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에게 순순히 복종하라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장로교는 사람들이 그 제도가 좋게 생각하든 안좋게 생각하든 상관이 없이 장로교에는 장로교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대의민주제입니다. 무슨뜻이냐면 교인들이 자유롭게 원칙에 입각해서 사람을 세우고 그 사람에게 장로직을 맡겨서 교회에 관한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당회 이외에는 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관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집사의 권한을 이야기하는데 집사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고 하나 있는데 봉사권이 있습니다. 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제도가 장로교의 근간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지역교회가 하나의 사람이라고 하면 영적으로 머리는 그리스도이신데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 되어서 교회의 의사를 결정하는 뇌의 작용들을 장로들의 모임인 당회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질서를 따라서 그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실제적인 교회의 운영들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제 설교가 절대로 감정을 가진 설교라고 생각하지 말고 일년 52주중에 이런 설교를 하는 기회가 너무나 없기 때문에 오늘 제가 맘 먹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특별히 교회의 내규에 대한 개정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저는 마음을 비웠습니다. 여러분들이 허락을 하면 하고 여러분들이 허락을 안 하면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장로교 교회 통치의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과 대조적인 형태가 회중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회중제는 아무도 그런것은 없고 담임목사가 목회 하고자 하는 것을 연초에 공동의회에 회부를 해서 공동의회에서 토의를 해서 통과가 되면 누구에게도 제약을 받지 않고 담임목사가 소신껏 목회를 하고 교회 전체 앞에서 연말에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중제도입니다. 그리고 감독제도가 있는데 감리교에서 이런 제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쨎든 장로교이고 여러분들이 여기에 등록을 하거나 아니면 세례를 받고 싸인을 한 순간 여러분들은 장로교를 따라 하기로 된 것입니다. 저도 장로교의 많은 것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저의 목회적인 생각에 잘 안 맞는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자기 마음대로 벗어 버리면 안됩니다. 제가 장로교 목사이고 장로교 목회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까... 그래서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듣고 오해 하지는 말고 여러분들이 몇해동안 해 오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언젠가 한번 가르쳐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첫째는 교회에서 당회만이 교회 전체의 굴러가는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하게 되어 있고 그리고 거기에서 결정하는 것이 교회 전체에 대해서 귀속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면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당회의 결정을 아주 하챦고 그리고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소수 이지만 있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잘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장로에 임직하거나 집사가 되거나 혹은 세례를 받을때 맨 마지막에 서약한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해 보십시오. 교회를 화평케하고 일치를 이루며 그리고 관할의 치리에 복종하겠느뇨 라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교회가 당회를 통해서 결정되고 다스려가는 이 모든 결정에 대해서 교회 안에서 복종을 하겠느냐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만약에 당회의 결정이 성경의 진리에 어긋났다든지 복음과 정면적으로 모순되는 명백한 결정이라면 여러분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당회에 이의를 제기해서 그 결정에 대해서 재고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들이 불평불만을 하고 당회의 결정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냉소적으로 만약에 행동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아주 중대한 도전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장로들이(우리 교회를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로 다워야 말을 듣지 그리고 새벽기도도 안나오는것부터 시작을 해서 장로라고 해서 자기가 뭐 특별히 한 것이 있어? 