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복음주의 동향
Ⅰ. 들어가는 말
저는 한번 여러분들에게 이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이런 비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커다란 배를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아주 커다란 배는 길이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약330미터가 된다고 하니까 축구장 세 개를 나란히 늘어놓아도 그 길이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긴 배지요. 아주 큰 여객선 같은 데는 거기에 8,000명에서 9,000명이 탈수 있는 그런 배를 만든다고 합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항공모함에서 사람을 잃어버리면 찾는데 육 개월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렇게 아주 엄청나게 큰 배를 타고 어디론가 항해를 하고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우리는 아마 거기서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사람을 찾기도 하고 또 사람들이 모여서 3층에서 지하 7층으로 내려가려면 이 길이 더 편한 길이다. 저 길이 더 편한 길이라고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그렇게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어도 큰 배가 어디로 가는지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배속에서 아무리 많은 의견을 나누어도 잘 알 수 없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미세한 기독교 교리들을 배우고 또 거기에서 성화의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쓰다보면 우리의 신앙이 소아적이 되어서 그래서 우리의 내면화된 개인주의적인 종교로 치우치게 되기가 십상입니다. 또 지평을 좀 넓혀서 교회와의 관계 속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그 교회도 우리 개 교회를 넘어설 수 없고 또 다른 교회와 함께 본다고 하더라도 결국 교회라는 배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 그럴 수는 없지만 종종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은 꼭대기로 올라가서 그래서 넓은 바다가 함께 보이고 그것도 부족하면 인공위성을 띄어서 양쪽 대륙을 함께 보면서 그 배가 GPS선상에 어디를 통과하고 있는지를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이 세계와 교회와의 연관 속에서 우리가 어디로 이 시대와 함께 흘러가고 있고, 그리고 우리의 배는 올바르게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가야할 항로를 올바로 정하고 끊임없이 세계적인 관계 속에서 교회가 어느 지점을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그 배안에서 올바로 배를 작동하고 항해를 하는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함께 기울일 때 우리는 온전한 항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나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다가 두고 싶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단지 개인의 성화에 머무르고 그리고 교회의 발전만을 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교회는 세상을 위하여 있고 세상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아는 것만큼 또한 세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높은 인공위성을 띄우고 GPS선상에서 한꺼번에 이 시대의 사조와 조류 그리고 그 바다위에 떠있는 배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처럼 우리시대의 교회의 위치를 확인하고 나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전할 이 강의를 하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양의 책을 오랫동안 읽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이런 커다란 지도를 여러분들에게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개중에 어떤 그리스도인은 일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이렇게 우주 공간에서 쏘아내려 보내는 이러한 GPS System을 통해서 이 세상과 교회와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한 번도 그 지도를 보지 못한 채 인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배의 성능과 효력도 중요하지만 그 배가 어디로 향하는가 하는 방향성은 그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방향을 올바로 두면 힘이 모자라도 같은 방향으로 가다가 멈출 수 있지만 만약에 우리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가지고 있는 많은 능력과 힘이 오히려 더 하나님의 나라의 뜻을 이루는데 역행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Ⅱ. 참된 교회의 조건
A. 구성적 요소
1.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먼저 이 엄청난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역사를 관통하기 전에 먼저 참된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죠. 저는 여기에서 모든 개혁주의론을 반복할 수는 없지만 간단하게 설명해서 교회의 구성적인 요소를 알아보자는 것이죠. 그러면 교회는 결국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성도들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후의 강의를 들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이 그리스도인이 누군가 하는 정위(正位)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우리들이 올바로 정의하지 아니하면 그러면 우리들에게 커다란 혼란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 지금 성경과 개혁신앙을 떠난 사람들의 일반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이 그리스도인이 누군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자유롭고 일단은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 심지어는 출석하지 않아도 기독교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고 호의적인 모든 사람을 기독교인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현실적인 모임이 교회라고 보는 것이죠.
그러나 성경의 시각은 다릅니다. 성경은 우리를 이 교회를 영적인 시각에서 보도록 우리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교회의 교회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거듭나고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참된 정의입니다. 바로 이 조건을 채우는 시점에서 우리는 중생과 회심이라는 교리를 만나게 되고 이 중생과 회심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 때는 결코 소유한 적이 없었던 경건을 소유하게 됩니다. ‘삐에따스’라고 불리는 이 경건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정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떨리는 두려움과 이끌리는 사랑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께 순종할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내적으로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완전히 고치셔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분별할 수 있는 놀라운 지혜를 주신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거듭난 사람이고 그리고 이 사람이 바로 회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삶을 살아가는데 이에 이 사람의 중요한 지침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2. 목회자는 누구인가?
또 하나의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속에 목회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목회자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미국을 기준으로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목회자의 정체성은 매우 분명했습니다. 진리를 증거 하는 진리와 관계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후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목회자의 독특한 정체 규정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저 우리의 종교생활을 돕고 그리고 우리에게 기독교라는 종교를 서비스해주는 사람정도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개의 중요한 축.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 그리스도인 속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 중 목회자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들이 무너지면서 이제는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의 구분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B. 고백적 요소
1. 교리의 중요성
교회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바로 고백적인 요소입니다. 이 고백적인 요소는 믿음의 규칙에 대한 고백적 요소가 있고 또 하나는 생활의 교훈으로써의 고백적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규칙으로서의 고백적 요소는 그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믿되 그가 구체적으로 그 진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 왜 그 하나님은 마호멧교나 혹은 불교나 혹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런 신하고는 다른 어떤 존재인가? 하는 구체성이 있는 믿음의 규칙들인 것입니다. 이것들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믿음의 교리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믿음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사람의 삶은 그가 무엇을 진리라고 믿고 있느냐는 것에 의해서 좌우되기 때문인 것이죠.
2. 고백의 중요성
그래서 나오는 중요한 또 하나의 고백이 말하자면 생활의 교훈에 관한 고백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지를 바로 알고 그리고 삶으로써 그것을 언어와 삶으로써 표출하고 그것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드러내보여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생활이고 우리의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Ⅲ. 미국의 복음주의와 산업혁명
자, 이제 저는 할 수만 있으면 사실은 중세역사의 마지막 부분부터 시작을 해서 그리고 그 중세의 마지막 부분인 파도치는 중세교회사 시대의 마지막과 그리고 넘어와서 르네상스와 인문주의의 태동 그리고 그 인문주의 이후의 종교개혁에 이르는 역사까지 모두 다룬 후에 종교개혁, 종교개혁 이후에 일어나는 개혁파 정통주의의 화려한 신학의 발전사, 그리로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이성주의의 침투, 거기에서 기독교 신앙이 좌초되면서 들어오는 데카르트와 칸트를 필두로 하는 근대사상의 개벽,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계몽주의, 이렇게 다루고 싶습니다만 그것을 도저히 다룰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다 잘라내고 계몽주의부터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미국의 역사를 잠시 훑으면서 복음주의와 산업혁명의 역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필이면 그 많은 나라들 중에 왜 기독교의 원조국가도 아닌 미국을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죠.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유럽의 많은 기독교 국가들이 있지만 그 나라하고 우리하고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어요. 우리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미국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지금도 사실은 미국과 함께 관계를 맺으면서 국가가 발전해왔고 지금도 먹고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미국에 대한 의존도는 여러분들이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을 정도로 의존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현상들은 곧바로 한국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죠.
또 구라파에 있는 기독교 국가 속에서는 무엇인가 좋은 의미에서든지 나쁜 의미에서든지 새로운 기독교의 운동들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제를 일으키고 말썽을 일으키려고 해도 기독교의 기운이 남아있어야지만 문제와 말썽을 일으키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아직 기독교의 힘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렇게 문제도 일으키고 또 문제를 해결하기도하고 전체적으로는 기울어져가고 있지만 그래도 뭔가 영향력 있는 일들을 해내게 되는 것이죠.
A. 산업혁명의 특성
Industrial Revolution-프랑스학자들과 아놀드 토인비
미국의 복음주의는 산업혁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영국의 산업혁명은 18세기에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의 산업혁명과 발전의 과정은 영국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죠. 자, 영국을 포함한 구라파의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게 되고 이것이 18세기의 일입니다.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프랑스학자들이 가장 먼저 사용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는 아놀드 토인비라는 사람에 의해서 이 말이 보편화되게 되었습니다. 1760에서 1780년까지의 영국의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용어를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면서 이런 현상들은 사실은 영국에서나 그리고 영국을 기준으로 18세기, 미국은 19세기 중반 경에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되니까 100년 정도의 어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어나는 양상들은 거의 대동소이하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1. 기술의 발전
산업혁명의 특징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기술의 발전입니다. 예전까지는 그저 존재하고 있는 나무나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생산 활동을 했는데 이제는 철, 강철 같은 새로운 기본소재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석탄, 증기기관차, 석유, 내연기관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이용해서 이제 기계가 발달하게 되어서 공장제 공업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것이지요.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배운 제니의 방적기, 동력직조기 같이 인력을 적게 들이면서도 엄청나게 많은 옷감 같은 것들을 생산해낼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공장제의 발전, 증기기관차, 증기선, 자동차, 그리고 이후의 20세기에 들어와서 발달된 비행기, 전신, 라디오, 등을 포함한 이 모든 도구들은 교통과 통신에 엄청난 발달을 가져오게 되고 이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해서 인류역사 면면히 이어져오는 그런 혈연공동체, 지연공동체의 개념들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2. 도시의 형성
그리고 또 하나는 도시화가 있습니다. 이러한 도시화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모이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공장제 공업이 이루어지면서 이제 예전에는 모든 물건을 만들 때 자기 스스로 생산해서 조립하고 마지막에 포장까지 해서 팔고 경영까지 자기가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가격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시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도시에 가면 생산에 필요한 많은 인프라들이 구축되어있고 손쉽게 노동력을 구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되면서 도시화와 함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하나의 제품이 생산될 때에도 어떤 한 사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는 여러 가지 흩어져있는 생산의 요소들을 결합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죠. 이러면서 이제 상대주의가 도시화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번지게 되는 것입니다.
3. 산업의 분업화
또 하나는 산업이 엄청나게 분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생산설비들이 기계화되고 각각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이 말하자면 생산 재료가 되어서 그 생산재가 최종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데에 이바지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전에는 한 사람이 소를 잡고 가죽을 무두질을 하고 말려서 구두를 만들고 또 꿰매고 그 다음에 끈을 만들고 포장을 해서 시장에 내다팔고 망가졌다고 하면 고쳐주고 하는 이러한 통일체적인 그리고 신분과 신분이 분명히 노출되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아는 인간관계 속에서의 물건이 거래되던 이런 관행이 깨뜨려지고 이제는 밑창을 만드는 사람은 계속 만드는 것이죠. 이러면서 결국은 같은 일을 해도 같은 공장에서 밑창 만드는 사람하고 위 뚜껑 만드는 사람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에요. 그저 밑창을 만들어서 납품을 하면 되고 뚜껑을 만들어서 납품을 하면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이러면서 인간은 점점 이런 고립들을 가져오게 된 것이에요.
4. 문화의 변혁
a. 외적인 변화
1) 관계중심 - 생산중심
이보다도 더 큰 문제는 폭넓은 사회질서에서의 문화적 변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외적인 변화와 내적인 변화로 나뉘게 되는데 외적인 변화는 먼저 관계 중심에서 생산중심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씨족사회를 이루면서 한 동네에 모여 살았어요. 그리고 생산 활동이라는 것이 일만하는 것이 아니라 축제와 여가생활 이 모든 것이 생산하고 연결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땅을 경작하면서 함께 모내는 것을 보았지요. 그러면 모를 내는 노래가 있어요. 그것은 흥을 돋우는 사람이 꽹과리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춤을 추듯이 모를 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일을 확 해버리고 그 다음에 ‘나는 쉬는 시간이야’ 그러면서 노는 것이 아니라 여가를 즐기는 것, 축제 이 모든 것들이 생산 활동과 연결이 되는 것이죠. 가을이 되면 온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천지신명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그리고 자신들이 어깨춤을 추고 그리고 온 동네사람들이 꽹과리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렇게 흥에 겨워서 노는 것처럼 일을 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이런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생산과 함께 여가 축제, 공동체의 연합의식 이런 것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생산형태를 만들어내요. 그러나 이제 이런 시대는 지나가 버린 것이죠. 그래서 이제는 공장제 공업이 도시로 몰리게 되니까 사람들이 취업하고 먹고 살려면 도시로 가야 되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삶이 고달프기는 하지만 우선 도시는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지게 짐을 지고 가난하게 공장을 다니고 하는 삶이 고달프기는 하지만 그러나 최소한 우리 60년대에 서울에 올라오면 수돗물에 세수를 했단 말이죠. 수돗물에 세수를 해서 비록 공장을 다니고 가난한 처녀라 할지라도 시골에 내려가면 돈이 많고 우물물에 머리 감는 애들하고는 때깔이 틀렸단 말이에요. 그런 똑같은 일들이 구라파에서도 벌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도시로, 도시로 모이게 되는 것이죠.
2) 가족관계의 해체
그러나 이제 뿐만 아닙니다. 가족구조의 붕괴를 가져왔습니다. 영국의 경우를 미루어보자면 랑카스터와 미들랜드 같은 산업도시가 생겼을 때에 사람들은 자기네가 원래 살던 고향에서 가까운 곳에 취업을 했고 신흥도시에는 안 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가족과 헤어져야하는 일들도 일어나게 된 것이죠. 엄마 찾아 삼만 리라는 책이 있잖아요. 그것도 보면 결국은 이태리에 사는 그 아이의 엄마가 돈을 벌러 가는 이야기에요. 그 당시의 이태리를 완전히 가난하고 지지리 궁상인 나라였고 그렇게 부자나라에 돈을 벌러 간 그 나라가 아르헨티나였어요. 아르헨티나는 1910년도에 지하철이 있었습니다. 굉장한 나라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였어요. 그렇게 나라가 정치를 잘못하면 그 꼴이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가족 구조들이 붕괴되게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생산 활동에 종사해서 거기에서 밀려나면 시골에서 땅이나 파면서 살아야하는데 더군다나 이제는 자기가 커다란 땅을 가지고 있어도 거기에서 생산해내는 많은 곡식이나 재화들로 예전처럼 먹고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아요. 더 많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것들이 소비하면서 살고자하는 욕구가 생겨나는데 웬만하면 옥수수를 한 리어카를 가져다가 팔아도 비누 한 장을 사기가 힘들다고 생각하면 그러면 농촌에서 살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제 사람들이 도시로, 도시로 이동하게 되었고 미국은 19세기에 경험했고 우리나라는 1950년대 전쟁을 치른 후에 1960년대에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서울역에 나가보면 꿔다놓은 촌닭 같은 컨트리우스한 처녀들이 많이 보였어요. 그런 시절이 백년 후에 우리나라에 오게 된 것이에요.
