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의 마음과 자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 21:15).
영혼을 돌보는 일은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면 무엇을 위한 일을 하며 살겠습니까? 그 사람은 영혼을 위한 일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베드로는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하고 요21:3) 이런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본성이 변화되지 않은 시몬에게 예수님을 사랑하는 고백을 확인하고 ‘내 양을 먹이라’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교사는 전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랑과 지식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 나를 구원해주신 은혜가 하나님 사랑이었음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 하나님 사랑으로 우리를 세워 주시고 불러 주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 주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이 살아있어야 참된 신자입니다. 착한 인격은 하나님 사랑을 전하는 통로입니다. 영혼들이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랑을 경험하면 주님 이외에 아무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I. 교사의 사역 동기
교사의 사역은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교사로서 가장 훌륭한 준비는 일주일동안 주님을 사랑하다 영혼들을 만나러 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랑으로 펑펑 우는 나날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더 많이 역사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착한 인격을 소유하며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능력보다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답입니다. 사랑을 쏟으면 영혼을 향한 눈물이 나옵니다. 영혼을 섬기는 현장은 눈물의 섬김입니다. 맡겨주신 분이 주님이시므로 순종하고 주님을 사랑하므로 감당합니다. 이럴 때 영혼을 품고 죽을 수 있습니다. 목양의 길은 자기 죽음의 길입니다. 영혼에 대한 피 절인 눈물과 영혼을 위해 매일 가슴 아파하는 고통입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돌보는 일이 영혼을 돌보는 일의 최고봉입니다. 교사는 무제한 헌신, 자기 죽음, 자기희생으로 밀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심의 동기가 사랑입니다. 그 부르심에 아멘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교사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거스틴은 “진정한 지혜자(철학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시점은 분명한데 하나님을 버리게 된 시점은 불분명합니다.
사물, 사랑, 물질, 인연들에 대한 생각들이 우리의 내면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즉 하나님 한 분을 바라볼 수 없게 합니다. 주님 앞에 나와 아침마다, 밤마다 마음을 쏟고 있습니까? 영혼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환경이나 여건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마음의 문제입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영혼을 가르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착한 인격의 제일 먼저입니다.
II. 교사가 가르칠 준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지식을 발견할 때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감격했을 때는 사랑을 알고 지혜를 통해서입니다. 지식이 깨달아지면 이 세상과 인간, 하나님께 대한 찬란한 지혜가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육체를 사랑하고 주님이 아닌 나를 사랑한 것이 어리석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서 느껴지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일치하며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행사하는 방법이 능력입니다. 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혼을 돌보는 것이 목양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진리의 말씀을 영혼들에게 잘 전달합니다. 영혼이 필요한 것,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말씀입니다. 설교를 통해 영혼들이 깊이 변화합니다. 설교 시간에 아이들의 놀라운 집중력은 성령께서 붙잡아 주는 영적인 사건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할 때 피를 말리는 것과 같은 고통을 수반하는 철저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영혼을 변화시키는 힘은 없습니다. 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가르치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르칠 내용이 많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는 교사 심령에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훌륭한 책이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 교사는 하나님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참된 교사가 되려면 그 말씀을 붙들고 일주일 동안 분투함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전해야 비로소 영향력 있는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교사, 그는 좋은 예배자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I. 섬김의 동기 사랑
