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자교육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녹취자: 안두현
오늘이 마지막 시간입니다. 조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벌써 17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제일 처음에 저희들이 거의 저혼자 목회하다시피 하다가 교회 일군을 처음 세운 것이 1999년도였습니다. 그때에 처음으로 안수집사 열사람을 세웠고 그것이 교회 개척하고 나서 5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세울 일군들이 없었습니다. 마치 전기줄에 새들이 앉아있는 것처럼 은혜가 있다고 해서 왔지만 또 은혜를 받았지만 언제나 마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었습니다. 그러다가 안수집사가 열명이 세워지고 그래서 운영제직회라는 것을 구성을 해서 그사람들과 의논을 하면서 이제 일을 해나가기를 시작을 했고 그렇게 하면서 이제 교회가 거의 12년 이상의 세월을 지내온 것입니다. 그러니깐 아시다시피 수많은 일꾼들이 와서 거쳐갔습니다. 그 중에는 교회 안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난 사람도 있고 또 시험에 들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서 멀리 전근을 가거나 해서 간 사람도 있고 또 그중에는 시험에 들고 미끌어져 떠난 사람도 있고 요즈음은 떠난 사람도 자꾸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것도 좀 걱정입니다. 그래서 그런저런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한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데 있어서는 유능하고 일을 잘하는 일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교회에 중직자들 중에는 열린교회에 온지 10년 심지어는 15년 된 사람들 중에서도 지속적으로 은혜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염려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으면서도 지혜도 있고 재능도 있고 물질도 있고 해서 교회를 잘 섬기면 두말할 것도 없이 최선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입맛처럼 모든 것이 잘 됩니까? 안될때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를 섬기면서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제 생활해 보시면 알지만 이제 교회를 다니고 그 다음에 나이가 들고 교회에서 이런 저런 그 일꾼이 되고 중직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교회를 쉽게 못떠납니다. 누구 이야기를 들으니깐 부주한 돈때문에라도 교회를 못떠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이야기하는데 한교회에 한 20년 다닌 사람이 떠나면 부조금 손해보는게 2,000만원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멀리 이사를 가도 집에 큰 일을 앞둔 사람은 못떠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 설킨 가운데 우리들이 교회생활을 하고 신앙 생활을 하는 것 처럼 그렇게 은혜도 못받고 신앙 생활도 제대로 못하면서 교회에 그러고 있으니까 그런 것이 이제 그대로 자신의 영혼도 곤고하고 교회도 힘들어지지 않겠습니까? 한번 여러분 생각을 해보십시오. 사람이 은혜가 한번 떨어지면 목사나 집사나 누구나 형편없는 인간이데.. 저도 요즘에 친구 목사들을 만나면 머리가 아픕니다. 교회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들입니다. 내가 정말이냐고 물으면 왜 자기가 지금 겪고 있는데 김목사는 왜 믿질 못하느냐고.. 어제도 누가 와서는 제직회를 하고 나서는 막 소리 소리를 지르고 싸우고 나가서는 소위 그래도 명색이 집사라는 사람이 담배 한 대 옥상에 올라가서 피우고 또 내려와서 또 회의하고 소리 지르고 또 올라가서 담배 피우고... 괜히 하는 소리겠지... 내가 옆에 있어서 담배 냄새도 다 맡았는데 안 믿냐고..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주 말도 안되는 일들이... 교회가 17년 오면서 별의별 사건을 다 겪었지만 그래도 말도 안되는 사건을 안 겪고 왔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복이고 그또한 하나님이 저의 분량을 아셔서 하도 그러면 집어치고 도망갈까봐 정상을 참작하셔서 교회가 좋은 사람이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디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제 주장은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 마지막에 그 남은 것은 결국은 직분이라고 하는 것도 어느 순간하다가 물러나는 것인데 은혜생활을 잘 해야합니다. 그러나 참 인간의 타락이라는 것이 신뢰가 가는 교리가 무엇이냐하면 정말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열린교회 17년동안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그 은혜를 간직하며 살지를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교회의 중직자가 되고 일꾼들이 되어서 교회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지 못할 때에는 교회가 방향을 제대로 못잡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정말 눈물로 당부하는 것이 계속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교역자나 직원들을 가만히 보면 지금도 이렇게 보면 은혜를 받는 사람들은 삶이 틀립니다. 사랑이 있고 감동이 있고 애정이 있고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는 생활을 계속 하세요.
그러면 실제적인 지침에 들어가서 어떻게 은혜받는 생활을 할 것일까요? 새벽기도는 내가 평생에 목숨 붙어 있는 동안에 내가 해야할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딱잘라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의미심장하게 들어보십시오. 설교를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책을 끼고 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미끄러지는 사람이 있어도 열렬하게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미끄러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열렬하게 기도생활 하셔야 합니다. 특히 이중에 장로로 임직하신 분들은 가슴에 깊이 새기셔야 합니다. 제가 우리 1기 장로님들까지는 이해해줬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3기 4기만 모았는데 장로가 새벽기도 안나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에서는 새벽기도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살면 그냥 열외입니다. 시키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러한 담대한 각오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강제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을 하고 기도를 해야합니다. 요즘에는 나중에 들어온 사모님들 열심히 새벽기도하면 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교회 가까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유익을 항상 누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그 목사나 장로나 권사님들이 눈물의 기도가 있으면 교회는 건강합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아주 눈물로 당부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안수집사로 계신 분들은 할수만 있으면 교회에 가까이 오십시오. 교회에 가까이 오지 않으려면 거리가 아무 문제가 안되는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제가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수요예배도 나오고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고 그래야 됩니다.
그리고 이제 또하나는 뭐냐 하면 좋은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드물긴 하지만 가끔 명색이 권사인데 명색이 안수집사인데 명색이 장로인데 예배시간에 조는 사람을 보면 심령이 상합니다. 어떻게 영혼을 관리했으면 저렇게 예배를 드릴까... 어떻게 본보기가 될까.. 그분도 한때는 안그랫을 것입니다. 다 은혜가 사라졌으니 그러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언제나 좋은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가끔 드는 예화지만 우리 김남근 장로가 사실은 제가 제일 싫어하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정말 형식적인 그리스도였습니다. 제가 책을 얼마나 많이 썼습니까. 나올때마다 주면 열어도 안보고 집에 차곡차곡 쌓어둘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더니 자기 형네 교회로 옮겨야되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1년반정도. 그러니깐 교회 예배를 드리러 오는 길에 부모님께 인사도 하고 한달에 한번씩 용돈이라도 드리러 오면 좋겠다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수한 것은 우리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모르고 온 것입니다. 수요일에 예배를 드리는데 11시에 예배를 시작을 했는데 빨리 끝나야 1시에 끝나는 것입니다. 늦게 끝나면 1시30분입니다. 나중에 하는 이야기가 뭔가 하면 자기네 교회에서 오전예배 밤예배 모두 합한것보다 오전예배가 더 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체력도 있었으니까 설교도 오래햇을 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디 갈수도 없고 항상 앞자리에 앉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면 졸다가 자다가.. 주보라도 봤으면 좋겠는데 저희 교회는 주보도 안만들지 않습니까. 들어왔는데 나갈 수도 없습니다. 통로까지 다 막고 있으니깐... 어느 날은 이 지겨운 예배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예배를 드리나 보려고 뒤에 있는 사람 옆에 있는 사람을 다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예배의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자기처럼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더라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예배시간에 설교를 들으면서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닦고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고. 