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녹취자 : 오희열
오늘 이 빌립보서는 모든 성경이 그렇지만 제가 처음 은혜를 받을 때 아주 사랑했던 성경입니다. 거의 이 빌립보서를 외웠습니다. 이 빌립보서의 무대는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빌립보교회는 아주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아시아로 가려고 하다가 성령이 막으셔서 마게도냐로 방향을 돌린 후에 처음 세워진 교회가 바로 이 빌립보교회였습니다. 아주 훌륭한 신앙의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에 사도바울이 편지를 보내면서 1장에서 자기가 옥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나 슬퍼하고 걱정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옥 속에 갇혀 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갇힌 것이 아니고, 옥에 갇혔어도 예수의 복음 계속 전파되고, 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복음은 더 멀리, 놀랍게 전파되지 않느냐고 하면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자녀는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 것과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만 내 몸에서 온전케 되기를 원한다는 그 유명한 고백을 하고 난 후에, 그 빌립보 교회 역시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그 교회, 복음을 대적하는 무리들에 의해서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런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1장 27절에 보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너희가 살아야한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전파라고 하는 것은 말로만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그리고 입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때 세상이 변하는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듣고 싶었던 것은 신앙을 위해서 온 교회와 교우들이 하나가 되어서 서로 협력한다는 소문을 듣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 듣고 싶었던 것은 대적을 만나도 이 빌립보 교회가 전혀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예수의 복음을 위해서 산다는 소식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빙거, 즉 확실한 증거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빙거입니까? 복음 안에서 너희가 견고히 서서 신앙생활을 하고 또 일심으로 한 뜻을 품고 복음 신앙을 위해서 협력하고 어떤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을 인해서 기가 죽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삶의 자세를 보이면 이것은 너희에게는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이고 그 사람들에게는 멸망 받을 것이라는 심판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이 사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설교하려고하는 29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9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우리들에게 이 성경구절은 대단히 생소한 성경구절일 것입니다. 우선 사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하는 것은 출발이 구원부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 이전에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들에 핀 백합이나 공중에 나는 새를 돌보시는 사랑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는 자기는 가치 없지만, 내가 가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으로부터 주어지는 그 모든 선물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런 섬세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그것을 힘입어서 살아가고, 만물이 기동하고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호흡하고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은 주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하지도 않고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사도는 “너희에게” 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아시아로 흘러들어가서 중국을 지나서 동방으로 전파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사도들의 그 계획을 하나님이 막으시고 복음의 물줄기를 돌렸을 때, 제일 먼저 그 구원의 혜택을 입었던 사람들이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지방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는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은혜와 놀라운 사랑을 이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이 받았던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그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사실은 들에 핀 백합처럼 살아온 자신들의 인생이 섬세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돌보심의 손길 아래 살아왔다는 이 은혜가 무엇인지를 그들은 모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구속의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이 빌립보 교회의 교인은 모든 사도들 가운데 뛰어난 바울과 같은 사람을 목회자로 삼아서 그곳에서 바울과 같은 훌륭한 사도로부터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고,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어둡던 눈들이 열리고 캄캄한 마음들에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길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는 살아서는 안 되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인가, 어둡던 인생의 좌표가 정해졌습니다. 생명이 없는 곳에 생명이 들어왔습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져가 들풀과 같던 인생들이 생명의 복음을 듣고 영원을 향하여 사는 놀라운 인생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하나님 베풀어주신 모든 은총, 이것은 하나님의 대가없는 은혜였습니다. 주님께서 거저 주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빌립보 교회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까? 피도 섞이지 않고 살도 섞이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에 그리스도의 일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도는 오늘 이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향해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내가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 사도 바울 속에 있었던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그 놀라운 사랑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옥 속에 갇혀서 사형언도를 기다리면서 도 옥 바깥에 있는 빌립보 교인들이 근심하며 기다릴 것을 염려하여 “기뻐하라”고 열여덟 번이나 적었던 이 사도와 같은 목회자를 빌립보 교회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생명의 놀라운 은혜와 복음을 확증함에 참여하고 싶은 헌신된 마음을 이 교회에 주셨던 것입니다. 