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교회에서 중직자가 된다는 것
녹취자: 백지영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강의할 것은 ‘열린교회에서 중직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이 흔히 중직자다 이렇게 부릅니다. ‘중직자’ 그러면 선거를 해서 교회에서 세워지는 일꾼들로 대개 그렇게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사실은 그것은 형식이고, 그렇게 선거를 통해서 일꾼으로 세워져도 교회에서 별로 중요성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일꾼으로 세워져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잘 하면서 아름답게 봉사를 하면서 자신의 신앙도 자라가고 이렇게 계속 성장을 해야지만 그게 정말 교회에서 무게 있는 진짜 일꾼이 되는 건데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많구요, 그 다음에는 요즈음에는 교회에서 일꾼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좀 하찮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 교회에서도 몇 분이 그런 분들이 있었는데 안수집사가 되고 한 2년도 안되어서,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서 큰 시험에 든 것도 아닌데, 교회를 떠나고 그래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절대로 교회의 질서 상으로 잘 하는 게 아닙니다. 이제 결국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우리들이 태어나서 경쟁사회에서 이겨 남기 위해서 우리들이 학창생활을 대학까지 하면 거의 16년을 보내고, 그렇게 하고 직장 다니고, 사업하고 이렇게 하고 사는 데, 그 모습이야 참 다양하겠지만 그러나 사실은 알고 보면 그것도 전부 다 세상에 속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어느 한 순간에 사람이 죽는다고 하면 모두 다 이 세상에 두고 가는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인생의 소망은 교회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결국 교회를 섬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지만은, 사실 우리의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더라도 그래도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봉사하고 한 것이 하나님 섬긴 것이지, 어디 교회 떠나서 하나님 많이 섬긴 것이 얼마나 있는지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것 같아도 사실은 교회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잘 섬기면 교회는 세상을 섬기지 않습니까? 이러면서 이제 우리들이 교회의 몸에 참여해서 당신의 교회를 이 세상에 세우는 일들에 많은 이바지를 하면서 살게 되는데 그것이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지막에 갈 때 주님께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장로님들께 제가 당회에서 종종 말씀드립니다. 뭐냐하면 여러분들은 여기서 신앙생활 잘 하다가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 앞에 면목이 있습니다. 제가 항상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머리가 허여서 아직까지 정해진 교회가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 보면 너무 가엾어요.
그런데 이제 우리 모든 교회들이 다 잘 일꾼들이 세워져서 잘 섬겨야 되겠지만 어느 교회인들 잘 섬기지 않아도 되는 교회가 있겠습니까마는 우리 열린교회는 특별히 더 잘 섬겨야 된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한 2년 전에 총신대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는 박용규 교수님, 아마 우리교회에도 오셔서 수련회때 말씀도 전하시고 그랬는데, 이분이 오셔서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가 그 해에 시험 감독관으로 들어갔는데 면접을 했는데 자기한테 할당된 학생이 20명인가 22명인가 그랬데요. 그런데 면접을 했는데 그 질문지 중에 “너는 이 다음에 목회를 하면 어느 교회처럼 되고 싶으냐?” 그랬더니 열 한 명이 저희가 신학교에 와서 공부하면서 마지막에 세우고 싶은 교회는 열린교회 같은 교회입니다. 20명 중에 11명이 대답하는 것을 보고 자기뿐만 아니라 함께 면접을 하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교회에 자랑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크기로 말한다면, 오늘 겨우 3007명이 아침에 출석을 했다고 오후에 예배위원장이 보고를 했는데, 우리교회보다 큰 교회가 우리나라에는 많습니다. 물론 3000명도 적은 것은 아니지만은 그러나 훨씬 큰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교회의 의미는 교회의 모이는 숫자에만 비례하는 것은 아니예요. 