학교도 못 나오고 배운것도 없이 무식하고... 이런식으로 하면서 그러므로 거기에서 결정된 것에 대해 나는 동의 할 수 없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회로서의 권위와 결정의 무게는 그 사람이 학교를 어디 나왔나 새벽기도를 나오나 안 나오나 그리고 그 사람의 인격이 고매한가 아닌가 그럼 그런 사람을 왜 뽑았습니까?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에게 할 말이 많습니다. 저는 하늘에 맹세코 누구도 여지까지 장로 되게끔 밀은 사람이 없습니다. 육개월전에 중립을 선언하고 전부 다 여러분들 자치적으로 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덧붙였습니다. 아무리 못된사람 여러분들이 뽑아주면 뽑아준대로 저는 같이 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죠? 여러분들이 뽑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런 논리를 가지고 당회의 결정에 대해서 냉소하고 그리고 장로들을 사석에서나 공석에서나 간간히 비방하고 그리고 비난하는 그런 것들은 교회에 대한 중대한 도전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다 자기 잘난 사람들이 살아 가니까 일단 정권을 잡은 사람이건 누구이건간에 누군가를 인정하기만 하면 생각이 없는 팔불출이 되는 것입니다. 일단 한번 욕을 하고 봐야지만 의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서의 이야기이고 교회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자 생각해 봅시다. 장로를 뽑았는데 그 사람이 돈도 여러분들 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도 여러분들은 회사원인데 그 사람은 그룹의 회장입니다. 그리고 재산도 많습니다. 그런데다 신앙도 좋습니다. 키도 큽니다. 그리고 목소리도 아주 근사합니다. 그리고 어디에 세워 놓아도 모지방이 있어서 폼이 납니다. 공항에 담임목사 마중을 나와도 머리도 히끗히끗한 사람들이 돈도 있어 보이고 금테 안경 쓰고 보디가드처럼 쭉 나타 납니다. 그럼 좋겠지요? 그런데다가 평신도는 아주 쫌팽이라서 일년 삼백육십오일이 되도 지체들한테 점심 한번 안 사는데 통도 큽니다. 전 교인 제가 저녁 사겠습니다 이럴 정도로 통도 큽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이 있다고 하면 평신도인 우리는 도와줄까 말까 그리고 오천원짜리 가지고 왔다갔다 하는데 이 사람은 오십만원이고 백만원이고 도와주면서 쓰시라고 돈이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우선 살고 봐야지 그런 사람들만 장로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장로들이 여러분들에게 장로가 되겠습니까? 더 좋은 교회가지... 그러니까 하다 보면 나는 대학에서 박사 공부를 했는데 저 사람은 중학교 밖에 못나온 장로가 있을 수 있고 그리고 나는 기도의 은혜를 받아서 새벽기도, 철야기도 열심히 나오는데 장로는 자기 동네에서 기도를 하든지 어디서 하든지 어쨎든지 간에 새벽기도를 못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장로들이 지금 새벽기도를 안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호탕하고 폭이 넓으면 좋은데 돈도 없지만 통도 작습니다. 그래서 같이 일하다 보면 속이 터질 정도로 짜증이 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하고 당회의 결정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설교를 했는데 그것을 못 받아 들이겠다 그 못난 얼굴에서 나오는 설교를 어떻게 내가 신뢰할 수 있겠느냐 하는 이야기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이야기하는데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의견들을 이런저런 통로를 통해서 개진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자유인데 문서로 만들어서 거기에 사인을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교회법상으로 깊이 책임져야할 중대한 행동입니다. 여러분들이 작년에 임직식을 앞두고 여러분들이 건의문이라고 해서 몇몇 사람들이 써서 사인을 해서 올라온 것을 보았는데 몇 번을 그것을 책상위에 펼쳤다 덮었다 하다가 제가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그것을 가슴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사항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로 와서 건의할 수 있는데 마치 이 서류를 가지고 당회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듯이 어느 누가 그렇게 부패 했습니까? 장로들 중에서... 그리고 더 답답한 것은 장로중에 누구라도 분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착합니다 장로님들이... 그냥 저는 접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리니까... 교회에 대해서 제가 가르쳐준 적이 없어서 어리석으니까 덮고 넘어가자 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어디 막된 교회에서 평신도들이 개혁운동을 하는 것처럼 집단으로 문서를 작성하고 하는 것은 교회 질서에 정면적으로 위반이 되는 것입니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담임목사실에 들어 와서 이야기를 하십시오. 