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
“왕이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의 아들 압돈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 하니라”(대하 34:20-21)
지난주에는 이제 그 율법 책을 발견했을 그 때에 일어났던 놀라운 변화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 요시야임금이 이제 그 율법 책을 발견하고 자기 옷을 찢은 그 사건에 대해서 이제 지난주에 상세하게 말씀을 올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21절과 22절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이렇게 깊이 깨닫고 감화를 받은 임금은 어떤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21절에 나와 있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21절이 나오기 전에 20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의 아들 압돈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왕은 즉시 그 말씀의 의미를 깊이 도전을 받게 되자 왕은 당시의 종교계와 정치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던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 하니라”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통해서 오늘 하나님의 율법 책을 발견하고 그것을 낭독해줄 때에 깨달았던 이 사람의 놀라운 각성이 (요시야임금의 놀라운 각성이) 어떤 구체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살펴봄으로써 교훈을 받고자하는 것입니다.
우선 오늘 이 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가서’ 그렇게 말하면서 그 다음에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 책을 발견하고 그것을 낭독하는 그 율법의 낭독을 다 들으면서 커다란 각성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무엇 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의 방법에 대해서 율법의 말씀을 통해서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남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구약 전편에 흐르고 있는 위대한 사상을 이 왕이 발견한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고 하는 것은 요시야임금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당시에 이미 벌써 망한 나라입니다. 유다는 아직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역사를 움직이실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다수의 백성들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들을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수를 통해서 당신의 나라와 역사를 움직여 가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이 왕은 율법을 낭독하는 그 율법의 내용을 들으면서 그는 새롭게 깨닫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가 썩었느니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위선자가 너무 많다느니 등 많은 말을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너무 세상의 풍조를 쫒아가기 때문에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얘기는 아무리 해봐야 입만 아픈 이야기입니다.
구약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어느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정말 온전히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을 기뻐하던 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마치 고무줄과 같아서 잠시 잡아당길 때에는 늘어나다가도 놓아주면 다시 오그라드는 고무줄과 같아서 잠시 선지자가 나타나고 위대한 영적인 지도자가 나타나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의 위급함을 알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의 당위성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 커다란 감화를 받으면 잠시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았습니다. 그러나 곧 그들은 물러가서 침윤에 빠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택해 놓으셨지만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 자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은 역사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역사와 같이 생각될 정도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곧 신앙의 역사라기보다는 불신앙의 역사라고 불러도 좋을 만치 그렇게 쉽게 하나님을 떠나가는 그러한 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보여주고 있는 역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것은 이렇게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 역사 속에 하나님과 교통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수의 사람들을 남겨두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가르쳐서 그루터기라고도 합니다. 대부분 남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셔도,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심판을 하시고 그리고 끔찍한 징계의 심판을 하셔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모든 사람의 생명을 걷어 가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큰 심판 속에서도 소수의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들은 그 심판과 시련을 통해서 그 믿음이 더욱 불로 연단한 금과 같이 정결하게 되고 거룩하게 정화되도록 하나님께서는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깨어있는 자로 살려두셔서 그 사람들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서에서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아무리 시대가 타락하고 아무리 시대가 악하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잊어버린 것과 같은 그런 시대가 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고, 그 어두운 시대에서도 하나님을 좇고,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고,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소수의 깨어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남겨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결론을 얘기하면 그 소수가 아닌 사람은 역사의 거품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불꽃처럼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소수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주인공과 엑스트라의 차이점에 대해서 글을 썼습니다. 주인공은 폭탄이 터져도 살지만 엑스트라는 총소리만 나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주인공은 피해 가는데 엑스트라는 소리만 나도 죽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리가 져서 전쟁 같은데 폭탄을 맞고 죽거나, 아니면 시장에를 주인공이 지나가는데 배경의 수많은 사람들이 얼굴도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게 스쳐지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바로 하나님의 소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물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 태어난 보람과 의미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절망적인 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이 소수, 남아있는사람, 세상의 풍조가 쓸고 가도 쓸려가지 않은 사람, 죄악의 물결이 넘실대도 그 물결에 쓸려 지나가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 세상이 유혹해도 그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 사단이 공격하고 사단이 공격을 퍼부어서 그 빗발치는 영적인 공격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 살아남은 사람, 하나님은 이런 소수의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을지 모르지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아니에요. 