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와 나의 목회(1)
녹취자: 김명진
혹시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들어보신 분 손들어 보십시오. 한 권이라도 완벽하게 읽은 분만 남고 나머지는 내려 보십시오. 에드워즈를 사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면 더 파급력이 있었을 텐데 조나단 에드워즈를 소개하면서 이야기해야 하니까. 조나단 에드워즈는 1703년~1758년까지 살았던 사람이고, 18세기 사람이고, 예일대학의 초대 총장, 당시에는 코네티커 뉴저지 대학 총장을 지내던 분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학자 중에 The Great라는 수식어를 쓸 수 있는 유일한 학자라고 말을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일평생의 멘토로 삼으면서 20여 년을 읽어왔고 예일 대학에서 출판한 책이 27권의 책이 18000페이지에 이르는 300년 전의 영어입니다. 그 책을 서너 권 빼놓고는 모두 완독을 했고, 그리고 20여년이 걸렸고, 그 중의 여러 권의 책은 여러 번 완독을 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 1930년 이후에 쓴 이후의 박사논문 120편을 제가 직접 가지고 있고 비블리오그라피 투 조나단 에드워즈에 나오는 1300여권의 모든 책을 제가 수집을 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오늘날 여러 나라에서 관심을 일으키고 있고,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루마니아, 러시아, 심지어 동구라파,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조나단 에드워즈가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을 생각하면 자신이 조나단 에드워즈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에드워즈의 연구가 왜 그렇게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학문적인 반성을 위해서 매우 유용해 보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앞으로 말씀드리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아주 위대한 사상가입니다. 저는 일생을 살면서 오늘 여러분에게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한 학생이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신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어느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이사람 저사람 집적대며 얕은 물에서 찰방거리지 말고 정말 깊이 있는 선생님 한 분을 만나서 일평생 그분을 멘토로 삼고, 그 분이 쓴 모든 작품들을 읽으며 자신을 침잠시켜라. 그러면 여러분이 훌륭한 목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느 학생이 조나단 에드워즈를 선택했고 일생동안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고, 묵상하고, 연구해서 세계적인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 분이 존 회퍼입니다. 이미 은퇴하셨지만. 저도 똑같이 묻고 싶은 것은 “여러분에게 스승이 누구냐.”라는 것입니다. 여기저기에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은 부분적인 멘토가 아니라 토탈 멘토, 신앙과 삶, 사상, 학문, 모든 것을 통합하는 의미해서 일생동안 연구해도 계속 그 사람의 그늘 아래 있을 정도로 위대한 멘토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해야 통일적인 사상을 전수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학생들 특히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공부한 학생들의 단점은 누가 무엇을 이야기 하면 그것이 틀렸는지 맞았는지는 분별할 수 있지만 자기 의견이 없습니다. 뭐라고 뭐라고 하면 “그것은 칼빈주의 아니야.” “그럼, 네 의견은 무엇이냐”고 하면 모른다고 합니다. 아니라는 것만 압니다. 이런 것들은 희랍 철학의 문맥에서 보면 진정한 지식이 아닙니다. 반쪽도 안 되는 지식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기독교 사상 전체를 수립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신학교육은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에는 이미 이 시대의 정신을 따라서 학문이 너무 파편화 되어 있습니다. 이런 학문을 가지고는 아무리 많이 습득을 해도 목회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평신도가 목사님께 찾아와서 로마서 9장을 펼치면서 한 구절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대답하셨습니다.“김 집사,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 목사들이 대답할 문제가 아니고 신학교 교수들에게 물어봐야해.” 그래서 이 사람이 신학교에 가서 교수님에게 물어봤습니다. 로마서 9장을 펴보이니까 교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집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성경을 전공한 것이 아니라 조직신학을 전공해서 성경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성서학을 전공한 교수를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서학을 전공한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교수님, 이게 무슨 뜻입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구약을 전공한 사람이라서 신약 성서학을 전공한 사람을 찾아가십시오.” 그래서 신약을 전공한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물어봤더니 “죄송합니다. 제 전공이 공관복음입니다.” 바울신학을 전공한 사람을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신학을 전공한 사람을 찾아갔더니 “죄송합니다. 제가 데살로니가 전서를 전공했습니다. 로마서를 전공한 사람을 찾아가십시오.” 드디어 로마서를 전공한 사람을 찾아갔더니 “집사님, 정말 미안합니다. 