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수련회 조장교육
녹취자 : 김세나
그러면 이제 여기에서 지금, 여기에서 지금 그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인간의 의무라는 이야기를 여기에서 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 excellentia 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탁월성이 뭐냐 라고 하는 것부터. 이 책에는 별로 안 나와요. 이 탁월성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 이 교제를 들어가 보도록 하겠어요.
여기서 먼저 이야기하고 있는 탁월성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 탁월성이라고 하는 것은 뭘 이야기 하느냐 하면, 일단 이 탁월성은 그 이 탁월성을 인식하는, 인식하는 주체들이 있다고 하는 염두해 두고 있는 거죠. 이 탁월성은 필연적으로 피조세계와 연관이 되는 거죠. 피조세계와. 그래서 삼위하나님은 이렇게 성삼위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시고 이 세 위의 영광과 그 다음에 불변함, 탁월성 모든 것들은 다 동등하단 말이에요.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이야기 하는 그리스도의 탁월성이라고 하는 것은 삼위 안에서의 탁월성도 가리키지만, 삼위 안에서는 그 어느 위도 다른 위에 비해서 탁월하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왜냐하면 무한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들이 이야기 하는 그리스도의 탁월성이라고 하는 것은 피조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이 탁월성을 설명하는 거죠. 그러면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그리스도의 탁월성이라고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 탁월성을 인식하는, 인식하는 주체자들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누가 있겠어요. 인간과 천사, 이렇게 있겠죠. 이 탁월성이 물론 이 이전에도 삼위 하나님 자체가 탁월하신, 탁월하신 trinity 이지만, 그런데 이 그리스도 예수의,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치자. 그러면 이 그리스도 예수의 탁월성이 인간이나 천사들에게 인식되는 것은 이 그리스도 예수가 시간 세계 속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탁월성이 시간과 공간의 세계 속으로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이 그리스도 예수의 탁월성이 드러나게 되는 거예요. 들어나게 된다 라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 하면, 시간과 공간속에서 드러나서 인간들이 그것들을 알게 된다 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들이 여기에서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 같은 경우도 보면 우리가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에 대한 앎은 아직까지도 이렇게 시간과 공간 속에 육체를 입고 내려오신 도성인신하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큼 확실하지는 않아요. 이해 돼죠. 오히려, 오히려 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도성인신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계시하심으로서 당신을 통해서 성부와 성령의 탁월성을 보여주시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탁월하심은 시간과 공간 세계 속에 들어오심으로써 인간들에게 심지어는 천사들에게까지 그리스도 예수의 탁월함이 뛰어나다는 것이 인식된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면 여기에서 의문이 떠오르지. 인간에게는 이해가 되는데 천사에게는 어떻게 되겠느냐는 거죠. 그렇죠. 천사들의 경우에는 천상에서 성자가 계실 때, 이 천사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계시지만 천사가 삼위 하나님을 대할 때 보다 이 그리스도가 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천사들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이 훨씬 증대되게 된 거예요. 다시 한 번, 자, 이렇게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오심으로써 천사들조차도 자신들이 경배하던 그리스도에 대해, 그리고 삼위 하나님에 대해 더 뛰어난 지식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요. 무슨 문제 있어요, 여기까지, 이해 안 되는 지점 있어요? 대답을 안 해, 이해 돼요?