그때 처음으로 자기가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이구나라고 처음으로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뜻을 세우기를 들을수 밖에 없다. 그리고는 똑바로 앉아서 듣기 시작했는데 한달이 안가서 회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해서 열린교회에서 장로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체들에게 예배는 이렇게 드려야 되는 것이다라는 본보기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끔 보면 제가 설교시간에 그러는 사람이 아닌데 설교를 가끔 더듬는 때가 있습니다. 말이 좀 꼬이고 그러는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그런 광경을 보아서 정신이 혼미해서 그런 것입니다. 마음이 상해서. 원고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설교를 하는데 왜 생각이 다른 데 있으면 말이 막 꼬이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정말 잘못한 것입니다. 작년에도 몇몇분들이 예배시간에 저를 참 힘들게 했습니다. 왜 꼭 앞자리에 와서 보라는 듯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정말 좋은 예배자가 되어라. 그것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 지속적인 은혜생활을 하라. 지속적인 은혜생활을 하라 그것이 가장 훌륭한 섬김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순종할 마음도 생기고 자기에게 맡겨주신 양떼들을 올바로 이끌 수 있는 용기도 생기고 판단력도 생기고 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은혜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좋은 예배자가 되고 열렬한 기도의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꾸준히 성경을 공부해보고 그리고 교리를 배워가고 신학을 익혀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늘 책을 손에서 놓지 말고 늘 설교테잎을 듣고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이렇게 하면서 은헤생활을 해나가야지만 된다.
두 번째는 뭐냐하면 경영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특별히 장로가 되시는 분들은 나는 아주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뭐나하면 우리교회 장로님들보다 권세를 많이 가진 교회는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1대, 2대, 3대 거치면서 다른 목사도 꼼짝 못하게 당회에서 권력을 지고 나가라 들어가라 하고 그런 교회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처럼 이렇게 장로님들에게 실제로 일할 수 있도록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저 장로님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다른 목사 반대하지 않고 교회가 어려운 일 있을때 돈 좀 잘 내고 그런 일을 바라지요. 나는 처음부터 생각이 다릅니다. 그래서 사실은 장로님들이 좋은 점도 어려운 점도 있었던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 뭐냐하면 경영적 지혜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일머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언젠가 임직 투표하기 전에도 말씀드렸었습니다만 교회의 안수집사까지는 조금 덜합니다. 그러나 장로가 되려면 물론 신앙이 돈독하고 훌륭해야하지만 일을 할 수 있도록 지혜를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상식이 통하지 않든지 앞뒤가 막힌 사람이든지 아니면 그 지혜가 현저하게 부족한 이런 사람들은 교회의 지도자가 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은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경영적인 지혜가 필요한데 이것이 뭐냐 하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이렇게 살아가면 사람마다 이런 저런 일을 겪지 않습니까? 개별적인 일들을. 개별적인 일들이 좋은 일이면 누구든지 다 웃고 나쁜 일이면 누구든지 슬퍼하고 회사나 기업의 이익이되고 돈을 벌어다주는 일이면 누구든지 박수를 치고 신통지 않는 일이면 누구나 싫어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지식을 뿐입니다. 일본에 일본기전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일본의 말하자면 일본의 유명한 전기, 기계회사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사장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직원들을 뽑을때 누구를 뽑겠습니까. 이 회사가 좋다고 일류대 나온 사람들이 원서를 내고 지방의 이름없는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원서를 내면 여러분들은 누구를 뽑겠습니까? 같은 값이면... 공부를 잘한 사람을 뽑지 않겠습니까?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그래서 여기서 월요일날 저한테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배우러 오지 않습니까? 저하고 같이 공부하려면 시험을 봐서 뽑습니다. 요번에도 월요일날 제가 총신학교 학생들은 열명정도 가르치는데 에드워드목사님에게 받는 은혜가 크니까 그래서 에드워드를 가르쳐주겠다 하면 20명정도 지원을 해서 시험을 봅니다. 시험을 봐서 영어시험 다 봐서 실력되지 않는 사람 다 쳐내고 실력되는 사람 뽑아서 성실하게 할 것인가 물어보고 다 쳐내고 마지막 남은 사람 10명정도 남아있는데 정말 다릅니다. 공부 잘 한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괜히 좋은 학교 나오고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본기전 사장은 완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류대학 출신은 무조건 떨어뜨립니다. 누구를 뽑냐하면 뽑아만 주면 감지덕지 할 사람들만 뽑습니다. 그러면 실력은 떨어질 것입니다. 그대신 감지덕지할 사람들을 뽑아서 그중에서 제일 괜찮은 사람들을 뽑는 것입니다. 그리고 합격을 시키니까 집에가서 현실인지 꼬집어보는 것입니다. 내가 일본기전에 들어가다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가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연봉을 주는 것입니다. 이사람들은 완전히 대박이 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안좋은 대학을 나와서 일본 최고의 회사를 들어갔는데 월급도 자기 동기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여기를 떠나서 어디를 가랴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 회사에서 하는 일이 뭐냐하면 야단치기입니다. 무지 무지 혼을 낸다고 합니다. 그렇게 혼을 내도 이사람들은 이미 너무 감지덕지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갈 엄두를 못내는 것입니다. 일류대학 졸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내가 여기 아니면 갈데가 없을까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훈련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을 만들어서 사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저돌적인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특징이 되게 일본 비즈니스계에서 아주 유명한 일화입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아버지 따라서 외교관 아들로서 갔다가 거기서 정착해서 사는 사람 가운데 한사람이 있는데 이사람은 이제 40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최고의 패밀리 레스토랑 자바라고 하는 체인점의 회장입니다. 이 사람이 엄청나게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람이 책까지 썼는데 이 사람의 경영을 배우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고등학교밖에 못나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뭘 의미하냐 하면 당신이 정말 사업에 성공하려면 스마트한 사람, 똑똑한 사람보다는 신뢰할 만한 사람을 옆에 둬라. 그래서 이사람은 똑똑한 사람을 찾는게 아니라 믿을만한 사람을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언더커버 보스라는 미국의 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이 뭐냐하면 회장이 위장을 해서 그 회사에 취업을 하는 것입니다. 종업원들은 회장의 얼굴을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기네 회사의 한 지점에서 아주 신뢰할만한 종업을 찾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찾아서 그 젊은이에게 레스토랑 하나를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아주 감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잘 할 수 있다. 이제부터 네가 이 회사 사장이다. 이 레스토랑을 너에게 주마하고 그렇게 회사를 키운 것입니다. 저는 일주일에 TV를 보는 시간이 한두시간도 안되지만 예전에 언더커버 보스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정말 울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TV를 눈물을 흘린 적이 없는데 정말 눈물을 흘렸습니다. 루스트라라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좋은 레스토랑은 아닙니다. 몸매가 늘씬한 여자점원을 반바지와 짧은 저고리를 입혀서 레스토랑을 하는 곳입니다. 미국에서는 굉장히 큰 회사입니다. 루스트라의 회장이 완전히 실업자처럼 해서 여기서 접시라도 닦으면서 일할 수 있게 해서 들어갑니다. 가는 곳마다 짤리는 것입니다. 일이 너무 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기 회사 직원들이 저 말단 식당에서 일하는지를 어떻게 일하는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식당을 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싱글맘인데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어느 식당에서 갔는데 아주 못된 매니저가 일을 하는데 여종업원들을 퇴근을 안시키고 과자를 이만큼 가져다 놓고 손을 뒤로 묶고 개처럼 빨리 많이 먹는 사람을 차례로 퇴근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사람이 너무 분노를 했습니다. 