지 하고 계시니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관에 입각해서 잘 상담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서 상담에 도움을 받는 것도 나는 나쁘지 않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질문) 전도서가 말하는 바와 같이 저는 이 세상의 것들이 헛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왜 아직 세상의 것들을 왜 더 쥐고 싶어 할까요?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답변) 나는 저 질문을 하신 분이 정말 세상이 헛된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은 잘 안 듭니다. 왜냐하면 헛된 것을 진정으로 알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정말 쥐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하려다가 화제를 돌렸는데 청소년 사역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하면, 아이들이 집에서 엄마하고 놀다가 유치원을 가고 유치원 다니던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고 그 다음에 초등학교 졸업한 아이들이 중학교로 중학교 졸업한 아이들이 고등학교, 고등학교 졸업한 아이들이 대학을 갑니다. 대학을 졸업한 아이들이 직장에 들어가거나 혹은 군대를 갑니다. 그런데 다른 어떠한 스테이지의 변화보다도 더 큰 비교도 안 되는 임팩트를 주는 아이들에게 주는 단계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를 들어갈 때입니다. 우리 김동기 목사의 표현에 의하면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로 가는 순간에 악의 문이 활짝 열리고 폭포수처럼 악이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노출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비교적 학교에 순종적이고 순응적인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나 자신의 경험에도 가장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훨씬 더할 것입니다. (? 53.10)
이다음으로 임팩트를 주는 게 어디냐 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갔을 때의 임팩트입니다. 다행히 대학을 졸업했는데 만약에 여러분들이 형식적으로나마 기독교 직장에 들어가면 노골적인 반 기독교적인 문화라든지 엄청난 타락의 문화 같은 것들은 형식적으로도 차단이 됩니다.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직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곱게 자라서 대학졸업해서 그래서 직장에 들어오면 예배드리고 몇 달마다 한 번씩 사경회하고 또 매일매일 신앙에 관한 책을 읽어야 되고 이렇게 살아가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많은 직장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직장이 우리에게 깜짝 놀랄만한 다른 문화를 우리에게 선보일 때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 속에서 이제 굉장히 위치가 애매한 게 그것을 싫다, 더럽다 배격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에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그 다음에 기독교 관련된 직종으로 취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방송국이나 아니면 기독교 출판사나 아니면 교회나 이런 데로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볼 때 맞는 선택이냐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런 문화들을 개혁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그와 반대로 그 다음에 그 속에 휩싸이게 되면 그래서 거기서 만약에 세상의 맛을 보게 되면 그러면 이제 문이 열리고 자꾸 그 매력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런 것에서 그러면 가장 좋은 직장생활은 무엇이냐 하면 동화되거나 아니면 배타적이 되는 것 말고 자기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참여하는 것입니다. 나 직장 다닐 때는 내가 교회에 예배가 있거나 혹은 경건하게 내가 하여할 약속 같은 것들이 없는 한 나는 술 먹는 모든 자리에 따라 갔습니다. 나는 술 먹지도 않았고 그리고 술집여자들하고 손잡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거기 탁 앉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대하고 해 주는 것입니다. 나는 거기서 한 번도 굴욕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그 자리가 좋겠습니까? 제일 싫어하는 게 빨간 등 이런 건데 그리고 거기서 사람들이 술 먹고 나면 이상해 지지 않습니까? 싸움도 하고 술잔도 집어던지고 그렇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뭐가 좋겠습니까? 내가 그런 것을 전혀 참석 안하고도 나는 나 자신이 능력이 있으니까 직장생활을 버틸 수 있고 남 못지않게 경쟁해서 승진할 수 있고 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완전히 아웃사이더로 내팽개쳐 지는 것입니다. 술 안 먹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번만 태도를 확실히 하면 됩니다. 두 번만.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걸 마시겠습니다.” 그렇게 확실하게 하면 됩니다. 나는 그런 것을 확실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제 점점 술 먹는데 안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나는 가끔 끼어달라고 합니다. 따라가는 것입니다. 나는 그 자리가 너무 싫습니다. 싫지만 거기에 참여해서 같이 사회생활을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직장의 정보들이 오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좀 다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당시 노래방은 없었습니다. 노래방이 있었으면 노래도 불렀을 것 같습니다. 노래 그렇게 못 부르지 않으니까. 