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06 교리반
교리반 강의
녹취자: 김미영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에 관한 지식. 하나님을 아는 가능성은 부인되어왔다. 인간이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지식도 가질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줄 치세요 밑에. 인간은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알 수 있으니 그나마 인간 자신의 능력에 맡겨두면 인간은 하나님을 발견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안다’라고 할 때 이것은 이 사실만 명쾌하게 이해해 두면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충분성과 한계성이 있습니다. 충분성 이란 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분이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도덕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은 핑계 할 수 없다. 그게 우리의 양심이 증거 하는 겁니다. 요번에도 살인사건 저지른 사람이 마지막 죽으면서 암으로 죽어가다가 마지막에 죽기 직전에 자기의 범행을 고백하고 누구랑 범죄하게 됐다 고백 했잖아요 뭐가 그렇게 만드는걸까? 양심이에요 그게 양심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법에 대한 의식입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어도 내가 악을 행했을 때는 내 마음에 그것이 고통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자기의 율법을 어긴 죄에 대해서는 핑계 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이게 충분성이구요. 불충분성은 뭐냐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 구원받고 하나님을 참으로 올바르게 섬기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란다 그것입니다. 정리됐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살아 시다는 사실, 그리고 자기가 계명을 어기면서 살 때 자기가 죄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 이것은 핑계 할 수 없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고 구원을 받거나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것은 그 지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계시로는 충분하지가 않고 특별계시가 필요하다 그랬습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선천적인 지식과 후천적인 지식으로 나뉜다. 하나님에 관해 선천적 지식을 갖는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 만한 자연적 능력을 소유했다는 것은 아니다. 또 나면서부터 어떤 지식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아니다. 줄 치세요. 이것은 단지 선천적 지식이란 정상적인 상태하에서 인간에게는 하나님에 관한 일정한 지식이 자연히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일반적 성질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다음에 내가 도덕을 어겼을 때에는 그 분 앞에 잘못했다는 의식, 이것은 인간에게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목사님, 그러면 하나님이 전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그건 뭐냐면 명백한 증거들을 의지적으로 회피하는 것입니다. 이걸 가리켜서 불신앙이라고 하는 겁니다. 회의는 회의 알죠? 회의가 드는 것은 뭡니까? 믿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입니다. 불신앙은 뭐냐 하면 의지적인 고집입니다. 안 믿겠다고 뜻을 세운 것입니다. 그 불신앙의 죄는 하나님 앞에 살인죄나 간음죄나 못지않게 무서운 범죄입니다. 여러분도 옛날에는 그런 불신앙의 죄를 지었던 사람입니다.
후천적 지식. 인간은 선천적 지식을 가질 뿐 아니라 줄 치세요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배움으로써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얻는다. 이 지식은 인간편의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계속적인 추구의 결과이다. 이 후천적인 지식은 다만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획득 가능하다. 이 지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관한 선천적 지식의 영역을 넘어서게 한다. 이건 분명하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희미하게 있는데 그것을 이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뭐냐면 특별계시가 주 교재고, 특별계시는 뭐라고 했죠? 더 큰소리로 성경, 성경을 주 교재로 하고 부 교재를 일반계시, 다른 모든 만물에 대한 지식들을 오늘날 우리에게 학문의 형태로 남아 있잖아요. 그런데 학문의 형태로 남아 있어도 그 학문의 형태가 올바른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기초하지 않거나 잘못된 지식에 기초해서 학문이 전개될 때에는 이 학문이 오히려 하나님을 아는 일을 방해 하는 겁니다. 지금 진화론 같은 게 그런 겁니다. 진화론은 굉장히 심각한 겁니다. 이건 믿을 수도 없는 허위의 것들을 가르쳐서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도둑질을 하는 그런 일을 초등학교 때 부터 아이들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우리들이 대책을 세워야 됩니다. 자 그런데 그러고 나면 그 다음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또 다른 지식들을 부지런히 섭취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 하나님은 당신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하시는지 세계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우리에게 뭐라고 가르쳐주시는지를 배워갈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다 분명하게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일반계시로서는 희미한 그림이었는데, 이 특별계시인 성경을 공부함으로 뚜렷한 선을 그리면서 그러면서 거기다가 주님을 만나면 거기에다가 색칠까지 체험으로 입히게 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그림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원래 인간이 하나님이 인간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실 때부터 공부하라고 만드신 겁니다. 평생을 그렇게 배우면서 살게끔 해서 만든 겁니다. 그럴 수 있는 능력을 인간에게 주신 겁니다. 그러면서 어떤 하나님과 세계가, 3중의 지식이에요 3중의 지식.
첫 째는 뭐냐 하면 하나님에 관한 지식, 두 번 째는 세계와 관한, 세계와 만물이겠죠? 만물에 관한 지식, 세 번 째는 인간에 관한 지식, 이것은 또 다시 나눠지는데 일반적인 인간, 인간인 나, 이렇게 나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반에 오면 제일 먼저 배우는 구호가 있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스튜데오 에르구씀’ 여러분 학교 다닐 때 ‘꼬기또 에르구씀’ 그런거 배웠죠? 데카르트가 한 말이잖아요 생각안나요? 그게 뭐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스튜데오는 나는 공부한다’ 라는 뜻입니다. 그 ‘에르고’는 그러므로 ‘씀’은 아이엠.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아이 스터디 데어 포 아이엠’ 라틴어를 여러분이 어디 가서 배우겠어요? ‘스튜데오 에르구씀’ 그럼 뭘 스튜데오 하느냐? 이게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 뭐라고 얘기하냐면 나는 공부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스튜데오 에르구씀 나는 공부한다. 고로 존재한다. 무엇에 대해 공부합니까? 라고 물으면 나는 일평생 하나님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공부하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그 인간은 일반적 존재로서의 인류와 그리고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에 대하여 배우는 것입니다. 이 세 대상에 대해서 공부하고 공부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하여 나는 태어났습니다. 이게 답입니다. 이거 외워야 됩니다. 따라해 보세요 ‘스튜데오 에르구씀’ 공부해야 됩니다. 후천적으로 부지런히 공부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매일매일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으면서 착실하게 신학공부, 여기서 내가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신학교의 신학을 얘기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학문을 얘기하는 겁니다. 지금도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신학 공부를 계속 차근차근히 해 나가는 사람과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사는 사람의 차이는 사람과 짐승의 차이 만큼입니다. 사람이 다 사람이 아니잖아요? 얼굴만 예쁘다고 다 사람이에요? 하는 짓은 완전히 다 개판입니다. 한 번 더 쳐다보면 넌덜머리를 내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기 위해서. 이번에 완전히 여러분이 개조해야 될 것은 제일먼저 회개해야 될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에 관해서 배우고 세계에 대해 배우고 인간에 대해서 배우는 게 여러분의 의무인데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 온 것에 대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1년 열 두 달 가도 책 한 번 읽은 적이 없고, 그 다음에 뭐 교리 한 번 공부한 적이 없고, 여러분도 얘기 했잖아요. 자동차 면허 시험 볼 때에 세례 받을 때 보다 훨씬 더 열심히 공부한다고 얘기 했잖아요. 그건 자동차 운전이야 안 내고 버스타도 되고 택시타도 되는데 이 공부는 인생 운전 면허입니다. 이런 걸 안 하니까 갔다가 ‘쾅’ 하고 들이 받아서 이혼하고 ‘쾅’ 하고 들이받아서 죄짓고 ‘쾅’ 하고 들이받아서 자살하고 그런거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되는 겁니다. 그 때문에 공부하는 게 이게 예외적인 생활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공부 안하고 신앙생활 하는 자체가 굉장히 이변이에요 이변이야 이변. 공부 안 하는 종교에 대해서 성경은 아는바가 없는 겁니다. 항상 책이 손에 들려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서 고민을 하면서 자기의 인생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해돼요? 후천적 지식입니다.