그런 입장에서 나는 이 열린 교회를 하나님이 그런 점에서 큰 교회를 만들려고 세우셨다기 보다는 그렇게 우리나라 최대의 교회는 되지 않고 몇 만 명이 모이는 교회까지는 내가 목회를 못하다가 죽을지 몰라도 그래도 오고 오는 세대에 열린교회를 표준으로 삼고 그렇게 교회를 일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델이 되기 위한 그런 교회로서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것이다 라는 확신을 저는 여러 해 전부터 갖게 되었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그러면 우리는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되느냐 하면 평촌에 있는 교회를 잘 해서 주위에 있는 교회들하고 경쟁을 해서 지역주민을 끌어 모아서 그래서 큰 교회를 만드는 것이 이상이 아니라 교회의 크기만이 아니라, 교회가 이루어지는 모든 질서와 신앙의 사상들이 올바르고 순전해서 정말 그 교회를 겉으로 볼 때는 그저 그랬는데 가까이 다가가면서 더 닮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그런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기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제일 먼저 열린교회에서 추구하는 가치의 기준을 분명히 해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게 제일 먼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지 않는 교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가치와 그 모든 판단의 체계들이 하나님 중심이 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우리 전지호 실장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우리가 총회에 연말이면 교인 의무금을 납부를 합니다. 그것이 서울에 있는 교회는 일인당 만원이고 경기도에 있는 교회는 칠천 원, 시골 교회는 오천 원입니다. 그제나 저제나 교회가 항상 형편이 어렵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교회의 살림살이를 염려하면서 행정실의 직원이 목사님, 교인 의무금을 총회에 내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하냐 그랬더니 다른 교회 물어보니까 그냥 절반 쳐서 내는데, 우리도 다 그대로 보고를 하면 세례교인 수 곱하기 칠천 원이거든요, 그러면 너무 많으니까 60%나 70%쯤 해서 내려고 하는데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그대는 우리 교회 와서 회심하고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으로 내가 아는데 내가 그대에게 그렇게 가르쳐 주었느냐, 우리 교회까지 몇 백 만 원을 절약하기 위해 그렇게 숫자를 속이면서까지 그렇게 보고를 하면 그럼 한국교회는 누구를 표준으로 따라야 하느냐 제가 타일렀어요. 전들 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내겠습니까? 얼마나 아까운데요. 그래서 그때부터 정확하게 입장이 정해져서 끝자리 수하나 안 틀리게 정확하게 세례교인을 계산을 해서 곱하기 얼마해서 내는데, 내가 단연코 우리 노회에서 그렇게 내는 교회가 없구요 사랑의 교회도 그렇게 못 낸답니다.
여러분, 이제는 제가 자유해졌지만 정말 자유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하면 예를 들면 방송기계를 3천만 원짜리를 사잖아요? 그러면 뭐를 내야 되지요? 세금을 내야 됩니다. 그런데 기계가 이게 얼마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3천만원이라고 하는데, 알았습니다. 가지고 오세요 그러면 3천만 원에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영수증 주세요 그러면 이상한 영수증을 주는 것이에요. 이것 말고 법적으로 증명이 되는 영수증을 주셔야 됩니다. 그러면 3백만 원을 더 내셔야 됩니다 그럽니다. 왜냐하면 거기다 끊으면 세무서로 들어가기 때문이지요. 3백만원 만 달라고 하는 사람은 점잖은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거기에 종합소득세까지 나오기 때에 3백 5십만 원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하느냐, 그것을 3백 5십만 원을 더 주고 영수증을 받아 오는 것이에요. 그럼 3백 5십만 원을 더 주고 영수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원래 3 천 3백 5십에 사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세금을 탈세시키고 3백만 원을 받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지출되는 돈이 일 년에 2억이 넘는 것이에요. 이렇게 그런 것을 완전히 자유 할 정도로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교회가 없습니다. 내가 단연코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바보입니까? 십년만 되면 20억이 되고 교회가 지출이 더 많아지면 30억이 될 수 있는 돈인데, 세무서장이 우리 표창장 한 번 준 적 없습니다. 정직하게 세금을 납부하겠다고 했더니 교역자들이 납부하는 세금만 일 년에 6천만 원이 나왔어요. 지금 여기 양 목사님하고 부목사님들이 있지만은 혜택이 다 사라졌어요. 우리 아까 왔던 행정실장은 소득이 3만원이 많기 때문에 무슨 각종 혜택들이 다 사라져 가지고 애들을 유치원 보내는 데 불이익을 받는 것이에요. 그럼 왜 그렇게 사람들이 별로 문제 안 삼는 것을 우리는 왜 그렇게 문제를 삼느냐, 왜냐하면 우리는 한국 교회의 모델이 되어야 할 교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도 흠이 없는 교회가 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희생이 싫고 올바르게 하는 것이 싫어서 우리들이 그렇게 되는 교회는 원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결국은 가치의 체계와 모든 생각들을 하나님 중심으로 둔다는 것이지요. 