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6동서울노회 제직부흥회
은혜와 개혁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엘람자손중 여히 에라 아들 스가랴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하나님께 범죄하여 이땅 이방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이 주장할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스10:1-4)
녹취자: 이경순
경제적으로 급성장 하면서 우리는 물질주의 풍조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러면서 교회는 한 시대를 따르는 정신에 거스르기보다는 그 정신을 따라가면서 그 정신 속에서 번영하고 성공하고 더 많은 부를 쌓고 명성을 얻는 것 이것들을 기독교의 중요한 원리인 것처럼 의식 없이 교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역사나 개인의 삶을 보십시오. 투철한 신앙이 없이 우리들이 번영하게 되면 마지막에 나타나는 것은 인간 안에 뼈속깊이 내재되어 있는 부패한 본성들이 번영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들의 죄와의 싸움에서끝난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디엔에이 자체가 뼈속깊이 죄와 친근하도록 그렇게 태어난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의지하며 신앙생활하면 이것들을 능히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번영하고 모든 것이 형통하고 그리고 우리들이 은혜에서 멀어지게 되면 뼈속깊이 배어있던 이 죄의 디엔에이들이 다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이 많은 추문과 이런 현상들이 결국 이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에 집중적인 포격을 가하지만 이것은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종교와 모든사회분야에 두루 걸쳐서 일어나는 총체적인 부패의 사건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다루고 있는 나라와 정부의 태도를 보면 이 사람들에 의해서 이 사회가 개혁될 것이라고 하는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정권에 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나라전체를 하나의 몸이라고 본다면 교회, 종교는 그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무엇인가 지속적인 변화와 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 사회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신용평가회사는 2050년 지금으로부터 한 30년 후에 되면 한국이 미국에 이어서 8만6천불의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세계 두 번째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전망을 했습니다. 그게 어쨌다는 것입니까 정말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물질생활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우리 선배들이 누리던 물질생활과는 비교되지 않게 번영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훨씬 더 행복해 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 비관적인사건들을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도대체 인생의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름지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걸어 다니던 곳을 좋은 차를 타고, 차타고 다니던곳을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그리고 훌륭한 제품들이 생산되어서 사람들이 안락하게 살면 그것이 인생의 모든 행복을 해결해준다고 생각합니까. 이것은 기독교적인 관점인 것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이 기독교에 대한 저항세력들 심지어는 기독교를 박해하고 이러는 반대하는 세력들은 근본적으로는 이 사회 정신자체가 절대적인 정신과 도덕의 규범들을 거절해요 그런데 많은 종교들 중에 아주 독특하게 절대적인 규범이 있고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고 그분께 순종하고 그분을 섬기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행복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거죠 이런 정신자체가 오늘날 인간을 신의 위치로 격상시키는 이 시대의 정신하고는 안 맞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 이러한 기독교의 진리 체계자체에 대해서 반감이 생겨나기 때문에 기독교가 이제 독특한 종교이고 모든 종교와 모든 진리의 중심에 서있다는 사상을 허물어 버리는 것 이것이 다원주위에요 자 그러면 이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라는 것이죠. 자 기독교에 대해서 사상적으로 박해를 하고 사상적으로 도전을 하면 그러면 이것은 기독교 변증 가들이나 학자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탐구해서 그래서 그런 주장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밝혀서 글을 쓰고 방송을 하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이래야 합니다. 특별히 목사님들이 열심히 탐구하고 공부해야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현대사상이 하나님을 반대하고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이런 모든 사상들이 먼저 앙심을 품고 맞서기 전에 냉정하게 그 사상들을 모두 펼쳐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그릇되었는가를 조목조목 탐구하고 연구해서 그것을 밝혀서 그런 잘못된 사상의 불을 꺼야 되는 겁니다. 이것은 학자들이 헌신해야 될 일이고 학자들만 해서 안 됩니다. 학자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입니다. 세계적인 학자들이 와서 학문을 열고 복잡한 이야기를 해도 모이는사람숫자 보면 50명에서 100명이예요 중요한 것은 목사들에게는 수만 명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매주일 모입니다. 그런 속에서 목회자가 그런 것들을 열심히 탐구해서 이 시대의 정신이 어디가 잘못되었고 그리고 왜 이 기독교가 진리일수밖에 없는지를 수많은 교인들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그들에게 강하게 설득해서 이런 현대의 거짓된 사상에 미혹되지 않도록 가르치고 공부시켜서 그들에게 사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그들에게 사상적으로 무장하게 만들어야 됩니다.