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의 영적 생활
녹취자: 백지영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새내기 제직들인데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 눈치 채셨겠지만 열린교회는 자기가 제직되겠다고 손 안 들면 그러면서 계속 형제로, 자매로 늙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들이요, 그런 교회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집사 좀 하시지요 하고 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방 딱 붙이고 응모할 사람 응모하라 해 가지고, 여러분 우리 당회면접 다 하셨나요? 여러분 전부 다 180명이 빼놓지 않고 전부 다 당회면접을 하셔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통과를 해서 집사가 되니까 열린교회 집사님들은, 집사인가요? 집사되기 전에 아마 권찰도 해야 될 텐데, 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열린교회는 저 자신이 양성평등주의자입니다. 기본적인 머릿속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양성평등주의입니다. 그래서 강의 시작하기 전에 말씀드리자면,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평신도에서 세례를 받고 그 다음에 권찰을 하잖아요? 권찰하고 그 다음에 집사 이렇게 되잖아요? 그런데 여자들은 권찰을 시키고 거쳐서 집사를 시키고, 남자는 바로 집사를 시키더라고요. 그래서 양성평등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키려면 다 시키고 아니면 없애려면 다 없애라 그래서 전부 다 권찰을 거쳐서 집사가 되게 그렇게 되지요. 결혼식에 주례사 할 때 주례 한 다음에 서약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서약문을 읽어보니까 먼저 남성에게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대는 아무 아무개 양을 신부로 맞아 일평생 사랑하겠느뇨? 이렇게 묻습니다. 자매에게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사랑하고 존경하겠느뇨? 이렇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것도 말하자면 남성우월주의가 만들어 하나의 예다. 그래서 담당하는 부목사한테 그랬습니다. 존경을 다 뺄래? 아니면 집어넣을래? 그러니까 그래도 존경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면 양쪽에 다 집어넣어라. 그래서 우리는 결혼식 때 남자 형제에게도 아내를 존경하겠느뇨?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게 왕이 하사품을 내리는 것같이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지요. 그런 것들 다 눈에 보이셨어요? 안보이셨어요? 그럼 또 하나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여성 안수를 허락을 안 합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그래요. 이것은 개교회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도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어떻게 했느냐 하면, 남성은 어떻게 되지요? 우리 교회는 교역자 되는 것이 멀고 험한 길인 것 아시지요? 교회 인턴십 코스가 있습니다. 인턴십 코스에서는 신학생들 중에서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집 공고를 내요. 그러면 매 기수마다 다른 데 적게 뽑을 때는 7명 아주 많이 뽑을 때는 18명 정도 뽑아요. 보통 15명이 기준입니다. 15명 정도를 뽑거든요? 그러면 15명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한 45명에서 60명 정도가 응모를 해요. 각 신학대학원에서. 그러면 우리 교단만 고집하지 않아요. 그런데 대부분 우리 교단이 주를 이루지요. 그렇게 해 가지고 그 사람들에게 시험을 보는 것은 아니고 서류를 다 받고 서류검토를 해서 절반 정도를 골라내요. 그 절반 정도에게 한 한 달 동안 해야 할 숙제를 보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대개 책을 읽고 테이프를 듣는 것입니다. 머리가 일본 말로 좀 나라시가 되어가지고 와야지만 여기서 뭘 가르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숙제가 다 옵니다. 숙제가 다 오면 그 숙제를 놓고 예를 들면 60명에서 30명 추려낸 데서 다시 선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한 20명 정도를 추려냅니다. 그리고 20명은, 2차가 통과된 사람은 면접을 들어오게 됩니다. 그 때에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하고 장로님들이 면접을 합니다. 온 사람들은 교통비를 지급을 하고, 그 중에서 5명 내지 8명 정도가 떨어지고 나머지가 합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오면 그 다음에 월요일 날마다 나하고 같이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월요일이 휴일이 없습니다. 월요일이 제일 바빠요. 그래서 아침 9시에 모이면 같이 잠깐 기도한 다음에 커리큘럼을 따라서 나하고 같이 스피리츄얼 포메이션(spiritual formation)을 합니다. 그래서 한 주에 책을 한 권씩 읽고 각자가 발표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엔 내가 전부 다 정리해 주고 그렇게 해서 오전에 일과를 마친 다음에 11시쯤 되어서 본관으로 넘어가서 교역자들을 위한 그룹 바이블 스터디를 하는데, 이때 열린교회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성화의 교리 같은 것을 공부하는데 옴니버스 식으로 합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이 돌아가면서 인도자가 되어서 공부를 하면서 사역자마다 어떻게 독특하게 공부를 가르치는 지를 다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마지막에 점심 먹고 오후에는 실제적인 목회의 실무에 관해서 전도하는 요령, 심방하는 요령, 교구를 조직하는 요령, 양육하는 요령 등등을 가르쳐 주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평가를 해서 통과가 된 사람들이 이제 저와 함께 1박2일 수련회를 떠나고 거기에서 같이 리더십을 다지고 그리고 돌아와서 수료식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통과한 사람들이 15명 정도 되면 그 중에서 레지던트를 뽑습니다. 