제가 이번에 미국에 가서 누구를 만났느냐 하면, 내년 여름 수련회 때 그분을 만나게 될 텐데, 강영한 교수라고 이번에 서강대학교 인문대학장이 되셨습니다. 그분하고 얘기를 하다가 한국교회의 정직성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가 이 이야기를 했더니 굉장히 놀라셨어요. 그분이 고신측 교회의 장로님이십니다. 그것이 쉬운 게 아닙니다. 우리가 통장에다가 몇 십억을 쌓아 놓아서 그까짓 것 몇 억 정도는 일도 아니다 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거든요 너무나 잘 아시잖아요. 그래도 우리는 구김이 없는 그런 길을 간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해요. 가치의 기준점이 정말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 중심으로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하는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지요.
두 번째는 교회의 영적 번영입니다. 교회의 번영은 외적 번영과 영적 번영이 있습니다. 외적 번영은 그런 것 아닐까요? 교회의 재산이 늘어나고, 건물이 커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또 그런 것만 번영이 아니라 알고 보니까 교회에 아주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오는 것도 번영이더라구요. 그러니까 교인이 가난하고 오히려 교회가 도와주어야 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보다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소수가 모여도 교회에 큰 힘이 되니까 그것도 하나의 번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본질적인 번영이 아니예요. 자,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섬기는 사람들을 주셔서 교회에 편한 예배당이 있고 의자에 앉아서 예배드립니다. 바닥에 앉아서 예배드린들 뭐가 문제가 있습니까? 지난 번에 바닥에 앉아서 넉 주 예배드려 보았지만 여러분들이야 안 그렇겠지만 나는 오히려 은혜로웁디다. 교인들이 무릎 꿇고 앉아서 예배드리니까. 그것이 본질적인 것들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우리는 유별 떨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회가 사치하지 않는 한 지금 같은 생활수준에서 그저 교인들이 무릎을 꿇고서 마루에서 앉아서 예배드리기 보다는 의자, 그것도 집안에서 쓰는 의자 정도 되는 수준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사치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에요. 옛날에는 목사가 포니만 타고 다녀도 손가락질 하던 시대가 있었어요. 지금은 안 그래요. 사회가 계속 발전하지요 이번에도 통계를 보니까, 작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차 중 제일 많이 팔리는 차가 소나타였답니다. 트럭보다도 많이 팔리고 택시보다도 많이 팔리고 그런데 올해 들어서 통계를 냈더니 그랜저가 1위랍니다. 6년 만에 한국에 온 동료 목회자가 깜짝 놀랬데요. 왜 그랬느냐고 했더니 6년 전에 있었던 작은 차들이 길에서 다 사라졌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의식 못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변화되는 수준에 맞추어서 교회가 조금씩 조금씩 따라가는 것은 그건 사치도 아니고 타락도 아니에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하면 그러한 번영이 본질이 아니다 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본질은 뭐냐하면 영적 번영이라는 것이지요. 영적 번영은 사회와 영혼들에게 끼치는 영적인 영향력이고 감화력이에요. 이것은 교회 바깥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시작이 되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말씀에 큰 은혜가 임하고, 성령의 은혜가 임하고, 회개가 있고, 선한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하나님 앞에서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될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게 되는 이런 것들이 우리의 심령을 일깨울 때, 이러한 것들이 영적인 번영이지요. 여러 해 전에 제가 마산에 집회를 갔었는데 정말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부어주신 집회였어요. 그랬더니 집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부인이 저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예배당을 탁 들어서는 데 눈물이 확 쏟아지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크게 영적인 번영을 주실 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왜 그런지 예배당에 들어가기만 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가 생각이 나고, 하나님 의지하며 살고 싶고, 이 교회의 일원이 된 것이 행복하고 하는 그런 것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이런 것들이 영적인 번영의 요소다 라고 하는 것이지요. 생각을 해보십시오. 