쓰레기같은 사상들을 모두 쓸어버릴 수 있는 지성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고 말씀 하셨습니다.무슨뜻입니까 세상은 캄캄하게 어둡죠. 현실적으로 그러는데 현실이 선교에 도움을 준적이 없습니다. 예수님 오실 때부터 이 세상은 예수님 죽이려고 준비하고 있었고 그리고 이 세상은 그래서 예수님 표현에 의하면 어두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시고 말씀으로 그들을 세우신후너희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사상만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예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기 위해서는 삶의 방식이 달라야 된다 얘깁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살지 않고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욕을 먹으니까 교회가 착한 일을 하려고 많이 애를 많이 써요 우리교회가 요새 방송에 뜨고 있습니다. 독거노인들을 돕고 노숙자를 도왔더니 신문에서 매주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정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미담을 만들어 내기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추구할 목표는 윤리가 아녜요 윤리는 하나의 부산물이죠. 교회는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이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안사람들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내주 하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예요 그래서 그들은 이 세상에서 칭찬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개혁의 첫 번째는 교회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교회의 회원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는데도 목회자의 눈으로 정직하게 보면 저 사람은 구원받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사람이 교회의 직분자야 그 되겠습니까? 교회가 두 가지만 잘해도 큰 시련을 면합니다. 신자아닌사람에게 죽어도 세례주지 말고 정말 기독교인 아닌 자에게 교회 직분을 주지 않는 거죠 최근에 책을 읽다보니까 18세기에 미국에서는 교회에서 세례를 줄때 이사람 이 사람이 세례를 받게 되었다면 교회에서 대표자들 저사람사는 동네 이사람사는 동네에 파송을 했어요. 그래서 여기에 김 아무개라고 너희 아냐 동네사람들이 탐문조사를 하고 다녔어요. 별로다 그러면 세례주지 마십시오. 이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러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에 와서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회심해서 진짜 거듭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붙잡히고 통제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에서 복음이 울려 퍼져서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의 처지 그리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확고한 신앙의 고백이 있어야 됩니다.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교회의 영광은 교인들의 숫자나 건물의 크기나 최근에 들여온 파이프 오르간이나 목사님의 학위나 이런 것들에 교회의 영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의 유명인사가 그 교회에 다니는 숫자나 이런 것에 의해서 교회가 영광스러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영광은 거기에서 복음의 진리가 울려 퍼지고 거기에서 사람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기가 죄인 인 것을 깨닫고 변화되는 거기에 목회의 영광이 있는 것이에요 그렇게 사람들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알고 복음적인 거룩을 따라서 생활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교회를 형성해 나갈 때 그들은 삶의 방식이 이 세상사람 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 필요한 것이 윤리적인 삶이예요 그러나 그 윤리적인 삶은 윤리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나타나게 된 윤리적인 생활 이예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철저히 교리와 신학 성경을 기초한 학문들을 배워서 현대의 사상이 전부다 쓰레기 같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는 확신을 아이들로부터 죽기직전에 노인들한테 가르쳐야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야 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최근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많은 분쟁들 소송 재정사고 심지어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비리들 이런 것들은 정말 그리스도인들이 살아 가야될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진실한 주의 종들이 피를 토하듯이 설교하면 뭐합니까, 한쪽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사건들 때문에 신문지상에 오르고 목사가 구속이 되고 무슨 교회에서 헌금을 몇 십억을 횡령 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구속이 되고 잡지에 수두룩하게 오르내리는데 그렇게 외치는 것이 어떤 성과를 거두겠냐. 이겁니까 여러분들은 전도를 나가보셨습니까. 한번 이번 주에 나가보십시오. 성경찬송이렇게 들고 옷 깨끗이 입고 아파트를 땡땡 두드리면서 그것도 잘 경비를 피해서 가야 되요 두들겨서 누구세요 그럴 거 아녜요 아무개 교회에서 예수를 믿으라고 나왔습니다, 그러면 뭐라고 반응하는지 아세요? 옛날에는 괜찮습니다. 다음에 나갈게요. 지금은 막 욕설이 터져 나와요 그리고 바로 경비실에 걸어서 너 경비 거기서 뭐하고 자빠져있나고 당장 끌어내라고 욕설이 막 쏟아져 나옵니다. 한사람이 일 년 동안 아파트 벨을 누르고 다녀도 ‘아유 전도 나오셨어요. 잠깐 들어오세요. 이러는 집은 다섯 집도 안 돼요 그것이 예전에 이십년 전만해도 볼 수 없는 현실이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이 안 믿는 사람들과의 삶과 거의 다름이 없는 거예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렇게 미끄러지고 다 부패한 것이 아니예요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이 나아요. 