그래서 열린교회가 내년도 교역자 수급을 위해서, 예를 들자면 2012년도에 교역자가 4명 정도 필요하겠다고 하면 2011년도에 뽑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때는 이 사람들이 교회를 옮기고 와야 해요. 그 대신 교회에서 풀 스칼라십을 학교에 주고 생활비를 줍니다. 그렇게 해서 1년 동안을 자기 재능에 따라서 어린이부서부터 전도부서 장년부서까지 배치가 되어서 일 년 동안 교역자들과 같이 똑같이 생활을 하면서 교역자 실무를 익히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1년 후에 평가를 해서 그저 그러면 수료증을 주어서 내보내고 탁월하면 열린교회에서 사역을 해 보겠느냐고 프러포즈를 합니다. 그래서 좋다고 하면 2년을 사인을 합니다. 그래서 2년 동안 열린교회 교역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2년 후에는 교회도 선택하고 본인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갈 수도 있고 머물 수도 있고. 그리고 다시 한 번 2년을 사인을 했는데 두 번을 합격을 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다시 사인을 하자고 얘기를 안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열린교회에서 계속 교역자 생활을 하다가 개척을 나가든지, 청빙을 받아서 가든지, 유학을 가든지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교회에서 적절하게 어느 정도 길을 열어주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교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멀고 험난한 길입니다? 별로 그런 생각 안 드세요? 그래서 신학생들이 열린교회에 와서 교역자를 해 보는 게 꿈인데 아무리 주위의 사람을 동원해서 한번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해도 그 통로가 아니면 못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잘 훈련된 사람들이 여러분을 돌보는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여전도사들이잖아요? 여자는 전도사까지밖에 못 되지 않습니까?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남성 우월주의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바꾸었느냐 하면, 여성 전도사들을 세 부류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냐 하면 전도사로 들어오면, 레지던트는 임시교역자니까 빼고, 교육전도사 이 사람들은 학교 다니거나 파트타임으로 교회에 와서 파트타임은 학교가고 나머지 날들은 나와서 교회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분들이 있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전도사 대우 전도사가 있습니다. 네 등급입니다. 전도사 대우 전도사는 그냥 전도사입니다. 그 다음에 거기서 좀 업그레이드되면 강도사 대우 전도사 그러니까 목사되기 전에 강도사 되잖아요? 그 사람들 하고 똑같이 대우를 해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더 올라가면 부목사 대우 전도사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지금 김경희 전도사님하고 이명희 전도사님 두 분이 부목사 대우 전도사가 되는데, 부목사 대우 전도사가 되면 부목사님하고 꼭 같은 생활비와 모든 대우를 똑같이 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남성우월주의를 극복하고 양성평등을 실현을 한다. 그런 이야기지요. 그런데 담임목사 대우 여전도사는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없습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는 저 혼자이고 그렇게 해 가지고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우리교회에서 보면 교회가 대부분 주일 날 근엄한 장로님들이 교회의 기도시간은 모두 장악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그렇게 안 하지요. 그래서 아주 새파랗게 젊은 30대 초반의 주부가 대예배 시간에 기도하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러한 양성평등주의적인 이상을 실천해 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매님들도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시되 여성이라고 위축되고 그러지 마시고 정말 남성 못지않게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론을 마치고, 오늘 이 시간에 제가 여러분에게 강의하도록 부여받은 주제는 열린교회 제직의 영적 생활 이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의 강의가 다음 주 그 다음 주에 이어질 강의도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강의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 우리 한번 이런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나무를 하나 옮겨 심는데 나무가 정말 멋있습니다. 진짜 저는 나무가 그런 줄 몰랐거든요. 그런데 나무가 말입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여러분 열린교회 마당에 나무 심겨진 칼빈파크 예쁘잖아요? 그 나무를 맨 처음 심을 때 진짜 전국을 수배해 가지고 잘 생긴 나무를 고른 것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이요 나무의 값을 결정하는 것이 파이거든요? 대개 20센티 내외로 나무를 찾는데 지름 20센티짜리 나무가 싼 것은 20만 원짜리가 있고요 비싼 것은 400만 원이 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차이가 나느냐 그랬더니 시골머슴처럼 생긴 것은 20만 원 이하로도 사요. 