제 논문이 8장입니다. 8장을 전공한 내가 어떻게 감히 9장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9장 전공한 사람을 찾아갔더니 논문이 바로 그 앞 절에서 끝났습니다. 이것은 조크가 아니라 가쉽입니다. 웃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고 나면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날은 내가 8장을 전공했기 때문에 9장에 대해서는 뭐라고 얘기할 수 없는 사람이 돋보이는 것입니다. 평생을 8장만 팠으니 8장은 도사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학계에서는 통용될 수 있으나 목회의 세계에서는 그런 식으로 해서 목회가 될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조나단 에드워즈가 한국에 알려진 것은 신학 분야에서 먼저 알려진 것이 아니라 다른 학문 분야에서 알려졌습니다. 목회자나 신학자에게 알려지기 전에 철학, 윤리, 역사, 예술, 문학, 사회 이런 학문분야에서 먼저 조나단 에드워즈가 소개되었습니다. 특히 미국문학사에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은 한 번 공부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작년 5월을 기준으로 지금까지 에드워즈의 작품은 40여 권이 한글로 번역되었고, 11권의 전기, 평전이 한국 사람에 의해 저술되거나 번역되었습니다. 에드워즈에 관한 20여권의 2차 도서들이 한글로 번역, 저술되었고, 약 230편의 논문이 한글로 발표되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이렇게 한국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마틴 로이드존스가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웨일즈 출신의 회중교회 목회자였는데 원래 의사였습니다. 그 유명한 영국의 호더라는 외과의사의 밑에서 조수로 일했는데 청산을 하고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한 번 거쳐서 간 교회가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예배당에 설교자로 봉사를 하게 됩니다. 이분이 1980년대 초부터 이분이 쓰신 로마서 강해가, 설교집이 한글로 번역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150권 정도가 번역이 되었는데 로이드존스는 자신의 책 속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자주 언급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에 조나단 에드워즈가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유명한 책 중의 하나가 청교도 강좌를 오랫동안 한 것을 묶은 『청교도 신앙의 계승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말미에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두렵고 참으로 유감스럽게 나는 그를 다니엘 롤랜드, 조지 윗필드보다 앞에 두어야겠습니다. 청교도를 알프스 산맥에, 루터와 칼빈을 히말라야에 비유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극찬을 합니다.
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에 이미 이 사람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이 사람의 이야기를 나의 책 속에 많이 인용을 했고 그게 사실은 한국교회에 조나단 에드워즈의 이름을 많이 알리는데 이바지 했다고 생각 합니다 왜냐하면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저술활동을 했고, 50에서 60권정도 책을 썼고 200만부 정도가 팔려나갔는데 그 책 속에 조나단 에드워즈를 언급하지 않은 책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의 독자들이 나로부터 조나단 에드워즈를 소개를 받고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전체 책이 팔려 나간 책보다 내가 쓴 책이 팔려 나간 권수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이처럼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진면목 전체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 전체를 읽으셨을까? 읽으셨다고 하더라도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상에 완벽하게 동의 했는지에 대해서는 누가 말해준 사람은 없지만 저는 “글쎄”라고 평가합니다. 그만큼 에드워즈의 사상은 복합적이고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이미 자기의 소개로는 다 담아 내지 못하는 광범위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상이 아직까지도 한국에 포괄적으로 소개되지는 않았고 조나단 에드워즈를 소개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을 보더라도 대부분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언급은 영적 부흥과 각성운동, 여러분도 알다시피 조나단 에드워즈가 18세기의 1차 대각성 운동이라고 하는 1740년부터 46년까지 있었던 대각성 대각성 운동의 중심이 서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 시기가 바로 영국의 전설적인 설교자 조지 윗필드, 찰스 웨슬레, 요한 웨슬레 등이 활동했던 시기와 같은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조나단 에드워즈는 설교자, 부흥운동가, 설교를 하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졸도하고, 까무러치고, 회개하는 그런 설교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은 에드워즈의 지극히 일부분이지 전체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리차드 벡스터에 대해서 들어 본 사람이 많을 것이고 그가 쓴 최소한 『참목자 상』이라는 책을 여러분 대부분이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리처드 벡스터는 키더민스터에서 목회를 한 존경할만한 인물이었고, 비록 그 분이 대학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혼자 부지런히 독학을 해서 상당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고, 당대의 석학이었던 존오웬과도 논증을 했습니다. 