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가르치는 교사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눅 15:4)
녹취자: 김경애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어버린 비유가 3개가 나오는데 첫째가 잃은 양의 비유이고 두 번째는 드라크마의 비유이고 세 번째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잃어버린 것은 맞지만 세 비유 모두 강조점이 다릅니다. 탕자의 비유는 탕자 자신이 스스로 결정해서 집을 멀리 떠나 방탕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잃어버린 탕자가 되었고, 드라크마의 비유는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잃어버린 물건입니다. 그런데 잃은 양의 비유는 탕자처럼 결심을 하고 스스로 잃은 양이 되었다기보다는 연약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린바 되어서 그래서 불행하게 되었고 목자가 사랑으로 그 양을 찾아가서 구했기 때문에 다시 목자의 품으로 목자 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제 저녁에 여러분에게 교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전해드렸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떼들에게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가장 커다란 재앙은 말씀의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영혼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에서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사랑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지식입니다. 지식이 있어야지만 무엇을 사랑하고 또 어떻게 사랑해야 되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여러분이 몸이 아프면 당연히 약국을 갑니다. 약국에 가서 좀처럼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증상이 심각하면 당연히 병원을 찾습니다. 그 병원의 의사는 아는 사람일 수 있지만 대부분 여러분은 모르는 의사를 찾아갑니다. 그러면 의사가 진찰을 하고 엑스레이를 찍으라면 찍고 CT나 MRI를 찍으라고 하면 찍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판별해주는 대로 ‘약을 드시시오. 주사를 맞으십시오. 혹은 수술을 하십시오.’ 처분에 따릅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이 배가 아픈데 병원에 가려고 했더니 엄마가 혹은 여러분의 아버지가 여러분을 붙들고 ‘얘야, 가지마라. 이 세상에 애비인 나만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리고 여러분을 침대에 눕히고 부엌칼을 가지고 오면 여러분은 아버지에게 배를 가르라고 맡기겠습니까? 물론 아버지의 말이 맞긴 맞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만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 말만 맞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부엌칼로 침대에 눕힌 딸의 배를 가르고 고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지식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없는 사랑은 미친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맨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지식을 먼저 갖게 되었습니다. 거짓말처럼 들리던 복음이 내 마을 속에 믿어지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리고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어지니까 그 다음에 내 마음에 믿음이 생기고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사의 제일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으로 꽉 차있는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교리를 공부하고, 책을 읽고, 끊임없이 교육을 받으면서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이 세상이 이런 것이구나! 인간이 이런 존재이구나! 내가 어떤 사람이구나!’ 를 깨달으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계속 자라나갈 때 영혼들에게 가르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발걸음을 교회로 향할 때는 마음속에서 가르치고 싶은 마음으로 꽉 차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격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도 또 가르친다고 할지라도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아이들이 그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은혜를 받고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언제나 간직하며 사는 것이 아니고 그 깨달은 말씀으로 어떻게 자신의 삶에 적용해야할지를 모두 알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목양입니다. 여러분에게 아이가 있을 것입니다. 엄마가 애를 낳아놓고 내버려두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짐승도 자기새끼를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려서 개를 길러보았는데 정말 개만큼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 동물도 많지 않습니다. 사실은 모든 동물이 다 그렇습니다. 개가 새끼를 낳기 전에 바닥에 가마니를 깔아줍니다. 발톱으로 가마니를 막 긁습니다. 그래서 보푸라기를 만듭니다. 그것을 많이 만들어놓습니다. 물론 할머니가 새끼를 낳을 때쯤 되면 따뜻한 담요를 깔아주시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발톱으로 며칠 동안 가마니를 막 긁어서 지푸라기처럼 아주 보들보들하게 만듭니다. 그것을 새끼 낳을 자리에 깔아놓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새끼를 낳습니다. 그러면 낳자마자 그것을 8마리 정도 낳는데 새끼를 낳자마자 혀로 다 핥아줍니다. 왜냐하면 그 체액을 내버려두면 털이 떡이 됩니다. 그래서 혓바닥으로 다 핥아줍니다. 보송보송하게 만들어줍니다. 한 3주일되어야 눈을 뜹니다. 눈도 못 뜨는 강아지를 그렇게 돌봅니다. 어미는 어디 가지도 않습니다. 새끼를 낳기 전에는 온 동네를 그렇게 쏘다니던 개가 딱 붙어 앉아서 주는 밥만 먹으면서 용변 볼 때 잠깐 비우고 그 새끼들을 빨면서 젖을 먹입니다. 