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교회는 부자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은혜가 빌립보 교회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이런 은혜를 주신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데 하나님께서 생명의 놀라운 복음을 주시고, 끊임없이 말씀대로 살지 않고 불순종하는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진리의 빛을 우리의 어두운 마음에 비춰 무엇이 참 길이고 무엇이 거짓된 길인지를 알게 하시고 때때로 낙망하여 우리가 참 길과 거짓된 길을 분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빛으로 말씀의 광채로, 그리고 참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의 갈 길을 지도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여러분, 이런 것들을 은혜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와 같이 가치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의 한 모퉁이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여호와께 경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분에게 가슴 벅찰 정도의 특권으로 가득 찬 은혜로 느껴진 적이 있느냐고 오늘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수없이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은혜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은혜를 따라서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이 빌립보 교회에만 미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주님이 주셨습니다. 무슨 가치가 있었습니까?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렇게 피 흘려 죽으시고 하나님의 진노의 칼 아래 놓여있는 우리를 그의 피로 구속하셔서 생명과 자유를 주어야할 어떤 가치가 우리들에게 있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놀라운 사랑으로 구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밖에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보면 우리는 그러한 은혜를 받은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은혜로 베푸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이유도 없이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근거도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어진 이 놀라운 은혜를 받아서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매일매일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죄 사함의 은혜는 어떠합니까? 매일매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지은 죄를 들고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사죄와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참회를 거절하신 적이 있습니까? 매일매일 우리는 연약하고 늘 깨어지기 쉽지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인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득불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부득불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의 나 된 것이,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로 숨쉬고, 그 은혜를 마시고 그 은혜 속에서 잡니다.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또 오늘 여기 있는 제가 그리스도를 몰랐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셨다면 저와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겠습니까? 그렇게 비교해보는 것으로 놀랍지 않다면 잠시 후 죽은 뒤에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각각 다른 상태에 있게 되었을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놀라운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오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이 은혜가 무언가를 위한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 은혜가 무언가 목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대가는 바라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목적이 없는 사랑은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는 그것이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는 목적이 있는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주시고 생명의 놀라운 은혜를 주셨을 때 하나님은 그 은혜를 주신 계획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노예로 삼으시기 위한 은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으로서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 받은 사람으로 만드셔서, 그 은혜 받은 사람으로서 우리가 보다 더 훌륭한 인생의 목적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는 더 큰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계획을 따라 살 때, 우리의 인생은 은혜를 받은 것에서 더 나아가서 그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때 더욱 더 빛나고 훌륭한 인생으로 변모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셨다.” 빌립보 교회가 받았던 이 모든 놀라운 은혜는 그리스도를 위한 은혜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과연 이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겠습니까?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그 은혜가 목적 있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깊이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잠시는 은혜를 받았지만 금방 그 은혜를 잃어버리고 놓쳐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그 목적과 그 계획도 붙들지 못하고 놓쳐버릴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의도하셨던 그 은혜주심의 계획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면 우리의 은혜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까? 잠시 하나님의 계획을 버리고, 주님이 은혜를 주셨을 때 우리에게 계획하셨던 그 계획을 버리고 여러분의 계획과 목적을 따라서 살아보십시오. 여러분의 은혜는 금방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신비한 것입니다. 주님이 은혜를 주실 때 사람들은 인생 전체가 뒤바뀌는 것처럼 슬펐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가득차고 고통가운데 신음하던 사람들이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고 눈물이 변하여 기도가 됩니다. 고통의 불평이 변하여 찬양이 되고 불안과 장래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찼던 미래가 갑자기 확신과 비전에 넘치는 장래가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그 은혜를 주셨지만 그 은혜를 견고하게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이나 됩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한 때는 놀라운 은혜를 주셨지만 지금은 다 잃어버렸습니다. 한때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앞에 눈물로 감격하고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으로 아멘 하였지만 지금은 냉랭합니다. 하나님이 바뀌셨습니까? 