3) 새로운 계급질서
자, 이제 이렇게 또 하나의 변화는 새로운 계급의 질서가 생겨난 것이죠. 예전에도 물론 계급 질서가 있었지만 일단 한 동리에서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살면 그렇게 중요한 계급의 구분이 아니고 도덕적인 구분이었죠. 그러나 이제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과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 사이에 확연한 구분이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거기에서 또 그런 공장을 하면서 자본을 모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를 점점 향상시켜 갔는데 이 사람들이 바로 부르주아라는 사람들이에요. 이런 수많은 갈등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죠.
b. 내적인 변화
1) 자연 정복의 자신감
내적인 변화도 일어났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연을 이용하고 정복할 수 있다는 인간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과학의 발달로 말미암고 기계의 발전으로 말미암은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인간이 기계와 공업을 이용해서 예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자연재해 같은 것들을 피하고 자연을 가공하고 바꾸어서 인간의 용도에 맞게끔 쓸 수 있는 능력들이 생겨나면서 좋게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그것이 교만으로 치우치게 된 것이죠. 이렇게 되면서 인간들은 점점 더 물질문명을 위해서 더 많이 자기 자신을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결과가 되었던 것이죠.
2) 심리적 고독과 공황
내적으로는 이 사람들이 외로움과 공황의 상태가 이제 시작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관계가 다 깨뜨려지고 직장 생활 속에서 사람을 만나는 그 관계가 예전에 농촌에서 함께 어울려 살던 가족들, 그리고 친척들과의 그런 인간관계 속에 속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살면서 사람들은 생산의 필요를 위해서 만나지만 마음은 트지 않는 사회가 되고 집단 거주형태의 단지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은 더 많이 심해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함께 논과 밭을 마주하고 그리고 함께 어울리면서 살던 이러한 옛날의 문화는 사라져버리고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그런 단절들을 가져오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인간은 그 남는 시간들을 철저하게 노동하고 그리고 혹사당하면서 그렇게 근대 물질문명을 이루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B.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이러한 계몽주의와 이런 산업혁명은 계몽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 계몽주의라는 것은 17세기와 18세기에 유럽에서 생겨난 지적 운동입니다. 영어로 Enlightenment라고 하는데 그렇게만 쓰면 Movement 없이도 그저 계몽주의 혹은 계몽운동이라고 번역이 됩니다. Enlightenment라는 것은 어두운데 빛을 비춘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이름을 지어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 계몽주의는 어두움을 비추는 빛의 시기라는 것입니다. 그럼 그 어두움이라는 것이 무엇이죠? 그것이 바로 칸트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 스스로 묶여있던 미성년상태로부터 해방된 것이라는 것이에요. 두려움과 겁이 많아서 자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와 의지적 결단을 스스로 활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제 이 계몽주의 시대가 오자 이제 자신감이 생기면서 결단을 하고 용기를 내어서 자기의 의지와 자유를 되찾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계몽주의 운동은 그 뿌리를 멀리 르네상스로까지 우리를 데려갑니다. 그리고 그 르네상스는 다시 무엇에 대한 르네상스냐 하면 그리스 시대의, 폴리스시대의 그 인간다움 삶에 대한, 그것들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그런 회복을 꿈꾸는 그런 르네상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시대의 인간을 존엄한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중심의 사고방식과 그리고 그것을 다시 Revival하고 싶은 것이 르네상스라면 계몽주의는 그것이 구체적인 지적 운동으로 펼쳐진 것이고 그 계몽주의 운동은 바로 이 모든 만물과 사고의 중심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하는 기치를 내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이제 18세기, 19세기에 시민혁명의 중요한 이론적인 기반이 되고 그 치열한 피 묻은 시민혁명을 기반으로 생겨난 정치체계가 20세기의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에요. 이 역사가 아주 정교하게 흘러 내려오고 그 속에서 기독교가 어떻게 그러한 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오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과 그 역학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이라는 것이에요.
1. 이신론의 등장
그런데 이제 문제는 무엇입니까? 계몽주의라는 것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럽사회는 기독교로부터 완전히 결별할 수는 없었어요. 지금도 결별할 수는 없어요. 자, 헤어질 수도 없고 옛날처럼 돌아갈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타협을 해야 되겠지요. 그렇게 해서 태어난 하나의 신학사조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신론의 등장입니다. 신, 이성, 자연, 인간의 개념을 하나로 통합한 그러한 사상이 생겨난 것이죠. 이 이신론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이 모든 세계가 하나님에 의해서 설계되었다고 보고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 하나님은 놀라운 법칙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지 않고 세계에 안계시며 법칙을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에 그 법칙대로 움직이는 세상이고 따라서 우리는 신은 직접 이 세계 안에서 볼 수 없고 법칙만 볼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은 신실하시니까 법칙도 신실하겠죠? 그러니까 우리는 그 법칙을 충분히 이성으로 찾아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이신론은 결국 이성으로써 충분하지 더 이상 이성으로 설득되지 않는 진리들을 믿어야할 필요성을 부인하게 된 것이죠.
이러한 사상의 배경에는 중세 유럽에서 그때까지만 해도 기독교의 신학에서 세운 이 지적인 체계를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세상의 정치적인 체계는 그러한 지적 체계의 소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계몽주의가 들어오게 되자 인간 중심주의의 운동인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의해서 신랄한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계몽주의의 말하자면 시작이 되는 것이죠. 인간중심 사상은 다시 프란시스 베이컨,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의 경험과학과 르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특별히 미분과 적분을 발견한 라이프니츠, 그리고 똑같이 미분을 발견했지만 발표가 늦는 바람에 도둑맞은 것같이 되어버린 존 뉴턴의 과학, 이런 이론들은 이 우주 안에 아주 놀랍고 엄정한 법칙이 존재한다고 하는 그런 가설들을 입증해버렸어요. 그랬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깨닫게 되면서 이런 르네상스 속에서 재발견된 고전문화의 가치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인간이라는 것을 이제 교회 아래에 굴복하면서 있는 그러한 힘없는 민초와 같은 인간들이 아니라 단지 교회를 섬기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을 떠받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장난감 같은 존재가 아니라 굉장한 창조적 능력을 가진 존엄한 존재라는 사상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교회는 마땅히 성경 전체의 진리로써 하나님은 누구시고, 인간은 그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고, 바로 그 관계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존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그 속에 종교가들의 탐심이 개입하면서 그러면서 그런 신학의 체계들을 정치 체계화 시키면서 그들이 이 많은 사람들을 이 세상의 권력을 가진 왕들이나 절대군주들이 지배하는 그런 논리를 가지고 이 세상에 있는 신민들을 지배하게 된 것이죠. 이런 것들 속에서 인간은 짓밟히고 있다고 믿고 있었고 이런 짓밟힘 속에서 르네상스 운동의 물을 먹은 이 르네상스운동, 인문주의 운동을 거쳐서 과학의 발견과 그 다음에 새로운 법칙들의 발견, 수학의 발전, 우주천문학에 대한발전 이런 모든 자연학문들에 대한 발전은 이 세계 안에 과학이 발달되기 전까지는 발견하지 못했던 아주 엄정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굉장히 많은 부분을 입증해낸 것이죠. 그렇게 해서 결국은 신은 존재하지만 법칙으로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고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최고의 권위를 이성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이런 이성에 근거해서 사물을 보는 이러한 인문주의 내지는 르네상스 이후의 종교개혁 이후에 있었던 이런 지적인 운동들은 이제 종교에도 적용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이성과 모순되지 않는 종교를 고안해내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이신론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제 이신론은 비록 조직적인 종파운동은 아니었지만 약 2세기동안 영국과 프랑스에서 기독교와 충돌했습니다. 이신론자들은 어떠한 종교적 진리도 만족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진리는 모든 이성적인 존재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믿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성을 기울여서 탐구하면 모두 발견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주라는 기계를 만들고 있는 유일신이 존재했고 이 신이 어떤 상벌의 체계를 주관하여 인간은 덕과 경건을 실행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2. 경험주의와 사회계약설의 등장
자, 여기까지만 해도 비교적 온건한 그러한 사상이 되지요. 그러나 이제 결국 이성이 최고의 위치에 올라가고 모든 것을 이성이 판별할 수 있다는 전제를 세우게 되자 이제 회의론, 무신론, 유물론, 이신론자들은 이제 자연 종교를 뛰어넘어서 급진적인 사상들이 이 이신론 속에서 쏟아져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후에 경험주의라는 것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데이비드 흄과 칸트, 그 이후에는 버클리나 퍼스월드 이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러분들이 잘 아는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경험주의 철학운동들을 여러분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a. 경험주의 철학의 인간관
1) 인간에 대한 중립적 이해
이러한 경험주의 운동들은 이제 근대산업사회로 넘어오는 아주 중요한 사유의 근거들을 제시했고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제껏 까지 중세이후에 종교개혁시대를 지나면서도 그들이 보기에 탈피하지 못했던 인간관에 대해서 획기적인 이해의 분기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전까지는 인간을 태어날 때에 어떤 상태에 태어나느냐에 늘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양에서 인간이 원래 선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느냐 악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느냐는 성선설, 성악설에 대한 그런 이야기하고 아주 유사한 것이죠. 구라파를 지배하고 있었던 그 당시의 기본적인 기독교인들의 생각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지고 태어나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 기독교 세계에서의 보편적인 합의였습니다. 그러나 이 경험주의 철학이 나오게 되면서 이런 인간관이 잘못되었다고 시각을 교정해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에 의하면 이제 이러한 인간에 대한 선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인간이라는 것은 ‘따빌라라싸’ 같은 존재라는 것이죠. ‘따빌라라싸’는 라틴어로 백색 서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글자도 쓰이지 않은 깨끗한 중립상태에서 인간이 태어나고 그 인간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배우느냐에 의해서 거기에 그려지게 된다고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인간 본성이 선하고 악하고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중립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이죠.
2) 인간 본성의 선, 악 논쟁 종지부 “행복추구의 존재”
그러면 한 인간이 악하게 된 것은 그가 경험하고 살아온 그 사회의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그러면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를 논하고 그 위에 어떤 신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논리를 이끄는 것은 모순이라고 보고 인간은 그렇게 복잡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은 그냥 중립적인 상태에서 태어나서 할 수만 있으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가는 아주 단순한 존재일 뿐이라고 인간을 규정하게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각 개인의 세계에 대한 경험에 따라 백색 서판에서 태어난 인간의 빈곳이 채워지고 개성들이 창조된다고 보았던 것이죠. 따라서 선, 원죄, 이런 것들이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사상들은 현실성이 없다고 보고 토마스 홉스 같은 철학자들은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쾌락과 고통에만 관심이 있고 여기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해서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다만 생존과 쾌락을 극대화하는 그 일에 관심이 있다는 그런 인간관을 만들어 낸 것이에요.
3) 국가론에 영향을 끼침
b. 사회계약설의 등장
1) 국가 구성에 있어서 인간의 지위 재발견
이런 식의 인간관은 결국은 이제 사회계약설의 등장을 가져오게 됩니다. 예전에 국가 구성에 있어서의 인간의 지위에서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인간이 세운 국가는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 위에 있는 신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를 본뜬 것이라고 생각했고 영원한 질서의 모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이제 그것은 각자 자연권과 자기의 이익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론은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성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이런 경험주의적인 인간관과 이제 고전적으로 내려오던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국가관과 결별하면서 이 경험주의에서 인간관과 결합되면서 그들은 새로운 국가관을 만들어 내었어요.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장자크 루소, 토마스 홉스, 존 로크 등을 통해서 이어지는 사회계약설이라고 하는 것이에요. 이 사회계약설에 따르면 결국은 인간이라고 하는 실제 상황이 사회와 계약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제 인간은 이렇게 사회에 태어났고 그리고 국가는 그와 계약을 맺어서 이것은 신의 뜻에 의해서 맺어진 계약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계약 속에서 국가는 백성에 대해서 의무를 다하고 백성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하면서 이루어져야 되는데 실제의 역사의 현실이 그렇게 그것을 계약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의무를 각자 충실하냐하면 충실하지 않거든요.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주범이 이 백성들이 아니라, 백성들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세금을 내지 않으면 수탈을 당하기 때문에 이행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군대 가라고 그러면 끌려나와야지 자기가 무슨 통뼈에요? 어쩔 수 없지요. 그런데 국가는 얼마든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결국은 피해를 당하는 쪽은 백성들 쪽이었어요.