결국은 주님이 우리를 불러주실 때 그 부르심의 동기도 주님의 사랑이었고 그리고 그 부르심에 대해서 아멘 할 수 있었던 동기도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교사는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책 속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베루스 빌로스 부스 에스트 아마뚜르 데이 ) “진정한 제자는, 진정한 철학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지혜는 분리되지 않고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관한 지식과 지혜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모르고 살아갈 때에는 세상에 있는 것들을 많이 사랑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내 눈과 오감에 들어오는 것들은 내 안에 무수한 사진을 찍고 그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영혼에 흔적을 끊임없이 남깁니다. 그 수많은 흔적들은 대부분 거짓된 영상들 입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씻어내어서 깨끗하게 하는 일이 없이는 보이는 이 세상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 하게 됩니다. 아까 부른 찬송 주님과 함께하는 고요한 이 시간에 나의 마음을 쏟네. 이 찬송을 전부 다는 모르는데 너무 좋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붙은 이 세상의 거짓된 형상들을 씻어내는 그 시간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영성을 가진 사람도 아무리 탁월하게 하나님을 깊이 만난 사람이더라도 이렇게 주님의 성령 안에서 자신 안에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는 정화의 작용이 없다면 그 사람의 생각은 세상에 대한 생각으로 엉키고 정서는 세상 사랑과 자신의 대한 사랑으로 뒤범벅이 되고 의지는 이 둘 사이에서 혼란을 일으켜서 하나님을 올바로 찾아가는 신앙생활이 어려워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시점은 매우 분명한데 하나님을 버리게 된 시점은 항상 불분명 합니다. 왜냐하면 수없이 그렇게 찍히는 이 세상의 삶, 인연, 사랑 이런 것들에 대한 사랑과 생각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그래서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한분을 우리가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번 잘 반성해 보십시오. 어디서 미끄러졌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침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여러분들의 마음을 쏟습니까? 저녁마다 주님 앞에 무릎을 끓고 여러분들의 마음을 쏟습니까?
(찬양)마음이 어둡고 괴로울 때 주님 예수님을 나 생각해요 머리 둘 곳 조차 없으시던 혼자 기도하시던 주님 생각해요
그런 시간이 점점 사라지면서 우리의 마음을 육체의 욕망들이 꽉 채운 겁니다. 그러면서 영혼을 가르치나 자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어떠한 가르침도 받을 수 없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지만 자신을 감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랑은 경험하지 못하는 그런 목양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영혼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질문에 직면해야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묻지 않으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처음 갈릴리 바닷가에서 허무하게 고기나 잡으며 살아가던 뱃사람인 그에게 찾아오셔서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던 바로 그때에 불러주시던 그 이름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환경이나 여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그것이 영혼을 가르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주님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 이것이 제일 먼저입니다.
II. 하나인 지식과 사랑을 전하는 교사
오늘 여러분들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은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주님을 믿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그 주님의 사랑 앞에 감격했을 때에는 반드시 거기에는 주님의 사랑을 아는 일이 먼저 있었고 보이지 않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반드시 지혜를 통해서였습니다. 예전에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지도 몰랐습니다. 방황하며 이 세상을 살면서도 내가 하나님의 관심 안에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내 인생에 일어났던 수많은 풍랑과 고통이 사실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이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지혜도 함께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그랬구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 하셨구나. 그리고 나는 하나님 모르고 살 때에도 내 인생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안에 있었구나. 주님을 믿기 전에 일어났던 환란과 풍파, 마음의 극심한 고통과 죽을 것 같은 괴로움들이 사실은 주님이 나를 구원으로 부르시던 애달픈 음성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과 함께 이 세상과 인간 그리고 나를 항한 하나님의 찬란한 지혜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사랑은 가슴속에 물밀 듯이 밀려옵니다. 내가 잠시 육체를 사랑하고 주님이 아닌 나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깨닫습니다.
(찬양)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 중심에 있으니유혹이 흔들어도 무너지질 않네. 주님과 함께 할 때에 두려움 사라지네. 주님이 항상 나를 지켜주시니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사라지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내 마음에 들려지지 않는 것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영혼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다시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둘은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사랑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그 지혜를 가지고 능력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능력은 사랑과 지혜를 행사하시는 방법입니다. 능력 있게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그분의 지혜와 사랑입니다. 바로 그 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지혜와 사랑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 지혜와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세워서 그 영혼들을 돌보게 하시는 이것이 목양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랑과 지혜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가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이 은혜는 사랑의 감화니까 사랑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너희를 사랑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진리의 말씀을 진리의 말씀을 영혼들에게 잘 전해주는 것, 거기에서 시작합니다.