특별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에 관한 지식,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 이겁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첫 째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해 ‘디피니션’ 이라 그러죠? 정의를 내리지 않습니다. 정의를 내리지 않는 이유는 뭐냐 하면 정의를 내릴 수 있을려면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대등한 사물이 있어야지만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여자를 정의하라 그러면 여자는 여성으로서 남성과 대조되는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뭐 .... 해서 여성이 아닌 사람인 남성과 비교를 할 수 있을 때에 데피니션, 정의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비교할 수 있는 대등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게 정의를 내림으로써는 하나님이 누구라고 설명할 수 없고 서술로서만 가능한 겁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하나님은 정의이시다. 이렇게 서술적으로만 하나님에 관해 말할 수 있지 하나님을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겁니다. 명심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뭐라고 하냐하면 첫 째가 ‘영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자 줄치세요 셋 째 줄, 이 말은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영이시며, 영의 완전한 관념에 속하는 특질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순수한 영이시라는 사실은 하나님은 어떤 종류의 육체를 가졌거나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시라는 개념을 부인한다. 좀 더 읽고 설명을 하겠습니다.
두 번 째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 인격, 완전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인격적이시다 완전하시다.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사실은 인격성을 뜻한다 계속 줄 치세요. 왜냐하면 영이란 지적이고 동그라미, 도덕적인 동그라미,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존재 동그라미, 라고 말 할 때 하나님이 자신의 생활 과정을 결정하실 수 있는 이성적 존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격의 3요소가 뭐에요? 지식, 감정, 의지 이 세 가지가 작동 할 수 있는 것은 영혼을 가진 존재만이 이것이 작동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비록 우리 인간과 같은 모습을 지니신 분은 아니시지만 알고 느끼고 의지하시는 이 특성을 가지고 계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혼을 주셔서 당신처럼 알고 느끼고 의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겁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창조 되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지성과 감정과 의지, 이것이 바로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의미이고 이 원인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영혼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해되시죠? 그 다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 인격적인 힘, 혹은 세력으로 안다. 잘못된 거죠? 성경의 하나님은 줄 치세요 인간과 교제할 수 있고 인간들이 의지할 수 있고 또 인간생활 속에 들어오셔서 도우시는 인격적인 하나님 이시다 더욱이 하나님은 예수안에서 자신을 인격적인 존재로 나타내셨다.
세 번 째 하나님은 무한히 완전하시다. 하나님은 무한한, 줄 치세요 완전성으로 말미암아 피조물과 구별되신다. 존재하심과 선하심에 있어서 제한을 받지 않으시며 완전하시다. 하나님은 한계나 제한이 없으실 뿐 아니라 도덕적인 완전성으로 영광스러운 존엄으로 모든 피조물들 위에 뛰어나신 분이시다. 맨 밑으로 내려가, 오늘날 어떤 철학자들은 하나님은 유한하고 발전하며 투쟁하고 고난당하시며 인간처럼 실패와 승리를 경험하시는 분으로 생각하나 이는 비성서적이다. 여러분이 얼핏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과정철학, ‘프로스스필라쏘피’ 라고 하는데 내가 설명하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요. 인터넷에 들어가서 과정철학, 혹은 과정신학 찾아보시고 ‘화이트헤’ 혹은 ‘하치션’ 이런 사람의 이름을 두드려 보세요. 그러면 어마어마한 자료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파넨데이즘, 만유내재신론 혹은 내재신론 이런 검색어를 두드려보면 나옵니다. 스피노자, 그 다음에 화이테드, 이런 사람들을 두드려보면 나옵니다. 그래서 찾아서 쌈박하게 귀퉁이에다가 깨끗하게 정리를, 너무 많으면 옆에다 하얀 종이를 붙이고 쓰라 그랬죠? 그래서 깔끔하게 잘 정리를 해서 거기다가 이렇게 ‘아 과정철학에서 하나님을 그런 분으로 보는구나’ 하나님을 이 세계와 운명을 함께하며 당신도 불안전한 분이시지만 완성되어 가는 분으로 보는 것이죠. 그게 사실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견해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네 번 째, 하나님과 그의 완전성은 동일하시다. 단순성이란 하나님의 근본적인 특성중 하나인데 요것은 나중에 설명을 드릴게요. 굉장히 어려운 단어입니다. 단순성이라고 하면, 심플리시티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이질적인 요소로 이루어지신 분이 아니며 존재하심과 속성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완전성은 인간에게 계시해주신 하나님 자신을 말하는 것이며 완전성은 하나님의 존재를 뜻한다. 하나님은 진리의 생명, 빛, 사랑이시며 의로우신 분이심을 성경이 증거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게 설명을 굉장히 많이 필요로하는 거고 한 학기동안 이것만 가지고 공부를 해도 다 못할 정도입니다. 제가 죽기 전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교리공부를 하는거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고 봅니다. 이것은 세례받기 전에 공부하는 정도고 그 다음에는 아까 우리가 일곱 개를 배웠잖아요. 다시 한 번 해 볼까요? 서론부터 시작,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교회론, 종말론 그 일곱 개를 하나씩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 겁니다. 일곱 학기를. 왜 웃으세요?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여러분 읽고 있죠? 그게 일곱 개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거를 일곱 권을 공부해야지만 하나하나를 가지고 한 학기에 공부를 한다 치고 일곱 학기를 공부를 해야지만 ‘아- 이런거구나’ 기독교를 믿는 내용이 뭔지에 대해서 초보적인 내용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 다음에는 뭐 그냥 단순성 하나를 가지고 한 학기를 공부해도 다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공부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 언제 공부합니까? 그러니까 그게 문제지. 그게 문제지. 자 여기서 하나님이 누구냐 하나님이. 이렇게 질문해봐요. 하나님이 ‘무엇이냐’ 이렇게 묻는 것 이 질문이 있고 ‘누구신가’ 이렇게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요거는 본질에 대한 질문이죠 그죠? 요거는 성품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성품은 관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나타납니다. 본질은 이것과는 상관없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아까도 얘기 했는데 하나님은 뭐라고 배웠죠? ‘영이시다’ 고 배웠습니다. ‘영’. 하나님은 스피릿. 영이시다. 소울은 영혼이고 아 하나님은 영이시구나 물질이 아니시라는 얘기구나. 아 그러면 정신이나 우리 인간의 영혼과 같은 분이시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니거든요 자 이런 생각을 해 봅시다. 그래서 이걸 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신학 공부를 하기가 아주 좋아요. 없는 사람들은 배양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열린교회에서 설교만 오래 들어도 꽤 합니다. 많이 나오니까 직접 공부하면 아주 좋지만 그런데 뭐 성경도 공부할 시간이 없는데 그런 공부할 시간이 있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도와주잖아요. ‘있다’ 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 들어가는 말이 각각 다릅니다. 돌이 있다. 돌멩이, 스톤 ‘돌이 있다’ 입니다. ‘돌이 있다’ 라고 하는 말과 그 다음에 두 번째는 ‘공기가 있다’. 이거는 에어를 얘기합니다. 에어 ‘공기가 있다’ 라는 말,a,b 에요. 우리안에 우정이 있다. ‘c’에요. ‘있다’ 라는 말은 똑같은데, 의미가 abc 가 다 다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만약에 ‘돌이 있다’ 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는 여기 돌이 이렇게 있는거에요. 이 생각을 가지고 공기가 있다 그러면 이런 식으로 찾아 볼려고 할 때는 공기를 발견을 할 수 있을까요 없을 까요 ‘있다’ 라는 개념을 여기에서 해당되는 있다를 가지고 이리로 들어가면 여기는 없는겁니다. 얘기 이해되시죠? 그러나 b에서 c를 봐야 공기가 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식으로는 파악이 안 되지만 이것을 비이커에 담든지 아니면 비닐 봉지에 딱 담아서 갖고 가 가지고 실험실 가서 성분을 조사해보면 뭐 산소도 들어있고 뭐도 들어있고 있다 이거에요? 그런데 우정이 있다 그럴 때 그런 식으로 우리 사이에서 뭘 비닐봉지로 담아가지고 실험실로 가져가서 분명히 우리 사이라는 말은 중간이란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제 이렇게. 이리 나와봐요 자 사이라는 말은 이렇게 이렇게 중간이란 뜻 아니에요? 그래서 딴 데 공기가 아니라 여기 있는 걸 담아 가지고 갔어요. 그리고 가서 성분 조사를 해 봤는데 우정이 나와요 안 나와요? 안 나오잖아요 그건 왜 그래요? 여기에서 해당되는 ‘있다’ 라는 의미와 여기에서 ‘있다’ 라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이걸 찾는 방식으로 이걸 찾아도 안 나오고 이걸 찾는 방식으로 이걸 찾아도 안 나오는 겁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시죠?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이걸 가리켜서 ‘존재의 아이’ 또 어렵다고 그러면 안 됩니다. 가서 항상 교인들한테 교리반 들어갔더니 너무 어렵다고 그러면 다음기에 잘 안 온다 말이야. 여러분이 가서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존재의 양식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거는요 아무나 안 가르쳐 주거든요 그런데 성경을 이해하는데 일평생 써 먹을 수 있는 겁니다. 잘 들어보세요.
