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의 영적 생활
녹취자: 김경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열린 교회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항상 옛날 열린 교회를 이야기 하지만 옛날이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지하실 교회에 있을 때에는 제가 제일 부자였습니다. 너무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정말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열렬히 신앙생활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자아가 강한 사람들 그래서 어느 교회를 가도 다루어지지 않는 외인구단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고 사람들이 놀랍게 변화되는 것도 보고 교회가 7명이 모여서 교회를 시작해서 여기 3,000명이 넘고 아이들까지 4,500명이 되도록 모이기까지 하나님의 얼마나 많은 은혜의 역사가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모이는 것이 교인들 전부 다였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다 수저통까지 압니다. 지금은 교회가 커지니까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똑같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을 지나면서 제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와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그 은혜를 어떻게 간직하고 사느냐하는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불장난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놀이도구도 없으니까 겨울이면 애들이 모여서 불장난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정월대보름쯤 되면 매일 저녁에 나가서 불가지고 쥐불놀이를 하고 깡통에 구멍을 뚫어서 쇠줄을 엮고 불씨를 넣고 나무를 넣고 획 돌리면 어쩌면 그렇게 불이 잘 붙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어두운 밤에 보면 동그란 원을 그리면서 아이들이 들판을 돌아다는 것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때 추운겨울에 불이 활활 타는데 불씨를 하나씩 달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다 주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리 활활 타오르고 있는 장작개비 하나를 받아서 깡통에 담아 가지고 왔다고 해도 추운 곳에 가만히 내버려두면 금방 꺼집니다. 그것을 바람이 불고 거기에 나무를 더 넣고 부채질을 계속 하면 불이 계속 활활 타오르지 않겠습니까? 똑같이 우리의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생활
그래서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생활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신앙의 불씨를 계속 유지하면서 사는 가장 중요한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공적인 예배에서 함께 모여서 드리는 공적인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 이것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도 이것이 없이는 여러분들이 좋은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공부를 하면서 궁금한 것도 생기고 많은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된 아이들이 집에 와서 복습을 하고 예습을 하려고 합니다. 학교생활 자체에 아무 흥미가 없는 학생들은 공부에 취미를 붙일 수 없습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는 것 그것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은 하나님 앞에 말씀을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일찍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분들이 성장반에서 공부한 것처럼 마음을 예배에 싣고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자로서 그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여러분 저는 50년 만에 개를 키우고 있습니다. 요즘 개에 대해서 많이 깨닫는데 사실 개를 통해서 인간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됩니다. 너무 신기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쌍둥이로 태어난 똑같은 개를 두 마리를 분양 받아서 하나는 집 거실에서 돌아다니면서 가족들과 놀면서 키우고 하나는 시골집에 놔두고 사람이 거의 아무도 가지 않습니다. 아침 먹을 때 가서 밥을 주고 낮에 못가니까 이웃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밥을 주고 저녁에 가서 밥을 주고 개가 거기서 혼자 자랍니다. 그러면 이 두 개는 완전히 다른 개가 되는 것입니다. 시골에 남아있는 그 개는 거의 야생동물 비슷하게 됩니다. 아주 거칠고 아주 공격적입니다. 그래서 개도 결국은 우리들이 바라는 개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교감을 갖고 사랑해 주고 사랑을 받을 때에 개가 짐승의 성품을 버리고 인간이 될 수는 없지만 온화해져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동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돌봐주지 않고 접촉하지 않으면 똑같이 야생의 짐승처럼 되는 것이 개입니다. 그러면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돌봄을 받으면서 자란 신자와 어디서 무언가 말씀을 하나 깨닫고 야생처럼 자기 혼자 뛰어다니면서 자기 혼자 사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1) 설교 듣기
설교에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가 이해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성의 이해를 통해서 온다기보다는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하고 지성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할 때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내리십니다. 그러니까 설교를 들을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신을 집중해서 가장 맑은 상태로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렇게 말씀에 집중해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을 때에 기본적인 태도는 설교자를 주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에 집중하는 방법이고 그것이 설교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여러분들을 여기에 올려놓고 연설하라고 했는데 모든 사람이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을 보고 있으면 여러분들이 이야기할 기분이 나겠습니까? 똑같은 것입니다. 집중하면서 설교를 들어야합니다. 제가 될 수 있으면 원고를 보지 않고 설교하는 이유도 가장 큰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과 교감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일 중요합니다. 설교를 듣는 기본자세는 부동자세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자세입니다. 움직이면 안 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고 불편하면 움직일 수 있지만 그러나 할 수 있으면 부동자세로 똑바로 앉아서 들어야합니다. 설교를 듣는 의자는 너무 편해도 안 되고 너무 불편해도 안 됩니다. 지금이 딱입니다. 여기에 컴퓨터방에서 쓰는 것 같은 의자를 놓는 교회도 있습니다. 대부분 잡니다. 너무 편해서 의자에 앉는 순간 의자가 푹 안아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설교듣기에 적합한 의자가 아닙니다. 장의자는 그것은 너무 불편합니다. 그래서 설교가 조금 길어지면 정신이 자꾸 흐트러지는 것입니다. 우리 의자가 딱입니다. 너무 불편하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고 집중하면서 설교를 듣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설교를 필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강의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작은 메모장을 가지고 핵심적인 것을 간단간단하게 적는 것 그것은 굉장히 권장할만한 습관입니다. 그렇게 하고 예배 속에서 깊이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아야합니다.