남은 자들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백성들은 역사 속에서 핵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커다란 각성을 경험한 이 왕은 유다의 남은 자를 위하여 이 율법에 대해서 여호와께 물으라고 사람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그의 관심은 이제 수많은 백성들의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이 망하고 유다로 귀화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유다 안에 있는 수많은 백성들, 그리고 점점 늘어가는 용병 즉 군사들의 숫자들, 병사의 숫자들, 그리고 전쟁에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수많은 남자의 숫자들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관심은 유다의 남은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 무리 안에 들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다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깨어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가 움직였습니다. 변화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냥 그 세상 속에 태어나서 그 세상에서 먹고 마시다가 들풀과 같이 사라져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지만 그러나 확신도 없고, 주님을 위해서 불타는 심령도 없고,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바쳐본 적도 없고, 그냥 그렇게 살았습니다. 가슴이 부딪히는 것처럼 언젠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리고 강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들려올 때에는 깨어나는 것처럼 기지개를 켜다가 잠시 신앙의 도전들이 사라지면 또다시 마치 잠 그 자체가 인생의 행복인 것처럼 깊은 잠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다수의 사람들의 삶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 말고 하나님 앞에 깨어있는 소수, 역사를 통할하시고 시대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알고 하나님이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이끄시는 거룩한 방법을 아는 사람들-남아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뜻들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남아있는 자가 한 시대에 거의 없다. 하나도 없다. 그렇게 생각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거기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사건은 바로 그런 것들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수많은 죄인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남아있는 사람 그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쓸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요시야임금은 율법 책을 읽으면서 그는 이렇게 하나님이 바로 역사를 움직이시는 그 방법이 바로 이 남은 자들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고 그는 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아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남은자라고 지칭되는 이 백성들의 마음속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말씀으로 말미암는 강력한 심령의 부흥이 일어나기를 사모하였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성경을 통해서 역사를 움직이시는 그런 하나님의 방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땅에 있는 번성하는 수많은 나라와 역사를 주목하시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고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찾는 (하나님 자신이 남아있는 자라고 인정해줄 수 있는 사람들)사람들을 주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이 사람들을 주목하시냐면 하나님을 믿는 참다운 신앙의 도리가 무엇이고, 무엇이 진정한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가하는 것을 주님이 가르쳐주신 그 계시가 이 남아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보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쭉 전해져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흥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강한 은혜의 역사가 있을 때에는 어디에 가서도 하나님의 말씀다운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 가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고 사랑하는 성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디에 가도 참다운 신자가 되기를 원하고 거짓과 위선과 유혹을 혐오하는 죄악을 미워하는 그런 경건한 백성들을 만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들어 있는 시대에는 이제 어디를 가도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진정한 맛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백성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전체적으로 흘러가는 대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는 종교가 아니라 다른 종교의 모습을 띄면서 커다란 대세를 흐르며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믿음을 지키면서 사는 일은 쉽겠습니까? 어렵겠습니까? 훨씬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경건한 신앙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커다란 방해와 말하자면 도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섭리는 또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신앙으로 충만한 시대일수록 그 남은 자들에게는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더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캄캄하고 어두운 시대일수록 소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아주 강력하고 특이한 은혜를 하나님이 물 붓듯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남은 자들을 통해서 당신을 진정으로 공경하고 믿는 참된 신앙을 보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해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시대가 어둡고 세상이 타락하고 교회가 죄로 말미암아서 어두워졌다고 해서 우리들이 실망하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 그것은 결국 자기가 만약에 남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이렇게 어둡고 참다운 신앙을 지키면서 살기가 어려운 이 현실은 장차 내가 큰 은혜 받을 표가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악함과 교회의 연약함을 보면서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남은자의 편에 서서 하나님 앞에 더 큰 능력과 그리고 이 시대를 이기면서 살아가야할 거룩한 소명감에 불타는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닷가에 가보신적이 있으십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친구가 여름수련회에 가서 죽었습니다. 헤엄을 치고 가다가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하는 동안에는 정말 바닷가나 강가로는 수련회를 안보내리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 때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보고 비석에다가 새길 비문을 써가지고 오래입니다. 그래서 이제 바닷가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명상에 잠기는데……. 그 신기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포말입니다. 물거품. 그러니까 파도가 큰 파도가 밀려와서 시커먼 이끼가 낀 바위를 꽝하고 때리면 그 흩어지는 그 물거품이 굉장합니다. 하얗게 흩어집니다. 그런데 다음 파도가 밀려오기 전에 모두 사라집니다. 