그러나 리처드 벡스터가 존오웬을 이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논증을 할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대단한 변증의 능력과 학문의 수준을 갖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리처드 벡스터 같은 경우도 우리에게 소개된 책이 『성도의 영원한 안식』, 『참 목자 상』 이런 책들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나는 죽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죽어가는 또 다른 사람에게 설교를 한다.“ 그의 유명한 책 『회심』이라는 책 속에서 영혼의 회심에 대한 눈물을 강조하는 목회자의 자세, 이런 것을 보면서 리처드 벡스터라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것은 리처드 벡스터의 극히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는 신학적으로 알미니우스주의자였습니다. 당시에 영국의 청교도 중에 율법주의적인 청교도, 복음주의적인 청교도, 알미니우스주의적인 청교도, 신비주의적인 청교도 이렇게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졌습니다. 존 오웬 같은 경우는 복음주의 적인 청교도였습니다. 그 사람이 쓴 책을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고 좋은 대학 도서관에서 찾아보면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라틴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보편신학, 기독교 신학 방법론, 이런 책들은 중세의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에 대한 수많은 인용과 참조들을 담고 있고, 이 사람이 얼마나 엄청난 사변가였는가를 보여주고 있고, 지금까지는 연구결과가 제대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 사람의 사상이 12세기 르네상스 사상가중의 한 사람인 이탈리아의 철학자 토마스 칸파넬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들이 아직도 심심치 않게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인터넷을 찾아보면 토마스 칸파넬라라는 철학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여러분이 인터넷을 찾아보면 토마스 칸파넬라의 저작들이 한글로 된 것들을 찾을 수 있고 영어로 된 저작들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는 거의 모른 채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는 설교자, 피를 뿌리듯이 설교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했고 부흥운동가였다. 그러고 약간 신비주의적인 경향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의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인상입니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1995년도에 캐나다 토론토에 갔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신학교의 교수를 하고 있었고, 88년도에 교수가 되어서, 그때는 영적 각성과 부흥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일어난 부흥에 대해서 피터 와그너를 비롯해서 교회 성장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토론토 무브먼트에 대한 평가와 한국의 개혁신학자들이 내리는 평가, 미국에 있는 보수적인 복음주의자가 내린 평가가 너무 상반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만 들을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가서 현장을 봐야겠다고 해서 갔습니다. 95년에 영어를 잘 못할 때인데 갔습니다. 마침 후배가 데리러 나와서 토론토에 와서 집회하는 광경을 모두 봤고 그 때가 존 아노트라는 목사가 토론토 블레싱이라는 집회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가서 보면서 집회에 쭉 참석하면서, 한번 참석 하면서 아주 강력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후에는 이것은 성력의 역사가 아니라 악령의 역사가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는 운동이라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현장에서 설교하는 모습, 간증하는 모습, 그리고 사람들이 소위 얘기 하는 홀리 라프터라고 예배 중에 깔깔거리며 웃다가 쓰러지는 광경을 모두 지켜봤습니다. 돌아오고 나서 얼마 후에는 사람들이 기어 다니면서 동물 우는 울음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그 때에 존 아노트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니다. 이 사람이 “사람들이 나의 집회에서 비정상적으로 쓰러지고 웃고 하는 것은 조나단 에드워즈 때를 생각해 보면 나의 부흥운동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을 계승한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때에 예리한 신학자 한 사람이 존 아노트와 대화를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운동의 특징은 심오한 회개였다. 자기 죄와 불결함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심오한 회개가 18세기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 운동의 특성이었는데 그런 것이 왜 일어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 사람이 무릎을 탁 치면서 “바로 그게 문제다. 나도 그게 왜 일어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성령의 역사가 분명한데 그것이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 같이 연구해보자.” 그것은 연구해 볼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따르는 것을 리바이벌리즘이라고 합니다. 