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가르치는 사람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 5:2)
녹취자: 백지영
교회학교가 지금부터 30년 전하고 비교를 해 보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다는 것은 모두가 시인하고 있는 바입니다. 제가 처음 회심하고 교사가 된 것이 1976년도였습니다. 40년 전입니다. 아는 것도 없이 교사생활을 시작을 하고 지금은 담임목사가 되었지만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이들이 교육에 대해서 굉장히 수용적이었습니다. 뭐든지 배우고 싶어 하고 받아들이고 싶어 하고 교회에는 특별한 좋은 기자재나 이런 것들이 없었지만 말로, 그림그리기 색칠이라도 굉장히 교육에 대한 수용성이 높았습니다. 지금은 안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지금 위기를 못 느끼시지만 중소도시에 가면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들이 아주 많습니다. 장년교인이 한 200명 나오는데 주일학교를 아예 포기했습니다. 왜? 없습니다. 아이들이. 100명되는 교회들 중에는 주일학교 가진 교회들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심각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부모가 예수를 믿으면 아이들이 부모 영향력 아래 들어서 딱 붙들고 나왔는데 지금 부모들이 그것을 못합니다.
그러면 교회에 들어온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에 장로님 한 분이 계신데 집사시절에 어쨌든 우리교회에 오셔서 은혜를 많이 받고 제일 먼저 교사생활을 한 것을 회개를 하셨답니다. 이 교회는 아니고 이 동네에서 교사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고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벌써 20년, 30년 전 인데 한번 마음을 먹고 오만 군데 수소문을 해서 마지막으로 자기가 가르치던 12명의 아이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수소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 만났답니다. 그 결과 너무 자기가 충격을 받은 게 두 명만 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열 명은 교회 출석 안 하고 있고 그 열 명 중에서도 두 세 명은 아예 무신론자가 돼 있더랍니다. 그 당시에는 자기 품에서 잘 가르쳤다고 생각을 했는데 왜 그랬을까?
여러분 교회에 제가 굉장히 친숙합니다. 한번 옛날에 설교하러 온 적이 있고 제가 이 동네에 있는 내수동 교회에서 7년 동안 교역자 생활을 했습니다. 매일 이 옆을 지나다녔습니다. 교단이 달랐지만. 그런데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너무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심각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생각을 안 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게 해결의 길이 있어야 자꾸 해보고 해 보고 하는데 해결의 길도 별로 안 보이고 해결의 길이라고 해서 한번 해 보니까 그렇게 커다란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 점점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자, 그럼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을 해야 할 것이냐?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그냥 교회 나와서 엉기정기 어울려서 교회 다닌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요즘은 그것도 안 통하지만, 엄마 아빠가 ‘이놈의 자식’ 그러면 교회 따라왔습니다. 중학교 때에는 용돈 가지고 협박하면 됩니다. ‘너 교회 안 나오면 용돈 없어.’ 그러면 치사하다고 하면서도 교회 따라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면 ‘내버려두세요. 내가 편의점에 가서 알바하고 말지.’ 그리고 자존심이 있어서 안 나옵니다. 대학가면 빠이빠이 입니다. 통제가 안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엄마 아빠는 신앙이 돈독하고 교회에 충성했는데 아이들이 완전히 안 믿습니다. 안 믿는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시집 장가가겠다고 데리고 왔는데 불신자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건 또 낫습니다. 불교신자를 데리고 와 가지고 비기독교 식으로 학교교수님 모시고 결혼하겠다고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이 문제를 밤 새워서 이야기를 해도 다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제를 교사 리바이벌이라는 책에서 다 이야기했습니다. 장로님께 한권 대표로 드렸는데 저 책을 팔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는 상관이 없는데 여러분들을 위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저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았습니다. 6만부에서 7만부 정도 팔린 책입니다. 아주 깊이 생각하고 각성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를 안 다녔으면 복음을 못 들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교회를 계속 다녔는데 신앙이 전혀 안 들어간다면 누구 책입니까? 그래서 영혼을 인도하는 사람은 상급도 많지만 하나님 앞에 책망 받을 일도 아주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소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짐승 매달아서 도는 무지무지하게 큰 맷돌입니다, 그것을 목에 걸어가지고 바다에 빠뜨리는 게 오히려 낫다고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만 해 주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다 안하려고 하는데 내가 억지로라도 해주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중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저 책 속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교사가 뭐하는 사람이냐 이것입니다. 주일학교교사가 하는 일도 많을 것입니다. 내수동교회에서 사역할 때도 보면 하다하다 안 되니까 아이들 데려다가 공부까지 가르쳐주었습니다. 