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17:7~8)
녹취자: 김경애
요새는 제가 꾀가 나서 집회를 갈 때 차를 안가지고 갑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차를 가지고 다니면 좋은 것이 밤중에라도 내가 오고 싶을 때 올수 있어서 좋은데 시간이 점점 흘러가니까 쓸데없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다른 차를 타고가면 책도 볼 수 있고 그래서 요즘에는 차를 안가지고 다닙니다. 언젠가 충청도 지방인가 경상도 지방인가 가물가물한데 그곳을 내려가다 차를 가지고 가다가 너무 졸려서 길가에 차를 받쳐놓고 잠깐 쉬는데 때가 상당히 가문 때였습니다. 그래서 신문지상에서 다들 염려하고 그러던 때였는데 너무 덥고 몸도 찝찝하고 주위에 가게도 없고 그래서 한번 산책을 하면서 기지개를 켜는데 그 밑에 도랑이 조그마한 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물이 가물었다고 그러는데 그 도랑의 물이 수로 정리가 잘되어있어서 그런지 소리를 꽤 내면서 잘 흘러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딱 나무 한그루가 서있었습니다. 무슨 나무인지 아무리 보아도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는데 생긴 것이 쭉 뻗어서 사람이 세 사람 정도 합해놓은 것만큼 쭉 뻗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제가 잘 생각했습니다. 진짜 잎이 청청합니다. 푸르다 못해 거의 검은빛을 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심겨져 있는 곳이 바로 물가입니다. 진짜 개울 옆에는 그 나무에서 나온 뿌리가 개울이 흘러가는 물에 씻기고 있을 정도니까 정말 물가에 심기운 나무였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인생을 사는 길이 두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광야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아서 죽음을 앞에 놓고 매우 메마른 땅에서 곧 죽을 것 같은 그런 가뭄에 시달리고 살 소망이 없는 그런 식물과 같은 인생을 사는 길이 있고 또 하나는 지금 제가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개울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이 모두들 산하의 초목들이 모두 타들어갈 때 물가에 심기운 그 나무가 시커먼 빛을 내는 그런 진녹색을 토해내듯이 그렇게 잎이 푸르니 꽃은 얼마나 잘 피겠으며 열매는 얼마나 좋은 열매를 맺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런 삶을 살든지 두 종류의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생을 살만큼 산 사람들은 모두 경험하는 것이지만 사실 인간이 많이 몸부림치고 애쓴다고 해서 무엇인가 축복된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또 아무것도 안하고 태만하게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안락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우리의 인생의 경험은 신앙을 떠나서 산 사람들도 결국은 정말 축복이 있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는 이런 것이 더더욱 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속에서 신앙의 싸움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아니면 하나님 이외의 세상을 의지하느냐 이 두 싸움이 치열한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우리 신앙생활의 모든 갈등입니다. 왜 그렇게 은혜를 많이 받고 그렇게 사랑을 많이 체험하게 해주신 그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 사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왜 그렇게 불순종하면서 사느냐하면 그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님께 그렇게 불순종하면서 사는 이유는 오직 간단합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보다는 내 힘, 내 식대로 살고 싶다는 소원이 우리를 훨씬 더 강하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두 가지 상반된 삶을 우리에게 제시하시면서 우리에게 어떤 삶을 택해야 옳은지를 우리 스스로 판단하도록 우리에게 제시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사람을 의지하고 혈육을 의지하고 그리고 인간을 의지하다가 결국은 메마른 땅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적막하게 그렇게 열매 없는 인생을 마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그 마지막이고 또 하나의 삶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정말 신앙의 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느냐하면 겸손하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정말 내 힘은 도움이 되지 않고 내 힘이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계실 때에만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내 힘이 도움이 되고 주님을 섬기는 데에 있어서도 내 힘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만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봐달라고 뽐내고 그리고 나를 높이 쳐주지 않는 사람을 깔보고 깔아뭉개는 것이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최대의 교만은 결국 신자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면서 사는 그 자체가 최대의 교만입니다. 그것이 최대의 교만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은 지 얼마 안 되는데 어느 부흥회를 갔는데 부흥사 그 분이 그런 이야기 한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이 가슴에 많이 와 닿아서 얼굴은 잊어버렸지만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면 우리의 신앙이 물러갔다, 우리의 신앙이 타락했다는 것은 큰 죄를 덜컥 지어서 머리통이 깨지고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그렇게 된 것만이 타락한 것이 아니라 어제는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살았는데 오늘은 우리가 주님을 덜 의지하고 살면 그것이 타락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청교도 헨리스쿠가 이야기하는 참 살아있는 신앙의 표징이 깨뜨려진 마음이고 진정한 기독교인의 참된 영성의 표징이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주님 없이는 어찌할 수 없다고 하는 상한 마음이라는 것과 똑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이제 인생을 살아가고 신앙을 굳게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그런 능력이 우리에게 충만한 에너지가 되어서 그렇게 살아있으면 그러면 우리가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제가 언제가 이야기 했습니다. 목양 실에 있을 때에 카세트에 배터리가 다 닳았는데 모르고 자꾸 테이프가 망가진 줄 알고 다시 복사하고 다시 복사하고 해서 끼어보니까 사랑해요 라는 노래가 사랑해요. 이렇게 나와야하는데 사아아라앙해에요 라고 나와요. 나는 테이프가 망가진 줄 알았습니다. 