참된 부흥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과 각성운동에 대한 사상은 그 책만 읽어서는 안 되고 조나단 에드워즈의 각성과 대부흥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상 전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조나단 에드워즈가 어떤 사상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강력한 부흥을 앙망하면서 그 부흥운동을 주도했는가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 중 한 두 권을 읽고 공부해서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 지금 박사과정에 들어온 사람은 소용이 없고 이제 공부하러 들어온 사람은 조나단 에드워즈에 도전해 보십시오. 조나단 에드워즈는 장로교인이 아니고 회중교회 교인이고 침례교회와 통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같은 사람을 연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지금부터 열심히 책을 읽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27권을 모두 읽어야 합니다. 그러고 박사 논문을 쓰면 박사논문의 품질이 한 권을 읽고 박사논문을 쓴 것과는 다른 품질이 나옵니다. 심지어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을 정확히 번역할 수 있는 사람도 우리나라에 손꼽을 정도밖에 안됩니다. 왜냐하면 조나단 에드워즈의 어휘와 잉글리시 글로서리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조나단 에드워즈가 뷰티라는 말을 썼으면 뷰티라는 말이 어떻게 저작 속에서 쓰여 졌는가, 에드워즈 영어를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본입니다. 예를 들어 로크를 공부한다고 하면 로크의 영어를 공부해야 하고, 흄을 연구하려면 흄의 영어를 공부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조나단 에드워즈를 전공을 해도 수준 높은 세계적인 논문이 나오려고 하면 다독을 해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을 써야 합니다. 지금 나이가 어리다면 한 번 덤벼볼만 합니다. 열심히 읽고 감을 잡은 다음에 깊이 조나단 에드워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멘토링을 받으면서 논문을 쓰는 것입니다. 논문을 쓰면서 잘못한 얘기를 쓰는 것보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상의 뿌리를 밝혀내기 위해 끌어내면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번역해준 것은 제대로 전달을 해주지 못하니까 오리지널 텍스트를 읽어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어가 착착 붙어야 합니다. 나는 공부에만 전념해보지 않았으니까 나의 경우는 목회하면서 책을 읽을 때 최소한 4~5년은 걸렸습니다. 공부에 전념하면 1~2년이면 될 것입니다. 300년 전의 영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어는 결코 쉽지 않고 친절하지 않은 언어입니다. 그러나 100년 전 사람인 존 오웬의 영어에 비하면 훨씬 더 친절합니다. 1세기만 거슬러서 존 오웬은 저의 멘토 중 한사람인데, 저의 멘토가 존 오웬, 존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의 저작을 영어로 남긴 적이 없고, 그런데 칼빈도 영어로 쓴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존 오웬은 영국 사람으로서 영어로 쓰고 라틴어로도 썼습니다. 16세기로 올라가면 더 어렵습니다. 아무튼 그런 벽이 에드워즈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런 한계들을 극복하면서 조나단 에드워즈에 집중해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일평생 읽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년 만에 모두 읽고 끝내야겠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그렇게 설령 영어를 워낙 잘해서 읽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읽는 것과 그것을 읽으면서 자기 속에 적용해서 읽는 것은 현저하게 다릅니다. 멘토링이 안된 상태에서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한국의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조나단 에드워즈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서 본격적인 소개를 받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을 통해서입니다. 이 분이 조나단 에드워즈를 얼마나 극찬을 했는지, 무슨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젊은 시절에 고서 방에 먼지가 잔뜩 싸여있는 책 두 권을 샀는데 그것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마존에 들어가면 굉장히 싼 값에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아마 70〜80$정도면 두 권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돋보기를 쓰고 봐야 각주가 보일 정도로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 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갑자기 조나단 에드워즈의 하나님은 자기가 만난 적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위대하고 높으신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 앞에서 자기는 티끌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기 시작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책을 구했습니다. 그 분이 구한 것은 어디에서 구했는지 모르는데 내가 구한 것은 진리와 깃발, 1800년대 판을 리프린트한 책을 샀는데 그것은 사실 조잡합니다. 