다른 식당에 갔는데 이 식당의 매니저가 싱글맘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는데 너무 너무 일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렇게 나이 한 40정도 된 사람이 그렇게 와서 청소도 하고 주방에서 일하고 하니까 회장인지도 모르고 정말 고생한다고 그러고 희망을 잃지말고 열심히 일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인간적인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싱글맘으로 일하는데 어려운 점이 없냐고 물어보니깐 자기는 이 직장이 너무 좋고 다 좋은데 한가지가 너무 마음에 아프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둘이 있는데 아이들이 어렸을때 많이 놀아줘야 하는데 직장 때문에 많이 놀아주지를 못한다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 후에 커밍아웃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본사로 들어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못되게 구는 매니저는 왔는데 그 식당에서 자신이 못되게 굴던 아르바이트생이 회장이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못된 매니저는 해고 되고 두 번째 그 매니저가 들어왔는데 고개를 못들고 있는 것입니다. 회장이 날 좀 보십시오 해서 봤더니 자신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그 사람이 회장으로 있는 것입니다. 정말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서 우리 회사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지요. 제가 한달동안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전세계에 아무데나 다니고 싶은 곳에 아이들 둘 데리고 다니십시오. 물론 비행기표와 먹는 것, 자는 것 모든 비용은 자신이 내겠습니다. 그 매니저가 막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도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장황하게 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면 다 미친 짓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눈앞에 일어나는 일 말고 뒤에 있는 큰 원리들을 붙잡는 것을 일컬어서 경영적인 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회사를 가꾸어 가듯이 교회에서 일을 할때에도 맨주먹 붉은 피 그리고 그 충성됨 모두 좋지요.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도구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군대에서 중대장을 시켜줬는데 너무 헌신하고 충성합니다. 돌격 명령이 떨어지니까 돌격을 외치고 고지를 올라섰는데 돌아서니까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하냐 하면 사람들을 격려해서 자기에게 자기들에게 주는 사명에 대해서 기쁨을 나누고 보람을 나누고 이룰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다투기만 하는 사람들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도자가 되면 안됩니다. 그냥 혼자 봉사하면서 살아야합니다. 그런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씩 하나씩 일을 해가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구역 하나를 맡겨주어도 처음에는 마음에도 맞지 않는 서너사람 맡겨줬는데 그들을 사랑하고 소통하고 교제하고 대화하고 하면서 그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같이 전도하고 같이 양육하고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만들어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함께 세우는 구역장이 바로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이 정말 아픈 것은 뭐냐하면 교회는 신앙으로 움직이는 집단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기도 많이 하는 것 가지고 신앙의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교회는 자꾸 일꾼으로 뽑아줍니다. 그런데 저사람은 사회에서 지위가 낮아서 혹은 인간성이 좋지 않아서 말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을 맡겨보면 문제가 생길때가 있습니다. 아래 사람들이 그 사람의 리더십을 따라 가려고 하니까 아주 답답하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 편이 아니라 이런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일을 맡겨야 하는 것이고 경영의 지혜를 받는 사람이 되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이 애정을 가져야 이런 지혜가 생겨나는 것이지 애정이 없으면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열린 공간은 곧잘 하고 있지요 그래서 세금도 잘 내고 금년에는 한 3억정도 매출이 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맨처음에 열린 공간이 어떻게 생겼냐하면 방배동 예배당 시절에 생긴 것입니다. 교인은 200명밖에 안되는데 예배당은 9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보니까 새가족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유리로 된 것이었습니다. 그당시에는 새벽기도회를 그렇게 많이 나왔습니다. 또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전철을 타면 서울 시내 한복판이이까 어디서든지 전철을 타면 새벽기도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시간이 6시 15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은혜 받은 사람이 간절히 기도하다가 가는데 참 안된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열린공간에서 우유와 빵을 팔기 시작하면서 열린공간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형제 한명을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운영을 하는데 하루 매출 1만 5천원정도 났습니다. 그러니까 재직회할 때 마다 열린공간에서 60만원 적자났습니다. 보태주십시오하면서 재직들이 그렇게 짜증내했습니다. 그 이후에 지혜를 주셔서 미국에서 어느 자매가 편지를 저에게 보냈습니다. 미국에서 설교테잎을 듣고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이걸 갚을 길이 없어서 이돈을 보내드리니까 목사님 어디에든 쓰십시오 하면서 보낸 수표가 들었어쓴데 200불이 들었었습니다. 그때 200불은 큰 돈이었습니다. 그걸 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200불을 가지고 교역자들과 저녁을 먹을 수도 있고 책을 살 수도 있고 등등이 있는데 그렇게 쓰는 것이 생산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관리담당을 불러서 200불을 바꿔가지고 가서 을지로 가면 빙수 만드는 기계가 있으니 사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돈을 바꾸니 딱 국산 빙수기계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빙수를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주일날 30만원씩 팔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빙수기계 하나가 열린공간 적자를 흑자로 돌려놓았습니다. 가을이 되니까 다시 빙수가 안팔려서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하나님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는 참에 마침 두란노에 가면 북카페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빵을 구워서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빵굽는 기계를 사려고 보니깐 50만원이라고 해서 돈을 어떻게 마련을 해서 하나를 샀습니다. 그리고 발효하는 기계를 동생이 하나 주었나 해서 돈을 얼마 안들이고 빵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열린공간이 노하우를 쌓아가지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 와서는 정식 간사를 뽑았습니다. 매출이 막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노력하고 노력해서 시스템이 갖춰졌습니다. 1년에 매출이 3억정도 하고 이것 저것 빼고 마지막에 2,000만원에서 5,000만원 남습니다. 직원들 월급 한푼도 교회에서 안줍니다. 알바하는 사람까지 거기서 자체적으로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씩 하나씩 하면서 마음을 쏟아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들을 보여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께 맡겨진 사역이 열매를 많이 맺게될때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익숙한 기술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냐하면 한가지 일을 맡겨주면 그래도 2, 3년은 기본적으로 3년은 같은 일을 맡긴다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열심히 노력을 하셔서 잘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래야 잘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끔 보면 생활의 달이이라고 해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자동차 바퀴굴리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밤 까는 사람, 접시 빨리 놓는 사람, 국수 마는 사람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어떻게 잘 할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고 숙달되는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 구역장 하는 사람에 비해서 3년정도 구역장을 했으면 훨씬 나아야지요. 심방이라든지 권면하는 것이라든지 지혜든지 모든 것이 나아야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익숙한 기술입니다. 그래서 하다 못해 열린신문을 접더라도 오래된 사람은 접는 방법이 틀리지 않습니까? 