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 세미나
이제 우리들이 심방을 한다고 그러는데 심방을 이 오늘 우리가 읽은 글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심방을 하는데 실제로 거기에서 우리의 사역을 통해서 영혼들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고 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야지만 그게 심방이지,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실은 그것은 의례적인 것이죠. 그래서 이제 이 심방에 가장 중요한 준비는 진실한 마음이에요. 그것이 심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예요. 그게 결국은 목자의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심방이어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보면은 영혼을 사랑하지 않고서도 의무감 때문에 심방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진짜 영혼을 사랑하면 심방의 묘미를 알게 돼요.
심방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교적인 심방이에요. 그래서 이것은 그야말로 인간 관계를 증진하기 위한 심방이죠. 근데 이런 심방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전혀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사람들, 비회심자들, 이런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말하자면 이런 관계의 형성을 먼저 필요로 하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이런 사교적인 심방이 있어요. 그런데 만약에 충분히 영적으로 돌볼 수 있는 사람, 영혼의 필요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심방을 해서 영혼을 속인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올바른 것이 아니지 않겠어요? 올바르지 않죠 그죠? 이건 잘못된 겁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마 장년 교구의 심방들이 이러한 그 사교적인 심방들로 한국교회에서 이뤄지고 있죠. 그래서 서로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고 그러다가 보니까 심방이 말씀 중심이 되지 않고 기도 중심이 되지 않고 그야말로 사교가 중심이 되는 거죠. 그래서 가정의 행사 같은 것들이 있고 그렇게 되는 거죠.
두 번째는 뭐냐면 의례적인 심방이에요. 이 의례적인 심방은 사교적인 심방하고 좀 틀려요. 집안에 큰 일이 생기거나, 아니면 입원을 하거나 아니면 돌이 있거나...이런 경우는 모두 의례적인 심방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행사가 있을 때 사람들의 관심은 가정의 행사의 의식이지, 의례이지, 그 속에서 목사님이 심방 오셔서 뭐 자신의 영혼의 커다란 변화를 주신다든지 그러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의 성도들을 관리해 나가는 관리형 심방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세 번째가 뭐냐면 아까 세 개라고 했는데 네 개인데, 정치적인 심방이에요. 그죠? 최근에도 내 가까운 교회 하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부목사가 심방을 쭉 다니면서 교회의 불만과 불평, 담임목사의 잘못된 점, 같은 것들을 이야기 하면서 자기의 지지를 호소하다가 결국은 개척을 하게 됐어요. 이런 것들은 정치적인 성향을 띈 심방이겠죠 그죠? 그런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교회 정치에 있어서 나름대로 자기의 이점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지지를 구하는 심방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심방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에요. 우리가 해야 할 심 방이 마지막 네 번째인데..
이게 목양적 심방이에요. 목양이라고 하는 것은 양들을 먹이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양들을 건강하게 그 성장하도록 돕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목양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목양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어요? 양떼를 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어요? 양을 세워 놓고 몽둥이로 패면서 양의 도리를 다하라고 하는 것이 목양의 핵심은 아니겠죠? 우리가 성도들을 책망하고 혼낼 때도 있지만 그것이 목양의 주축은 아니죠. 양떼를 칠 때의 주축은 뭐냐면 좋은 꼴을 양떼들에게 먹이는 거예요. 그러면 목양에 있어서도 가장 중심은 목양에 있어서도 가장 중심은 양떼를 먹이는 것이죠. 그것이 중심이 되는 것이야. 양떼를 잘 먹이는 것이 목양의 주축이 돼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아 그 여러분 그 애견훈련소 가 본 적 있어요? 옛날에 저희 동네에 애견 훈련소가 있는데 아주 굉장합니다. 그러니까 그 개를 작은 개들은 대개 훈련 안 시키고 사냥개나 이런 큰 개들을 훈련시키는데 특히 포인터 같은 것은 사냥개로 아주 좋잖아요? 근데. 훈련의 정도가 대단합니다. 개는 절대로 그 밑이 뚫어져 보이는 그 철길 위나 아니면 사다리 같은 거 이동 못 합니다. 겁이 많아서... 근데 그 훈련을 받고 나면 기가 막히게 이 놈들이 사다리까지 타고 올라갑니다. 근데 그 때에 훈련시킬 때 제일 먼저 주인이 그 개를 데리고 가서 애견 훈련소에다 맡깁니다. 그러면 이 놈이 집에 있을 때는 낯선 사람이 오면 막 물 듯이 이빨을 드러내고 소리소리 지르고 그러잖아요? 놀라운 게 훈련소 가서 그 조교를 딱 만나면 기가 팍 꺾여서 꼬리를 내리고 끙끙거려요. 처음 만났는데도 그 기가 느껴지는 거야. 그게 뭐냐면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하는 건 뭐냐면 개 패듯 패는 겁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그 개의 기를 확 꺾어 버리는 거야. 그래서 이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납작 엎드리게 만드는 거예요. 그 다음에 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거죠. 수행하면 거기서 즉석에서 쿠키를 주든지 아니면 무슨 그 소세지 같은 것을 줍니다. 그러니까 이 주는 것 먹이는 것은 부수적인 거고 개 패듯 패서 완전히 복종시키는게 이게 앞에 가는 거야. 그것은 사육이나 훈련이야. 목양은 그 반대란 말이야. 목양은 혼내야 될 때도 있지만 그것은 뒤로 가는 거고 진리의 말씀을 이렇게 잘 먹여서 그래서 이 말씀의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책망이 따라오는 거란 말이에요. 그게 목양과 그 다음에 개 훈련의 차이야. 응?