남은 자가 아닌 자들로 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은 마치 물위에 잠시 떴다 사라지는 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한번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인생인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렇게 살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제껏 까지 인생을 살아왔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잘 믿든지 못 믿든지 우리의 인생이 걸어온 모든 길을 돌아볼 때에 그래도 내가 하나 붙잡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이것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세계에서는 낙오되었을 수도 있고 혹은 능력이 모자라서 쳐졌을 수도 있고 혹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은혜에서만큼은 끊임없이 침노하고 끊임없이 침노하여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쟁취하고 그 나라를 소유하고 그 나라 안에서 이 하나님의 남은 자가 되어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바 은혜대로 이 세상을 바꾸고 그리고 교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그런 도구들로 하나님 앞에 살아가도록 우리들이 힘쓰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은 신앙에 있어서 성공하지 않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 아니에요. 오늘 요시야임금은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가서 온 백성을 모으고 부흥회를 열어라” 라고 말하지 않고 남은 자들-끝까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경건하게 살고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를 이해하면서 이 민족의 역사를 이어가기를 소원하는 신앙의 남은 자들-그들을 위하여 너희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고 간청하였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을 통해서 요시야로 하여금 역사를 보는 새로운 눈을 열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말 귀하게 쓰임을 받아서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충족한 도구들이 되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고 있으며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고 살면 자신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의 새벽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실 것이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이 역사를 움직이시고 하나님께서 이 민족과 나라와 교회의 역사를 움직이시고 하나님께서 펼치시고자 하시는 위대하고 놀라운 계획들이 하나님의 수중에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이 계획을 성취하는 이 일에 자신을 바치고 쓰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출현을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두 번째로 이 요시야임금은 ‘유다의 남은 백성들을 위하여’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무엇이 진정으로 자기의 백성들을 위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백성들을 위한 가장 훌륭한 일이 무엇일까?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을 위한 가장 훌륭한 일은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 자기가 깨닫게 된 하나님의 이 율법의 말씀에 보다 깊은 뜻과 거룩한 의미들을 드러내어서 유다의 남은 자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격려 받고 깨닫게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와 그리고 하나님을 먼저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이 이 나라와 그리고 이 열방을 위해서 섬길 수 있는 최고의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하나님 앞에 깨어있고 그리고 남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를 힘입어서 점점 타락하고 어두워져 가는 세상 속에서도 거룩한 진리 편에 선자들로 남아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일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남은 자들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세상의 늘어가는 재화나 그리고 세상에서 높아져가는 자신의 이름을 통해서 그들이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거룩한 목표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거룩한 사명을 감당해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자신들을 위한 일은 무엇이냐면 오늘 요시야임금이 통찰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보다 깊은 말씀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말씀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그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오늘 우리시대를 거울로 비쳐주시고 그리고 우리가 그 말씀 앞에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과 열방에 나아가야 할 바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교회가 구해야 할 최고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을 최고의 축복으로 삼으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한 당신의 모든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죄 가운데서 살리시고 어두움 가운데서 광명한 곳으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구원받은 백성들을 통해서 남은 자들을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그들도 느끼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어두운 눈을 떠서 하나님의 계획을 보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우리만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런 놀라운 부흥을 주셔서 주일이면 모든 상가가 명절처럼 철시하고 교회가 그렇게 놀랍게 부흥하고 복음의 능력이 온 땅에 가득하던 이북 땅을 악한 자들의 손에 넘겨주었을까? 그리고 갈라진 그 나라에서 왜 하나님께서는 복음으로 말미암은 놀라운 교회의 부흥을 이 남쪽에 주셨을까요? 그리고 통일을 눈앞에 둔 지금에 왜 교회는 이렇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앞으로 통일이 온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교회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의 계획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시기를 원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의도가 숨어있는데 그러면 만약에 우리에게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것들을 묻는 일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남아있는 사람-그렇게 묻고 질문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가 이 민족과 그리고 교회를 움직이고 이 역사를 움직이고 선교의 위대한 역사를 움직여나가는 일에 있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가? 이것을 깨닫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일들을 원하시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하나님 앞에 깨어있는 소수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잠자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하나님 앞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놀라운 부흥입니다. 그것 이외에는 교회에도 소망이 없고 세상도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다스리심을 싫어하는 이 세상의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문화와 그리고 타락의 물결들은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것보다도 더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진동하지 아니하면 세상은 결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앞에 굴복하고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임금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받았던 깊은 도전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 앞에 그 신앙을 지키고 자신들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성취하시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하는 진정한 길은 그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더 풍성하게 드러내서 그들 속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놀라운 변화와 심령의 부흥을 일으켜주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남아있는 백성들을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통찰과 그리고 역사를 움직이는 안목을 가지고 있었던 모든 지도자들은 항상 이것을 생각했습니다.