2) 개혁과 혁명: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이어짐
그래서 여기에 나오게 된 것이 뭐냐 하면 결국은 이러한 계몽주의의 발전은 비판과 개혁, 마침내는 사회계약설을 뛰어넘어서 혁명을 지향하게 된 것이죠. 로크, 밴담, 그리고 프랑스의 몽테스키외, 그리고 볼테르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 같은 사람은 이전의 이렇게 독단주의적인 국가를 비판하면서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신 천부적인 권위인 자연권에 기초를 두고 정치적 민주주의의 기능을 하는 좀 더 높은 형태의 사회조직이라는 국가의 청사진을 제공했던 것이에요. 그리고 이런 강력한 사상은 미국에서 개혁을, 프랑스에서는 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영국은 그래도 그렇게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만 귀족들이 권세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왕을 굴복시킬 수 있는 권위가 있었어요. 왜냐하면 왕에게 돈을 안대주어요. 왕이 가난했거든요. 돈과 군사를 안보내주면 왕은 허수아비에요. 그래서 전쟁이 터지면 군대와 돈을 주면서 권리를 하나씩, 하나씩 귀족들이 받아내는 것이에요. 돈은 귀족들이 쥐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영국은 그런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무혈혁명으로 민주사회로 진입하게 되요. 다른 나라에서는 피 흘리는 전쟁이 일어나면서 이제 구시대의 권력과 그리고 신시대의 시민의식들이 충돌을 일으키면서 많은 피를 흘리게 되는 것이죠.
이제 이러한 사상들이 결국은 개혁과 혁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역사적으로 강력하고 절대적인 군주정치를 하던 나라에서는 더 많이 피를 흘리는 혁명이 일어나게 되요. 그게 바로 여러분들이 잘 아는 프랑스 혁명이에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은 이제 근본적으로 이 혁명이 완성된 것은 훨씬 후에요. 왜냐하면 그 중간에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제 다시 그 체제를 자기가 황제로 등극하고 돌려보내는 것이죠. 그런데 결국은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그리고 다시 왕권으로 넘어갔지만 결국은 시민혁명이 일어나서 이 시민혁명이 루이 필립이라는 왕도 처단되면서 그러면서 1830년 7월, 1848년 2월에 제 2차 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러면서 결국은 부르봉 왕조는 몰락하고 그리고 이제 이 모든 프랑스 혁명이 종결되게 되니까 사실 프랑스혁명은 50년 내지 60년이 걸려서 일어난 것이죠.
지금도 프랑스는 시민사회의 역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관점에서 보면 이 시대의 민주정치, 그러니까 인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실 프랑스는 진정한 위대한 나라에요. 그 완전히 철저한 시민의 힘으로써 왕정을 타도하고 그리고 그렇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니까 그 다음에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10여 개국의 연합국들이 전부다 군대를 묶어서 이 프랑스를 침공하거든요. 그때 프랑스에는 싸움을 지휘할 장군이 없었어요. 왜? 혁명을 일으켜서 장군을 다 죽여 버렸거든요. 그러니까 오합지졸이잖아요. 그런데 그 오합지졸들이 그 엄청난 유럽의 연합군과 마주 싸워서 백전백승을 한 것이에요. 800㎞를 걸어서 전선에 와서 쉬지 않고 바로 전투를 했는데 그 장군도 제대로 없었던 그 시민군이 이긴 것이에요. 그 긍지라는 것은 굉장한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프랑스 국가를 번역해서 보면 꼭 우리나라 극렬운동권의 가요 같아요. ‘전우의 피를 밟고 시체를 넘어서…….’ 이런 끔찍한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자유, 평등, 박애 이것을 침해하는 자는 신도 용서치 않겠다는 것이 프랑스 사람들의 신념이에요. 그것은 진짜 하나님을 떠난 관점에서 보면 정말 인류역사상 대단히 위대한 민족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이제 이렇게 되면서 이것이 미국으로 들어가면서 이제 아까 말씀드렸듯이 로크, 밴담, 존 스트워트, 그 다음에 몽테스키외, 제퍼슨, 볼테르 이런 사람들을 거치면서 미국으로 들어가면서 이제 국가의 권위를 비판하는 사상들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3. 낭만주의의 등장
이제 이렇게 되면서 이제 낭만주의 운동이라는 것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낭만은 다 좋은 것이 아니에요? 이 얼마나 낭만이 있어요. 진짜 여러분들 예수를 안 믿었으면 이런 복을 어디서 받겠어요? 이런 낭만을 어디서 받겠어요. 우리니까 여기에 10월 중순에 와서 이렇게 개 떨 듯 떨면서 이런 강의를 듣지! 누가 이런 것을 하려고 하겠어요? 이 낭만주의가 등장했을 때에도 이제 종교적으로 보면 이신론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죠. 자, 이게 이런 것이 아니에요? 신비한 것, 그리고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 눈에 신비해보여도 캐들어 가보면 결국은 과학이 해결해준다고 할 때에 사실은 교회생활을 할 맛이 나겠어요. 아무런 신비한 것이 없다는데…….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신비한 것을 찾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신비한 것을 거부하면서 이성으로만 따지고 드는 기질과 그것을 뛰어넘는 무엇을 끌어안으려고 하는 신비의 경향을 둘 다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오늘 아침에 설교한 객관적 어두움을 물러가게 만들어주는 그러한 지적인 깨우침을 얻게 하는 이성과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서 밝은 빛을 보고 주관적인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는 이 성령과 믿음의 경험, 이 두 가지의 변형된 형태라고 우리는 보는 것이에요. 그렇게 되니까 재미가 하나도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교회에 와도 사람들이 계몽주의와 이성주의에 빠지게 됨으로 영혼은 매우 곤고해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신론이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이 모든 자연법칙 속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인격적인 하나님은 그들의 사상 속에서 하늘로 철수하셨어요. 그러니까 재미가 하나도 없는 것이에요.
a. 인간의 아름다움 자체에 탐닉한 운동
이런 사상 속에서 결국은 낭만주의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 낭만주의는 인간의 아름다움 자체에 탐닉한 동이에요. 그러니까 낭만이라는 것이 로망이라는, 영어의 로맨스에서 온 것이에요. 그게 가차음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에 깊이 탐닉하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게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문학, 예술, 특히 미술, 음악 이런 모든 방면에서 똑같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b. 자기만족적 행복관의 본격적 등장
그러면 예전에는 어떻게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무엇인가 질서가 있고 이런 것들이 우주적으로 어려웠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아주 좋게 이끌려서 행복한 감정을 가지면 그것에 몰두해서 계속 빠져 들어가는 문화의 현상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자, 오늘날 Post modernism에 있어서 자기 몰입화 현상이라는 것이 이미 이 시기에 벌써 나타나서 앞길을 예비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아마 여러분도 한때는 낭만주의에 다 빠졌었을 것이에요. 가을의 낙엽만 구르는 것을 보아도 눈물이 핑 돌고 굴러가는 소똥만 보아도 깔깔거리고 배꼽을 잡던 어린 총각, 처녀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렇죠? 그것을 들을 때에 ‘아름다운 것이 제일 좋은 것이다.’ ‘내게 행복감을 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러면서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일본에서 1950년, 1960년대에 있었던 연애지상주의 운동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허무주의 운동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생겨난 허무주의의 한 사조에요.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우리에게 절망을 주는 현실에서 돌이켜 서서 주관적인 행복을 찾아보자고 하는 그런 운동이었던 것이죠. 이러한 상황이 되면서 결국은 진리에 관심이 없고 무엇이 나를 즐겁게 빠져들게 해주느냐? 여기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C. 기독교 사상에 미친 영향
1. 과학의 발전
자, 이렇게 해서 이제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고 이제 이러한 기독교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과학이 발전하게 되고 데카르트라는 사람이 출현하게 됩니다.
2. 데카르트(1596-1650)의 출현
데카르트에 대해서는 여러 번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오늘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데카르트가 출현하면서 결국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에 줄을 그어버리고 그리고 하나님과 진리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고 그것은 구체적으로 법칙일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법칙을 만들어놓긴 했지만 인식하는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면 인식하는 그것이 의심할 수 있는 한도까지 끝까지 의심해서 마지막까지 의심할 수 없는 그것은 우리들이 확실한 진리라고 믿어도 좋다고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죠.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여러분들이 열심히 읽었던 데카르트의 ‘꼬깃도 에루르쑴’이라는 격언이 생각나죠. 라틴어인데 ‘꼬깃도’는 나는 사유한다는 뜻이에요. 일인칭 단수에요. ‘쑴’은 I am. 이라는 뜻이에요. 나는 생각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무슨 뜻이에요. 그냥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하게 번역하면 그것은 ‘나는 회의를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는 뜻이에요. ‘에루보’는 therefore라는 뜻이에요. 쑴은 I am 이라는 뜻이에요. 그게 무슨 뜻일까요? 이 세상에 있는 객관적으로 들어온 모든 것이 그게 무엇일까?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그래서 데카르트의 철학은 기본적이 회의에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 왜? 기분 좋을 때에 새가 지저귀는 것을 보면 노래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슬플 때는 왜 저렇게 울어대느냐 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에요. 그것을 어떻게 그 본질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요. 그러니까 소위 얘기하는 독일어로 ‘씽한지’라고 그러는데 물(物) 자체에요. 영어로 얘기하면 The thing is self. 에요. 그 물 자체는 준용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에요. 그것은 신만이 알 수 있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것들을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것들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사유와 판단을 넘어서는 객관적인 물(物) 자체는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상정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그럼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그럼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많은 것들을 끊임없이 회의하라는 것이에요.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할 수 있는 데까지 의심하라. 그런데도 도저히 더 이상 모든 것을 의심해도 하나는 의심할 수 없잖아요. 의심하고 있는 나는 의심할 수 없잖아요. 그것까지 의심하면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의심하는 나는 의심할 수 없는 것이에요. 그것은 가장 확실한 것이에요. 그래서 의심하는 나는 믿을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끝까지 의심해서 도저히 더 이상 의심하는 나도 의심할 수 없는 지점에 까지 가면 그것은 진리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면 이 말이 어떻게 보면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말 같지만 그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사람마다 의심하는 층차가 틀린데……. 그렇잖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고 존재라는 것이 있고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다음에 인간, 소, 돼지, 말, 닭, 꽃, 풀, 별, 이런 것들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죠. 그러니까 나라고 하는 존재는 신에게 인식되는 존재에요. 그러니까 함께 있는 이 존재들을 내가 보지만 내가 보는 것이 신이 보는 것과 일치한다고는 항상 믿으면 안 되었던 것이에요. 그러니까 겸손해지는 것이죠.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이것을 성경을 통해서 교정하고 그래야하는데 중심에 내가 들어가고 그리고 여기에 소, 말, 돼지, 닭, 별, 그리고 신도 들어가서 돌아가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내가 판단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이 세계에 진리를 창조하셨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안계시니까 그것을 마지막에 진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은 lip service이고 그런 법칙을 만드셨다는 것은 lip service이고 마지막에 인식하는 자기가 이 모든 판단의 주체가 되는 것이죠.
3. post modern 시대를 준비함
그래서 결국은 이제 이성우위의 시대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post modernism 시대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post modern 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이제 modern이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modern이라는 단어는 현대적인 것이라고 배우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철학에서 사용될 때에는 현대라고 안 부르고 근대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러면 이 modern과 대조되는 것은 middle age 즉 중세에요. 중세에서 그 다음에 modern 그리고 post modern 이렇게 시대가 나뉘는 것이에요. 그러면 중세시대와 modern 시대는 무엇이 틀리느냐? 중세시대에는 신이 중심이 되고 그리고 인간이 그 신을 중심으로 놓고 돌아가는 그런 paradigm중에 하나였다가 이게 데카르트 이후에 선이 분명하게 그어지면서 이 paradigm 이 바뀌어서 인간이 중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모든 만물들을 인간이 척도가 되어서 그것을 판단하는 것이에요. 이런 사상은 벌써 그리스 시대에 있었단 말이죠. ‘만물은 인간의 척도다.’ 라고 했던 프로타고라스 같은 사람들이 벌써 그것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런 인본주의는 인류의 초기부터 늘 있었던 것이고 그리고 이것은 아담과 하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서 이제 말하자면 modern 시대가 즉 근대주의가 시작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근대주의의 특징이 뭐냐고 하면 신중심의 사유의 체계에서 인간중심의 사유의 체계로 바뀐 것이에요. 판단하는 자와 모든 것들이 중심이 되었던 것이죠. 그러면 인간이 중심이 된다고 하는 것은 결국 뭐에요? 이성이 중심이 된다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이성이 판단을 하니까. 그러니까 인간을 높인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높인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죠? 그렇게 인간이 그렇게 이성으로써 진리를 찾아갈 수 있고 인간이 그렇게 형식상으로나마 신에게로부터 받았다고 믿어지는 자유와 의지를 활용해서 그리고 인간의 이성을 따라서 올바름을 추구해간다면 그러면 교회에 의해서 짓밟혔던 중세와는 비교되지도 않는 아름다운 인간의 존엄성들이 만발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되지요? 이제 산업화 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의 욕망이 팽창하면서 그러면서 말하자면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에요. 그 전쟁은 뭐냐 하면 종교적이고 그런 이유가 아니에요. 그것은 이제 계몽주의 전에 있었던 종교개혁시대 이후의 일이고 이 후에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그게 이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럼 그런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결국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인간 자신의 이성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자, 이성을 우위로 놓고 우리의 욕망을 잠재우고 이성이 그러지 말라니까 말을 들으면서 욕망을 억제하고 절제하고 그리고 남을 위해서 양보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회체제를 만들면 평화가 오리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돌아온 것은 회복할 수 없는 엄청난 파괴가 인류역사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을 보면서 이제 어떤 생각을 하느냐하면 이런 이성을 신뢰하면서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그 보좌 위에 있는 이성을 끄집어 내려라. 이놈의 말을 들었다가는 되는 것도 없다고 끌어내린 것이죠. 그러면 이성이 끌어내리고 난 자리에는 무엇이 올라가겠어요? 그것도 웃기죠. 이성은 신뢰할 수 없다는 그 판단은 누가 한 것이에요? 이성이 한 것이지요. 그것도 웃기는 것이죠. 그것을 또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또 한시대가 갈라지게 되는 것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왕위에 있었던 은총을 끌어내리고 이성을 두었다가 이성을 끌어내리고 다른 것을 올려놓은 그 시대가 바로 post modern 시대가 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철학적으로 그것을 현대라고 안 부르고 근대에요. 왜냐하면 중세와 근대 사이에는 뚜렷한 선이 있어도 근대와 현대 사이에는 뚜렷한 사상적인 선이 없는 것이에요. 하나가 그래도 있다면 그게 뭐냐 하면 신을 떠나서 인간의 이성을 세웠다가 이성을 끌어내버리고 그 다음에 다른 것을 올려놓은 것 그래서 같은 modern 시대이긴 한데 조금 틀리다고 해서 선을 그어서 post modern이라고 부르는 것이에요.