그런데 걔는 갖다 놓으면 뭐라고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 설명은 못하겠는데 무조건 아니라는 것밖에는 답이 안 나와요.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요 저도 머리가 있는 사람인데 납품하는 업자하고 사인을 할 때 일 년 내에 죽으면 나무를 다른 것으로 교체해 주기로 사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두 그루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외국집회를 가면서 직원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업자가 틀림없이 나무가 죽으면 배상해 주기로 했으니까 새 나무를 심어놓으라고 해라 그리고 집회를 갔다 왔습니다. 오면서도 새 가족 나무가 들어왔을 텐데 어떤 나무일까 하고 들어왔더니 형언할 수 없는 나무 하나가 거기서 마치 미스코리아 대회에 몸빼 입은 시골아줌마 올라온 것처럼 그런 나무하나가 있는 것입니다. 돌쇠 같은 나무가. 오자마자 빨리 파버려라. 그리고 이제 다른 것을 선을 보아서 사진을 다 찍어 와서 둘을 뽑아가지고 거기다 심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호박 매달린 나무 앞에 있는 그것이거든요. 170만 원을 주고 그때 심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 가지고 나무를 심지 않습니까? 그 때 내가 깊이 깨달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똑같은 20센티 나무 하나가 어떤 것은 20만 원이고, 400만 원이라고 하는데, 400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천만 원 육박하는 것도 있답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이것이구나. 사람이 그냥 살아 있다고 해서 다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훈련되어지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값어치가 정말 달라지는 것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집사나 권찰이 되실 텐데, 생각해 보십시오. 그 집사다, 권찰이라고 하는 것 어디가든지 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우리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집사, 권사는 그래도 교회 오래 다녔을 테니까 집사보다는 좀 낫겠지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아닙니다. 집사들 중에서도 그 사람이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그렇게 진짜 머슴 같은 사람도 있고 잘 생긴 나무 같은 제직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만 그렇게 잘 생긴 나무 같은 그런 제직이 될 수 있겠느냐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두 가지인데, 가끔 보면 사람이 개인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이 신앙생활을 해요. 그런데 쓸모가 별로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냥 자기 개인 신앙생활이지 뭘 해도 못해요. 그리고 뭘 해도 열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교회에 와서 말씀 듣고 은혜 좀 받으면 기도하고 집 안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고, 자기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무슨 일을 시켜주면 무슨 성심성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실은 신앙생활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두 가지가 겸비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적으로 자신이 성숙되는 신앙생활의 은혜와 그 다음에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자기가 일을 지혜롭게 할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가 함께 온전해 질 때에 그 사람이 정말 주님의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기둥과 같은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능력이 모두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자의 일생이라면 그때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이 잘 준비되는 것이 그것이 훌륭한 신앙생활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중에 첫 번째가 바로 제직의 영적생활입니다. 그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아마 대부분 거의 빠짐이 없이 열린교회에 와서 말씀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은혜를 못 받고 참다운 회심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여러분이 집사가 되어도 집사 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여러분의 신앙이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지요. 그래서 여러분이 말씀의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았다면 잘 알다시피 그 신앙이 계속 자라야 합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 해 전에 남천이라고 하는 나무 하나를 사 왔습니다. 굉장히 우아하고 선비풍의 나무입니다. 그렇게 비싼 나무는 아닙니다. 화원에 갔는데 한 눈에 끌리는 것입니다. 키가 제 키 정도 되는 나무였는데 너무 너무 예뻐요. 정말 한 눈에 사로잡힐 정도로 예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서 제 방에다 두고 매일 즐거워했거든요. 