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교육 2
녹취자: 김경애
오늘은 우리들이 왜 우리교회가 무엇인가 가르침과 이런 모든 것들에 있어서 나름대로 독특한 면들이 있고 그것들이 어떤 면에 있어서는 교인들에게 상당히 많은 부담을 주고 목회적으로도 부담을 주는데 왜 우리들이 이런 식으로 교회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큰 틀에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여러분들이 지금 한국교회의 성장과 미래의 역할이라는 소책자를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끝나 가는데 여러분 나름대로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한번 몇 분이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역장을 하신 분들이 중심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전 집사님 구역장이십니까? 그러면 전 집사님 이야기해보시기 바랍니다.
전 집사님)
한국교회가 성장해왔던 것에 대해서 알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현 주소가 어떤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눌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했습니다. 구역식구들과 나누면서 저희가 나누었던 것이 교리와 신학공부에 대한 것들이었는데 여기 열린 교회로 오기 전에 오랜 기간을 신앙생활을 했으면서 상당히 갈급했던 것들이 많았었는데 열린 교회로 오면서 알고자했던 것들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었다는 것이 굉장히 좋았다고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섬기는 교회가 그런 교리적인 면에서 그리고 신학적인 면에서 알게 해주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렸을 때 삼국지를 읽을 때 어릴 때는 만화로 읽었는데 커가면서 만화를 읽지 않고 누구의 삼국지를 읽는다든지 또 누구의 삼국지를 읽는 것처럼 이런 것을 읽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신앙적인 지식들이 어릴 때는 교리적인 요리문답을 말씀하셨는데 그런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교리적인 것과 신학적인 것이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나누었습니다.
박 집사님)
통상적으로 한국교회의 성장이나 분석들은 대부분이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면에서 주로 많은 부분들이 학술적으로 되어왔는데 저는 이번에 보면서 여기에 대해서 현대문학과 관련되어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목사님의 독특한 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교회가 많이 신학이 실종되어있고 그러다보니까 특히 방송의 영향으로 순복음교회나 모든 교회가 교리도 없이 대동소이한 이런 모습 속에서 저희 교회가 그런 교리적인 부분을 세우는 것도 참 좋았지만 그런 부분이 현대문화와 도외시하고 교리적인 부분이 있는데 저는 이 책에서는 현대문화를 알면서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까하는 목사님의 모습이 저희가 그 부분이 참 신선했었고 그 부분이 저희가 더 공부해야할 부분을 무시할 수 없지 않는가하는 이야기를 했었고 그 부분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번에는 마이크를 뒤로 넘겨보십시오. 뒤의 집사님! 구역장을 하시면서 이번에는 책에 대한 평가보다도 구역식구들의 공부하는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한번 이야기해보십시오.
박 집사님)
먼저는 교리공부를 하다가 이번 교재를 받으면서 쉽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교리공부에 익숙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 책이 어렵습니다.’ 하곤 했습니다. 저는 사실은 아까 장로님들과도 그런 말씀을 나누었는데 교회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이 아주 많이 있었던 것을 발견한 것도 근래이기도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 전체를 통해서 교회의 성장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교리와 신학의 부재를 말씀하시면서 같은 맥락에서 목사님께서 책에서 신학적 목회를 말씀하셨는데 그런 부분을 보면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교리적인 지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몸담았던 교회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에 원인이 이것과 같은 맥을 한다는 사실을 보면서 단순한 교리를 넘어서 정말 깊이 있고 체계적인 신학의 연구의 장과 실제적인 목양의 Fild 부분이 교회 안에 같이 공존하고 있어야지만 그리고 그것이 제 자신의 좁은 소견으로는 열린 교회의 모습이고 또 한국교회가 가깝게는 그 부분을 추구해가야 하지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 막연하게 교회를 보면서 속상했던 그런 모습과 그래도 지금 제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금 현재의 이 모습을 갖고 있는 것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좀 더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았으면 좋겠는데 갈 길이 바쁘니까 편안하게 들어주십시오. 그게 뭐냐 하면 우리 주위의 목회자들을 보면 사람이 굉장히 진실합니다. 그리고 목회를 하면서 특별한 사심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사심이 별것이겠습니까? 교계에서 이름을 한번 날려보겠다는 욕망이 목회자들에게는 상당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것도 없습니다. 자신은 진실하고 하나님 앞에 착하게 잘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목회는 세속적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교회는 목사님이 그렇게 나쁜 분이 아닌데 어느 날 교회에 가보니까 자동차가 교회의 로비에 들어와 있습니다. 50명을 전도하는 사람에게 그 자동차를 주겠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전단지를 보았는데 1000명을 전도하면 32평 아파트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하면 사람이 순수하고 욕심이 없다고 할지라도 올바른 사상이 정립되어있지 않으면 현실을 해석하는데 혼동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한번 우리의 시대나 교회들을 높은 곳에서 조망하면서 우리가 전체적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저에게 누가 이런 이야기를 물어보았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받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질문해보겠습니다. ‘아니 우리가 성경 속에서 말씀을 듣고 주님을 만나고 감격이 있으면 됐지 그곳을 꼭 굳이 칼빈주의, 개혁주의 하는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사람이 만들어놓은 사상인데 그렇게 해서 큰 체계를 만들어서 우리들이 그 안에서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지식을 전수받아야합니까?’ 그런 질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다.’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래요. 그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들이 믿음 생활을 하면서 순수하게 주님을 만나는 때가 반드시 커다란 사상이나 신학적인 지식이 있어야지만 주님을 깊이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제가 제 세례의 경험도 설교했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주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지금에 비하면 어린아이 같은 지식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두 개는 사실은 별도로 생각을 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그러면 지식이 많고 생생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없는 것이 낫습니까? 아니면 지식이 조금 모자라도 생생하게 주님을 만나는 것이 낫습니까? 이것은 사실 두 개를 서로 그렇게 비교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두 개가 항상 함께 가야하는 것이고 함께 가도록 간구해야합니다. 그래서 조금 신앙의 감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지식이 없는 것을 정당화해서는 안 되고 또 지식이 있으면서도 주님과의 생생한 만남이 결핍되어있을 때 이런 지식들이 그런 주님과의 만남이 없는 은혜의 결핍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하는가 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성경에서 우리들은 수없이 주님을 만나고 다양한 진리들을 발견합니다. 그것들은 하나하나의 구슬과 같습니다. 그 구슬을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서 아주 쓸모 있는 구슬이 되기도 하고 쓸모없는 구슬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돌멩이를 놓고 그 돌멩이를 징검다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방향이 올바로 놓여야 합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는 것이 다리의 목적인데 돌멩이를 놓았는데 이쪽에서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는 배열이라면 돌멩이는 하나하나는 놓았지만 그것은 다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는 체계라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이야기하는 신학의 체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그런 체계를 선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항상 그것은 체계가 없게 되면 항상 그것은 흔들리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한때 이런 것입니다. 