여러분들 구역장 다 하시잖아요 그러면 공 많이 들인 교인이 모두 다 좋은 신자가 됩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안 그럴 수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많이 돌보지 못했는데도 하나님이 적시에 그의 영혼을 깨워서 그래서 놀랍게 변화되어서 심지어는 구역장인 내가, 교사인 내가 포기한 사람들이 변화를 받고 새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영적인 번영이에요 이런 영적인 번영을 우리는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해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예요.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시골 교회에서 160여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와서 2박 3일 동안 교회를 뒤흔들어 놓고 갔습니다. 온 교회가 발칵 뒤집히고 그 다음에 봉사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게 열린교회 성장에 도움이 됩니까? 아니 열린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려면 담임목사가 CTS TV나 아니면 CBS 텔레비전 방송국 같은 데, CTS TV가 한번 설교하는데 200만원인 것 아세요? 나한테 전화를 해서 목사님은 워낙 유명하니까, 200만 원짜리 50만 원에 해 줄테니까 방송에 띄우라고 해서 내가 됐다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우리 화종부 목사는 비슷한 전화를 받았데요. 그래서 “한 주에 50만원씩 주시겠다고요?” 그래서 저쪽에서 굉장히 황당해 했다고. 그런 것들이잖아요?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사람들을 160여명 데려다가 2박3일 동안 먹이고 재우려면 동네에 있는 사람들을 해야지 목회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여러분들은 모르시지만 담임목사가, 우리 목사님 또 유럽가시네, 우리 목사님 또 미국가시네, 조금은 화려하지 않아요? 개고생입니다. 갈 때마다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숨이 목에 까지 닿아요. 제가 어제도 링거 맞고 왔습니다. 그래서 이만큼 버티는 것이에요. 귀한 돈 가지고 출장을 가잖아요? 그러니까 한 2시간 정도의 여유도 없이 빽빽하게 일정을 짜가지고 정신 못 차리게 마지막까지 설교하고 돌다가 옵니다. 정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열린교회에 무슨 도움이 됩니까? 외국에 있는 신학생들 책 주고, 밥 사주고, 장학금까지 주고, 아니 하려면 동네에다 뿌려야지 교회가 성장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보이는 보편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제가 이번에 영국에 갔을 때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교회에 갔었어요. 거기에 지금 피터 마스터스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신데, 40년 전 30대 초반에 그분이 부임했을 때 스펄전 목사님의 전설이 서린 교회가 40명 모이더랍니다. 노인네들만. 거기에 가셔서 설교하고 말씀 전하기 시작하셔서 40년이 지났는데 900명쯤 모인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육백 명 모이는데 영국에선 거의 있을 수 없는 기적적인 일입니다. 한 한 시간 반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그분이 스펄전 목사님을 향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존경은 참 대단한 것이었어요. 그래서 당회장실에다가 스펄전 목사님의 초상화와 스펄전 목사님의 강대상, 강대상에 시계가 거기에 달렸더라고요,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의 지론이 ‘35분 이상은 설교하지 마라’였답니다. 그리고 보니까 요새 내가 많이 짧아져서 성도들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니까요. 어쨌든 스펄전 목사님이 전기에 보면 이런 일화가 나와요. 마차를 타고 동료들과 함께 지나가시잖아요. 그러면 교회만 나오면 마차를 세우고, 우리 저기 언덕너머에 보이는 저 교회를 위해서 우리 기도합시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고 눈을 뜨면 마차가 가는데 또 나타나, 그럼 또 기도합시다.
우리의 이상은, 나는 목회를 하고 처음부터 이제까지 주변의 교회를 경쟁상대로 생각한 적은 맹세코 없어요 경쟁상대가 아니라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확장되는 것이에요. 그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뭣이냐 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께 온전히 복종하고 사는 것, 이것이 바로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삶이에요.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교회를 통해서만 확장이 되겠어요?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 많잖아요? 그러면은 외국에서 공부하는 신학생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그 사람들을 도우면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습니까? 오늘도 제가 참 마음이 아팠던 게 프랑스 파리에서 아프리카 선교사들이 모여서 집회를 한다고 나보고 와달라고 연락이 온 것이에요. 그런데 자기네들이 액션을 좀 늦게 취하기는 했지요. 