그것이 자기 일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끔 이제 위원장들이 결재를 들어와서 저에게 망신당하고 가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하면 이번에는 일을 이렇게 이렇게 한다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작년에는 일을 어떻게 했습니까? 물었을때 모르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금년에 일을 할때 작년에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확인도 안하고 일을 합니까? 지금 중등부 부장님이신데 중등부 학생들이 얼마나 모입니까? 지난 12월에는 얼마나 모였지요? 자 모르겠는데요 하면 저는 묻습니다. 그러면 집사님은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일에 충실하면 그렇게 답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익숙해져 됩니다. 엊그제도 결재를 올라왔습니다. 교회학교에서 올라왔는데 계산이 틀린 결재가 올라왔습니다. 적은 금액도 아니고 200만원 이상이 틀린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위에보니까 그 부장부터 시작해서 장로님, 행정실까지 전부 사인을 받아왔습니다. 제가 그위에다 디자이너들이라고 했습니다. 내용은 보지도 않고...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도장 찍은 사람이 여섯명이 넘는데 어떻게 더하기 하는 사람도 없느냐 했습니다. 무책임한 것입니다. 이것이 회사 일이라면 그렇게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하면 할수록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다음에 뭐냐하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책임을... 이 일은 나의 일이다 하는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봉사하는 것만도 교회에서 감지덕지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의 정신이 아닙니다.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고 저도 들은 이야기인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배울게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명성교회에서는 교인이 5만명이 모이는데 관리직원이 한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장로님이 그것을 지휘하시는 그럼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여기 열린 교회 교육관 4층 에드워드방 청소 하면 두사람을 딱 임명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2주만 그곳에 청소가 안되있으면 지워버리고 다른 사람을 올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절대로 자기 일을 방치하는 교인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조금씩 차이는 있는데 기본적인 가닥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어마어마한 교회당이 모두 자원봉사자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을 만나보지 못했지만 어쨌뜬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바로 책임입니다.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 지금도 새가족 부서는 새가족 부서대로 교회학교는 교회학교대로 전부다 참고를 하라. 왜그러냐 하면 새가족 물건을 중등부에서 쓰고 아무데나 가져다 놓고 중등부 물건을 새가족 부서에서 쓰고는 아무 곳에나 가져다 놓고 이렇게 견딜 수가 없으니까 테이블보가 오늘 썼잖아요. 그러니까 테이블보를 부서마다 따로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낭비입니까? 누군가 책임을 지면 그렇게 안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권사님들 가운데에도 책임감이 아주 뛰어나신 분들이 있습니다. 아주 존경스럽습니다. 지체들도 모두 존경합니다. 권사이기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책임감 있는... 아주 몸이 아파도 구역예배를 나와서 자기 임무를 다하고 가는 사람들...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가 교통적 협력입니다. 이것이 뭐냐하면 언젠가 한번 교회에서 즉시 제 귀에 들어 온 것은 아니고 한참 뒤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공교롭게 그 일이 있은 분들은 교회를 모두 떠났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던 지체들이 다투었다는 이야기들을 들려왔습니다. 제가 마음이 얼마나 상했는지 그 식당을 폐쇄해버리자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밥도 안준다고 교회 안나온다고 하면 교회 예배 공간도 좁은데 오지말고 밥 주는 교회로 가라고 하려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그랬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전부다 뭐냐하면 개인적인 인격적 미성숙으로 인함입니다. 그리고 또하나의 이유를 들면 교통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교통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일을 하면 이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어떤 사람과 관계되었는지를 보고 그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엊그제에도 교역자들이 저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낙도선교를 가니까 버스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버스를 가지고 간 것입니다. 머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주 전쯤 예배 위원회에 이야기를 해서 저희가 버스를 가지고 갑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야지만 교회 앞에 다음주에는 예배드린 지체들을 사당동까지 못 실어다 준다고 광고를 해야하지 않습니까? 말도 안하고 가져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있느냐하면서 내가 싫은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다 교통이 안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관계를 가지고 갈아가면서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섬기는 관계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잘 도움을 받을 것 아닙니까? 그 어느 하나도 혼자 일하기 힘듭니다. 교회에서도 이렇게 보면 그런 것을 잘 못합니다. 못하는 사람들은 원망을 참 잘합니다. 그래서 일을 조금하면서 시비를 걸고 그리고 심지어는 교회도 은혜가 떨어진 것처럼 비난도 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일하다가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됩니다. 절대로 그렇게 되면 안됩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날 대기업에 인사담당자를 만났는데 대화를 주욱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신문지상에서 대기업이 어떻고 저쩌고 해도 CEO 자신들부터가 유능하고 합리적인 사람들보다는 자기하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래 사람들보고만 그런 사람 쓰지말고 똑똑한 사람 찾으라고 하지 정작 자기는 자기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하고 일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위원장이 되든지 어쨌든 지도자가 되면 자기가 생각을 많이 해서 교역자들고 소통을 하고 분과장을 하고 있는 장로님들과 수시로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에 한번이라도 열린공간에서라도 만나서 만나서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토요일 기도모임에 나와서 기도하고 하면서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한 다음에 소통하면서 그걸 가지고 와서 자기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해서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가끔 만나서 밥이나 먹고하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이것이 무슨 친교모임도 아닌데...
마지막으로 이제 여섯 번째 말씀 드리는 것이 뭐냐하면 보편 교회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나라는 이제 복음이 들어온 이래로 산업화 사회의 길에 들어서면서 아주 굉장히 빨리 개인주의화되어 간 것입니다. 이 영향이 교회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개교회주의가 이렇게 철저한 나라가 많지 않습니다. 다른 교회에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같은 지역에 있으면 서로를 경쟁상대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것들은 성경적인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간직할 진리가 있는데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보이는 보편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입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오후에 안정열선교사가 베르베르어로 성경 번역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으셨습니까? 누가 그사회에서 예수를 믿겠습니까? 지금도 그사회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사형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누가 예수를 믿겠습니까?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이루어 가도록 우리 자신이 하나의 썪는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올해도 천이백명이 넘는 인원이 가서 해외 아웃리치를 하고 왔는데 여러분 그것이 얼마나 큰 고생입니까? 1억 가까운 돈을 거둬서 그 천이백명이 가서 수고한 것은 이틀 삼일밖에 안되지만 준비한 것은 거의 6개월 이상 준비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열린교회의 성장에 도움이되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그렇게 하고 오면 수없이 편지들이 옵니다. 이것이 인연이다 싶어서 뭐좀 도와주십시오. 뭐좀 도와주십시오. 