한때 이단들이 이 동네에서도 가르쳤는데 별로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교회 교인 둘이 거기서 만났답니다. 나중에 혼내주었습니다. 거기를 왜 갑니까? 정말 바보입니다. 영적인 간음입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합니까? 그런데 다행인 것은 딱 한 시간을 들었는데 그중의 한 자매가 ‘야, 가자 이것은 말짱 거짓말이다.’ 그러면 한 시간을 딱 듣고 이것이 거짓말이고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자기 나름대로의 체계가 있으니까 그 체계 안에 넣어 보니까 이것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내가 무엇이라고 그랬느냐하면 ‘신앙이 떨어져도 교리를 배우는 것은 여전히 남는 장사다.’ 가서 ‘저것은 거짓말이다. 가자.’ 그러는데 만약에 그런 교리적인 지식이 없다면 물고 들어가서 하나가 가슴에 꽂히면 수없이 빨아들이면서 이단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이 건전한 삶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의 상황을 보면 얼마나 심각하느냐하며 여러분들이 열린 교회에서 계속 설교를 듣고 신앙생활을 하니까 다른 설교를 들을 기회들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면 건전하고 좋은 교회가 아직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훨씬 더 많은 교회들이 그런 면에 있어서 메시지가 건전하지 못합니다. 엊그제도 오면서 라디오에서 방송을 들었더니 설교가 나옵니다. 무슨 본문을 읽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데 KFC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KFC 그 사람이 미군의 대령 퇴역군인인데 닭을 하도 좋아해서 요즘은 홀쭉하게 만들었는데 옛날에는 배가 뚱뚱했습니다. 그가 계속 통닭을 튀겨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까하다가 거기다가 밀가루를 씌워서 해본 것입니다. 그랬더니 맛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가 막히게 개발했는데 투자할 사람을 못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6명을 끈질기게 거절당하고 거절당하면서 그러면서도 결국은 106번째 사람을 만났더니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랍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어쨌다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이런 식입니다. 내용은 문제가 없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적용을 줍니까? 그런 설교를 통해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도 무엇인가 뜻을 세우고 끈질기게 하면 된다는 이야기인데 그러면 너를 믿으라는 것입니까? 주님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주님을 믿으라는 이야기가 양념처럼 들어오는데 그것은 진짜 그야말로 양념이고 확신을 가지고 나가는 그 길에 주님이 조금 밀어주시면 그러면 일이 더 잘된다는 그런 생각이 아닙니까? 우리들이 교리를 배우지 않고 현대사조를 배우지 않으면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진리의 전달자나 그런 철학적 시리즈를 듣고 나서 이제 한번 문화나 광고카피가 보일 것입니다. 요즘도 보십시오. 불쾌해서 잘 보지 않는데 김수현씨가 쓴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이런 것이 뜬다고 그러는데 양념을 치는 것입니다. 동성애입니다. ‘동성애가 나쁜 짓이 아니라 본인도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성향이다.’ 현대인들에게 양념을 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마음에 여운을 주고 울리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양념을 계속 치는 것입니다. 양념 정도가 아니가 그 자체가 중심이 되어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 보십시오. 우리 주위에는 우리 못지않게 헌신되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방법 자체가 잘못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건전한 경건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들이 보편적으로 되어있는 속에서 누룩처럼 번져가는 속에서 아이들도 그런 식으로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문제가 생기느냐하면 그런 속에서 우리들이 계속 신앙생활을 할 때 어느 날 갑자기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게 될 때 그 사람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반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참된 복음에 기초해야하는데 그 경건이라는 것 자체가 신비적인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개발하려는 노력이나 이런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인간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이고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신지를 깨닫고 그 속에서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은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렇게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이제 현대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날에 영향을 미치는 교회를 비롯해서 소위 이야기하는 Manifesto 즉 자기선언 같은 것을 읽어보면 경건주의를 지향한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 경건주의는 말은 굉장히 좋은데 그리고 난삽한 교리보다는 투명하고 진실하고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삶이라고 그러는데 사실은 역사를 조금만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18세기에 역사적으로 개혁파 정통주의가 기울고 계몽주의가 들어오면서 이성주의가 승리하게 되었을 때 진짜 교회는 은혜도 없고 그냥 차가운 교리를 가지고 싸우고 심지어는 교회가 갈라질 때 악기를 쓰느냐 안 쓰느냐로 갈라지고 이따 문화를 이야기할 때 나올 이야기지만 그러면서 교회가 갈라집니다. 그런 속에서 결국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는 그런 깊은 복음의 체험들이 사라진 가운데 교리만 남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니라고 그러면서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고아들을 기르고, 출판을 하고, 이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그것들을 가지고 함께 Group Study를 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런 사람들이 선교의 열정에 불타서 모라비안 선교라든지 이런 것이 이루어지고 바로 존 웨슬레가 그런 모라비안 교인들이 타고 있던 배에 같이 탔다가 풍랑을 만나서 기울어서 빠져 죽을 것 같은데 자기는 공포에 시달리는데 이 사람들은 평온하게 찬송을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 자기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변화가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 역사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게 한 세기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다음부터 결국은 모든 것들이 전부 다 포용주의적이고 분명한 자기의 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사도신경만 고백하면 형제로 불러야한다고 그러는데 역사적으로 사도신경을 부인하는 이단은 없었습니다. 거의 없었습니다.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믿습니다.)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믿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불확실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신비주의들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는 신비주의가 끝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강력한 이단사상들이 들어오는데 그게 종교적 이단사상이 아니라 철학적, 학문적 이단사상인 자유주의가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제일 먼저 일으킨 대학이 XX대학인데 200년 후에는 그 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 가장 첫 번째 오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의 경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느냐하면 아주 엄밀하고 분명하게 처음에는 탄탄하고 기본적인 신학적인 교리, 처음에는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좀 더 자세히, 더 시간이 나면 더 자세히 가르쳐서 확고하게 만들어야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은 신앙이라는 것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이렇게 교리공부를 열심히 하면 은혜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리를 가르칠 때에는 교리의 뼈다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속에서 교리를 찾아내서 배우기 때문에 성경진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받아서 교리가 세워지는 가운데 자신의 삶이나 교회나 이런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기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거의 안하지만 전에는 우리교회 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자꾸 나에게 상담해달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원칙적으로 상담을 안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항상 목사님의 욕도 나옵니다. 