모두 오른손을 높이 들어 보십시오. 질문에 해당 되는 사람만 내리십시오. “지난 주일날 나는 커다란 회심의 역사가 읽어나지는 않았지만 정해진 공과를 성실하게 준비했고 그리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가르치려고 애썼습니다.” 이 질문에 해당되는 사람은 손을 내리십시오. 나머지는 손을 들고 계십시오. 그 다음 질문입니다. “그 정도는 안했지만은 집에서 어느 정도는 공과를 준비했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이 질문에 해당되는 사람은 손을 내리십시오. 됐습니다. 모두 손을 내리십시오. 그 다음에 “지난주에 나는 어떤 이유에서든 공과를 못 가르쳤습니다.” 손들어 보십시오. 아무도 없습니다. 열린 교회가 좀 낫긴 낫습니다.
전도사였을 때 일입니다. 어느 날 교회를 갔는데 교회 앞에 떡볶이 오댕 꼬치 사탕 이런 좌판이 쭉 늘여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거기에 무엇인가 주고 사먹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전도를 하면 달란트를 하나씩 받고 요절외우면 달란트를 하나씩 받고 해서 6개월이면 잔치를 해서 사먹는다고 합니다. 저는 그때 심각하게 예기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영혼을 전도 했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받아야지 떡볶이와 바꿔 먹으면 어떡합니까?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전도할 때 떡볶이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어린영혼들에게 필요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교역자들에게도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은 비교육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시설과 잘 훈련된 선생님과 잘 짜여진 프로그램과 학습기제 이런 것들은 필요 하지만 먹을 것이나 공책 이런 것들을 나눠준다고 해서 아이들은 절대 회심하지 않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아이들이 나와서 주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봉사해야 합니다. 저는 어제 저희 집 사람의 말을 듣고 깊이 감동했습니다. 명성교회의 주일학교 어린 아이들이 특별 새벽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40일을 하는데 한번도 안 빠지는 아이들이 8000에서 10000명이고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이 4000명해서 12000-14000이 새벽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어린이 특별새벽기도를 한다고 하면 모일까?” 열정이 없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이유가 먼저 떠오르고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먼저 눈에 뜁니다. 우리교회는 멀리 흩어져 있습니다. 부모를 따라 나옵니다. 동네는 전도가 잘 안되는 동네입니다. 길을 건너오게 돼 있어서 부모들이 교회를 안 보내려고 합니다. 이쪽은 공장지대라서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것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쪽(명성)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른들이 새벽기도를 모이면 50000명이 모이고 아이들은 12000-14000명이 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영혼이 필요로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에 와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전도사님과 목사님의 그 짧은 설교를 통해서 아이들이 깊이 변화되는 것 입니다.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은 많이 기도하고 뼈를 깎는 혼신의 힘으로 설교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제가 중고등부 사역을 할 때 설교원고를 작성하는 시간만 24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주 잘 준비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피를 말려야 합니다. 놀라운 집중력 이것은 훈련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붙잡아주는 영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해서 전하니까 아이들이 깊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90분간 설교를 하는데 16 -17곱되는 아이들이 미동조차 하지 않고 설교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 가슴을 치는 회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살아나는 것이 공과 시간 이였습니다. 이 공간보다(교육관) 조금 더 큰 공간에 선생님까지 100명이 예배를 드리고 그 안에서 공과를 했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심령이 은혜에 젖지 않으니까 소리를 지르는 것이지 말씀이 들어가서 가슴에 꽂히면 소리 지르지 않습니다. 신학도 공부하지 않은 평범한 여선생님이 아이들 7-8명 정도 가르칩니다. 가르치는 선생님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면 아이들도 손수건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그 어린 영혼들이 빨갛게 충혈 된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날은 담임선생님이 결석한 날이나 공과하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바뀌고 나니까 담임선생님이 연락도 없이 결석 했습니다. 그중 어떤 선생님은 전날 과음을 해서 무단결석을 해도 그렇게 나대고 거칠던 아이들이 누가 인도하는 사람도 없이 자리도 뜨지 않고 가슴에 두 손을 포개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도를 합니다. 