지금 요시야임금이 낭독을 들으면서 깊이 깨닫고 도전을 받고 있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원저자로 생각되는 (물론 하나님이시지만) 그 말씀을 기록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모세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움직이시고 그 백성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경외하지 않는가?’ 를 아는 시금석이 있는데 그것은 너희가 그 말씀을 전심으로 순종했는지? 않았는지?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을 지켜보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 뒤를 이은 여호수아의 말씀에 대한 헌신은 말할 필요도 없이 뛰어납니다. 선지자들이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분노하는 때는 반드시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괴로워 하셨던 것도 이 백성들이 입술로는 나를 경외하지만 그러나 마음으로서는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복음을 들고 나아가서 전하는 것도 바로 최종적으로 우리들이 목표하고 있는 바는 바로 그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가 아니라 구원받은 그 영혼이 이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지 않고 진리의 말씀과 은혜를 따라 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반역과 하나님을 향한 죄 된 생활을 포기하고 복음에 순종하는 삶으로 돌아오기를 원해서 우리들이 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요시야임금은 분명하게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정말 교회에 부어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력한 도전과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삶인가 하는 것들에 대한 깊은 도전을 주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사명을 이루어 나가기를 소망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들은 부흥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요시야임금은 여호와께 물으라고 당부했습니다. 무엇을 물으라는 것입니까? 성경은 이미 발견되었고 발견된 것이 낭독되고 있었고 그는 들었습니다. 그는 깨닫고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법 잘 하고 있는 종교개혁임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들려올 때에 자기와 자기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범죄 한 백성이었다고 하는 것을 그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옷을 찢었습니다. 그러면 되었지 자기와 똑같이 사람들이 깨달으면 되었지 무엇을 여호와께 물으라는 것입니까?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해서 ’여호와께 물으라.’ 말씀은 이미 기록되어 있고 책은 이미 발견되었습니다. 펴면 그 글자가 누구든지 볼 수 있게끔 다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여호와께 물으라고 이 왕은 분부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성경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경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깨닫고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정도가 더 깊고 심오해져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표면에 기록된 말씀뿐만 아리라 의문에 기록된 율법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시는 말씀의 그 사이사이에 그 갈피갈피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며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간절하고 순종을 촉구하는 그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 앞에 간절한 하나님의 그 소원을 그 백성들이 이해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심정으로, 여호와의 심령으로 그렇게 그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그러한 것을 깨닫게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 압니다.
성경에 관한 우리 개혁신앙의 교리가운데 성경의 명료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의 명료성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성경은 그 자체가 워낙 쉽게 진리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면 어떻게 구원받는 것은 성경 자신이 증거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초대교회에 보면 토마스 목사님이 그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거기서 셔먼호는 불타고 토마스 목사님은 순교합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가져온 책이 중국은 그 때 이미 벌써 중국어로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말 성경을 가지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것을 강가에 던지고 죽었습니다. 그것을 거기에 참석했던 어떤 관리가 갖고 갔는데 그때 조선에는 그런 좋은 종이가 없었습니다. 종이가 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쭉쭉 찢어서 도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낮잠을 자는데 사람이라는 게 잘 때는 자기가 자던 자리가 똑같지 않아요? 자는 폼도 매일 비슷하단 말입니다. 모로 딱 누워서 자는데 벽의 성경이 눈에 딱 들어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보기 싫어서 이쪽으로 드러누웠는데 허리가 아프니까 다시 돌아누우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결국은 그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 것이 성경의 명료성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그런 명료함이 있지만 그러나 그 성경을 떼서 그 진리의 말씀을 풀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루할 정도로 많은 예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한, 두 가지 예만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느냐?” 그러면서 쭉 이야기를 하다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해를 받고 죽음을 당하고 다시 살아나야 될지를 기록하고 있는 성경을 풀어서 설명을 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성경은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도 그 성경을 알고 있었을 때는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인가 하는 것을 그 성경을 쉽게 풀기 시작하니까 제자들의 마음이 불이 일 듯이 뜨거워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에스라가 성문 앞 광장에서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여호와의 율법을 낭독할 때에 온 백성들이-이미 다 알고 있는 율법이었습니다. 늘 밥 먹고 하는 일이 율법을 적거나 쓰고 그리고 율법을 듣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낭독할 때에, 들려줄 때에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모든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은 구약을 풀어서 설명한 것입니다. 그렇죠? 구약을 풀어서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이 구약대로 있을 때는 사람들에게는 은혜가 되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그 구약을 풀어서 설명을 시작하니까 말씀의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밀을 알고 있었던 이 요시야임금은 율법 책이 발견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 율법 책이 발견되었으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율법의 원 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이 율법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실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제 전심으로 ‘하나님! 여기에 발견된 이 책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의미보다도 더 깊은 하나님의 신령한 의미를 우리에게 드러내보여 주시옵소서! 