장로님 욕도 나옵니다. 그리면서 자기는 피해자라고 그럽니다. 그것을 상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목자와 양 테이프를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가서 다 들어보고 그래도 질문이 있으면 내가 꼭 만나주마. 그럼 그것을 듣게 하면 대부분 없어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편지도 보내고 그럽니다. 자기가 그렇게 상담한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만나서 네가 잘못했다거나 그 목사님이 잘못됐다거나 그렇게 이야기해준들 그것이 정답일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상황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 교회에서는 저런 사람을 만났지만 저 교회에서는 이런 사람을 만날 텐데 그러면 거기서 내린 공식이 저쪽 교회에서도 통하겠습니까? 안 통합니다. 그러니까 상황은 개별적인 것이고 전체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항상 그렇게 됩니다. 내가 요즘에 교회의 교인들을 보면서 아쉬운 것이 그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중생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은 상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생과 회심 시리즈를 주면서 다 듣고 와라.’ 그런데 문제는 교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정도로 수용성이 없을 때에는 그런 식의 목회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수용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다 버리고 그냥 신앙생활을 잘해보겠다는 생각에 교회를 찾았는데 갈급했는데 들어보라고 그러면 왜 안 듣겠습니까? 한 3일 만에 10개를 다 듣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중생과 회심에 대한 생각이 다 정리되는 것입니다. 나는 중생은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죄의 지배 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상담할 필요도 없습니다. 목회를 잘하고 말씀 속에서 자신들이 은혜를 받고 체계를 세우면 상담의 필요성이 상당히 줄어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훈련받는 사람들만이 교인들을 상담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역자보다 상담을 더 잘합니다. 그래서 상담을 배우러 다니는 것에 대해서 나는 별로 썩 인정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이 갖추어져있는 사람이 그런 훈련을 받는 것은 테크닉이 좋아지지만 그것을 받아서 상담이 제대로 된다는 것은 자기가 신학적인 견해가 없는데 무슨 상담이 됩니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교리 반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들어와서 새가족 공부를 하고 새가족에서 4가지 주제는 배웁니다. 그 다음에 교리반에 들어가서 교리반을 공부하고 그 사이에 세례문답을 거치고 그럽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생각하기를 교리를 많이 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월등하게 많이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교리를 배우는 것은 남들한테 나는 이런 것을 잘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삶이되기 위해서 그런 삶을 위해서 우리들이 교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교리반에서 배우는 커다란 얼개라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교리반에서 배우는 커다란 얼개가 오늘 내가 살아가는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줍니까? 그렇지 않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얼개일 뿐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오늘도 뉴스 속에 나왔지만 설교를 들을 때 항상 어렵고 구름을 잡는 것 같았었는데 교리반을 듣고 나니까 설교가 명료하게 이해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무슨 뜻입니까? 설교를 듣는 모든 것이 다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것을 건질 수 있는 얼개를 가질 때 설교는 이해가 잘되는 것입니다. 그럼 무슨 이야기냐 하면 교리라는 것은 결국은 우리가 루이스 벌콥의 교리를 공부하는 것은 설교를 만약에 물속에 돌아다니는 물고기라고 치면 그것을 잡기 위한 채입니다. 여러분 고기뜰채를 기가 막히게 좋은 것을 샀습니다. 외제를 샀습니다. 외제가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은 외제가 좋으니까 샀습니다. 그런데 그 뜰채가지고 무엇을 합니까? 그것을 가지고 솥에 풀고 뜰채를 끊이면 안 되지 않습니까? 뜰채로는 고기를 잡아서 끊여야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뜰채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런 뜰채도 지금 루이스 벌콥 정도를 공부를 하고 설교를 듣는데도 설교가 많이 걷힌다면 루이스 벌콥보다 더 좋은 상세한 교리를 공부하고 휘두르면 더 많이 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확신하는 것은 내가 죽고 나서 설교자로서 김남준 목사의 신학이 무엇이었는지를 연구하기위해서 후대의 사람들이 꼭 연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리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시편 23편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 강해입니다. 그러면 고린도전서 13장 강해가 (장로님은 고린도전서 13장 강해 때문에 교인이 늘었다고 그러시는데) 굉장히 어려워한 설교였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설교에 굉장히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뜰채가 틀려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의 지성과 마음의 진액을 거기에 쏟아낸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그런 것들을 그 뜰채가 되어있을 때 확 하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거의 다 2008년도에 광림수도원에서 했던 세계화와 진리의 전달자를 다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 뜰채가 머릿속에 있으니까 우리가 요즘 배우는 공과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그렇게 뜰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우리들이 루이스 벌콥의 얇은 것 가지고 공부하는 것을 만족하는데 그것은 바보 같은 생각입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데 할 수만 있으면 제가 조직신학 책을 써서 아직 책으로 내지 말고 한꺼번에 묶어서 교리 반에서 쓰는 조직신학 책으로 빨리 엮어내는 것이 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구원론같이 생긴 것을 서론부터 시작해서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교회론, 구원론, 종말론 이렇게 7권을 써서 빨리 만들어서 그것을 기본서로 하여 열린 교회에 5년 정도를 다닌 사람이면 7권 정도를 모두 이해하는 수준으로 그렇게 꿈을 꾸는데 너무 바빠서 시간이 안 나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제 이런 것입니다. 그런 뜰채를 비교를 할 때 여러분들이 완전히 교리가 머리에도 없는 맹문이와 비교하면서 우월의식을 느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기준은 이시대의 생각 없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종교개혁 시대에 가면 입교하는데 3년이 걸립니다. 제일 먼저 십계명 1년, 주기도문 1년, 사도신경 1년 그렇게 해서 공부를 합니다. 여러분 기독교강요의 절반 이상이 십계명인거 아십니까? 1년을 배우고도 남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배워가야 합니다. 이제 보십시오. 무슨 문제냐 하면 아주 특수한 문제인데 엊그제 어느 학생이 나에게 글을 썼습니다. 총신대학에서 제가 강의를 했습니다. 벌써 1년이 되어 가는데 ‘목사님, 열린 교회 목사님의 목회를 우리 주위에 있는 목사님들은 특수목회라고 그러는데’ 여러분들이 장애인도 아닌데 왜 특수목회라고 그러는지 모르는데 왜 특수목회라고 그러느냐하면 어느 교회가 어떻게 하는데 열린 교회가 그렇게 한다고 하면 그 교회는 특수한 교회이니 이야기하지 말고 일반적인 교회를 이야기하라고 그런답니다. 요번에 사실은 지금 교리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못 들으셨을 텐데 인터넷에 들어오면 보실 수 있는데 지난 3개월 전에 ‘목회와 신학’에서 저하고 5시간 가까이 장시간 인터뷰를 해서 실렸는데 실리고 나서 상당한 반향이 왔습니다. 요새는 계속 교회교육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는 못하는데 이번 11월에 그것도 기장측 교회인데 교리와는 상관없는 교회인데 교단 전체에서 목회자 신년목회 세미나를 하는데 두 명이 주강사인데 나를 불렀습니다. 