몸은 바짝 마릅니다. 동물도 그러는데 하물며 사람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을 아까도 아이들이 와서 찬송을 했는데 아까 그 핏덩이를 이만큼 키우기까지 쟤네들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아까 그 생각을 했습니다. 아빠는 고생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희생했을까? 그렇게 하면서 크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만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도 똑같이 그렇게 돌보아줌으로써 주님의 사람으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나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자들과 논쟁을 해서 그들을 말을 못하게 할 정도로 탁월한 학문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뭐라고 했느냐 하면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혹은 갈라디아교인들을 향해서 자기 자신을 허비한다고 했고 유모가 자기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처럼 그렇게 교인들을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말씀드리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너무 너무 중요하지만 그것 가지고 안 되고 실제로 그 영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 영혼들을 돌보아주는 목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39살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좋게 말하면 생각이 짧았고 나쁘게 말하면 교만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피를 쏟듯이 설교를 해서 은혜를 받게 하면 됐지 무엇을 자꾸 요구하나?’ 생각했습니다. 지하실교회에서 7명의 성도들을 데리고 교회를 세웠는데 그때 저는 교수였던 상태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1년을 열심히 하면 한 300명은 모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교만한 마음은 아니고 그냥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12월 12일 7명이 시작했는데 1월이 되니 35명이 넘었습니다. 한 달에 30명씩만 모이면 연말이면 한 300명이 되겠구나! 그리고 설교를 했습니다. 진짜 얼마나 은혜를 주시는데 매주 눈물바다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심지어 어떤 일이 있었느냐하면 오후 3시에 예배를 드리면 보통 설교를 100분씩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하고 때로는 야단도 치고 그랬습니다. 그때는 무서운 것이 없었습니다. ‘기도합시다.’ 그러면 열심히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주일날이었는데 밖에서 나를 집회에 데려가려고 사람들이 와서 기다립니다. 주기도문도 하지 않고 기도하고 가라고 불도 끄지 않고 집회에 갑니다. 집회에 가서 열심히 오후예배를 설교하고 집에 가는 길에 교회가 궁금하여 지하실 교회에 들러서 갑니다. 그때까지 남아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흥이 안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은혜를 많이 받는데 그들은 우리 교인들이 아니고 다 남의 교인들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은혜를 받고 그 다음에 주일날 자기네 교회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헌금도 자기네 교회에 합니다. 연말이 되었는데 예배시간에 눈물을 흘리면서 예배를 드렸는데 교인이 60명 남짓입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도록 이유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 목회는 부흥회가 아니다.’ 그 다음부터 심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혼들을 돌보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주일학교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아이들이 안 나오기 때문에 심방을 할 정도가 되면 너무 늦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와서 예배를 드려도 정기적으로 쭉 심방을 하고 또 필요할 때마다 심방을 해서 이 아이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야하는 것입니다. 설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베푸는 것입니다. 분반공부는 요만한 학생들에게 말씀을 베푸는 것입니다. 심방을 가는 것은 딱 한 사람을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한 영혼 한 영혼을 맞춤으로 돌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일학교를 하다가 보면 딱한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예쁜 옷을 입고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데 혼자 저기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반 아이들이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뒤에 앉아있는 선생님의 심정은 오직 하나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빨리 그만두어야지’ 그런 마음입니다. 심지어는 연초에 7, 8명을 주었는데도 11월이 되었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고 고쳐야하는데 교회에서도 잘 가르쳐 주지 않고 자신의 신앙도 떨어지고 할 경우에는 스스로 자기를 고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교회에서 선생님들을 어떻게 아이들을 심방하고 돌봐야할지를 잘 가르쳐주어야합니다. 그것을 교역자들이나 부장장로님이나 집사님들이 모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심방을 할 때 어른을 심방하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어른들을 심방하면 목사님들이 대부분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을 심방을 합니다. 심방을 가면 대부분의 사람은 심방을 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며칠 전부터 집안청소를 하고 기도하면서 목사님을 기다립니다. 