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하는 영혼을 채우심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
사실 아이들을 길러 보면 잠 잘때의 모습이 가장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나이 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자는 모습은 그렇게 예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루 동안 인생에 지치고 지고 있는 짊이 너무 많아서 인지 아마 잠 자는 모습을 사진 찍히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정말 예쁩니다. 나는 이 성경 구절을 볼때마다 만족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것이 뭐냐면 엄마 젖을 배고프다 실컷 먹고 그 다음에 스스로 만족해서 젖에서 입을 떼고 잠들어 있는 아이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그러면 평화가 가득하고 아무것도 더이상 바라는 것이 없이 배는 올챙이 같이 볼록 나와서 얼굴이 확 펴진 다음에 잠이 듭니다. 더이상 바라는 것이 없는 행복한 상태 그것이 만족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이러한 만족이 이 세상에서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제가 칼빈의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인데 이스라엘은 뭐라고 이야기 했는가 하면 세상에 물질이 풍부해 지는 것은 우리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해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역설적인것이 칼빈이 제네바에 두번째로 지도자로 들어 갔을 때 그 사람은 교회의 목사 였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사상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창조 하실때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이 지상의 나라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영역이 있고 하나님의 법의 통치 영역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 천상 세계를 교회가 담당하고 또 하나의 지상세계를 국가가 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이 서로를 멸시하거나 짓밟으려고 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각각 주 되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복종함으로서 교회의 질서를 이루는 것처럼 나라의 질서가 하나가 되어서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나라 좋은 시민이면 훌륭한 교인이 되는 이러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당시 종교 개혁자들의 공통적 이상 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문맥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오늘날에는 완전히 민주주의화 되었지만 당시는 아직까지도 근대화 되기 이전이니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칼빈이 굉장히 영특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전 까지만 해도 스위스는 뭐로 먹고 살았는가 하면 전 세계 역사에서 스위스 하면 유명한 것이 용병입니다. 그래서 스위스 군인들을 유럽의 왕실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서 사 가면 그 사람들이 그렇게 충성 스럽고 용맹스럽게 싸웠다고 합니다. 덩치도 크고 그리고 알프스 자체가 아주 비탈지고 해 먹을 것이 없는 나라이니까 거기에서 말하자면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침공하고 그 침입을 저지하는... 스위스는 전쟁의 역사에서 졌던 적이 거의 없는 나라 입니다. 나라는 조그만해도... 그런데 그런 일들을 해서 돈을 벌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칼빈이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하고 농사를 하려고 애를 쓰는데 땅도 척박하고 이런 나라에서는 그런것 가지고 안된다고 해서 공업화의 기치를 높이 쳐 들면서 산업화를 시도한 그 장본인이 칼빈 입니다. 그래서 아까 이야기 한 것은 교회와 신앙의 차이에서 고민한 문제이고 이것은 백성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고민하는 문제 이겠지요? 어쨎든 그렇게 됩니다. 결국 만족이 이 세상에 있는 많은 물질이나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그것은 마치 목마른 날에 마시는 설탕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으로는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만 진정한 행복은 우리에게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셔도 그 안에서 우리들이 만족을 누리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만족을 누리려고 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물질이나 이런 것들이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사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적절하게 우리 자신을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아름다운 경건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엄마의 젖을 먹고 엄마의 품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더이상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충분한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만족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남이 안 가진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잃어 버릴까봐 두려워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죠? 그리고 그 다음에 못 가졌으면 박탈감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치게 됩니다. 