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베푸소서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57:1)
녹취자: 김경애
아마도 다윗이 사울의 핍박을 피해 블레셋 땅에 도망갔다가 정체가 탄로 나서 다시 거기에서 탈출해서 광야를 유람하고 있을 때 지은 시라고 추측합니다. 오늘 1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같은 간구를 두 번 드리고 있습니다.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2번 반복합니다. 그러니 이 다윗에게 은혜가 절실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마도 다윗이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 자기를 이 심각한 인생의 깊은 시련에서 구해달라는 은혜의 간구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영혼에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뜻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환경을 열어주셔서 눈을 뜨면 매일 매일 마주치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하나님이 바꿔주시는 것 없이 우리가 어떻게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영혼의 은혜를 구합니다. 그 모든 시련과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또 하나님이 형통하고 평안한 길을 주셔도 교만하지 않도록 해주시는 그 은혜가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대목을 통해서 가르쳐주는 교리는 이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성품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말하기를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가기까지 피하리이다” 재앙을 복수로 썼으니 이것은 사실 ‘악’이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많은 악인들이 그 주위에 있어서 악하게 이 사람을 괴롭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 악들이 “지나가기까지 피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한 성품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백성들을 선택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눈만 뜨면 우리의 마음에 오가는 많은 염려와 근심들 그리고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현재에는 어떻게 할까? 하는 많은 불안들은 주님의 보호를 우리들이 현실적으로 확신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의지할 만한 분이심을 보여주시고 당신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능력 있으신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를 보호하시기에 능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두려움과 염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분의 보호는 위험이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고 아끼시는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한다면 그분이 어떤 처지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니 염려를 내려놓고 주님의 보호에 여러분 자신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두 번째 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영혼의 피난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내 영혼이 주께 피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영혼이 주님께 피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현실에 대한 막연한 비관이나 혹은 현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회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영혼이 주께 피한다는 의미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내가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든지 혹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들이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모든 관념과 생각을 포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당신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입니다. 항상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 어떤 장소에서보다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 이외에 다른 것으로 당신의 그 탁월한 성품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우리가 은혜가 필요한 영혼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피할 길은 하나님 한분이시라는 것, 주님이 우리를 보호해주신다는 것을 어디서 배웠습니까?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지 않으면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없고 누구도 자기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방법보다 더 신뢰할 수 없으며 마지막으로 믿음을 발휘하여 실제적으로 하나님께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화두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해야지만 우리의 영혼이 은혜를 간구할 줄도 알고, 주님이 보호해주시는 분인지도 믿을 수 있고, 믿음을 발휘하여 그 주님께 피할 수도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리를 빌자면 이것입니다. “너희들이 믿고자 하느냐?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라. 너희가 이해하고자 하느냐? 하나님을 믿어라.” 믿음은 이해에서 생깁니다. 이해하는 것을 통해서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서 믿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의 마음은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믿음을 실제적으로 자신 속에 활용하게 됩니다. 그렇게 설명되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를 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이성의 사용입니다. 그래서 요란하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이 세상의 즐거움과 괴로움 혹은 슬픔과 고통 때문에 출렁거렸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합니다. 그러면 이성이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리고 이성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성찰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성을 사용해서 하나씩 하나씩 이해하면서 자신의 상황과 연결시키려고 합니다. 마지막에 도달하는 결론은 믿어야겠다는 마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한 사람이 똑같이 믿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라는 말은 그냥 소음처럼 들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기울여서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 믿음이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가져다줍니다. 신자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이제껏 보지 못했던 당신의 성품에 대한 찬란한 지식의 빛을 우리의 영혼에 비춰주실 때입니다. 그때 다른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고 그리고 그 진리의 진한 맛을 보면서 우리는 아무도 이런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세계가 되기를 갈망하는데 그래서 영혼에 대한 사랑은 진리에 대한 사랑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치기 쉬운 이 여름에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요동치는 마음을 잠잠히 하고 그리고 사역으로 바빴던 마음을 조용히 침묵하게 하고 그래서 여러분 자신의 이성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삶을 이해하려고 하고 그래서 주님을 깊이 만나는 믿음의 순간을 갖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