그런데 이 나무가 바람이 잘 부는 곳에 두어야 되는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책도 있고 비가 올지도 모르는데 창문을 열어놓고 퇴근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닫고, 가끔은 열어주는데 그것 가지고는 안 되나 봐요. 잎사귀가 빨갛게 변하기 시작하면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하였더니 바깥에다 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옥상에 올라가지고 가서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도 너무 바쁘니까 그것이 있는 줄도 잊어버리고 한 일 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 그때 그 남천 예쁜 것 지금쯤은 잘 살았겠다 하고 올라가보았더니 살아있기는 살아 있기는 살아 있는데 형언할 수 없는 머슴처럼 변한 것입니다. 그래서 화원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나무를 하나 세워놓고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사람이 계속 보고 있으면 예쁘게 자라고 안 보고 던져두면 막 자라는 것입니다. 굉장히 신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심하고 변화되었어도 계속해서 우리의 영혼이 계속 돌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돌봄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물론 목회자들 통해서 돌봄을 받지만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으로 여러분을 계속 돌보시는 은혜의 작용이 목회라고 하는 통로를 통해서 계속해서 여러분 속에 재현될 때 여러분이 그렇게 옥상에 올려다 던져 놓았더니 살아있기는 하는데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러한 나무로 변한 것처럼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면 꼭 좋은 교회의 일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두 번째도 아니고 첫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좋은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역자들을 평가를 해야 될 때가 있잖아요? 뭔가 일을 맡길 때 싫든지 좋든지 평가를 해야 할 때 가장 제가 보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교역자가 좋은 예배자인가?’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래서 비록 사역의 능력이 약간 모자라도 늘 예배 시간에 좋은 예배자로 남고 하나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예배 속에서 주님을 사모하면 그러면 훌륭한 예배자인 것입니다. 오늘도 뒤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니까 화분사이로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 보이잖아요? 눈이 마주치는 한 자매가 있는데 그렇게 예배 시간 내내 눈을 지그시 감고 찬송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다 드려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게 10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데도 나에게까지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예배자입니다. 그 사람은 모자라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깨닫게 하셔서 고쳐주세요. 그에게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한 좋은 예배자가 되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여러분이 교회에 가면 한 일 년 동안은 은혜를 받고, 그 다음 해에는 교회에서 일하는 재미로 교회 다니고, 삼년 쯤 되면 시름시름 시험에 들고, 4년쯤 되면 열 받다가, 5년째 싸우고, 6년째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러 가지 사연을 안고 교회를 옮겼지만 원래 교회는 그렇게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칼빈 선생의 말씀에 한번 교회를 정하면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교회에서 종신을 하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이 교회에서 야유회 놀러가서 다 타월 하나씩 줬는데 자기는 안줬다고 삐쳐서 교회 옮기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장로 떨어졌다고 교회 옮기고 그것은 너무너무 창피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런 생활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좋은 예배자가 되어야 해요. 저는 우리 교회에서 교인들이 참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교회에는 한 10년 이상, 15년씩 열린교회를 다녔으면서도 계속 은혜를 받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소중한 지체들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좋은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냥 예배시간에 늦게 와서 뒤에 아무데나 걸터앉아서 끄덕이다가 졸다가 가고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교회에 일하겠다고 깊이 개입해 보십시오. 더러운 인간의 부패한 냄새가 끊임없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평신도로서 혹은 집사님으로서 교회 다니면서, 저 사람은 그냥 나서지 않고 뒤에 가만히 있으면 은혜가 되겠다. 