진정한 그 율법의 의미와 그 말씀의 거룩한 뜻과 그리고 그 말씀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그 은혜로운 음성을 우리에게 들려주시옵소서!’ 간절한 필요를 이 요시야임금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깊이 느끼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도 당신을 찾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을 찾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과 하나님이 볼 때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다고 생각하시는 것 그 사이에는 언제나 격차가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무엇이고 그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가기를 소원하는 간절한 소망이 그것 하나로 주님의 말씀의 거룩한 뜻을 깨닫기를 원하는 사모하는 그 마음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찾는 자라고 여겨주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싶어 하고 하나님이 이루시기를 원하는 하나님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찾고 싶어 하고 그리고 그 말씀 속에 깨닫고 싶어 하는 사모하는 갈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가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마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말 순종하면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 앞에 순종해야할 그 길에 대해서 너무나 간절히 알고 싶어 하고 사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려고 하는가 하는 것에 진실성 여부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 속에서 찾으시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 자신의 계획을 따라서 내 마음대로 살고 싶고 내 마음대로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한없이 즐겁고 그 말씀이 송이 꿀과 같이 달고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니까 그것이 자기의 인생에 진정한 빛이 되고 등불이 되었다고 고백한 이유는 무엇인가하면 그 말씀을 전심으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몰랐다고 핑계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알고서도 그 뜻을 행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이 더 클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불순종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소망과 욕망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여호와의 율법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물으라고 당부했던 이 요시야와의 당부는 결국 무엇을 의미하냐면 혹시 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그 의미를 내가 깊이 깨닫지 못하고 내 백성중 남은 자들이 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부지중 범죄 하거나 불손종하는 일들이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 사모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며 살기 원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신속하게 어두움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무지와 어두움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의 친구요! 동무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간절한 사모함이 있는 것입니다.
(예화) 그래서 그 조나단 에드워드의 부흥의 기록에 보면 4살 난 어린아이가 회심하는 놀라운 장면이 일어납니다. 한번 말씀 드렸을 것입니다. 일 년이나 일 년 반전에……. 그러니까 다시 이야기를 하자면 아이가 어느 날 교회를 갔다 와서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는 아무래도 구원받지 못한 것 같아!” 그러니까 엄마가 “네가 왜 구원을 못 받았느냐? 주일학교도 잘 다니고 있는데…….”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이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그 마음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계속해서 노는 일도 잊어버리고 근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아이가 하루에 다섯 번씩 사라지는 것입니다. 무엇이냐? 헛간에 들어가서 아이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헛간에서 큰 함성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똑같이 어른처럼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돌아와서 엄마에게 말하기를 ‘엄마 나 하나님을 만났어!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주셨어’ 그리고 나서는 놀라운 기쁨으로 가득 차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놀라운 기쁨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계속해서 주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엄마 주일이 며칠 더 있어야 돼?” “여섯 밤 더 자야 돼.” 그 다음날 “며칠 더 있어야 돼?” “다섯 밤만 자면 돼” “왜 교회가고 싶어 하니?” “에드워드목사님의 설교가 듣고 실습니다.” 네 살 우리로 말하자면 다섯, 여섯 살쯤 되었을 것입니다. 앞에 안아서 그 예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 이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그리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입으로 동네에 있는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옆집을 놀러갑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과일인가 무엇인가를 내놓았는데 그중에 몇 개를 슬쩍 집어넣고 옵니다. 그런데 그 집에 누나가 있었는데, 이 어린아이의 마음에는 남의 집에서 이 과일을 집어오는 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이 누나가 엄마한테 이른 것입니다. 엄마가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막 원통하게 통곡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누나는 왜 나에게 그렇게 훔쳐오는 것이 나쁜 것이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느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려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이처럼 깊은 원통함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려고 애를 써도 내 능력이 모자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살 적이 너무 많은데 더군다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고 싶은데 무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더 말할 수 없는 원통함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기에 목마른 사람들은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 목말랐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진리의 참된 뜻을 깨닫기 위해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돈 버는 방법이 무엇인가 알려주는 책들은 불티나게 팔립니다. 예뻐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들은 불티나게 팔립니다. 살 빼는 방법, 그런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건강을 유지하는 책, 그런 것을 가르쳐주는 책들은 불티나게 팔려가고 있습니다. 잠시 눈을 즐겁게 하는 세상에 속한 세속적이고 통속적인 책들이 팔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잠시 우리의 육체의 감각들을 움직이는 그러한 음악들은 한 번에 수 십 만장, 수 천 만장이 팔려나가요.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잘 지키면서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이야기들과 기록들과 책들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의미가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입니다.