내가 하겠다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8월부터 하는 것이 있는데 내가 도저히 시간이 없어서 임목사가 내려가서 실무적인 것만 강의하는데 관심사가 늘어나는데 실제로 교육을 하는 교회는 너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어떤 고민을 하느냐하면 우선 교회 내적으로는 이 교리교육을 훨씬 더 심화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공부한 ‘교회와 하나님의 사랑’은 만약에 여러분들이 그 교재가 어려웠는데 지금 것이 훨씬 쉬운 것인데 그것도 뜰채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뜰채를 미리 가지고 있으면 엄청난 것들을 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교리를 계속 설교 그 자체가 엄밀한 의미에서 교리를 설교하지 않는 것은 그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형식을 논문식으로 하느냐 아니면 지금 시편 23편처럼 하느냐인 것이지 분명한 것은 교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이번에 교리는 구약과 성령에 있어서 각기 다른 성령의 견인, 신약과 구약에서 그렇고 성령의 기름부음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넘치는 기쁨과 희열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고 변화될 것이냐는 등등의 이런 문제들을 다룬 교리들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어떻게 엮어내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내적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느냐하면 훨씬 더 심화된 교리교육을 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초급 교리반이라고 저는 명명하려고 하는데 초급 교리반은 내가 보기에는 지금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준다고 그러는데 그것보다도 아예 교인들이 등록을 하면 이것은 새가족 성경공부가 끝나고 난 다음에 곧바로 들어가는 코스가 됩니다. 아니면 전도학교를 거치고 들어가든지 곧바로 들어와서 이것은 성장반의 연속성상의 코스로 만들어서 들어오면 아주 특별한 사정이 있는 사람 이외에는 새가족 공부가 끝나면 곧바로 교리반으로 집어넣어서 거기서 튀겨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본적으로 끝내고 그리고 이 교리교육을 심화해서 기본적인 교리교육을 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가을에 성화반을 해야 하는데 교리반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미 이수자들이 많아서 금년까지는 넘어가고 내년에 임명하는 것까지는 넘어가고 내후년 2012년부터는 아예 교리반을 수료하지 않은 사람은 서리집사도 주지말자고 교역자수련회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기간을 주어서 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 다음에 되지도 않는 교리도 모르는 사람들은 과감하게 제외하자고 해놓고 이것들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포괄해서 과감하게 교리교육을 시켜서 양산해내고 그 다음에는 진짜 중급 교리반에 들어와서는 이것을 상세하게 해야 합니다. 이야기했듯이 예를 들자면 일 년이 열두 달인데 우리들이 그중에 석 달은 성경공부반에서 성경공부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일 년에 한권씩 공부를 하게 된다면 서론부터 시작해서 종말론까지 일곱 권이니까 일 년에 한 코스씩만 들어오면 7년이면 교리 전체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우리들이 간간히 아까 집사님이 이야기했듯이 요새도 교역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런 현대사회나 철학이나 이런 것을 이해를 해서 뜰채를 만들어서 이 모든 것들을 같이 잡아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런 교육들을 강화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좀 더 커지게 되면 지금은 교회학교 교역자들만 하는데 장년교육 프로그램들을 거의 내 머릿속에서 나와서 부교역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것 말고 롱런할 수 있는 교육파트에 전문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교리들을 탄탄하게 공부를 하고 그렇게 하면서 필요할 때 그때그때 현대사상 같은 이런 것들도 우리들이 수련회를 통해서 접목해나가면서 우리들이 시야를 넓혀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들이 계속 교회 안에서 행해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히 바라는 바는 무엇이냐 하면 우선 우리들의 교역자들의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아져야하고 그리고 교인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교리를 체계적으로 세밀하게 배워 나갈 수 있도록 그렇게 교회 시스템들을 갖추어가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실은 루이스 벌콥만 마치고나면 약간 교만해집니다. ‘내가 교리반 출신이지, 중간고사도 보고, 기말고사도 보고 그랬지.’ 그럴 때 새가족 반에서 교리반에 들어오면 뜨악하듯이 교리반 중급반에서 ‘아, 우리가 여태까지 배운 것은 거의 기본적인 것의 로드맵이었구나. 여기서 이렇게 상세하게 다루는구나!’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은 13챕터로 되어있는데 그런데 그것을 한 학기에 맞추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분량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렇게 조밀하게 공부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부흥과 개혁사하고 이야기를 해서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이 만화로 나옵니다. 내용을 줄이지 않고 그 내용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만화를 그리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까 장로님이 이야기했듯이 여기가 무슨 신학교냐고 그러는 사람들에게 만홧가게라고 하면서 읽어보라고 그럴 것입니다. 아이들도 약간 어려워도 그림이 있으면 접근합니다. 그런 식으로 많이 만들어야합니다. 이번에도 ‘어린이 싫증’이 나왔습니다. 우리교회 지체들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만들었는데 정말 예쁘게 나왔습니다. 다음 주에 사인회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이런 교리를 장년들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 대해 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교회가 지금은 아직까지 그렇게 안 되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모르지만 만약에 교회가 커지면 커지는 대로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제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교회 안에 교재편집실을 하나 만들어서 예를 들자면 설교가 시편 23편이 끝나면 끝나고 나서 몇 달 있다가 함께 그림을 그려가고 동화책처럼 만들면서 끝날 때 책이 같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강의가 끝나고 나서 요만한 책으로 만들어서 공부를 하듯이 주일학교로 그냥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돈이 있으면 됩니다. 돈하고 사람만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교회 안에도 그런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의뢰해서 만들면 됩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지금도 ‘싫증’을 교재로 만드는데 학부형들이 2,000부만 팔아준다면 그러면 교회는 돈을 남길 필요도 없고 다 원가계산을 해서 떨어집니다. 말하자면 그만한 것을 소비시켜줄 시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점이 뭐냐 하면 계속해서 교재를 찍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아주 양질의 교재로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도 보시면 설교가 시편 23편이 끝났는데 두 달 만에 그림이 들어가 있는 교재가 딱 나왔는데 그 설교를 엄마, 아빠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애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선 관심이 많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계속 학습으로 엮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사람들을 기도하게하고 매달리게 해서 이 지식이 지식으로만 돌지 않고 경건을 향하도록 그런 식으로 만들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앞으로 목회하는데 5년 안에 교회가 어느 정도로 변화가 올지 가늠을 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반드시하고 싶은 것이 교회학교뿐만 아니라 교회교육 전체를 Directing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서 저기 소망부 교육부터 시작해서 영아부 교육까지 제가 지난번 구역장수련회 때 이야기한 것처럼 태아를 위한 교리교육, 태어가 속에서 일어난 일을 3년간 기억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자기가 겪은 일을 3년간 기억한답니다. 그러면서 이 속에서 태아에게 교리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음악소리와 함께 교리교육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아에게 정기적으로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태어나면 또 들려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의식 속에서 교리가 세워지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런 CD도 만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뱃속에 잉태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게 함이로다.’ 하나씩 하나씩 이렇게 심어야합니다. 그런 식으로 저기 노년 부까지 전체적인 그런 계획들을 세우고 투자해서 그것을 엮어내는 것입니다. 