그런데 무슨 문제입니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 교회의 유력한 종들 그리고 평신도 중에 사회에서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훨씬 더 잘 알려져요 그리고 지금은 기독교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 많아서 이 사람들이 매스컴과 문화와 예술들을 이 모든 것들을 구석구석에서 활동을 하면서 이 기독교에 대한 자신들의 반대에 대한 의견을 과감하게 제시하는 거예요 이런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다르지 않다 이겁니다 이것이 위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깊이 책임의식을 느끼고 교회가 이것을 개혁하려고 하는 노력이 없이는 미래의 교회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거예요 아마 그렇게 된다면 거의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소수가 모여 있는 이런 형태의 교회가 될 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제 윤리로 돌아서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남이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데 자기가 그렇게 살기는 너무 싫고 힘든 거예요 이 세상 전체가 올바르지 않으니까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고 아주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점점 더 세상이 악하면 악할수록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은 그 올바르게 사는 것에 대한 커다란 대가들을 치러야 됩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 어떠해야 될 것인가 결국은 아주 진정한 삶의 개혁이 일어나야 된다는 겁니다. 술 먹고 담배안피우는 사람 장로 안세우는것은 한국의 초대교회나 하던 이야기예요 그렇다고 제가 이제는 담배피고 술 먹는 사람을 골라서 장로를 세우자는 이야기는 아녜요 그럼 뭐예요 술 먹고 담배안피면 뭐합니까. 불법, 탈세, 금융거래 위반 지적재산권을 침탈해서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뇌물 받고 이러면서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데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문제가 안 되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느냐 이겁니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뽑을 때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이제 돈 많은 사람들 장로를 세우고 그렇게 하고 교회의 일꾼들을 세우고 교회가 목사를 청빙 할 때도 그 사람의 사회적인 명성이나 아니면 그가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학위나 경력이나 이런 것을 보고 자신들이 그런 목사님들을 청빙하고 교회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하는 그런 것들은 이세상의 정신이 아녜요 예루살렘의 가치는 이 세상의 가치와 다른 겁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당신의 구속역사를 이루어가는 가치가 세상의 가치와 같았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시면 안 되지요 고등학교 세계사에 두 줄밖에 안나온답니다.하나님이 그렇게 택하시려면 중국이나 로마 같은 나라를 선택하셔야 되잖아요. 손바닥만 한 땅덩어리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동네하나정도 밖에 되지않는예루살렘을 선택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웅장한 것이 영광을 받는 것 더 높은 것이 사람들에게 존귀 영광을 받는 것 이런 것들은 전부다세상의 정신 이예요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교회의 가치는 바벨론의 가치가 아니라 예루살렘의 가치예요 예루살렘의 가치는 더 넓고 크고 그리고 더 웅장하고 더 화려하고 그런 것이 아녜요 거기에서 이 세상은 보여 줄 수 없는 어떤 진리의 빛이 선명하게 비추고 있으면 불 꺼진 등불 천개가 밤바다에 빛나겠습니까. 불 켜진 등대 하나가 빛나겠습니까?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하게 개혁이 일어나야 됩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몇 군데 봉사하였습니다. 제가 느낀 소회가 있어요. 어느 학교에 물어 보기에 제가 충고를 했어요.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을 성도로 보지 말고 누구든지 죄를 범할 수 사람이라고 보고 학교의 법을 만들어라.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철저하게 규칙을 따라서 법을 따라서 교회가 운영되어야 하고 교회 뚜껑을 열어서 이 세상 사람들이 와서 교회를 들여다봐도 야 여긴 정말 윤리적으로 깨끗하구나. 투명하구나. 그렇게 얘기 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의 구원에 합당한 삶이예요. 우리는 개인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신앙의 감격을 누리는 그 일의 크기에 따라서 신앙의 수준이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것은 신앙의 일부예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하더라고 사과나무를 심는 것은 뿌리를 보려고 심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먹자고 사과나무를 심는 거예요 뿌리는 튼실하게 자라고 줄기가지가 뻗었는데 이 나무가 데모를 하는지 사과를 안 내놓는 거예요 잘라서 땔감으로나 쓰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인 모습은 달라야 되지 않습니까? 똑같이 교회에서 멱살 잡고 소동하고 데모하고 투서하고 고발하고 교회에도 수없이 교회에서 서로 쌈질하는 문서들이 날아와서 온 사람을 뒤흔들어 놓고 이런 것들이 정말 그리스도 교회에서 할 일이냐 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 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운영하는 지도자들은 정말 올바르게 이 교회에서 부끄럼 없이 하나님의 공정한 정의를 교회 속에서 실현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들이 와서 보더라도 윤리적인 삶의 수준이 그들보다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삶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의 철저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미 자신들 속에 굳어져있는 습관과 뿌리내리는 이익의 문제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들을 철저하게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교회에 특히 지도자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개혁하고 올바르게 하는 이 일에는 항상 지도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하는 문제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개혁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 정신이 모든 교인이 그런 정신 갖는다면 좋지만 모든 교인이 그럴 리는 없어요. 