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인도하는 자의 영광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다니엘 12장의 이 내용은 미래에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예언적인 사건입니다. 마지막때가 다가오면 큰 환란이 있을 것이고 사랑이 급격히 식어질 것인데 이 모든 것들은 한가지 사실에 기초하고 있는데 그것은 진리가 혼잡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 자체는 섞이거나 혼잡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것을 이용하고 사용하고 그것을 전해주는 사람들 속에 혼잡스러운 사상들이 섞이게 되고 또 육체의 욕심대로 살아가게 됨으로써 진리를 거스르게 되고 그래서 진리가 거치는 것이 되고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 진리를 심하게 왜곡하거나 멀리하는 일들이 미래에 있게 될 선교적인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마지막때가 될수록 분명하게 나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확실히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아주 분명하게 나뉘게 된다는 것입니다. 큰 환란이 있고 배교의 때가 되는데도 그 많은 사람들이 땅의 티끌 같다는 것은 뭐냐면 헤아릴 수 없이 수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그때에 그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서 영생을 얻는자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구원이 아니라 오늘 아침에 말씀드린것처럼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교제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사는 그러한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당하여 영원히 수치스럽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 까지는 이 세상에서 영광스러웠던 사람들이 마지막 심판날에 부끄러운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화) 학교 다닐때 있었던 일인데 학생들 몇 명하고 정신이 팔려서 공놀이를 하다가 그만 수업 종소리 치는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 정신 없이 농구를 했는데 호출이 온 것입니다. 수업시간 되었는데 왜 안들어 오냐고... 그래서 몇 명하고 갔습니다. 많이 혼났습니다. 그런데 농구 경기 할때는 서로 공을 가지겠다고 하더니 이제 들어갈 때가 되니까 서로 공을 안 가지고 들어가려고 합니다. 주인도 안 가지고 들어 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상황이 달라 지니까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은 때에는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것이 그때에는 매우 수치스러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볼 수 있는 사실은 뭐냐면 마지막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믿음이 식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은 마지막때가 다가오면 올수록 더 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교적으로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비관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녁때가 되면 산책을 하러 지금정도 시간에 나가면 하늘에 별이 거의 없습니다. 빛을 잃은 달 하나 희미하게 보이고 그리고 제일 먼저 보이는 샛별이 하나 나타납니다. 그리고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잠깐 잠깐 산책을 하면서 아주 신속하게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캄캄한 밤이 되면 하늘의 별들이 수 없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앙생활이 똑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참 놀라운 것이 뭐냐면 사람들이 마지막 시대가 되면 다 진리를 싫어 하는 것 같아도 오류가 가득찬 시대일수록 진리에 대한 아주 깊은 그리움들이 인간속에 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신기한 것이 아이들이 집에서 말을 잘 안 듣습니다. 학교에서도 규율이 옛날하고 틀립니다. 선생님이 이리 오너라 부르면 껌뻑 죽었습니다. 지금은 안 그렇습니다. 이것 좀 해라 하면 "싫은데요" 심지어는 여기 손들고 서 있어 하면 "못하겠는데요!" 왜 못하냐 하면 "이 같은 것 때문에 집에서 엄마에게 많이 혼났는데 내가 왜 이중으로 벌을 받아야 해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또 일부이기는 하지만 아주 좋아 하는 것이 겨울방학에 여자 아이들 남자 아이들 어울려서 특전사 훈련 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어라 고생을 하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사람을 자유스럽게 풀어 놓아 주면 그 속에서 아주 엄격한 규율있는 생활 하는 것이 그리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류가 가득한 곳에 사람들이 많이 사는것이 처음에는 자기가 스스로 좋아서 진리고 뭐고 팽게치고 돌아 다니다가 나중에는 탕자와 같이 기진해 지고 나면 그 진리 이것만이 길이다 라고 하는 마음이 끌리지 니가 가는것도 길이고 저것도 길인데 아무거나 네가 택하면 그것이 길이다 이럴때 마음에 사람들이 안정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시대에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것처럼 있는 사람에게는 없는 사람의 것에게서 빼어서 있는 사람에게 주신다고 하는 달란트의 비유에서 처럼 이런시대일수록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더욱 믿음으로 살고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예고하고 있는 마지막때의 모습이 오늘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오늘도 우리 청년 예배 드리고 기도 하고 했는데 청년들도 보면 그렇게 제멋대로 살고 싶어 하고 그래도 믿음이 들어간 청년은 틀립니다. 오늘 뉴스에 어떤 여자 아이 하나 나와서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이 예수 믿는 청소년을 살아가겠다고 기도해 달라고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성도로서 살아 가도록 기도해 달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중학교 3학년 학생인데 벌써 예수 믿는 사람들은 틀립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세상이 그렇게 자유스럽게 방종한것처럼 나가도 그럴수록 이 진리의 힘은 놀랍게 틀린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도 어느 집사님 한분이 미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어떻게 믿게 되었냐고 하니까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 주었다 하는데 사실은 복음을 전해 주었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혹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깔린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굳이 말을 안해도 학교 안에서 틀립니다. 생활자체가 틀립니다. 그것이 보입니다. 