첫 째 뭐냐 하면 돌, 그 다음에 칼 , 불, 꽃 이런 대부분의 많은 사물들을 생각 하세요. 그럼 어떻게 되죠? 여기에 이렇게 컵이 있습니다. 이렇게 컵이 있어요 그럼 잘 봐요 여기 컵이 있는데 여기 이렇게 컵 뚜 껑이 있잖아요? 여기까지는 컵이고 요 바깥은 컵 뚜껑이 아니잖아요? 무슨 얘기인지 알죠? 요기까지는 컵인데 요 까지 컵이야. 요 속도 컵이 아니고 요 겉도 컵이 아니에요 여기에 꽃이 이렇게 있을 수 있어요 마주 붙어 있을 수 있어요 그럼 요기 까지는 컵이고 요기서부터는 꽃이에요 그러니까 뭘 가지고 컵은 요런 한계를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한정되어 있다 그러잖아요. 사물은 사물인데 한정적 사물입니다. 한정적 사물 이게 무슨 뜻이에요? 한정이 있다 무한정이 아니다 이 뜻이에요 대부분의 우리들이 접하는 모든 사물들이 여기에 해당이 되는 겁니다.
두 번 째 이런 것 말고 이런 게 있는 겁니다. 영혼, 정신, 이런 .... 있는 겁니다. 한 번 더 나와요. 자 조교, 영혼이 어디있어? 그대의 영혼이 어디에 있어? 제 안에. 있다고 그럼 물어볼게. 그 영혼은 안인데 어디에 있는거에요? 지금 여기라 그랬는데 그러면 영혼이 머리에는 없고 가슴에만 있는거에요? 몸을 해부해도 어디에도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어쨌든 제가 가지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대의 영혼이 저 형제 안에 출장가지는 않지? 분명히 여기에 있지? 그럼 내가 물어볼게. 자네 어렸을 때 요만했잖아? 그 때 영혼이 있었어? 없었어? 있었어요? 있었죠? 그러면 그 요만했을 때 아이의 영혼이 있었고 그 영혼은 어떤 식으로든지 이 아이에게 없는데 없이 다 있어야 될 거 아냐? 그렇잖아요? 그런데 자네는 이만큼 거졌잖아 두 배로. 그러면 이제 절반은 영혼이 없고 어릴 때 걔가 계속 있는거지? 그러면 영혼이 자라는 건가? 그런데 그럼 또 궁금한게 있어요 자란다고 치면 100킬로 나가는 사람이 헬스를 해서 한 40킬로를 뺐어. 그럼 그 영혼이 다시 줄어드는건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결론은 뭐에요? 결론은 육체안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럼 밖으로 나갈 수 있는거네? 육체의 크고 작음 넓고 좁음에 상관없이 어쨌든 형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 속에 존재한다. 속에 있다. 다이어트해서 쪼그라들어도 그게 영혼만 남기고 몸이 줄어들어서 영혼이 겉에서 남아가지고 염려할 필요가 있을까요 없을 까요? 일주밖에 공부를 안 했는데 머리가 상당히 교리적으로 움직이기 시작을 해요. 장래가 촉망됩니다. 자 그런데 이제 아까 얘기한대로 내 영혼이 다른 사람에게로 출장 가는 법이 없구요 내가 100킬로 됐다가 영혼이 100킬로로 꽉 찼는데 내가 다이어트를 해서 6킬로를 딱 뺐더니 내 옆에 딴 사람이 섰더니 내 나머지 영혼이 그리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 일이 있어요? 없어요?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하면 이 영혼은 우리 육체 안에 존재하잖아요. 육체안에 있잖아요. 육체와 함께. 그런데 이 영혼의 존재하는 양식은 이런 식으로 존재 하는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육체가 있어도 이 육체와 함께 영혼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아까 얘기 했듯이 ‘돌이 있다’ 라는 이 개념을 가지고 영혼을 찾으면 영혼은 없는 겁니다. 아무리 뒤져봐도 배를 가르고 별 일을 다해도 영혼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혼이 분명히 어떤 ‘제한을 가지고 있다’ 라는것은 분명하잖아요. 내 영혼이 다른 사람에게 출장 가거나 저 사람 영혼이 갑자기 커져서 나를 덮어 버려서 내가 저 사람 영혼에 간섭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가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제한적 사물’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젊은 사람들을 위해서 써 줄게 이것은 영어로 좀 어려워요. ‘써컴 스크립티브’ 이렇게. 티브리 그랬어요. 한정적으로 존재하는 것. 요거는 제한적으로 ‘디피니티브’.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세 번 째가 있습니다. 이게 뭐냐하면 ‘충만적 사물’입니다. 오직 하나의 사물밖에 없어요. 하나님, 하나님을 어떻게 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신학에서는 불러요. 레스라고 그러는데 영적인거 물질적인거 모두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충만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리플레티블리’ 그럽니다. 그래서 써컴 스크립티블리하게 존재한다. 디티브니하게 존재한다. 리플레티블리하게 존재한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하면 존재하는 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 개념을 가지고 이걸 찾을려고 하면 없는 것 처럼 이 두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을려고 하면 하나님은 어디에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흔히들 착각하는 게 뭐냐하면 이 하나님의 존재하시는 방식이 인간의 영혼의 존재의 방식과 같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중요한 오류가 생기는게 뭐냐하면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은 끝이 있어야 되는 거 잖아요? 인간의 영혼은 끝이 있잖아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존재 하는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의 영혼은 요만하고, 하나님은 왕창 크다 커서 끝없이 펼쳐진다.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존재 자체가 돌, 칼, 불, 꽃 이것이 영혼과 존재하는 방식이 다르듯이 하나님의 존재는 영혼의 존재와 다르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죠? 이해가 가요 안 가요? 가죠? 무지무지하게 중요한 겁니다. 요 사이를 비집으면서 수 많은 이단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불교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죠? 이거나 이거나 하나님이나 다 마찬가지라고 보는 거죠. 왜 그럼 돌이냐? 똑같이 H2O인데 어느거는 얼어서 얼음이 됐고 어느것은 녹아서 물이 됐고, 어느것은 수증기가 되어서 H2O가 되었다 이렇게 보는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모두 인간과 신이 하나의 본질로 되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우리는 전면적으로 거절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뉘어진다라고 하는것. 이게 바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제일 중요한 설명이구요. 요거를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서는 주기도문 설교 테이프 제 1번 '하늘에 계신' 그걸 가지고 한 주 설교했거든요. 그 때 '계신' 그것을 설교 했어요. 그게 첫 째 주인지 둘 째 주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첫 째 주일거라 생각이 됩니다. 그것이 작년 설교입니다. 작년 가을이에요 가서 들어보세요. 그럼 이것에 대해서 좀 더 명쾌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자 이렇게 되구요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그 다음에 단순성 했죠? 단순성. 단순성 단순성하면 시간이 많이 갈텐데 다음에 할게요. 넘어가요. 그 다음에 5과.