간단간단하게 설교하면 설교가 너무 내용이 없다고 말하고 깊이 설교하면 너무 어렵다고 말합니다. 예화를 많이 들면 예화가 너무 많다고 하고 예화가 없으면 너무 딱딱하다고 말합니다. 누가 그 입맛에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알고 싶어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하고 그 진리의 참된 뜻이 무엇인가 알기를 사모하는 간절한 그리움들이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고 일어날 때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요시야임금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는 그 순간 그 말씀을 들으면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백성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열심히 종교개혁을 하고 산당을 허물고 이방종교를 쫒아내고 그리고 신상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법도를 세우려고 애를 썼지만 그러나 그 말씀 앞에 드러났을 때 그는 희미하던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밝게 드러났습니다.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드러난 뜻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더 깊은 의미를 찾으라,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주실 분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니 너희는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 말씀에 기록된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알아서 우리로 하여금 그 뜻을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보여주시옵소서. 학자들이 추정하는 바와 같이 이 때 발견된 것이 만약에 신명기였다 할 것 같으면 그는 분명히 신명기 28장, 29장, 30장도 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약속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축복과 그리고 하나님께 선택함을 입었으면서도 그 말씀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예비한 하나님의 그 뛰어나고 놀라운 진노,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응보, 이것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친 백성으로서 어두운 세상에 횃불이 되어서 하나님을 보여주면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만방 가운데 웃음거리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에 달렸다는 사실을 그는 명백하게 기록된 신명기를 통해서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아는 것만이 이 백성과 이 민족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 우! 일어나는 교회의 성장이나 부흥들이 얼마나 한 시대를 바꾸어놓는지 여러분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 교회와 참다운 신앙의 부흥은 운동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성서위에 세우지 아니하면,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위에 세우지 아니하면 세워지는 그 모든 것들이 모래위에 성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민족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로 인도해서 이 하나님의 말씀위에 세우지 아니하면 민족의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교회에 초석이 되고 이 말씀이 이 민족에 초석이 되어서 이 말씀이 사람들 속에 스며들고 사람들 마음속에 이 말씀의 정신이 스며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를 소원하는 것이 국민적인 정신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면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겨레의 소원이 되고 이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역사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이 백성들에게 진정한 바람이 되는 그러한 성경위에 서있는 한국을 건설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시야의 마음속에 있는 간절한 바람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거품처럼 살아가는 세속적인 백성들은 차지하고라도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 유다족속가운데 남아있는 자들로 하나님에 붙들려 살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남아있는, 깨어있는 그 소수들 그 사람들을 성경위에 세워야했습니다. 그는 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묻도록 그는 자기의 신하들에게 당부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상의 기준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세상 속에서 통용되고 성공하는 방법대로 나아가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방법들은 성공하면 교회를 서 말의 밀가루로 가득 채울 수 있지만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밀가루가 아니라 누룩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된 누룩을 위해서는 미련할 정도로 철저하게 교회가 성경에 소명을 걸고 온 성도들을 성경위에 세우고 교회를 성경위에 세우고 그 성경을 마치 주사액처럼 만들어서 우리의 모든 혈관 속에 집어넣고 우리의 살 속에 집어넣어서 마침내는 우리 속에 성경말씀과 우리자신이 하나가 되어서 우리 속에서 성경말씀을 분리시키고 해체시킬 수 없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은 여호수아가 신앙을 고백하던 그러한 때에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의 위대한 영웅으로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역사와 인도를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가나안을 정복하고 거기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속에서 심지 않은 포도열매를 먹고 짓지 않은 집에서 그들은 살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원수들을 복속시키고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제 가나안 정복을 마치고나자 신앙이 헤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그 진멸하도록 명령받은 가나안 원주민들과 함께 교류하고 교제하며 그들이 섬기던 신을 섬기며 살아가는 이런 타락한 풍조들이 바로 일 세대들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벌써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는 정말 기울어져가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남은자로서 남아서 그는 자기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그 불신앙과 배교와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 버린 타락한 신앙의 풍조가 가득 차오르고 있는 역사의 비탈길에서 그는 당연히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한 하나님이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할 것이니 너희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셨지만 후에라도 반드시 돌이켜서 너희에게 화를 내리고 너희를 멸하고야 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너희는 오늘날 섬길 자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이방신을 섬기라고 말입니다. 강 저편에서 섬기던 그 신이든지 혹은 너희의 거하는 이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의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 무엇이 여호수아로 하여금 그 흐르는 시대의 강력한 물결 자기의 힘으로는 그 불신앙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그 불신앙의 상황에서 고고하게 이렇게 외치며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이라고 말했던 바울과 같이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여호수아와 그의 가족 속에 파고들어왔던 그 하나님의 진리의 풍성함-그 말씀이 그 민족을 그 역사를 어두움가운데서 빛으로, 위기 가운데서 그리고 평탄한 환경으로 수많은 도전과 그리고 도전하는 악의 세력들을 모두 이기고 그들에게 깃발을 꽂고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를 쟁취하고 하나님의 약속한 땅으로 들어오게끔 만들었던 원동력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붙는 분명한 확신이 이 여호수아의 마음과 심령 속에 타올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의 심령과 자기의 삶이 바꿔놓을 수 없게끔 하나가 되어버린 것을 오늘 성경이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노래 잘 부르고 말 많은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에서 진정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에 하나님이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느끼셨던 하나님의 그 심정 끊임없이 배역하고 우상을 좇고 자기의 이 세상에서의 형통과 행복을 위해서 이방족속과 타협하며 불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여호와만을 섬기라 나는 질투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해주셨을 때에 그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얼마나 느끼고 있습니까?