(2) 성경 읽기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 집에 가서 성경을 읽고 싶어집니다. 성경을 매일 매일 분량이 많지 않더라도 하루에 3장 정도씩이라도 성경을 꾸준히 읽어야합니다. 성경읽기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으면서 3장을 읽고 그 속에서 특별히 은혜를 받았던 말씀을 다시 읽으면서 거기서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간절한 기도제목이 되고 이렇게 하면서 성경을 꾸준히 읽어야합니다. 자, 설교가 중심에 있고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3) 성경 공부하기
그래서 여러분들은 제직교육을 마치고나면 성경공부들이 계속 주어집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을 이것을 안 하면 열린 교인이 아니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 공부는 여러분들이 다 마쳤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만약에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려면 요구하는 것이 많습니다. 일단 요정도만 해도 열린 교회를 다니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자기 자발적으로 공부해야합니다. 누가 가라고 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신약개관학교, 구약개관학교, 로마서 공부, 이런 것들이 계속 제시되면 자기가 평소에 설교에 은혜를 받고 성경을 읽으면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공부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씩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세 가지를 했습니다. 설교, 성경읽기 성경 공부하기입니다.
(4) 경건서적 읽기
네 번째가 뭐냐 하면 말씀 안에서 책을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주가 되면 여러분들이 최초로 도서관을 방문하게 됩니다.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게 될 것입니다. 강의를 다 들은 다음에 마지막 수료기념으로 여러분들의 이름을 등록시켜 줄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여러분들이 의무적으로 책을 한권씩 빌려와야합니다. 거기에 있는 모든 책들이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책들이고 조심해서 읽어야할 책은 갖다놓지 않았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장년교인이 3,000명 모이는 교회에서 저런 도서관 시설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십시오.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아주 자랑스러운 유산입니다. 여기 지금 5~6천권의 책이 있는데 훨씬 더 많았습니다. 불이 나면서 정리했다가 다시 깨끗이 리모델링을 해서 복구한 것입니다. 책도 다시 새로 사다 놓았습니다. 거기서 책을 빌리는 것입니다. 습관이 붙어서 성경을 어디를 읽고 있는가? 내 기도제목이 무엇인가?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주님의 일이 무엇인가?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가? 4가지에 대해서는 항상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번 빌리면 다시 가서 빌릴 것입니다. 반납을 안 하면 일주일 지나면 하루에 300원씩 계속 내야합니다. 어떤 사람은 몇 만원을 낸 사람도 있습니다. 그 수입이 꽤 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전화가 올 정도가 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또 다음 책을 빌려갑니다. 오늘 목사님에게 지시를 했습니다. 다음 주가 되면 여러분들에게 상품권을 줄 것입니다. 별로 안 좋으십니까? 열린 교회 상품권을 줍니다. 그 상품권은 열린 공간에서 까먹으라고 주는 상품권이 아니라 서점에 가서 당일에만 쓸 수 있는 상품권입니다. 그래서 교육이 다 끝나면 40명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40명은 1층에 내려가서 그날 쓸 수 있는 상품권이니 거기서 마음에 드는 책을 한권씩 가져가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다가 조금 보태야할 것입니다. 열린 공간에서 받지 않습니다. 끝나면 서점에 있는 분들은 도서관에 올라오시고 도서관에 있는 분들은 다시 서점으로 내려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린 교회가 수료기념으로 상품권을 드리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역시 한국 사람은 공짜에 약합니다. 대 환영입니다. 대충 정리가 되셨습니까? 첫째 설교를 듣는 것, 둘째 성경을 읽는 것, 셋째 성경을 공부하는 것, 넷째 경건서적을 읽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무엇이라고 했느냐하면 성경은 밥이고 경건서적은 반찬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밥맛이 없을 때에는 부모님들이 평소에는 잘 안 해주시던 맛있는 것을 해주십니다. 맛이 정말 없는데 그것을 먹으면 밥이 당깁니다. 그래서 밥을 먹습니다. 성경을 잘 읽으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책을 읽으면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책을 읽었는데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으면 그것은 좋은 책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었는데 절대로 책을 읽고 싶지 않다면 성경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성경을 읽어야합니다. 항상 책을 손에 들고 살아야합니다. 여러분들이 우리교회에 등록을 해서 구역공부만 해도 1년에 최소한 4권에서 6권 정도의 책을 공부하게 되고 그리고 우리교회에 10년을 다니면 40권에서 60권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중에서 작년에 『나는 신학공부 이렇게 했다.』 650페이지짜리를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학적인 지식이 쌓여가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교리반까지 수료를 하고나면 신학적인 구도가 세워져서 뭔가 세상을 보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정치를 보면서 ‘이렇게 되면 안 되고 저렇게 되어야겠다.’ ‘경제는 왜 재벌들의 이러한 횡포가 나쁜가?’ 그리고 ‘좌파의 경제이론은 우리가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고 우리들이 경계해야 하는가?’ 마찬가지로 남북문제, 기후문제 이런 것들에 대한 판단력이 신학공부를 하면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판단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설교시간에 들어보시지만 정치이야기를 나만큼 하지 않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정치에 무관심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 그것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학을 올바로 가르쳐주면 올바른 판단력들이 하나씩 생겨납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반드시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2. 기도 생활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기도생활입니다. 사실은 두 번째 기도생활을 첫 번째에 놓고 싶을 정도로 기도생활은 중요합니다. 자, 말씀을 드리자면 열린 교회가 세워지고 나서 예배시간에 와서 정말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오늘날 우리 교회의 장로님, 권사님 되신 분들이 교회에 오는 그날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회심을 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교회를 떠난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고 새벽기도를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를 떠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기도생활은 중요합니다. 말씀생활이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 것이라면 기도생활은 그 말씀을 깊이 뿌리내리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교회 마당에도 보면 엄청나게 큰 나무를 사다가 심었는데 사실은 양쪽에 진짜 멋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좋았는데 하나는 암놈이고 하나는 수놈이어서 가을이면 항상 은행을 한가마니씩 땄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건축법에 면적 때문에 죽어도 안 된답니다. 그래서 잘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심었습니다. 심으니까 어떻게 됩니까? 심은 지 1년 반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버텨놓고 있는데 떼어버리려니 “3년은 놔두십시오.”합니다. 그만큼 나무는 심는 것보다 그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기도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너무 너무 간사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는 것이 너무 좋고 기쁜 일이지만 어느 정도 흘러가버리면 영혼의 싫증이 납니다. 그런 싫증이 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기도생활입니다. 기도는 실제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고 지루함과 싫증이 나게 하는 영혼의 때들을 벗겨내는 역할을 기도가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밝은 빛과 같은 깨달음, 그 다음에 뜨거운 불과 같은 기도, 이 두 개가 함께 만날 때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의 이상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지만 결국 기독교신앙의 목회의 마지막 목표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묻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어떤 면에서는 사람인데 어떤 면에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지 않고는 인간이 도저히 제자리도 돌아가서 사람답게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고 그 생명으로 넘치게 될 때에 비로소 그가 참 신자가 될 수 있고 참 신자가 되면 될수록 그 사람은 하나님이 원래 이 세상에 창조하셨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되는 것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다운 사람,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을 때에 지으셨던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를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참사람의 성품과 짐승의 성품이 공존합니다. 짐승의 성품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대항하고 하나님을 거스르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본능입니다. 이 두 개가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는 항상 이것을 이깁니다. 진리의 밝은 빛이 우리에게 들어오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힘을 줄 때 우리 안에 있는 짐승 같은 요소들을 얼마든지 이겨내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안 하게 되면 인간이 매우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기도생활입니다. 교회에 가까이 있어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새벽기도를 나오겠다고 결심하면 가장 좋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러면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그 시간을 언제나 가져야합니다. 