그런데 절대로 그냥 와 달라고 했을 리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직접 쓰기가 뭐해서 우리 최 간사 통해서 내가 쓰는 것으로 하지 말고 최 간사가 쓰는 것으로 해서 편지를 내봐라. 그래서 거기 만약 가시면 뭘 부탁하시려고 합니까? 그 다음에 목사님이 가시면 혹시 후원금을 가지고 오시라는 것은 아닙니까? 그랬더니 2만 불쯤 가지고 왔으면 하는 것이에요. 2만 불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예전에 제가 별로 열린교회가 크지 않고 이름이 없었을 때에는 외국에서 오라고 그러면 비행기표도 보내주고 끝나고 갈 때는 사례금도 주었는데, 요새는 비행기표만 타고 오라고 그러면 아주 감사하겠어요. 항상 자기네들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처음에는 사실은, 나는 굉장히 나는 생리적으로 누구한테 기대고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거든요, 나는 이해를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에 와서 선교사들과 그 섭리들을 보면서 느끼는 게 무엇이냐 하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 정말 가난하게 그렇게 사는 선교사들이 한번 모이면 거의 7천만 원씩, 일억 원씩 들어가는 대회를 하는데 자신들이 그 돈을 못 모으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거의 가엾은 생각이 들 정도로까지 마음이 변했습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면 우리 이름 내고 우리를 자랑하는 일에만 투자하지 말고 그렇게 영광은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리게 하고 우리는 그들을 후원할 때, 그 때에 어디서든지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확장해 나아가는 삶을 살면 우리는 거기에 동참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지 않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이바지해야 되는데 자, 보십시오. 우리가 국내 아웃리치, 해외아웃리치, 신학교를 섬기는 것, 선교사들을 돕는 것, 신학교를 하는 것 등등 이 모든 일들이 이러한 하나의 가치를 위해서 정위되어야 하고 이 일을 위해서 우리들이 헌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더 많이 헌금하고 이것들을 잘 분배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게 될 때 하나님이 결국은 이런 모든 노력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섬긴 흔적들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그렇게 우리에게 할 일이 참 많고 우리에게 정말 많은 일들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런 속에서 그러면 우리들이 열린교회에서 섬기는 삶을 지속적으로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첫 번째가 개인의 영적 성장과 섬김이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참 사람이 신앙이 없어도 직분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자기 자신이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이 직분이 결국은 사람의 감투가 되고 맙니다. 보십시오. 교인들은 새벽기도 안 해도 장로님은 새벽교회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인들은 새벽기도 안 해도 권사님들은 새벽교회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인들은 말씀 가까이 안하며 살아도 권사님들은 말씀 가까이 하면서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번에도 일꾼들 뽑으면서 가장 많이 고려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열린교회 와서 정말 하나님을 만난 분인가, 그리고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시는 분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먹으며 성장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것이 교회 일꾼들을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우리의 신앙도 함께 자라가야지 임직할 때에는 열렬하고 뜨거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식어버리고 찬 마음이 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계속 성장해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나오는 게 뭐냐하면 진리에 대한 사랑과 섬김이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 이미 된 선배 권사님들 중에는 참 제가 봐도 존경스러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열린교회 와서 십 년이 넘도록, 심지어는 15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으면 설교도 들을 만큼 듣고 아마 구역 공부한 책만 해도 쌓아올리면 허리까지 올라올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예배시간이면 눈물로 예배를 드리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책 읽고 성도들을 가르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권위가 있는 권사님들, 권위가 있는 집사님들이 있습니다. 