그러면 들어가면 상이 차려져있고 심방 받을 준비가 되어있고 감사헌금까지 미리 봉투에 담아서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기다립니다.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그런 심방은 누가 못합니까?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은혜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데 주일학교아이들을 심방할 때 그렇게 기다리는 가정은 진짜 은혜를 받고 부모의 신앙이 독실한 가정입니다. 대부분의 가정은 담임목사님이나 오신다고 해야지 그렇게 준비를 하고 기다리지 누가 주일학교 선생님이 오신다는데 목욕재계를 하고 심방 받을 준비를 하겠습니까? 대부분 오거나 말거나 그렇고 그리고 또 그 아이가 선생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이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대부분 관심도 없는 아이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심방이 되지 않습니다. 중고등부 심방은 더합니다. 중등부 심방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런 대접을 받고 편안하게 앉아서 장시간동안 설교를 하면 그 아이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머리를 조아리며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심방해야합니다. 지금같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공동체적인 정신이 희박한 상태에서는 이 심방의 중요성이 지난 20년 전이나 30년 전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심방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실은 지도자의 결심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태아부부터 시작해서 영아부, 유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소년부, 중등부, 고등부 이렇게 9개의 부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림없습니다. 1년에 한번은 완전히 대심방을 합니다. 한 4개월이 걸립니다. 예를 들어 유년부나 초등부에 아이들이 보통 180명에서 200명 정도 출석합니다. 안 나오는 아이들까지 심방을 하면 250명까지 심방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심방을 해도 3개월에서 4개월이 걸립니다. 심방을 합니다. 그러면서 먼 곳까지 전도사님이 혹은 교사가 차를 타고 심방을 하고 그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이렇게 선생님과 교역자들의 목양을 받으면서 신앙을 하는 것이구나!’를 가르쳐야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중에는 뺀질거리고 만나기 어려운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계속 특별하게 다루면서 결국은 설득해서 마지막에는 모두 만나야합니다. 그러니까 안방에서 테이블을 차려놓고 만나는 것만이 심방이 아닙니다.
제가 600명 정도 되는 교회에서 고등부 전도사를 했는데 저는 1년에 두 번 대심방을 했습니다. 그때 학생들은 보통 80명 정도 되었고 안 나오는 학생들까지 심방을 하면 100명 정도 되었는데 꼬박 한 달이 걸립니다. 언제 하느냐하면 12월 말부터 시작해서 2월 둘째 주까지 겨울수련회에 참석하게 하고 여름수련회하기 한 달 직전에 심방해서 여름수련회에 가게끔 만들고 그래서 그것을 한 달이 걸리는 것을 꽉 짜서 2주간에 대부분 심방을 하고 못한 아이들은 그 다음 주에 해서 한 3주 정도에 끝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방학을 이용해서 아침에 출발해서 밤 11시까지 심방을 합니다. 그렇게 한번 심방을 전부 다 하고나면 교역자들의 마음속에 설교하러 섰을 때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한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대여섯 명 나오는데 알기는 다 압니다. 김 집사님 딸, 박 집사님 딸내미, 최 집사님 딸내미, 뒷집아이, 앞집아이 다 압니다. 그렇게 아는 것과 심방을 가서 둘이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심방을 할 때 그 심방의 묘미를 모르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심방을 못하는데 심방을 해서 그 맛을 알고 나면 기도가 변하게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만날 누구를 위해서 기도를 하다가 그 사람 집에 가서 그 사람을 을 보고 그 사람과 장시간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힘들고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모든 것을 듣고 함께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과 누가 그렇다더라 하며 종이에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그렇게 적어놓고 기도하는 것과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사실 심방을 가면 아이들이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에게 사명감을 고취시키는 데는 최고입니다. 그리고 심방을 해본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교회를 쉽게 떠나도록 나두지 않습니다. 전도를 해본 선생님들은 한 영혼이 교회에 나오는데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 놀라운 일인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장담하는데 여러분이 일주일동안 내내 돌아다녀도 다음 주에 어린이 1명 데리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중에는 몇 명이나 동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매주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운 기적입니다. 요즘 같은 때에는 말입니다.