그러면 목양적인 목양적인 심방이라 그러면 결국 중심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주 우리 어저께 지난 주에 그 트레튼 스터디를 하면서 뭐 한참 우리가 웃었는데 트레튼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구절은 매우 쉽지만 어떤 구절은 어려운 구절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도 얘기 한 거예요. 하나님이 많은 성경 구절을 쉽게 주신 것은 우리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기 위함이요, 어려운 구절을 주신 것은 우리로 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그래서 그 트레튼이 이런 표현을 냈어요. “데이 아 페 드 인 오픈 플레이시스 앤드 아 엑스 사이스드 바이 디 오브 더 스큘 : 히어 더 헝거 잇스 드리븐 어웨이 데어 간 뎀.. ”직역을 하자면은 “쉬운 성경 구절 속에서 그들은 양식을 공급받았고 모호한 구절 속에서 훈련 되어졌으며 여기서 영적인 기갈은 사라지고 저기서 교만은 물러갔다” 그거거든요. 어떤 자매가 오픈 플레이스를 열린 공간이라고 번역을 해서 우리들이 뱃살을 쥐고 웃었는데..저는 라틴어를 번역한 거지만 말이지 정말 명문이었어요. 그거 얼마나 표현이 재밌어요. 쉬운 구절들 속에서 그들은 양식을 공급 받았고 모호한 구절로 말미암아 그들은 훈련 되어졌으며 여기서 영적 기갈은 사라지고 저기서 교만은 물러갔습니다...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들을 먹이는 거예요. 그게 목양이야...그러니까 평소 사역에 있어서는 이 말씀의 꼴을 먹이는 목양 사역이 거의 안 되다가 심방만 목양 하는 걸로 하려고 그러면은 받는 지체가 평소에 안 하던 짓을 왜 하나? 이게 어디 아픈가? 이 전도사가 어디가 지금 몸이 편찮은가?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심방의 깊이는 평소의 목양의 깊이를 능가할 수가 없어요. 심방의 깊이는 평소 목양의 깊이를 능가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말씀으로 잘 먹이는 것이 목양이에요. 응? 그래서 그래서 이제 심방을 목양적 심방에서는 말씀이 주가 된다 첫째로...
또 목양적 심방에서는 뭐가 주가 되냐면 사랑이 동기가 되는 것이 목양적 심방이야. 아까 본 것과 같이 사교적인 심방, 의례적인 심방, 정치적인 심방, 이런 것들은 다 동기 그 자체가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아니에요.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아니에요. 음...사교적인 심방은 인간관계를 깊게 하는 것이겠죠? 의례적인 심방은 예의겠죠? 정치적인 심방은 정치적인 목적이겠죠? 이런 거예요. 어느 우리 후배 뭐 같이 공부했지만 나이상으로는 내 후배인 부목사가 부목사 노릇을 하다가 아주 질려하면서 ‘내가 다시 부목사가 되면은 사람 자식이 아니다.’.그랬는데 여러분 참 말이 무서운 겁니다. 그 형제가 그렇게 이야기 한 게 30대 초반의 일이었어요. 근데 그 후에 신학교에서 쭉 강의를 하는데 뭐 사실은 뭐 잘 그게 뭐 제대로 된 잡이 아니지..그러니까 이제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목회를 해 보려고 했어요. 근데 100여군데를 이력서를 냈는데 부목사로 못 들어갔어요. 지금 50대가 넘었어요.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하는 그 이야기를 여러분들이 그렇게 가볍게 듣지 마. 여러분들이 어느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서 목양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한테 짤려. 그래서 탁 끊어내신다고..그럼 다시 기회가 안 와. 나는 그런 경우를 여러 번 봤어요. 정말이에요. 하나님은 꼭 그렇게 하셔요. 기회가 오질 않아요. 근데 심방을 이제 그런 이유 중의 하나가 뭐냐면 심방을 하는데 담임목사가 그러더라는거야. “자네는 그렇게 해서 어떻게 목회를 할래?” 그래서 “왜요?” 그러니까 “자네는 너무 사람이 사람들 잘 사귀지 못 한다” 그러면서 뭐라 하면 “이 사람아. 목회는 인간 관계야” 뭐 그 말 듣고 화가 났다고 하지만 사실은 절반은 맞는 거고 절반은 틀린 거죠. 그죠? 그래서 인간 관계가 중요하죠. 그래서 무례하고 그리고 성의가 없고 그 다음에 사랑이 전혀 없는 그런 인간관계로 성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인간관계에 두 종류가 있는데 진통제와 같은 관계가 있고, 보약과 같은 관계가 있어요. 몸이 약하면은 가을에 보약을 먹잖아요 그지? 나는 보약 싫어합니다. 근데 어쨌든 보약을 먹잖아 그죠? 가끔 이제 교역자들이 너무 약하면 가끔 먹으라고 그러는데 먹잖아요? 그럼 가을에 힘이 나는 게 아니라 봄에 힘이 나요. 인간관계를 그렇게 해야 돼. 진통제는 아프기 5분 전까지 생각도 안 나. 아프면 생각이 나고 탁 털어 넣는 것처럼...근데 사람들이 참 그런 걸 너무 몰라요. 수십년 동안 연락 없던 사람이 불쑥 나타나서 “목사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천 만원만 도와 주십시오.” 도와주겠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 몰라. 심방을 하는 목자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양떼에 대한 사랑이 동기가 돼야 돼요. 그래서 ‘아 이 영혼이 주님을 떠나서 멀리 있는데 얼마나 곤고할까’ 이게 돼야죠. 아마 음 사역을 하면서 우리 교회처럼 숫자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덜 주는 교회는 많지 않을 겁니다. 나는 여태까지 15년 목회를 하면서 한 번도 숫자 가지고 문제를 삼은 적은 없어요. 언제나 지적될 때의 그 문제는 정신이었어. 필...그게 없다는 거예요. 응? 그리고 그런 것들이 숫자로 나타나는 거죠. 그러니까 영혼에 대한 애틋함과 깊은 사랑이 심방의 동기가 돼야 돼요. 그렇게 심방이 좋은 건지를 아는데 왜 심방을 안 하는지 알아요? 응? 심방이 그렇게 좋은데 왜 그렇게 심방을 안 하는지 알아? 김 전도사..왜 심방을 안 하는지 알어? 저기 김성구 전도사..응? 어떻게 생각해..그러니까 영혼에 대한 넘치는 사랑의 결핍이 넘치는 사랑이 결핍되어 있으면 심방을 나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고 부담스러운 거죠. 뭐든지 그래. 자기가 기도를 열렬히 할 때는 안 그런데, 자기가 기도가 죽어 있을 때는 제일 부담스러운 게 설교가 쉽지 차라리 기도회를 인도하는 것은 죽을 맛이야. 그죠? 전도 다니지 않기 때문에 교사들을 전도하도록 격려하지 못 하는 거예요. 그리고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서 구도 속에서 움직이려니까 언제나 그러는 거죠. 그래서 그 방문 외판원이 훈려을 받는데 그랬대. 가서 벨을 누른 다음에 이렇게 이렇게 말하라고 그러는데 벨을 딩동딩동 누르면서 나오지 마라 나오지 마라 나오지 마라 ...두려운 거죠. 그래서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동기가 돼야 되는 거죠. 그래서 나에게는 주일 날 심방하는게 그렇게 적절했어요. 왜냐하면 그 영혼들이 눈에 안 보일 때 주일 날 가장 현실적으로 가슴에 다가오잖아요. 그리고 학생들이니까 주일 날은 집에 있을 가능성이 많아. 그런데 평일날은 이제 이게 학원에 있는지 학교 도서관에 있는지 집에 있는지 피씨방에 있는지 그 땐 피시방도 없었지만 찾기가 굉장히 힘든 거죠. 그래서 주일날 심방을 많이 했어요.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 이것이 심방의 동기가 되는 것이 목양적 심방이다 이거에요.