하나님의 명칭 그랬는데 이거는 명칭이라고 그러면 안 되겠죠? 사물의 물건이니까 하나님의 존함. 하나님께서는 사물과 사람에게 명칭을 붙이셨는데 이것은 사람과 사물의 본성을 밝혀주는 명칭이다. 참 재밌잖아요. 모든 나라의 언어들이 그 일에 충실하고 있어요. 기린, 모가지가 길다 그죠? 그런 식으로 이렇게 딱 어떤 사물의 이름이 그것을 연결시키는 특징을 딱 나타내 보여주도록 만든 거잖아요. 성경은 하나님의 존함을 단수로 말하는데 백성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표명하는 칭호이며 또는 당신 자신을 나타내신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존함 엘, 엘이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말로 엘이라고 쓰는데 엘 이렇게 써요 '신'이라는 뜻이고 혹은 ‘하나님’으로도 쓰고 ‘신’이라는 말 이방신을 가리키는 말은 소용없는데 이 엘은 어디에서 왔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학설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알라흐' '두려워 벌벌 떨다' 이런 동사에서 왔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울’이라는 명사에서 왔을것이다. 도토리 나무에요 도토리가 뿌리가 단단해서 웬만한 바람에는 쓰러지지 않으니까 ‘강하다’ 스트롱 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진데서 이게 에리드지 않았을까 학자들이 추측을 하는 겁니다. 어쨌든 ‘엘’ 혹은 ‘엘로힘’ 이건 복수 형태에요. 이것은 하나님이 강하고 능력있는 분으로 경외의 대상임을 보여주고 ‘엘룐’ 은 ‘높은 자’라는 뜻입니다. 지고성을 지시해주고 아도나이는 ‘주’ 혹은 주인 지배자 그런 뜻을 뜻해요. 또 다른 명칭들은 그의 피조물과 우호적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족장들이 굴리던 ‘샤다이’ 혹은 ‘엘 샤다이’ 정확하게 말하면 ‘샷다이’ 혹은 '엘리 셧다이' 라는 명칭인데 이건 뭐냐 하면 ‘알마티’ ‘전능하신’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백성들에게 위안과 축복이 근원이 되시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강조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세 줄 쯤 내려가면 유대인들에 의해 신성시되던 하나님의 가장 존엄한 명칭은 ‘야훼’ 동그라미인데, 이걸 우리들이 ‘여호와’라고 번역을 했죠? 여호와는 아니에요. 그거는 번역이 잘못됐어요. 야훼일거라고 많이 생각을 해요. 설명을 하면 좀 긴데 야훼일거라고 보는데 여호와는 아니에요. 아닌 거를 왜 계속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나오는데 우선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야훼’ 라는 것이 아마 맞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판단인데 그것도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본래의 이름을 잃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말하는 것 자체를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1년에 딱 한 번 가르쳐주고 그 다음에 회개하는 온 가족이. 그래서 이제 히브리어를 모르면 설명을 들어도 좀 복잡한데 조금만 설명하죠.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이 이렇게 네 자로 되어 있어요. 요 밑에. 자음뿐입니다. 이렇게 자음으로는 이, 그 다음에 히, 그 다음에 이거 이렇게 되는 겁니다. 뭐가 붙는지 모르는거에요. 그런데 이제 뭐가 있었냐면 요렇게 요렇게 붙였어요. 요거는 ‘아’라는 모음이고 요거는 ‘오’라는 모음이고 요거는 다시 ‘아’라는 모음이고 요건 짧은 ‘아’이고 요거는 약간 긴 ‘아’에요. 왜 이걸 붙였냐면 여호와라는 이름이 너무 거룩했기 때문에 감히 이걸 부르지 못했고, 이것 대신에 부른 게 있었는데 그게 뭐냐면 ‘아도나이’ 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이름은 이렇게 네 글자를 써 놓고, 요기있는 모음 부호를 갖다가 옮겨 놓은거에요. 자음은 야훼라고 하는 성함인데 존함인데 감히 거룩하니까 읽지 말고 너희들은 요거 나오면 요렇게 읽어라. 그래서 표시로 여기다 옯겨 놓은 겁니다. 이거는 뭐냐면 ‘아도나이’ 라고 읽는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주여, 주님’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걸 무시해버리고 이거를 여기에다 붙여가지고 이거를 여라고 만들고 이거를 여기다 붙여서 호라고 만들고 이거를 여기다 붙여서 와라고 만든 게 우리 여호와입니다. 매우 크게 실수한 겁니다. 이건 여기서 먼저 실수한 게 아니라 영어성경에서 여호와를 ‘제호바’ 라고 불러요 여기서 벌써 실수한 겁니다. 그러면서 이게 계속 전해 내려 왔어요. 굳어져왔어요. 그래서 이제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나라마다 각각 다른데 하나님의 성함이 이미 굳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이상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신학 책에서는 야훼라고 많이 부릅니다. 야훼도 아니고 ‘야웨’ 입니다. 자 그렇게 해서 나오는데 이 성함이 가장 고유한 성함입니다. 우리도 집에서 예쁜아 라고 부르고 누구누구누구 막 이렇게 부르지만 주민등록 호적 등본 떼 보면 나오는 이름이 진짜 그게 법적인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그 성함이 바로 야훼라고 하는 성함입니다. 이 명칭의 기원과 의미는 출애굽기 3장 14절 15절에 나와 있다. 이 명칭은 줄치세요. 하나님이 항상 동일하시며, 특별히 그의 언약관계에서 불변하시며, 그의 약속 성취에 있어서 신실하심을 말해준다 또 이 명칭은 가끔 만군의 여호와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천군천사에 의해 둘러싸인 영광의 왕 되신 여호와를 묘사하는 거다. 여기서 나오는 ‘나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고 하는 이 구절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설은 도덕적 통치라는 책에 가서 보면 각주에 한 페이지 정도 상세하게 나오니까 여러분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도덕적 통치’ 라는 책에. 좀 어려워요. 그래도 교리반까지 했으니까 봐야죠. 제가 쓴 책 중에 유일하게 구역공부를 안 한 책이 그 책입니다. 교인들이 너무 머리에 쥐 난다 그럴까봐 안 했습니다. 그 다음에 신약에 나타난 명칭. 신약의 명칭은 구약의 명칭을 헬라어로 표시 한 겁니다. 헬라어가 뭐냐면요. 여러분이 역사시간에 배운 마게도니아 왕국 시대 때 쓰던 그리스어입니다. 이 그리스어는 세 가지로 나뉘어지는데 아주 고대 그리스어로는 호메로스의 호모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같은 그런 신화의 작품들을 읽는 그리스어가 있고 그 다음에 이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이런 사람들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아틱그릭’ 이라는게 있습니다. 아티카 그릭이 있고 그 다음에 평민들이 쓰던 코이네 그릭이 있는데 그것은 로마제국이 된 다음에도 만국 공용어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누구 했냐하면 그 유명한 알렉산더대제가 불쌍한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미개한 나라의 헬레니즘의 찬란한 문화를 전파해야 되겠다는 사도적 소명감을 가지고 한 겁니다. 그래서 로마시대때에도 어디에 가든지 헬라어로, 말하자면은 통용되는 그리스어로 평민어로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데 성경이, 신약성경이 그걸로 써 졌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 이는 단순히 하나님을 가리키는 용어로 보편적이다. 이렇게 하나님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개개인의 하나님이시다. 엘 엘 엘에 맞 먹는 단어가 ‘테오스’라고 하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입니다.