여러 해 전에 우리 교회가 사랑의 교회에서 여름수련회를 할 때였습니다. 그 때 우리 후배 중의 한 사람이 영국에서 막 청교도를 공부하고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 휴가를 가는 길에 하루 우리 수련회에 참여를 했습니다. 목사라는 사실을 숨기고 조용히 GBS 모임에 들어갔는데 그야말로 청교도의 유장한 교리를 가지고 GBS하고 있는데 30대 갓 넘은 젊은 청년이 그 사람들을 모아놓고 청교도 교리를 유창하게 가르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게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겠습니까? 제가 같이 살고 있는 교인들을 자랑하는 것은 마누라 자랑하는 것만큼 팔불출이지만, 제가 외국에 가서 학자들을 만나거나 한국의 목회자들을 만나게 되면 내가 다른 건 자랑 안 해도 하나 자랑하는 것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죄와 은혜의 지배’를 턱 내놓고 항상 내가 하는 말이 우리 교회에는 이 청교도의 교리를 목차만 가지고 가르칠 수 있는 평신도가 400명이 있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정말 400명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정말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우려고 애쓰는 가운데 그것이 토대가 되어서 섬겨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다가 언제 우리들이 힘을 얻게 됩니까? 물론, 장로님들이 “정말 집사님 애 많이 쓰셨습니다.” 치하 하는 것도 하는 것도 우리에게 격려가 될 수 있고, 담임목사가 밥이라도 한 번 사면서 “권사님이 정말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하는 것도 격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저는 목회를 하면서 교인들의 그런 말을 들을 때도 격려가 되지만, 더 큰 격려가 될 때에는 하나님이 말씀을 열어 주실 때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열어 주셔서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하실 때면 생각합니다. “아, 하나님이 교회와 나를 버리시지 않는구나, 하나님이 나의 사역을 복 주시는구나.” 장관이나 차관이 등록을 해서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내게 부어주실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 교인들 가운데는 ‘죄와 은혜의 지배’를 들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사람도 있고, 그리고 이제는 좀 교만해 질만 하면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를 깊이 깨우셨습니다. 질서도 모르고 열심 하나 믿고 까불 때에 ‘교회의 질서와 하나님의 통치’를 가르쳐주시면서 우리를 일깨우시지요. 이렇게 하면서 지평이 열리면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진리를 사랑하는 가운데 우리의 섬김이 더 온전해 져 가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교회의 질서와 섬김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은 한 번 보십시오. 이제 교회가 열 일곱 살이 되었고 이제 좀 더 있으면 성년이 됩니다. 그러는 동안에 질서가 없는 교회들이 질서가 잘 잡혀졌습니다. 최근에 그분은 아주 공개적으로 제가 쓴 책을 잡지에도 소개하고 저에 대해 아주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최근에 그분이 쓰신 글을 하나 읽게 되었습니다. 목회를 아주 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이 그런 말씀 을 하시더군요. 자신을 칼빈을 좋아하지만 다 따르지는 않는다. 따르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당회를 만들고 제직회를 만들고 그러는 것은 나는 안 한다. 목회를 어떻게 그렇게 하냐, 목회자 혼자 하나님 앞에 기도 많이 하고 소신껏 하는 것이 목회이지 무슨 절차가 그렇게 복잡하냐? 물론 그 분은 훌륭한 분이고 순수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만한 자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어느 한 사람이 양심적이고 훌륭하고 믿을 만하면 그 한 사람을 의지하면서 교회 하는 것이 제도를 만들고 움직이는 것보다는 훨씬 더 효율적이겠지요. 인류 역사 이래 인간이 만들어 낸 정치제도 가운데 최고의 정치제도가 뭔지 아십니까? 독재정치도 아니고 공산정치도 아니고 그리고 참주정치도 아니고 왕정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정말 훌륭한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 매우 적지요. 우리나라 역사를 봐도 두 번 다 훌륭한 왕이 나온 역사는 있어요. 그런데 세 번 연달아 나온 역사는 없습니다. 항상 이상한 인간 하나가 나타나서 전권을 휘두르면서 역사를 말아먹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에요. 