작년에 김남근 장로님이 다녀와서 그 이야기를 하는데 아웃리치를 갔는데 빔프로젝트를 가지고 가서 지체들에게 그것을 보여주면서 설명도 하고 하였답니다. 그교회도 가난하고 해서 컴퓨터도 사다주고 했는데 목사님이 그것을 보고 장로님 저희교회도 이런 것이 꼭 필요한데라고 하시길래 장로님이 이야기를 하기를 목사님 교회에는 이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라고 하였답니다. 목사님이 무엇이냐고 해서 장로님이 이야기하기를 목사님 교회에는 교인이 더 필요합니다라고 하였답니다. 교인이 4명인데 이걸 가지고 누구를 보여주겠습니까? 전도하세요라고 했다길래 너무 잘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전도를 하는 것이 열린 교회 성장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제가 여러군데 해외를 나가니까 어느 목사님이 참 달리는 것 좀 하나 없나(?)...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교역자들도 알고 직원들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공항에 내리면 향수병에 걸리는 사람입니다. 정말 싫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가야지요... 그래도 제가 가서 외국에 있는 목회자들 밥사주고 강의하고 그리고 책 선물하고... 이제 8월말에도 칼빈신학교, 트리니티 신학교 방문해서 장학금을 주고 설교해주고 집회해주고... 다른 곳은 집회를 하면 사례비라도 주지만 여기는 제가 가면 밥도 사주고 집회도 해주고 책도 주고 강의도 해주고 와야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열린교회 성장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사실 솔직히 어떤면에서는 헛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학전문도서관은 뭐하러 만들어서 누가 쓸지도 모르는 도서관을 도서 인수하는 것 때문에 두 번을 갔고 이번에 12월에 세 번째 또 가야합니다. 뭐하러 그렇게 고생하고 있겠습니까? 제가 17년 되도록 안식년 한번 제대로 안갔는데 한 6개월 쉬고 오겠다고 한들 누가 나보고 말리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들이 이런 생각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게 따로 있는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의 몸인 이세상의 모든 교회의 일부로서 그 몸을 위해 이바지 하라고 하나님이 남에게 없는 지식, 물질, 남에게 없는 교인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국내아웃리치가지고는 성이 안찹니다. 병들어 있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까짓 30개 교회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3,000명이 다 나가서 100개 교회를 해야 합니다. 엊그제도 제가 요번에 3월달에 연변 과기대에 개강 집회를 갔는데 연변에 갔더니 자기를 꼭 만나 달라는 목사가 있었습니다. 연변에서 600여명이 모이는 교회를 하고 있는 조성모 목사님이었는데 이분이 연변에서 제 책을 건내줬답니다. 책 2권을 받고 은혜를 많이 받고 내가 이분을 직접 만나리라 하고 비행기를 타고 열린 교회를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에 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20대에 회심을 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그분 이야기로 회심한 이후로 자기가 주일날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예배를 드리기가 처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서 밥도 사주고 하면서 마지막 내미는 카드가 뭐냐하면 목사님 내일 우리 교회 와서 강의 좀 해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자기 친구들을 13명을 모았는데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6시간씩 차를 타고 온 사람입니다. 13명이 그게 무엇입니까? 1,000명을 모아 놓고 오라면 제가 시간 없어도... 13명이 무엇입니까? 그다음에 최선을 다해서 2시간을 강의를 했습니다. 그 이후에 뭐라고 하냐 하면 목사님 저희는 목회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제발 우리를 가르쳐주십시오. 사람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합법적으로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는 대단한 목사입니다. 탈북자들을 계속 도왔던 것입니다. 공안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뭐가 문제이냐. 왜 탈북한 사람들을 붙잡아서 취조를 하면 너네 교회에서 도와줬다고 하더라. 사실이다. 얘네들이 갈데가 없어서 교회라고 두드리고 와서 배고프다고 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사람들을 밥을 안주느냐. 밥 사먹으라고 돈 줬다. 도우면 안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강대가 있습니다. 강단이 있습니다. 고마워해라 나한테 내가 돈 안줬으면 분명히 너희들한테 가서 훔쳤을 것이다. 죄를 짓든지... 뭐를 잘 못 했느냐... 너네가 나를 문제 삼으면 나는 UN으로 가겠다.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투서를 하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분이십니다. 쳐죽으면 죽지 두 번 죽느냐고... 제 마음에 아주 쏙 들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나햐면 문화혁명이 일어나고 목회자들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그 전에 이게 자유로와지기 시작한 것이 문화혁명이 지나고 80년대 였습니다. 이분들이 목회 1세대입니다.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네들을 훈련시켜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1년에 2번씩만 와서 자기네들을 1주일씩 가르쳐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네들은 좋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을 못하지 않느냐. 숙제로 남겨두고 풀어보자 하고 왔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면 자기 친구들은 출국이 자유로우니깐 다 데리고 올테니까 한 2주동안 머무르면서 배우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전도도 가르쳐 주고 심방도 다 가르치고 하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쌓였습니다. 영국의 목회자들을 모아 놓으면 뭐합니까? 그래서 저희 교회에 도움이 됩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2주동안에 은혜 많이 받고 갔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 80%가 박사학위 소지자입니다. 이번에 제가 가가지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국 중부, 남부, 최남부 세군데로 나누어서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4시간을 차를 몰고와야 했습니다. 매주 혹은 한달에 한번씩 열심히 모여서 그렇게 교재 가지고 공부하고 열렬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나는 가서 교회가 안되는 거 아니면 이단만 아니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잘되는 거 보면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야할 가치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여기 평촌에 세워진 열린교회지만 우리는 이세계에 흩어진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주셨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그럽니다. 목사님 무슨 신학교도 신학의 날 한다면서요? 그렇지요 그곳은 알미니우스주의 신학교인데요 그랬습니다. 나도 알미니우스 주의보다는 개혁주의를 좋아하는데 그래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이지 않느냐. 예수 안의 한 형제이지 않느냐. 한 2년전이었는데 열심히 워킹을 해서 저 백운호수까지 걸어갔는데 한 6Km되는 거리였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10시가 넘었는데 교회 직원한테서 무슨 손님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어느 수녀님이 찾아왔는데 보러왔다는 것입니다. 대전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수녀님을 목사가 만나서 무엇하게 하는데 안가고 기다리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빨리 가도 50분은 걸리는데 1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하는데 그래도 기다리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45분정도 걸려서 오니깐 수녀 아주머니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개신교 목사를 수녀님이 무슨 볼 일이 오셨습니까 했더니 감사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누구세요.. 대전 근처에 있는 무슨 수녀원에 있는 수녀입니다. 자기가 너무 곤고해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는데 방송선교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극동방송을 틀었는데 그곳에서 설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들었는데 그 다음에는 깨알같이 메모를 하면서 적으면서 개인적으로 부흥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속에서 그 사람의 영혼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도 돌보는 지역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서 개신교 목사가 설교한 것을 정리해가지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얼마나 놀라운 변화의 삶을 살았는지를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1시가 훨씬 넘은 것입니다. 