불렀겠지만 거기서 술을 먹고 웃통을 벗어재끼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참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항상 알아야 할 것은 그 모든 것들은 헛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세상을 쥐고 싶어 하고 끌리는 이유는 뭐냐 하면 그리스도에게 더 깊은 매력을 못 느끼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분이 얼마나 아름다우신 분인지를 알면 안 그렇습니다. 그래서 술집에 들어가서 마음속으로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 사람들 이 바보 같은 짓 안 하고 예수 믿게 해 달라고. 그렇게 하면서 그 다음 날은 다시 말끔하게 만나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딱 하고 다시 행동하고 다시 교제하고, 저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좀 마음이 열린 사람이다, 함께 이야기도 하고 서로 존중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싫어서 조금 직장 다니다가 그런 이유 때문에 집어 쳐버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지구바깥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그런 사람하고 부딪히면서 살면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인이 참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삶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그럴 리는 없지만 다시 한 번 직장생활을 하나님이 주셔도 나는 그렇게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주 충성스럽게 일하고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아무리 직장에서 뭐가 있고 막 이러고 (59.30)그 다음에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연극회 가기 위해서 구역장모임도 땡땡이치고 막 이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막 정신을 팔고 삽니다. 그러다가 형제하나 만나고 혹은 자매하나 만나서 사랑에 빠지면 나머지 것들 다 시시해 보이는 것이지요. 그리고 둘이 있는 게 아니면 같이 있는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렇지요? 불과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질문) 예배를 사모하고 싶고 주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찰나같이 지나갑니다. 실제적으로 특별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은혜를 받아도 그 은혜가 간직되려면 기독교가 무엇을 믿는지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또 나를 바라봐야 되는지에 대한 견해가 확고하지 않으면 그 은혜가 잘 유지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이렇게 뚜껑을 열고 내가 다들 목이 말라서 물을 따라줍니다. 그런데 이 자매는 컵을 가지고 와서 "목사님, 여기다 물을 따라주세요" 그럽니다. 저 자매는 플라스틱 잔을 가지고 와서 물을 받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자매는 컵이 없어서 손을 가지고 와서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많이 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몇 초도 되지 않아서 물은 손 사이로 새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물을 담는 용기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아주 더 쉽게 이야기하면 교리입니다.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또 나는 어떻게 나를 봐야 되는가?"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제일 잘 알기 때문입니다. - 김경리씨는 몇 살이지요? 서른일곱이예요? 그런데 스물일곱 같아 보인다. 그렇게 위선을 해도 되냐? 그렇게 외식하면 안 되지. 다음서부터는 모자에다 37이라고 쓰고 다녀라. 괜히 자매들 헷갈리게 하지 말고. 뒤에다 붙이든지. - 그러면 생각해 보라 이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자기 자신을 37년 동안이나 경험하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정확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만큼 자기를 경험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서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매우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자신을 보면 내가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매우 약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매우 강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필요이상으로 말하자면 강하다는 것까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얘기 아닙니까? 남을 알고 나를 알면 항상 이기지만, 만약에 남은 알고 나를 모르거나 나는 아는데 남을 모르면 가끔은 이기지만 항상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 말씀이 보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섣부른 의학지식이 사람을 잡는 것 아시지요? 그래서 의학지식이 통일적으로 전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의사가 이야기를 해도 과연 맞는지를 확인하고 돌다리도 두들겨보면서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기가 막힌 의사를 만나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종처럼.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렇게 믿었던 사람이 이상한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면 난리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약을 잘못 처방을 해서 계속 몇 달씩 먹여가지고 나중에 거의 식물인간이 되고 그런 사태들이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잘 들으십시오. 나는 이 질문 열아홉 개를 다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질문을 무시하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질문을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게 뭐냐 하면 비유를 하자면 이것입니다. 