요즘에 무엇을 검토하고 있느냐하면 출판사를 하나 세우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열린 교회라는 마크가 찍히니까 다른 교회에서 교재로 쓰기가 불편하다고 그럽니다. 그럴 것 아닙니까? 부목사가 사가지고 갔는데 담임목사가 ‘저 친구는 열린 교회에서 왔나?’ 그럴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 교회와 상관이 없는 출판사를 설립해서 그래서 찍어서 보급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교회안의 교육시스템을 바로잡고 계속해서 교회교육을 시키는데 아직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지금 교리교육의 이수수준이 어느 정도가 되었는지 아십니까? 내 생각으로는 70%정도 될 것 같은데 아직 멀었습니다. 지난번에 어느 교구에서 통계가 나왔는데 50%, 60%정도였답니다. 이것들을 아예 등록을 하고 여태까지는 이것을 천천히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대형 강좌로 만들어서 250명씩 300명씩 들어오게 만들어서 제게는 매년 하는 것이 부담이 됩니다. 그러니까 2년에 한번이나 3학기에 한 번씩 돌아오게 만들어서 한번에 300명씩 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량생산으로 해내고 그다음에 진짜 교리반 구원론코스, 기독론코스, 등등 그것은 나하고 하거나 부교역자가 돌아가면서 전담자를 만들어서 그것을 해나가게 하고 사상스터디도 하면서 훨씬 더 교육적인 체계들을 체계적으로 잡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의 경우에는 빨아들이는 속도가 굉장히 강하니까 여름에 종교개혁사를 특강해주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는데 어쨌든 역사나 그런 강좌들을 열고 이번에 우리들이 성지에 가는데 무엇을 생각하느냐하면 이제 지금 보면 소득수준이 높아지니까 해외여행을 한두 번씩은 가는데 동남아를 가서 믿지도 않는 사람들과 가서 춤이나 추고 유행가나 부르다고 오면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종교개혁사를 쭉 살펴보고 언젠가는 종교개혁사 강좌를 열 것입니다. 그것은 꼭 배워야합니다. 쭉 배운 다음에 그 코스를 마친 사람들 20명이나 30명을 묶어서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 신앙의 뿌리가 어디서 왔는지 살펴보면 그 감동이 성지에서 받은 감동과 못지않았습니다. 작년에 9박10일 동안 6,500㎞를 탔는데 휴가라고 그래서 갔다 왔는데 휴가하고 싶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새벽 4시 반에 호텔에 넣는 것입니다. 4시 반에 일정이 끝난 것입니다. 그때는 진짜 휴가가 아니라 일부러 공부하러 갔습니다. 갔는데 그 감동은 정말 엄청났습니다. 마음속으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간단하게 생각하는데 이게 피를 말리면서 건너온 신앙입니다. 그래서 칼빈이 목회했던 성삐에르 예배당에 가서 무릎을 꿇었던 그곳의 의자에 앉았는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루터교회를 갔을 때는 안 그랬는데 칼빈교회를 가니까 몸도 약한 사람이 시달리면서 그렇게 한 것이 꼭 나를 본 듯했습니다. 거기서 핍박을 받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요번에 우리가 성지순례를 가서도 사실 저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고 진짜 가는 날까지도 가기 싫었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하도 가달라고 애원을 해서 갔는데 오면서 감사하다고 그랬습니다. 정말 진짜 가슴이 뭉클하면서 ‘아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이 이런 삶을 살았구나!’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것을 교회의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넣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성지순례, 선상에서 우리가 요한복음 21장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가지고 제가 설교하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면서 예배를 드렸는데 정말 은혜로웠습니다. 성지순례, 소아시아의 사도행전의 역사, 그 다음에 유럽으로 건너가서 종교개혁사, 저쪽 영국으로 가서 영국 청교도의 핍박받는 역사를 해고 기회가 된다면 미국선교사까지 넘어가면 좋은데 너무 긴 이야기이고 크게 4개로 나누어서 가면 됩니다. 요즘은 환갑이라고 여행을 보내주고 그러는데 깃발 들고 따라가 봐야 별 볼일 없습니다. 그런 여행을 가서 노인네들은 방도 편안하게 해주고 해서 그분들이 교리를 배우면서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종교개혁자들과 아주 친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런 종류의 여행을 하나의 영적인 프로그램으로 장기적으로 사용해서 하면서 어떤 식으로든지 아까 이야기했듯이 현대문화에서 일어나는 이런 현상들을 우리들이 배척하면 안 되고 끌어안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교회교육을 이끌어갈수있게 되기를 저는 간절히 바라고 자라나는 세대들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면 너무 길 것 같아서 생략하겠습니다. 장년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교회 안쪽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교회 밖으로 보면 이런 생각을 해보십시다. 우리 자라나는 아이들이 일찍이 회심하고 철저하게 교리를 배우면서 신앙생활을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장년부 교육을 제대로 시키려고 애를 쓰면 결국은 그 결과물들이 어린이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공부를 하면서 자라게 됩니다. 더군다나 이번에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지만 대안학교문제도 계속 의논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실은 정확하게 마음이 중간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하고 싶습니다. 나는 하면 초등학교부터 하면 참 좋겠다. 몇 개월 지난 다음에 내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왜냐하면 중고등학교부터 해도 좋은데 여기에서 회심하고 은혜 받은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초등학교 때부터 해서 초등하교 애들이 올라가고 올라가서 중등부, 고등부를 올라가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 식으로 교육을 시키면 어떻겠는가 생각할 때 너무 하고 싶고 그리고 교회 안에는 이런 교육을 위해서 헌신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선교적인 마인드를 강력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다른 교회를 보니까 연봉 3,600정도를 준다는데 학교선생님 월급 정도는 주어야지만 이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계속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소신껏 가르치게 하면 그 아이들을 야단도 치지 못하는 학교선생을 하는 것 보다야 훨씬 더 보람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아득합니다. 내가 그것까지 해낼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누군가가 돕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하면 좋을지 모르지만 하여튼 그런 문제를 우리들이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 밖으로 보면 이렇게 자라나는 세대들이 회심을 하고 우리가 철저히 교육을 시켰다고 하더라도 결국 우리는 가는 세대입니다. 저는 15년 정도 남았습니다. 싫든지 좋든지 저는 떠나야합니다. 그러면 잠깐입니다. 열린 교회를 개척한 기간보다 짧은 기간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러면 그렇게 진행하고 나면 우리 아이들이 과연 이런 상태를 내버려두면 자신들이 그 아이들이 그 프로도 열린 교회서 생활하며 좋은 신앙으로 자라났다고 생각했을 때 그 아이들이 청년이나 성년이 되었을 때 열린 교회에 있는 동안에는 열린 교회 목회자들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제대로 된 목회자들을 쓸 테니까 그 사람들이 그들을 만족시켜줄지 모르지만 이 아이들이 흩어져서 산지사방으로 떠났을 때 아마 제대로 된 목회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그런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교회에서 자라난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자란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러면 도대체 다음 세대에 확실하게 교회를 붙들어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냐 하면 그래서 제가 몇 년 전부터 진실하게 고민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학교를 세워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반적인 신학교가 아니라 지금 무안에서 하고 있는 신학교 같은 특수한 신학교를 세워서 정식으로 그래서 거기에 적어도 지금 한국 상황이 얼마나 어려우냐하면 여러분들이 이름을 알고 있는 예전의 괜찮게 일컬어졌던 신학교들이 다 자유주의화가 되어버렸습니다. 