그럼 이제 실제로 심방을 할 때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 뭐냐면 누구를 심방할 것인가를 먼저 정하는 거예요. 응? 누구를 심방할 것인가 먼저 정하는 거예요. 1순위가 누구냐 하면은 오래 안 나온 사람, 혹은 부모가 우리 교회 다니는 아이들. 이게 1순위가 아니라 누가 1순위냐 하면은 심방을 가면 가장 찔림을 많이 받을 영혼, 그게 심방의 1순위야. 전도할 때도 보면은 성심을 다해 전도했는데 안 익은 곡식이 있잖아. 그지? 그럼 우리는 한 번 찔러보고 나서 덮어두고 기도하다가 몇 달 뒤에 가 보면 마음이 변했잖아 그지? 그러니까 심방 대상자를 정할 때 가장 1순위는 지금 심방 할 때 마음에 깊이 찔림을 받을 영혼 응? 그리고 가장 위기에 처한 영혼, 이 사람들이 1순위 심방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어떤 게 있냐면 심방이 꼭 필요할 때 시기를 놓치면 몇 주 후에 가게 되면 마음이 아주 딱딱하게 굳어서 심방이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 하는 경우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될 때까지 마음을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그런 우선 순위가 나오게 되는 거죠. 그 사람들을 먼저 그게 1순위에요. 그리고 그 다음엔 이제 2순위, 3순위 이렇게 정하게 되는 거예요. 응?
그런데 이 사람들을 먼저 정하고 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뭐냐면 영혼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에요. 이거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여러분들이 어 만나자 그러면 네...하고 기꺼이 응하는 아이들은 심방할 필요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오히려 진짜 심방해야 할 대상은 좀처럼 자기 자신을 교역자가 만날 수 있도록 충분히 개방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심방 할 때에는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돼요. 그리고는 이제 그 다음에 심방을 가게 되죠. 그죠? 가게 되는데, 심방을 갈 때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죠 그죠? 혼자 가는 방법이 있고, 그 다음에 선생님과 같이 가는 방법이 있어요. 어 또는 아이들과 함께 가는 방법이 있어요 그죠? 어느 방법이든지간에 적절하게 선택을 하면 좋은데,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경우는 끌어내기가 매우 어려운 아이들, 심방을 가도 선생님이나 전도사님이 찾아가면 기피할 아이들의 경우, 이런 경우에는 친구가 낚싯밥이야. 친구를 데려 가면 친구가 부르면 나와요. 그것도 평소에 유감 있는 친구를 데려가면 안 되고, 평소에 사이가 좋고 친근한 애 중에서 상태가 괜찮은 애를 데리고 가야지. 그래서 낚싯밥이야. 그래서 심방을 갈 때에 이제 사실 교역자로서 조심스러운 점이 많거든요? 그래서 담임목사하고 같이 간다면 괜찮겠지만은, 아직 미혼인 혹은 기혼이라도 남자 교역자와 그 다음에 여자 선생님 둘이 심방을 다닌다 그것도 승용차를 타고 온 시내를 돌아다닌다...덕을 세우지 못 할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나는 거의 그렇게 심방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제일 좋은 건 그래서 총무교사를 언제든지 나는 가자마자 총무교사를 두었어요. 총무교사는 선생 전체를 통할하고 그리고 교회로 말하자면 수석 부목사처럼 그리고 행정적인 일을 도맡아 해 주는 남성을 하나 두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을 데리고 가는 거예요. 그러면 대개 셋이 가게 되죠 그죠? 셋이 가면 그 사람이 운전을 해 주면 더 좋고 그러면 이제 심방을 하러 가는 거예요. 그렇게 팀을 짜거나 아니면 교역자 한 사람하고 그 다음에 선생님 하나 하고 그 다음에 낚싯밥 아이 하나 하고 이렇게. 그저 내 경험에 의하면 넷은 많고 둘은 좀 남자 선생 둘이 가는 경우엔 모르지만 덕이 안 될 경우가 많아요. 또 뭐 연세 많이 드신 집사님 하고 가는거야 어떨지 모르지만 어쨌든지간에 그런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까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나는 세 명이다...그러고 세 명이 모두 심방 현장에 나타날 필요는 없어요. 그래서 총무 선생은 거기 앉아서 기다리거나 혹은 식사 할 때 같이 먹고 잠깐 심방할 때에는 상황에 따라 같이 동참해도 좋고 밖에서 기다려도 좋고 응? 응..그것도 도저히 안 되는 경우에는 이제 두 명을 데리고 가는 거죠. 그래서 남자 교역자가 심방할 선생님하고 마음을 잘 맞춰서 같이 심방해 줄 수 있는 여선생이나 남선생을 하나 더 해서 가면 그러면 덕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겠죠? 그렇게 해서 어쨌든 심방 대원을 정하고 갑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심방하러 해 보니까 그 때는 대부분 내가 운전을 하고 다녔는데 뒤에 앉혀놓고 가는 동안에 그게 이제 주일날 교회 와도 다들 친구잖아. 대화할 시간이 별로 없잖아. 아침부터 바쁘니까...진짜 오랜만에 만난 거란 말이야. 심방 가면서 대화할 수도 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 깔깔 대고 친구 소식 무슨 일이 있었대...막 얘기하는 가운데 마음은 찾아가는 영혼들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거야. 그러다가 그 집 앞에 탁 내렸을 때 그 목양의 마음이 한 번에 생겨나겠는가....그래서 항상 심방하기 전에는 교사들을 모두 모아놓고 나 전도사 때 심방 교육을 먼저 했어요. 제가 담임목사가 된 후에도 대심방 할 때에는 대심방 교육을 먼저 시켰어요. 그래서 심방할 때, 뭐 잠깐 잠깐 대화 나눌 순 있겠죠 뭐 수도원도 아니고,, 그렇지만 심방하러 가면서도 마음이 계속 교회와 영혼, 목양, 그러니까 대화를 나누어도 지금 심방 가는 사람에 대한 염려 어린 대화라든지 하나님이 주신 회심의 기쁨이라든지 또 그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거라든지 이런 것들은 심방을 하는 심방 대원의 그 마인드와 일치를 이루는 대화들이기 때문에 괜찮아요.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세속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채우고 웃고 떠들고 그러면서 가는 그것은 목양적인 심방이 아니다...오히려 할 얘기 없으면 조용히 기도하면서 그렇게 그를 만나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면서 가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요.