우리는 매일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이 기뻐하든지, 말할 수 없이 슬퍼하든지, 혹은 말할 수 없이 아파하든지 이러한 격렬한 체험 속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이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영적인 전쟁 속에서 그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여기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역사하던 때에는 언제나 그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알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싶어 하였고 그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살고 싶어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모든 재산을 주고도 여호와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 하나님의 말씀의 화신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 그 자체가 성서가 되기를 소원하였던 것입니다.
(예화) 로저스(John Rogers)라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16세기인지 17세기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경말씀을 너무 사랑하지 않으니까 어느 날 설교하러 올라가서 그는 말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말하노라 너희들이 너희자식들보다도 성경을 사랑하지 않고 너희의 재물보다도 내 말씀을 사랑하지 않으니 이제 내가 너희들에게로부터 너희들이 읽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 그 모든 성경을 내가 이제는 가져가리라. 다시는 너희가 성경을 보지 못하리라.” 말하자면 드라마를 한 것입니다. “너희 손의 성경을 다 내놓아라. 먼지 묻은 성경을 다 나에게 달라 내가 다 가지고 갈 것이고 다시는 너희가 울어도 이 성경을 받지 못할 것이요. 너희가 애원해도 나로부터 이 성경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 드라마 앞에서 온 성도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의 집을 가져가시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을 데려 가시옵소서, 우리의 생명을 취하시옵소서 그러나 우리와 우리의 자손을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만은 가져가지 마옵소서. 우리가 말씀 앞에 다시금 충성하겠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의 놀라운 부흥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탁월하고 열심 있는 충성을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 여호와의 율법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기를……. 하고 말하는 것은 이제 가장 건방진 소리로 들리는 때가 되었습니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면 설교조로 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설교는 성경을 해설하는 것입니다. 교통법규보다도 여호와의 율법이 경홀히 여겨지고 있는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충성할 자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인 그것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유일한 음성임을 믿고 거기에 헌신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찾으시는 것입니다.
요시야는 그 발견된 율법 책을 그냥 단지 사람이 읽어주었을 뿐……. 그 말씀을 읽을 때에 이 요시야는 심령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놀라운 감화와 그리고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옷을 찢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설교가 있고 언제든지 읽을 수 있는 성경이 있고 어제든지 집어서 터득할 수 있는 말씀의 깊이를 깨닫게 할 수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귀한 줄을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이 풍부한 시대에 살았다고 할지라도 진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원하는 부흥된 심령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언제든지 헐떡거리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삶이 온전치 못한 모든 것이 이 말씀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찾고, 깨닫고 싶어 하면서 그리워하며 헐떡거리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찾는 모습으로 동일시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우리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우리를 다시 한 번 확실히 해야 될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처럼 듣다가 재앙을 만났던 사람들을 우리들은 성경 속에서 많이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그 말씀의 뜻을 깨닫고 찾고 찾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남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네 번째 마지막으로 이 요시야는 이 사건을 통해서 구약의 역사를 새롭게 보는 역사관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21절 하반 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열조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바로 앞 세대 암논을 비롯해서 유다의 역사 가운데 많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그런 역사의 두려운 기억들을 그는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자주 그 백성들을 심판하셨는가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그 앞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망한 이스라엘이 있었습니다. 그런 모든 상황 속에서 이 요시야는 그러한 이스라엘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이 망하고 역사 속에서 고난을 겪은 모든 이유가 바로 여호와의 율법을 바르게 지키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기록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왕이었습니다. 8살에 위에 올라서 많은 세월을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려 왔습니다. 정치가적인 식견이 있었을 것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그는 정치가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흥망성쇠를 결코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았습니다. 외교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았습니다. 한 민족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갈 때 한 족속이 심판을 받고 한 역사 속에서 그림자를 감출 때 거기에는 반드시 그들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 후면 국민소득이 2만 불이 되고 2020년에는 3만 불이 되고 세계 5위 6위의 잘사는 나라가 되어서 육교도 에스컬레이터로 만들어서 걷지 않고도 올라 다니고 가고 싶은 데로 비행기 타고 배타고 놀러 다니는 그러한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정치가와 경제가들의 전망을 들으면서 가슴 부풀어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해하는 우리들이 결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우리가 구하는 나라가 세상의 나라라면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통일이 되고 북의 지하자원과 남의 기술이 합하고 그래서 중국을 상대로 무역을 하고 소련을 상대로 하여 무역을 해서 엄청난 부를 챙기고 기술이 발전되고 해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칩시다. 