공부한다고 주일 날 안 나오니까. “그러면 주일날 나와라 그러면 밤에 가르쳐주마.” 내수동교회만 해도 좋은 학교 다니는 형제자매들이 많았습니다. 또 심방도 갑니다. 저 같은 경우는 주일이면 오후 4시부터 밤 11시까지 심방했습니다. 목사님이 굉장히 고마워하셨습니다. 상담도 해 주어야 합니다. 상담만 합니까? 입이 열려야 마음도 열린답니다. 요새는. 먹을 것도 사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교회학교에서 행사들도 많이 합니다. 그것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이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모두 교사가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인 사역은 아닙니다. 그 본질적인 사역, 다 떼어내고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교사의 본질적인 사역이 무엇이냐 하면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수많은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하나씩 하나씩 다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무대가 어디로 나오느냐 하면 팔복산이 나옵니다. 팔복산으로 예수님이 올라가십니다. 그 많은 사람이 다 따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병 고침을 받고 가버린 사람도 있고 따라온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 산에 올라가셔서 좌정하셨습니다. 그 밑에 사람들이 죽 앉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산상수훈입니다. 5장 3절에서 시작을 해서 7장까지 계속 흘러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2절은 그 산상수훈의 도입부입니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그러면서 3절부터 말씀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여러분들이 손에 들고 있는 이런 성경책 없었습니다. 성경이 이 당시에 두루마리였기 때문에 신약은 없었고 구약성경이었을 때 두루마리가 한 구루마였습니다. 그것을 다 챙기면. 그러니까 예수님 손에 두루마리 성경을 들고 설교한 것은 회당에서나 가능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당창고에는 성경이 있습니다. 양피지의 성경이. 종이는 물론 없었던 시절이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아무 것도 없이 설교하신 것입니다. 신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산상수훈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적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설교한 내용의 골자를 뽑아서 적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합의를 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내용이 얼마나 다양한 지 한번 보십시오. 천국백성의 성품과 삶에 대해서 그 윤리적인 생활까지 아주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사실 예수님이 아침에 시작해서 오후까지 계속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그 어마어마한 양의 말씀이 전달될 때 그 팔복산에서는 죽은 자가 살아나거나 병든 자 가 일어나거나 소경이 눈을 뜨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직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계셨고 온 백성들은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사람들이 집중해서 들었는지 마지막에 예수님의 말씀이 끝났을 때 거기 모인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이 말씀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것과 같지 않고 권세 있는 말씀같이 느껴져서 사람들 마음속에 깊은 감화를 주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따라 온 사람들이 솔직히 문둥병이 걸리고 혈루병이 걸리고 중풍병이 들고 기동을 못하는 사람이 왔을 때 그들의 관심사는 병 낫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병을 고쳐주어도 그들이 진정으로 그 어떤 면에 있어서 새로워지지 않으면 고침 받은 몸은 다시 병들 수도 있고 병이 안 든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죽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그들이 진정으로 변화를 받아서 이 세상을 살면서도 이미 온 그리고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사는 백성들이 되게 하는 것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길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인생의 문제를 파편적으로 표피적으로 치료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가난의 문제, 질병의 문제, 교육의 문제, 환경의 문제 모든 것까지 관심을 갖습니다. 거기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뭔가 거기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만 모두 성취되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 모든 일들을 위해서 기독교는 기여하되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그 모든 증상들을 가져온 궁극적인 원인, 가난, 무지, 질병, 인간관계 파괴, 내적인 상실, 그런 것들을 통한 우울증과 이런 모든 것들이 다 더듬어서 밑으로 내려가면 마지막에 나오는 것은 죄라고 하는 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감기가 옵니다. 그러면 감기 균은 안 보이는데 자꾸 콧물이 나오고 재채기가 나오고 목이 붓고 눈이 빨개지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감기라고 하는 병원체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그 치료를 가르쳐서 우리들은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사가 많은 일들을 하되 그러한 구원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망가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쳐서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해결이 무엇이냐, 그게 세상의 지혜와 연민으로 오는 게 그 아이들이 진정으로 진리의 말씀을 먹고 변화 받음으로서 그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문제는 성경을 안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안 하겠습니다만 이렇게 모였을 때 여기서부터 한 20명을 다 일으켜 세웁니다. 