자 그 다음에 이제 첫 대면을 하게 되는데, 이제 아이들의 심방의 경우에는 어른 심방하고는 많이 달라요. 어른 심방의 경우에는 미리 심방을 받을 수 있도록 대기를 하고 있죠. 그리고 목회자가 가면 그래도 목사님 하고 전도사님이 그렇게 함께 오니까 아 성도들이 잘 준비를 하고 있다가 예배를 드리면 말씀을 들을 그런 그 의지도 있고 또 끝나고 나면 좋은 다과도 대접하고 우리 교회에서는 봉투를 못 받게 합니다마는 엊그제도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 와서 하는 이야기가 자기네 교회에선 모두 평생 소원이 교구 교역자가 되는 거래. 왜? 가면은 부수입이 많다는 거죠. 실제로 강남에 있는 교회는 어느 전도사가 아주 목사님 눈에 들어서 전도사인데도 교구가 아니라 교구가 아니라 구역, 장년 구역을 하나 맡았는데 그 구역 식구들이 돈을 모아서 지금부터 20년 전 이야기인데 액셀 승용차를 하나 사 주었대요. 그럼 그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들이니까 뭐 그까짓 거 한 그 때 돈 한 삼사십 만원씩 모아서 그거 한 대 사 주는 건 일도 아니었던 거죠. 이러한 것들까지도 사실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단 말이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장년은 그래도 기본적으로 그런 것들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심방은 그렇지 않죠. 부모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자기 아이들을 목양해 주는 우리의 사역에 아주 많이 협조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부분 그렇게 그 부모들이 자기의 그 자녀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죠. 그러면 사실 어떤 때에는 집에도 못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믿는 집안의 아이야 집에 들어가서 상 가지고 와서 심방을 하지만 그러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장소와 방에 얽매이지 않고 심방을 하는 것이 좋은 기술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어떻게 보면 이 심방이 제일 좋을 때는 따뜻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겨울에 하는 심방은 겨울에 하는 심방대로 유익이 있는 게 뭐냐면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새 해에는 좀 잘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심방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이제 꼭 만나는 것이 참 쉽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만나기를 기도해야 하고 그 다음에 가기 전에 이 아이의 그 행적에 대한 정보를 선생님을 통해 미리 수집을 하도록 이 아이가 집에 전화해 보면 주일날 학원을 갔는지 혹은 집에 있는지 아니면 친구들과 놀러 운동장에 갔는지 도서실에 갔는지 파악이 돼야될 것 아니에요? 그러면은 가장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러니까 편리하게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약속을 하면 그것은 최선이고 그게 만약에 안 될 때 안 되는 데도 그 아이를 꼭 만나야 되는 경우가 있죠. 그러면 그 아이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많은 곳을 찾아가 보는 거죠. 그리고 혹은 만나겠다는 확신이 있으면 거기서 기다리는 것이죠. 근데 기도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가 막히게 만나게 해 주십니다. 진짜 간증입니다. 예. 그래서 순간적으로 하나님이 그냥 가야 할지 여기서 좀 더 기다려야 할지 그런 것도 인도해 주셔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면 어떤 때는 결국은 나가서 돌아다니고 이러다가 저녁 때 되면 어스름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교회에 가야 할 영혼이 교회 안 가고 딴 데 돌아다니다가 집에 들어오는 발걸음은 얼마나 무겁겠어요. 그래서 이제 어떤 때는 우리들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죠. 자 이제 심방을 하는데 지금 저녁 시간이야. 그리고 이 아이를 여기에서 기다려야 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해야 돼. 그러면 어떻게 하냐면 그 아이가 필연적으로 자기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골목, 거기에서 유리창으로 볼 수 있는 곳에서 가벼운 식사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항상 관측이 가능하죠? 그러면 만날 수도 있고 그러한 지형지물이 없을 경우에는 사람을 보내어서 먹을 것을 사오게 해서 그래서 그 동네 근처의 벤치 같은 데에 앉아서 저녁을 때우면서 만나기를 기다리는 거죠. 그러면은 저녁 때 컴컴해 질 때 이제 힘 없이 교회 가야갈 영혼이 교회를 안 갔는데 놀 때야 행복했지만 집에 올 때 얼마나 마음이 허하겠어요. 그리고 흔들흔들 들어옵니다. 그 때 이제 부르면 만나게 되잖아요? 깜짝 놀라죠. 왜냐하면 우리라고 예상을 못 했으니까...더군다나 그 때는 핸드폰 같은 게 없던 시대니까 더더욱 뜻밖이죠. 