아닙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만족을 위해 계신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서 존재하는 인생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만족을 위하여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니라 은혜를 주신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만족을 얻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고 은혜를 주실 때 하나님이 가지고 계셨던 은혜의 계획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은혜가 촉진됩니다. 은혜가 더욱 풍성해집니다. 은사에 은사가 더해집니다. 충만에 충만이 더해집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지식이 더해집니다. 풍성한 은혜의 풍성함이 더해집니다. 어둡던 영안이 열리는 그 위에 더 신령한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주실 때, 주님이 가지고 계셨던 그 놀라운 계획들이 있었지만, 여러분들이 한번 받은 은혜에 족하고 그 이상 은혜를 주실 때 하나님께서 내게 무슨 계획을 가지셨는지를 잊어버리고 그 계획을 따라서 살지 않을 때 여러분들의 은혜는 소진됩니다. 벌써 소진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오늘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바는 “너희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은혜 받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주신 그 은혜라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유지하기는커녕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갑니까? 이름도 모르고 어디 사시는지도 모르는 목사님 한 분이 제 전화기에 녹음을 해 놓으셨습니다. 두란노에서 제가 어떤 곳에서 강의한 테이프를 복사해서 목회자들에게 자료로 나누어 준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두 달동안 두 개의 테이프를 들었다고 하는데, 목소리로 듣기에는 연세가 50대 중반쯤 되어보였습니다. 그 테이프를 듣고 나서 저를 꼭 만나고 싶다고 두 번이나 전화에 녹음을 남겨두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들으면서 마음이 한없이 슬퍼졌습니다. 그 이유는 열린교회가 생기고 나서 은혜를 많이 받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교회가 여기 서기 전에는 제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설교를 하니까 거기서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받은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지만, 우리교회에 있는 성도들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습니다. 1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목사님처럼 내게로 와서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을 했었는지, 참 많았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은혜 받은 사람들, 몇 달씩 은혜 받은 사람들은 많았는데 근본적으로 은혜는 좋은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계획하고 있는 삶을 사는 것은 너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그 은혜가 얼마나 그 영혼 깊은 곳을 건드린 은혜였는지를 새삼 물어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1년이 넘어서 지나오면서, 어느 곳에 가서 설교하더라도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열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서 바라는 바가, 그들이 받은 은혜에 기뻐하기보다는 염려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그렇게 깨달은 만큼 견고하게 살아야할 텐데 하면서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계획들을 언제나 자기의 생각대로 그 은혜의 계획들을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은 철저하게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은혜였다” 은혜 받을 때 부담을 느낄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은혜를 받을 때 부담을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할 의무를 느끼고, 하나님이 내 인생을 향하여 가지고 계신 계획대로 살아드려야 할 무거운 영적인 짐을 져야할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살게 하십니다.
(찬양)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주님의 은혜를 먹고 그 은혜 속에서 숨 쉬며 그 은혜 안에서 살았습니다. 인간의 풍조는 변하고 세상의 사조는 흘러갔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없었습니다. 이런 모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그리스도를 위해 주어졌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기억해야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를 위해서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이 무슨 은혜를 받겠으며, 또 받았다고 잠시 눈물을 펑펑 흘리고 기뻐 뛴들 어떻게 그 은혜가 그의 영혼 속에 유지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르지만 하나님은 모두 아십니다. 은혜 받은 우리가 잠을 자든지 깨어있든지, 은혜 받은 우리가 그 은혜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기를 꿈꾸고 있는지, 그 은혜를 빙자하여 나를 유익하게 하기위해 살고 있는지를 사람은 모르지만 그리스도는 다 아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 파악할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들이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고도 그 은혜의 계획대로 살려고 하지 않을 때 주님은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가 그리스도를 위한 계획아래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은혜 그 자체보다 은혜의 계획입니다. 왜 가치 없는 나에게 찾아오셔서 모든 사람에게 주시지 않은 특별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찾아오셔서 다른 사람에게 없는 기도의 영을 주시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를 원하는 진리의 말씀을 나에게 주셔서 참과 거짓된 것을 분별하고 어두움 가운데 빛줄기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환경과 건강과 믿음을 주신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어둠가운데 소망 없고 절망가운데 신음하는 인생들에게 찾아오셔서 위로와 희망을 주시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굳게 붙들어주셨던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무엇입니까? 죄 가운데 살아서 자기 힘으로 돌이킬 수 없을 그때에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녹이시고 자신의 죄를 토하고 예수의 넓은 사랑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나에게 주셨던 그 모든 놀라운 은혜의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제가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인생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지금도 당신이 원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모세가 끊임없이 외쳤던 것은, “잊지 말라, 잊지 말라, 잊지 말라”였습니다. 과거의 일을 잊지 않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죽은 자와 방불한 너희를 살리시고 애굽에서 종 되고 포로 되어 소망이 없던 너희를 구원하여 어둠가운데서 눈뜨게 하셨는지를 잊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때마다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첫 시간 강의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면 나는 이렇게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내 주 예수 주신 그 놀라운 그 은혜를 어떻게 내가 갚을 수 있겠는가?’