교사입니다. 제가 20년 동안 해 본 통계입니다. “지난주에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지 않은 사람은 앉으십시오.” 그러면 여섯 명쯤 앉습니다. 지난주에 공과공부를 안 한 것입니다. 왜 안했느냐고 물어보면 “친구 초청 잔치가 있었어요. 파티를 했어요. 오락회를 했어요. 행사가 있었어요. 드라마를 했어요.” 다시 “열 네 명 중에서 지난주에 학생들에게 성경 어디를 가르쳤는지 기억나는 사람 빼고 나머지 앉아보십시오.” 그러면 두 명에서 네 명 남기고 다 앉습니다. 그런데 서울 강남 중심가 쪽 여러분같이 교육수준이 높은 교회는 명수가 좀 많고 지방으로 내려가면 아예 한명 두 명밖에 안서고 나머지는 다 앉아버립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아이들을 만났는데 지난주에 성경을 가르쳤는데 어디를 가르쳤는지 생각이 안 나는 것입니다. 뭘 가르쳤는지 생각이 안 나니 아이들이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으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한 주가 아니라 그 아이들이 주일학교 중등부 고등부 오면서 이것이 계속 누적돼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래 다녔으니까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려니 생각하는데 실상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저의 부모님은 예수를 안 믿으셨습니다. 나중에 믿으셨지만. 제가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다녔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매우 안 좋은 것을 보면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수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단 한명도 “남준아, 너 예수님에 대해서 들어봤니? 구원 받았니? 죽으면 하늘나라 갈 수 있겠니?” 물어봐준 선생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랬겠습니까?
저희 교회에서 1년에 한 번씩 월요일마다 한 학기씩 전도사님 목사님들이 모여서 인턴 십이라는 것을 합니다. 거기에 모였을 때 숙제를 하나 내줬습니다. 주일학교, 중등부, 고등부, 청년부 이렇게 있는데 주일학교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가서 당신들이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을 조사해 보십시오.” 무슨 조사를 시켰느냐 하면 교역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난 다음에 얘가 정말 구원받은 아이인가 그 조사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너무 충격적으로 나왔습니다. 그 중의 한 전도사님은 잊어버리지도 않는데 자기가 초등부 학생 45명을 가르치는데 하나하나를 만나서 조사를 해 보았답니다. 그런데 자기 신앙의 양심을 걸고 "얘는 확실히 예수가 계시는구나, 얘는 구원을 받았구나."라고 생각되는 아이가 딱 1명이었답니다. 그래서 펑펑 울었다는 것입니다. 주일예배에. 여러분들도 제가 제안하는 게 무엇이냐 하면 오늘 집에 가서 출석부 펴 놓고 신앙의 양심을 걸고 얘가 정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가, 신앙의 씨가 이 아이에게 있는가, 그것을 한번 체크를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물어볼 것은 그러면 그것을 위해서 이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할 때. 공과공부 시간이 거의 두 시간이라고 해서 이 교회는 정말 성경 열심히 공부시키는가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끝나고 나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지각색입니다. 늦게 나오는 선생님, 헐레벌떡 와서 예배도 못 드리고 공과공부시간에 온 것입니다. "얘들아, 우리 공과공부하자." 그러니까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너희 아침 못 먹었지? 선생님이 너희 주려고 샌드위치 싸느라고 늦었다." 가방을 여니까 샌드위치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아이가 "선생님, 제가 우유 사올께요." 한 아이가 우유 산다고 일어나니까 나도 간다고 세 명이 일어납니다. 전교인의 50퍼센트가 우유 사러 갔습니다. 근처에 또 슈퍼도 없어서 한참 내려가야 합니다. 아니 슈퍼는 있었는데 편의점도 별로 없었던 시대입니다. 사 가지고 오니까 컵 가지러 또 갑니다. 컵은 가지고 왔는데 우유를 쏟았습니다. 걸레 가지러 또 갑니다. 어쨌든 샌드위치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니까 40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공부하려나보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재미있습니다. “얘들아, 지난주에 어떻게 지냈는지 나누어볼까?” 시간이 다 됐는데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데 별별 얘기 다 나옵니다. 학교 이야기, 선생님 때문에 열 받은 이야기, 최수종 팬클럽에 갔다 온 이야기, 이제 끝났습니다. 이제 공부하려나보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럼 내가 지난주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 보겠다고 시작을 합니다. 한 바퀴 다 돌다오니까 겨우 수요일까지 왔습니다. 월요일부터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해서 수요일까지 왔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1시간 20이 되었습니다. 다른 반은 다 끝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보니까 선생님이 이야기합니다. “얘들아 오늘 정말 은혜로운 공과였지? 우리 모두 손잡고 같이 기도하고 마치자.” 그러니까 옆에 있는 아이가 “선생님, 우리 공과공부 안 해요?”하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남자아이가 그놈 옆구리를 탁 찌르면서 “가만있어 이 자식아. 지금 끝나려고 하잖아.” 그리고 감사기도하고 마치는 것입니다.