최소한 교회의 지도자들은 투철한 정신을 가지고 자신들의 교회를 깨끗하고 하나님 앞에 이 세상에 빛 된 교회로 만들어야 되겠다는 명징한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자기 자신이 그런 점에 있어서 깨끗해야 된다. 이겁니다. 무엇인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익에 집착하거나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교회의 권력을 자신 손에 넣으려고 할 때에 그때에 거기서 모든 부패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목사는 목사로서의 자리가 있고 장로는 장로로서의 권사는 권사로서의 집사는 집사로서의 각자의 자리가 있어요. 성경에서 말하는 자리가 무엇인가를 찾고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충실하게 다른 교회의 구성요소들을 존중하면서 그렇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함께 하나님말씀의 빛앞에 서서 판단을 받는 다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운영하고 교회의 모든 제도들을 수립하고 그렇게 해서투명하게 이 모든 것들을 이끌어 가야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에서는 많은 희생이 따라야 될 것이고 지도자들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습관적인 생활들로부터 돌이켜 서서 그렇게 해서 불편하게 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정말 진리의 빛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퍼지고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교회가 올바른 삶의 윤리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맛있는 음식을 개밥그릇에 담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요리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개밥그릇에 담은 요리를 누가 먹겠습니까. 차라리 깨끗이 닦은 이빨 빠진 뚝배기에 담아주는 것은 먹지만 누가 개밥그릇에 담긴 그 좋은 요리를 먹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위해서 깊이 고민하고 이런 교회의 정치와 모든 문제에 있어서 지도자들이 명징하고 깨끗한 길을 걸어가야 되는 겁니다. 탈세하는 사람들 장로세우면 안됩니다. 되겠습니까. 그러다 구속이 되고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교회가 가르쳐야 될 가장 중요한 도리가 정의예요 정의가 살아 있는 곳에서 사랑을 가르칠 때 그 사랑이 감격이 되는 거예요. 왜 하나님 정의에 의하면 난 죽어야할 죄인 이예요. 아무 희망이 없이 내동댕이쳐진 짓밟힐 인생 이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신 거예요 그것이 감격이 되는 거예요. 교회가 가르쳐야 될 가장 중요한 대목은 무엇이 옳은가 먼저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일주일동안 세상에 살 때에는 옳은 게 그른 게 뭔지도 모른 채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면 이일도 하고 저 일도 하고 거짓말도 하면서 너절하게 살아요.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퍼지면서 일주일동안 자기의 삶이 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만으로는 회개하기 어려워요 옳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에 회개하면서 나 같은 인간을 이렇게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왜 이렇게 살까 그러면서 두 번째 회개가 나오는 거예요 이것을 청교도들이 율법적 회개 복음적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교회가 하나님의 올바른 정의를 정직하게 선포하고 그다음에 눈물겨운 사랑을 복음으로 이야기 할 때 회개가 나오는 거죠 오늘 교회의 특징은 뭐냐면 죄는 삼십년 보다 더 많이 짓는데 회개하라는 선포가 없어요. 여러분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최근에 드린 주일예배가운데 온 교인이 눈물로 회개했던 적인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 강단 자체가 그런 일을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게 이렇게 몰고 오는 겁니다. 매일 매일 날마다 죽노라 라고 했던 사도바울도 선을 행하고자 하는 소원은 내게 있으나 악을 행한다고 고백을 했는데 그 사람 보다 훨씬 더 충성되지 못한 사람들이 회개가 없이 예배 속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서 자기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간인지 경험하지 못하고 매일매일 세상의 정신에 묻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절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들과 교회의 제직들은 교회의 예배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가 형편없이 드려진날은 돌아가서 자기 때문에 예배가 그 꼴이 되었다고 참회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예배시간에 정직한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퍼지고 그리고 교회의 중요한 일꾼들이 교인들을 만나서 가르칠 때도 이 정직한 교회의 하나님 말씀의 정의를 가르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에서는 자신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투스라는 기독교의 위대한 사상가가 그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모든 가르침의 풍부함은 삶의 방식으로부터 온다.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사느냐 그것에 의해서 가르침의 내용이 풍부해진다는 것입니다. 일주일동안 핍박받으면서 전도를 했던 사람은 주일날 와서 전도합시다. 라고 설교할 때 할 이야기가 많은 거예요. 일주일 동안 기도를 많이 눈물로 한 사람들은 주일날 와서 기도합시다. 라고 성도들에게 앞에서 말할 때 할 얘기가 많은 거예요 그럼 똑같이 우리가 올바르게 정의롭게 살려고 일주일동안 몸부림칠 때 그때에 주일날 우리들이 가르치는 가르침 성도들과의 나눔 속에서 우리들이 왜 올바르게 살아야 되겠는가. 