그런 성도들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좋은 예배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일은 하지만 자기 자신이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좋은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교회 나오면 일주일 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들에 대해서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고 거기서 주님 깊이 경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가지고 공부하고 있지요? 거기에서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그 목적을 위한 목표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고, 주님을 만나기 위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세 당사자가 있다고 했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설교자와 그리고 그 말씀을 사모하는 목마른 성도와 그 두 사람의 만남을 축복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그때에 정말 주님을 만나는 예배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당회의 면접을 거쳐서 제직이 되고 나면 여러분은 열린교회 표를 달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열린교회의 집사라고 해서 예배의 감격 있는 열린교회 그러겠습니까? 예배의 감격이 있는 집사가 되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런데 맨날 교회에 늦게 나오고, 그 다음에 주저앉아서 졸기나 하고, 예배시간에 공상이나 하고 이렇게 하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토대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17년 동안 열린교회를 목회하면서 경험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무리 열린교회를 좋아하는 교인이라 할지라도 예배시간에 좋은 예배자가 되는 못하는 교인은 결국은 교회를 떠나고요 안 떠난 사람은 남아서 교회를 계속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연을 안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좋은 예배자가 되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를 정말 놀랍게 변화시켜서 성도다운 사람으로 만드세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좋은 예배자가 되도록 온 마음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입니다.
두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사실은 게임 같은 것은 거의 절대 안 하는 사람이거든요. 특히 인터넷을 일 년에 사용하는 총 시간을 합쳐도 다섯 시간이 안 됩니다. 그렇게 제가 인터넷을 싫어해요. 그런데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 있잖아요? 가끔 기도제목이 올라와요. 우리 애기아빠 게임중독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진짜입니다. 심각해요. 자매들은 쇼핑중독, 홈 쇼핑 중에서 쇼 호스트가 그러지 않습니까? 자, 이제 다 떨어져 갑니다. 이제 열 개밖에 안 남았네요.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막 누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 있잖아요? 그 게임 설명서가 530페이지래요. 그런데 그것이 원래는 영어로 되어 있잖아요? 우리말로도 되어 있겠지요. 그런데 초등학교 애들이 그 530페이지짜리를 다 떼어가지고 그렇게 도사같이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초등학교 애들한테 530페이지짜리 깨알같이 쓴 글씨로 된 교과서를 주면서 이 과목만큼은 이만큼 공부해야 된다고 하면 애들이 학교 다니겠어요? 전부 다 데모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걔네들이 왜 그 새카맣게 작은 글씨로 530페이지짜리 되는 책을 조금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 1페이지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면서 떼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다?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여러분, 부산이나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일본어 공부하는 것 아세요? 왜? 일본의 만화를 원전으로 보려고. 한국에 나오는 만화 많은 것들이 일본만화 베낀 것이지 않습니까? 일본만화는 더 재미있데요. 일본만화를 원전으로 보려고 일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무협지를 읽으려고 중국어를 배우는 청년도 내가 보았습니다. 요즘은 좀 별로인데 옛날엔 무협지의 인기가 굉장했거든요. 학생들이 가방에다가 무협지를 넣고 와 가지고 책상 밑에다 놓고 계속 읽고 그랬거든요. 제 친구 하나는 공부 안 하는 앤데 갑자기 노트를 새 것을 사다 놓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애들이 깜짝 놀래가지고 너 뭐하냐고 그랬더니 수업시간에 무협지를 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나온 것은 너무 시시해. 그래서 자기가 무협지를 쓰고, 그 친구가 결국은 대학을 한문교육과를 갔습니다. 너 왜 거기를 가려고 하느냐고 했더니 나는 다 필요 없고 무협지를 원전으로 읽어야 되겠다고 합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물며 우리가 성경을 얼마나 사랑해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교리반을 다 통과하신 분들이시잖아요? 그렇지요? 아, 올해까지는 봐주는 구나. 여러분은 모두 교리반에 내년 봄에 들어오셔야 해요. 그래서 2012년도에는 교리반 비 수료자에게는 제직임명을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보세요? 교리반에 들어와서, “여러분은 왜 태어났지요?” “나는 공부한다. 고로 존재한다.” “뭘 공부합니까?”