자꾸 바꾸어 끼었는데도 똑같습니다. 나중에 새로운 배터리를 넣고 틀어보니까 어쩌면 그렇게 청아한 목소리가 쭉 나옵니다. 먹는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만 저기 장항인가 어디로 집회를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점심때 가까운데서 아무거나 먹으면 되는데 고단한 사람을 데리고 짚 차를 태우고 한없이 가는데 군산까지 간다는 것을 제가 그만 가자고 사정을 했습니다. 군산에 가면 기가 막힌 회가 있다고 그러면서 가자고 해서 거기까지 갔는데 아귀찜을 하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귀찜 하나를 시켜놓았는데 아귀찜을 많이 먹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 가서 한 그릇 나오는 것을 보고 딱 젓가락을 집으면서 물론 기도는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 젓가락을 집으면서 내가 들었던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 ‘아 이것이 원본이구나! 여태까지 내가 서울서 먹었던 수많은 아귀찜들은 이것을 흉내를 내려다가 결국은 중간에 그만둔 것이로구나!’ 그것을 내가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에너지가 충만하게 가득 차 있으면 그가 살아야 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에너지가 떨어지면 사이비 복사판이 나오는 것입니다. 절대 그렇게 살면 안 되는데 이게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판을 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향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향해 들려주어야 할 분명한 노래곡조가 있는데 늘어진 테이프처럼 타령조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아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런 타령이구나.’ 그런단 말입니다. 모든 방면에서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향기가 나가야하는데 그런 향기가 안 나가고 퀴퀴한 냄새가 나갑니다. ‘아 예수는 이렇게 불결한 냄새를 풍기는 분이구나!’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를 한다는 말입니다. 모두 에너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비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런 에너지에 충만해져서 주님을 잘 드러내주는 그런 삶을 살 때에는 이 인간이 그런 삶을 잘 드러내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 충만할 때에는 항상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마음이 드느냐하면 한시라도 주님이 나를 붙잡아 주시지 않고 나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박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 가지고는 살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 많은 은혜, 더 자주자주 우리의 영혼을 매만지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절박하게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판을 틀어도 이상한 소리가 나고 아귀찜을 하라고 그래도 복사판밖에 못 만드는 처지가 될 정도로 되었는데 그때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더 간절히 필요한 때인데 이상하게 그 상황에 에너지가 고갈된 상황으로 내려가게 되면 이상하게 이 사람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주님 없는 세상을 나도 나 혼자서 얼마든지 잘 살수 있다는 이런 사고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결국은 하나님 없이 살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한번 살아보도록 하나님이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만이 철저히 부서지고 깨뜨려지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나가는 것 같고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여러분 보십시오. 지금도 사막에 비가 내리면 사막이 변하여 옥토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금수강산 기름진 땅에도 몇 년 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황폐해져서 사막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그런 참된 사랑이 우리를 그렇게 녹일 때 그런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싱가포르에 갔을 때 비가 온 이야기를 해주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들어도 이해가 안갑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소낙비가 억수로 오고 나서 모든 식물들이 메말라 죽었답니다. 그것이 말이 됩니까? 소낙비가 억수로 오고 나서 모든 식물들이 메말라죽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나는 머리가 안 좋아서 그런지 무슨 소리냐고 몇 번을 물어보았습니다. 나중에 설명을 해주는데 비로소 이해가 갔습니다.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메말랐다가고 소낙비가 오면 온 산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런데 너무나 오랫동안 비가 안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땅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은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소낙비가 왔는데 진짜 한 시간 사이에 어마어마한 양이 내렸답니다. 확 쏟아 졌는데 결국은 땅이 너무 딱딱해져서 그 비가 결국은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위에 있는 흙을 긁어모아서 바닥으로 다 내려와서 결국은 비는 억수로 쏟아져서 엄청난 흙탕물이 흘렀는데 산의 식물들은 그대로 말라 죽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처음에는 뭐가 되는 것 같았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은 마지막에 죽음의 땅 사막, 건조하고 메마른 그곳에 홀로 서있는 떨기나무와 같은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훨씬 더 날렵해 보이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성공으로 더 가까이 다가갈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방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 마치 물가에 심기어서 잎이 청청하고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일 먼저 신앙생활을 할 때 마음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 바쁜 시대에 일주일에 네 번씩 그렇게 교회를 나오고 어떻게 살겠습니까? 