그 시대의 종언을 구하고 새로운 시대가 올지 그것은 나도 모르겠어요.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런 사유의 전환이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나는 내 생각에는 안 올 것 같아요. 돌때로 다 돈 것 같아요. 그러면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마지막에 가서 post modernism 시대에 이성을 끌어내려서 올려놓은 것이 무엇이지요? 올려놓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에요. 굳이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 그리고 욕망을 올려놓게 된 것이지요. 이성이 있을 때까지만 해도 근거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가 찾아가야할 보편적인 도덕의 가치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무너져버리는 것이죠. 그런 것들을 객관적인 그런 진리자체를 완전히 부정해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사르트르는 ‘나는 일평생을 진리를 허무는 일에 헌신해왔다고 했어요.’왜냐하면 그 진리라는 그 체계 자체가 말하자면 권력이 있는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이 못난 사람들을 등쳐먹는 하나의 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에 철저히 항거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인간성이 만개하고 말하자면 post modernism시대의 인간존엄을 꿈꾸는 것이에요. 그러나 그들이 꿈꾸는 그런 사회는 저쪽에서 이야기하는 그리스 고전시대의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런 것이 아니에요. 욕망 자체를 한없이 분출하면서 매순간, 순간을 하나님처럼 판단하고 그리고 매순간 순간을 최대한 자기를 실현하면서 사는 그러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에요. 그런데 누구도 그것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지요.
Ⅳ. 19세기 이후 미국 복음주의의 역사
자, 그러면서 이제 드디어 이런 사상사 속에서 미국은 이것을 다 기독교가 겪으면서 이제 지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19세기 이후에 이제 미국의 복음주의 역사를 우리들이 살펴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런 여파들이 미국으로 몰려오게 되었지요. 미국은 구라파의 그런 역사를 거울삼아서 아주 구체적으로 인간이 이 모든 국가의 주인이 되는 항구적인 정치의 체제, 어떤 한 두 사람이 매우 특별하다고 할지라도 결코 이 백성들을 억압하거나 억누를 수 없는 완벽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의 정치체제를 수립할 야망을 가졌던 것이죠. 그렇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것이 아메리카 합중국이었다는 것입니다. 구라파에서는 이미 역사가 기울어져가고 있었고 계몽주의가 만개하던 시절에 미국은 그래도 나름대로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교통이 쉽지 않았으니까 구라파와의 거리적인 격차가 미국을 보수적이도록 도와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A. 구 프린스턴의 전통적 개혁주의
1. 프린스턴 신학교의 역사
이때에 1735년에 유명한 장로교회의 목사이자 당대의 아주 영향력 있는 설교가였던 윌리엄 패넌츠라는 사람이 자신의 소명 받은 세 아들을 유능한 설교자로 키우기 위해서 오두막집에다가 신학교를 차립니다. 그것이 바로 통나무 신학교 즉 log college 라고 하는 것이에요. 여기에서 이 세 아들을 잘 가르쳐서 아주 훌륭한 목사가 됩니다. 그렇게 소문이 번져나가면서 학생들이 그 통나무학교에 배우러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교육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신학교를 하게 되었고 신학 외에 다른 과목들을 가르치는 것을 지속적으로 확장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756년 그러니까 통나무 신학교가 세워진지 24년 만에 프린스턴에 학교를 정하고 뉴저지대학으로 명명했습니다. 조나단 딕슨, 바런 보우, 이 사람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위였습니다.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가 어떤 자료에는 이 대학의 초대학장이라고 나오는데 왜 그러느냐하면 조나단 에드워즈가 부임할 때 최초로 그 학교가 대학으로 개편되었기 때문에 법제상으로는 이 사람이 초대학장이 맞습니다.
그러면서 1896년 훨씬 후지요. 140년 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프린스턴 대학으로 바뀌게 되는데 150년간 주로 신학교를 중심으로 아주 유능한 설교자를 양산해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제가 자료는 없는데 제 기억에 의하면 이 학교에서 약 7,000명 가까운 사람의 졸업생이 배출되면서 미국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프린스턴의 초기 인물가운데 존 위더스푼이라고 하는 1723년에 태어나서 1794년에 죽은 인물이 있는데 이 사람이 칼빈주의자였습니다. 그리고 학장으로 재직했던 사람이고, 1776년에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한 유일한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제 교단의 지도자를 세울 목적으로 프린스턴 대학과 협력관계에 있으면서도 독립체제로 운영하는 신학대학원이 그 후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위더스푼이라는 사람은 그 당시에 영국에 유학을 해서 상식 철학을 토대로 해서 칼빈주의 신학을 수립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이후에 아키발트 알렉산더 우리들이 20세기 3대 칼빈주의자로 알고 있는 벤 자민 브리클리츠, 휫필드까지 약 100년에 걸쳐서 6386명이 졸업을 했습니다. 이들은 장로교와 미국 문화와 미국인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2. 찰스 핫지(1797-1878)와 舊 프린스턴
a. 찰스 핫지와 개혁신학
그리고 찰스 핫지라고 하는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영국에 유학을 하면서 토마스 리드의 스코틀랜드의 상식철학과 실재론을 근거로 하는 인식론을 기초로 과학과 종교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영역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한 학문으로 발전시키고 그리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정신적인 개념을 정립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이제 조나단 에드워즈가 미국을 대표하는 독창성을 드러낸 신학자였다면 이 찰스 핫지는 역사적인 칼빈주의의 정통신학의 닻을 내리게 한 체계적인 미국의 서술가였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제가 시간이 없어서 가르쳐주지는 못하는데 나는 여기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하자고 그러면 참 행복하겠어요. 한 30번에 걸쳐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강의하면 얼마나 신나겠어요?
이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경우는 말하자면 18세기사람이잖아요. 구라파에서 일어나는 이런 사회적인 상황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런 조류들이 이미 식자층에서는 심각하게 미국으로 들어와서 번져가기 시작한 것이죠. 미국에 들어온 그런 신학적인 조류들은 그래도 그쪽에 비하면 훨씬 완만한 것이었어요. 그쪽에서는 이미 아르미니우스 주의니 보르티우스주의니 이런 것들이 한물 간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들어와서 이제 인본주의 신학을 펼칠 때에 아르미니우스주의를 가지고 펼치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럴 때에 이제 밀려드는 어마어마한 계몽주의적인 사조 속에서 이 기독교가 그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우주적인 체계로써의 모든 학문들을 포괄하고 세계와 하나님과 교회와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거대한 학문의 체계를 꿈꾸었던 사람이에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제가 맨 처음에 조나단 에드워즈를 접했을 때에는 그냥 뛰어난 영적 인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사람이 25권의 저술을 남겼는데 제가 거의 상당부분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이 마음속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판단을 내린 결과 그 사람은 확실히 천재입니다. 제가 인정합니다. 인정합니다. 확실히 천재입니다.
그의 사상 속에는 가시와 같은 문제가 있는 사상들이 약간은 들어있어요. 그런데 전체적인 사상은 아주 훌륭한 사상이고 사실은 어떤 사람들의 평가를 보면 미국에서 The great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학자라고 그래요. 정말 사실이에요. 이제껏 까지 존재했던 미국의 모든 신학자들의 지식을 모두 합쳐도 그 사람만 못해요. 그럴 정도로 아주 우주적인 신학을 섭렵한 사람이에요. 혹시 여러분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제 설교 속에서 무엇인가 장엄하고 우주적인 요소들이 있다면 대게 성경과 그리고 성경 중에서 특별히 다윗의 시편, 그리고 특별히 바울의 에베소서,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 그리고 특별히 나에게 우주를 보는 눈을 열어주었던 하나님의 사람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후에 누군가가 논문을 써도 아마 그렇게 쓸 거예요. 그러한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철저하게 25권의 체계 자체가 한가하게 써서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처럼 이렇게 쓴 사람이 아니에요. 뭐냐 하면 밀려드는 그런 계몽주의에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적인 사상들과 맞서면서 치열한 논쟁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정립해 나간 것이죠.
언제 한번 시간을 줘요.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상의 배경은 무엇인가? 세 시간만 주면 풀어줄 수 있어요. 굉장한 사람입니다. 어마어마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조나단 에드워즈를 만나고 나서 그 후에 이제 중세 철학과 그 다음에 개혁파 정통주의 중세의 신학자들을 공부하면서 그 사람의 독서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 하는 것에 날마다 놀래요. 그래서 처음에 읽었을 때는 너무나 독창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개혁파 정통주의 학자들 속에서 그리고 초기 정통주의자들 속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종교개혁자들 보다도 그 이후에 정통주의자들 속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아주 놀랍습니다. 어마어마한 인물이었지요.
찰스 핫지는 그러한 우주적인 말하자면 우주적인 그러한 커다란 장엄한 넓이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 대신 이 사람은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랬어요. 나는 논쟁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했어요.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그랬겠어요. 그것이 진리를 위한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피 흘리기까지 논쟁을 하면서 싸우는 것이죠. 그런데 결국은 역사 속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승리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찰스 핫지는 아주 새로운 이론을 내는 것보다는 사실 이 개혁신학의 흐름은 18세기 초엽에서 끝나고 더 이상 발전을 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런 계몽주의 사조와의 싸움 속에서 더 이상 발전을 하지 않고 이성주의, 자유주의로 흘러가 버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찰스 핫지의 신학은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보다는 역사신학의 흐름 속에서 교훈을 얻는 것을 중요하다고 보고 언약신학, 성경무오의 교리, 정통신학의 수호,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교리, 이런 것들을 통해서 신학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찰스 핫지의 신학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 한국 장로교회가 믿는 그 모든 신학의 체계에 말하자면 뼈대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개혁파 장로교회에서 믿는 이 신앙의 기본적인 틀들이 이제 찰스 핫즈를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면 크게 잘못되지 않습니다. 찰스 핫즈는 사실은 독창적인 조직신학자는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이 조직신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에 그 가르쳤던 원천으로 삼았던 중요한 책이 있었습니다. 제가 요새 공부하고 있는 책인데 그 책이름이 뭐냐 하면 라틴어로 읽어볼게요. ‘인스트디오 데올로기 아이 엔렌티카이’라는 책이에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변증신학강요’라는 책이에요. 약 7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인데 세권으로 되어있어요. 그런데 역사상 개혁파 정통주의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신학을 보여주는 세권의 강요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권이 이 프렌시스띠렌띠라는 제네바 아카데미의 후예인데 이 사람이 쓴 ‘변증신학 강요’라는 책과 그 다음에 이번에 제가 논문을 발표한 피터판 마스트리트히트라는 독일신학자, 그리고 화란에서 활동을 했던 피터판 마스트리히트의 ‘데오레티코 프렉틱카 떼올로기아’라는 책이에요. 그래서 이론실천신학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도 깨알 같은 글씨로 약800페이지 되는데 둘이니까 튜레틴 정도면 다섯 권내지 여섯 권 정도가 나올 수 있는 분량이에요. 그리고 세 번째가 유명한 레이드면 신학자 사인이 공동으로 저술한 '시나시스 퓨리오스'라는 그러한 '순수신학공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세권의 책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교리학 책이에요. 그 책 중의 하나인 이 튜레틴의 책을 아주 높이 평가해서 이 튜레틴의 책으로 이 사람이 자기의 신학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기의 모델로 삼았던 것이에요. 마치 우리가 루이스 벌콥의 조직신학가지고 공부하듯이 그렇게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것이에요. 다행히 최근에 그 책이 영어로 출판되어 나와서 아주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아주 굉장합니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합니다. 그러니까 그 신학의 크기가 엄청납니다.