안양에 있는 범계역 뒤를 뭐라고 합니까? 11번가라고 합니까? 로데오거리입니까? 거기가 무슨 로데오입니까? 로데오거리 그 다음에 중앙공원 그림 하나 그려놓으면서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데 한국지도는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양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냥 가상의 도시일 뿐이지 안양의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양 중앙공원 로데오거리 세 번째 가게, 네 번째 가게 이것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지도를 탁 펼쳐놓고 그 다음에 한국이 어디에 붙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서울이 어디인지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한반도가 지금 반 토막 나 있다는 것도 확인하고 그 다음에 서울의 도시 인구가 팽창해서 이 안양이라는 지역이 커졌다는 것도 확인하고 논밭이 있던 곳인데 신도시로 만들기 위해서 평촌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여기가 고속도로로 길이 이어지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유흥을 즐기고, 여기 있는 이 술집골목들이 저 충청도에서도 술 먹으러 오는 유명한 골목입니다. 서비스는 서울에 비슷하고 가격은 충청도보다도 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퍼집니다.? 1.06) 그리고 그 다음에 여기에서 집을 살만한 사람들은 결혼 갓 한 사람도 안 되고 결혼하고 한 5년 내지 한 8년 정도는 재산을 축적해야지 여기서 집을 사는 것입니다. 한 6억 정도 가니까. 사는데 이 사람은 여기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은 여기서 재산을 모아가지고 강남으로 한번 뛰고 싶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들이 학원을 다녀야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학원가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학원을 다니기 위해서 경기도 저 끝에서도 이리로 차를 타고 오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학원가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 이해를 하고 그 다음에 로데오거리가 사실 말도 안 되는 이름을 붙였는데 왜 거기를 로데오거리라고 붙이고 거기 무슨 가게들이 있는가, 이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똑같이, 이런 부분적인 문제는 여러분 예전에도 영적인 침체에 있다가 벗어난 경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 어떻게 벗어났느냐고 물어보면 천편일률적인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벗어났습니다. 아니면 기도가 열심히 됐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도 그렇게 해보라고, 그런데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뭐냐 하면 이런 전체적인 지식의 체계가 없으니까 어떻게 몸부림치다가 뛰쳐나왔는데 어떤 원리에 의해서 뛰쳐나왔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모른다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 다음에 다시 빠져 들어가도 아주 쉽게 다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안 걸려도 그리스도인은 이상하게 같은 지점에서 계속 침체에 걸려서 몇 년 전에 벗어난 그 지점에 또 미끌어 들어가고 또 미끌어 들어가는 게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여기에 교리반에 나오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기독교 공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유익이 있느냐 하면 자기가 지금 겪는 일이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런 것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이 뼈마디가 막 쑤십니다. 백퍼센트 감기몸살입니다. 그래서 감기몸살이라고 그랬더니 증세를 물어봅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냐고 그랬더니 위경련이라는 것입니다. 급체를 하게 되거나 위에 경련이 일어나게 되면 나타나는 징후가 몸살하고 거의 똑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긴 세월을 두 가지 질병을 계속 겪으면서 한해도 안 겪은 적이 없이 살았는데 지금도 판단이 안서는 것입니다. 왜? 몸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기에서는 여러분들에게 그 모든 것을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확실하게 벗어날 것이고 어떤 사람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 저기에서 얘기하듯이 두 마음이 지금 싸우는 것입니다. 예배를 사모하고 싶고 그리고 주님의 나라를 구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 안사니까 마음이 너무 불편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자니 세상이 웁니다. 그리고 예배를 사모하고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열심히 봉사하며 살려니 몸이 너무 힘듭니다. 그러니까 반대의 삶을 꿈꾸니까 저게 찰나같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반대의 마음이 없으면 저 마음이 찰나라고 고백을 못하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주님과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것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러면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들이 은혜를 받으려면 물론 원론적으로 말하면 죄를 회개해야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성령을 경험해야 하고 말씀을 깨달아야 하고 등등등등 열 개 스무 개 모두 항목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실제로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받을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침체가 지루하게 오래 계속되면 자꾸 어떤 유혹을 받느냐 하면, “한 번에 내 마음을 뜨겁게 해 주는 그 무엇이 없을까?” 