자기는 지금 대전에 내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운전을 해서 광명역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뭐냐하면 우리들이 마음을 열고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저희 교회에 17년동안 축보해주시고 성장하게 된 것이 저희가 많이 베풀었기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눌때 놀라운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수녀님에게 은혜를 받고 변화되었다라고 하는데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랬다고 해서 열린교회로 오는 것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거기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변화를 받고 새 삶을 살아간다고 하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 마음을 갔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 오라고 하는데 다 못갔습니다. 다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돈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3만불을 달라고 하고 두 번째는 2만불을 달라고 하고 마지막엔 만불을 달라고 하는데 그런데 사실 만불때문만은 아니라 사실은 도저희 스케쥴이 없어서 못갔습니다. 미뤄놓은 것이 뭐냐하면 분명히 가면 또 무슨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미루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펼쳐두고 있는 모든 세계 속의 교회들을 섬기는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제가 이런 말 하면 우스울지 모르겠는데 난 여러분들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라고 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교회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입니다. 이세상에 흩어져있는 많은 적고 연약한 교회에 대해서 어머니의 마음을 가져라. 그런 뜻을 품고 가면 하나님이 또 만들어주십니다. 사람들으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도 미국에 있는 신학교를 안돕는데 왜 아시아에 있는 조그만 교회가 와서 자기네 학교에 있는 한국 신학생들을 돕겠다고 하니까 아주 기이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그렇게 다른 교회에서 많이 안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을 안하고 여기에서 뛰어 넘어서 그 돈을 주면서 한국학생들을 도와주십시오 그러지말고 이건 학국학생들을 도와주시고 이것은 제3세계의 우리보다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주십시오라고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럴만큼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일들을 정말 기뻐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면 외국에 가서도 정말 신앙 좋고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을 잘 보살피고 구김살없이 학문에 열심을 내고 지도자의 심성을 기르고 한국으로 돌아오든지 아니면 안돌아오더라도 어디에 가든지 간에 사람은 만들어지고 이루어진 사람만큼 섬기면서 살아갈 것이 아닙니까? 열린교회에 와서 견실하고 성실한 사람이 부산에 내려갔다고 해서 아주 싹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잘 길러낸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잘 봉사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그렇게 하는 것은 낭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투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에 가면 학생들이 그렇게 기뻐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유럽에를 가면 영국교회 이야기를 들으니까 영국은 엄청납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세우는 두 개의 신학교가 있었는데 두 개의 신학교가 다 위기이고 마지막 세우는 LTS라는 신학교는 학생들이 30명밖에 안됩니다. 그래서 내가 그 옆에 있는 학교에서 교수하고 있는 형제인데 그형제는 이번에 와서 아주 은혜를 많이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형제가 가기 전에 제가 그랬습니다. 우리가 교회가 뭘 도울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일방적으로 돕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협력을 하도록 하자고 했더니 그쪽의 학교에서 학장이 나를 만나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제 거의 개혁신학 참된 기독교 신앙을 견지하는 신학교들이 다 문을 닫고 사라져 가고 있는 시대에 우리들이 정말 마지막 숨결들을 간직하고 있는 개혁 신학교들을 올바로 세우고 붙들어주고 하는 이것은 미래의 교회를 위해서 너무 너무 중요한 일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특별한 사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중국에 있는 신학교도 얼마나 은혜롭게 잘되는지 학생들이 벌써 휴학했다 복학한 학생들도 있고해서 40명이 넘어갑니다. 그런 사람들을 잘 훈련시켜서 그중에 1/3 이상은 아주 Excellent한 학생들입니다. 이제 그 학생들을 좀더 1년내지 2년을 공부를 시켜서 자기네들끼리 신학교를 하라고 할려고 합니다. 그러면 중학교 고등학교 이하 나온 중국 사역자들을 데리고 중국말로 신학을 가르칠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런 신학교를 무한류의 그런 곳에서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졸업한 학생들에게 계속 사역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거미줄처럼 우리가 우리에게 생각을 고정시키면 우리가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바보같이 돈모아서 교회 짓고 돈모아서 묘지 짓고 돈모아서 수양관 사서 놀러가고 그런 일만 계속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교회의 본질적인 소명이 아닙니다. 나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교인들이 지금 본당에서 3,800명까지 버틸 수 있다고 통계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할 수만 있으면 지금 있는 시설 가지고 빚 갚으면서 생활하고 그렇게 하면서 빚만 없으면요 그러면 한주일에 평균 1억 나옵니다. 그러면 꼭 필요한 것 쓰고 이자 안나가고 하면 1년에 최소한 20억은 세이브가 됩니다. 그 돈 가지고 선교하고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 돕고 그리고 해외에서 공부하고 훈련받고 사역하는 사람들 교육시키고 그렇게 해서 교회가 살아나게 하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돈으로 할 수 없는 소중한 일일 것입니다. 이번에도 연변에 갔더니 목회자들이 전부 분노를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큰교회들이 다 중국에 와서 다 버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왜그런 것이냐 하면 연변에 있는 조선족 목회자들 위로한다고 온다는 것입니다. 와서 큰 호텔에서 뷔페를 차려놓고 먹이고 목사님은 양복을 한 벌 해주고 사모님은 고급 화장품 세트 하나씩 주고 금일봉 주고 하는데 한번 오는데 1억씩 쓰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이 하는 이야기가 정말 너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무슨 고생을 한다고 위로는 무슨 위로입니까.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를 목회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주고 한국교회는 가지고 있지만 중국교회는 가지고 있지 못한 그 영적인 것들을 진짜 전수해주는 것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일인데 한국에서 온다 그러면 뭘 주려나 돈은 얼마나 주려나 그리고 사역자들이 모이는데 너무 부족스럽다는 것입니다. 위로는 무슨 얼어죽을 위로냐고... 지금도 곳곳에 바른 정신을 가진 목회자를 두셨기 때문에 우리가 아웃리치 사역을 하면 다시 살아나는 교회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무엇을 주고 그렇게 교회가 살아나는 것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런 일들을 정말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국내 아웃리치도 그 고생했지만 사실 정말 제일 많이 복을 받은 것은 저희 교회인 것입니다. 아웃리치를 갔다오면 교회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것은 복에 겨운거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 되지도 않는 교회에서 이치도 잘 닿지 않는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자기들이 큰 복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교회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이 일을 기뻐하고 계시다는 것이 확신으로 다가옵니다. 최근에 이제 있었던 일이니다. 맨처음 도서관을 할때는 개인적인 욕심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살아 생전에 더 좋은 글을 쓰고 제대로 된 설교를 하다 죽으려고 그러다 책이야 나중에 남으면 아들한테 물려주든지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생각이 달라지면서 여러분과 함께 눈을 떠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학전문도서관 운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교회 앞에 한번 광고한 적도 없습니다. 교인들이 아는 사람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해서 거둬주기로 약속한 돈이 일부는 들어왔고 일부는 들어오기로 되어 있는데 모두 1억 7천만원입니다. 스테이커르 교수 장서 인수하는 것 교회에서 별로 보태준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영국에서 개혁주의에 관한 양질의 도서 5만권을 우리 교회에 넘겨주겠다는... 돈으로 따지만 20억내지 25억정도하는 분량입니다. 그래서 지금 교섭을 하고 있습니다. 성사될 가능성이 아주 큰 상황입니다. 안되도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이런 일을 기뻐하신다는 표징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크게 품고 우리보다 연약하고 어려운 교회들을 깊이 끌어안고... 이번에는 저한테 누가 숙제를 준 것이 이것입니다. 목사님은 왜 가리켜봐야 전도할 사람들도 별로 없는 농어촌 목회에 심혈을 기울이십니까? 지금 가장 확실하게 투자가 회수될 수 있는 곳은 도시교회입니다. 도시교회에 50명, 100명도 안되는 교회들이 널려 있고 목회자들이 깨어나기만 한다면 시골에서는 전도해봐야 전도할 사람도 없지만 지금 도시는 아파트면 아파트 전도할 사람이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그 숙제가 쾅하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정말 그런 문제가 있었구나. 