그러면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심방해야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중요한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영혼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이 심방의 동기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손에서 손으로 쥐어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자기가 돌보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 하나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혼을 향한 눈물이 늘 있게 마련이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영혼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 모든 목양의 동기가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내게 은혜를 주셔서 믿음으로 살게 하시는데 이렇게 주님 안에서 사는 것이 나에게 이렇게 행복한데 이렇게 복되고 행복한 은혜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가엾을까?’ 그것이 목회자로 섬기는 소명의 핵심이고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을 돌보는 그것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교사들에게 묻는 것입니다. 자기가 돌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정말 눈물을 흘려보낸 것이 언제입니까? 그런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어야 합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교회학교 지도자에게 말씀을 드리자면 교회학교의 성패는 교사모임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모이는 교사모임에서 교사들이 얼마나 영혼을 향해 뜨거운 마음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교사가 되는가? 입니다.
그래서 제가 전도사를 할 때도 일주일에 한 번씩 교사모임을 갖습니다. 너무 길게 하면 안 됩니다. 딱 한 시간 반 정도 약속한대로 하고 맨 처음에 아이들이 누가 나왔는지 체크하고 아이들에 대해서 보고를 듣고 그 다음에 공부를 하고 그 다음에 아이들을 위해서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이때에 기도가 정말 뜨겁고 눈물을 펑펑 쏟는 기도회가 되어야지만 이 선생님들이 일주일동안 흩어진 상태에서 그 아이들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연결들이 이루어지면서 그 아이들이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분명히 그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제 아이들을 돌아볼 때에 그때에 아이들이 교회에서는 아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가르치지는 못합니다. 설교는 많은 사람을 위해서 하고 공과공부는 반 아이들 전체를 위해 가르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순간순간 아이들을 상담하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방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방을 할 때에 계획을 잘 세우고 열심히 기도한 다음에 아이를 심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방을 가서 자기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교사가 되지 말고 아이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말을 거는 교사가 좋은 교사입니다. 심방을 가서 ‘야 너 어제 교회에 왜 안 나왔어?’ 그러면 그 아이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 아이가 교회에 안나올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싫어서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가기 싫어서 안 나왔어요.’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아이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싫어서 안 나왔어요.’ 그러면 선생님도 할 말이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가서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 아이가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축구 이야기를 하고, 그 아이가 농구에 관심이 있으면 농구 이야기를 하고, 아이돌 가수에 관심이 있으면 아이돌 가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리고 그 아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게끔 해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사는 상식이 풍부해야합니다. 그래서 심방을 갔는데 그 집의 남편의 직업이 비행사입니다. 그러면 비행기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 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 사람이 탄광기술자입니다. 그러면 탄광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합니다. 요리사라면 요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면서 틈틈이 풍부한 상식을 갖추면서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도록 그렇게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심방을 가서 그 집 부모를 만났는데 그렇게 부모와 이야기가 잘되면 50%는 신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 아이와도 그렇게 해서 대화의 문을 열고 그리고는 아이로 하여금 절대로 ‘네. 아니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질문을 하면 너무 어려워서 아이가 대답을 하지 못하거나 혹은 ‘네. 아니오.’라고 대답하면 끝나는 질문을 하지 않고 짤막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심방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들어주어야합니다. 만날 심방을 가면 만나서 야단을 치고 자기 할 이야기를 폭포수처럼 퍼붓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그 선생님이 전화하면 안 받습니다. 그래서 잘 들어주는 선생님이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그것이 심방의 첫 번째입니다. 그러면서 처음에 만났을 때는 이야기가 일반적인 것, 육적인 것, 이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영적인 것으로 변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가성 우물가에서 여자를 보면서 ‘물 한잔 다오.’ 그러십니다. 물론 목이 말라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예수님이 하시고 싶었던 것은 물 한잔 얻어먹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실삼아서 이 여자에게 전도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물 한잔 달라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네 남편을 부르라.’ 그러면서 목마르지 않는 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영생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심방할 때에는 그런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아이들을 자극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다음에는 아이들의 관심사를 신앙적인 것, 영적인 것으로 옮겨서 정말 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신앙적인 권면을 아이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훌륭한 심방입니다.