기도생활에 있어서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도 기도의 눈물이 없는 사람, 기도의 간절함이 없는 사람들은 금세 미끄러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살아있는 기도가 있는 사람들은 견고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그렇게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장로님이 이야기했듯이 많은 사람이 몰려옵니다. 지금은 안 그런 줄 아십니까? 1년에 열린 교회에 와서 등록하는 사람이 800명에서 1,000명입니다. 놀랍습니다. 그 대신 연말에 나가는 사람들도 비슷한 숫자입니다. 그래서 이게 계속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돌아가시는 분, 해외에 유학 가는 분, 군대 가는 사람, 이민 가는 사람,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또 어떤 사람은 남고 어떤 사람은 떠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고 많은 사람이 떠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가 살아있는 사람이어야지만 어디를 가든지 그 말씀을 붙들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 생활하는 것이 너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그러면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생활이 필요하다. 설교, 성경읽기, 성경공부, 독서 경건서적을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쪽에 와서 기도는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기도생활이 중요하지만 똑같이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 그리고 수요기도회, 구역모임 이런 것들을 통해서 기도의 불길을 함께 경험하면서 자기가 개인적으로 간절히 기도할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을 말씀드렸습니다.
3. 전도 생활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전도입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이 전도를 많이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양계장과 같습니다. 양계장의 오래된 닭은 알을 낳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알을 낳지 않는다고 할 때 정리를 합니다. 그것을 폐계라고 합니다. 그 폐계는 어렸을 때 사다먹어 보았지만 시장에 가면 엄청나게 쌉니다. 그런데 보통 조리방법으로는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익혀놓으면 고무줄 같습니다. 저기 평택에 내려가면 폐계만 전문으로 하는 요리점이 있습니다. 나중에 이 폐계가 인기를 끈 것이 압력밥솥이 나오면서부터입니다. 압력밥솥에 놓고 푹 찌면 보들보들한 닭으로 변신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는 것이 뭐냐 하면 교회가 압력밥솥 같은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오래된 교인들도 그 속에 들어와서 한번 쪄지면 정말 보들보들한 닭으로 변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전도하는 일들은 대개 우리교회에서도 보면 예수 믿고 열린 교회에 와서 뜨겁게 은혜를 받은 사람들 1년차 미만 되는 사람들에 의해서 50%이상이 전도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마치 사마리아의 우물가의 여인처럼 일생 어두움 속에서 살았지만 예수를 만나고 너무 기쁘니까 자기가 누군지도 잊어버리고 물동이를 팽개치고 온 동네에 가서 “야 동네사람들아 내가 본 일을 너희도 한번 와 봐라. 이분이 나의 모든 것을 아셨다. 너희도 이분을 만나 봐라.”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어떤 커다란 행사가 있고 그 행사 속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은혜를 많이 받으면서 여전히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어둠속에 있고 불신상태에서 흐느끼는 영혼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사랑하고 기도할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와서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 해에 우리가 일제히 앙케이트 조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결과가 나왔는데 놀랍게 교회에 전도된 사람들의 65%가 우리교회에 출석한지 1년 미만 된 사람들이 전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35%를 나머지 사람들이 전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중에서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나오고, 요즘에는 전도하지 않고 스스로 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요즘은 교회를 다녀보고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 들어와서 찾아보고 교회를 결정하고 옵니다. 실제로 그렇게 따진다면 실제로 전도된 사람들의 80% 가까이를 1년 미만 된 교인들이 전도했다고 보면 됩니다. 1년 미만 된 모든 사람들이 전도했겠습니까? 아닙니다.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깨달음을 얻어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전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전도하십시오.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폐계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열심히 전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도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열린 교회를 다녀서 변화된 삶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가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여러분들이 놀라운 기쁨의 삶을 함께 누리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제일 먼저 말씀, 기도, 전도 그랬습니다.