뭐냐 하면 교수들 자신이 젊은 사람들이 공부는 하고 왔는데 신앙의 체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전부 다 자유주의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유주의화 되어가는 그런 상황 속에서 향후 10년 후에는 지금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번져갈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속에서 이제 미래의 양떼를 책임질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것은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바대로 우리가 이렇게 교리를 중시하고 목회자 자신이 끊임없이 탐구하고 소위 이야기하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신학적인 목회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길러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교회 안에서 교리교육을 시키는 것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신학대학원 대학교를 만들어서 지금 목사가 될 수 있는 과정을 3년짜리로 만들게 되면 기존에 있는 교단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을 안수를 줄 수 있는 교단이 세워져야하니까 그것은 좀 차지하고라도 우선 3년을 배운 다음에 2년 공부하는 과정, 그리고 MA과정, 박사과정, 목회자 재교육 과정 등으로 이루어진 그런 대학원 대학교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그러는데 지금 무안신학교를 보면 고정적인 교수들이 문제가 되는데 이런 교수들을 지금 현재 우리들이 학교를 할 때에는 열린 교회와 정확하게 신학적 노선이 일치하고 확신을 가지고 있는 그런 학문과 경건을 겸비한 젊은 사람들, 지금 현재를 기준으로해서 40대 이전의 사람들을 잘 물색해서 이 사람들을 철저하게 훈련시키고 교회가 관계를 맺어서 그래서 열린 교회가 추구하는 신학적인 노선을 가지고 이사람들이 학교의 교수가 되게 해서 그 교수들이 일치된 신학적인 생각을 가지고 무안에 가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여기서도 국내목회자들을 재교육하고 신학교의 목사 되는 과정을 마치고 부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여기에서 연장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해야겠다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최고의 개혁신학이 추구하는 그런 제대로 된 학교가 세워져서 거기에서 만약에 제대로 된 학생들이 나와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면 그러면 저 한사람이 오래전에 25년 전에 청교도와 개혁신학을 만나는 것이 계기가 되어서 지금 교회를 이런 식으로 이끌어가게 되듯이 그러면 그렇게 해서 지금은 아예 신학교를 세울 꿈까지 갖게 되었다면 그러면 그 학교를 통해서 그렇게 나오는 사람들이 흩어져서 만약에 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다시 퍼트린다면 사실은 맨 처음 종자 씨는 한줌밖에 안되어도 그것이 엄청난 파급적인 효과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놀라운 전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한국에서조차도 이미 개혁신학은 매력을 잃어갑니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듯이 신앙의 체험이 없는 교수들에 의해서 성경보다는 이성을 주장하고 복음적인 경건보다는 도덕적인 삶을 강조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한국에서 좋은 분들하고 계속 관계를 맺고 있는데 지극히 소수입니다. 그래서 나의 이런 꿈들을 한 번 더 광범위하게 펼치고 그래서 학자들의 후원을 받기위해서는 이것의 지경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틈이 나는 대로 외국의 학자들과 교류하는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영어를 하기 어렵습니다. 조엘 비키 목사님 교회를 갔는데 사모님은 ‘목사님은 미국에서 몇 년이나 사셨어요?’ 그래서 열흘이상 산적이 없다고 하니까 깜짝 놀랍니다. 말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는데 잘 들리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많은데 어쨌든 그래도 의사소통이 되니까 좋은 교수들과 만나서 끊임없이 연대를 갖는 이유가 담임목사가 왜 갑자기 국제바람이 들었냐고 누군가가 그러는데 국제바람이 든 것이 아니라 나로서는 아주 치밀한 계획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하면 만약에 미래에 학교를 만들면 그런 학자들과 교분을 가지고 같이 학교에 Involve해서 개혁신학에 커다란 연대를 구성해서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들이 줄리어드 교수님이 온 것을 보았지만 교수들이라고해서 다 따분하고 은혜를 못 끼치지는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에 통역을 하면서 은혜를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 집사람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정도의 탄탄한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많지 않은 것입니다. 신학적인 것이 느껴지는데 그 교수님은 나보다 열댓 살이 어리지만 워낙 열렬합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의 모든 학생들이 다 존경합니다. 마이클 호튼 교수와도 같이 만났습니다. 마이클 호튼 교수도 우리교회와 만나는 것에 대해서 너무 행복해하고 좋아합니다. 이렇게 해서 연대를 이루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날 제가 이렇게 해야지 하고 계획을 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세계의 석학들과 엮어지게 만드시고 교분을 갖게 만드시고 그분이 또한 나와 우리교회에서의 사역들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홈피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홈피에 들어와서 교회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홈피를 잘 만들라고 날마다 주문하는데 거기에 들어오니까 논문도 나오고, 설교 통역한 것도 나오고, 소식도 나오고하니까 그게 열린 교회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플란팅가 총장님도 그렇게 해서 만나서 8월에 우리교회에 오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느 날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에 비서로 있던 최화영 간사가 ‘목사님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셔요?’ 어쩜 이렇게 사람이 인위적으로 계획을 짜지 않았는데도 아주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옆에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놀랍게 잘하고 하나님이 그런 꿈을 주시려고 그랬는지 스패이커르 교수의 장서도 기가 막히게 연결이 되어서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9월에 가서 만나고 11월에 가서 물건을 들여오려고 하는데 정말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외국학자들이 책을 그렇게 물론 우리들이 대가를 지불하겠지만 그렇게 쉽게 넘기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놀라운 사건이 생겼습니다. 독일의 굉장히 중요한 칼빈주의 학자가 있는데 이번 25일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서재를 그냥 그렇게 커다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유족들을 설득해서 나한테 넘겨주도록 자기가 힘을 써보겠노라고 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억지로 하지 않는데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보십시오. 학교야 어느 날 돈이 있어서 건물을 세우고 교수는 연봉을 준다면 와서 줄을 서겠지만 학생들이야 학교가 제대로 지어지고 교수들이 빵빵하고 장학금을 많이 준다면 오겠지만 책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슈퍼에서 사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오면 못씁니다. 왜냐하면 그게 여러 해를 거쳐서 서서히 모아야지만 선별되는 것이지 20억을 주고 한꺼번에 주고 ‘열 트럭 들어오라고 그래!’ 그러면 뭐가 들어오는지 어떻게 압니까? 이런 학교를 허가를 내려면 도서관이 있어야지만 허가가 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나는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한번 이 물을 따라가면 우리가 어디서 만나게 될까?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학교에 대한 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지금 잘 보시면 우선 칼빈부터 예를 들겠습니다. 칼빈 선생이 만든 학교가 무엇입니까? 제네바 아카데미입니다.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비텐베르크에서 신학교를 세우는데 루터신학교입니다. 찰스 스펄전은 학자도 아니고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세 살부터 청교도 책과 같이 놀았다는 그런 사람이 목회를 하면서 이 사람도 똑같이 목회자학교라고 그래서 Pastoral Collage를 만들어서 그래서 월요일인가 목요일에 가서 정기적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미국으로 이미 넘어간 초창기에 청교도가 만든 학교가 바로 통나무신학교였습니다. 거기에서 걸출한 설교자 7명이 배출되면서 미국전체를 신앙적인 나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LTS라는 학교를 세웠는데 마지막에 목회를 모두 하면서 어떻게 이 신앙이 다음 세대로 제대로 승계될 수 있겠느냐는 문제를 고민하다가 마지막으로 넘어가는 카드가 나 혼자 복음을 전하고 몸부림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고 조직적으로 이런 사상을 강력하게 붙들고 있는 그런 주의 종들을 길러내야 한다는 쪽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무안 CRTS를 하면서 우리들이 한 학생을 첫해에 파트타임으로 교육을 시키는데 1,000만원을 투자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현재 올해 29명이 졸업하는데 2억 원 정도 소요되는데 그러면 사실은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런 학교를 세워서 만약에 일 년에 그것의 두 배 정도만 학교에 투자할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일도 아니고 학생이 400명 이상 모이면 자립이 가능해집니다. 