(찬양)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한없건만
나 주 위해 갚은 것은 참 적으니
주 예수여 너그럽게 보옵소서.
생명주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버리시고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서 고통의 길을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우리가 누리고 있는 그 모든 은혜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그 모든 은혜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은혜가 그리스도를 위한 은혜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도’ 위하여 살아서는 여러분들의 은혜가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모두 잃어버린 후에 오늘 이 설교를 기억하셔도 좋습니다. 기억하셔야할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놀라운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한 분을 위하여 살 때 그 은혜가 은혜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이 은혜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주어진 이 놀라운 은혜를 사람들은 너무나 값없이 받고 있습니다. 비할 수 없이 귀한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가 사람들에게 하찮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을 버려 주신 그 놀라운 구속의 은혜와, 오늘도 자기를 믿는 자들을 실망시키지 아니하시고 선대하시는 그 놀라운 은혜가, 사람들이 그 은혜를 소홀하게 취급하고 하찮게 취급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영혼 속에서 은혜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가 그리스도를 위한 은혜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말합니다. “오늘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도가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다고 할 때, 저는 여러분들이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만약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바울이었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자기의 삶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를 위한 계획아래 자기에게 주어졌는지 깨달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바울에게 은혜를 주셨을 때 바울의 인생이 어떻게 그리스도만을 위한 인생이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죽든지 살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기를 원한다, 내가 이 두 사이에 끼어서 육체를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졌으나 그러나 너희를 위해서 이 육신에 거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너희를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다”고 할 만큼 그의 인생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남김없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드려졌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를 위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꿈과 예수께서 은혜주실 때에 바울에게 가지고 계셨던 그리스도를 위한 계획 사이에 조화를 꿈꾸기 위해서 타협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를 깨달았을 때 그는 그리스도께 붙잡혔고 그의 인생은 한 분 그리스도를 위한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의 계획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은혜의 계획과 목적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리운 바 되었으니 이번에는 은혜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인바 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거기에만 참 자유와 완전한 신앙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그 놀라운 은혜를 받았을 때, 사도는 즉시 자신의 모든 인생이 오로지 이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신적인 강제력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았습니다. 오늘 왜 이 사도가 흉악한 형벌을 받으며 옥 속에 갇혀서 옥밖에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매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가 그를 붙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놀라운 은혜가 그의 마음을 붙들었습니다. 그의 인생이 그리스도를 위해 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의 놀라운 사랑이 복음 안에 나타났고 그 복음의 예수가 자기의 인생을 붙들었습니다. 한없는 놀라운 은혜를 복음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이제는 이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고 생명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으로 생명을 주는 것 이외에 인생의 참다운 가치가 아무것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고난의 증거를 인하여 갇힌바 된 나 사도바울”이라고 말합니다. 한결같이 예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달았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오직 한 분 그리스도만을 위하여 살아야할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삶이 온전히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는 삶, 그분께만 드려지는 삶, 그것이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높은 삶을 살아가면서 잠시 주어진 이 지나는 밤의 경점과 같은 인생 속에서 허무한 것을 붙드는 대신 영원한 것을 붙들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믿는다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오해를 바로 잡아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당신을 믿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단지 우리에게 “아멘”이라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받고 싶으셨던 것은 삶으로 아멘을 말하는 인생, 이것을 받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이 놀라운 은혜를 조롱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주일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강대상에서 증거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아멘” 이라고 몇 마디하고 가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옳소!”라는 제창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삶으로 아멘을 말하는 그 대답을 얻고 싶으신 것입니다. 