무슨 기도를 하고 있나 들어보니까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세요. 우리 반을 사랑해주세요. 그 다음 기도가 더 재미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선생님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주님을 만나고 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이렇게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 없습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먹고 마시면 순간은 변화된 것 같지만 그것은 정서의 변화일 뿐이지 영혼의 변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영혼이 돌아서서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칼 이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가르치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르칠 내용이 많이 있어도 지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에는 자기 가슴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합니다. 아이들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유창한 공과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다가 울먹이는 선생님의 표정을 보면서 더 많이 하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손으로 전해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주일날 마음이 따뜻해서 무언가 내안에서 그 말씀이 움직여야합니다. 그리고 가서 영혼들에게 가르쳐 보십시오. 입술에 기름을 바른 것처럼 말씀이 막 흘러나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가장 훌륭한 말씀이 성경입니다. 세상의 이야기 이 세상의 지식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것이 인간의 마음을 통해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 이것이 영혼들에게 스며들어갈 때 거기에서 사랑의 하나님이 경험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합니
III. 말씀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A. 예배시간의 반성
첫째는 예배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있는지 반성해 보십시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은 교사,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을 만나고 거기에서 십자가의 감격,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대한 사랑의 감동, 죄인들을 살리시는 그 하나님의 구속에 은혜에 대한 눈물이 있는 사람, 건조한 마음으로 나와서 영혼들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주 넓은 밭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호미를 가지고 일을 합니다. 이 사람은 바로 그냥 가르쳐야하니까 지식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말해주지 않을 수 없는 깨달음이 있는 사람 이 사람은 쟁기를 가지고 밭을 가는 사람입니다. 영혼을 위한 이 섬김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단단해 보이기만 하던 땅에 쟁기를 푹 꽂고 황소의 등을 한번 치면 물결치듯 땅이 읽어나면서 폐입니다. 그렇게 해 놓고 씨를 뿌리는 농사와 호미를 가지고 하부적 대며 씨를 뿌리는 농사를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모든 아름다운 교육은 교사의 심령에서 나옵니다.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모두 눈을 감아보십시오. “저는 요즘 예배를 통해 많은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번 손들어보십시오. 내리십시오. 눈뜨십시오. 1/3정도 정도밖에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손을 든 것이 교회학교를 살리는 놀라운 비결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배자들을 만드는 것 입니다. 근데 그 사람들을 만드는 사람들이 경배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이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되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다는 인식이 아주 분명합니다. 이렇게 은혜 받은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는 만족이 없습니다.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이 교회에 와서 원래 예배 시간이 은혜가 안 됐습니다. 이런 분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아무도 없습니다. 한 때는 여러분 주님을 다 만났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주님을 만나고 심령이 뜨거워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잘 못됐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교회의 교육이 시작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합니다. 교사의 심령은 솟아나는 샘물이어야 합니다. 물길을 잘 만들어나도 물이 흘러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하천입니다. 예배에 있어서 말씀의 감격을 회복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내가 아무에게도 안 가르쳐 줬는데 여러분들에게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는 길을 구체적으로 가르쳐드리겠습니다.