또 한 반은 공과공부시간이 됐는데 갑자기 ‘야호’ 하고 아이들이 일어납니다. “우리 공과공부 나가서 합니다.”, “어디로 나가냐? 주일날.”, “웬디스 갑니다.” 순진하게 나는 진짜 공과 공부하는지 가봤습니다. 음악소리가 시끄러워서 옆의 사람 소리도 잘 안 들리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치킨 한 조각씩 먹고 집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변화되겠습니까?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담임목사님이 주일 학교가 궁금해서 찾아갔답니다. “아이들이 진짜 교육을 잘 받고 있나?” 한 아이를 붙들었습니다. “얘야, 넌 지금 몇 학년이니?”, “목사님 안녕하세요? 초등학교 4학년이에요.”, “우리 교회 온지 얼마나 됐니?”, “유치부 때 와가지고 지금 6년 됐습니다.”, “주일학교를 그럼 6년을 다닌 거니?”, “예.” 그래서 “얘야,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니?”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안 그랬는데요.”그러고 울더랍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불렀습니다.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느냐고 하니까 6년 다닌 아이가 자기가 안 그랬다고 하는데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하니까 “얘가 안 그랬다고 하니까 진짜 안 그랬을 겁니다. 제가 책임집니다.” 하도 기가 막혀서 장로님을 불렀습니다.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느냐고 하니까 얘가 자기는 안 그랬다고 울고 선생님은 얘 말이 맞을 거라고 하는데 장로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랬더니 “목사님, 기왕 무너진 거 가지고 뭘 그럽니까? 제가 절반을 물어내겠습니다.” 웃자고 누가 만들어놓은 이야기겠지만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는 항상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 얘들이 지겨워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겨워하는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못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교사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에게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과를 어떻게 하든지 공부를 잘 해 가지고 와서 그 짧은 시간에 아이들의 가슴에 와 닿는 언어와 표현으로 아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야기를 잘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듣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이 재미도 없어하는 성경말씀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정말 실감나게 심기려고 하면 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지식이 흐르는 통로가 필요합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여러분, 심방하십니까?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안 연다고 하더라도 사랑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인터스텔라에서 보면 사랑이 우주도 넘나들게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아이들의 가슴 속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내수동 교회에 있으면서 진짜 열심히 심방을 했습니다. 제가 그때 교수생활하면서 전도사 생활을 했는데 여름이면 80명 다 심방하고 겨울에 한번 80명 다 심방했습니다. 설교도 안 듣고 공과 가르쳐도 눈도 마주치지 않던 아이들이라도 한번 그 집 앞에 4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만나 보십시오. 결국 마음을 엽니다. 사랑입니다,
문제는 교사로서 내가 이렇게 살고 아이들에게 내가 해 주어야 할 의무와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달으면서 희생하고자 하는 의욕의 크기가 커야 합니다. 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열씩 낳아서 기르고 지금 아마 그렇게 한다면 요즘 젊은 여성은 전부 다 쓰러지거나 이혼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감당했던 것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고 그러면 기꺼이 이 아이들을 위해서 희생해야 된다고 하는 의욕의 크기가 워낙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열 명을 낳아서 새벽부터 밤까지 코피 나게 시장바닥에서 일해서 돈 벌고 아이들 가르치고 먹을 것 못 먹고 해도 그 크기가 훨씬 컸기 때문에 실제로 있는 희생이 그것보다 더 작았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여력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애를 낳아도 엄마로서 해야 되겠다고 하는 정신의 크기가 주먹만 밖에 안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조금만 비정상적으로 태어나기만 해도 갖다가 버리려고 합니다. 나라에 맡기려고 하고. 둘 셋 나면 감당이 안 되어서 누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는다고 가정 분쟁이나 일으키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교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먼저 그 말씀이 얼마나 맛있고 아름답고 향기롭고 기쁜 지를 체험하고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우선순위 1번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말하고 마음의 생각이 우선순위대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말하고 싶은 것 1번을 눌러버리고 3번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속에서 말이 꼬이면서 헛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그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입을 열면 그 말씀이 막 쏟아져 나오고 싶은 그런 마음의 정동들이 이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두 번째 실험하는 게 이것입니다. 