그러니까 현대의 저술가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독서량을 가지고 그리고 로마 가톨릭과 이단들 그리고 특별히 개혁파 정통주의의 역사,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거기서 갈려나간 다른 교파들의 신학의 역사, 이단들, 그리고 저 뒤로 중세의 철학사들 그리고 구 뒤로 넘어가서 헬라 교부들과 라틴교부들의 저술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관통하는 것이고 놀라운 것이에요. 그래서 언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는 희랍교부들과 라틴교부들의 저작이 지금 편집되어서 나오고 있는데 그게 한질에 일억입니다. 530권정도 되요. 한질에 일억 정도 되는데 우리나라에 그것을 가지고 있는 학교가 없습니다. 최근에 어느 학교에서 그것을 산다고 하는데 아마 못 살 거예요. 왜 그러느냐 하면 이미 벌써 절판된 것이 많아요. 그것의 짝을 채워 넣기가 어려울 것이에요. 막 나왔을 때 사야 되는데 말이에요. 그런 것들을 거의 모두 섭렵한 가운데 머릿속에 넣고 해나가는 것이에요. 존 오웬 목사님도 예외가 아니에요.
b. 프린스턴 신학교의 공헌과 한계
그런데 이렇게 했는데 아주 좋은 개혁파의 신학을 그나마 프린스턴 신학교가 보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 후에 프린스턴 대학교도 독일의 영향을 받으면서 말하자면 자유주의가 들어오게 되면서 갈려져 나가게 되는데 그 학교가 바로 이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요. 자, 그런데 구(舊) 프린스턴 신학의 공헌은 그런 정리된 형태로 나름대로 그것을 유지하였다고 하는 것은 공헌이고 그러나 이제 또 이제는 이미 사회가 엄청나게 격변하고 있었어요. 그런 격변하는 상황을 수용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이제 무엇인가 그런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적절한 선교적인 대응을 하고 그렇게 해야 되는데 그렇게 철저하게 교회를 중시하고 목회적인 안목을 견지하고 있었으나 점차 목회적인 현장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치발터 알렉산더부터 시작해서 찰스 핫지 까지는 목회현장과 상당히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벤저민 브링클리, 워필드에 이르게 되면서 프린스턴 신학자들은 전문적인 학자로서의 자질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목회와 함께 유통하는 말하자면 고전적인 신학의, 성학의 전통들을 단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목회를 못하는 신학자는 상상도 안 되는 것이죠. 그것은 마치 환자를 돌보지 않는 아주 유능한 의사와 비슷한 것이죠.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느냐 하면 아주 훌륭한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유능한 설교가이고 양떼를 돌보고 그 다음에 양떼를 돌보면서도 아주 철저하게 신학을 연마해서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뭔가 이렇게 진리에 대한 반론들이 생겨나게 되면 사자와 같은 심정으로 일어서서 지성을 가지고 그것들을 처단할 수 있는 그러한 언어와 수사학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요즘 굉장히 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것이에요.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없어요. 문제지요. 그래서 우리들이 신학교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정말 많이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명을 우리 교회에 주셨다고 나는 생각해요. 너무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한사람의 제대로 된 지성과 그 다음의 경건, 그리고 목회의 기술 이 세 가지가 겸비되어야합니다. 그런 거목과 같은 사람이 세워지면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게 되요. 저 같은 묘목 밑에도 여러분들이 이렇게 많이 개미처럼 깃들여서 이렇게 그늘을 드리우는데 그렇게 거목이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어마어마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런 신학교수들은 결국은 성도들이 고민하는 목회의 현장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결국은 현장감이 떨어진 이론으로 치닫는 경향들이 있었고 교회의 목회적인 문제들, 기독교신자의 내면적인 변화와 당면한 현실에 대한 방안 같은 것들을 소홀히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C. 19세기 미국적 복음주의의 형성
1. 제2차 대각성운동
할 수 없이 제가 확 건너뛰어서 넘어가야할 것 같습니다. 빨리 넘어갑니다. 자, 그러다가 이제 2차 대 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프린스턴을 쭉 읊었고 다시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19세기의 미국에 대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1차대각성운동은 18세기에 조나단 에드워즈에 의해 1740년대에 일어나게 됩니다.
2. 찰스 피니(1792-1875)의 부흥운동
그 후로부터 약 100년 정도 흐른 후에 미국에 두 번째 대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제 이것이 미국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이제 찰스 피니를 중심으로 하는 대각성 운동이었습니다. 1차대각성 운동에서는 비교적 순수한 하나님의 복음 진리에 의한 영적인 각성이었는데 2차대각성 운동에 와서는 여러 가지 온전하지 않은 것들이 함께 섞이는 그런 종류의 변형된 인본주의적인 형태의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실 부흥에는 운동이라는 말을 쓸 수 없거든요. 제가 거룩한 부흥이라는 책에서도 그런 얘기를 썼습니다만 그런데 이제 여기에서는 운동이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a. 찰스 피니
찰스 피니라는 사람은 이제 1821년에 회심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몇 년생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미 이 사람은 미국의 계몽주의가 활짝 피어서 원래 있었던 칼빈주의적인 아름다운 전통들이 주변으로 밀려나던 때에 태어난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열렬한 복음전도자가 되기는 했지만 신학적으로는 칼빈주의에 대해서 굉장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알미니안주의도 넘어서서 펠라기안주의자였습니다. 그리니까 말하자면 구원을 얻는 데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을 하나님의 역할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학적으로는 굉장히 부주의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은 원죄나 성령의 역사 이런 것을 믿지 않았어요. 그냥 인간이 회개하면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어쨌든 영혼에 대해서 강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이제 대각성운동을 주도했던 것입니다.
b. 찰스 피니의 "새로운 기법“
이제 이때에 이미 벌써 이 사람이 대각성운동을 주도하던 19세기 중반에는 미국이 산업화 사회를 이루기 시작했고 이제는 생산과 성과 같은 것들이 매우 중요시되었던 도시화로 가기 시작하는 사회였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어떻게 되겠어요? 이제는 뭐냐 하면 물량주의 같은 것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교회가 숫자, 규모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획기적이고 정교한 방법론을 제기함으로 어떻게 하면 많은 죄인을 회개시켜 그들을 교회에 있게 하느냐 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동원했는데 환풍기를 조절하고, 음악을 잘 활용하고, 예배의 순서를 갑자기 바꾸거나, 아주 연장하고, 거칠고 통속적인 말을 사용하고 ,교회와 개인기도실에서 개인의 이름을 겸용하고, 예배당에서 설교단에서 가까운 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하는 우리들의 1970년대 80년대의 한국교회에서 보았던 부흥사들이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면서 설교하는 그런 형태를 피니가 만들어낸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무엇보다도 피니는 집회를 구체적으로 성과를 재고 싶었어요. 그래서 예수 믿을 사람을 모두 제단 앞으로 초청하고 그들을 불러내어서 결단하게 하는 것이 있었는데 구도자회심 같은 것들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커다란 진노가 임할 것이라는 즉각적인 회개를 촉구하는 그런 협박 같은 것들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청중들 사이사이에 많은 스텝들을 배치해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람들을 잘 설득해서 회개하고 결단을 하도록 촉구하는 이런 식의 인위적인 방법들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3. 칼빈주의의 쇠퇴: 교파의 증가
기본적으로 피니의 신학적인 방법은 실용주의적이기 때문에 그가 일으킨 상당히 많은 부흥은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라기보다는 인간의 노력에 따르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자신이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앞서 행하는 인간의 뒤를 따라서 당신의 역사를 펼치신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면서 부흥은 하나님이 홀로 하시는 전적인 역사라기보다는 이제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방법을 찾을 때 하나님은 거기에 하늘을 열고 물 붓듯 부어주신다고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부흥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결격 사유는 그 부흥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결국 칼빈주의는 쇠퇴하게 되었고 그리고 이제 교회는 규모와 숫자를 지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화 사회가 줄달음질치면서 이제 이런 것들이 함께 맞물리면서 미국교회는 이런 식으로 발전해가게 된 것이지요. 이런 2차대각성운동이 있고나서부터 이후에 결국은 교회가 1차대각성운동 때에는 칼빈주의적인 운동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결국은 이제 이 찰스 피니에 의한 2차대각성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는 칼빈주의 신앙이 쇠퇴하고 새로운 낙관주의적인 인간관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D. 뉴 프린스턴 신학교의 자유주의화
이러한 2차 부흥의 결과 미국의 교회들이 크게 성장하는 긍정적인 결과와 더불어 신율적인 신앙이 보다 자율적인 신앙으로 변천하고 세속화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서부터 결국은 프린스턴 신학교가 자유주의화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 슐라이어마허(1768-1834)의 등장
구라파로 특히 독일로 유학을 갔다 온 미국사람들이 이제 그 당시에 만연했던 슐라이어마허의 신학들을 받아들이고 자유주의에 물들기 시작하면서 이제 그들이 학교의 다수를 점하게 되었고 칼빈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교수들이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발톱을 드러내게 되었고 결국은 그 학교 전체가 좌경화가 되었고 결국은 그런 학자들과 함께 이제 무엇인가 당시에 칼빈주의적인 전통을 통해서 고리타분하게 목회하기 보다는 무엇인가 당시의 흐르고 있는 사조 자체가 인간을 중시하고 인간의 의지와 인간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거기에 부합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바꿔야할 목회 현장의 필요와 자유 신학자들의 사상들이 같이 맞아떨어지면서 결국은 이제 프린스턴 신학교가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면서 프린스턴 신학교는 완전히 자유주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될 때에 독일에서는 슐라이어마허라는 사람이 등장하게 됩니다.
2. 그의 생애와 사상
1768년에서 1834년까지 살았던 이 슐라이어마허는 매우 특별한 천재였습니다. 부모는 아주 경건한 독일 개혁교회의 목사였는데 아버지는 아주 철저히 성경을 신적 계시로 믿는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그를 경건주의 운동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모라비안 주의자의 중심지로 그를 유학을 보냈는데 결국은 성경과 아버지의 영향보다는 당시의 책과 친구들, 그 시대의 사조에 물들면서 슐라이어마허는 영향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개혁신앙을 버리고 모라비안 신학교에서도 떠났지만 그러나 독일 개혁교회의 목사과정에서 안수과정을 계속 밟아서 이미 당시의 현실이 교회가 자유주의화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도 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슐라이어마허는 당시에 팽배했던 계몽주의적인 이성주의를 대변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1799년에 그의 처녀작인 종교론을 쓰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이 슐라이어마허가 종교론을 썼을 때에 박수를 치며 환영하고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의 이 지금의 위기에 몰린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지켜줄 수 있는 수호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이미 이성주의가 득세를 했기 때문에 기독교에서의 신학은 대학의 학문에서 밀려나기 시작했고 그리고 천대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학은 기독교의 모든 신념이나 그런 것들은 무시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슐라이어마허는 이제 새로운 계몽주의의 방식으로 기독교를 옹호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이 있어서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이전에는 이 사람들이 결국은 기독교와의 싸움이 뭐냐 하면 기독교가 말하는 것이 진리냐? 객관적으로 그런 진리가 있느냐? 없느냐? 성경말씀이 사실이냐? 아니냐? 이런 것을 가지고 싸웠던 것이죠. 그런데 슐라이어마허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 싸움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교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러면 양쪽 다 좀 뜨악하지요. 그러면서 뭐라고 얘기하느냐하면 신앙의 본질이라는 것은 내가 그 신앙의 내용에 대해서 무엇을 느끼고 있느냐 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내가 무엇을 느끼느냐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하면 이것은 외부의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주관적인 것이에요. 그래서 싸움이 안 되는 것이죠. 아니 내가 느꼈다는데……. 그것을 누가 거짓말이라고 얘기 하느냔 말이죠. 그런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본 것이죠.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진리가 있느냐 ? 없느냐? 참이냐? 거짓이냐? 를 가지고 피 터지게 싸우던 그 신앙을 사수하던 선조들의 노력을 아주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종교에 대한 경험은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관적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결국은 무엇이죠? 이 사람의 느낌이 틀리고 저 사람의 느낌이 틀리니까 그것을 획일화하고 그 무엇이 객관적인 진리의 체계에 짜 맞추어져야 한다는 사상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죠. 뭐냐 하면 ‘나의 신앙적 감각으로 내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을 인식하며 이것은 내 이성과는 분리되어 움직이는 세계이다. 나는 지성적으로 철학자이지만 느낌으로는 기독교인 이상으로 종교적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보다 무엇을 경험하느냐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는 것이죠. 이 사람은 아주 천재였어요. 대개 천재가 공부만 잘하고 얼빵한 천재가 있는가하면 머리에 든 것은 없어도 사탕발림으로 기가 막히게 풀어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그런 천재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다 가지고 있는 천재였어요. 그래서 언어학자, 작가, 철학자, 설교자로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 그런 재능을 가졌어요. 그래서 결국은 그런 천재였기 때문에 비판이 나와도 사람들은 그 슐라이어마허가 훨씬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기존 기독교인들은 이제 그의 화려한 수사에 속아서 기독교에 대한 이 무지막지한 지성계의 공격에 맞서 기독교를 새로운 기초위에서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죠. 그래서 일반 대중은 그의 사상이 너무 편하게 느껴진 나머지 결국은 아주 환영하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인 신앙은 인간의 목숨을 죽이고 살리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은 아주 듣기 좋은 편안한 생각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정체성이 객관적인 신학보다는 주관적인 실제의 삶과 관계가 있고 핵심은 내가 무엇을 느끼느냐 하는 것이지 그 내용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하면서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이제 이 슐라이어마허의 사상의 그늘아래 모여들게 되었고 초창기에는 프린스턴 신학교의 보수적인 신학자인 찰스 핫지 조차도 슐라이어마허와 그의 진보적인 사상이 독일에서 정통주의와 그리고 다수의 신앙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결국은 이제 슐라이어마허의 신앙은 신앙의 내용에서 감정을 분리시켜도 기독교 본질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기독교 신앙에서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하는 것을 가지고 피터지게 싸우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고 믿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죠. 그렇게 하면서 실제로 슐라이어마허는 각 교회에서 교리를 설교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설교자의 목표는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하는 것이고 그리고 종교의 본질은 그렇게 마음으로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느낌을 나누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자, 이렇게 아주 정교하게 객관적인 진리이고 성경의 계시를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치워버리고 우리의 마음으로 느끼는 이 종교적인 느낌이 바로 우리의 신앙의 본질이라고 하니까 열렬하게 박수를 치며 환영하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기독교를 굉장히 공격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슐라이어마허로 인해서 기독교와 포옹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게 누구냐 하면 자유주의자들이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을 반대하는 것처럼 말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이 자유주의자들이 이런 슐라이어마허의 물결을 타고 교회 속에 환영을 받게 되고 그리고 교회 속에서 논쟁할 때에 ‘성경이 뭐라고 하더냐? 진리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사라지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계기를 이 슐라이어마허가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따랐던 많은 교회들이 그의 사상을 좋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제 인간을 더 이상 회개하고 가슴을 찢으며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희망이 있는 그런 인간으로 보지 않고 그저 무엇인가 종교적인 것을 경험하면서 그 안에서 그것으로서 삶의 위로와 보람을 찾으면 그 자체로써 훌륭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결국은 기독교 역사에서 이 참된 개혁신앙과 자유주의에 도저히 화합할 수 없는 갈림길이 뭐냐 하면 많이 있지만 그 중 두 가지는 성경 관과 또 하나는 구원관이에요. 그래서 이런 식의 자유주의 신학이 펼쳐지는 곳에서 완벽하게 사라지는 교리가 있어요. 그것이 중생과 회심의 교리에요. 그것이 지금 우리 한국의 형편이에요. 여러분 어디에서 회심을 외치는 설교를 들어본 적이 있어요? ‘회개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지옥에 갈 것이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교회를 나와도 여러분들은 지옥의 자식.’이라고 하는 정직한 선언을 우리들이 쉽게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 지금도 있습니다. 그러나 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사상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그것을 설교하려면 둘 중의 하나가 자신이 있어 야해요. 회개하게 할 자신이 있던지 교인을 다 떠나보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자신이 있던지 둘 중의 하나는 각오를 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나는 항상 둘 다를 각오하니까…….