그리고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내용이면 접어요. 기다리고 참아 보십시오 진실이 나오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온김에 제가 이야기 다 하겠습니다. 최근에 교역자 한 사람 임명하는 것을 두고 권사들이 함께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집단적으로 담임목사에게 건의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얼마나 실수 하는 것인지 아십니까? 교역자를 당회에서 결정을 하고 담임목사가 선임해서 쓰면 쓸만한 사람이니까 쓰는 것이지 그렇게 해서 권사들이 모여서 실력행사해서 당회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래서 결정을 엎어 보고자 하는데 여기에 서 있는 김목사가 만만한 사람으로 보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그렇게 우습게 보입니까? 나의 생각에 오해가 있는지 모르지만 제가 보고 받은바는 그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중대하게 잘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서 왈과왈부 할 수 있는 권한을 성경이 여러분들에게 부여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에 그 사람을 제가 중대한 신학적인 착오와 윤리적인 모순속에서 잘못 교역자로 사용했다면 제가 하나님 앞에 벌을 받고 교회법상 노회에서 제재를 받는 것이지 그리고 그런 정도 자신도 없이 검토함도 없이 교역자를 결정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권사님들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아주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진짜 말씀이 들어간 사람들인가 무슨 행동들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리고 와서 하는 이야기가 비록 그 사람이 목사님의 열렬한 팬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리 입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제 정신으로 교회일을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권사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까? 팬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센네틱이라는 영어에서 왔습니다. 미치다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 도대체 목사가 무슨 할 일이 없어서 자기에게 미치는 사람을 만들면서 다니겠습니까? 말 하나도 가려서 쓸 줄 알아야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어쩜 그렇게 장로들에 대해서 존중심이 없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배려가 없습니까? 우리 교회 장로님들에게 아부할 일 없습니다. 장로들이 못하면 저도 큰소리 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다른 교회 같으면 장로들이 밥판들고 국수 타려고 기다리는 교회 없습니다. 그런것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의 어른인데... 모든 면에 있어서 어른으로 인정을 하고 그리고 머리를 숙이고 그리고 그들이 기도하며 결정하면 마음에 조금 맞지 않아도 복종하고 이러는 것이 교회의 정신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허구만년 장로 합니까? 칠년하면 물러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다음에 뽑을때는 저런 사람 뽑지 않아야지 가슴에 새겨 놓았다가 더 좋은 사람 뽑으십시오. 아무도 여러분들에게 강요한 사람 없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기전에 질리고 질린것이 뭐냐면 교회의 강압이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해 보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는 자유스러운 교회를 하리라 그래서 집사 안 하겠다는 사람 칠년이 되어도 집사를 주지 않습니다. 않하겠다는 사람에게 주어서 뭐 하겠습니까? 어차피 교회도 안나오는데... 그렇게 세워 놓고 나니까 교회에서 교역자들이 전화할 때 집사님 왜 교회 안 나오세요? 그것이 집사하고 교역자 사이에서 오갈 수 있는 대화 입니까? 교회 안나오면 불신자이지 무슨 집사 입니까? 신자도 아니지... 학습 받을때에도 열심히 교회 출석하고 믿음의 도리를 배우겠느뇨 하고 서약을 하는데 집사가 교회도 안나오는 집사가 무슨 집사 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장로되기 전에는 여러분 친구 였다고 하더라도 장로가 되고 나면 공식석상에서는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됩니다. 사석에서야 둘이서 같이 악수를 하든지 팔짱을 끼든지 저는 볼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공식석상에서 친근하다 못해 장로를 대우를 안해주고 농담이나 하고 그러는 것을 저는 참을 수 없습니다. 교회의 질서가 그렇게 되어서 어떻게 되겠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로들이 만약에 잘못 하는 것이 있다고 칩시다. 새벽기도도 안하고 열심히 봉사도 안한다고 칩시다. 그런 사람도 없지만 그런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것을 여러분들이 고쳐야겠습니까? 제가 고쳐야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아버지가 있어서 아버지가 옳게 행동을 못한다 하면 할아버지가 “네 이놈! 