그것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다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로 말도 되지 않는 은사집회에 손바닥에 피가 맺히도록 두들기는 그런 집회에도 가보고 그 다음에 자기가 하늘나라를 보게 해 주겠다고 쓰러뜨리는 데도 내가 다 가보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런 신사도 운동들이 나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다 치워버리고 한 가지에 나는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는 곳에서 주님의 은혜는 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간증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가족 이야기를 해서 좀 쑥스럽지만 지금 우리 교회에서 장로님으로 봉사하고 있는 김남근 장로가 있습니다. 제 동생입니다. 제가 맏이고 그 다음에 둘째입니다. 사실은 내가 제일 먼저 예수를 믿었고 그러다가 제가 중학교 다닐 때 깊은 회의주의에 빠지고 그 다음에 책들을 읽으면서 기독교야말로 진짜 희대의 사기다, 그리고 여기에 매여 사는 것은 진짜 인간에 대한 폭력이다, 그리고 나는 자유를 선언하고 무신론자가 됐습니다. 그때 이 친구는 교회 열심히 다녀서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임원이었습니다. 저녁마다 앉혀놓고 나의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절대 교회 다니지 말라는 말 안 했는데 6개월 만에 교회를 때려치우고 불신자가 된 것입니다. 나중에 제가 엄청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를 믿게 됐는데, 그런데 그리고 나는 주님을 만나서 열심히 주님을 위해 살고 그 다음에 93년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이미 95년도에 첫 책이 나오고 그리고 작가로서, 지금이야 그렇게 책 자체를 읽는 인구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별로지만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제가 한국에서 최고의 작가의 자리에서 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책을 기다리는 사람이 줄지어 있었기 때문에 적게 나올 때 일 년에 네 권을 냈고 많이 나올 때는 여섯 권의 책을 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책 나오면 항상 동생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면 먼지도 털지 않은 책이 책꽂이에 가득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책에서 질타하는 그 그리스도인입니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도록 교회에 다니지만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그리고 외식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러다가 저희 아버님이 좀 일을 일으키셔가지고 결국은 망할 것도 없는데 쫄딱 망해 가지고 제가 모시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서 일 년 반인가 2년 가까이 부모님을 모셨습니다. 그래서 같이 살았는데 우리 집사람이 잘 참으면서 부모님들에게 잘 해드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두 분 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가만히 생각하니까 자기는 목동에 사는데 형네 교회는 여기고 형네 집은 여기인 것입니다. 부모님이 여기 계신데 효자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 되겠는데 자기 쉬는 날은 딱 주일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날 나 내년부터 형네교회 다니기로 결심했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가족들이 그렇게 뭉칠 필요가 있나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전혀 모르고 온 것입니다.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가 안 끝나는 것입니다. 11시에서 시작한 예배가 아주 빨리 끝나면 2시에 끝나는 것입니다. 설교시간이 미니멈이 90분이고 보통 feel을 받으면 100분을 이어지고 최고기록이 144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자기네 교회에서 주일 낮, 주일 저녁예배를 다 합쳐도 이 길이보다 짧다는 것입니다. 조그만 예배당이었기 때문에 10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예배당이었는데 그때 왔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못 드리는 것입니다. 너무 지루해서. 그것도 하필이면 정 가운데 앞자리에 앉아서 계속 졸거나, 주보라도 보았으면 좋겠는데 주보도 또 없습니다. 이 교회는. 계속 이러고 한 달을 보냈는데 차마 다시 교회를 돌아가겠다는 얘기는 못하겠는 것입니다. 한 달을 지났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느냐 하면, “이 지긋지긋한 예배를 사람들은 어떻게 드릴까?”, 지금도 그 간증은 열린 교회 신문에 보면 깡통그리스도인을 검색해 보면 거기 나옵니다, 그래서 한번 지겨워서 졸다가 눈을 떠서 옆에 사람을 보고 용기를 내서 뒤에까지 봤는데 온 예배당에 자기처럼 예배드리는 사람은 딱 자기 혼자더라는 것입니다. 옆에 사람은 계속 울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뒤에 있는 사람은 흑흑흑흑 흐느끼는 것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아, 나의 신앙은 잘못됐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긴 세월 이교회를 다녀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나는 한 번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들어야 되겠다, 그 이상은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처럼 똑바로 앉아서 설교를 딱 듣기 시작했는데 정확하게 한 달 만에 회심했습니다. 지금 1, 2, 3, 4부 예배 중에서 예배 태도가 제일 별로인 게 4부인 것 아십니까? 오늘도 설교시간에 설교가 막혀서 대개 힘들었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이 앞에 앉는지 모르겠습니다. 