자, 그러면 이렇게 되면 관계라고 하는 것은 바로 incarnation 이야. 성육신이라고 그러죠. 중국말이죠. 육신을 입으셨다 이 뜻이에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게 되는 거죠. 여기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뭐냐 하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도성인신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냐. 어떻게 생각해요? 피조물이에요. 아니에요. 또 피조물이라는 사람과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면 그리스도의 육체는 어떻게 설명해요? 그러면 예수님의 육체도 피조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굳이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날 필요가 없잖아. 그러면 Docetism 이 되잖아. 가현설주의자. 그죠. 그래서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시죠. 그렇죠.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시지만, 여기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는 거죠. 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는 방법은 모든 사람들이 사람의 몸을 입는 방법과 똑같은 방식으로 입으시는 거예요. 그죠.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결코 피조물이 아니신데, 피조물이 아니신 그리스도께서 단지 옷을 입듯이 이렇게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시는 거죠.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 자신도 육체와 그 다음에 영혼으로 이루어지죠. 그런데 인간의 육체는 어떻게 되죠? 썩어서 소멸하여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이후의 인간의 육체가 누릴 영광 속으로 땅의 묻히지 아니하시고 곧바로 영광으로 들어가셨다 라고 하는 차이점이 있는 것이죠. 그렇죠. 그러니까 이런 사람의 몸을, 예수 그리스도가 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 속에도 특징이 드러나게 되지만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의 이 몸이 완전하고 순수한 사람의 몸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배고픔과 추위, 아픔, 이런 것들에 종속되는 거죠. 이런 몸을 입으신 것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 그리스도의 겸비를 보여주는 대목이죠. 마치 왕이 밤에 이제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나갈 때, 그 때에 그 왕의 곤룡포를 입고 나가는 것이 그저 상민의 옷으로 입고 나가듯이,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거죠.
그러면 이제 피조세계에 대해서 그리스도가 탁월하다 라고 할 때, 그러면 그 탁월하심이라고 하는 것이 뭐냐. 그러니까 이 세상, 하나님께서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시고 창조하셨기 때문에 여기에 많은 피조물들이, 특히 여기에서 염두해두는 것은 인간이에요. 인간들이 존재하게 되잖아요. 그리고 천상에는 천사들이 존재하게 되죠. 그렇죠. 이렇게. 천상에는, 지상에는, 그러니까 천사. 그리스도 예수의 탁월성은 지상세계에서만의 탁월성이 아니라 천상세계까지 모두 아우르는 두 세계에 있어서의 탁월성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피조물, 즉 지상세계뿐만 아니라 천상세계를 아우르는 이 모둔 피조물과의 관계 속에서 탁월하심을 보이시는데, 그리스도 예수의 이 탁월하심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탁월하심을 통해서 하나님 삼위하나님의 탁월하심을 보이시는 것이 목적이었단 말이죠. 그런데 이 지상과 천상의 모든 세계에서 이 피조물이 이른다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에베소서에 보면 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이 모든 것들로 어떻게 되게 하시길 원하신다고요? 하나가 되게 하신다고 하는 거죠. 하나 되게 하심. 그 하나 되게 하심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Recaputalatio 교리라고 하잖아요. 여기에서 re는 다시이고, caputa 는 머리이고, lation 은 화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시 머리 되심이에요. 요새 많은 책들 속에서 총괄갱신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전혀 의미도 안 통하는 번역이에요. 그냥 다시 머리 되심의 교리라고 이야기 해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머리가 되시는 거죠. 그러면 다시 머리가 되신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 이것은 저쪽 4과 쪽에 나오는데, 창조에 있어서, 잘 들어요. 굉장히 중요해요. 창조에 있어서 창조의 형식이 뭐라고 그랬죠? by God Father,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서. 그 다음에 in Holy Spirit, 성령 안에서 그 다음에 through Christ. 이렇게 되잖아요. 