F. 현대 자유주의에 대한 응전: 근본주의
자, 더 빨리 제트기를 타겠습니다. 이렇게 세속화되고 자유주의가 독버섯처럼 번져나가게 되니까 그 속에서 이것은 도저히 기독교일수 없다. 우리는 성경적인 신앙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강한 반발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근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이죠. 근본이라는 것은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몇 가지의 교리들 즉, 성경의 무오성이라든지,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라든지 아무튼 복음의 가장 근본적인 것들을 확실하게 믿는다는 의미에서 근본주의자들이 되었던 것이죠. 그런 근본주의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이 표현은 1920년대에 갑자기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 단어는 정통적이고 성경적인 신앙의 사람임을 자부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되었는데 또 이 단어는 기독교 안에서도 현대의 사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경멸적으로 부르던 이름이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기본적으로 복음의 가치를 완전히 훼손한 사람들이거든요. 예를 들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 탄생을 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사생자다. 그리고 예수님은 신일수가 없다. 그의 기적이나 모든 것들은 인간이 꾸며낸 것이라는 식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성과 어울리지 않는 모든 것들을 배제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복음을 쥐고 복음이 다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그들이 볼 때 다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실제 근본주의자들은 그보다 훨씬 더 적은 수였습니다.
1. 자유주의에 대한 프린스턴의 응전
2. 존 그레샴 베이컨 (1881-1937)과 근본주의 운동
a. 너무나 단순한 근본주의
이제 이후의 프린스턴 신학교에 원래 신학을 전공한 중요한 메이첸이 등장하면서 이제 그 근본주의자들의 강조점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메이첸 자신은 근본주의자이기를 거절하였어요. 근본주의는 우리들이 물려받은 개혁신앙보다는 훨씬 더 타계적이고 폭이 좁은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근본주의가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 대해서 양보하지 않고 철두철미하다는 것은 우리도 공감하는데 그런데 그런 근본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은 우리들이 개혁신학에서 가지고 있는 세계를 포괄하는 포괄적인 신학의 성격들을 많이 축소시켜 버린 것이죠. 자 ,그렇게 해서 결국 근본주의자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런 근본주의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는 그러한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b. 프린스턴의 분리: 웨스트민스터
그러나 이제 이 근본주의라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메이첸을 비롯한 웨스트민스터를 따르던 장로교의 신학은 이 근본주의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한국교회에서도 보면 이렇게 주일날 예배를 드리면서 세상에 나아갈 때는 도저히 나가서는 안 되는 세상으로 나가는 것처럼 느끼고 교회와 세속의 직업에 대한 현저한 구분, 그리고 그 다음에 교회에 돌아온 사람들이 마치 세상에서 일주일을 살다가 온 것이 자체가 죄악의 덩어리인 것처럼 고백을 하는 그런 것, 그리고 종말을 속히 기다리고 이 세상은 죄악된 세상이고 살아봐야 별 볼일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던 그런 타계적인 신앙의 모든 것들은 이 근본주의의 영향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개혁신앙은 그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들이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모든 영역에서 다 완벽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그런 우주적인 전망 같은 것들이 이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없는 것이죠.
H. 빌리 그레이엄과 신복음주의 운동
1. 신복음주의의 등장
자, 어쨌든 이런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런 근본주의가 일어나게 되자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제 챠스팜과 오순절 운동이 잠깐 일어난 후에 이제 빌리 그레이엄과 신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자유주의가 왔고요, 역반응이 오면서 근본주의가 왔습니다. 너무 한쪽에 치우쳐서 이제 이 세상을 말하자면 타계적으로 생각하고 그 다음에 타 종교, 종파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맞서면서 적대시하게 되어서 많은 갈등과 충돌을 빚게 되지요. 그러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이것은 복음을 전파하는데 매우 해롭다고 생각하고 이런 것들을 무엇인가 조정해 보려고 하는 시도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이 신복음주의 운동이고 이 신복음주의의 중요한 인물이 빌리 그레이엄이라는 전도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원래 이 빌리 그레이엄은 개혁신앙을 물려받은 사람이었는데 그 장인의 집안이 이렇게 폭 넓은 관용주의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의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이제 이 빌리 그레이엄이 이런 신복음주의의 중심인물로 등장하게 됩니다. 오켄카와 빌리 그레이엄이 세 가지를 협력하게 되었는데 훌라 신학교를 세워서 보수적인 기독교인의 사고방식을 바꾸어서 연합을 이루고자했고 강력한 복음전도 집회를 필요로 했고 그리고 이것을 지지해줄만한 언론 매체인 크리스천 투데이를 창설하게 됩니다. 그리고 칼 헨리라고 하는 중요한 신학자가 근본주의자였지만 개인 구원에만 치중하는 것을 반대하여 포괄적인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글을 쓰면서 이제 신 복음주의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어쨌든 그러한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2. 뉴욕 전도 집회와 에큐메리칼 운동
뉴욕 전도 집회라는 것이 1957년에 있게 되었는데 원래 이 빌리 그레이엄은 신학자가 아니라 전도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그는 결국 비복음주의자들의 후원을 처음 수락한 집회로써 장인과 아내의 자문 역할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1957년에 뉴욕 전도 집회를 통해서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협력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유주의자들과 협력하게 되고 그리고 복음전도 집회를 열게 됩니다. 어떠한 현대주의와 대화하거나 동조해서는 안 된다던 근본주의자의 입장을 우리의 신앙의 원칙은 타협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와 완전히 다른 신학을 가졌다고 해도 전도 집회를 통해 그리스도가 구원의 길임을 선포하기 원한다면 모두 환영한다는 것이며 타협하는 것은 그쪽이지 우리가 아니라는 입장으로 선회함으로써 근본주의지도자들과 이 빌리 그레이엄과의 관계는 단절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오켕카 그리고 이 빌리 그레이엄은 신 복음주의와 자유주의자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점점 더 훨씬 폭을 넓혀서 나중에는 여호와의 증인들까지 이 집회에 참석시키면서 물의를 빚게 됩니다. 그래도 빌리 그레이엄은 계속해서 자기의 전도 영역을 넓혀 나가게 됩니다. 이런 것은 무엇과 관계가 있느냐하면 잘 들어보세요. 이게 이제 어떤 것이 있느냐하면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것이 있어요. 에큐메니칼이라는 것은 교회의 연합운동이에요. 교회가 그 동안에 무엇을 믿느냐에 의해서 많이 나뉘어졌는데 이제 넓게는 가톨릭과 개신교, 개혁교회 안에서 성공회와 장로교, 그 다음에 회중교회, 이런 식으로 많이 나뉘어졌잖아요. 그것들을 이제 각자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서 너무 고민하지 말고 일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함께 합쳐서 공동으로 연대를 이루면서 연합을 형성하자는 운동이 에큐메니칼리즘 운동이었어요. 에큐메니칼리즘 운동이에요. 한국에도 그 에큐메니칼리즘운동 때문에 사실은 그것 말고 다른 것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통합과 합동이 갈리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런 에큐메니컬운동이 상당히 많이 진전되고 있었던 것이죠. 빌리 그레이엄은 개인적으로 아주 놀라운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큰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한번 만나서 대화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끌리는 그런 강한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결국은 이 빌리 그레이엄에 의해서 이런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영국 복음주의에서도 문제가 되는데 키엘 대회라는 것이 열리게 되었는데 이 키엘 대회에 1966년 10월 전국복음주의 대회에서 이루어진 로이드존스의 발언이 문제가 됩니다. 이 로이드 존스는 빌리 그레이엄으로부터 정중하게 영국의 전도대회에 총대회장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받았을 때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자유주의자들과의 연합을 끊고 순수하게 복음전도 집회를 한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후원을 할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이제 영국에 있었던 성공회를 비롯해서 자유주의자들이 모두 함께 모이면서 이제 연합운동을 펼쳐서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영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집회에 목을 매고 자기들이 그렇게 반대했던 근본주의 계열에 서있던 이 사람을 전도자로 불렀느냐? 목회의 모든 현실들이 심각한 벽이 부딪히게 되었던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이 사람을 불러서 뭔가 목회의 활력을 불어넣고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 유입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던 것이죠. 이런 것들이 만나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에요.
로이드존스는 에큐메니칼식의 교회의 연합보다는 무엇을 진리라고 믿느냐는 이러한 진리에 의해서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지 이렇게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이런 구도를 가지고, 이런 목적을 가지고 교회가 각각 믿는 교리가 판이하게 다르고 고백하는 진리의 내용이 현저하게 다른데 그 사람들이 연합을 이루는 것은 참된 교회의 성경적인 연합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쓴 책이 ‘진리로 하나 되게 하소서’ 라는 책이에요. 이렇게 되면서 결국은 이제 에큐메니칼리즘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I. 새로운 이민법(1964)과 종교다원주의 등장
한편 미국에서는 이제 1964년에 중요한 일이 있게 되는데 그게 바로 새로운 이민법이 생겨나게 된 것이죠. 이 이민법은 1924년과 1965년에 두 번 있게 되는데 그래서 일 단계는 1924년에 있게 됩니다. 1924년에 이민법은 구라파에 있는 많은 유럽의 국가에 있는 사람들을 이 새로운 미국 땅으로 불러들여서 그래서 국가를 건설하려고하는 운동이었다고 한다면 그 이민법을 통해서 아주 다양한 종파의 기독교인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독일의 개혁교회, 화란의 개혁교회, 프랑스의 개혁교회뿐만 아니라 프랑스 지방의 천주교, 그리고 저쪽으로 재세례파주의자들 그 다음에 메노메이파들 이런 사람들이 다 이주를 오게 되고 심지어는 몰몬교, 그리고 유대주의자, 이런 사람들까지도 모두 들어오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제 미국은 어떻게 하지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하니까 사람과 자본이 필요했던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그 땅에서 살게 하려니까 어떻게 해야지요? 많은 종교적인 종파의 특성들을 국가가 각각 존중해주고 어느 한쪽을 편벽되게 두둔하면 안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한때는 종교의 자유가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었으므로 몰몬교나 유대교나 그런 이교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구라파 쪽에서 들어왔으니까 대부분 천주교를 비롯해서 개신교 안에 있는 다양한 종파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나 1965년의 이민법의 최대의 수혜자들은 이러한 유럽에 있는 같은 서양 권에 있는 기독교권에 있는 국가와 민족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제3세계 국가의 이민자들이 이 이민법에 혜택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까 이제는 저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남미에 있는 사람들, 아시아계, 라틴계, 수많은 소수종족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는데 이들이 모두 자기의 종교를 가지고 들어오게 됩니다. 인도로부터 시작해서 각종 종교들이 들어오게 되니까 이제는 그 이전까지는 그래도 기독교권 안에서의 다양성을 인정했던 것이 이번에는 타종교까지 모두 끌어안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종교의 자유를 주는 국가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가기 싫어도 그곳으로 갔기보다는 이미 미국 안에서 보편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었는데 종교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끌어안을 수가 있었던 것이죠.
자, 이런 것들을 다 끌어안고 국가로 가려니까 어떻게 해야 되지요? 소위 이야기하는 종교 다원주의에 대해서 아주 너그럽게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끊임없는 문제가 일어나게 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미국이 종교 다원주의의 산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실험적인 종교들이 미국 안에서 양산되고 그것들이 수출되는 아주 이상한 역할들을 미국이 해내게 되는 것이죠. 세상 나라를 부강하고 잘살게 하기 위해서 결국은 미국 안에서 이런 하나님의 나라들의 커다란 변형된 해로운 모습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이미 벌써 1850년에 종교적인 혼합주의와 독창성들이 이제 남북전쟁 이전에 사회 전역에 확대되었는데 이것은 겨우 예고편이었고 1965년 이후에 이러한 갈등의 양상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전 사회에 펼쳐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J. 도널드 맥가브란(1897-1990)과 마케팅교회
이런 속에서 이제 도널드 맥가브란과 마케팅교회가 등장하게 됩니다. 도널드 맥가브란이라는 사람은 인도에서 30년간 사역을 하던 사람인데 이 사람은 장시간의 선교사역을 통해서 성장하고 있는 교회와 성장하지 않고 있는 교회를 비교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선교의 이론들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동일집단의 원리라고해서 같은 관심사가 있고 혹은 같은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도가 잘된다는 원리, 대중운동의 원리, 수용성의 원리, 토착신학의 원리, 등등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특별히 이 토착신학의 원리는 19세기의 선교학자들은 헨리벤, 푸쿠스엔더슨, 뫼비우스 등이 주창한 이러한 자립, 자치, 자력이라는 삼자 선교원칙을 지지하면서도 지역 문화와 조화되는 토착신학을 만듭니다.
그런데 이 토착신학이라는 것이 나중에 문제를 일으키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어쨌든지 간에 기독교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이 기독교라는 것이 서양문명이라는 그릇에 담기잖아요? 그러면 그것을 담은 서양문명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기독교의 내용이 절대적인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런 절대적인 내용들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보존하는 틀들을 무조건 상대적인 것이라고 팽개쳐버리게 되면 그것이 그 땅에 있는 문화와 만나게 되면 그러면 반드시 그 선교지에 있는 세계관에 복음이 삼키게 되는 것이 선교역사에서의 경험이에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복음이 전파될 때에 항상 사람들에게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깨뜨리면서 전파된다고 할지라도 이 후에 그것이 기독교적인 정확한 틀로써 교리로써 사람들에게 가르쳐져야 되는데 처음에 그런 파괴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파된 것도 아니고 그 다음에는 그것들을 문명의 틀 자체를 무시하고 토착화시킨다는 명분으로 그들의 세계관과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조화를 이루어보려고 하는 시도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여기에서 그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선교적인 장점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굉장히 혼란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보십시다. 조상신을 섬기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전도를 할 때에 바로 그 조상신이 하나님이라고 설명해주면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빨리 되겠지만 이제 두고두고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조상신이라는 개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신학적인 문제들이 생겨나잖아요. 이런 문제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1970년, 80년대에 있었던 한국에서의 토착화신학의 문제도 결국은 그런 문제들을 빚어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들이 정상적인 개혁신학의 해석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이죠.