자식들 부끄럽지 않냐? 똑바로 하거라” 그것도 자식들 보는데서 야단 안치고 다 물린 다음에 "에비야 안방에 들어오너라 그리고 담뱃대 툭툭 두드리면서 네가 도대체 정신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내가 일년동안 너 하는 짓을 지켜 보았는데 집안의 기강이 이것이 뭐냐?" 그리고 한번 혼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혼을 내도 제가 내야지... 여러분들이 그렇게 수군수군하고 하면 되겠습니까?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지극히 소수의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삼아서 그리스도의 몸이 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고 그리고 생명적인 연결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교회의 특성입니다. 그런 신적이고 유기적인 특성들을 잘 간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교회에 와서 먼저 배워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유가 아니라 복종입니다. 자유는 몸에 베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어디 가든지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교회에 와서 배워야 할 것은 복종입니다. 심지어는 상식 없이 담임목사한테까지 와서 큰소리 치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리 큰 소리 쳐 보십시오 저도 벌떡 일어나서 여러분들 멱살 잡고 큰 소리 치는가? 안합니다. 죽을때까지... 못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주님이 바라 보실때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자기 영혼의 목자인데... 이해 안 가는 일이 있으면 참고 기다리지 그것이 사랑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어렸을때 살면서 부모의 심정을 다 헤아렸습니까? 여러분들이 나한테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을 할때 내가 한사람 한사람 찿아가서 당신 권사로서 이따위 행동 했냐고 따지는 것 보았습니까? 그렇게 참고 견디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의 친구 목사님 한분이 있었는데 외국에서 목회를 하는데 어느날 까칠한 교인 하나가 찿아 오더랍니다. 그러더니 “목사님 이야기 좀 합시다” 하더니 “이야기 할 것도 없고 이것을 읽어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해서 “그것이 뭐냐?” 했더니 두장을 복사 해 와서 한 장은 주고 한 장이 자기가 들고 현 담임목사가 우리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 안되는 36가지 이유 그러더니 읽기 시작하더랍니다. 목사가 사람이 좋으니까 그것을 다 읽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나중에 고백을 하는 것이 뭐냐면 그것을 읽으려고 할때 덮고 하지 마라 했어야지 자기가 맞다 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화를 내고 보냈어야 맞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했더니 그것을 다 읽은 다음에 자기는 마음 아파도 참을 수 있는데 그것을 읽어버린 그 사람은 교회를 떠나더라는 것입니다. 왜 관계를 그렇게 만듭니까? 나한테 그랬다는게 아니라 왜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잘못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회의 책임이 매우 큰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을 하고 나면 거기에 반대했건 찬성했건 그것은 바깥에서 공표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생각없는 사람들은 가서 나는 계속 반대 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이 그렇게 밀어 부쳐서 그렇게 되었지 그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카톨릭에서 교황을 뽑을때 해결이 안나서 어떤때에는 성당에 들어가서 일주일씩 지냅니다. 그런데 나온 다음에 그러니까 거기에서 교황된 사람이 태어날때부터 교황용이라고 해서 산꼭대기서 살다 내려온 사람도 아니고 같이 교수 생활하고 밥 먹고 웃고 떠들고 그러다가 옆의 성당에서 왔다 하고 카드 놀이도 하고 이렇게 놀던 사람중에 하나가 교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떤 불문율이 있는지 아십니까? 일단 그 회의장에 있던 사람들이 그 속에서 일어난 일 중에 티끌만큼도 발설하면 파문입니다. 파문이면 뭐냐면 영구히 교회로부터 쫒겨나는 교회 최고의 징벌이고 카톨릭에서는 교리 자체가 교회에서 파문을 시키면 천국 갔던 영혼도 끌어 내려서 지옥 불속에 던져진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것입니다. 그렇게해서 교회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질서들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개신교에는 이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교회에 와서 우습게 여깁니다. 담임목사든지 교회의 직원이든지 교역자든지... 그리고 왜 그렇게 생활을 합니까? 