공부하는 사람은 낙오자가 될 것이고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무능하게 찍힐 것이고 사업하는 사람은 손해를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하나님을 의뢰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하면서 사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정말 복주시고 하나님이 축복해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꼭 그렇게 입이 찢어질 정도로 자랑할 만큼 그렇게 공부를 안했습니다만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공부하면서 하나님 앞에 정말 올바르게 산 시간들은 후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공부하면서 참 많이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범사에 모든 삶의 자리에 자기가 서면서 언제나 마음속에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이 아니면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그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지 아니하면 나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기대는 그런 마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시느냐하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이 내 마음으로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모든 주관자가 되시고 그리고 나의 신앙 나의 생명 나의 모든 것까지라도 그분의 손에 달렸고 내가 그분의 도움이 아니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던지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또 하나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전혀 무가치하다는 것을 느끼는 겸비함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게 갖게 하신 것, 내게 누리게 하신 것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지켜주시고 우리를 돌봐주시는 하나님이시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은혜 받는 자리로 나아가 우리의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의 도움으로 가득 찬 삶을 살기위해서는 우리들이 ‘정말 주님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 부른 찬송가운데 주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요,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시라는 찬송이 바로 그런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지 않으면 나는 마치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적군들의 공격에 노출된 맨몸으로 서있는 병사와 같고 주님이 나를 지켜주시지 아니하시면 원수들의 공격이 강한 곳에 벌판에 홀로서서 표적이 된 사람과 같고 주님이 나를 보호해주시면 그 방패가 나를 지켜주실 것이며 그리고 주님이 나의 피할 바위가 되어주실 것이라는 이 고백이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거나 찬양할 때 깨어진 마음이 있는가? 정말 하나님 앞에 상한 마음이 있는가? 그래서 내 영혼이 간절히 하나님을 갈망하고 주님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상하고 깨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죄를 많이 지은 사람도 용서하시고 하나님 앞에 크게 실패한 사람들도 회복시키십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아도 이렇게 절박하게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의로워도 하나님이 그를 버리시고 그가 경건해도 하나님이 그를 가까이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고 하나님의 자비이고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의로운 사람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가 비록 죄인이라도 이렇게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목마른 마음으로 주님을 의뢰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전심으로 상하고 깨어진 마음으로 주님의 도움이 아니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게 제일 마지막에 변화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속사람입니다. 이게 말입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깨달으면서 자꾸 자꾸 조금씩 바뀝니다. 그런데 끝까지 안 바뀌는 것이 결국 무엇이냐 하면 마지막에야 바뀌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신의 욕망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건강진단을 받으면서 의사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쭉 사진을 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에게 이렇게 피부가 있고 살이 있고 지방이 있는데 결국은 살을 빼려면 결국 어떻게 해야하느냐하면 살이 다 빠지고 나서야 그 다음에 기름이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튼 쉽게 자기가 원하는 것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한쪽이 빠져나간 다음에 그 다음에 빠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영적으로 변화되고 싶어서 자기가 애를 써도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결국 뭐냐 하면 그렇게 하나님만을 바라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하나님이 오셔서 자기를 새롭게 해주셔야 할 필요를 느끼면서도 그러나 적당히 매달리다가가 그 다음에는 획 돌아서서 자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변화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할 부분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기도를 드릴 때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공통된 한 가지 사상이라고나 할까 공통된 한 가지 생각이 우리에게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정말 우리가 하나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나 교회의 문제에 있어서나 모든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가 충만해질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주님을 향해 목말랐던 사람들의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부요함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물이나 빵을 구하면서 목마르고 굶주림을 느꼈던 사람들은 그 굶주림 속에서 그냥 죽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서 목마르고 하나님의 은혜를 향해서 배고팠던 그 마음을 거저 돌려보내시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의 영혼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의로우심으로 그들의 영혼을 만족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