그래도 그렇게 만나게 되면 됩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도대체 이 선생님들하고 전도사님이 여기서 몇 시간을 기다렸을까 생각하는 거죠. 어떤 때는 두 시간씩 기다리던 때도 있죠. 그럼 만나는 겁니다. 이게 실화인데요. 이 목사님이 월요일이 되어서 주일날 심방 안 나온 교인들을 심방을 했답니다. 했는데, 아 근데 목사님이 가보니까 교인이 외출을 하고 없어요. 그래서 목사님은 돌아가시고 그리고 이 교인이 저녁 때 왔는데 그러더라는 거예요. 앞집에 있는 사람이 “아무개 엄마 어제 교회 안 갔어?” 그러더래요. 물론 그 사람은 불신자죠? “ 네 사정이 있어서 못 갔는데요” 그러니까 “그러지 말고 그 교회 잘 다녀. ”불신자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너무 뜻밖이잖아요? 그래서 “아니 내가 교회 다니는데 앞집 아줌마 왜 그래?” 그러니까 “나는 교회를 안 다녀봐서 어느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잘 모르는데 당신 다니는 그 교회 참 좋은 교회 같애 그러니까 잘 다녀” 갈수록 모르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 아니 아줌마 우리 교회 와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좋은 교회인지 나쁜 교회인지 알아요?” 그러니까 “당신 없을 때 당신 교회 목사님이 심방을 와서 벨을 누르길래 그 집이 아침에 온 가족이 외출했어요...그렇게 얘기를 하니까”“ 언제쯤 돌아옵니까?” 물어보시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뭐 놀러가는 것 같았는데 저녁 돼야 들어올 거 같애요.” 그랬대요. 그러면 왠만한 사람 같았으면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갈 줄 알았는데 목사님이 심방 대원도 없이 가방을 들고 혼자 오셔서 물론 이제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였겠죠? 그 때는 뭐 차도 없었던 시절이니까 그러고 걸어와서 심방을 하고 사람이 없다고 그러니까 가방을 내려놓고 그 자기 대문 그 사람 집 대문의 기둥을 옛날의 집에는 양쪽에 기둥이 있었잖아요. 거기를 붙들고 한참을 눈물로 기도하고 가더라는 거예요. 그래 당신이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당신의 목사를 당신 집에까지 와서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마음 아프게 하면 당신 하나님 앞에 벌 받지..그러더래요. 이게 이 사람한테 큰 찔림이 돼서 신앙의 각성이 있었다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그게 바로 마음이죠.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혹은 못 만나고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동안에도 그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우리는 거기에다가 깨끗하게 이렇게 자잘한 글씨로 사연을 써 놓고 포스트잇으로 붙여놓고 왔어요. 항상..그래서 왔다간 그것이 이 그 마음은 어떤 식으로든지 목양의 마음은 왔다가 메모 하나만 남겨놓고 사라져도 그것이 그대로 전해지는 거야. 그래서 이제 만나요. 그러면 처음 만남이 굉장히 중요한거죠. 만나자마자 “ 야 너 교회 왜 안 나왔니?” 그게 문제야. 심문하러 왔거나 취조하러 온 거죠. 그게 사실은 우리가 심방 갔을 때 교회 안 나온 이유가 궁금합니까 솔직히 얘기해서? 안 나왔다는 현실이 훨씬 더 중요한 거지, 거기 뭔 이유가 있겠어요? 그 정도 중요한 이유가 있었으면 사실은 그 날 우리가 심방가도 못 만났어야지. 그렇지 않아요? 그래 봐야 ‘뭐 친구랑 약속이 있었어요. 뭐 학교에서 어디를 갔어요. 아니면 시험 공부를 못 했어요.’ 뭐 등등의 다 뻔한 대답들이거든. 전화도 마찬가지거든요? 전화가 참 한계가 있는게, 이게 한 두 번 전화할 때는 그렇지 않은데 여러 번 주일 저녁에나 월요일 전화를 하면 이 아이의 마음 속에서 ‘이게 결국은 내가 이 선생님에 의해서 숫자로 취급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에요. “너 왜 못 나왔니...”심지어는“ 너 때문에 우리 오늘 출석 우승 놓쳤어.” 이렇게 되면은 더더욱 이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는 목양이라고 하는 이 감각은 완전히 사라지는 거죠. 근데 전도사가 되고 나면은 사실은 이 수에 대해서 담임목사가 말을 안 해도 자유로울 수가 없죠. 내가 내수동 교회에서 사역할 때의 일인데, 중학교 학생들이 74명을 전임자에게 물려 받았어. 애들이 내가 보기에 거의 회심한 아이들이 없었어요. 근데도 이 취임식 예배를 드리는데 그 전임 전도사가 고별 설교를 하는데, 고별 설교를 하는데 이 거리가 10미터도 안 되는데 그 설교 소리가 안 들리는 거예요. 마이크 없이 설교를 하는데.. 예배 시간에 비행기를 접어서 날리더라구. 참 굉장했어요. 그러고 나서 이제 그 사역이 시작이 됐는데, 아이들이 점점 떨어지는 거야. 그래가지고 34명까지 내려갔어요. 담임목사님이 한 달에 한 번씩 설교하러 내려오는데, 언젠가 내려와서 설교를 하시면서 그래. “얘들아, 그 많던 네 친구들 어디 갔니?” 근데 그 때 내가 교수로 1년차 생활을 할 때에는 죽을 것 같았어요. 정말...학교에서 이제 학위과정 밟으면서 그 다음에 한 주일에 20시간씩 그 수업을 진행하면서 그게 뭐 신대원 졸업 했는데 컨텐츠가 뭐 있겠어요? 그것도 교수 가기로 한 게 1월말에 결정이 되었으니 2월달부터 강의 준비를 해 가지고 3월 초순부터 강의를 했으니 그게 뭐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죠. 