심지어 부교역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권사나 안수집사중에서 나이 드신 분이나 협동장로님이나 장로님이나 이런분들 중에는 고의적으로 부교역자하고 상담도 안 하려고 하고 그리고 충고도 안 받으려고 하고 그렇게해서 어떻게 감히 부목사가 전도사가 우리를 돌볼수 있겠느냐? 나 정도 되면 담임목사가 직접 돌보아야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결국 담임목사를 욕보이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무엇이든지 진리를 아는 사람은 겸손해서 그래서 낮추고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제가 역사를 통해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장로 한 사람이 수요예배시간에 헐레벌덕거리고 늦게 들어 온 것입니다. 전도사가 설교하고 있었는데 “장로님 거기 서세요 뭡니까?” 장로님이 들어오다가 나이든 장로님이 전도사가 서 있으라니까 섰습니다. “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몇시 입니까 도대체? 성도들은 다 와서 예배 드리고 있는데 장로라는 사람이 이제와서 그것도 미안한 기색도 없이 예배장 자리로 들어 가는 것입니까? 서서 예배 드리세요” 근데 하필이면 그날 공교롭게 기도가 그 장로 기도 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아무개 장로님 기도하겠습니다 하니까 앉지도 못한체 서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하나님 아버지” 하면서 기도를 시작 하더랍니다. 그런데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종이 너무 미천하고 불비해서 젊은 전도사님을 저렇게 마음 아프게해서 나를 용서해 달라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그렇게 장로를 혼낸 전도사는 길선주 전도사이고 눈물을 흘리던 장로는 조만식 장로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교역자와 교회 장로나 권사님들과의 관계입니다. 깍뜻이 오히려 더 양떼들에게 깍듯이 담임목사한테 와서는 김목사가, 이목사가 하는 것이 어법에 맞습니다. 그런데 성도들하고 이야기 할때는 깍듯이 박목사님이, 최목사님이, 강목사님이 이렇게 이야기 해야 합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 할때 박목사가, 최목사가, 강목사가 무슨 자기 직원 거명하듯이 그렇기 이야기 하는 가운데 깍여 나가는 것은 자신의 인품이라는 것입니다. 교역자가 되었으면 그 자체로서 깍듯이 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권사도 그런면에서 본을 보여야 합니다. 권사가 하는 일이 그런 것 아닙니까? 나이 어린 전도사라고 할지라도 손녀뻘 되는 전도사라 할지라도 그 앞에서 깍듯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젊은 사람들이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될 때 우습게 보는 사람 없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목회 하는 가운데 힘든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직원들하고 교역자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저는 실제로 전도사 시절에 사찰집사하고 강도사하고 주일날 교회 마당에서 주먹질하면서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찰집사 입에서 나오는 것이 “자기가 강도사면 다야!” 강도사는 “야 이자식아 너 이리 와봐!” 그리고 주먹이 오갔습니다. 저희 교회에 그런 것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나이 많은 수석 부목사도 대학 졸업하고 갓 들어온 자매한테 깍듯이 간사님입니다. 제가 그렇게 훈련을 시켰습니다. “이것 해 주시겠습니까?” 한번 어느 교역자가 개인적인 일을 행정직원한테 맡겨서 타이핑 시켰다가 교회가 뒤집어질 정도로 둘다 혼을 냈습니다. 자기 노예입니까 뭡니까? 그렇게 깍듯하게 하니까 직원들이 교역자들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무시하지 않습니다. 제일 두려운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예의 바르게 깍듯이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반듯해서...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뭐라고 했습니까? 장로들에게 복종하라 순복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마음을 가지고 장로들에게 복종하고 교회의 중요한 일들이 그들을 통해 결정되고 하나님이 통로로 사용해서 일하실 때 주님의 인도를 받도록 그렇게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그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일치된 정신을 주시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언젠가 본격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이 문제에 대하여 설교를 하겠지만 우선 급한대로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모든 일들이 당회를 통해서 결정되고 움직일때에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성경의 진리에 명백히 위반되지 않는 한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정신을 배우는 것이 자유보다 먼저 터득하여야할 덕목이다 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라도 장로들을 하대하거나 비웃거나 비아냥하거나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중대하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세운 교회들을 질서 있게 움직이도록 만드셨고 그래야지만 사랑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질서가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사랑은 방종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분명하게 질서가 서 있는 가운데 그 질서대로 움직이고 그리고 장로님들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두렵고 떨리는 사명인지를 생각하고 깊이 두려워하고 옷깃을 여미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정말 그래야 합니다. 