이렇게 저렇게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있는 사람은 있는 것 때문에 행복하지 않고 없는 사람은 없는 것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느 교인을 심방했는데 자기네 회사에 1억원의 연봉을 받은 여직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지금도 1억의 연봉은 꿈에 그리는 연봉인데 5년전의 1억이니까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사표를 냈습니다. 이런 좋은 직장이 어디 있냐 연봉을 1억씩이나 주는데 여자가 어디가서 그런 대접을 받으려고 그만 두려고 하느냐 라고 했더니 그 여직원이 사장님 1억도 좋은데 1억의 연봉을 받는 동안 내 인생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일어나면 다른 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길 아이디어를 짜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하면 그 다음에 또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 정상에 오르면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 연구해야 하고 떨어지면 붙잡기 위해서 연구해야 하고 막 몸부림 치는데 그것이 무슨 인생을 사는 것입니까? 생각을 바꾸어 보니까 내가 월급을 덜 받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그런 회의가 일어 날 때가 있는데 신앙이 있는 사람이 그런 회의가 안 든다면 이상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성경은 뭐라고 했는가 하면 사모하는 영혼을 하나님은 만족시켜 준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해야 할 모든 것들은 기도의 제목입니다. 그래서 청년부 예배에 이렇게 들어가 보면 나오는 기도가 뭐냐면 이 친구들 취직해야 하는데... 작년에 우리가 경상수지를 430억 달러를 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거의 50조가 넘는 돈인데 그러면 뭐 합니까? 핸드폰 하나만 하더라도 그냥 공장에서 주루룩 줄 타고 만들어 지는 것이지 사람이 몇명이나 필요 합니까? 그러니까 이것이 사람이 계속 돈을 벌어서 그것으로 가정을 꾸려가고 기족들이 소비를 하면서 경제가 일어나고 해야 하는데 수출은 초고속으로 달리는데 사람은 안 쓰는 것입니다. 우리 옛날에 정상적인 상황에서 보면 누구는 대학을 졸업 했는데 취업을 못했다고 하면 그것 참 어떻게 하나 하는데 요즘은 누가 취업 했다고 하면 "정말!" 하는 것입니다. 취업 하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을 해야 하는데 결혼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삶이 내 몰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안 쓰럽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직장 다니는 열사람중에서 여섯 사람은 완전하고 튼실한 직장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조금 걱정이 되는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 앞에 구해야 할 영역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여러분 진짜 기도 많이 해 주셔야 할것이 뭐냐면 나이든 형제 자매들 빨리 짝지어서 가게 기도 좀 많이 해 주십시요. 남의 아이들이라고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 형제들도 고등학교 갓 졸업한것 같던 아이들이 지금은 무슨 안수 집사처럼 생겼습니다. 청년들이... 이것이 걱정 아닙니까? 그래서 어떤 아이가 지나가는 청년에게 "집사님!" 이라고 했다고 "나 청년인데..."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빨리 가게 그것도 기도 제목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당신 의지하지 않고 혼자 한번 해 보라고 우리에게 기도 제목을 주신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은 그분을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구해야 할 것들 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든 것들도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분명하게 채워 주시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 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만족하고 행복한 상태가 될때 다른 모든것들을 우리들이 극복하면서 살아 갈 수 있는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살아 있으면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가 돈을 벌면 주님을 위해 쓰고 시간이 남으면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재능을 주시면 그 재능때문에 교회에 유익을 주시고 사회에 유익을 주십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의 신앙이 고갈되고 우리의 영혼이 병들어 있으면 돈을 주시면 그것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더 망가지고 미모를 주시면 그 미모 때문에 더 망가지고 시간을 주시면 그 시간 때문에 더 미끌어 지고 이런식으로 모든 좋은 것들이 나쁜데에 사용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영혼의 그런 것들을 활짝 펼쳐가게 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 한분 밖에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도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공익광고인가 선전 나오는 것이 감동이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쌀이 없으면 밀가루로 대신 할 수 있습니다. 말 됩니다. 빵 먹으면 되니까... 그리고 석유가 없으면 전기로 대신하면 됩니다. 쭉 나오다가 마지막에 그러나 물이 없으며 물 밖에 대신할 것이 없습니다. 진짜 가만히 광고를 듣고 보니까 말이 됩니다. 물이 없으면 물을 대신할 것이 없습니다. 물은 오직 물이어야지 콜라로 밥을 하겠습니까 맥주로 국을 끌이겠습니까? 물 밖에는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세상에서 세상 자원을 주고 꾸워 오거나 사 올수 있는 것은 그것이 없으면 다른 것으로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것으로 값 주고 살 수 없는 우리 영혼의 진정한 생명은 하나님 한분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이 없다가 생겼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혼의 자원이 없다가 하나님께로부터 생긴 것은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헌금 더 많이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이 많이 주셔도 감사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오히려 아무것도 주님께 받은 것이 없어도 영혼을 만족케 하시는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누구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힘입니다. 