두 번 째는 ‘큐리오스’ 라는 단어입니다. 이거는 뭐냐 하면 ‘주님’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히브리어의 ‘아도나이’하고 맞먹는 의미입니다. 줄 치세요 아도나이와 여호와는 양면적인 용어로써 만물의 소유주요 그 백성의 지배자이신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우리가 주님 그럴 때에는 ‘우리가 당신의 지배 아래 있고 당신의 소유이고 우리의 모든 것에 관한 처분이 당신께 있습니다’ 라는 의존의 신앙을 말해주는 거죠. 아버지 ‘파텔’이라는 단어입니다. 신약에서 파텔이라는 단어 이것은 새로운 명칭이 아니구요 구약에도 나옵니다. 아부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아버지입니다. 파더. 자 그래서 어떻게 나오냐면 파텔이라는 명칭은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로 묘사하기 위해 구약에서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줄치세요. 신약의 명칭은 모든 신자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가리킴으로 보다 개인적인 명칭이다. 그러나 공동체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파텔이라는 가족관계 안에서 통용되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빠라고 번역하자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아빠하고 아버지의 중간 정도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때는 이 명칭이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지칭하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시는 삼위의 제 일 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 그럴 때, 오늘 굉장히 중요한 걸 배운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럴 때 아버지 되심 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아버지 되심’ 그럴 때 이거를 영어로 ‘파더 후드’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거는 크게 몇 가지로 나뉩니다.
우선 첫 째가 뭐냐 하면 ‘창조주로서의 아버지 되심’ 그렇게 보면 어떻게 되죠?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 때문에 태어났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보면 있는 모든 것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겁니다.
두 번 째는 뭐냐 하면 ‘창조주로서의 아버지’이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이스라엘 그러니까 ‘신정국가의 아버지’,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셔서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시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거구요. 그 다음에 ‘양자적 아버지’, 양자적 아버지는 뭐냐 하면 우리가 이 세상을 방황하던 죄인인데 구원하여 너는 내 아들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나게 하셔서 교회에 접붙여 주신 겁니다. 그것이 양자적 아버지입니다. 그 다음에 네 번 째는 뭐냐 하면 삼위일체적 아버지, 그게 뭐죠?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신데 성자에 대해서 성부가 아버지시라는 겁니다. 요렇게 네 가지 창조주로서의 부격이라고 하는 것은 창조주적 부격, 신정국가의 부격, 양자적 부격, 삼위일체적 부격, 이렇게 말합니다. 어렵게 표현을 하면. 그래서 창조주, 크리에이티브 파더 후드, 그 다음에 테오크라티 파더 후드, 아더 티브 파더 후드, 인터트리트리안 파더 후드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창조주로서의 아버지, 신정국가의 아버지, 양자적 아버지, 삼위일체적 아버지, 이렇게요.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많이 이야기 하는건 이걸 얘기하는 겁니다. 이렇게 설명이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그러고 나옵니다. 속성이라는 말이 뭐냐? 어려운 말이 계속 나오는데 이렇게 생각하세요. 어려운 말이 나올수록 ‘아- 이건 우리를 쉽게 하기 위한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러분 버스가 어느 나라 말입니까? 예? 아이 참. 그럼 빵은 어느 나라 말입니까? 프랑스 말이라고? 프랑스 말은 빵이 아니라 뺑입니다. 뺑. 뺑드비 하면 생명의 빵 그런 뜻입니다. 뺑이에 요 뺑. 빵은 원래 포르투갈어였습니다. 그러다가 이게 빵이 되었습니다. 영어는 브레드잖아요. 빵이라는 말이 외래어다. 그래서 안 쓰자. 자 뭐라고 말을 할 까요? 자 옆에 있는 형제, 빵이라는 말을 안 쓰면, 자 어떻게 밀가루를 가져다가 물로 치대서 이스트를 넣고 하루 발효 시켰다가 꺼내서 잘라서 그 속에다 뭘 집어넣거나 안 넣거나 해서 불에다 구워서 먹을 수 있게 된 사물. 그래야 되는 겁니다. 얼마나 복잡해요? 그런데 빵을 맨 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보여주면서 이게 빵이야 불어로는 뺑, 영어로는 브레드, 이게 빵이야 먹어봐 맛있어 이 빵은 이런 종류가 있어 하나만 아이들이 딱 깨닫고 나면 그 다음에는 너무나 쉬운 겁니다. 왜? 그렇게 안 할려면 이렇게 해야 되는 겁니다. 형 밀가루를 가져다가 빻아서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한 거 여기 있었는데 누가 먹었어? 그러면 응, 그 밀가루를 가져다가 반죽하고 불려서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한 거 내가 먹었지. 형 그 밀가루 퍼다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한 거 그거 내 꺼잖아. 야, 그 밀가루 퍼다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한 게 어떻게 너만 먹으려고 엄마가 준 거냐? 나도 먹으라고 준거지. 동생이 막 울면서 나 엄마한테 또 그 밀가루 퍼다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한 거 사다 달라 그럴거야. 형이 또 말하는 거야. 그 밀가루 그거 그거 그거 그거 한거 가지고 나 또 먹을거야. 이게 얼마나 인생의 낭비에요. 어려운 말을 하나 딱 익히면 아- 그거. 처음에 할 때는 좀 어렵지만 딱 이해하고 나면 막 몇 줄로 써야 될 거 한 줄로 딱 하고 줄여주는 겁니다. 얼마나 좋아요. 열린교회 오래 다닌 사람들은 이제 그런 용어에 차근 차근 차근 차근 익숙해지는 겁니다. 예를 들면 까리따스 꾸삐띠따스 그 다음에 신학 용어들 많잖아요. 하나님의 형벌, 대속, 구속, 완성, 절정, 아니면 죄, 죄악, 악, 뭐 이런 신학적인 용어와 단어들을 정확하게 하나씩 하나씩 익혀가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알고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 줄 때에는 아주 눈 높이로 내려와서 쉽게 설명을 해 주는 겁니다. 설명해 준 이 사람에게는 명쾌하게 개념이 서 있을 때 그것은 어렵게 공부한 사람들이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거지, 쉽게 공부한 사람은 절대 쉽게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가르칠수록 공부를 덜한 겁니다. 쉽게 가르칠수록 공부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쉬워요 어려워요? 아니 지금 가르쳐 주는게 쉬워요 어려워요? 쉽잖아요. 자 그럼 속성이란게 뭐냐? 참 어려운 얘기입니다. 그죠? 흔히 우리들이 쓰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에 이 속성이란 말이 어려운 겁니다. 속성, 그럼 요거를 한자로 놓고 보면 요렇게 씁니다. 요렇게 요렇게. 속성이다 그러는데 요거는 어디에다 쓰는거냐면 어디 어디에 속했다 그럴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러면은 이 속성이라고 하는것이 도대체 뭐냐? 정의를 하면 요거는 영어로는 액트리뷰트라고 합니다. 액트리뷰트라 그래요. 어려운 단어입니다. 그러면 이 속성이라고 하는 것이 그럼 뭐냐? 속성은 이런겁니다. 이제 정의에서 속성은 키로커스입니다. 어떤 사물의 부분이지만 어떤 사물의 부분이거나 요소이지만 그것을 빼면 그 사물이 되지 않는 것. 다시 한 번 말할 게요. 속성이란 어떤 사물의 부분이거나 일부이지만, 그것을 빼 버리면 그 본래의 사물이 될 수 없는 것, 그것을 가리켜서 속성이라고 합니다. 속성. 이해되죠? 대답이 없어요. 괜찮아요. 뭐 여러분을 이해해요. 조금 더 공부하면 펄펄 납니다.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 이제부터 설명을 하면 되잖아요 그죠? 그럼 이게 무슨 뜻이냐? 자 하나님이 이렇게 계시다고 칩시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 안 되죠 그죠? 왜? 끝이 하나님은 없는데 이렇게 하니까 여기까지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아니에요 그 뜻이 아니에요. 이거를 안 그려도 결국 칠판이 여기서 끝나니까 못 가잖아요. 그러니까 어쩔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계시다 그럴 때 그럼 하나님은 사랑이시잖아요 그죠? 어떻게 사랑만 하세요? 하나님에게 정의도 있잖아요 그죠? 정의만 있어요? 하나님은 영원하시기도 하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영원, 정의, 사랑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존재의 혹은 속성의 일부만을 보여주는 거죠. 이해돼요 안 돼요? 이해되면 빨리 ‘네’하고 대답하세요 하나님이 영원하다 정의롭다 사랑이시다라고 하는 것이 틀림없는 말이긴 하지만 요거 하나 하나가 하나님을 다 말해주는 건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일부분을 말해주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이걸 빼 버려요 하나님은 영원하지 않고 천 년 동안만 살아계신다 그럼 하나님이 될 수 있어요 없어요? 그럴 때 요거를 속성이라고 하는 겁니다. 난 그 소리가 참 듣기좋아. 그게 무슨 뜻이냐하면 ‘아- 깨달았다’ 라고 하는 뜻이잖아요 이해되시죠? 그걸 속성이라 그러는 겁니다. 하나만 더 할게요 하나님은 사랑이시잖아요? 