더욱이 일부 교회들에서는 장로들끼리 회의하는 가운데 싸우고 분쟁을 일으키고 하는데 전부 다 예수님의 마음에 못 박는 행실들이고 하나님 앞에 죄짓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를 화해와 일치 가운데 다스리도록 그렇게 세워진 사람들이 오히려 이런 일치와 사랑의 정신을 망각하고 교회를 이끌어갈 때 그들이 받을 하나님의 판단이 얼마나 중엄한 것인가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구약의 시대때에 이스라엘 전체가 범죄하면 소 한 마리를 잡아서 제사를 드렸는데 제사장이 죄를 지으면 한 사람을 위해서 소 한 마리를 동일하게 하나님앞에 바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많이 맡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영광도 주시고 권한도 주시지만 책임도 중차대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된 것을 제외하고 당회에서 결정을 하면 모든 교인들은 거기에 복종해야 하고 거기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치리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교회는 질서가 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것들이 거의 정신이 죽어 버렸습니다. 1920년대에 새문안교회 당회록을 보았더니 거기에는 당회록이 아니라 치리록입니다. 매주 당회를 열어서 사람들을 징계했습니다. 아무개 집사는 아무개 집사에게 돈을 꾸어서 그래서 갚으라고 명령을 했지만 여유가 충분히 됨에도 불구하고 상습적으로 이 교인 저 교인에게 돈을 빌려서 갚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은 교회에 많은 덕을 무너뜨렸는데 그러지 말라고 당회에서 두 번이나 불러서 경고했는데도 결국은 말을 듣지 않는다. 고로 치리 6개월, 아무개 집사는 아무개 여집사 집에 드나들면서 안 좋은 소문을 냈는데 그러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행동을 계속하더라 그 사실 여하를 물을 필요도 없이 이것은 출교 영원히 교회에 들어 올 수 없다 이것이 매주 계속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엄격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치리를 받은 교인은 다른 교회에 임용증서를 해 가지고 가면 빨간줄이 나오는 것입니다. 당신이 치리 받고 어떻게 우리 교회에 오려고 하느냐 우리는 당신을 받을 수 없다. 그러던 교회가 이제 변질이 되어서 치리가 아니라 더 나쁜짓을 하고 교회 돈을 떼어 먹고 가도 일층에 있는 교회에서 징계하면 삼층으로 올라가면 할렐루야 하고 받아두고 가자마자 장로를 주고 집사를 주고 하는 이렇게 타락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이런 시대를 거슬려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그래서 당회는 무슨 일이든지 경솔하게 결정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신중하고 진중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일단 심각하고 진중하게 결정한 후에는 누구도 거기에 항거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복종해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교회의 권위입니다. 그렇게함으로서 교회는 질서를 잡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가 이런 질서 속에서 움직이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장로직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명예와 신령한 사실들을 총찰하고 교인들을 믿음에 굳게 세우는 이런 일들보다는 그저 선심쓰고 재산 많은 사람이 얼굴 마담처럼 되어서 돈이나 듬뿍듬뿍 내어 놓고 그리고 밥이나 사는 이런 것이 장로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은 교회가 타락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돈하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 돈 많은 사람이 지혜롭습니까? 지위 높은 사람이 현명한 결정을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절대 화나지 않았고 마음에 무슨 맺힌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지각이 없고 분별이 없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예배후에 공동의회를 잠시 거행하겠는데 이때에도 이런 정신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고 여러분들의 의사를 결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