선생님들 20명을 다 일으켜 세웁니다. “지난 주일날 예배드리지 않은 사람 앉으십시오.” 그러면 두 명 내지 네 명이 앉습니다. 주일 날 안 나온 것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지난 주일날 목사님이 성경 어디를 설교했습니까? 아는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앉으십시오.” 그러면 똑같은 숫자만 남습니다. 두 명에서 여섯 명. 무슨 이야기냐 하면 자기 안에 담겨진 말씀의 기쁨이 없으니까 아이들에게 이 말씀을 가르쳐야 되겠다고 하는 다급함과 사모함이 없고 그것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서 아이들이 얼마나 놀랍게 변하는지에 대한 간증이 없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안 갖는 것입니다. 마치 이반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이론하고 똑 같은 것입니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종을 땡땡 치면서 빵을 주니까 종소리만 나도 침을 질질 흘립니다. 종만 계속 치면서 아무것도 안 줍니다. 그러니까 아예 안 나오는 것입니다. 욕구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실현될 때 자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그 아이들이 정말 새로워진다고 하는 감동을 받을 때 그때 주일학교 사역에 대한 본질적인 도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지름길이 무엇이냐 하면 모든 것을 양보해도 양보할 수 없는 게 어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씨를 뿌렸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처럼 새가 와서 먹어버릴 수도 있고, 마음 밭이 돌짝 밭이라서 타서 없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가시덤불이 많아서 싹이 나오다가 말라버릴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씨를 뿌리지 않은 곳에서는 결코 싹이 나지 않고 나무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면 모든 사람이 변화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보장할 수 없지만 안 가르치면 아무도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기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이런 방법을 쓸 것이냐 저런 방법을 쓸 것이냐 그것은 나중의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 그 짧은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심어주어서 아이들이 변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전도사 생활을 할 때 너무 마음이 아파서 토요일 날 교회에 와서 2년 동안 철야를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사역을 했는데 하나님이 정말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놀랍게 변화 받았습니다. 그런데 변화되고 난 다음에 가장 뚜렷한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입니다. 내수동교회에 있을 때 있었던 일인데 제가 그때 90분을 설교를 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설교 길게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습니다. 그런데 절대 못 꺾은 사람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저였습니다. 목사님이 포기하셨습니다. 그때 80명 내지 100명이 예배를 드렸는데 2시간 예배를 드렸습니다. 설교를 하는데 아이들이 정말 은혜를 받으니까 90분 동안 미동을 안 합니다. 조각을 깎아 놓은 것처럼 딱 앉아서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앞자리에 앉으려고 9시 예배시작인데 7시에 교회에 나옵니다.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깊이 회개하고 은혜 받고.
그런데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서 아주 놀랍게 변화됩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날이 선생님이 안 나오시는 날입니다. 선생님이 아파서 못 나왔을 수도 있고 사고가 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왜 못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선생님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고로 우리는 공과공부 안하고 먼저 간다. 단축수업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변화를 받고 나니까 모여 앉아서 한 명도 안 갑니다. 모여 앉아서 성경 한 절 읽고 한 사람이 기도하고 그 다음에 성경 한 절 일고 그 다음 사람이 기도하고 그 다음에 공부할 때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지나가다가 우연히 충격적인 기도를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은혜를 받았는데 자매 하나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우리 선생님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주님을 만나고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이 아이들 눈에 선생님이 헌 사람이라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헌 사람이었던 적이 있으니까. 우리가 신앙이 오랜 기간의 훈련과 지식과 목양과 이런 것들을 통해서 성숙되어 간다는 것은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태어나지 않으면 성숙도 없습니다. 애가 생겨나야 자라지 씨가 떨어져서 애가 태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라겠습니까?