그렇지만 사랑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정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잘 못 할 때 하나님이 때리시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이 사랑이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되실 수 있어요 없어요? 그럴 때 이것을 가리켜서 ‘속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의 속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 잘 들어보세요 자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잘 들어보세요 그러다 보니까 ‘아-이렇게 되는 구나’ 하나님이 있는데 이 속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그게 뭐냐면 1번의 속성은, 또 2번에도 속성이 있는데 이 속성은 어떤 특징이 있냐 하면 1번 속성은 속성인데 인간 세계 속에서는 못 찾아보는 속성입니다. 그걸 가리켜서 뭐라 그랬냐면 어려운 말이 많은데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그럽니다. 공유한다는 말은 함께 갖는다는 말이잖아요. 사람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함께 나누어 갖지를 않아 독립적 속성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가하면 인간들 속에서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이거를 뭐라고 그러냐면 ‘공유적 속성’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 사랑은 완전하고 인간사랑은 불완전 하겠지만 인간 속에도 사랑이 있어요 없어요? 빗나가기도 하고 불완전하겠지만 있잖아요? 요런거는 공유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요렇게 표시를 할게요. 완전히 정의로우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도 불의한 것을 보면 정의를 부인하려고 애를 써요 안 써요? 그러니까 이게 인간에서도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지 영원한 것은 인간에게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모두 끝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영원하고 싶어하죠. 그런데 도대체 뭐가 영원하겠어요? 사랑은 영원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는데 뭐가 영원하겠어요? 사랑은 맨날 영원하다 그러다가 이혼은 왜 그렇게 해요. 스위스를 갔었어요. 긴장도 별로 안 됐겠지만 재밌는 얘기 하나 해 줄게요 유럽을 출장 갔다가 스위스를 들렀어요. 스위스를 들렀는데 6시가 되니까 다 문을 닫는 거에요. 8시 되니까 완전히 우리나라 민방위 훈련하듯이 된 겁니다. 이 나라는 왜 그러냐 그러니까 날이 어두운데 식당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개 가족이 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관광객이라 그럽니다. 8시 넘으면 그나마도 다 닫고 술집만 문을 여는데 남자들이 둘이 오면 게이이고 그렇지 않으면 관광객이고 현지사람은 없다 그럽니다. 그럼 왜 그러냐 그러니까 너무 가정적이어서 딱 퇴근하면 가족,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신문을 보니까 이혼율이 52%대 더군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이건 뭐냐 그러니까 이혼율이 좀 높대요. 딱 해 떨어지마자 가정으로 돌아가서 싸운다 이거잖아. 그건 아니래요 그렇게 가정적인 나라가 왜 그러냐니까 하여튼 어쨌든 그렇대요 영원하고 싶은데 영원이란게 있나. 뭐 그렇게 영원하겠어요.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하나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요렇게 해서 좀 더 크게 그려야 뒤에서 보이겠군요. 요렇게 하나님이 계시고 요렇게 그리고 그 다음에 요렇게 나뉘는 겁니다. 요렇게. 요건 뭐냐 하면 여기는 뭐 예를 들면 불변한 것, 그 다음에 영원한 것, 그 다음에 무한한 것, 이런 것들은 피조물들의 세계에서는 비슷한 게 없습니다. ‘불변하다’ 라고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무한하다라고 하는 것 영원하다라고 하는 것, 요런 것들을 가리켜서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 정의 ,자비,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진실하심...... 나올거 아닙니까? 이런 것들이 인간에게서 찾아볼 수 있어요 없어요? 있다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면 잘 보세요 이렇게 보면 마치 통조림 중에서 파인애플 깡통에 들어있는 것 있잖아요? 옛날에는 우리가 그냥 귀족 집 애들이나 먹는거 였잖아요. 요즈음 싫도록 뷔페에서 나오잖아요 그것을 딱 잘라 놓고 보면 이렇게 파인애플 자르듯이 ‘아-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되어있구나’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냐 하면 요거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구성요소를 이룬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 안에. 그래서 그렇게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하나님의 견해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이 부분 부분들이 서로서로를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부분들이 서로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것은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면 이거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은 무엇인지 모릅니다. 왜? 그 비슷한 사물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눈부신 빛처럼 그 정체를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은 구성요소를 가지고 나눠 지는게 아니라 하나인데 너무 신비해서 알 수 가 없는 겁니다. 하나일 뿐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아까 얘기한 단순성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걸 ‘심플리끼따스’라고. 라틴어로 얘기하면. 심플리시티에서 나온겁니다. ‘심플리끼따스’ 라고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들어보세요. 그 다음에 그런데 이 하나님이, 그러면 속성은 어떻게 나타나는거냐? 속성은 그냥 나타나는게 아니라 이 피조세계에 있는 어떤 사람들의 상태와 관련되어서 나타날 때에 이게 일어나는 겁니다. 예를 들면 ‘불변성’ 그러면 이 하나님의 단순하심이 어떤 변하는 사물과 관계를 맺을 때 ‘아 이건 변하는데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구나’ 하고 불변성을 찾아내는 겁니다. 이해돼요? 이해돼야 되는데. 그 다음에 이 사람이 굉장히 나쁜 사람이야. 중국어로 얘기하면 ‘뿌어파오’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나쁜 사람과 알 수 없는 이 신비하신 하나님이 관계를 맺으실 때 이 사람을 나쁜 사람은 벌 주시고, 착한 사람은 복 주시는 걸 통해서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나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자비는 뭐냐? 비참해 이 인간이, 아주 비참해, 불쌍해 그런 인간을 향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고 동정하시는 것이 이것이 자비로 나타납니다. 그 다음에 어떤 사물이 있는데 이 사물은 얼마큼 살다가 죽어버려. 그래서 영원하지 않아. 이런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 영원이란 속성이 관계 속에서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되죠? 이런 식으로 해 가지고 이것들이 설명이 되는 겁니다. 무슨 소리인지 알죠?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김희찬 강도사님 어디 갔어요? 써. 거기 있지. 그래서 속성. 하나님께는 자기 자신을 그의 명칭 가운데 계시하실 뿐 아니라 신적 존재의 완전성 가운데 자신을 계시하신다. 줄치세요 이 하나님의 속성은 비공유적 절대적 속성과 이거 시험에 꼭 나옵니다. 김희찬 강도사님 다음 시간까지 내가 작년에 하늘영광교회 사경회에서 설교한 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설교한 게 있는데 에베소서였는데 바로 이거를 설교했어. 이게 뭔지 알아야 되잖아 그럼 어디 가면 안되고 거기 있어서 들어야 된단 말이야. 김영래 전도사한테 물어봐. 여기에서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설교를 했거든요. 이거를 홍보실에서 찾아 달라 그래가지고 여기 교리반 까페에 올려서 다운받을 수 있게 하세요. 들어가서 꼭 들으세요. 숙제를 내 주고 그러면 여러분 또 스트레스 막 받을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를 하는데 꼭 들으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책을 몇 권 읽어도 알 수 없는 것을 그 순간에 딱 하고 안다 이겁니다. 얼마나 중요해. 참 그렇다니까 진짜. 그것도 무료잖아 무료. 얼마나 좋아 그죠? 철학 아카데미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철학 강좌 듣는데 입회비가 99만원입니다. 졸도하는 줄 알았어요. 그게 지금 들어갈 까 말 까를 몇 달 째 망설이고 있어요. 6개월 째 망설이고 있어요. 99만원이 일 년치 일 년 안 들어도 그냥 날아가. 그러면 이제 하나만 들어야 되겠다 그러면 하나에는 22만원이에요. 졸도하는 거에요. 이건 5만원이잖아요 5만원. 교리반 5만원. 그런데 그 오만원도 다 김밥값이에요. 아니 5만원도 아니다 3만원, 이만원? 왜냐하면 신약개관학교 그 쪽은 5만원 받거든. 여기는 대개 이 학원은 싸게 받는 학원이에요. 거긴 강사료를 주니까. 여긴 강사료를 안 주니까. 이거는 또 사은품이잖아. 그냥 다운받으라고 고맙게 생각을 해야지. 자, 비공유적 속성은 피조물에게서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으나 공유적 속성은 피조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속성이다.