그렇게 해 가지고 이제 강의를 하는데 집은 음 집은 인천 그렇죠. 집은 인천이고 교회는 광화문이고, 학교는 안양인데, 한 바퀴를 도는데 6시간이 걸리는거야. 그러니까 그러면서도 수요 예배 한 번 안 빠졌거든요. 교회가 수요예배 나오라고 강요하진 않았는데, 하여튼 아이들 가르치면서 나는 나대로 또 이제 신념이 있어서 그렇게 생활했던 거죠. 화장실에 앉으니까 막 한 번 앉으면 피가 양껏씩 쏟아지는 거야. 그래갖고 도저히 못 하겠는거야. 그래서 이제 교수가 공부를 하고 아이들 잘 가르쳐야지 내가 이게 무슨 고생인가 그러고 인제 내려놓으려고 내려놓기 전에 항상 기도를 했는데, 응답을 해 주셔야 될 것 아니에요?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참아라” 그러시는거야. 그래 우리 집사람도 기도해 보더니 지금 그만 두면 안 된대요. 그래서 다시 한 번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아주 선명하게 보여 주시는데, 아 “네 사역이 끝나간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니까 참아라” 그거였어요. 그러고 나니까 이제는 담임목사님은 나를 참 좋아하셨는데 그 관계까지 깨지려고 하는 거야. 아 참, 그리고 그 나를 대하시는 눈빛이나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 하시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무뚝뚝하신 분이 나를 참 좋아하셨는데, 그래서 여기 있으라고 그러면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그리고 그 때 인제 40일 동안을 저녁이었는지 뭐 어떻게든지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금식기도를 하면서 그러면서 인제 전도를 했어요. 이거는 뺄게. 이거는 나중에 인제 전도 세미나 할 때 내 가르쳐 줄게. 그러고 인제 진짜로 매달렸어요. 그래서 그 후로부터 여러 달 동안은 진짜 학교 봉사 했지만, 학교도 없고 가정도 없고 진짜 교회 밖에 없었어요. 가면은 그렇게 눈물을 흘렸어요. 그래서 인제 내가 뜻을 세우고 그 때부터 인제 토요일 철야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 지하실이었는데 습하고 하여튼 무지하게 추웠어요 겨울이면...그런데 어쨌든 그 때는 하....겨울은 겨울이었던 거 같애요. 어쨌든 그렇게 해서 어쨌든 그렇게 혼자서 토요일날 가서 쳘야를 하고 그리고 인제 매달렸어요. 전도도 그렇게 되니까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어요. 그러고 나서 그 때부터 인제 열심히 심방을 했어요. 그렇게 해 놓고 우리들이 40일 금식기도를 하는 동안에 마지막 때 그 중등부로서는 최고 96명이 출석을 해서 도저히 앉을 수가 없어 가지고 계단에 이렇게 계단에 내려오는 계단에 방석을 놓고 아이들이 죽 앉아서 예배를 드릴 정도까지 그러면서 그 때 한 번 아주 절실하게 경험한 게 뭐냐면 이 세상의 그 누구 보다도 나의 목회가 잘 되기를 바라는 한 분이 계시는데 우리 엄마 우리 아빠도 아니고 담임목사도 아니고 하나님이에요.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그 영혼들의 직접적인 목자이시기 때문에 더 많은 영혼들이 우리의 섬김의 그 목양지에서 변화 받고 하나님 앞에 새로워지기를 너무나 너무나 절실하게 원하시기 때문에..그것을 거기서 정말 깊이 깨달은 거예요. 그러면서 인제 선생님들도 은혜를 많이 받고 내가 인제 그렇게 열심히 심방하니까 인제 예전에는 아이들이 70여명이 나오던 아이들이 60, 50, 40 이렇게 줄 때 가슴이 막 오그라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 결국은 다 예배 끝나고 교역자 회의 끝나고 나면 “하 이제 한 주를 넘겼구나”.. 그러니까 마음이 풀어지면서 꼭 사역자들하고 같이 가서 저녁을 먹었어요. 그게 유일한 위로였어요. 진짜, 주일 날 집에 갈 때.. 그런데 인제 그렇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나서는 이게 내가 어떤 식으로든지 목자는 자신의 목양지가 병들어 갈 때 마음이 편할 수 없거든. 만약에 편하다면 그건 삯꾼이지. 그건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지. 가슴이 녹지 않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그 녹는 가슴을 제대로 목양적인 대책을 세워서 거기다 쏟아 놔야 돼. 그게 충성이지 아까 얘기했듯이 ‘이 생명도 달라시면’ 그건 외상이야. 근데 오늘 심방 가는 건 현찰이야. 그거를 내가 거기서 이전에도 심방하고 그랬지만 아주 뼈저리게 깊이 깨닫게 된 거야. 그러면서 인제 열렬히 고등부에 올라가면서부터는 열렬히 심방 했어요. 너무 너무 감사한 게 그렇게 해서 심방을 하고 1주일 동안 심방을 하고 돌아오면 정확하게 그 다음 날 출석이 10명에서 15명이 늘어나는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아이들을 심방을 하는 거예요. 그런 사랑의 마음으로 심방을 해. 그러니까 찾아갈 때 “너 교회 왜 안 나왔어 너 때무에 우리 반 출석 우승 못 줬잖아” 응? 아니면은 그 그 아이의 형편이나 이런 거는 전혀 상관이 없이 단지 의무이기 때문에만 그 일을 한다고 생각할 때 영혼들은 절대로 문을 열지 않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그 첫 대면을 이제 여는 거예요, 그래서 깊이 그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거죠.