입으로 말하는 아멘이 아니라 삶으로 아멘을 고백하기 위해서, 아멘 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모든 요소와 더불어 싸우고 고난을 받고 이기고 끝없이 다가오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그리스도 예수만을 위해서 살지 못하게 하는 모든 방해하고 거친 것들을 꺾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한 심지를 가지고 삶으로 아멘을 고백하는 사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아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세상의 즐거운 것과 유익한 것이 기다리고 있지만 내게 주신 그 놀라운 은혜가 그리스도를 위한 은혜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아멘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 비록 시련의 골짜기처럼 보이고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보이고 아골 골짝 같아도, 길이 협착하여 많은 사람이 지나는 것 같지 않아도 내 주 예수 주신 그 놀라운 은혜가 그리스도를 위한 은혜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고난의 길 앞에서도 아멘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 사람, 나를 항상 버리고 그리스도를 붙드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는 값지고 고귀한 것이 많지만 없는 것도 많습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다만 그를 믿을 뿐이 아니라” 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아멘!”하면서 받아들이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으로 진하게, 그 말씀에 대해서 아멘이라고 고백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으며 “아멘”하는 그 아멘도 잠시 후에 그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아서 “아멘”하는데 그렇게 아멘으로 받고, 삶으로 자기의 뜻과 의지와 인간의 생각을 버리고 오로지 그리스도 예수 한 분만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삶 전체로 평탄한 길이 있는데도 아멘하기 위해서 고난의 길을 택하고, 수많은 유익과 명성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으로 아멘하기 위해서 고난과 무명의 길을 택하는 삶으로서의 아멘이 없으면, 잠시 후에는 입술로서의 아멘도 그친다는 것입니다. 지금뿐만 아니라 그때에도 다만 믿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남이 알 수 없는 그 놀라운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은 없지만 지식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세상의 재물은 없지만 주님의 오묘한 말씀의 세계를 알게 하셨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주셨을 때 주님이 원하셨던 것은 우리가 “당신 참 잘하십니다.”하는 말을 듣고 싶으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그 은혜가 은혜인 것을 고백하고, 오로지 이제는 내 인생이 그리스도에게 은혜로 붙잡힌바 되어서 이제는 내 인생가운데 나를 위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이 어두운 세상을 불꽃과 같이 지날 수 있는 아멘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 주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진리의 말씀을 힘입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담대히 말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고 그 은혜를 따라서 살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속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랍게 주신 그 은혜가 고난 받기 위함이라는 데에 동의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동의와는 상관없이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성경을 쓰고 있는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뭐라고 말합니까?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그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고백합니다. 디모데서에서도 고백합니다. 신령한 세계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죄인 중의 괴수와 같은 자기가 구원받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때에 이 바울의 삶을 생각해보십시오.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은 바울은 고난이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위해서 기꺼이 자기의 유익을 포기하고 자신의 즐거움과 인생의 향기로운 계획들을 포기할 수 있는 자기희생이 은혜 받은 사람들의 삶에는 언제나 뒤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 “너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사도는 단지 한 번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그 은혜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습니까? 주님이 은혜를 주시고 그는 주신 바 은혜를 가지고 전심을 다하여서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가 가졌던 모든 인생의 계획을 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의 계획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던졌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기가 얼마나 유명해지는지, 훌륭해지는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바울이 인생의 말년에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깊이 체험하고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믿는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 자신이 바로 이 같은 사실의 증인이었습니다. 주님의 말할 수없는 놀라운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는 고통도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고난과 세상의 고통이 넘볼 수 없는 놀라운 평강과 기쁨을 그가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사형날짜를 앞에 둔 죄수가 옥 밖에서 잘 먹고 잘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내가 종말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오직 기도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너희 하나님께 아뢰라” 이렇게 격려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고난은 죄 가운데 살아가는 고난과는 질이 다른 고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따라서 받는 이 놀라운 고난 속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더 불같이 일어나길 원하고, 은혜위에 은혜를 더 해 주시길 원하고, 그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받기를 원한다면 단지 그 은혜에 말로만 아멘하지 말고 삶으로 자기의 뜻을 버려보십시오. 삶으로 자기의 계획을 포기해보십시오. 삶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삶 전체로 주님의 은혜에 아멘으로 고백하는, 오직 주님께만 묶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의 고난이 넘치는 가운데서, 우리는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긍휼이 여기며 그리스도와 하나 된 믿음의 생활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지금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힌바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서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삶 전체의 구석구석으로 오로지 아멘으로 말하며 살기를 원하는 한 사람은 회색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수만 명의 사람보다 위대한 일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 한 사람을 찾고 주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그 주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