절대적 속성. 첫 째 하나님의 독립성. 이 속성은 줄 치세요.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 안에서 자신의 존재의 기반을 가지시며 인간과는 달리 자기 자신 외에 어떤 것에도 의존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계속 줄치세요. 존재에 있어서 독립적이시며 모든 덕과 행위에 있어서 독립적이시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덕과 행위에 있어서 독립적이시다라는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누구에게 인정받으셔야 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제가 인간을 이렇게 통치해도 되겠습니까?’ 물어보고 허락을 받아야 될 그런 사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에서 말하자면 독립적이라는 겁니다. 모든 피조물들로 하여금 자신을 의존하도록 하신다. 이런 개념은 여호와라는 명칭에서도 나타난다. 여호와가 뭐냐면 스스로 있는 자다. 그래서 이제 야훼라는 이름이 그게 아마 ‘있다’ 에서 온 것일 가능성이 많다 이렇게 봅니다.
그 다음에 불변성, 줄 치세요 이 시험에 꼭 나옵니다. 안 나오면 그 시험은 무효입니다. 그 정도로 이 6과는 중요하다 이겁니다. 이 정도로 말 한게 없었잖아요 이제까지. 성경은 하나님의 불변하심을 가르쳐 준다 줄 치세요 그의 신적 존재와 완전성에 있어서 영원 동일하시며 목적 약속에 있어서도 그러하시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활동 하시지 않으시는 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왕래하시며 숨기도 하시며 나타내시기도 하신다. 종종 하나님은 후회하기도 한다고 하지만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해 인간적 화법으로 표현한 것이므로 실제로 인간편에서의 변화를 지적한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성경에 보면 그 상반된 게 나온 적이 있잖아요 하나의 예를 들어봅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셔요 안 하셔요? 그런데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그러면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백세에 낳은 아들 독자 이삭을 나에게 제물로 바쳐라’ 그러십니다. 그래서 ‘아 그럼 시험하시는 구나’ 하고 봤더니 야고보서에서 보니까 하나님은 친히 인간을 시험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거든요 이거 어떻게 설명해야 될 것이냐 이거죠 요거는 성경기록의 특수성과 관련이 된 겁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잘 들어보세요 자 여기보세요 성경읽기인데 무엇과 관련 있냐하면 이 성경은 누가 쓰신 것이죠? 하나님이. 하나님이 물론 성령을 통해서 쓰셨죠. ‘홀리 스피릿’. 누구에게 쓰신 것이죠? 인간에게 쓰신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쓰셨지만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을 통해서 쓰신 겁니다. 그러니까 기록 할 때도 인간이라는 요소가 들어오고 받는 사람 편에도 인간이라는 요소가 개입이 되어 있는 겁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이런거죠. 성경 안에는 저자이신 하나님의 관점에 성경 안에는 두 관점이 혼재합니다. 그 관점이 뭐냐 하면 하나는 신적 관점과 그 다음에 인간적 관점이 혼재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원래의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점에서 기본적인 관점은 신적 관점인데, 이거를 쓰는 사람이 인간이고 전달받는 사람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기록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인간적인 관점이 함께 혼재한다는 겁니다. 자 이런 걸 얘기해 보죠. 태양이 어느 쪽에서 떠서 어느 쪽으로 이동해서 마지막에 사라지죠?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사라지죠.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면 초등학교 애들도 웃잖아요. 마치 그거는 이런 거 아니에요? ‘어 이방이 도네 어 또 도네 뒤집히네’ 그것과 똑같잖아요. 언제 태양이 도냐 얘기에요 태양은 가만있고 지구가 자기가 스스로 자전을 하는 거지. 그런데 우리 뭐라 그래요? 해가 공중에 떴을 때 만나자 해가 중천에 떴다. 해가 빨리도 지네 그것을 가리켜서 본질적 관점, 현상적 관점이라 합니다. 그게 혼재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후회하실 리가 있겠어요? 인간이 하나님의 후회를 느낀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그런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해되죠? 그러면 두 가지 나오는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시험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다 두고왔네. 자 선물 받은 게 있는데 누가 한 번 나와 볼까? 다시 한 번 나와보세요. 선물 받았는데 얼마짜리인지 나도 모르겠어요. 몽블랑입니다. 수업해야 되는데 좀 가지고 있어 그리고 줬어요 내가 5분 만에 ‘그래 고마워’ 하고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 자매가 시험에 들 이유가 있어요 없어요? 없죠? 그런데 10년 쯤 지났어요 그런데 이 자매가 가지고 써 보니까 너무 좋은 겁니다. 이게 뭐 광내고 닦고 A/S받고 그 다음에 심 다 쓴 다음에 갈아 끼고 해 가지고 이 자매의 재산 목록 1호가 된 겁니다. 그래서 잘 때도 항상 품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보고 뽀뽀하고 ‘아-’ 이럽니다. 그런데 10년 후에 나타나서 이제는 안 오니까 맨 처음에는 그냥 잘 보관했다가 안 오니까 이거는 뭐 ‘아-’ 너무 좋은 거에요. 수업할 때도 이게 없으면 필기가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나 그거줘’ 그럽니다. 이 자매가 아무렇지도 않겠어요 아니면 약간 시험에 들겠어요? 그런데 그 원인이 뭐죠? 집착과 애착, 그리고 소유관계에 대한 불분명한 생각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방금 딱 태어났는데 내가 너한테 줬었는데 가져갈게. 그러면 아브라함이 물론 이제 배가 이렇게 불러서 만졌고 귀도 대 봤으니까 섭섭하겠지만 그렇게 안 섭섭할 텐데 다 자랐어요 청년이 다 된 겁니다. 바쳐라 그러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것이니까 시험에 들면 안 되죠. 그들이 시험에 든 이유는 뭣 때문이냐면 시험에 들었다고 묘사한 이유는 뭐냐 하면 모세가 쓸 때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신적 관점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점을 가지고 기술을 한 겁니다. 그 관점이 혼재를 하는데 이 두 개를 거꾸로 해석을 하면 복잡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학공부가 필요하다 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이해 하실수 있죠? 아주 쉽게 얘기하는 겁니다. 이해되죠? 그리고 그 다음에 또 뭐라 그러느냐면 우리들이 ‘적응’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영어로는 ‘어커머데이션’ 라틴어로는 아꼼모나치오라고 얘기하는데 그게 뭐냐하면 우리말 눈높이로 얘기하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 성도의 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걔가 공부를 잘 못했어요. 그래서 200+300을 해 봐 얼마야? 그러니까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 그럼 200+200+100해봐. 선생님 난 더 모르겠어요. 그래서 얘야 그러면 내가 예를 들어볼게. 아빠가 200원을 줬어 그런데 엄마도 200원을 또 줬어 그럼 얼마야? 그러니까 400 금방 얘기하는 겁니다. 삼촌이 5백원을 줬어 100원짜리 다섯 개. 좋아 안 좋아? 좋죠. 그리고 100원어치 떡볶이를 사 먹었어 그럼 얼마 400. 