여기가 성부, 성령, 성자 이렇게 되요. 성부 하나님에 의해서, 성령 하나님 안에서, 성자를 통해서 이렇게 이루어지게 되는 거거든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중보가 되시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구속의 중보와는 달라요. 구속에서의 중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렇게 되잖아요. 하나님이,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이게 죄야.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중보가 되시는 것 아니야. 그리스도의 중보, 그리스도께서 이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시는 이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용서하신 거죠. 여전히 용서의 주체는 누구죠? 그리스도야, 하나님이야. 아직도 무슨 소리인지 몰라요? 인간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불통되게 되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중보자가 되어 주셔서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용서의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신단말야. 여전히 용서의 주체자는 누구예요? 하나님이잖아. 창조에서의 중보는 그런 식이 아니란 이야기야. 무슨 뜻인지 이해가요? 하나님이 계신데, 하나님이 계신데 그 다음에 이 세상을 창조하셔 그런데 그리스도가 중보가 되신다 이야기에요. 그러면 그리스도를 도구로 삼으셔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어떤 희생이나 이런 것들을 공로로 삼으셔서 이용만 하시고 이 세계는 성부가 직접 창조하시는 이런 개념의 중보가 아니란 거죠. 이것은 구속 중보를 가리키는 거예요. 창조 중보는 뭐냐 하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그냥 창조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가 그리스도를 시켜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거야. 이게 바로 창조 중보와 구속 중보의 차이에요. 이것을 다룬 논문이 서철원 박사님의 그 암스테르담에서 쓴 Christ Mediate-ship of Creation 인가. 창조에 있어서 중보직에 대해서 쓴 논문이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 다룬 논문이야. 그래서 그래서 왜 우리 그 저 로이드 목사님의 설교를 쭉 보면 무슨 이야기가 나오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쭉 설명하면서 그 분이 바로 우리가 구약에서 알고 있는 창조주 여호와 이십니다라고 이야기 할 때, 그 의미가 이 배경을 깔고 있는 거예요.
다시 한 번 정리할게요.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이시지만, 구속의 중보와 창조에 있어서의 중보는 각각 다르다. 구속의 중보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초로 다만 이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용서하시지만, 창조의 중보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design 하시는 거죠. 성자에 의해서 이것이 실행이 되는 거예요. 창조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이 창조된 모든 세계의 머리가 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머리로 삼으시는 거예요. 창조에 있어서 머리로 삼으셨다가 구속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으셔서 그래서 거기에 다 연결되어 붙게 하다가 머리가 되게 하시는 거죠.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가 하나의 교회로 통합이 되어서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천상과 천하 모든 세계를 통치하시는 주로서 그렇게 구속이 완성이 되게 되는 거예요.
그리스도 예수의 탁월성 그런 점에서 이 두 세계 안에서의 탁월성이야. 이 책에서는 이 세계만을 다루었지만 이러한 그, 이러한 그 그리스도 예수의 탁월성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탁월하심은 뭔가. 원래 이 탁월이라고 하는 것은 영광과 거의 같은 개념이에요. 미의 개념하고도 통하고, 그죠. 그 다음에 뭐 또 뭐 선의 개념하고도 통하고 진의 개념하고도 통하고 다 통하는 거죠. 탁월. 이런 것은 미학적인 관점에서 본거고, 윤리적인 관점에서 본거고, 이것은 무슨 철학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라면, 이것은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본 거죠. 철학 중에서도. 그래서 탁월하다 라고 하는 거예요. 탁월한 것. 탁월한 것이라는 것은 영광을 의미하는 것이거든요. 모든 것들이 다 똑같은데, 똑같은데 무엇인가를 더 소유함으로써 이것이 다른 것들보다 돋보이게 되는 것. 이게 바로 영광이에요. 하나의 효과적 영광이 되는 거죠. 영광이에요. 그런 영광을 가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시지만, 피조된 육체를 입고 사람들 속에 계실 때에는 피조물처럼 보이셨어요. 그렇죠. 