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그 와중에서 남학생 녀석 하나가 예쁘게 생긴 여학생에게 매일 자기하고 사귀자고 수없이 구애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이렇게 두꺼운 거의 논문 수준의 편지가 도착을 했습니다. 이 남학생이 가슴이 벅차가지고 뜯어보니까 10장 가까이 썼는데 아무개 형제에게 그러면서 편지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어떻게 이 고등부에 왔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셨고 변화되었고 그러다가 우리가 어떻게 미끄러지고 이렇게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이고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하면서 내린 마지막 결론이 그러므로 기도 많이 하고 정신 차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남학생이 정이 뚝 떨어져버린 것입니다. 전도사한테 편지 온 줄 알았답니다.
여러분, 자식들 길러보아서 알지만 감시한다고 애들이 됩니까? 안 됩니다. 선생님들이 잘 해준다고 애들이 됩니까? 안 됩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향한 가장 확실한 보험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이들이 예수님 만나고 자기의 신앙으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인격화된 자신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훌륭한 보험은 없습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들이 정말 변화되고 구원될 수 있도록 얼마나 여러분들이 본질에 집중된 사역을 하는가? 최근에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다가 목이 메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주일 날 여러분들 앞에서 보이는 그 아이 모습이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방황합니다. 그런데 그 밑바닥을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아이들은 안 보여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고는 그 아이의 인생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니까 예의는 갖추겠지만 근본적으로 여러분들이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 의지하고 바뀐 인생을 살아가야 되지 않습니까? 그것은 그렇게 오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회복해야 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듭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된 것이니 다른 것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 진리의 말씀을 만나고 아이들이 깊이 변화되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 본질에 승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이 먼저 그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깊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지 좋은 선생이 저절로 좋은 선생이 되는 게 아닙니다. 감히 여러분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우월한 지식이나 무엇으로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잘 전해서 그 아이들의 가슴 속에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은 지성에서 지성으로 옮겨가는 전달입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입니다. 왜 그 아이들이 선생님이나 부모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그러면 전혀 감동을 안 받는데 똑같은 이야기를 친구들이 할 때에는 받아들이는가?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친구들 속에서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지성에서 지성으로 전달되는 진리의 통로인 것입니다.
우리 주일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아이가 회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엄마한테 간증을 했습니다. “엄마 나 오늘 예수님 만났어요. 그런데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이 십자가에 대해서 설교할 때에는 한 번도 믿어지지 않았는데 우리 선생님이 예수님이 너의 죄를 위해 못 박히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실 때 나는 모든 것이 믿어졌어요.”
(찬양)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저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지만 내수동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하면서 예수님 깊이 만나고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어눌한 진리라도 세련된 세상의 지식보다 인간을 바꾸는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을 아주 사랑하면 말하지 않아도 진리는 상당부분 전달이 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이루어진 통로는, 이 통로를 통해서 흘러가는 어눌한 한 마디의 증언은 사랑이 없는 관계 속에서 아주 현란한 수식어구로 전달되는 진리보다 위대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내수동 교회에 있을 때에 사역하기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수동, 북촌 이런 잘 사는 동네들이 있고 그리고 지금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무학동 뒤편쪽으로 판잣집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동네 아이들하고 교회가 섞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주일 날 안 온 사람들 다 조사를 합니다. 선생님들이 열심히 심방하면 좋은데 잘 안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15명쯤, 결석한 아이들이 더 많지만 골라서 두시 반부터 심방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소문 수소문해 보면 학원에 있다, 도서관 갔다, 학교에 공치러 갔다, 아니면 집에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정보가 들어옵니다. 그러면 아이들 담임선생님하고 총무선생님하고 데리고 내 차 태워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집 앞에서 두 시간씩 기다립니다. 네가 걸리나 내가 집에 돌아가나 한번 보자고 그리고 그 어구에 앉아가지고 죽어도 안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일 날 교회 간다고 나왔다가 농땡이치고 어둑어둑할 때 골목을 들어옵니다. 그런데 표정이 별로 안 좋습니다. 땡땡이쳤는데 곤고하겠지 은혜 충만 하겠습니까? 그러면 이제 터덜거리고 오는 아이를 부릅니다. 깜짝 놀랍니다. “너 어디 갔다 왔니?” 그러면 취조하는 것 같을 테니까 무조건 “힘들지?” 그럽니다.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심방하는 나도 힘든데. 그러면 눈물이 핑 돕니다.
