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원리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5)
녹취자: 손주희
본문은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마게도니아 교회가 보였던 아름다운 헌신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칭찬을 하는데 고린도 교회에서 그 칭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마게도니야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고린도 교회에서 칭찬을 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말로 하자면 “야, 다른 집 아이들 좀 봐라!”라고 말하는 부모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고린도는 무역도시로써 돈과 쾌락, 학문의 일원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고린도 교회는 이기심에 깊이 사로잡혀서 이런 종류의 헌신에 자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아마 섭섭한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를 보낼 즈음에는 이미 그런 감정이 많이 풀어진 상태에서 보냈기 때문에 담담하게 교육적인 의도로 이 말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1. 자신을 주께 드리다
이 마게도니아의 교회가 하나님 앞에 한 헌신의 원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은 첫째로 그들이 ‘자신을 주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헌신을 하되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 헌신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먼저 자신을 드림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형제들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신을 먼저 드림으로 예루살렘의 형제들을 도울 수 있었을까요? ‘자신을 먼저 주께 드렸다.’라고 하는 말은 주님께 자신을 헌신해서 주님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헌신한다고 하는 것은 헌신을 받는 그 대상의 마음을 자신이 소유하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의 헌신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과 헌신이라는 말이 짝처럼 항상 따라다니는 이유가 바로 그 이유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진심으로 아는 데에서 헌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먼저 그런 소식을 들으며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을 때에 그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전해졌겠습니까? 흉년이 들어서 가뭄에 죽어가고 굶주리고 있는 많은 형제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하나님께 먼저 자기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사람들을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우리들이 일을 하면서 실망을 하거나 낙심하고 사람을 원망하게 되는 대부분의 일들은 결국 우리의 마음에 동기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먼저 마음을 드린 사람들, 자신을 먼저 바친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이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자기가 하나님 앞에 견뎌야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허물을 거듭 말함으로써 친구사이를 이간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 자기를 드리는 삶을 살지 않을 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엄청난 많은 허물들을 이야기해서 일을 안했더라면 그냥 지냈을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 조그만 것 하나 하고나서 마음이 삼지 사방으로 다 찢겨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자기를 먼저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고통과 오해 어려운 일들에 대해서 사람들의 멱살을 잡고 싸운다면 남아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 일체 말을 안 하는 것이 최고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잠언 26장 22~23절에 보면 입술은 온유하고 마음으로 미움이 가득 찬 사람을 가리켜서 은 찌꺼기를 토기에 바른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토기에 은을 발랐기에 사람들이 보기에는 은그릇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은을 쓰고 나서 남은 찌꺼기를 거기에 바른 것입니다. 그래서 툭 치면 은그릇이 부딪치는 아주 맑은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 부딪치면 은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 흙이 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고 고치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게도니아의 교회는 자신을 먼저 주께 드렸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움을 당한 형제들에 대한 헌신이 가능했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나님께 자신을 먼저 드려서 이웃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먼저 주께 드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시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더라’ 하였습니다. 자신을 먼저 주께 드렸으니까 당연히 그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부한 자는 가난한 자를 위하여 가난한 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부한 자 때문에 풍요롭게 되어 모든 사람이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 아니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의 뜻은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무릇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나으니라.’,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이 있다.’라고 하는 이 말씀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주님의 뜻을 따라서 이 마게도니아의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마게도니아의 사건을 통해서 고린도교회를 교육하면서 헌신의 중요한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신의 것들을 나누어 주는 것, 이렇게 함으로써 마게도니아의 교회를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커다란 유익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넘치는 기쁨으로
마지막으로 마게도니아 교회에게 이런 헌신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마게도니아의 교회는 시험을 많이 당한 교회였고 극도로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그때 교회라고 하니까 하나의 지역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극도로 가난하고 환난과 시련을 많이 당한 교회인데 어떻게 그렇게 헌신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넘치는 기쁨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2절에 보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라고 했습니다. 그 기쁨이 극심한 가난을 이기며 넘치도록 형제들을 돕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헌금 많이 하는 줄 아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많이 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으로 인해서 넘치는 감사가 있는 사람들이 헌신을 합니다. 하나님이 절대로 하지 않으시는 일이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잊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여러분들이 충성해도 사람은 여러분들의 헌신을 몰라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헌신을 모두 기억하고 갚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을 꾸는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당신은 우리게 정확하게 그 모든 것을 넘치도록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넘치는 기쁨이 있어야지만 헌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기쁨의 삶을 살면서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고 주께서 원하시는 것을 나누어 주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