도시 교회가 불쌍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불쌍하지 않은 것은 도시교회는 아무리 조그만해도 그래도 시골교회보단 크니까 좀 좋지 않습니까? 입에 풀칠하며 살 수 있다는 것 뿐이지 다른 것이 무엇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더 열악하다는 것입니다. 월세를 내야한다는 것입니다. 시골 교회는 그런건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교회를 정말 올바르게 교육 시켜서 내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또하나의 숙제가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기쁘게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다. 그래서 우리 집사람과 함께 여러해동안 기도하는 제목들이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인데 교회가 세워지고 나서 일때입니다. 이 세상의 목사들이 너무 불쌍한 것입니다. 나도 불쌍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새도 저는 속상한 일이 있고 힘듭니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데. 누구에게 이야기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이 목사입니다. 집에서도 이야기 안합니다. 속상하지만 이야기 못하고 기도하고 아주 답답하면 산책이나 나가고 하는데. 이런 생각하면 불쌍합니다. 그래서 다 끌어안고 하나님 우리가 정말 저렇게 고통받는 목회자와 목회자 아내들을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목회자 아내 인턴십도 그렇게 안하려고 하는 것을 박OO장로님이 강권해서 시작을 했는데 얼마나 은혜를 받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이 세상의 많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다는 그런 생각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의 보편교회를 위해서 우리들이 흩고 뿌릴 때에 하나님은 다른 곳에서 우리를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조국교회와 이시대에 우리의 시대에 함께 있는 보편교회를 모두 끌어안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어떻게 하든지 그들에게 베풀고 자비를 베풀고 물질을 베풀고 그들에게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이렇게 해서 주님의 사람들로 세워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린교회의 특별한 소명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이제 많이 섬겨야 20년. 20년 섬기는 분들은 이제 제가 열린 교회를 은퇴하는 것을 보시게 되겠지요. 39살에 교회를 세웠는데 이렇게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났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남은 세월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겨우 우리의 일생이라고 하는 것은 열린교회에서 섬기다 가는 것입니다. 그 일이 성공하면 우리의 인생도 실패한 것이 아니고 실패하면 우리의 인생도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의 머리가 하얗게 되어서 교회도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우린 그래서는 안됩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다가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갈 수 있도록 참고 또 인내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견디고 그렇게 하면서 십자가 지는 삶을 살게되기를 바랍니다.
를 구성을 해서 욯뒤에 있는 축도를 빼면 오늘 우리가 읽어드린 이 성경구절은 사실 태초에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시작된 성경 66권 전체의 마지막입니다. 성경의 시작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시고 그리고 그 성경의 마지막장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인간의 아멘으로 끝난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그런 뜻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 사람들은 마지막때가 되면 마음이 더 둔하여지고 무디어져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올 것에 대한 모든 기대와 마음들이 사라져가고 주인이 더디 오리라하고 사람들은 술친구와 더불어 먹고 마시고 종들을 때리고 이렇게 사람들은 주인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혹은 더디 올 것이라 생각해서 말새의 기회들을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 방탕하게 살아가는데 쓰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바인 것입니다. 언제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 속히라고 하는 것은 인간들이 하는 것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는 것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속히 오리라. 그리고 이렇게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이가 바로 성경의 모든 말씀을 증거하신 이이신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이땅에 처음 오실 뿐 아니라 또한 다시 이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비롯해서 믿지 않은 온 세상을 심판하시고 당신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하는 혁혁한 증거를 끊임없이 성경속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깨어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그리고 잠시 후에 우리가 다시 주님을 뵈올 것이라고 하는 이 선언이 오늘 슬픔이 많고 고난이 많은 이 세상을 사명을 가지고 기쁨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가장 커다란 중요한 소망이었던 사실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모든 것들을 증거하신 이로서 속히 오시겠다고 하셨으니 그분의 말씀인 성경이 진실하다고 믿는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증거하신 이 말씀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 중의 하나인 것을 우리는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셔서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리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더디 오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나는 속히 오리라” 주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다시 주님이 다시 오실지 알수 없으니 그러나 혼탁해져가는 이 세태와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서 살고 자기의 육체의 일을 쫓고 길홍하는 이런 시대가 되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분명히 주님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잠시 후에 곧 주님께로 나아가서 뵈올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언제든지 당신과 마주하고 대면하며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깨우치시고 은혜를 주시고 또 변화를 주시고 성령의 능력을 주시고 진리를 아는 지식을 주셔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자기를 지키고 살아가야 할지를 끊임없이 일러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언제나 자기 욕심을 따라 살고 자기의 뜻대로 살아갈때마다 주님이 속히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어떤 믿음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심판을 불러 오는 믿음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우리에게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주시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속히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더 우리가 속히 주님께로 갈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는 준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 세상을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은 언제 주님을 뵈옵든지 염려할 것이 없고 또 주님과의 만남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중요한 것은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실 때에 뭐라고 이 요한이 말했는가 하니 “아멘” “아멘” 하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여러분 우리는 이 말을 다른 말에는 모두 아멘할 수 있어도 이 말씀에 아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 “아멘.” “내가 네게 복주리라” 그런 말씀에 대해서는 아멘이 쉽습니다. “내가 너를 용서하리라.” - “아멘.” “내가 너로 하여금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사람을 만들어주겠다.” - “아멘.” “내가 너에게 건강을 주리라.” - “아멘.” 그건 쉽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주님이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주님이 오시면 믿는 사람 축복 받기 전에 먼저 죽음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교회가 심판을 받아야지만 알곡과 죽정이를 가려내고 그 알곡된 백성들과 함께 주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성도와 심판하기 전에 먼저 진짜 성도인지 가짜 성도인지 가려내는 교회를 향항 심판이 먼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주님이 오실때는 단순히 오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주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요한아, 내가 이 세상, 이교회와 세상을 심판하러 내가 속히 가리라. 