아이들을 더 쉽게 심방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무조건 쳐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선생님의 기본적인 자세는 가방에 항상 예쁜 편지지와 펜을 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그럽니다. ‘그거야 이메일도 있고 문자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때는 그런 것이 없었으니까 물론 그것도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자신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문자로 받은 것과 이메일로 받은 것과 그리고 쓰인 편지로 받은 것은 느낌이 각각 다릅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편지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심을 담아서 씁니다. 처음에는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 정말 쓸 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 아이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쓰는 순간에 할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날씨가 더운데 잘 지내니?’ 거기까지는 썼는데 막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어서라도 쓰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렇다고 편지가 거짓말이 되면 안 되겠지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저는 고등부전도사 할 때 신학교에서 교수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 생활을 했는데 편지를 많이 썼습니다. 진짜 감동을 주는 편지는 어떤 편지냐 하면 읽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마음이 별로 없이 쓴 편지인지 압니다. 그것이 아니라 저는 어떻게 썼느냐하면 관제엽서 우편엽서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가느다란 플러스 펜으로 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돋보기로 보지 않으면 안보일 정도로 씁니다. 그렇게 쓰면 엽서 한 장에 원고지 30매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앞뒤로 쓰면 50매 정도 쓸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 들어가서 김대중 대통령이 옥중서신을 쓴 것을 보면 깨알 같습니다. 나도 거기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썼습니다. 그것 한 장을 쓰려면 1시간 반에서 어떤 때는 두 시간 반이 걸립니다. 그 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쭉 씁니다. 그 엽서를 받고 감동을 받지 않는 아이들의 거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엽서를 세 번쯤 받으면 그리고 전화를 걸어서 심방을 갈 때 안 만나줄 정도로 심장이 강한 아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한 번도 누구한테 그런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럴 것입니다. ‘목사님이야 책을 많이 쓰니까 그렇겠지!’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글을 많이 써보았지만 글은 재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음의 감정의 풍부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글로 다 옮기지 않아도 읽는 사람이 느끼는 것입니다.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쓰느냐하면 기차를 갈아타는데 시간이 남으면 대합실에서 쓰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러 갔는데 조금 일찍 도착했다면 커피숍에서 쓰는 것입니다. 이것을 쓰기 시작하면 재미가 붙어서 자꾸 쓰고 싶습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때가 벌써 30년 전이라고 하더라고 그때 애들도 지금의 애들과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그렇게 써주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를 너무나 사랑하지 않습니까? 자녀에게 그런 편지를 써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남편하고 연애할 때나 한번 받아보았지 그것도 남편이 그런 분위기를 알아야 써주지 어디서 그런 것을 받아보겠습니까? 그 아이들이 편지를 받아봅니다.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저도 수십 년 동안 남이 써준 편지를 다 간직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온 편지도 있고 아무 내용 없이 ‘기쁜 성탄 되세요.’ 그런 것은 다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사연이 있는 것들은 다 간직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답장을 하지 않은 것은 거의 없습니다. 한번 해보면 놀랍습니다. 충격을 받는 것입니다. 아무한테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한번 보낼 때에는 뭐 어쩌다 한번 하나보다.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보내면 아이들의 마음이 열립니다. 해보십시오. 