제가 예수를 다시 믿어야 되겠다고 한것도 제 주위에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몇사람이 있었는데 나보다 훨씬 교육도 못 받은 아줌마입니다. 맨날 가내수공업이나 하면서 살아가고 대화 하면 지성이나 그런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책을 많이 읽었는데 같이 대화 할 기회도 없지만 옆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사실은 인생이나 모든 것들에 대하여 자기들이 예수 믿지만 교만하게 생각하면 우습습니다. 그런데 부인할 수 없는 것이 뭐냐면 그들에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새벽기도 걸아 나가면서 평안, 어려운 일이 많이 닥치는데도 뭐가 그렇게 기쁜지 노래하면서 살아 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그런 평화가 무엇인지 나는 책을 많이 읽어도 가끔 마음이 뿌듯해지는 적이 있지만 그렇게 항구적인 평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예수 믿는 사람은 마지막때가 될수록 오히려 더 좋은 선교의 기회를 얻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신문에도 안 났을 내용들이 신문에 많이 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택시기사가 승객이 이천만원을 두고 내렸는데 찾아 주었더라 그것이 옛날 같으면 뉴스꺼리 입니까? 주인 돌려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도 안 돌려 주는 세상이니까... 세월이 많이 흐르면 그럴 것입니다. 30년 동안 한 남편하고 살았다더라 하는 것이 뉴스에 나오는 때가 올 것입니다. 또 더 세월이 흐르면 누구 집에는 아들이 장가 가는데 집을 얻어 주었다더라 세월이 하도 흉흉해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재판을 하고 형제와 형제 사이에도 고소를 하고 하는 그런 세월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마지막 시대가 될수록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자체가 선교의 기회일 수 있는 것처럼 문제는 뭐냐면 두려워할 것은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속에 섞여서 떠밀려 나아가며 신앙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이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다른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영생을 얻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성경 특히 구약에서 이야기 하는 지혜는 공부 많이 한 것을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몇가지 구속요소가 있는데 우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니까 경외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님 앞에 부복하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끌리는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그런 하나님이 중심점이 되어서 그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따라서 모든 사물과 인간과 자기 자신 조차도 자리매김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질서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은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 질서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도입한 질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에게는 삶에 있어서 아주 분명한 질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서가 강요된 질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 질서 안에서 머물기를 좋아하는 그런 질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모든 아름다움들이 형성 되는데 그 질서가 무엇인지를 알아 볼 수 있는 해안, 판단력 이것이 바로 구약성경이 이야기 하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이 지혜의 구성요소는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 번째는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빛 아래서 사물의 존재 가치와 사랑해야 할 규모를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목적이고 수단인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그 질서를 따라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판단력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지막때에 큰 환란이 일어나고 아주 세상이 바쁘게 움직이고 아주 혼돈 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절대 그것에 이끌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판단을 올곧게 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서 신앙의 중심을 상실하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런 복잡한 세상 속에서 섞여 살아가면서도 그 판단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궁창이 무엇인가 하면 히브리말로 락히야라고 하는데 락카라는 동사는 두들기다 입니다. 그래서 락히야가 피동명사 되어서 두들겨서 활짝 핀 것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쇠 같은 것을 두들겨서 판자 같이 펼쳐서 만든 것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세 하늘의 개념이 있는데 첫 번째 하늘은 영적인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와 천사들이 있는 세계이고 두 번째 하늘이 말하자면 마귀들이 차지하고 있는 하늘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도달하려면 그것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교부들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쌔게 화살을 쏘아야지만 둘째 하늘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우리나라에서 나로도 인가 우주 발사 기지를 만들고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자기가 생산한 인공위성을 자기 힘으로 발사 하겠다고 시도를 하는데 확률이 27%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한번에 발사 성공한 나라가 세나라 밖에 없고 일본은 다섯 번째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어쨎든 우리도 성공하기를 바라는데 재미있는 것이 어마어마한 로켓이 액체 연료를 태우면서 추진력으로 밀어 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대기까지 올라 갑니다. 250초 정도 올라가면 굉장한 높이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중력권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끄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더라도 궤도로 진입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궤도에 진압할 때 두 번째에 첫 번째 로켓이 분리 되면서 두 번째 로켓에 불이 붙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킥이라고 하는데 두 번째에 불이 붙으면서 강력한 추진력을 뿜어 내어서 다시 한번 로켓이 올라가다 멈추었을때 아랫것이 떨어지면서 두 번째에 불이 붙으면서 차고 올라 가면서 궤도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쌔게 차고 올라가서 두 번째 하늘을 뚫어야지만 주님께 도달한다 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 하늘은 파란 하늘입니다. 