너도 심판하리라.”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우리가 66권 성경공부 아무리 많이 하고 성경 구석 구석 들고 아무리 많이 보수 신학을 외쳐도 이 마지막 구절에서 요한과 동일하게 아멘할 수 있으면 그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앙을 아는 지식이 많고 사연이 많고 그런데 주님이 “내가 진실로 너에게 속히 오리라” 했을때 “주여 아직은 마소서.” 그러면 그가 받은 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이 창세기 1장 1절만큼이나 대단한 장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우주적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온 우주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성경의 마지막 겉뚜껑을 열면서 우주를 보여주는 데 두 번째 뚜껑을 딱 닫으면서 뭘 보여주고 있습니까? 개인에게 물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앞에는 우주고 두 번째는 개인. “요한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주님 맞을 준비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깨어서 살다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결국 아멘의 생애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별명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의 별명이 바로 아멘이셨습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기를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아멘이시며 충성된 증인이시며 또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예수님의 별명이 아멘이었습니다. 어떻게 아멘?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내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려라.” - “아멘.” “땅에 내려가서 이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져라.” - “아멘.” “내가 너를 사흘만에 부활하게 하리라.” - “아멘.” “너는 이 백성들을 오늘도 돌보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 - “아멘.” “내가 너를 다시 보내리니 재림하여 이땅을 심판하여 알곡들을 거두어라.” - “아멘.”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별명이 아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깊이 만난 사람들의 특징이 아멘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멘은 입술의 아멘이 아니라 삶의 아멘이 되어야 합니다. 삶으로 아멘을 말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요한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 우리도 요한처럼 아멘하며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요한이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주님이 다시 오리라 말씀하실 때에 아멘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까?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요한은 너의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그런 음성을 들으니” 아멘. 그러니까 이 요한은 우리와 같은 형제였지만 그러나 이 요한은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였으니 여러분 마지막때에 주님이 속히 오신다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아멘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그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위해 수고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셨던 것처럼 그렇게 참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날을 속히 기다리는 어떤 청년이 있었는데 참 신실합니다. 저도 우리 교회를 이렇게 보면 참 감사합니다. 목사인 제가 이렇게 무릎 꿇고 배워야 할 청년들이 참 신실합니다. 열심히 주님을 믿고 겸손하고 그런 청년이 하나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갔더니 방문을 열자마자 커다란 액자가 하나 보이는데 액자에 써있는 말이 “오늘은 오시려나.” 삶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고 삶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니면 주님이 오시면 무슨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나는 나대로 살다가 가는데 주님이 오시면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주님이 오셔서 너 그렇게 인생을 살면 되겠냐 하면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요한이 이렇게 소망 자체가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에 그가 행한 일이 주의 나라와 그리고 그리스도의 환란과 참음에 동참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속히 오시겠다고 할때에 요한은 그 사실이 한없는 감격이 되었습니다. “주님, 아멘.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주님이 그 말씀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내가 주님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이것이 깨어있는 신앙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도 이렇게 언제든지 매일 일어나서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할수만 있으면 일단 하나님 앞에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매일 물어봅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렇게 진심으로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아멘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 요한은 성경이 오늘은 말하기를 예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갖힌 바된 요한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주와 더불어 고난을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을 판단해주시는 우리로의 주님이 속히 오시기를 고대하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주님을 위해서 받는 고난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30년 40년 예수 믿고 살아오면서 그동안 정말 그때만큼은 주님만을 위해서 고난을 받았다 말할 수 있는 때가 언제가 나에게 있는지 우리 한번 돌아봅시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서 흘리는 고난의 눈물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하나님 앞에 커다란 상급이 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각 사람에게 행한대로 줄 상이 있어서 무론대소하고 상을 주리라.” 여러분 세상에서는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서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 받는 고난이 이 세상에서는 하찮아 보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증거를 위해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부끄러운 인생을 보냈겠는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것들이 재산이 아니지만 주님이 오시는 날에는 이런 것들이 우리의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못박혀 죽으신 주님을 위해서 그 사랑을 간직하고 그 사랑과 함께 그 사랑 때문에 말씀을 지키고 그리고 그 말씀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예수를 증거하며 산 모든 인생의 날들이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고통은 모두 이 세상의 것들을 너무 사랑하는데서 그러니까 참된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때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서 주님을 기쁘시데 해드린 많은 사람들을 가리켜 이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였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말씀하셨을때 아멘 말할 수 있는 사람들로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요한이 꿈꾸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요한이 꿈꾸었던 것은 무었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요한 앞에 어떤 일들이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세상의 모든 원수들을 타파하시고 하나님 앞의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굳건하게 세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요한은 온전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온땅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그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부흥회는 끝났습니다만은 그러나 진정한 부흥회는 이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경회는 삶으로 말하는 사경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시간에도 여러분들이 삶 전체로 금년의 이 집회에서 주어진 모든 말씀에 대해서 아멘하시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이신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