만약에 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세상나라라면 이러한 전망에 대해서 가슴 부풀어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그러한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나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나라,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셨던 교회사의 놀라운 축복을 사명으로 바꾸어서 하나님 앞에 감당할 수 있는 그런 나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수많은 순교자의 피를 머금고 교회에 교회를 세우신 이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만방의 구원의 등불이 될 수 있는 그런 나라, 그런 나라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로 꿈꾸고 그리워하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나라는 세상에서 부를 축적하고 이 세상에서 영광을 받는 나라가 아닙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꿈꾸는 바대로 ‘그리하면 여호와의 의가 비같이 내리리라’하였습니다. 온 땅에 예외 없이 비가 내립니다. 비가 곰보 뚫린 것처럼 이렇게 내리는 비를 봤습니까? 한 지역에 비가 오면 피할 자가 없습니다. 우산을 써도 튀겨 들어옵니다. 그러니 천하 만물이 그 비를 안 맞을 수가 있습니까? 모든 것에 예외 없이 구석구석 비기 내리는 것입니다. 호세아가 꿈꾸던 나라가 바로 여호와의 의가 방방곡곡에 비같이 내리는 그런 나라를 꿈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는 그 때에 마지막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크게 되고 많은 백성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의가 온 구석에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요시야임금이 하나님의 그 거룩한 율법의 말씀을 들으며 깊은 도전을 받으면서 그는 자기의 나라가 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축복을 받고 여호와의 의가 비같이 내리는 나라가 되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기뻐하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그러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포도가 풍성하게 맺혀서 그 열매를 보는 모든 열방들이 그 민족을 보면서 여호와의 택하신 나라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 위를 그리워하고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과 우리가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같지 않습니다.
분단된 민족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이유도 똑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쏟으신 진노로 말미암아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갔다면 오늘 깨어있는 소수가 되어서 하나님의 교회에 남은 자가 되기를 원하는 우리들은 정 반대의 역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지키고 그 말씀을 사모하고 그리고 이방의 풍조와 헛된 사상들이 물결처럼 범람하는 이 시대에 순전한 여호와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이 민족이 진리의 말씀으로 살았더니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부으셨나니 당신의 백성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그리고 그 백성을 통해 주님이 영광을 받으셨나이다. 하는 그런 민족사의 미래를 꿈꾸는 마음으로 우리는 통일과 이 시대의 교회를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요시야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겉멋이 들린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심령 깊은 곳을 파헤치고 지나가서 그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깊은 충격을 경험한 사람, 그리고 영혼속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심령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신앙의 세계가 얼마나 위대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축복 된지를 깨닫고 자신의 인생의 모든 꿈과 희망이 그 하나님의 말씀에 매여 있는 사람, 오직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백성들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세상에 가득해지는 세상, 어느 곳에 가든지 주의말씀을 지키기를 사모하는 백성들과 그리고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축복받는 것을 바라보는 세상, 어디서든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사모하는 심령들이 이전에는 세속적인 것들을 좇으며 거기에 미치던 사람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서 목말라하고 그리워하는 심령을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세상, 우리에게도 건너와서 말씀을 가르쳐주옵소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예화) 언제 한번 체육관에서 가수들이 나와 가지고 공연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쭉 찍었습니다. 리사이틀이죠. 누구인지 이름도 모르는데……. 요만 요만한 아이들이 고등학생들이나 중학생들이겠죠! 막 이름을 부르면서 울었습니다. 울어……. 엉엉 울어……. 사진을 들고…….
여러분 온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그런 때가 오기를 우리는 꿈꿔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기를 사모하며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주의 뜻을 알기를 원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변화를 꿈꾸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요시야를 보십시오. 요시야는 자기가 먼저 경험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도 자기와 같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 먼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세상은 잠들어도 우리는 깨어있어서 세상은 잠드는 대가로 평안하고 안일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대가로 고난을 당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자고 편안한 다수가 아니라 고난 받고 억압받는 소수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 평안하고 세상에 환영받으며 살아가는 거품과 같은 다수가 아니라 의를 위해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시기를 원하는 나라를 꿈꾸며 오히려 애통하며 사는 사람이 되기를 우리는 사모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남은자로 살아갈 때에 비로소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이런 남은 자들을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