교회는 성경과 그리고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그래서 지지받는 교회의 질서를 통해서 교회가 운영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담임목사가 훌륭한 장로가 있을 때에만 당회를 당회 대접을 해 주고 인정을 해 주고, 구성원들이 허접하면 쓰레기처럼 취급을 해 버리면 그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의 교회가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종종 사람이니까 허물이 어찌 없겠습니까마는 한두 가지 허물을 보고 장로님을 인정하네 안 하네 그러는데 옛날 같았으면 정말 치리감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에 세워진 집사들을 잘 지키면서 우리들이 그 질서를 따라서 주님의 교회를 섬겨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거룩함의 승리와 그리고 섬김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자신이 날이 갈수록 더 정결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고 주님의 교회도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세상일 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우리는 그렇게 돼서는 안 됩니다. 오래 교회를 섬겨서 요령이 생겨서 반질반질해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마음 깊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 훈련을 잘 받고 임직을 하시겠지요. 그러면 말과 모든 행실에서 모본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즈음에는 그런 일들이 없어졌는데, 여러 해 전에 교회를 섬기던 분 들 가운데 열심은 있는데 인격이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어느 부서에서 일하다가 큰 소리가 나오고 식당에서 하다가 서로 다투고 그런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때에 제가 식당 문을 닫아 버리려고 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꽃꽂이를 해 놓는데 꽃꽂이 하는 사람들끼리 싸움을 했더니 목사님이 그 다음 날 꽃꽂이를 집어 던져 버리고 시장에 가서 화분을 사다가 올려놓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자신이 거룩해 지지 않게 때문입니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권사님이나 집사님이나 장로님들이 됐을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견실한 신앙의 인격에 있어서 모본이 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와 진리입니다. 이것이 영적 성장의 핵심이에요.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 정말 아름다운 신앙의 사람으로 자라가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진리의 말씀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자라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될 때, 그 때에 우리들의 임직은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똑같이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많이 맡기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구하십니다. 제가 마지막 시간에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사심 없이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을 하십시오. “이 교회가 내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교회다.”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님 앞에 온 마음을 다해서 10년 혹은 20년, 장로님 되시는 분들은 일절 없지요. 딱 십년이니까.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 룰을 허무는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10년 딱 한 번밖에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 주 한 주 지나가면 그게 350분의 일이 지나가는 것이에요. 그 기력이 있을 때 정말 주님을 아름답게 섬기면 하나님이 얼마나 칭찬하시겠어요.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가 섬겼던 교회를 내려다보면서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교회가 이렇게 오늘 3007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는데, 인터넷을 통해서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약 3만 명 정도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말만 잘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행실과 마음이 올바라야 되지 않겠습니까? 설교자의 설교가 말이라면 그 교회의 일꾼들이 함께 연합을 이루며 섬겨 가는 것은 교회의 내면이고, 내면의 질서이고,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으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 설교보다는 교회 속에 들어 가 보니까 더 아름답더라 그런 이야기가 들릴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정말 예수 안에서 잘 헌신해서 주님의 교회를 세워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