은혜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한 모든 영혼을 가득 채우셔서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살게 하시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90년도 처음 중고차를 구입해서 타고 다녔는데 그때는 대학의 선생으로 있었다고 해도 왜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는지 대학교수가 되어도 가난했습니다. 기름이 꽉 차 있으면 그렇게 든든하고 기분이 좋을 수 없습니다. 아마 가정 주부들도 쌀독에 쌀이 가득할때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안 그럴 것입니다. 냉장고에 햇반을 많이 사 두었을때 그런 마음이 들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영적 생활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수없이 실험을 해 보아도 분명한 것은 우리의 참다운 영혼의 만족은 오직 주님께로부터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다 공허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모든 영혼이 이런 하나님 자신이 주시는 만족으로 가득한 상태에서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면서 그렇게 살게 하시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신데 실제로 그런 영적인 만족을 누리면서 살아 가는 사람은 소수 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성경에 의하면 사모하는 영혼 주린 영혼에게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겨울이 되면 저희 할머니 살아 계실 때 김치죽을 끌여 주셨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음식이 죽 입니다. 저는 형상이 분명한 음식이 좋습니다. 완전한 액체 이든지 단단하든지 둘중에 하나이지 밥도 그래서 그냥 고슬고슬해서 후 불면 날라가는 그런 밥이 좋습니다. 그때는 어려서 그런대로 죽을 먹었습니다. 우거지 김치를 조금 넣고 별로 들어 간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쌀 집어 넣고 끌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할머니께서 해 주시면 그렇게 맛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렸을 때에 그렇게 맛있게 먹던 음식을 그 다음에 똑같이 만들어 본다고 혹은 옛날에 먹던것을 결혼해서 만들어 먹어 보면 맛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두가지 인데 인간의 미각 세포가 나이를 먹으면서 변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시력이 변하고 후각이 변하듯이 미각도 변하기 때문에 옛날 맛이 안 나는 것이고 그것보다 더 큰 요인은 배가 불러서 그렇습니다. 오죽했으면 도루묵의 일화가 있습니다. 왕이 남한산성에 갇혀서 먹을 것이 없을 때 그것을 누가 그래도 지극정성으로 도루묵을 구해서 주니까 왕이 잡수어 보시고 이것이 뭐냐? 묵이라고 합니다 하니까 묵이 뭐냐 이렇게 많있는 음식을 은이라고 해라 그리고 나서 평화가 찿아 오고 나서 다시 한번 먹어 보니까 이것은 맛이 너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루묵이라고 해라 해서 도루묵이 된 것입니다. 실화 입니다. 그래서 도루묵이 된 것입니다. 원래 그 이름이 묵 입니다. 그러니 결국은 우리의 입맛 아닙니까? 어렸을 때 가만히 보면 마음이 곤고하고 사모함이 있을 때에는 지금 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설교 였는데 말도 안된다고 하면 돌아 가신 분들이 섭섭해 하겠지만... 교리적으로 보던지 뭘로 보던지 그렇게 따라서 설교 하라고 가르칠 수 없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노트에 깨알같이 적으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고 한구절 반구절 단어 하나에 그렇게 꽂혀 은혜를 받은 기억이 납니다. 너무 허기지고 배 고프니까 그러니까 주님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만큼 주님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적다는 이유는 무슨 뜻인가 하면 우리들이 외적인 것에서 너무 많이 만족하고 태만한 나머지 영혼의 굶주림을 잘 못 느끼고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의 경험을 보면 5,000불이 기점이라고 합니다. 어느 나라이든지... 특히 아시아쪽에서는 복음이 들어가서 3,000불 일때가 피크라고 합니다. 우리로 따지면 언제쯤인가 하면 1970년대 후반이나 3,000불이 조금 안되고 1,000불이 넘고... 1974년에 1,000불이 넘었으니까... 1,000불에서 2,000불, 3,000불 사이에... 철야기도때 교회마다 그렇게 모여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왜 기도를 못했냐고 하면 애기가 어려서 그런것 없었습니다. 애기를 들러 메고 자던지 놀던지 울던지... 어차피 분위기가 우는 분위기 이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거기에서 오줌싸고 그것이 젖으면 그것이 땀인지 오줌인지 모르고 그냥 매달려 기도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사모함이 없습니다. 정말 없습니다. 구라파에 가 보면 여기는 그래도 낮습니다. 거기는 더 심합니다. 전혀 티끌만한 목마름이 없습니다. 그러한 사모함이 없기 때문에 빈 영혼이 빈채로 그리고 공허함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깨뜨려진 하나님과의 관계, 병든 영혼은 가만히 두고 우리의 환경만을 계속 바꾸려고 하는데 그러면서 물고 뜯고 싸우고 그 경쟁 속에서 살 때 어디에서 우리가 행복을 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의 경험을 돌아 보십시요.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사모하던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 주신 것이 없습니다. 은혜를 구하면 은혜를 주시고 환경을 바꾸어 달라고 하면 환경을 바꾸어 주시고 늘 하나님이 동행 하면서 우리와 함께 우리의 인생길을 걸어 오게 하셨습니다.