그래서 새들이 날아 다니는 하늘입니다. 여기서 볼때 파랗지 우주에서는 하늘이 파랗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볼때 파란 것입니다. 그 파란 하늘이 무언가를 두들겨서 편것 같은 느낌을 주는 둥그런 세계이었기 때문에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락히야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스카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별들이 이 사람들의 생각에는 파란 판자 같은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옛날 고대인들의 생각에는... 그러다 밤이 되어서 불이 꺼지고 나면 그 별들이 천장에 매달려서 빛난다고 본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이 빛은 뒤에 나오는 별과 같이 라는 말과 병행을 이루는 것입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밤 하늘을 염두해 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찬란하게 빛나는 별빛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많은 사람들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그렇게 지혜있는 사람이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많은 사람들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질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행하면서 살아야 될지에 대한 지식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와 교회의 이 모든 관계에 대한 비밀들을 사람들에게 잘 알아 들을 수 있도록 가르쳐 줌으로서 그들이 그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 오게 되는 사람 그래서 자기와 같은 지혜를 가지고 그 거룩한 지식 속에서 살게 해 준 사람들은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영광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지만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이 육천개 정도입니다. 그 육천개 정도의 별들 중에서 밤하늘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의 몇십분의 일 밖에 안되는것 같습니다. 그런 별들 중에서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별은 밝게 빛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밤하늘의 별들의 영광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인데 밤하늘의 별들 중 인간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보이지 않는 별이 아니라 찬란하게 밝게 빛나는 별입니다. 그것이 별의 영광입니다. 그러면 영혼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복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인정해 주셔서 그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많은 사람을 진리 가운데 돌아오게 하는 사람의 영광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전도하는 기간을 정하고 날짜를 정하는 것도 훌륭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살면서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본질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입니다. 이 때는 어두움의 때요 환란이 있고 사랑이 없는 때인데 이런 속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는 때가 된다고 주님이 이미 우리에게 선포하셨는데 바로 지금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만나는 이웃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까 생각을 하면서 그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기가 이미 누리고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 그리고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 이것들을 전달해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참다운 신앙의 길에 돌아오게 될 때 그 사람은 하나님께 더 많이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광입니다. 우리의 영광은 주께로 더 가까이 있는것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는 영광들, 꽃으로 꾸며쓴 임금의 면류관 조차도 빛을 잃는데 이 세상에서의 영광은 그 영광의 본체이신 하나님의 찬란한 빛 앞에서는 자랑할 수 없는 종류의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인정받고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소중하게 여김을 받는 그 영광은 그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발견하는 그 아름다운 영광과 연속상에 있는 영광입니다. 이세상이 뺏을 수 없는 영광입니다. 이 세상이 준 영광은 세상이 뺏을 수 있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영광스러웠던 사람들은 그 권력을 상실할 때 함께 사라집니다. 돈으로 영광을 얻었던 사람들은 가난해 질때 아무도 그 영광을 인정해 주지 않고 영광스러웠던것 만큼 반대로 더 수치스러워 집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미모가 뛰어났던 사람들은 죽음의 기운이 흘러 들어와서 서서히 늙어갈 때 그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더 흉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옳은자의 이 영광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뺏을 수 없는 것처럼 그 영광을 본인이 포기하고 버리지 않는한 뺏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그 영광 안에서 살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마지막 때 이렇게 환란이 많고 사랑을 잃어 버리고 상대주의가 유행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는 이때에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게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 불변하는 이 진리 이 질서를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이것을 좋아하고 이것을 전하는 사람들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사용하셔서 당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 자신을 지극히 높이시는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함으로서 여러분들이 별과 같이 영원토록 주 앞에 귀하게 여김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