그리고 지금도 이성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그리스도 예수가 피조물로 밖에 볼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인간 중에 뛰어난 사람이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 거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단순한 이성만으로는 불가하고 여기 뭐에요. 신앙이 필요하게 되는 거예요. 믿음이. 그래서 그의 탁월하심을 단번에 알아보게 되는 거예요. 단번에 벼락맞듯이 그리스도 예수의 excelletia를 알아보지만 이성으로는 아무리 추론해도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알수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가진 이 탁월성이 자연적 탁월성이 아니라 신령한 탁월성이기 때문에 그래요. 신령한 미, 신령한 아름다움 이 모든 것들은 신령한 선, 이런 것들은 결국 신령한 감각 없이는, 지난 수요일에 설교한 것 아니에요. New Sence 에요. 중생과 함께 심겨지는 새로운 감각 없이는 볼 수 없는 거죠. 그 탁월하심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에서부터 찾기 보다는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탁월할 것이 없죠. 똑같이 연약하시고 배고프시고 고달프신 그런 육체였고 또 뭐 요세비우스 전승 같은 것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탁월한 미남이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본질 자체는 그런 외모에 있는 것은 아니겠죠. 그렇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이 탁월성은 영혼에 있다고 봐야 된다. 영혼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탁월성은 어떻게 설명이 되느냐 하면, 인간의 경우에는, 인간의 경우에는 인성이 있지만, 이 분의 경우에는 신성까지 아울러 가지신 영혼이잖아요. 인성과 신성 자체가 영혼안에서 만나니까, 그래서 이러한 영혼의 말하자면 작용의 지성과 그 다음에 의지와 그 다음에 감정으로 나타나잖아요. 이것을 사랑으로 설명할 수 있고, 지성은 지성으로 설명할 수 있고, 의지는 의지는 이것은 능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탁월성을 설명하는 거죠.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렇게 모든 피조물처럼 보이시는 분이시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탁월하심으로 진리를 선포하시고 또 사랑을 보이시고 그 다음에 능력도 보이셔서 그래서 피조물이지만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보여 주셨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의무는 그러한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또 안 후에는 이성으로 계속 추론을 해서 그 분의 영광이 어떠한가, 그 탁월하심을 알아 뵙고 여기에 부합하는 의무를 갖는 것, 의무를 찾는 것, 이것을 인간의 본분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렇다고 보는 거예요. 이게 전체 내용의 핵심이에요. 이것으로 정리한 것으로 마무리 짖도록 하겠어요.
자, 이 목사님 둘째로 거기서부터 읽어요.
(본문 내용) 둘째로 외적인 상호 교통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창조는 모든 창조된 모든 만물이 함께 성령 안에서 창조되어 만물을 초월하시는 하나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주적인 질서의 완전성은 완전한 사물들의 완전한 내적 상호 교통입니다. 다시 말해서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개별적 사물들이
(강의) 그래서 나는 교통이라는 말을 연관으로 바꾸면 어떨까. 오해를 좀 줄이기 위해서. 연관, 상호 연관입니다. 이렇게
(본문 내용) 상호 연관하면서 만들어 낸 보편적 질서의 완전성입니다. 그리고 이 우주적 질서는 창조 세계를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를 보여줍니다. 창조 세계 안에 있는 개별 사물들의 완전한 상호교통은 사물들 간에 어울리는 일치의 질서이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개별 사물들도 아름답고 창조세계 전체가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김남준 목사님) 그 다음 사람
(본문) 아름다운 만물을 초월하시기에 당신이 창조한 만물들에 의하여 당신의 신적 본질을
(김남준 목사님) 거기 줄 치세요. 신적 본질을 공유당하지 않는 거예요.
(본문) 동시에 만물 안에 있으나 하나님의 내주하심의 효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의 설명은 철학자 헤겔이 주장하는 범제신론은 아닙니다. 스피노자는 세계 자체를
(김남준 목사님) 그러니까 이 철학에서 이야기 하는 범재신론과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하나님 안에 만물이 있다고 하는 사상은 훨씬 달라요. 그래서 나는 좀 뭐라지만, 그저 필라소피컬 파넨데이즘과 그리고 비브리컬 파넨데이즘 쯤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요. 그 다음.
(본문) 스피노자나 헤겔이 주장하는 범재신론을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스피노자는 세계 자체를 하나님이 존재하는 특수 방식이라고 보았고,
(김남준 목사님) 거기 줄 치세요. 네. 쭉 줄 쳐 보세요.