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가르침이 풍부해 지는 겁니다. 오늘 이 에스라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아는바와 같이 이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포로를 귀환한 지도자였습니다, 고레스왕의 많은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스라엘의 포로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분명히 왕은 이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도록 허락을 했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습니다. 반감을 가진 무리들이 그들을 늘 에워싸고 고통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곳에 와서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그 일에 헌신했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이나 지난 때의 일이었습니다. 이미 벌써 삼대나 세월이 흘렀고 따라온 상당수는 이미 옛날에 여기 살지 않던 후손들이예요 그래도 하나님의 신의 깊은 감동을 받아서 그래서 그들이 이제 하나님과 의 만남이 있는 영광스러운 성전의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마음 먹게되었습니다.그리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잘 되어가고 있을때였습니다.이 에스라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기도하고 백성들에게 그 진리를 가르치는 일 외에는 별로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와서 전하는 거예요 큰일 났다는 거예요 뭐냐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예루살렘에 올 때의 신앙을 버리고 이방의 여자들과 결혼을 해서 첩을 얻고 거기서부터 자식들을 낳고 이렇게 부패한 생활을 하는데 이 모든 부패한 일을 하는데 선봉에 선 사람들이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백성들이 잘못된 그 행실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해서 지금 이렇게 하나님의 사명을 갖고 온 사람들이 사명은 오간데 없고 그리고 첩을 얻어서 모두 방탕한 생활 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 거예요 에스라가 경건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 많이 한 것은 좋았는데 세상에 대해서는 좀 무관심했던 사람 같아요. 자기가 나중에 알았어요. 그리고 이 사람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제일먼저 성전 앞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 성전에 올라가서 거기 문에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가 가지고 있는 이런 국가적인 난관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교회의 커다란 부패를 보면서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일먼저 정치적인 전략을 짜고 누구를 숙청해야 할지 명단을 작성하고 살생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모든 문제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엎드려서 울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지도자가 바로 그 성전에 엎드려서 울며 기도하며 그 백성들의 지은 죄가 자기의 죄라고 생각하고 그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 앞에 통곡하면서 울었어요 교회에 문제만 생기면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나 때문이라고 어느 한사람이라도 맞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 때문입니다. 그리고 엎드려야 되잖아요. 이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라가 첩을 얻고 자식을 낳은 이런 끔직한 죄와 뭔 상관이 있습니까. 그는 그런 문제하고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님의 교회를 볼 때 자기의 지체들이 행한 그 모든 죄가 영적인 연결을 타고 자신의 마음속에 전해졌고 그들의 죄와 자기의 죄가 구별되지 않고 이것은 하나님의 한 몸인 이 언약백성으로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책임져야할 마음이라고 갖고 성전에 엎드려서 깊이 통회하며 자복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의 제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으스대라고 준 직분이 아니고 건축 헌금할 때 돈 많이 걷으려고 준직분이 아니거든요 그러면 내가 이렇게 주님의 일꾼으로 뽑혔으니 이 교회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한 몸에 느끼며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배당에 와서 처음 이름 없는 무명의 교인일 때는 눈물도 많이 흘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도 많이 하다가 교회에서 직분이 올라갈수록 그런 것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요 그러니까 신앙의 생생한 감격은 교회의 중직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방금 와서 예수믿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생생한 간증이 있는 거예요 그게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을 옳게 하지 못해서 그런 거죠 그러면서 지도자들이 먼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서 깊이 통곡합니다. 죄를 자복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마도 지도자인 에스라가 하나님의 집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며 모든 위로를 거절하고 눈물을 흘리고 울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었을 것이고 그 소문은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라가 지금 엎드려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렇게 울고 계시데, 왜 그런데? 모른데 기도의 내용을 들어보니까 우리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래. 마음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셋씩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모인 것은 아닐 겁니다.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설교도 없었고 너희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보아라.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소송하는 비난전도 없었습니다. 아무 소리 들리지 않고 교회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성전에 엎드려서 혼절할 듯이 눈물로 회개하며