아. 장소는 다양해요. 어떤 때는 아까 여기서 보는 것처럼 골목에서 앉을 데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 어떻해..어쩔 수 없죠. 그러면 골목에 인제 서서 잠깐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죠. 근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은 이 시간이 문제가 안 돼. 시간이나 장소가 문제가 안 돼. 그 날도 굉장히 그 추운 날이었던 걸로 내가 기억을 해요. 그렇지. 여기 바람이 불잖아? 왜 추운 겨울에 왜 그 가로등 왜 양철 뚜껑 덮여 있었잖아. 요즘은 그런 거 없어. 그게 볼트가 빠지면 달랑달랑달랑 한다고. 그러고 덜렁덜렁 그 불도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그러지. 거기에 인제 서서 그래서 권면할 때는 거기서 뭐 성경을 펴고 뭐 마태복음 2장 8절 보자 그럴수가 있겠어요? 필요 없죠. 여기에 항상 몇 가지를 가지고 다녀야돼. 그래서 뭐냐하면 주일날 지키지 않는 사람, 믿다 실족할 때, 그 다음에 가정적인 큰 고통이 있을 때, 성적이 떨어질 때, 친구 관계로 괴로워할 때, 아니면은 마음에 깊은 갈등이 있어서 번민이 될 때, 뭐 이런 등등의 몇 가지 경우에서 성경 구절을 외워 가지고 다니는 거야. 그렇게 해 놓고 제 이야기를 해 주는 거죠. 그러면서 “어 그래 어떻게 지냈니 힘든 건 없니 ” 그 다음에 뭐 “말 들으니까 아버님이 아프시다는데” 등등의 정보를 가지고 가잖아요? 이야기를 계속 던지면은 인제 이야기를 막 쏟아놓고 오려고 그러지 말고 속에 있는 걸 끌어내게 해야 돼요. 인내심을 가지고 확 퍼 붓고 오면 그건 심방이 아냐. 그러니까 이렇게 끌어내게 해야 돼. 그러면 쪼끔씩이라도 진심이 담긴 이야기들이 나와요. 그래서 인제 적당히 끌어나왔다 라고 그래서 질문을 잘 해야죠. 자존심 상하지 않게 “아 그랬니? 그래서..아버지가 아프시다며? 그래서 어떻게 됐니? 병원에선 뭐래? 입원 언제 다시 하셔?” 뭐 아니면은 “ 또 다른 치료 방법은 없대? 내가 좋은 의사를 소개해 줄까? 우리 아버지도 아팠었는데” 뭐 등등의 이야기로 계속 끌어가면서 이야기를 계속 하게 해야 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은 한 마디씩 한 마디씩 해요. 그래서 이제 어느 정도 다 끌어냈다라고 생각 될 때 말씀으로 마무리를 해야죠. 거기서 요한계시록 강해 하고 앉았으면 안 돼. 근데 그런 사람들이 있어. 그렇게 하면 안 돼. 아주 간략하게. 응? 자기 경험을 이야기 해도 좋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나오는 너레이티브를 이야기 해도 좋고, 아니면 성경 구절 하나를 암송해 주면서 이야기 해도 좋고 그렇게 하면서 결국은 아이에게 탁 자기에게 적합한 하나의 말씀이 들어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응? 응..“두려워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아니면은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 들려주면서 그대로 외울 필요는 없어요. 비슷하게 들려주면서 아주 짤막하게 해설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너를 다루신다 말씀해 주는 거죠. 그것이 이제 중요한 거예요. 네? 네 그렇게 하고 마지막으로 이제 기도하는 거죠. 기도...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는 거예요. 그 때에 인제 가정이 있을 경우에는 뭐 그렇게 문제가 없고 장소도 다양하죠. 추운 겨울 날 전봇대 밑에서 심방을 하는 적도 있고 또 날이 따뜻해서 공원 벤치에서 심방 하는 적도 있고 아니면 날이 아주 따뜻하고 좋으면은 쪼금 걸어가서 뭐 이화여대 같은 데 가면은 그 캠퍼스에 이야기 할 만한 데가 굉장히 많아요. 잔디밭 같은 데 앉아서 이야기 할 때도 있고 사직공원도 있고, 뭐 그 위에 굉장히 그런 장소가 의외로 많아요. 그리고 뭐 이것도 저것도 정 안 되면은 뭐 빵집 같은 데도 가고 등등 해서 어쨌든지간에 그 아이에게 잘 하게 말씀이 심겨져서 들어갈 수 있도록 아이가 마음이 많이 열렸을 때는 중국집 같은 데 가서 방을 하나 주면은 짜장면 시켜 먹으면서 그렇게 성경을 펴 놓고 예배를 드린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하고 그렇게 될 때에는 마지막으로 항상 이 아이에게 기도를 시켰어요. 그게 인제 하나님 앞에 자기를 이끌어 내게 하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거든요? 물론 인제 전혀 못 하는 애들 시키면 부담 되겠지만은 어쨌든 그런 애들이 기도를 했어요. 그럼 이어서 “내가 기도해 주마” 그리고 간절히 기도할 때 인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있게 되면은 그 때에 아주 깊이 깨뜨려지는 역사가 나타났어요. 선생님이 심방 가면 선생님이 깨뜨려지고 아이들이 심방 가면 그렇게 기도하는 시간에 아이들이 깨뜨려지고 이렇게 하면서 인제 이 심방이 아주 은혜로운 심방이 되는 거죠. 그래서 그 시간이 사실은 성령이 역사해 주셔야 할 필요성이 가장 많은 시간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니까 그 가로등 그늘 아래서 방황하던 그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비는 거죠. 그래 사실은 교회 안 나올 때 걔네들은 내적으로 아주 시끄럽고 이 혼란스럽고 정신이, 안 좋은 거거든요. 그 때에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하나님과의 평화, 거기에서 오는 평온함, 사랑, 이런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이런 것들이 남아 있게 마련인거죠. 그래서 그러한 마음을 불러 일으켜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요. 그러면은 “다음 주일날은 꼭 교회에 오너라” 그럼 거기에서 못 간다고 그러는 아이들은 극소수에요. “뭐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있어요.” 그러면은 그냥 잘 설득하든지 아니면 그러면 “그 다음 주에는 꼭 오너라” 이렇게 인제 심방을 마무리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항상 가방 속에는 몇 가지 필수품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예쁜 엽서와 편지 봉투, 물론 거기에는 우표 붙은 거라야 돼요. 그래야지만 지나가다가 아무 데나 넣을 수 있으니까..그거..그 다음에 이제 지금도 아마 나올 거예요. 옛날에는 이렇게 한 1000원 1500원 하는 아주 심지어는 500원 하는 것도 있었는데 얇은 책자들이 있었어요. 