그러면서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점점 자기의 생각이 아주 뚜렷해지고 아이들을 볼 때에, 대화를 나눌 때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 자꾸 자기의 마음속에서 정리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적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양일기는 기본입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했는데 목양일기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가 맡고 있는 반 아이들이 그 한 주간 동안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가? 이 아이들의 상태가 어떤가를 쓰는 것입니다. 매주 쓰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 아이가 요즘 이상하게 근심이 많은 것 같아서 상담을 해보았더니 이렇더라. 그것을 계속해서 모아보십시오. 그것을 아이들을 맡아서 아이들을 1년 만에 올려 보내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3년 동안 데리고 있는 선생님들도 있습니다. 그것을 모아보십시오. 얼마나 놀라운 자료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자기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못해주었는지, 무엇을 해주어야하는지가 편지 속에서 정리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강아지 한 마리도 어느 식구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꼬리를 치고, 만나자마자 발길질을 하면 초인종을 누르고 집에 들어와도 개가 자기 집에 숨고 나오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습니다. 개도 그러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청소년 가운데 제일 무서운 애들이 중학교 2학년인거 아십니까? 그래서 북한이 못 쳐내려오는 것이 중학교 2학년이 무서워서 못 내려온답니다. 그 아이들은 우리 교회에서 외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언어도 다르고 생각도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제가 서울에 있는 어느 큰 교회에 집회를 갔는데 그 교회에서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뭐냐 하면 그 교회 권사님들이 옆에 있는 중학교 애들하고 그 아이들에게 펜팔을 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애들이 할머니하고 펜팔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아이들을 돌보기가 너무 힘드니까 기독교 미션학교였는데 권사님들이 이 아이들과 일대일로 맺어주어서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 권사님들이 왔는데 애들한테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 권사님들이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인데 너희들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너희를 위해 기도해줄 것이라고 하니까 애들 얼굴이 똥 씹은 얼굴이 되더랍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저 노땅들이 여기에 와서 무슨 짓을 하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도시락을 싸서 학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가서 이 아이에게 밥을 주면서 그러면서 물어보기도 하고 서로 교제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급식도 지겨운데 도시락을 싸가지고 온다고 하니까 아이들은 싫어할 이유가 없습니다. 문제는 도시락은 좋은데 그 앞에 있는 할머니는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들이 매주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 권사님들은 자기 딸한테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선교니까 해보는 것입니다. 진짜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놀라웠습니다. 두 달 정도 지나니까 그 아이들한테 답장이 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선생님한테도, 엄마한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들을 전혀 남모르는 권사님들에게 털어놓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는 아이들도 다 외롭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돌려놓습니다. 권사님들이 편지를 합니다. 권사님들도 다 그만한 때를 거쳤고 시내 한복판에 있는 교회니까 그 권사님들 교육수준도 받쳐줍니다. 그 다음에 자기 딸에게 혹은 손녀딸에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입니다. 서로 교감이 되는 것입니다. 시내에 사니까 경제적인 여유도 있으니까 도시락도 맛있게 해와서 주고 또 권사님들은 뭐라고 할까 경제적인 것보다 시간적으로 막 자라나는 아이들을 기르는 자매들보다는 시간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고 편지를 쓰고 크리스마스 때는 벙어리장갑도 떠서 선물로 부치고 모자도 떠서 부치고 아니면 하나 사서 선물로 주기도하고 그러면서 아이들이 대꾸도 하지 않더라도 계속하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에 감동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누가 해야 하는 일이냐 하면 교회에서 선생님들과 교역자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아, 그렇구나!’ 영혼을 향한 진실한 사랑은 그런 것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그 목사님이 어느 교인을 심방 갔습니다.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믿음이 약해서 주일을 끼어서 3박4일로 가족들과 놀러갔습니다. 그 집이 놀러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옆집에서 그 집 식구들이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옆집에 사는 이웃이 나온 것입니다. 불신자였습니다. ‘어디 갔다 와?’ ‘우리 놀러갔다 왔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아무개엄마!’ ‘왜요?’ ‘당신 교회에 잘 다녀야겠더라.’ 이상한 것입니다. 교회도 가지 않는 불신자였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전도를 해도 안 듣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자기가 놀러 갔다 왔는데 심각하게 충고를 하는 것입니다. ‘아무개엄마! 당신 예수를 믿으려면 교회를 잘 다녀야겠더라.’ 너무 놀랐습니다. ‘왜요?’ 그랬더니 ‘나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렇지만 당신이 신앙생활을 잘해야겠더라.’ ‘아니 왜요?’ 당신이 없는 월요일 날 당신네 교회 목사님이 왔더라는 것입니다. 연세 드신 목사님이 오셔서 계속 벨을 누르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데 옆집에 사는 사람이 나와서 ‘어디서 오셔서 누구를 찾으십니까?’ 그러니까 이집이 제가 어느 교회 목사인데 심방을 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그렇다고 하니까 어디 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들어갔는데 당연히 그 목사님은 가셨나 했는데 내다보니까 대문의 기둥에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기대고 눈물을 흘리면서 당신들을 위해서 기도하더라. 안 믿으려면 모르지만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야지 나이 드신 목사님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하면 하나님이 너를 복주시겠느냐?’ 거기서 아주 크게 각성을 한 것입니다. 무슨 의미야 하면 그렇게 심방을 하는 것이 될까? 안될까? 혹은 교회학교의 아이들을 모으는데 도움이 될까? 안될까? 그런 질문은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만약에 미끄러지는 길로 가서 잘못된 아이들과 함께 악에 빠졌다면 여러분 그 아이가 어디에 있든지 부모로서 달려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심방을 해보면 심방을 하는 모든 사람이 은혜를 받고 다시 교회에 나오거나 혹은 그 심방 때문에 신앙이 뜨거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하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심방을 해도 소용이 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있습니다. 그렇지만 명심해야할 것은 이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그 아이들을 위해서 아무리 교육계획을 세우고 그래도 또 심지어는 여러분이 모여서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아무리 애를 써도 누군가가 가서 심방을 해서 그 영혼을 붙잡아주기 전까지는 결코 교회에 나오지 않을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제가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많은 교회를 다녔는데 선생님이 한 번도 우리 집을 찾아온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떻게 영혼들을 섬겨야할지를 잘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때는 교인들에게 심방을 갔는데 너무 불행한 일을 당했습니다. 내가 목사지만 무슨 위로할 말이 없습니다. 최근에도 방금 예수를 믿기로 했는데 딸이 무엇을 사러간다고 차를 타고 나갔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습니다. 그런 집에 찾아가서 아무리 찾아도 어떻게 위로를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 위로할 말이 없어도 그 자리에 가서 함께 울어주는 것이 목양입니다. 아무 할 이야기가 없어도 내가 실망했기 때문에 어떤 때는 저 사람을 깜짝 놀랍도록 깨닫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그가 아파하는 자리에서 함께 아파하고 내가 아파한다고 해서 그 아픔이 나누어지지 않지만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더라면 그 사람이 그렇게 어둠속에서 울고 있을 때 ‘빛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만나주지 않으마.’ 그러셨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그 어두움 속으로 걸어가서 그를 만나주셨겠습니까?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찬양)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주님이 물으셨네
주님을 정말 사랑하면 바로 그 자리에 가서 내가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도 울어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셔서 그 아이들로 하여금 혹은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라 그리고 정말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신다는 것과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이 사람들이 내가 곤고하고 아플 때 와서 울어주고 아파하고 이런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의 인격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모두 심방을 하는 것입니다. 교사들뿐만 아니라 교역자들이 심방을 부지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심방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주일학교뿐만 아니라 중등부, 고등부를 하면서 제가 심방을 한 것이 저의 목회에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 훈련이 없었더라면 아마 설교에 은혜를 끼치는 때에는 기고만장해서 교만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심방을 하면 정말 겸손해집니다. 그래서 어떻게 심방을 하느냐하면 주일날 심방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이 자기들이 독자적으로 심방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소수였습니다. 그러면 심방을 합니다. 그리고 2시쯤에 예배가 끝나면 그때 우리교회에는 저녁예배가 없었습니다. 목사님께 4시 교역자회의에서 보고할 것을 미리 보고하고 심방을 하겠다고 하면 목사님을 심방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시니까 봐주십니다. 그러면 2시부터 심방계획을 짜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부터 쭉 해서 선생님과 남자 총무선생님을 데리고 셋이서 심방을 갑니다. 만나서 시간약속을 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화 몇 통을 돌려보면 금방 알게 됩니다. 교회에 안 나오는 아이들은 대게 도서관에 가있거나, 학원에 갔거나, 친구들과 놀러간 것입니다. 그러면 도서관에 찾아가거나 학원에 가거나 아니면 걔가 잘 놀러 가는데 찾아가보면 대게 만납니다. 그래도 찾지 못하면 집 앞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해야할 제목이 무엇이냐 하면 꼭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서 어떤 때는 기다립니다. 그러면 아무리 길어도 제 경우에는 두 시간만 기다리면 만납니다. 