무학동이 잊힐 수 없는 게 겨울에 추운데 심방을 밤중에 갑니다. 7시쯤 되면 어두워집니다. 그러면 안 나옵니다. 집에서. 주일 날 교회 안 나왔는데 ‘얘야.’ 그런다고 ‘예’하고 나올 아이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여선생님들이 굉장히 열정적이었습니다. 바지 입고 담장을 넘는 선생까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문고리를 확 잡아당겨가지고 붙들고 나옵니다. 그리고 심방을 합니다. 누가 집에 들어오라고 합니까? 길거리에 세워놓고 심방을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랬니?, 어려운 일 있니?” 그러면서 마지막에 예수님이 널 사랑한다고 그리고 보안등 아래서 손잡고 기도합니다. 아이들이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올 때 책이라든지 귤이라든지 선물 하나를 주고 옵니다. 그러면서 하나씩 쌓여가면서 마음을 엽니다.
심방을 꼭 하십시오. 이메일, 문자 필요합니다. 그런데 보조적입니다. 맞닥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남자가 옆집 아파트에 사는 자매가 너무 예쁘니까 장미꽃 송이를 매주 50주를 보냈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편지가 왔더랍니다. ‘드디어 응답이 왔구나.’ 그랬더니 꽃다발 배달해 준 사람하고 결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맞닥뜨리는 것이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심방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관계가 형성이 됩니다. 그랬을 때 나도 너만 할 때 정말 곤고하게 살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살렸다고 그것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게 교사입니다.
아이들은 너무너무 외롭습니다.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좀처럼 마음을 안 엽니다. 제가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하시던 영락교회 교사학교를 갔는데, 권사님들이 중학교 여학생들하고 자매 결연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사님들이 꼬불꼬불 거리는 글씨로 편지를 보내니까 아이들이 비웃더랍니다. 노땅들이 자기네들한테 접근한다고. 그런데 권사님들이 기도하면서 매주 편지를 썼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서 도시락 싸 가지고 가는데 아이들이 쳐다도 안 보더랍니다. 그런데 그것을 6개월 정도 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엄마하고 선생님들한테도 안 털어놓는 이야기를 이 권사님들한테 털어놓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랑입니다. 정말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너 요새 어떻게 사니?” 이렇게 물어보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너 요즘 어떻게 사니?” 그럴 때 “네가 나 사는 데 뭐 보태준 것 있어? 그게 왜 너한테 궁금한데.” 당장 이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훌륭한 교사생활은 무엇이냐 하면 전할 말씀이 마음에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 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한테 전해주어야 하는데.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에 대한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주어야 되는데.” 그 지식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그러면 아이들의 심중이 움직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아빠가 가정 폭력 가장입니다. 보는 앞에서 엄마 때리고 발길로 차고 짓밟아서 뼈가 부러질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정말 죽여 버리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빠가 너무 불쌍하다고, 저런 망가진 영혼으로 사는 아빠는 얼마나 아플까 그러면서 아빠한테 매 맞고 아파하는 엄마를 위로하면서 아빠를 병든 영혼으로 보자고 그리고 우리가 돌보자고 그게 신앙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만큼 하나님의 말씀도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진리의 말씀이 모든 사람들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진리의 말씀을 전하면 그 어두움 속에서 그 진리를 전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선생님의 손을 붙잡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 너 좀 변화를 받아라. 예수님 만난 네 친구를 봐라.” 그러면 아이들이 짜증냅니다. 집에서도 만날 엄마 친구 아들 이야기를 하는데 교회 가서 또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결국 열등하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에이 씨, 이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그러면서 발길로 차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내수동교회에 있을 때 일입니다. 얼마나 유별난 아이들이었느냐 하면 새벽 4시에 모여서 등산을 가서 라면을 끓여먹습니다. 공부하러 나오라고 하면 안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올 때 아예 농구공 들고 오는데 하여튼 소원은 빨리 예배 끝나고 농구하러 가는 것입니다. 거기 주모자가 하나 있었는데 얘가 온갖 아이들을 휘젓고 다니면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깐 시골에 내려가서 6개월 동안 있었는데 그동안에 대부분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와 가지고 옛날 하던 대로 하니까 얘들은 전혀 관심사가 다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야기하는 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을 백번 이야기해도 소용없습니다. 