(본문) 인간의 자기 의식은 곧 하나님의 자기 사유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비인격적인 신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헤겔은 하나님을 외화라고 기정하고 자연세계를 하나님의 존재로 수렴시키고, 또 하나님을 존재하는 세계 속으로
(김남준 목사님) 헤겔에게 있어서는 자연이 곧 신이야. 자연이 곧 신이야. 그러니까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신이에요.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생각을 하는 거야. 신이 생각하는 거야.
(본문) 또한 하나님을 자연 세계 속으로 수렴하는 범재신론을 말함으로써 계몽주의 이신론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김남준 목사님)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완전히 하나님을 추방해 버리고 여기는 법칙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하든지 하나님의 존재가 있다라고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태도를 취하는 거예요. 이 사람은 굉장히 성실한 철학자였어요. 이 사람이 구둣방을 하였는데 평생 구둣방 하면서 먹고살면서 이렇게 대철학자가 되었어요. 결국은 잘못된 방향으로 갔죠. 그래서 결국은 화란교회에서 정죄 당해요. 파문 당해요. 이 단으로. 그 다음 사람.
(본문) 그가 말하는 하나님 안의 기독교안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 반문하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창조주로서가 아닙니다. 세계에 가득찬 신성으로서의 절대자로서 성장하였습니다.
(김남준 목사님) 거기에서 영성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야. 그것들을 거기에 참여하고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보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 보고, 신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 그 각자 각자가 그 신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거예요. 인간의 존귀함의 근원을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목적 있는 존재,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거기에서는 그것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누어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절대자라고 보고 있는 것이죠. 그 다음 조금 더 읽으세요.
(본문)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서 기독교의 하나님이 늘 증명될 수는 없지만, 만물 안에 있는 신적 본질로서 이해되었습니다. 오늘날 영성이라는 말이 즐겨 사용되는 것은
(김남준 목사님) 거기에도 줄 치세요.
(본문) 중세 기독교에 영향을 받은 현대 기독교 신비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관련되어 있지만 철학적으로는 스피노자와 헤겔의 범재신론적 사상에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철학과 종교 역사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니 가깝게는 불고, 더 나아가는 힌두교와 같이 이교주의와 범신론적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김남준 목사님) 그 다음 사람. 그래서 영성이라는 단어 쓰지 마세요. 영성이라는 말을 여태까지 썼거든요. 그런데 이 논문을 준비하면서 쓰지 말아야 겠다. 그러면 뭘 쓰냐 하면 아 Pietas, 경건. 경건. 혹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이런 말로 쓰면 되죠.
(질문) 비판 받더라고요. 영성이나 경건이나 같은데 왜 영성이라는 말 대신에 경건이라는 말을 쓰면서 보수 집단들은 같은 것을 가지고 자기네들이 다른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을 가지고 비판을 하더라고요. 영성이나 경건이나 똑같은 말인데 그렇게 사용하느냐고 비판을 합니다.
(김남준 목사님) 그러니까 영성이라는 말 그 자체가 그 Spirituality 거든요. 에드워즈도 사용을 하긴 해요. 그런데 그것은 뭐냐 하면 Spirituality는 동물에도 있는 것으로 보는 거죠. 정신적인 기능을, 번역하기 굉장히 어려운 말이에요. 그런데 정신적인 기능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해요. 그래서 그 Spirituality, 영성이라는 것 자체가 이렇게 범신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염두해 두고 이해를 해야 되는데 그 사람들이야 비판을 할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치를 따지고 보면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자 그다음.
(본문) 하나님과 창조세계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초월성과 하나님의 내재성 문제만큼 미묘한 것도 없습니다. 기독교는 초기부터 이렇게 초월적인 신들이 만물안에서 신들의 본질을 섞으며 존재하는 조잡한 신들의 이교주의와 같은 곳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신학자들은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내재성 보다는 초월성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이 문제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건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은 어떠한 정신으로든지 자신의 피조물과 결코 나누어 갖지 않으십니다. 이전의 정통 기독교의 신관은 스피노자와 헤겔의 범재신론이나 불교 혹은 신두교의 범신론과도 결별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신관은 하나님은 어떠한 것과도 신적 존재를 나누어 갖지 않지만 모든 만물 안에 계시다는 점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존재로 보고
(김남준 목사님) 그것 바꾸세요. 모든 만물안에 계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바꾸세요.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는. 그렇게. 응.