돈 문제를 떠나서 우리가 할 수 없으면 못하지만 한다면 우리들이 그렇게 제대로 된 학교를 만들어서 지금은 신학교학생들이 다닐 때 신학교 학교 자체가 응집력이 없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구속력도 없고 응집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기 위한 한 과정으로 그곳을 다녀가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스승도 없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소규모의 학교를 하면서 철저하게 실력 있는 교수하고 외국에서 저명한 개혁신학자들을 교수로 초빙해서 한 번에 이 학교가 주목을 받는 학교가 되도록 만들어서 후세에 목회자를 길러내는 그것이 우리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런 일들을 위해서 우리들이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교회가 부채를 갚아야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내년부터라도 우리들이 해외에 있는 신학생들을 장학 사업에 신경을 써서 인연을 만들어야하겠다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울 때 도와주는 100원은 도움이 필요 없을 때 도와주는 10,000원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렇게 해서 열린 교회와 관계를 갖게 만들고 이렇게 해서 학자들을 길러나가고 어느 교회도 보니까 자기네들이 장학금을 천불씩 2년 동안 지급하면서 장학생으로 선정된 사람들을 전부다 주어서 각국에서 전부 자기네 교회로 불렀습니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수련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이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새로운 안목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사람들을 길러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공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열린 교회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펼쳐나가고 그리고 우리의 사역을 국제화해서 이 개혁주의적인 연대를 잘 이루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금 밖에 나가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 그리고 신학교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어떻게 말하면 내 자랑을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개혁신학에 관한 책을 제가 준비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출판하는 것으로 하고 지금 두 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존 오웬의 신학을 번역하고 외국인교수는 그것을 번역을 해서 두 권을 내도록 권고하셨습니다. 일단 그 책을 제가 번역을 하고 한권은 제가 쓰고 해서 그렇게 해서 담임목사의 사역이 말하자면 영어권의 사역이 된다면 그래서 한국에 있는 독자들처럼 영어권에서 독자들을 거느릴 수 있다면 꿈같은 이야기지만 동양 사람들에게 쉽게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하시면 또 모릅니다. 처음에 글을 썼을 때도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만드시니까 지금은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12월 안으로 책을 두 권을 일단 원고를 만들어서 미국으로 보내고 나름대로 개혁신학에 대한 영향을 끼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하는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 건물 하나면 학교가 됩니다. 그리고 학교하고 약정을 맺어서 제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학교하고 약정을 맺어서 가능하면 학교가 어디에 가든지 몇 년 동안 여기서 허가가 난다면 몇 년 동안 옮기지 마라. 예를 들면 ‘50년 동안 일요일은 우리교회가 쓰겠다.’ 그렇게 해서 사용권을 확보해놓고 협의를 해나가면 나중에 솔직히 법률상으로 그렇게 내놔야지만 학교가 허가가 나지만 낮에는 노는 것 아닙니까? 세를 주지 않는다면 노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깝습니까? 1층, 2층이 다 놀고 있는데 얼마나 아깝습니까? 나와서 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 있게끔 만듭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아주 마음이 안타까운데 여러분들은 지금 목회자만 관심이 있지만 나의 관심사는 진짜 좋은 교수들을 신학교에 보내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교수 한사람을 만나면 학생들의 인생이 바뀝니다. 목회자를 만나면 여기서 신앙이 변화되지만 변화된 신앙을 가지고 간 사람이 변화된 교수를 만나게 되면 신학 자체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외국에서 박사공부를 한 학생들 몇 명이 한국에 들어와서 나를 만나겠다고 해서 내가 만나주었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침체했을 때 왜냐하면 머리가 희어질 정도로 복잡한 이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을 공부해서 교회에 가서 보따리를 풀 수 있을까? 그러다가 우리교회에 와서 우리교회가 사역하는 것을 보면서 풀 수 있겠다고 용기를 받고 가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하고 갔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펼쳐나갈 수 있는 장들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지성적인 면에 있어서 거의 외도를 하다시피 하니까 말씀이 설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학자들을, 좋은 사람들을 후원하고 좋은 젊은이들이 제대로 신학을 공부하게 만들어서 학교에 가서 봉사하게 하고 그래서 이것이 우리 교회 같은 몸부림이 아니라 연대를 이루면서 나가는 그런 것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우리들이 영국목회자 세미나나 미국신학교 섬김이나 이런 것들을 계획하고 있는 것입니다. 10월이 되기 전에 예산을 짜기 전에 기구들을 개편할 것입니다. 분과도 조정할 것입니다. 더 세울 분과는 더 세우고 위원장도 더 세워서 임명을 하고 내년도 예산 짜는데 다 들어가서 이 일들을 함께 해나갈 수 있도록 우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지금 신학대학하고의 관계라든지 이런 것을 계속해나가면서 개혁주의적인 연대를 이루어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우리들이 선교적인 차원에서의 신학적인 문제인데 아까도 우리가 잠깐 이야기했습니다만 근대의 문화들을 이해하고 현대인들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개혁신학을 하고 청교도를 한다는 교회들은 선교를 하지 않습니다. 커다란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 현대화의 접촉점이 너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와 접촉하고 현대문화를 이해한다는 것과 그 다음에 야합해서 세속화된다는 것 사이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면에 있어서는 우리가 좀 너그러운 면을 가져야합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언젠가 설교 속에서 우스갯소리로 그런 예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장로님이 예배당에 올라가서 주일예배시간에 기도하시는데 기도하다가 흐느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드디어 우리교회에도 기타가 들어왔습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흑흑’ 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동조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뭐냐 하면 현대문화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김 목사가 요즘에 나오는 가스펠송을 좋아할 것 같습니까? 안 좋아할 것 같습니까?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10년 내로 내 돈을 주고 가스펠송CD를 산적이 없습니다. 나는 한국가수들이 부른 가곡도 듣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미안하지만 너무 아닙니다. 그래도 한국에 몇몇 가수들은 있습니다. 신영옥, 조수미,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은 형제, 몇 사람이 있는데 그 외에는 아닙니다. 물론 나보다는 잘 부르지만 말입니다. 내가 부르는 정도 가지고는 안 되지 않습니까? 정말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굉장히 예민합니다. 그런데 가스펠송을 저것을 왜 부르냐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도 교회 안에서 부르는 것을 허용합니다. 지금도 나는 예배에 그렇게 가스펠송을 막 부르다가 덜렁 올라가서 특강하듯이 설교하는 것은 싫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에 청빙을 받아가서 설교초청을 받으면 군말 없이 설교합니다. 지금도 저는 성가대 없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만약에 열린 교회를 떠나서 어느 교회에 청빙을 받아서 갔는데 성가대가 이미 있다면 그러면 나는 목숨을 걸고 싸워서 성가대를 없애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어디서 깨달았느냐하면 칼빈이 칼 같은 사람 아닙니까? 이름도 칼입니다. 그런데 충격을 받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분이 목회하던 예배당에 갔는데 가톨릭의 속상이 그대로 다 있는 것입니다. 저것은 칼빈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래서 역사를 이해해야하는 것입니다. 칼빈이 그런 것을 남겨두었을 리가 없습니다. 자기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어디 예배당에 청사 뭐 오만가지가 있는데 칼빈이 설교하고 있는데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습니까? 그것을 내버려뒀겠습니까? 