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고 그리고 교회성장학이라는 것들을 펼치게 됩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한국에 있는 대형교회들이 이 성장학에 1970, 80년대에 아주 심취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교회성장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이 교회가 마치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교회의 건강한 여부가 모두 규모에 의해서 파악되는 것처럼 논리를 만들면서 결국은 이것이 나중에 마케팅교회로 가는 데에 아주 커다란 이론적인 밑받침을 제공해주는 것이죠.
마케팅교회는 잘 알다시피 마케팅의 원리를 교회선교와 목회에 적용한 것이에요. 마케팅의 원리라는 것이 무엇이죠?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아내고 네가 필요로 하는 것이 여기에 있다고 하고 너는 필요를 못 느끼지만 사실은 이것이 없으면 못살걸? 그리고 물건을 파는 것이 마케팅의 원리에요. 그것을 종교에 대입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보고 그 원하는 것을 교회가 줄 수 있다고 말하고 그리고 교회가 줄 수 있는 그것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실은 네 안에 이런 것들을 향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서 적합한 상품을 파는 것처럼 종교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전달하는 것을 마케팅의 원리에요. 그러면 그것은 아까 계몽주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일관되게 계속되는 싸움이 있지요? 그게 뭐지요? 인간을 항상 중심에 놓고 나머지를 그 중심된 인간에게 봉사하고 맞추려고 하는 것이죠. 그게 마케팅교회에 와서도 아주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에요. 이러한 것들이 마케팅 교회를 형성하게 되요. 그러니까 실제로 이런 마케팅교회의 논리와 마케팅교회의 모든 것들을 따라서 움직이다가 보니까 아주 놀랍게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종교도 상품과 같아서 어떻게 포장하고 어떻게 소개하는가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예전까지는 소비자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생산자 중심의 교회였는데 이제는 소비자를 왕으로 모시는 그런 종류의 종교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자, 그러면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이죠. 뭐냐 하면 교회라고 하는 곳에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이것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설교를 해야지 제대로 된 설교가 되는데 고객이라고 설교를 하려니까 그 고객의 마음이 다치면 물건이 안 팔리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조화를 찾아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끌려가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마케팅교회에서는 말하자면 모든 것들을 마케팅의 원리에 의해서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되지요? 몇 년 전에는 윌로우클릭 교회를 연구해서 하버드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정말 잘하는 것이죠. 정기적으로 경영 진단사들을 데려다가 교회를 옳게 경영하고 있는지 진단하는 것이에요. 그리니까 철저히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회사보다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잘 홍보해서 고객들의 수요를 창출하고 그 고객들을 불러 모으는 그런 원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러면 문제가 무엇이죠? 그러면 모인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보고 그리고 고객이 왕이 아니라 왕은 주님이시고 너희 각자는 지금 종교를 사야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팔지 못해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이 복음이 없으면 죽는다고 그렇게 설교를 해야 되는데 이것은 마케팅교회의 원리에 어긋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교회 성장학에서도, 마케팅 교회에서도 금기시된 설교가 있어요. 너는 죄인이라는 설교를 하지 말라는 것이에요. 죄는 너무 어두운 측면이니까 밝은 측면을 드러내서 성공을 하라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네 안에 있는 가능성을 찾아라. 너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달란트가 있다. 그것은 개발이 되면 되는데 그것은 네가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생각보다 너는 굉장히 능력이 있는 존재다. 이런 자신감을 일깨워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요? 자기를 깨뜨리고 부인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그 은혜만을 의지해서 사는 그런 존재들이 되어야하는데 그런 존재들이 아닌 새로운 그림들을 그리는 것이에요. 그것이 모두 무엇과 관련이 되어 있지요? 인간을 무엇으로 보느냐는 교회의 회원을 누구로 보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에요.
계몽주의 시대부터 일관되게 계속 내려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인간 너는 중심이다. 그것만 버리지 마라. 그러면 모든 것을 우리는 기독교에서 용납한다.’ 이것이 중심인 것이에요. 그러면 그 후에 극단적인 자아 중심주의와 신비주의운동들이 일어나고 리처드 포스트와 레노바레 운동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넘어가겠습니다.
M. 이머징교회운동
이런 운동들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 이제 이머징church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머징church는 마케팅교회가 지고 나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에요. 이머징이라는 것이 떠오른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면 이머징교회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머징교회는 결국은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뭐냐 하면 이런 이머징교회 전에 마케팅교회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편리하고자 하는 성향을 최대한 이용한 것이라면 이머징교회는 초점 자체가 좀 틀려요. 그게 뭐냐 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성향을 최대한 활용하자는데 착안한 것이에요. 마케팅교회는 대교회를 지향했습니다. 왜냐하면 대교회는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들고 경영을 합리화할 수 있는 규모를 제공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머징교회는 대교회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300명 정도의 규모에 가족적인 작은 교회를 지향합니다. 그 대신 거기에는 무엇인가 신비적인 요소들이 도입이 되는데 인간에게는 무엇인가 신비한 것들에 대한 요소, 그리고 자기의 마음과 정신 안에서 하나님과 만나려는 신과 접하려는 욕구들이 있기 때문에 이제 이렇게 이성으로 모두 까발리고 인간에게 편리성을 제공하는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런 무슨 신비스러운 종교성이 있었던 것이죠. 사실 그것은 개혁신앙에서 너무너무 잘 채워지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이죠? 경건의 신비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떨리는 두려움과 이끌리는 사랑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신비를 경험하게 되요. 그러면서 이런 고백이 나와요.
(찬양)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이런 고백이 나오게 되요. 그러니까 도대체 저는 주님을 만나고 지금도 만나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신비가 필요해요? 아니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을 만나서 아침마다 눈물을 흘리는 이 묵상시간이 그렇게 내 영혼을 어루만지고 그렇게 해서 내 마음 속에 다가오셔서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 나의 마음의 고통까지 이해해주시는 그 그리스도 예수와의 아름다운 연합관계에서 느끼는 나에게 늘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말씀해주시는 이 하나님의 이 신비를 감당할 수 없는데 무슨 신비가 또 필요하냐는 것이죠. 남편에게 사랑을 못 받는 여자가 자꾸 이웃집 아저씨를 쳐다본다고요. 그냥 자기 것이나 신경 써요. 그렇단 말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런 질문을 할 거에요. ‘어휴 목사님 되게 쉽네요.’ 요즘 그런 말 많이 나오죠. ‘쉽죠! 잉!’ 아휴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네요. ‘뭐가 간단해요?’ ‘내 영혼이 날마다 주님을 만나면 되잖아요.’ 그렇지! 그게 답이라는 것이에요. 내 영혼이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을 배우면 되요. 그런데 그게 싫은 것이에요. 그러면 주님을 만나는 게 싫은가요? 아니 그러면 그렇게 촛불을 켜놓고 그렇게 무엇인가를 빌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고 그래서 주님을 만나는 것도 주님을 만나는 것이고 이것도 주님을 만나는 것인데 그것이 좋은 사람이 이것은 왜 싫대요? 문제가 하나 있는 것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개혁주의 신앙에서 내 영혼 날마다 주님을 만나려면 회개하고 주님께 매일 돌아와야 해요. 그런데 저쪽에서는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자유주의는 회개하기 싫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종교에요. 그래서 자기가 깨뜨려지는 것인 성화를 강조하지 않는 모든 기독교사상은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이게 안 맞는 것이에요. 지금 이야기한 이 고전적인 경건이 현대사상과 완벽하게 코드가 어긋나는 것이에요. 현대 사상은 이제까지 쭉 살펴보았잖아요. 어차피 오늘 다하기를 포기했습니다. 다음에 한 번 더 옵시다. 뭐냐 하면 그러면 일관되게 계속 내려온 것이 무엇이에요? ‘인간이 중심이다.’ 이 사상에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중독이 되어버린 것이에요. 왜? 처음 회심할 때는 그것을 했는데 이후에 그 회심의 경험이 반복되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설득되기 보다는 세상의 사조에 의해서 설득되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어디에 가든지 그런 기독교가 보편적이니까 그러니까 인간 네가 중심이라고 하는 것이에요. 중심이신 그분이 어떻게 정신을 차리실 수가 있어요? 중심인데……. 원래 거기에 계신데……. 그러니까 회개가 필요한 것은 주님이에요. 주님이 이젠 좀 정신을 차리셔야 해요. 옛날의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좀 아시고 그리고 우리를 제대로 좀 섬겨주셔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우리도 섬길 용의가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 현대사상이에요. 우리가 웃으면서 들었지만 그것이 현대사상이에요. 핵심은 거기에요. 그러니 자 이렇게 자기가 중심인 사람이 누구에게 회개하고 돌아가느냐는 것이에요. 돌아갈 데가 없는데……. 하나님께로 간다는데 중심은 흔들릴 수 없는 것이죠. 그것이에요.
그러는데 이게 이렇게 주님과 만나고 그 안에서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고 예수와 연합되는 이것이 사실은 이 기독교 종교의 핵심이거든요. 이 핵심을 경험하지 못하니까 이성으로 다 파헤쳐서 아무것도 신비한 것이 없다고 하니까 스트레스는 안 받는데 가슴이 허전한 것이에요. 예를 들어봅시다. 어떤 형제가 나를 뜨겁게 사랑해요. 그런데 어느 날 생체심리학 책을 이렇게 보니까 도파민이 나와서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래요. ‘자기 뭐 먹었어? 나는 너무 사랑해. 보고 싶어서 죽을 뻔했어.’ ‘저 자식 요즘 도파민이 너무 나오나? 몇 밀리그램이 나왔기에 저 자식이 그러지?’ 뭐가 신비가 있느냐는 것이에요. 그러면 ‘도파민은 언제 떨어지나? 좀 많이 나와서 오래 가는 놈은 어디 없나?’ 그렇게 생각할 것 아니에요. 뭐가 신비하겠느냐고요. 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뭐가 신비하겠느냐고요. 그런데 인간은 그 이성을 초월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하나님이 씨앗처럼 심어놓으셨어요. 그것은 허무한 것이에요. 믿어야할 것이 없는 신앙이라는 것은 허무한 것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이머징church는 그것을 제공해 준다고 하는 것이에요. 예배당을 지을 때도 지금처럼 이런 식으로 예배당을 안 짓고 중세교회 비슷하게 회벽 같은 것으로 치고 촛불들이 켜지고 가톨릭교회가 들어가 보면 솔직히 멋있잖아요? 상가에 시트지 붙인 교회 보다야 훨씬 예쁘지요. 애들이 막 밥 먹다가 흘리고 체육관도 하는 그런 교회보다는 들어가면 오르간 소리가 쫙 나오고 뭐가 없어도 있는 것 같잖아요. 그런 것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에요. 그것을 아주 예쁜 교회당에서 그것을 연출해주는 것이에요. 나도 그렇게 예배당을 만들라고 하면 기가 막히게 만들 수 있어요. 들어오기만 하면 왜 그런지 신비감이 드는 예배당을 나도 만들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뭐냐 하면 마음에 놀라운 평화를 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진리를 떠나고 하나님을 떠난 자유주의자들, 모든 세속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최고의 가치는 무엇이냐 하면 사랑과 평화에요. 하나님 없는 사랑과 평화에요. 이머징church는 그것을 준다고 얘기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이런 이머징church에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서 재미있는 게 뭐냐 하면 정말 놀라운 것이 뭐냐 하면 이번에 공부하다가 느끼게 되었는데 마케팅 교회가 있는데 그 마케팅 교회가 이제 물 건너갔구나. 그랬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예고하는데 마케팅 교회들은 어차피 철학이 없는 교회였기 때문에 트렌드를 빨리 갈아타면 됩니다. 이제 그런 교회들이 재빨리 분화를 꾀하면서 진화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머징church로 갈아타는 것입니다. 벌써 한국에 있는 교회들이 벌써 이머징church를 받아들이는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이 이머징church가 환영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빌하이버스라는 사람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경영학의 구로라고 하는 피터 드러커라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오스트리아 태생인데 사업에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2005년에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는데 아직까지도 전설적인 인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결국은 피터 드러커라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경영학의 구로에요. 이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 책을 보면 계속 묵상하고 명상하라는 이야기가 되게 많이 나와요. 그 느낌이 좀 이상해요. 그게 결국은 어디로 가느냐하면 이 사람이 영향을 깊이 받았던 사람이 누구냐 하면 여러분들이 잘 아는 쉐안 키에르케고르라는 사람이에요. 덴마크 사람이에요. 이 사람에게 깊이 심취해서 이 사람의 책을 원전으로 읽기 위해서 덴마크어를 배울 정도였으니까 굉장한 사람이지요. 이 쉐안 키에르케고르라는 사람의 뿌리가 어디로 가느냐하면 중세의 신비주의자인 에카르트라는 인물에게 그 뿌리가 닿아요. 결국은 이 이머징church를 비롯한 많은 현대주의의 운동의 뿌리가 중세의 신비주의자들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요즘 서점에 가보면 중세 수도사들의 영성, 중세의 신비주의, 사막의 교부들, 중세의 무슨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잖아요. 그게 왜 그러느냐하면 그게 바로 그런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 이머징church가 굉장히 위험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이머징church의 사상이 뉴에이지와 맞닿아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느냐하면 중세의 사상이 인간 자체를 신비적인 영적인 존재로 보고 이런 영적인 존재와 신과의 놀라운 합일,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고 인간은 그 하나님과 질적인 차이가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과 교통한다는 관점인데 그것이 아니라 각자 각자가 신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이 인간이 회귀하는 곳이 하나님 속으로 회귀한다고 하는 본질적인 연합과 일치의 교리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에요. 이것이 중세의 신비주의 사상의 특징인 것이죠.