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대해서 공부하기 위해 태어났는데 인간은 보편존재로서의 인간 일반과 개별존재로서의 인간 내가 있습니다.” “이 세 대상에 대한 지식은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가장 잘 계시되었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 대상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르는 것은 죄입니다. 악입니다. 그래서 보에티우스라고 하는 위대한 신학자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은 일계명의 대한 위반이라고 보았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그 계명에 대한 위반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게 하기 위해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가끔 열린교회에서도 보면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가면 맨 날 공부하라고만 하고 구역예배에 가도 공부만 하는데 그러면 이 교회는 모두 공부 잘하는 사람만 모이나?” 아니지요. 그런 것이 아니지요. 그것하고는 상관이 없지요. 얼마 전에 심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사실은 초등학교밖에 못 나오신 연세 드신 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쭈어 보았습니다.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목사님이 쓰신 도덕적 통치를 읽고 있습니다.” 그러세요. 사실은 제가 그 책을 쓰기 위해서 산 참고도서만 2,300만원어치였습니다. 그런데 온 힘을 다해서 썼거든요. 제가 한 6개월 걸려서 썼습니다. 신학생들도 굉장히 어려워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여섯 번째 읽고 계시데요. 그래서 걱정이 돼서 어렵지 않으셨어요? “아니요.” “다 이해가 되세요?” “너무 이해가 잘 되고 은혜로워요.” 그러면서 그 밑에 깨알 같은 각주까지 읽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다? 그분이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오셨지만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이고, 나의 도덕적 통치는 어렵지만 스타크래프트 사용설명서 같은 것입니다. 이해되지요? 그러면 하나도 안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그 마음이 간절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은혜를 주시면 눈이 열리면서 어려운 것도 쉽게 읽혀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러니까 읽어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종종 그런 이야기를 해요. 우리 목사님 책은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은 ‘게으름’ 같은 것들은 하나도 안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 책들만 좋아해요. 그런데 그러면 안 돼요. 저는 그것도 쓸 수 있고 저것도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읽는 사람은 균형을 맞추어야 해요. 그래서 그렇게 쉬운 책들만 계속 읽으면 신앙이 무게감이 없는 체계가 안 잡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로는 딱딱하고 이런 책들도 읽을 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나가면서 공부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책을 읽는데 이해가 너무 잘 되요. 그런 책은 좋은 책이 아닙니다. 90 퍼센트 정도는 이해가 되고 10퍼센트 정도는 이해가 좀 안 되고 누구한테 물어보고 싶은 그런 책이 좋은 책입니다. 그 10퍼센트가 자기를 계속 긁으면서 진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실은 저는 그런 점에서 여러분이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워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요, 신앙의 체계가 안 세워진 사람이 어쩌다 기도해서 불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된 것과 그런 은혜를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열심히 독서를 하면서 철저하게 교리를 토대로 기독교 사상의 체계가 세워진 사람하고의 차이는 그냥 판자대기 몇 개 역어서 가건물 지어놓은 것하고 정식으로 건축허가를 받아가지고 거푸집으로 콘크리트를 해서 올린 집하고의 차입니다. 굉장히 차이가 나요. 그래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셔야 해요. 그래서 교리반 들어오셔서 빨리 공부를 해서 기본적인 교리를 완성을 하고 그 다음에 여러분이 독서와 책을 읽어가면서 계속 발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 생활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 생활은 단순한 성경읽기가 아니라 성경읽기, 교리공부 그 다음에 성경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그 다음에 신학적인 독서 그 다음에 구역공부를 통한 끊임없는 기독교 교양의 확충,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제 여기서 교육받으면 다음 주서부터는 일주일에 한번은 내가 교회 도서관에 들르리라 이렇게 결심을 해야 되요. 도서관에 가면 여러분의 이름이 컴퓨터에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빌려 달라고 하면 빌려줘요. 