그런데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왜 그러느냐하면 당시에 석상파괴 운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앞장섰던 사람이 존 낙스였는데 존 낙스는 지금도 스코트랜드에 가면 욕을 무지하게 먹습니다. 왜냐하면 아예 오백년 전의 일인데 그것을 남겨두었습니다. 그 지역에서 제일 큰 가톨릭교회를 때려 부숴서 때려 부순 벽돌로 개신교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것을 부서진 채로 그대로 놔두고 두고두고 존 낙스의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이것은 옳지 않지만 시와 합의가 있을 때 이것을 부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석상가지고 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기서 참된 복음진리를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역시 참 목회자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갔다 와서 그런 면에 있어서 제가 훨씬 더 너그러워졌습니다. 그래서 ‘가스펠송을 부르고 싶으면 불러라. 그런데 나는 별로 안 좋다.’ 지금 설교시간에 가스펠송이 나오는 것은 어떻습니까? 20년 전 가스펠송입니다. 어느 청년이 지나가다가 ‘엄마, 목사님은 가스펠송 실력이 놀라워! 우리도 모르는 곡이야!’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인데 알 리가 없습니다. 그런 문화를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문화를 역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현대인들은 소외되어있고 동아리들이 모이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그것은 현대정신이니까 모이지 못하게 하지 말고 모이게 해서 거기서 성경을 가르치고 교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몰려다니면서 여행을 한다면 여행을 가지 못하게 하지 말고 어디 본 교회를 빠지고 2주일씩 여행을 가느냐고 하지 말고 ‘날 따라와 대신 동남아가서 술 먹지 말고 종교개혁지를 가서 은혜를 받자.’ 그러는 것입니다. 역공을 해야 합니다. 원래 일요일은 로마시대 때에 태양신을 숭배하던 날이었습니다. 기독교에서 역공을 해서 이날 주일을 삼아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훌륭하게 문을 극복해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극복을 하면서 그러면서 이런 것들을 기독교화해야지 현대문화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반감을 가직 마치 그런 것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아바타는 보지 말라고 하고 무슨 음악을 트니까 뉴에이지니까 틀지 말라고 하면 안 되고 보고나서 그것들을 세세하게 해석을 해서 어떻게 현대정신이 파고들어갔는지를 가르쳐주어서 메시지를 읽어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합니다. 나는 열린 교회가 이만큼이라도 성장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나의 이런 열린 마음이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내가 어느 날 ‘뭐야 이게 여자들이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데 한복도 입지 않고 말이지…….’그러면 되겠습니까? 어느 교회에 가니까 20년 전인데 쪽을 찌고 까만 치마에다가 하얀 저고리만 입고 와야 합니다. 그리고 장식이 달리지 않은 구두를 신어야하고 그리고 마룻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 올 사람이야 오겠지만 그렇지만 교회가 사람들을 품어 안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쪽을 찌지 않았어도 주님을 신실하게 믿고 싶은 사람이 있고 쪽을 틀었어도 날라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인이 시비를 걸더랍니다. 어디 거룩한 성전에 플렉시글라스가 뭐냐고 우드가 올라가서 강대상을 만들어야지 당신 세속적이라고 그랬다는데 유리강대를 올려놓은 것 가지고 그럽니다. 나는 유리 강대가 싫지만 나는 강대재료가 무엇이냐가 중요하기보다는 우드강대에서 세속주의를 외치는 것보다는 아예 플렉시글라스 강대에서 참된 개혁주의를 외치는 것이 훨씬 훌륭하고 장중한 파이프오르간에서 개혁주의적인 예배를 그대로 드리면서 세속주의를 설교를 하는 것보다는 사실 유행가 같은 가스펠송을 부르면서 오히려 설교시간에는 장중한 개혁주의를 설교하는 것이 오히려 나는 교회에 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두 개가 딱 같이 맞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만 그것이 어려울 경우에는 열고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고 그렇게 해서 올바로 가는 것이 개혁주의이지 무엇이 참다운 개혁주의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교회에서는 장로님들이 상당히 나를 닮아서 훨씬 더 부드럽고 열리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에서 훨씬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에 대해서 반감을 품으면 안 되고 그것을 불쌍히 여기고 끌어안으면서 가슴에 안고 설득을 하고 고쳐서 성경의 복음의 코드로 돌아오도록 만들어야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이 문화에 대해서 훨씬 더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들이 지금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아이폰 용 홈페이지가 나오는데 그래서 무엇이 만들어지느냐 하면 애플의 어플리케이션 속에 무료로 열린 교회 어플을 다운받을 수 있게 만들어서 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을 330,000원 주고 만들었습니다. 월 330,000원이 아니라 330,000원으로 아이폰 용 열린 교회 홈피를 만들었습니다. 잘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너무 깨알 같아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폰 전용 홈피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기능만 빼서 아이폰 속에 넣는 것입니다. 지금도 핸드폰을 툭툭 쳐서 나오면 설교를 쭉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개발되면 우리는 공격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 가지고 게임을 하고 그러는 것을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가서 선교의 도구로, 문화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화되면 나는 계속해서 성경 한 장, 한 장 나가는 각론도 ‘아이폰과 함께 66권 성경 속을 달린다.’ 그렇게 해놓고 그리고 교리묵상 같은 것을 편집해서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발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신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신학을 파괴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말하자면 이의제의하마 그것을 사용해서 그것을 제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문화를 딛고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서 훌륭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1999년도 홈피를 런칭 했을 때 대한민국에 홈피가 있는 교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홈피가 되고나서 이제 사람들은 교회에 가보지 않습니다. 홈피를 둘러보고 설교를 다 듣고 갑니다. 교회를 안 돌아다니는 사람이 교회소식은 더 잘 압니다. 이런 문화들을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연구를 말로만 하지 말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이런 것들도 엄청나게 파급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이용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이런 방안들을 우리들이 강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셔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런 것들을 해나갈 수 있는 좋은 일꾼들이 교회에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담임목사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시행하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고 아주 고급의 인력들이 교회에서 봉사하고 위원장이나 간사나 교역자로 섬길 수 있도록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두서없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평소에 제가 교회의 중직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권사가 되시고 안수집사가 되시는데 내가 보기에는 젊으신 분도 많이 계시지만 20년 정도를 하면 다 물 건너가지 않겠습니까? 벌써 김남근 장로님, 이대환 장로님도 내년이면 7년이 끝나는데 잠깐입니다. 더군다나 우리교회는 장로님이 에누리 없이 단임제니까 여러분들이 7년 동안 잘해서 열린 교회의 역사가 남는 장로가 되시기를 바라고 그리고 권사님들은 연세가 드셔서 무릎에 바람나면 부르는 사람도 없고 기도나 하시라고 그럽니다. ‘무슨 행사에 무엇을 도와줄까?’ ‘기도나 해주세요.’ 그러는데 그때가 되기 전에 꽃 같은 나이에 그래봐야 10년 될까요. 길어야 15년인데 그렇게 열심히 해서 안수집사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린다면 아마 오늘 우리들이 섬기는 작은 섬김이 세월이 지나고 나서 우리나라 교회의 역사에 커다란 한 흐름에 저항하는 그런 하나님의 역사 속에 우리들이 같이 동참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섬김에 충분히 보상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고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정도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