똑같은 이야기 잖아요. 200+200은 못 알아듣고 ‘엄마가’ 라는 말을 덧 붙여서 200원, 아빠가 200원 이러니까 400이 금방 계산이 나오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 가리켜서 ‘어컴머데이션’ ‘적응’이라고 얘기합니다. 그 아이의 눈 높이에 맞춰서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그를 시험하셨다’ 이게 결국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들어간 상태에서 모세로 하여금 기록을 하게 하셨습니다. ‘어컴머데이션’ ‘적응’이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무한성은 뭐냐 하면 줄 치세요. 하나님이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몇 가지 관련시켜서 들어갑시다. 자 굉장히 중요합니다. 절대적 완전성, 옆에다 괄호치고(존재와 관련), 그 다음에 영원성(시간과 관련), 이렇게 쓰세요. 무변성(장소와 관련) 이렇게 되는 겁니다. 무한성이 존재와 관련했을 때는 완전성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관련시키는 무한성을 생각할 때 절대적 완전성이라고 부른다. 지혜, 지식, 선, 사랑, 의, 거룩하심에 있어서 제한이 없으시다. 무한정이시다. 이것이 바로 완전 정도에 있어서 완전하신 존재가 되신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무슨 얘기인지 알아요? 그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의 원인이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자 그럼 예를 들어볼게요. 형제 나와요. 형제를 또 이용을 해서 인터뷰를 하겠어요. 지금 또 혹시 모르니까 자기 소개해봐. 2교구 3팀 1순 이동훈입니다. 그러면 결혼 했어요? 결혼 안 했어요? 그럼 장년 2교구가 아니라 청년 2교구라는 얘기죠? 애인 있어요? 앞으로 생기기를 원해요? 영원히 안 생기길 원해요? 생기길 원하죠? 그럼 이제 얘기할 게. 좋으면 좋다고 해. 자매가 하나있어. 대부분 남자들이 가서 그냥 별짓을 다하면서 유혹을 하잖아요. 그런데 어느 자매가 형제가 교회에 딱 오는 날 완전히 형제한테 빠졌어. 아직은 좋다 나쁘다라고 말 할 수 없겠지. 누가 빠졌냐고 얘기를 안 했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너무 너무 예쁜 자매야. 좋아 안 좋아? 좋아요. 원래 얼굴이 예쁜 사람은 신앙이 별로잖아. 그런데 이 자매는 신앙도 아주 뛰어나. 좋아 안 좋아? 이 얼굴도 예쁘고 신앙도 좋으면 대개 집안은 별 볼 일 없거든. 그런데 이 자매는 집안도 빵빵해. 좋아 안 좋아? 원래 또 그런 게 다 있고 집안이 빵빵하면 사실은 돈은 별로 없거든. 실속은 없거든. 그런데 돈도 많아. 그런 걸 모두 갖춘 자매들은 대개 성격이 유별나잖아. 그런데 이 자매는 천사같이 착해. 좋아 안 좋아? 어쩔 줄 모르네. 계속 올라가니까 어쩔 줄 모르네. 그런데 대개 그런 걸 다 갖춘 자매들은 그냥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려 그러지 사명감은 없거든. 그런데 형제와 결혼해서 선교의 부푼 꿈을 가지고 있거든 좋아 안 좋아? 너무 좋잖아. 그런데다가 그 정도 사람이 되면은 형제를 그렇게 뜨겁게 좋아할 리는 별로 없잖아. 그치? 그런데 뜨겁게 좋아해. 너무 너무 사랑해. 너무 너무 결혼하고 싶어 하고, 형제가 아프다 그러면 생명도 줄 정도로 사랑해. 좋아 안 좋아? 뭐 말을 못 잇네. 마지막에 하나 더.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딱 한 사람 더 있어.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아니 한 여자가 형제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형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 또 더 있다고. 그러니까 제가 두 사람을? 그게 아니라 갑자기 잘 알아듣다가 마지막에 못 알아듣는 척 해. 그 자매가 형제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또 다른 남자도 좋아한다 이거야. 그건 좋아하는 게 아니죠. 그게 뭐냐 하면 완전성이 깨진 거에요. 무슨 뜻인지 아세요? 완전성이 깨진 거에요. 그럴 때는 이때까지 이야기한 모든 것에서 계속 업이 됐는데 마지막에는 한 번에 와르르르르 무너진거에요. 다 의미가 없는 거에요. 잘 생긴 거, 돈 많은 거, 성격 좋은 거, 신앙 좋은 거 다 필요가 없는거에요. 와르르르 무너져 버리는 거죠. 그게 뭐냐 하면 완전성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완전성이 확보 될 때에는 뷰티의 원인이 되는 겁니다. 아주 아름다운 게 되는 겁니다. 완전성과 뷰티는 이런 관계가 있는 겁니다. 자 우리 이 형제가 그런 자매를 꼭 만날 수 있도록 우리 박수로 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 다음 영원성. 줄 치세요. 무한성을 시간과 관련시켜 말할 때 영원성이라고 부른다. 영원이란 성경에서는 항상 끝없는 기간으로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시간을 초월하시므로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에게는 과거나 미래는 없고 영원한 현재만 있을 뿐이다. 자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인류 역사상 영원에 대한 개념이 처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영원에 대한 인간의 개념은 딱 둘 중에 하나지 다른 건 없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첫 째는 선적 영원, 두 번 째는 뭐냐 하면 원적 영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스트레이트로 쫙 가는 겁니다. 이것이 무한대로 가는 것이 영원이라고 합니다. 원적 영원은 뭐냐 하면 가긴 가는데 이렇게 도는 겁니다. 이걸 뭐라고 얘기하죠? 윤회라고 얘기하잖아요. 윤회 윤회라고 얘기합니다. 쥐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 왜 그러냐면 그게 혹시 우리 엄마가 죽어서 쥐가 되었을 수 도 있는 겁니다. 그거 그렇게 하면 안되는거죠. 그런데 이제 설악산에 가서 신흥사 앞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셨어요. 커피집 주인이 파리채를 들고 다니면서 파리를 막 잡는 거에요. 아니 당신 불자 아니냐고 그러니까. 우물쭈물해요. 그렇게 살생을 하냐고 나는 목사지만 그랬더니 ‘아 그게 아니라요 저도 이게 잘 못 하는 건줄 알았는데요 우리 스님들이요 나보고 그건 잘못 하는 게 아니래요’ 왜? 파리보다 더 나쁜 걸로 환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고 놈을 죽이면 이 파리가 더 좋은 곳으로 환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라고 합니다. 완전 새로운 해석이었어요. 참 배우고 볼 일 이에요. 이게 윤회에요 윤회. 윤회라 그러거든요. 이거나 이거나 다 기독교적인게 아니에요. 기독교적인 것은 뭐냐 하면 이렇게 직선적인 것도 아니고, 원적인 윤회도 아니고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영원은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 자체가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자 그 다음 무변성. 줄 치세요 공간과 관련시킬 때 무변성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든지 계시며 모든 공간을 채우며 피조물가운데 거하시지만 공간에 의해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그러니까 어디에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런 뜻입니다.
단일성, 단순성이라 그러는데 아까 설명했죠? 줄 치세요. 단순성이란 영과 육으로 형성된 것처럼 여러 부분의 성질로 이루어지신 분이 아니므로 나누이지 않으시는 분임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삼위란 하나님의 본체가 여러 부분의 본질로 구성되어진 것이라는 말도 아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존재는 각 위에 종속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 속성은 하나이며 하나님은 생명이며 빛이며 사랑이며 의로우시며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자 오늘 여기까지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