(찬양)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시네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지도자의 울음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백성들이 누구의 지시도 없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인 그 사람들이 아무도 그들에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가슴을 찢으며 통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개혁되는 방식 이예요.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마치 사회에서 무슨 노동조합이 파업하는 것처럼 교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다루는 방식이 아녜요 지도자들이 먼저 깊이 자복하니까 그러니까 많은 백성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깊이 통곡하니까 남자 여자 어린아이들까지 모여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이 안다고 해서 그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사상을 가르치고 올바른 삶을 살라고 강하게 촉구하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고 외쳐도 아 저렇게 살면 안 되는구나 라는 자각만을 가지고는 그렇게 안살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뭐냐면 하나님의 은혜의 힘이 예요 은혜의 힘은 은혜받기 전에는 도저히 그렇게 살 수 없었던 삶을 살수 있겠금 만들어 주는 거예요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정말 이 혼탁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교회를 하고 싶어요.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살아도 나는 주님의 사랑을 많이 입었으니 내가 손해를 보고 괴롭더라도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살고 싶어요.
그렇게 착한 마음을 먹는다고 고난이 물러가는 게 아녜요 여전히 고난이 오고 시련이 와요 은혜가 없으면 오늘 결심을 해도 내일 시련이 오면 그 시련을 이길 힘이 없기 때문에 그 삶을 지속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아요. 그러면 고난을 올 때 생각하게 됩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겨우 이만 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니까 이렇게 큰 고난이 오는데 우리주님은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고통을 당하셨을까 내가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당하는 이 괴로움이 크다고 하더라도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당하신 그 고난에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천 년 전의 주님이 당하신 그 고난이 오늘 우리의 심령 속에 싹 스며드는 거예요 이천년의 간격을 뛰어넘어서 오늘 내 마음속에 스며드는 겁니다. 그래서 깨닫게 되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내안에는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구나. 그러면서 남의 죄들 때문에 분노하다가 결국은 그렇게 주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면서 마지막에는 자신의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통회하게 됩니다. 깊이 회개하고 아버지 앞에 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에스라가 그렇게 통절하게 회개하고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에 제직들이 장로님들이 목회자들이 이렇게 많이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이 아파하지 않는 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통증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죄 때문입니다. 내가 올바로 살고 주님이 말씀대로 행했더라면 빛나고 영광스러워질 주님을 이름이 교회에서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깊이 아파하며 통절하게 회개하고 교회를 위해서 섬기는 기도를 올릴 그때에 하나님이 바로 그런 은혜로서 당신의 이 개혁을 이루어 가시는 겁니다. 이 은혜와 개혁은 나뉘어질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운 사람은 개혁을 싫어해요 개혁하는 사람은 은혜에 관심이 없어요. 기도도 안 해요 그래서 이 두 가지가 항상 함께 가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은 말합니다. 그렇게 죄지은 백성들이 이야기를 해요 지도자여 우리가 우리의 아내와 우리의 자식들을 다 내보내고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에스라가 교인들하고 주먹다짐을 하면서 이 자식들 첩이나 얻고 자식이나 낳고 그러려고 예루살렘에 왔냐고 모욕을 주거나 욕하지 않았어요. 그저 조용히 성전에 나아가 자기의 중심을 토하며 눈물로 기도했어요. 그 지도자의 기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바닥에 스며들었어요. 그리고 그들속에 번영하고 타락하면서 사라졌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켰어요. 그래서 율법에 자신의 삶을 비춰봤어요. 아 이건 아니다 떠나야 된다. 우리가 우리 아내들도 다 버리고 우리의 이 잘못된 가정생활을 청산하고 율법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들이 교회에서 생겨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는 지금 우리는 섬 아래 가루가 아니라 한줌의 누룩이 필요합니다. 불 꺼진 수천 개의 등불이 아니라 희미하게라도 빛나는 하나의 등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것이 너무 많잖아요.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을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해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습니다.