(본문) 하나님을 초월적인 존재로 보고 다만 이 세상과의 관계에서는 법칙만을 두셔서 피조세계를 움직이신다는 데카르트 주의와 이신론과는 물론 합리주의적 도덕주의의 명제로서 가정된 존재로서 인격화된 초월자로서의 하나님을 말하는 칸트주의와 또 결별합니다.
(김남준 목사님) 칸트주의는 설명을 했죠. 신을 요청한다. 신이 있는 것으로 치고 살아라. 신이 있냐 없냐 그것은 따지면 안 된다. 그것은 있는 게 좋지 않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는데 굳이 없다고 그래서 그렇게 살 필요가 있느냐. 그러면 진짜 있는 거냐 없는 거냐,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 믿고 싶으면 믿고 그렇지 않으면 마는데 우리 모두 있는 것처럼 살자. 그게 좋다. 웃기죠. 그 다음 사람.
(본문)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초월적 내재성은 마치 영혼이 해부학적으로 우리의 육체 안에 있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관계있게 다가갑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에게 부여하신 신성은 인성과 구별될 수 없고 섞이지 않은 채 한 인격 안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의 양성을 말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물과 꿀이 섞인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칼빈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적인 연합을 말하면서 그리스도에게 교회가 뼈들 중의 뼈, 살들 중의 살으로서 그의 이성이 어떻게 연합할 수 있는가 설명화됩니다. 늘 이러한 연합이 자연적인 질서에 속하는 것, 그리고 어떤 영적이고 도덕적인 가정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성안에 있는 신령한 생명과 은사를 땅에 있는 인간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말합니다.
(김남준 목사님) 그 다음 사람
(본문) 이들 모두 신적 연합의 적합체이신 성령으로 말미암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 안에 거하지만 그리스도는 각양각색 어느 교회에서든 신자들과도 당신의 신적 본질을 나누어 가지시지 않으시면서 당신은 교회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질세계를 다스리심에 있어서 당신은 만물안에 계시시도 않으신 채 단지 법칙만으로 다스리지는 않습니다. 성경이 아니라 데카르트의 하나님의 계시론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자연계 안에 있는 물질적 법칙 혹은 (녹취불가)
그리고 전 건과 후 건 사이에 존재하는
(김남준 목사님) 전 건, 앞에 있는 것과 후 건, 뒤에 있는 것
(본문) 규칙적이고 합리적인 힘의 단계입니다. 그 힘은 물리학적으로 볼 때, 에너지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창조하실 때에 물질 사이에 존재하는 법칙도 만드셨지만, 그 법칙은 하나님을 초월하지도 못하고 배제하지도 못합니다. 자연 만물 안에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자연 법칙은 그 힘이 행사 되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일정한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자연 법칙 안에서 당신의 힘을 행사하지만, 이 법칙은 필연적으로 매이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 법칙 안에서도 하나님의 힘을 발견하고, 이 법칙을 깨뜨리는 것 같은 기적 안에서도 하나님의 힘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자연 법칙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피조물 안에서도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계신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적 본질을 아무 피조물에도 섞으며 계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적 내재성 안에서 창조세계는 하나님이 직접 주는 통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지만 창조세계는 어떤 방식에든지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대해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완전하게 창조되었으니 정신적으로 원천을 향하여 나가는 창조세계 안에서 그것과 함께 하나님도 완성되어 간다는 과정신학의 입장도 비판하는 입장입니다.
(김남준 목사님) 그런 정도로만 정리를 하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