말씀사에서 많이 나왔는데..얇은 책, 기도에 대해서, 뭐 존 맥아더의 책을 비롯해서 뭐 굉장히 놓은 책들이 많이 있었어요. 뭐 그 중에는 우리 하고 신학 사상이 안 맞는 것도 있지만 고런 것들을 잘 이렇게 넣어 갖고 다니고... 그 다음에 내가 고등부 사역할 때는 그 때는 복사기도 없고 그랬는데 설교를 하면은 지난 주 설교 같은 것들을 인제 그 복사를 해 주는데 그 저기 선생이 있었어요. 집에서 인제 1:1 복사기에다가 계속 돌려서 그 한 10개씩 이렇게 해서 그럼 그걸 가지고 주중에 심방을 해서 “이거 전도사님이 주일날 설교한 건데 예배 못 드렸으니까 꼭 듣고 그러고 오너라” 그럼 작은 책들, 그럼 이 아이가 예를 들자면은 아 이제 자기가 뭐 하나님 앞에 잘못해서 그래서 번민이 생겨서 그렇게 교회 못 나오고 그러면 용서에 대한 책, 그 다음에 기도에 대한 책, 아니면은 역경을 이기는 책, 이런 것들을 좋은 거. 너무 두꺼운 거 말고. 돈도 없고. 얇은 거..아니면은 그것도 슬기로운 거 아니에요? 아이들이 그렇게 두꺼운 책을 줘서 요즘에 1주일 내에 읽으라고 그러면 오히려 그거 못 읽어서 또 안 나올 가능성도 많거든. 그러니까 굉장히 좋은 거죠. 뭐냐면 글 천지잖아. 잘 봐서 선생님들하고 의논해서 몇 개 만드는 거야. 예쁘게. 낙심했을 때, 기도가 안 될 때, 친구가 배신했을 때, 그 다음에 가정에 풍파기 있을 때, 육신이 매우 아플 때, 시험을 앞두고 불안할 때, 등등 몇 가지 만들어서 요즘 뭐 칼라 프리터도 무제한이니까 깨끗하게 해서 예쁘게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요만한 책자로 복사해 가지고 여러 장 가지고 여러 권 가지고 있는 거야. 이거 퍼 온 글이긴 하지만, 자기가 썼으면 더 좋고, “퍼 온 글이긴 하지만 한 번 이거 읽어봐라 나는 참 굉장히 힘을 얻었다” 그러고 하나 깨끗하게 말하고 주는 거야. 그리고 가방 이 쪽에는 항상 이제 선물을 하나씩 가지고 가는 거야. 그래서 값비싼 건 아니고 그 때 지금은 굉장히 흔한데 옛날에는 그것도 그렇게 흔하지 않아. 커다란 귤 하나, 오면서 네 생각 하고 하나 샀다 그러고 손에 쥐어 주고 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은 그 이후에 책갈피, 뭐 그렇게 돈도 별로 안 되면서 아주 마음을 전해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선물들, 아주 좋은 거죠. 지금 그거를 내가 그 때 복사 해 놓지 않은 게 참 후회되는데, 그 전도사 한창 할 때는 전철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전철 기다릴 때는 너무나 시간 없고 시외버스 같은 거 기다리거나 그럴 때에는 항상 그 남는 시간에 엽서를 썼어요. 엽서를 쓸 때에 요샌 그런 거 잘 사용 안 하지만 감동을 주는 방법이 뭐냐면 작은 엽서 뒷칸 하나에 원고지 50매정도 쓰는 거야. 빽빽하게..얇은 플러스 펜으로...근데 그게 결국은 뭐냐면 자기가 그 아이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거야. 그래서 나오는 거야. 그래서 그 한 번 받으면은 걔는 그 다음 주에 꼭 나와요. 왜냐면 자기 평생에 그런 엽서는 처음 받았거든. 옛날에 김대중씨가 썼던 옥중서신 같이..이 작은 거기 하나에 아주 깨알같이 적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탁 받아보면 받는 사람들이 전부 다 놀래 정도죠. 그런 거를 늘 적는 거야. 목양서신이죠. 그렇게 해 가지고 아이들에게 주는 거야. 그래서 한 번 그 아이가 자기를 깊이 사랑으로 심방해 주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은 그 때에는 신뢰가 많이 생기면서 자기에 대해서 많이 털어놓는 거죠.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선생한텐 털어놓지 않아도 뛰어넘어서 전도사한테는 털어놓는 거야. 놀라운 게 여러분들이 어리석게 이런 원칙을 세우면 안 돼. ‘나는 선생님들을 돌보고 선생님들은 애들 돌본다’ 그런 원칙 세우면 안 돼. 그거는 있지 나처럼 목회를 하고 심지어는 수천명이 모여도 그거는 그렇게 안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목양을 선생님을 통해서 부교역자들을 통해서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거고 언제든지 그 아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지 회사 사장처럼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항상 심방을 하고 오면 그 선생님하고 전화해서 정보를 나누었어요. 그 선생님이 심방을 못 따라가는 경우도 있잖아. 회사가 바쁘고 그러면...그럼 쭉 얘기해 줘서 정보를 같이 나누고 이랬어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인제 전도사가 가자고 그러면 부끄러운 마음이라고 항상 따라 나서게 되죠? 이제 이렇게 심방을 하는 거야. 그러고 마지막에 인제 잘 그런 거를 전해 주는 거죠. 그래서 항상 이 아이가 돌아가서 그런 심방을 생각나게끔 만들어 주는 거죠. 어떤 때는 같이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그렇게 해 가지고 어쨌든 이 아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거야. 가만히 보면 아이들도 외롭거든요. 왜냐하면 이 세상 다 뒤져봐도 그런 정도의 사랑을 가지고 자기에게 찾아오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친구 몇 빼 놓고는 누가 오겠냐고..그러니까 친구한테 그렇게 빠지는 거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심방을 가면 사람에 따라서 첫 번째 마음을 여느냐 두 번째 마음을 여느냐 차이는 있지만은 일관된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면 반드시 그 마음을 열 수가 있어요. 그렇게 심방을 하는 거야. 그렇게 심방을 해서 간절히 아주 절실하게 그렇게 영혼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거야. 그게 바로 진정한 의미의 심방인 거예요. 돌아오면 누가 은혜를 받냐면 같이 따라갔던 선생님들이 은혜를 받는 거야.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 혼자 영혼을 위해서 울어보는 건 쉽지 않거든. 심방의 현장에 따라가면서 이제 그렇게 경험하게 되고 자기 엄격하게 말하면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를 위해서 그렇게 눈물로 심방해 주는 자기의 교역자에 대해서 사랑과 그리고 권위에 대한 인정이 생겨나게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