인생의 시련과 환란의 고비도 많았는데 이제껏 인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섭리 속에서 물질을 주시고 지위를 주시고 품격과 명예를 주셔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으며 살게 해 주셔서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대신 이것을 사랑하라는 준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자원들을 사용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번영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성취되는 그 일에 헌신하라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없을 때 우리는 살수 없는데 도와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살 수 있는 은혜와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렇게 모두 정의를 버리고 불의하게 사는 세상에서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 대충 살려고 하는 교인들이 많은 이 시대에 아니야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다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깊이 몸부림칠 때에 시련과 역경이 찾아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에 느끼는 받아야 하는 고통과 괴로움은 주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은혜의 크기에 비하면
(찬양)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고백을 합니다.
맨 처음 인생의 벼랑 끝에서 주님을 만나고 구원의 은혜를 경험 했을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압도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백했습니다. 이 쓸모없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왜 못 박으셨습니까,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왜 나 같은 인간에게 베풀어 주십니까, 그때 우리는 이제 우리의 남은 인생은 내 것이 아니고 우리 주님의 것이라고 다짐하지 않았습니까. 한국 교회가 교만 해진겁니다. 그 고통스럽던 일제치하와 그리고 육이오를 극복하고 거지와 방불하던 그런 50년대 60년대의 삶을 이 지구상에 지금은 그렇게 비참한 나라가 없습니다. 60년 61년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런 나라가 전 세계에 없어요. 그런데 이 놀라운 일들을 이루었어요. 영국사람이 한번 이야기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요 영국이 삼백년동안 이룬 업적을 한국은 30년만에 이루었답니다. 개발도상국가 가운데 민주화와 경제적 부흥을 동시에 성취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답니다. 누구의 은혜입니까 정치지도자들이 무슨 정치를 그렇게 잘했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속에서 우리를 마지막 세기에 선교를 감당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말 많은 복을 하나님 부어주신겁니다. 아무리 들여다 봐도 이렇게 살수 있는 나라가 아녜요 백성이 정직하길 합니까. 자원이 많습니까. 무슨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있습니까. 진짜60년대에 이민간 사람들을 만났더니 다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뭐라그러나면 아주 심각하게 이야기하길 목사님 제가 25년 전에70년도 이민 올 때 보면 한국은 곧 망할 나라였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부흥 을하고 있느냐는 거예요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그렇게 된 거죠. 그러면 우리들이 세상 사람들은 꼭지 없는 사람들이니까 하나님의 은혜같은것 모르니까 교만해질 수 있어도 우리는 그 시대의 역사를 다 알잖아요 우리는 겸손해 져야 합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삼사십년동안 베풀어 주셨는데 우리의 머리카락으로 신발을 삼고 우리의 가죽을 벗겨서 예수님의 옷을 만들어드려도 갚을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는 입은 거예요 그러면 저 사람들은 개념이 없는 사람이라고 그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찬양) 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그렇게 하나님 앞에 정말 살고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학문, 지혜, 우리에게 주신 부, 물질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이 모든 좋은 환경과 재능들을 통해서 어찌 하든지 그리스도의 교회를 모든 든든한 사상의 기초위에 세우고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아름다운 삶을 살아서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진리가 여기에 있다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의 가치를 뛰어넘는 행복이 우리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여러분들에게 우리 모두 다짐하자고 제안을 드립니다. 우리는 주님이 한국에 베풀어 주시는 이 큰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가 이제는 이 세상의 정신을 따라가지 않도록 정말 깨어 있고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셔도 절대 교만하지 말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면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그 나라를 위해 사용합시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먼저 이 에스라처럼 성전에서 회개하고 모둔 성도들은 이렇게 지도자의 깊은 은혜와 개혁에 성숙한 생각으로 동참해서 주님의 교회가 우리의 시대에 아름답게 이 세상에 빛나도록 헌신하는 사람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