B.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는 길
1. 기대함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예배에 대해 기대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보다도 중요합니다. 기대하지 않는데 무슨 기도를 하겠습니까? 나는 이번 주일에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나야한다. 그리고 만날 것을 나는 기대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구에 구역이 220개 정도 되지만 그 구역을 움직여가는 강력한 힘은 구역장들이 예배시간에 은혜를 받는 것 입니다. 안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구역이 서서히 죽어가는 겁니다. 구역장은 은혜를 받지 못했는데 방금 들어온 따끈따끈한 새 가족들은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아서 이것들을 쏟아낼 때 구역장이 이것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합니다. 맞장구치면 위선이고 아니라고 누르면 성령을 방해하는 것이 됩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기대를 가지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 달 곤고한 영혼으로 살았지만 내일 예배 중 하나님을 만나면 나는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2. 간절한 기도.
두 번째는 마음을 실어서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입니다. 근데 문제는 마음이 미끄러져서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것 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도 간절히 기도해야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삶 전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직장생활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기도하지 않고 경건 서적도 읽지 않고 이러면서 일주일을 보내고 주일날 기적이 읽어나기 바란다면 진정한 갈망일 수 없습니다.
3. 준비하는 예배시간
세 번째는 예배시간에 일찍 나오는 것입니다. 숨이 턱에 닿도록 헐떡거리며 11시 5분에 와서 은혜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앞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결입니다. 그리고 설교시간 내내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겁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많지도 않습니다. 나머지는 그것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기대하고 기도하고 일찍 나오고 그래서 마음속에 갈망을 가지고 예배 속에 참여하면 은혜가 임합니다. 정말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말씀의 은혜를 강력하게 받아야 합니다.
C. 의미를 새기며 성경읽기
두 번째는 성경을 매일 매일 읽어야합니다. 읽는다는 것은 가슴에 다가오도록 읽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읽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루에 단 한 장을 읽더라도 천천히 천천히 읽으면서 그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감동이 와야 합니다. 이번에는 손들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근데 아마 제 짐작으로는 여러분 중에 매일 매일 성경을 읽는 사람은 1/3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자꾸 말씀의 은혜로부터 물러가는 겁니다. 결국은 마귀가 그런 식으로 무장해제를 시키는 겁니다. 그러니 무엇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매일 읽어야 합니다. 그 속에는 묵상하는 것도 포함 됩니다. 천천히 천천히 읽으십시오.
D. 체계적인 교리 공부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반도 배우고 이번 봄서부터 생겨나는 성경개관학교도 들어가서 배우고 또 도서관에 가면 시리즈들이 있으니까 한 시리즈 택해서 천천히 들으면서 교리들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워나가야 합니다.
E. 말씀에 순종함
네 번째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해야합니다. 그때 그 말씀 의미가 자신에게 깊이 다가오는 것 입니다. 그때에 그 말씀에 대해서 간증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영혼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 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성령께서 영혼들을 쓰시는 도구일 뿐 입니다. 우리는 티끌하나 만한 사랑도 그 아이들 마음에 우리 스스로 불러일으킬 수 없습니다. 가능한 것은 오직 주님의 충실한 도구가 될 때,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놀랍게 하나님께서 역사 해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걱정하기 전에 여러분들의 영혼을 먼저 걱정 하십시오. 그래서 이번 주일부터 좋은 예배자가 되십시오. 저는 1부, 2부, 3부 예배를 드릴 때 가장 마음이 많이 실리는 예배가 1부 입니다. 왜냐하면 2부는 익숙해졌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덜하지만 1부는 그날 예배의 첫 뚜껑을 여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시간의 길이는 2부보다 좀 짧지만 그렇게 마음을 녹이는 말씀들을 하나님께서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공기라든지 모든 조건이 1부가 훨씬 더 좋습니다. 15분전에 참석해서 간절히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쇄락한 정신과 마음으로 은혜의 말씀을 받으려고 그렇게 사모해 보십시오. 그리고 매일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이 심령 속에서 놀라운 따사로움이 되살아 날 겁니다. 아마 교사 리바이벌만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읽어도 여러분들의 마음이 다시 뜨거워질 겁니다. 주님의 사랑을 안 사람들 아닙니까? 어떠하던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혼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서 그 영혼들에게 봄날이 오게 되도록 여러분들이 그렇게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