그래서 우리 교역자들끼리 무슨 이야기가 나왔느냐 하면 다음에 권사, 안수집사 투표할 때는 도서관 대출 실적도 같이 한 번 보자 그랬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지. 8,000권 정도의 책이 있는데 거기서 선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 열린교회가 지향하는 신앙과 거의 일치를 이루는 책들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맞는가 틀리는가 방황할 필요가 없는 책들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독서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물으면 네 가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 성경 어디를 읽고 있느냐?”, “마음을 녹이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무엇이냐?”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이냐?” “당신이 심혈을 기울여서 섬기고 있는 일이 무엇이냐?” 이 네 가지에 대해서는 아주 또렷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해요. 지금 한번 마음에 손을 얹고 여러분이 거기에 답할 수 있는 답이 몇 가지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성경은 여러분이 지금 어디를 읽고 있지요? 내일 아침이면 어디를 읽지요?” “여러분이 기도할 때마다 마음을 녹이는 간절한 기도제목은 무엇입니다? 그것이 있나요?” 세 번째는 “여러분이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무엇입니다?” 언제든지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에 더듬더듬하면 안 되고, 요새는 기독교 강요를 읽고 있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죄와 은혜의 지배를 읽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제8장 제2항을 읽고 있습니다. 이렇게 답할 수 있어야 해요. 그 다음에 마지막 네 번째는 당신이 지금 마음을 바쳐서 하고 있는 하나님의 섬김이 무엇입니까? “예, 저는 지금 새가족 위원회에서 섬기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예배에 잘 출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에 대해서 또렷하게 대답할 수 있는 초점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책을 읽으셔야 해요. 그리고 그 책을 계속 습득하면서 공부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이루어진 설교들이 아주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리즈이든지 간에 말씀 안내지를 보면서 선택을 해서, DVD, CD도 다 나오잖아요? 차에다 놓고라도 계속 들으면 여러분이 아주 놀라운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여러분이 말씀 생활의 지평들을 넓혀가야 된다. 이것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세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기도생활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한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제자훈련을 하고 성경공부를 해도 둘이 손잡고 훈련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이혼을 하는 경우가 있어도 둘이 손잡고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은 이혼하는 사람이 없데요. 재미있지요? 둘이 손잡고 성경공부 하러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갈라지는 사람이 있어도 매일 새벽 둘이 손잡고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들은 헤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뭐예요? 기도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머릿속에서 그냥 머무는 생각이 에너지가 강해요? 마음속에서 느끼는 것이 에너지가 강해요? 당연하지요. 그러니까 무엇이냐 하면, 이웃집하고 언쟁이 벌어졌습니다. 아, 내가 이런 얘기까지 하면 안 돼. 머리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런데 이 속에서 확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더라도 일단 말을 하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에너지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은 다음에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감정화 되어서, 그것을 은혜의 정서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정서가 되어서 이것이 나 자신에게 아주 은혜로운 정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령한 경험은 은혜로운 체험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이 속에서 역사할 때 이 속에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힘이 나오게 하는 아주 훌륭한 은혜로운 방편이 기도생활입니다. 그래서 보에티우스라는 신학자는 마음을 쏟는 간절한 기도야말로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경외심의 표현이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열린교회에서 말씀을 잘 가르치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기도생활을 열심히 해야 되요. 그래서 새벽기도 나오면 가장 훌륭하고, 그 새벽기도 생활이 어려우면 시간을 정해 놓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기도생활을 할 때에 그때에 말씀에 대한 깨달음도 계속 증진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자, 그럼 세 개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좋은 예배자가 되라. 두 번째, 말씀을 끊임없이 배우자. 세 번째, 마음을 바쳐 기도생활을 하자.