그러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신과 인간 사이에 구별이 궁극적으로 사라져서 일체가 된다고 할 것 같으면 여기에서 나타나는 교파의 차이라는 이런 것들은 잠시 파도치는 파도꼭대기의 거품 같은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면 결국 그것을 확대해서 보면 종교와의 차이라는 것이 사실은 신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미미한 양상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종교 다원주의와 만나는 것이에요. 놀랍게 종교 다원주의와 만나는 것이죠. 그래서 잘 들으세요. 중세수도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깊이 침잠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종교다원주의자들이에요. 대부분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머징church운동은 아직까지는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안가요. 그런데 결국은 가게 됩니다. 이것이 역사의 수순이에요.
이러한 운동들이 일어나면서 그러면서 이제 이러한 중요한 변화들이 찾아오게 되는 데 그게 뭐냐 하면 이렇게 인간을 우주 속에 있는 신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이것이 결국은 육체 안에 갇혔다가 모두 해체되면서 마지막에는 그 하나의 근원이 신에 회귀한다고 하는 것은 이미 스피노자에서 나오는 범신론적인 사상이에요. 그리고 플라톤주의에서 나오는 인간영혼의 상승사상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그런 끊임없는 염원들이 구체화되어 왔던 것이에요. 그리고 이것이 이제 후기 근대주의에 와서 인간 자신을 이성적으로 모두 해부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고 보고 인간을 그렇게 아주 중요한 존재로 중심에 두어야했던 근거들을 영적인 세계 속에서 찾으려는 운동이 후기 근대주의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요새 스피노자나 아니면 스토아철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강조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에요. 스피노자 같은 사람들은 새카맣게 잊혔던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다시 부활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인간을 그런 존재로 보는 것이죠.
그러면 이제 인간을 그렇게 중심에 놓을 수 있는 상당히 중요한 근거들이 마련이 되어요. 신의 일부라고 보는 것이죠. 그러면 결국은 한사람, 한사람이 그런 신적인 존재가 되어서 모든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각각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둘 중의 하나에요. 모두를 존중하든지 아니면 하나가 모두를 다 없애버리고 신처럼 되든지 둘 중의 하나에요. 그런데 후자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모든 사람을 그렇게 여기는 것이죠. 그러면 모두가 다 중심이시니 어떻게 되요. 우리 모두를 다 승복시키는 객관적인 진리 같은 것이 있다고 그러면 안 되지요. 왜냐하면 각자가 다 신인데……. 거의 신적인 존재인데……. 그러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잘 아는 토마스 머튼이라는……. 토마스 머튼의 책도 많이 읽더라고요. 그러니까 정말 그것을 왜 읽는지 모르겠어요. 큰일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책을 읽을 때에 독서를 잘 해야 해요. 신학자들도 헷갈려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정말 조심해야 해요. 그런 토마스 머튼 같은 사람도 보면 분명히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결국은 마지막에 아주 헌신적인 삶을 살면서 세계의 평화에 이바지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런 사상에 매료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결국은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하게 되고 틴마카레니라는 베트남의 고승을 만나고 일본의 고승들을 만나고 그러면서 우리들이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는 기독교의 에큐메니칼이 좀 더 확장되면 종교 다원주의가 되는 것이죠. 그런 종교 다원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런 여력들이 이미 그런 모든 사상적인 흐름 속에서 모두 생겨나게 되는 것이죠.
요즘도 보면 여러분들이 기독교신문에 레너드스위트라고 하는 아주 잘생긴 미남 설교자가 나와서 칼럼도 쓰고 그럽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 결국은 이러한 영지주의적인 영성 내지는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과 같은 후기근대주의 사상에 영합하는 잘못된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한편, 한편 글을 읽어보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어떤 때는 은혜로워요. 그런데 그 사람 뒤에 있는 사상은 상당히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 뿌리가 무엇인지 찾아내지 못해요. 그래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야 해요. 그러면서 새로운 빛들이라는 문제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어머징church의 운동이 새로운 빛의 운동으로 발전되면서 그러면서 영지주의적이고 그러한 중세 신비주의적인 사고 속으로 흘러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N. 신사도운동과 은사주의
1. 신사도운동의 등장배경
이제 이러한 것들과 함께 아주 혼란스러운 운동이 일어나면서 오늘은 다루지 못합니다만 신사도운동과 은사주의 같은 것들이 나오는 것이죠. 사실은 이 부분을 많이 다루고 싶었는데 아까 우리 임목사와 이야기 하니까 대부분이 여름수련회 때에 안 왔던 사람들이라고해서 처음부터 했던 것이에요. 이 신사도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이 신사도운동을 통해서 오늘날의 많은 은사주의 같은 것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많이 보았을 것이에요. 무슨 방언운동이라든지 그 다음에 신유운동 그런데 사실 예전에는 병원에 갈 돈이 없었기 때문에 신유에 관심을 갖고 그리고 예전에는 그랬기 때문에 사실 사람들이 복을 받기 위해 기복신앙을 가지고 갔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에요. 먹고살기 위해서 기복신앙을 찾았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단순히 먹고살고 사업에 성공하고 그리고 병원에 갈 돈이 없어서 기적의 치유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자기 자신을 최대한도로 확 발산해서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그 꿈을 성취하는 그것을 종교의 힘을 빌어서 한번 보고 싶은 것이죠.
쉽게 얘기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무슨 일이 되었을 때에 전에는 얼마를 벌어서 신나나 그랬는데 그게 아니라 내 자신이 그렇게 일을 성취해서 자존감을 갖고 나를 실현했다고 하는데서 아주 굉장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죠. 마치 낚시꾼들이 낚시를 실컷 해서 고기를 다 놔주는 낚시꾼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뭐냐 하면 그것을 하나 잡는데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죠. 그것을 잡아서 회를 쳐서 먹고 국을 끊여먹지 않아요. 돈은 얼마든지 있어요. 생선회 파는데서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 식의 사고방식이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잘 생각해야 해요. 60년대의 번영주의 신학과 지금 2000년대의 번영주의 신학과는 완전히 개념이 다른 것이에요. 이것은 뭐냐 하면 단지 내가 가난하니까 주님의 축복을 받아서 직장도 얻고 사업이라도 하고 밥을 먹어야겠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부자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에요. 먹고 살만한데도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죠. 그게 뭐냐 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큰 꿈,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보고자 하는 것, 그 열매가 문제가 아니라 내 뜻이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아주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번영, 새로운 형태의 변형신학이 나오는 것이에요. 거기의 선두주자 노릇을 하는 사람이 조엘 오스틴 같은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에요. 그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내가 얘기하잖아요.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면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사람들은 먹고 살만해지니까 이제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원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으로 모든 것이 쪼개진다고 하는 가지고는 만족이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초자연적인 것이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만족을 하는데 그러나 아무것도 신비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 만족을 못주는 것이에요. 그러나 ‘네가 깨뜨려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고 참회함으로 그분과 일치를 이루라 그리하면 떨리는 두려움과 이끌리는 사랑 속에서 경건의 신비를 맛보리라.’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거예요. 돌아오면 하나님이 돌아오셔야지 어떻게 신적인 존재인 내가 나를 깨뜨리고 거기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있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되지요? 그러니까 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에요. 신사도운동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자기가 하나님께 직접 사도로 임명을 받았다는 신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이에요. 굉장히 많아요. 지금 중국에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옛날에 어느 목사님은 사람을 갖다가 장로를 시켰대나 뭐를 시켰는데 비행기에서 ‘자, 내가 사도의 권위로 너에게 장로를 시켜주마, 아멘. 너는 장로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한 권세를 주셨다고 믿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질서, 당회, 이런 것들인데 다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것이에요. 그리고 일인중심체제로 서는 것이에요. 그리고 거기에 아주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어요.
물론 목회자에게 카리스마가 필요해요. 그런데 그 카리스마는 목회자의 개인에 귀착되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그가 외치는 진리의 힘에 의한 카리스마에요. 그게 없으면 그게 교회에요? 그게 교회냐고요. 이렇게 설교가 끝났는데 ‘너나 내나 이 자식!’ 그게 교회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저거구나! 아! 정말 놀랍다.’ 그리고 무릎을 꿇게 되는 그것이 있어야지 그게 카리스마고 그것이 있어야지 진정한 교회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 것들이 아니라 일인을 중심으로 하는, 오늘날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질서를 무시하잖아요. 그것이 어디서 오느냐하면 바로 그런데서 오는 것이란 말이에요. 한쪽에서는 그런 극단적인 은사운동 쪽에서 오는 것이고 그리고 한쪽에서는 직통계시 같은 것에서 오는 것이고 또 한쪽에서는 내 자신이 신적인 존재이고 내 자신이 중심인데 누가 나를 치리하느냐 이거에요. 이 교회가 마음에 안 들면 집어치우고 가면 될 뿐이지 세상에 교회가 없나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서 진리의 체계들을 막 짓밟는 운동이 일어나요. 그런 마음속에 있는 갈증 같은 것들은 성령운동으로 막 채우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성령운동이 병이 낫고 그런 것인데 지금은 그런 것이 아니라 돈을 벌고 먹고 살만해도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자기가 신의 일부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성령운동이에요.
그래서 요즘 보면 방언운동, 무슨 천국의 방언이고 그 다음에 예언운동, 이런 것들이 일어나잖아요. 진짜 미래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그런 신과 소통할 수 있는 something이 내안에 있는 것을 확인함으로 내가 종교적 신분상승을 원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거기에 강남의 잘살고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거기에 꾸역꾸역 몰려가는 것이에요. 공부도 많이 해서 머리도 깨어나서 열린 교회같이 이렇게 설교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면 알아들을 인간들인데 근본적으로는 머리를 쓰기 싫어하는 게으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뭐냐 하면 하나님 밑에 들어가는 것이 싫은 것이에요. 궁극적으로 얘기하면 그것이 싫은 것이에요. 자기가 잘못되었습니다. 나는 정말 더러운 인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되지요? 예수님이 인간을 그렇게 가능성 있는 존재로 보니까 교리에서 무엇이 제일 문제가 되겠어요? 예수가 설자리가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왜 이렇게 복음이 완벽하게 교회에서 사라질까? 구도자체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기독론이 교회에서 울려 퍼져서 사람들이 그 영광스러운 교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느냐하면 자기는 하나님 앞에 희망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도저히 하나님께로 다가갈 수 없다고 하는 철저하게 절망적인 성경적 인간관이 보편성을 가질 때에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사역이 찬란하게 빛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구속하신 그리스도를 붙들게 될 때에 그 인간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이 일을 이루셨구나! 나는 이분만을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 아무리 다 실현되어봐야 결국은 배교할 인간의 구토 물밖에는 나오는 것이 없다.’ 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게 결국은 마지막에 뭐냐 하면 인간이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살아야할 원래의 인간의 창조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것이에요. 무슨 방법을 써서든지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에요. 이 시대의 사조가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에요. 이것이 기독교와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에요.
그러니까 기독교에서 여러분들 눈여겨보세요. 왜 회개의 외침이 사라질까? 우리교회에서는 늘 듣는 이 십자가의 복음, 그것을 외칠 때 설교자도 울고 성도들도 우는 이 일반적인 경험이 왜 다른 교회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경험일까? 왜 이런 것들이 완벽하게 이렇게 중요한 메시지가 사라지고 있을까? 거기에 설수가 없는 것이에요. 인간을 그렇게 보는데……. 인간을 중심이라고 보는데……. 그런 존재가 무엇이 아쉬워서 이 천 년 전에 죽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붙드느냐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방언운동, 예언운동, 신사도운동, 그러면서 나오고 수많은 오늘날의 성령에 관해서 나오는 책들 중에 95%는 다 쓰레기통에 들어갈 책들이에요. 안 읽는 것이 오히려 안전해요. 성령이라고 붙은 것은 아예 안 읽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에요. 그럴 정도로 말도 되지 않는 이론들을 펼쳐내는 것이에요. 그런 것들이 결국은 마지막에 경건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맛볼 수 있는 이 신비한 경건의 세계에 대한 경험이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가 없는 것이에요. 남편의 사랑을 받는데 아니 영화배우가 자기한테 윙크해준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런 속에 살아가는데 그런 것들이 무너지고 사라졌기 때문에 인간들은 이제 자기 속에 남아있는 하나님께로는 돌아갈 수는 없고 채워지지는 않는 종교에 대한 갈망은 있고 이 경건이 아니면 도저히 채워질 수 없는 이 갈망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자기 포기와 십자가로 돌아가는 자기 회귀를 얻기는 싫고 신비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이 번져나가는 것이에요.
제가 요새 총신대로 화요일마다 두 시간씩 강의를 나가는데 엊그제도 어느 녀석이 나와서 얘기를 해요. 성령께서 나에게 이 설교를 들으라고 하셨다고……. 그래서 내가 야단을 쳤어요. 무슨 성령이 거기에 와서 할 일없이 너에게 그런 얘기를 하시느냐. 야, 그냥 설교를 하다가 보니까 그런 생각이 났다고 얘기를 해야지……. 그랬더니 막 얘기가 펼쳐지면서 자기가 신과 교통하는 존재이고 심지어는 하나님이 자신 안에 있어서 자기는 매우 특별하게 하나님과 교통하는 존재라고……. 이런 사상을 만들어내면서 인간들이 그렇게 방황을 하는 것이에요. 다 쓰레기들이에요.
잊지 말고 굳게 붙드세요. 인간은 그리스도가 아니면 아무 희망이 없는 존재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복음의 진리 안에서 살아야 될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에요.
오늘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2. 피터와그너와 연결신학
3. 존 웨버의 빈야드운동
4. 오순절과 은사주의
5. 은사주의의 대표인물: 제네스레긴 (1917-2003)
6. 알파코스
7. 프로미스 키퍼스
8. 기타 은사주의운동
Ⅴ. 조국교회가 나아갈 길
Ⅵ.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