주일날 7시에 새벽예배인데 은혜를 받고 나니까 아이들이 6시 40분까지 와서 7시에서 8시까지 예배드리고 30분 쉬었다가 찬양시작을 하는데 앞자리에 앉아서 찬앙을 합니다. 그리고 9시 예배드리고 10시 반에 마치고 10시 반에서 12시까지 공과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주는 국밥 한 그릇 먹고 다 농구가고 하던 아이들이 다 창고에 모여서 두 시간씩 두 시간 반씩 기도회를 합니다. 그러니까 관심사 자체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알고 말씀의 맛을 안 아이들은 그것에 대한 지속적인 갈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해서 전도한다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가서 누구를 전도를 해 오겠습니까? 여러분 중에 중고등부학생, 주일학교학생 전도해 온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여러분 만약에 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 손잡고 걸어 나오면 유괴범으로 몰릴 것입니다. 안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으면 제 친구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어떻게 하든지 제 친구들을 교회 데리고 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정말 우리에게 절박할 정도로 시급한 것은 한 사람이라도 교회에 와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질적인 사역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라헬이 그랬습니다. 야곱을 향해서. “나로 아이를 낳게 하라. 안 그러면 나는 죽어버릴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들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낙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살아계십니다.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열린 교회를 93년도에 지하실에 개척을 하고 막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교회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기분이 나쁘셨던 모양입니다. 당연히 “목사님, 교회를 하시느라고 수고 많으십니다. 옆에 있는 아무개 목사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닙니까? 나하고 눈도 안 마주치고 계속 혀를 차는 것입니다. 우리는 막 페인트칠 하고 있는데 “쯧쯧쯧쯧.. 잘못 왔어. 잘못 왔어. 여기는 교회 자리가 아니야. 여기는 교회가 안 되는 곳인데. 에이, 사람들 바보같이. 쯧쯧쯧쯧...” 너무 황당하고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 자리에서 교회가 두 번 문을 닫고 갔습니다. 어느 교인 하나가 설교를 듣고 우리 교회 등록하겠다고 왔는데 교회에서 계속 가르쳐주는데 자기가 옛날에 다니던 교회로 인도를 하더랍니다. 알고 보니까 문 닫고 간 교회 교인이었습니다.
불가능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낙심하면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여태까지 해 봤는데도 안 됐는데.” 진정으로 해 보지는 않았잖습니까? 죽을 정도로까지 도전해 보지는 않았잖습니까? 그렇지요? 그러니까 여태까지 해 왔다는 걸로 낙심하지 말고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 영혼의 변화를 위해서 도전하고 눈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전 그래서 공과공부를 오래 가르치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함부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아이들이 집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15분밖에 안 되면 차라리 아이들하고 약속을 하십시오. “얘들아. 원래 공과공부시간 40분인데 15분만 나에게 시간을 다오. 그 대신 마음을 기울여서 들어라, 그러면 내가 12분 만에 끝낼게.”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하나를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큰마음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당신을 버리셨던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내가 너를 위해서 무제한의 희생을 하겠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하십시오.
이 정도에서 멈추려고 했는데 1분에 하나만 더하고 마치겠습니다. 선생님으로서 기본이 펜하고 편지지입니다. 지금이야 제가 작가이지만 그때 작가도 아니었습니다. 글은 조금 썼지만. 제가 그때는 교수생활을 하면서 전도사 생활을 했습니다. 안수도 아직 안 받았을 때였는데. 항상 제 가방에 그림처럼 예쁜 그런 엽서 아니었지만 관제엽서가 항상 들어있습니다. 관제엽서와 플러스펜.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김대중 씨 옥중서신 보셨습니까? 관제엽서 하나에 원고지 50매를 적어 넣었답니다. 저는 50매까지는 아니지만 플러스 펜으로 깨알같이 썼습니다. 여러분, 두 줄이나 네 줄은 진심 없어도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 편지지로 한 일곱 장 쓰려면 진심 없으면 못 씁니다. 쓰다가 진심이 열립니다. 그것 받은 애들은 반드시 교회 옵니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한 번도 못 받은 것입니다. 50매까지는 아닐 것입니다. 김대중 씨는 앞뒤로 썼으니까 그런데 나는 한쪽에만 썼으니까 최소한도 30매는 될 겁니다. 그 정도 길이로 쓰려면 진심이 아니면 그것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네 줄, 다섯줄은 편지도 아닙니다. 문자로는 전달 안 됩니다. 그렇게 편지를 쓰고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큰마음을 가지고 해 보지 않은 일들에 대해 도전하고, 기대할 수 없던 일에 대해 꿈꾸고 그래서 하나님이 이 영혼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간절히 눈물 흘리면 반드시 이 아이는 변화될 것이라는 그 믿음을 부모는 못 가져도 여러분들은 가져야 됩니다. 그게 교사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