그 다음에 네 번째가 무엇이냐 하면,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호수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라는 호수가 있고, 그리고 내려가면 사해라는 호수가 있습니다. 갈릴리는 길이가 한 70키로 정도 되고 폭이 한 4키로 정도 될까? 그러한 지역마다 다르지만 기다랗게 고구마모양으로 생긴 호수입니다. 호수인데 갈릴리 바다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이스라엘에는 워낙 물이 없으니까 한 단계씩 다 업그레이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권사님들 모시고 교인들하고 같이 성지순례를 갔는데, 요단강을 보러 가시겠습니다. 하고 갔는데 그래서 거기 쭉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한 분이 왜 우리 요단강 안 데려가요? 그러니까 아주머니 그 앞에 있는 것이 요단강입니다 그러는데, 한창 때 같으면 이쪽에서 막 뛰어가지고 건너뛸 수 있는 도랑입니다. 그것을 요단강이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것이 강이니까 그게 바다가 되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래서 그것을 바다라고 해요. 그런데 거기는 언제나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습니다. 위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려오고 아래로 그 물을 다시 남쪽으로 흘려보내요. 그런데 사해는 그것이 끝나는 지점입니다. 놀랍게 이 사해가 들어오는 물과 증발하는 물이 훨씬 더 많아가지고 바다가 계속 짜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거기에 몸을 휙 던지면 그냥 떠요. 그러니까 튜브 없이도 그냥 이렇게 누워서 책을 볼 수 있습니다. 절대 아무리 투신자살을 해도 둥둥 떠요. 거기에는 단 한 마리의 생물도 살지 못해요. 소금의 농도가 몇 퍼센트라고 하던가 하여튼 짜서 견딜 수가 없는데 아무 생물도 거기에 생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고기 넣으면 즉시 죽어버려요.
그러니까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는 것 없이 계속 말씀만 듣고 은혜 생활을 개인적으로 한다고 하잖아요? 오래 못가고 제 경험에 의하면 한껏 오래가면 일 년이더라고요. 그리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설교를 듣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부패하거든요 속에서. 그래서 그렇게 많이 설교를 듣지 못하고 책을 약간 덜 읽을지라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교회의 어느 구석에서 봉사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이 속에서 끊임없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역에서 성도를 섬기는 일을 하든, 주일학교 내려가서 봉사를 하든, 주일학교 교사도 후년부터는 교리반 안 한 사람은 채용을 안 해요. 교사들은 지금 거의 96, 97%이상이 아주 예외적인 몇 사람을 제외해 놓고는 전부 교리반을 졸업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교리반을 공부해야 해요. 그렇게 내려가서 주일학교에 가서 봉사한다든지 아니면 주방에 가서 봉사를 한다든지 각자 자기가 받은 은사가 있잖아요? 이번에도 보면 각 분과에서 전부 다 콜링을 해요. 우리 부서에서는 운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부서에서는 밥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부서에서는 청소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부서에서는 테이프를 세팅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부서에서는 영어를 번역하는 사람을 모집합니다. 우리 부서에서는 설교를 녹취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제가 열린교회가 세워지고 나서 새벽예배 설교 말고 제가 설교한 것이 4000편이래요. 96% 이상이 텍스트로 다 풀려 있습니다. 원고지 30만 매 분량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원고 없이 설교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성도들이 손가락에 디스크가 걸리기까지 그것을 전부 다 타이프를 쳐서 전부 다 원고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방으로 하나 가득입니다. 수많은 섬김이 녹아들면서 그 일들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나는 지금 열린교회에서 이 일을 섬기는 중이고, 이 일을 위해서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고 싶다 그러는 섬기는 일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의지가 없으면 굳이 제직이 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예나 호칭 이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고, 그리고 누가 교회의 제직이라고 해서 그렇게 갑자기 존경하고 명예스럽게 생각하느냐 하면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그래서는 안 되고 반드시 섬기는 것이 있어야 된다. 이것입니다. 어디에 가서든지 반드시 자기가 하고 있는 교회의 섬김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모르겠으면 교역자를 찾아가서 전도사님, 혹은 목사님, 저는 사실은 이러이러한 것을 할 수 있고, 아니면 사실 특별한 재주는 없는데 열심히 하고 싶은데 저를 뭘 좀 맡겨 주십시오. 그래서 맡겨주시면 기쁨으로 그 일을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교회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가는 한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럼 네 가지를 말씀드렸지요. 첫째, 예배자. 두 번째, 말씀을 배우자. 그 다음에 기도생활, 마지막에 봉사생활을 하라.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더 많아요. 그런데 이 네 가지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주님 앞에 아름다운 제직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