커플인 것 같았습니다. 앞에 앉아서 흐악(하품소리), 그 이빨이 다 보입니다. 그런데 자매들이 그러면 안 되잖습니까? 형제도 마찬가지고. 하품하지 않으면 옆에 사람하고 속삭이는 것입니다. 그것도 맨 앞에 두 번째 자리에 앉아서. 원고가 없습니다. 나는 보다시피. 그러니까 자꾸 bother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예배 잘 드리고 있지만.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이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리를 하자면 첫 번째 환경을 정리하십시오. 적어두든지 머릿속에 기억을 해 두시기 바랍니다. 환경을 정리하라. 그래서 오늘 밤이라도 가서 아니면 내일 날 잡아가지고 일찍 퇴근하고 들어와서 방을 다 뒤집어 엎어버리는 것입니다. 빨래도 하고 싹 치워버리고 다시 한 번 깔끔하게 정돈을 해서, 기도하면서 정돈을 하십시오. 저 속에 들은 먼지까지 씻어내면서 깨끗이 치우고 좋은 냄새 나는 스프레이도 뿌리고 쓸데없는 책들 다 버리든지 아니면 어디 구석에다가 싸가지고 쳐 박아 놓던지 하고, 딱 “내가 영적인 회복의 기간 동안에 나는 이 책꽂이 앞에서 경건을 실천하겠다.” 이런 마음으로 깨끗이 정리를 하십시오.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깎아도 좋고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깨끗이 환경을 먼저 정리 하고, 그리고 시간의 규칙을 세우십시오. 그게 너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시간 되면 기도하지” 그러지 말고, 몇 시에 일어날 것이며 그리고 출근하기 전까지 무엇을 할 것이며 그 다음에 출근한 다음에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며 돌아와서 몇 시인가(1.21), 그래서 가능하면 저 같은 경우 항상 영적인 침체에 빠질 것 같은 때에는 그라프를 그렸습니다. 노트를 펼쳐놓고 월요일부터 일주일씩 정확하게 계획을 짜고, 그리고 성경은 몇 장 읽고 그 다음에 기도는 몇 분하고 어디 가서 하고 계획을 다 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외적인 것들을 먼저 정돈을 해야 합니다. 내버려 두면 여러분들은 그 틀에 의해서 흐느적거리면서 아무 것도 못 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 싸움은 영적인 싸움이고 그리고 마귀는 여러분들이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벗어나면 여러분들이 아주 중요한 대적자들이 되는데 그걸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아주 단호한 각오를 가지고 해야 됩니다. 첫 번째, 환경에 대한 정리입니다. 시간규칙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스마트폰과 미디어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전혀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직장에서도 일을 해야 되고 연락도 오고 하니까. 그러나 자기 자신과 약속을 하고, 솔직히 얘기해서 문자가 왔는데 한 두 시간 안에 답을 안 해서 난리가 날 일들은 없습니다. 나중에 친구한테 얘기하고, 그럴 수 없는 사이 같으면 연락을 돌려서 내가 한 한달 동안은 근무시간 이외에는 연락을 못한다든지 늦더라도 이해하라 양해를 구하십시오. 최소한의 사람이잖습니까? 그리고 그 다음에 멀어지십시오. 충전기 딱 꽂아서 멀리 놓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거기로부터 멀어지십시오. 오히려 음악을 가까이 하십시오.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좋은 음악이 따로 있냐?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실용적인 사람입니다. 기도하기에 좋은 음악은 틀어놓고 기도하고, 성경읽기에 집중이 잘 되는 음악이면 국악이라도 나는 국악을 틀어놓고 성경을 읽겠습니다. 국악을 틀어놓고 성경을 읽을 때는 없지만 그러나 자기에게 무엇인가 집중하게 하고 도움을 주는 그런 음악을 가까이 하면서 미디어로부터 여러분들이 멀어져야 합니다. 특히 텔레비전 연속극 이런 것들, 내가 지금 한가하게 그거 볼 시간이 아니다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사십일입니다. “내가 정돈하겠다.” 생각하고, 멀리하고 40일 동안은 수도원에 온 것 같은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강요받으면서 하지는 마시고 마음이 움직이면 금식을 하십시오. 미디어 금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의 금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에 관한 책들은 퓨리턴 라이브러리에도 여러 권 있습니다. 그 부분을 보면서 복음적인 금식이 어떤 것인지 배우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젊은 시절에는 금식이 이러한 영적인 침체를 방지하는 아주 훌륭한 좋은 방파제가 되었습니다. 일주일이나 열흘씩 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감동이 있어야 되겠지만 그러나 여러분 자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는 것입니다. 금식의 장점은 요동치는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식사가 우리를 굉장히 분주하게 합니다. 그것을 끊고 그 다음에 그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집중하는 시간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자매 하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 자매가 굉장히 아주 extraordinary한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저 자매가 저기서 헤어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대단했습니다. 40일 철야기도를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특별히 허락을 받고, 그때는 지하실에 있을 때니까 교회 문 딱 잠가놓고 그리고 나서 매일 저녁 기도했습니다. 저녁서 부터 새벽까지 기도만 한 것은 아니고 잠도 잤겠지만 어쨌든 강대에 엎드려서 40일을 기도하고 극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놀랍습니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을 금식은 우리를 그렇게 놀랍게 극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여러분들 중에 어떤 분들이 혼자는 너무 두려워서 세 사람이고 네 사람이고 교회에서 철야한다고 하면 제가 교회에 문을 열어주도록 지시할 용의가 있습니다. 안전하게.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끊으세요. 끊고 집중하십시오.