4. 봉사 생활
네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봉사생활입니다. 그래서 끝날 때가 되면 무엇을 봉사하게 될지 콜링(calling)할 것입니다.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를 보면 맨 위에 큰 호수가 있고 아래에 또 작은 호수가 있습니다. 위의 호수가 갈릴리 호수고 밑의 호수가 사해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위로부터 끊임없이 강에서 흘러내려서 헤르몬산에서 흘러내려서 모이면서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길이가 70㎞ 정도 되고 폭이 좁은 데는 좁겠지만 평균 4㎞ 정도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자기네 호수를 갈릴리바다라고 부릅니다. 그 호수는 아주 맑고 물이 깊고 고기가 아주 많이 삽니다. 그런가하면 이 아래에 있는 사해는 물이 흘러들어오는 양보다 증발하는 양이 많아서 소금염도가 높아져서 자살하려고 뛰어들어도 몸이 물위에 둥둥 뜨는 이상한 곳이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지금은 가치가 엄청나게 높습니다. 사해의 소금이라든지 그곳의 미네랄을 비롯해서 온갖 약품 건강식품 이런 것들이 나오고 심지어 거기의 진흙을 한주먹씩 캐어서 몇 십 달러씩 파는데 그런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물이 흘러들어오고 여기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으니까 계속 죽은 호수가 되니까 어떠한 생물도 사해에서는 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짜서 어떤 생물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고, 생명을 받았으면 그것을 계속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받기만 하고 갇힌 삶을 살아야하겠습니까?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봉사하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봉사할 때 제일 큰 유익을 받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섬겨야할 것들이 수없이 많고 연말이 되면 그 섬김 자들은 무슨 섬김이 필요한지를 공시하고 무엇을 섬길지 체크를 합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제직을 마치면서 무엇인가 봉사하도록 선택될 것입니다. 그것이 물론 교사가 되고 하는 것은 자격을 갖추어야하겠지만 다른 많은 봉사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디엔가 교회의 어느 한 구석에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이 교회가 자신의 교회라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이 제직교육을 마치고 1년을 살다가 다른 교회로 옮기고 하는 것은 그런 신앙생활은 너무 피곤합니다. 더군다나 머리가 희끗희끗한데 아직까지도 정착한 교회가 없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그렇게 새가족 등록이나 하면서 우리가 인생을 마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뿌리를 내리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방황은 기독교에서 끝을 내고 신앙의 방황은 열린 교회에서 끝을 내고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정착된 신앙생활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복습을 하면 첫째 말씀생활, 두 번째 기도생활, 세 번째 전도생활, 네 번째 봉사생활 이렇게 네 가지로 정돈됩니다.
5. 공동체로 함께 살아감.
그러면 마지막 한 가지가 있으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공동체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성장반에서 마지막에 3과에 걸쳐서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혼자 믿는 종교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공동체적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 하나님입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교회도 우리들의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실 때에도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 6:9) 라고 가르쳐주신 인칭대명사가 ‘우리’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0-13)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우리, 우리, 우리, 우리입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미 그 안에 관계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와 너, 나와 너도 아닌 그, 이 세 사람의 관계가 모여서 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우리 안에는 모든 사람이 나와 너지만 그러나 동시에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인 그래서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는 관계성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원리입니다. 요약을 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맨 처음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사회를 만드셨는데 그 사회가 아담과 하와 그 자손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입니다. 어떤 사회가 되기를 바라셨느냐하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이런 사이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사이가 깨진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마지막에 완성하실 때 세상을 그런 세상으로 완성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사랑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교회에서 그것을 미리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깊이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고 자신이 상대방의 결함이나 결점을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배워가면서 그러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믿음이 그리고 신앙의 인격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지하게 막 교회에서 혈기를 부리고 인간적인 다툼을 하는 이런 것들은 교회에 아주 부끄러운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집입니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은 질서가 있어야하고 무엇보다 정의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정의를 통해서 사랑을 완성해가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러나 온 성도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처럼 교회가 온전한 교회가 되어가기를 힘쓰고 자신의 존재가 교회를 그렇게 하는데 무엇인가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여러분들이 교회생활을 잘해나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