(찬송)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어느 교회에 집회를 하러 갔는데 저녁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같이 밥을 먹는데 옆에 있는 사모님을 저도 잘 아는데 저를 보더니 눈이 빨게 졌습니다. 목사님만 뵈면 눈물이 납니다 하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아니 나도 내가 안 불쌍한데 당신이 나를 왜 불쌍하게 생각합니까? 목사님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고생스러울 때도 많이 있지만 기쁠때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디를 간들 슬픔과 눈물, 고생이 없는 때가 있습니까? 그러나 그 갈피 갈피 주님이 우리를 위로 하시고 어루 만지시고...
(찬송)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그렇게 살아가게 하시니까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육신의 모든 삶은 벗을 몸이니 우리가 썩지 않을 것을 바라 보면서 살고 이 세상에 누구 하고도 자기를 위해 살아서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안에서 사랑을 받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는 이런 삶속에서 우리들이 어느 한 순간의 행복이 행복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엮어져서 어디로 흘러 가느냐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은 사모하시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조지 휘필드 목사님은 마음이 곤고해 질때마다 자기가 회심한 교회에 찿아가서 주님 만났던 의자에 입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방배동 예배당에서 주님 만났던 사람들은 오피스텔이 들어 섰으니 입 맞출 곳이 없겠지만 마음으로 자기가 주님을 만난 그 시간을 생각하면서 그 과거의 기억에 입을 맞추고 마음을 굳게 다짐해야 합니다.
(찬송)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사경회를 한다고 하는데 시간이 되면 한번 시간내서 한번 가볼까 하면 안됩니다. 그래도 주님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하나도 안 하고 와도, 술 먹고 와도 하나님이 회심 시켜 주셨다고 하지만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사모하는 영혼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제가 이제껏 목회를 하면서 거느렸던 제일 좋은 교인들은 제가 고등학생들에게 목회 할때 그 아이들이 은혜받고 변화된 다음 이었습니다. 여름 수련회를 간다고 하면 40일 전부터 금식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표를 짜서 자기들끼리 40일전이니까 6주 전인데 벌써 선생님들하고 전도사님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하나님께 저아이, 저아이, 저아이는 만나 주시겠다. 그러면 쪽집게 입니다. 틀림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때문입니까? 그 아이들이 얼마나 유혹받은 것들도 많을 터인데 그리고 젊었을 때에 금식하기가 쉽다고 하는 것은 나이 든 사람의 이야기 이지 젊었을 때에는 먹성이 좋아서 그리고 나이가 들면 먹성은 좋은데 힘이 없어서 금식이 힘들지만 젊었을 때에는 금식 일주일쯤 해도 힘은 남는데 너무 먹성이 좋아서 먹고 싶어서 금식이 고통입니다. 그래서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그렇게 금식을 하고 하면서 심지어는 3일씩 금식을 하면서 어떤 아이들은 하나님이 수련회에서 저를 만나 주시든지 저를 여기에서 묻어 주시든지 둘중에 하나 해 달라고 비장합니다. 그러니까 요만한 아이들도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제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때 제가 정말 행복했다. 아마 지금까지 목회했던 가장 순수한 회중들이었습니다. 오랜기간은 아니고 잠깐이지만... 나중에 변절한 아이들도 있고 했는데 어쨎든 그런 사모함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만나 주십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정말 놀랍게 하나님께서 만나 주십니다. 그래서 사모하는 영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들을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