이게 내가 목사님들한테 건의 받은 것도 아니고 누가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혼자 기도하다가 여러분들이 너무 가엾어서 생각이 난 것입니다. 내가 목회하면서 한 번도 이렇게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너무 너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여러분들이 더군다나 너무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라도 여러분들이 일어나게 된다면 그러면 다른 사람도 주위에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면서 얼마나 힘을 얻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도 하루 종일 설교했는데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런데 나에게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권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하면 금식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철야, 교회 와서 기도하는 것, 다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때는 모르지만 40일만 새벽기도를 하겠다.” 다부지게 각오를 먹고 새벽기도를 나와도 좋고, 아니면 순리적으로 그리고 신변 적으로도 위험하고 차도 없으니 나는 그러면 집이 너무 멀지 않으니까 직장 끝나면 바로 교회 와서 간절히 한 시간 이상 기도하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다음 나의 영적인 회복의 시간들을 갖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 자신이 오늘 저녁에 돌아가서 의지적으로 여러분 자신과 약속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여기서 지시 내리지는 않습니다. 절대 지시 내리지는 않습니다. 얼마큼 기도하겠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기도를 하겠다, 금식? 사십일 철야? 사십일 금식? 아침 금식? 혹은 저녁 금식? 아니면 40일 동안의 철야? 아니면 40일 동안 새벽기도 나오기? 아니면 40일 동안 저녁기도하기? 등등, 여러분 자신과 약속을 하십시오. 그 대신 실천 가능한 약속을 해야 됩니다. 되지도 않을 약속을 하고 펑크를 내면 여러분들이 자신에게 너무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엄중하게 하고, 그 다음에 그 약속에 대해선 여러분이 40일 동안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힘을 내서 하십시오. 마침 좋은 게 뭐냐 하면, 다음 주에 기도회고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사경회입니다. 그러니까 두 주는 그냥 먹고 가는 것입니다. 아침에 나와서 들으면 됩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먼저 여러분 자신에게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의 영적인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40일 동안만이라도 쓰겠다고 여러분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을 해 보는 것입니다. 긴 사연이 있지만 길게 쓰기 귀찮으면 짤막하게 써도 좋으니까 자신에게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그리고 나머지는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있습니다. 전혀 부담이 안 되게끔 여러분들에게 냈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예배시간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설교 내용을 깨닫는 일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데나 앉아도 좋은데 가능하면 앞자리에 앉고 그리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성으로 저 설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깨달음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집중해서 듣고 그 다음에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그리고 시간이 나면 다시 그 설교를 듣고 그렇게 사십시오. 저도 다 그렇게 했습니다. 너무 침체에 빠져서 괴롭고, 나는 돕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내가 전도사인데, 신학생인데 누가 나를 도와주겠습니까? 상담할 데도 없고. 아침에 새벽마다 일어나서 기도하고, NIV 성경 꽂고 그 다음에 울면서 학교 교정을 걸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슨 혁신적인 어떤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거짓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런 각오를 하고 일어서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이렇게 엄중한 결심을 해 본 적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결심을 하십시오. 내가 그때 침체에 빠졌을 때 든 느낌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훨씬 더 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아주 중대한 결심을 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나는 안 되겠다는 이런 각오를 가지고 금식이든지 철야든지 하십시오. 열린교회가 이렇게 커지기 전까지는 이것은 일반적인 결심이었습니다. 사경회 때 이십 명, 삼십 명씩 교회에서 기거하면서 금식하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주님을 깊이 만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락한 삶을 40일만 떨쳐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간에 내가 하나님 앞에 살아나야 되겠다는 그런 각오를 갖고 세상에 대한 관심들이나 세속적인 것들을 좀 끊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진심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주님을 만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됩니다. 그런 각오를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