날이 어둑해질 때 저쪽에서 걸어옵니다. 예수 믿는 집 아이입니다. 엄마에게는 교회에 간다고 하고 교회를 가지 않고 땡땡이를 치고 오는 것입니다. 교회 갈 시간에 친구들과 놀러가서 재미있게 놀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어둑어둑 저녁이 내리고 주일날 교회도 가지 않고 집에 가서는 거짓말을 해야 할 텐데 아이들은 오는데 그 아이의 표정이 밝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길목에서 기다립니다. ‘아무개야!’ 하고 부릅니다. ‘선생님이 갑자기 웬일이세요? 전도사님도 오셨어요?’ 아파트 앞의 벤치나 공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에 왜 안 나왔니?’ 묻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디 갔다가 왔니?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니?’ 물어보고 그리고는 조금 대화를 하고 그리고는 충분히 대화가 되었다고 생각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예배드리자! 이것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는 가야겠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들려주고 갈게. 잘 읽어보아라. 누가복음 15잘 4절을 네가 한번 읽어보아라.’ 그리고 길지 않게 짧게 ‘하나님이 너를 정말 사랑하셔! 네가 이렇게 방황하는 것을 하나님도 가슴아파하실 것이다.’ 그러면서 기도하면 놀랍게 말할 것들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잘 권유합니다. 마지막으로 같이 손잡고 어두운 밤길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10명중에 8명은 웁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영혼도 곤고합니다. 그렇게 찾아가서 불쌍히 생각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아무도 기도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웁니다. 눈물, 콧물이 나옵니다. 손수건을 빌려줍니다. 더러워집니다. 마지막 끝날 때 대부분의 여자애들이 ‘전도사님 다음 주에 제가 빨아드릴게요.’ 너무 잘된 것입니다. 그것을 빨아다주려면 다음 주에 나와야합니다. 그리고 헤어집니다. 헤어질 때 작은 책 한권을 선물하고 집에 가서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요일쯤 도착합니다. 그러면 읽고 대부분 답장이 옵니다. 그렇게 하면서 처음은 힘들지만 그렇게 한번만 해보고 나면 이 심방이 얼마나 기쁜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상황에 부딪히면 처음에 운전을 배우면 계속 직진입니다. 두 시간째 직전입니다. 차선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듯이 심방도 맨 처음에는 못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아이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면 대부분 눈물이 나옵니다. ‘내가 이렇게 그냥 주일날 잠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답시고 잠깐 봉사한다고 하고 돌아와서 일주일 동안 토요일까지 아이들 생각은 거의하지 않고 사는 동안에 아이들이 저렇게 곤고하게 사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저밉니다. 그리고 간절히 아이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나면 그 다음에 편지를 쓸 때는 두 장, 세장을 써도 모자랍니다. 계속 사연이 나오는 것입니다. 계속 써서 보내는 것입니다. 아이가 그 편지를 받고 감동을 받고 공과공부시간에 그렇게 심방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편지를 주고받고, 눈물을 흘리며 같이 기도하는 아이는 공과공부시간에 앉았을 때 자세가 다릅니다. 선생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니까 초롱초롱한 눈이 됩니다. 그리고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목회입니다. 그래서 정말 심방을 하셔야합니다. 지금 점점 아이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들을 찾아다녀야합니다. 눈물로 기도하고 심방해야합니다. 우리들이 능력이 없어도 사랑해줄 수는 있습니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성의 문제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에 부탁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 도시의 아이들이 없는데 갑자기 수많은 아이들이 몰려오게 끔은 하지 않으실지라도 그렇게 지금 교회에서 떨어져나간 아이들이 하나씩 하나씩 돌아오고, 있는 아이들이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이들이 고등학교 때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한 남자아이가 계속 여학생에게 프러포즈를 한 것입니다. 감동을 주려고 장문의 편지를 쓴 것입니다. 여학생은 주님을 깊이 만난 학생이었습니다. 답장을 썼습니다. 열 몇 장의 답장을 쓴 것입니다. 어느 날 집에 오니까 편지가 두껍게 와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걸렸구나!’ 뜯어보니까 ‘아무 아무개에게!’ 그렇게 편지를 시작하는데 ‘네가 어떻게 교회에 왔고 내가 어떻게 교회에 왔고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잘못했고 그러다가 주님을 만났고 그래서 우리 고등부에 부흥을 주셨고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서 미끄러지고 어디까지 왔으니까 정신 차려라!’ 전도사님에게 온 편지 같더랍니다.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악해지고 나빠져도 아이들이 신앙을 견고하게 가지고 있으면 그게 보물입니다. 물론 유혹도 받고 흔들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 마음에 돌아갈 고향을 확 붙들고 하나님 앞에 믿음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토요일이면 교회에 청년이 올라갑니다. ‘몇 학년을 가르치느냐?’애들이 막 웃으면서 ‘목사님 저희는 중학교 학생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크냐?’ ‘ 뭐 하러 가느냐?’ ‘목사님 우리 토요일에 기도회로 모여요.’ 외계인 같은 애들이 변화되어 가지고 토요일 오후에 갈 데 많은 아이들이 와가지고 올라가서 컴컴한 방에 들어가서 자기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선한 목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선한 목자는 반드시 심방을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