왜냐하면 해저도 안 되어 있고, 미스리딩 된 것도 많고, 그리고 에드워즈의 모든 작품이 다 담겨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1940년대부터 편집해서 지금은 거의 다 끝낸 예일 판은 아주 탁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일 판은 조금 비쌉니다. 3000 불 정도 되고 예일대에 전화를 해서 잘 말하면 10%정도 할인된 책을 살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 책을 샀는데 눈이 아파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복사기로 확대를 해서 읽었는데 영어도 쉽지 않으니까 영적 각성과 부흥운동에 집중해서 읽고 다른 내용을 주의 깊게 읽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학교에서 해방되고 자유롭게 목회를 하다보니까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때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많이 읽을 때도 있었고 뜸할 때도 있었지만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은 시기가 존 오웬과 비슷합니다. 존 오웬에 푹 빠지면 에드워즈를 소홀히 하고 에드워즈에 빠지면 존 오웬이 소홀해 지면서 20년 동안 존 오웬의 책 히브리서 주해를 빼고 그의 씨올로기아 판토타 비블리컬 씨올로지까지 포함해서 17편, 한 편에 700페이지정도 되니까 그 존 오웬의 13000~14000페이지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18000페이지에서 3000페이지 정도를 제외하고 15000페이지 이상을 노트정리까지 하면서 정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몰입하고 제가 받은 유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와서 존 오웬의 책을 나누어 주고 갔는데 거기에서 제가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만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특히 존 오웬을 읽고 났을 때는 청교도를 굉장히 사랑했고, 지금도 제가 영국 청교도의 책을 3천권 가량 소유하고 있지만 존 오웬의 책을 읽은 후에는 더 이상 청교도의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등학생의 책 같았습니다. 존 오웬의 작품이 워낙 수준이 높다보니까 다른 것들이 너무 쉽습니다. 에드워즈의 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후에 에드워즈의 작품을 꾸준히 읽으면서 에드워즈가 우리에게 소개된 것과는 다른 면모를 많이 가지고 있고 훨씬 종합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위대한 신학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만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제 신학의 사상에 영향을 준 사람 네 명의 멘토가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정말 천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냥 뛰어나다, 탁월하다, 나 같은 사람은 따라갈 수가 없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천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으면서도 아주 탁월하고 빼어나다 이 사람을 능가할만한 사람이 많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천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를 연구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천재라고 띄웁니다. 그러나 제가 오십 즈음에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나면서 두 권의 책을 읽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드디어 이 세상에 천재라고 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인정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조나단 에드워즈가 아우구스티누스와 어떤 관계가 있는 지를 말하는 것은 강의의 의도와는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 없는 조나단 에드워즈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일반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충실한 제자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속에 유니크네스가 없냐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거스틴 없는 조나단 에드워즈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상의 진수는 우주적인 통합성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드워즈의 신학은 성경을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면서도 미학, 철학, 심리학, 자연과학 등을 통합하면서 성경의 계시를 설명하는 거대한 사상의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살았던 시기가 18세기였습니다.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였습니다. 계몽주의의 계몽은 빛이 들어왔다는 뜻이므로 계몽주의 이전까지는 어둠의 시기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계몽이라는 것이 무엇에 대한 계몽일까라는 것을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을 하면서 이해를 해야만 계몽주의를 이해할 수 있고 계몽주의와 그 앞에 있었던 종교개혁 시대를 이해할 수 있고, 이후에 계몽주의가 근대주의, 포스트모더니즘과 갖는 관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무슨 전공을 하든지 상관없이 여러분들이 스킵하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이 역사공부입니다. 역사 중에서도 특히 르네상스, 인문주의, 계몽주의에 대한 공부를 이해해야 합니다. 르네상스에 대한 공부는 중세 공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르네상스의 시조를 누구로 보고 있냐하면 놀랍게도 아시스아프랑시스와 신성로마제국의 프레드리코 2세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12세기부터 시작을 해서 르네상스가 전개가 되고 이것이 예술로서 활짝 꽃피게 된 것이 피렌체에서 꽃피게 됩니다. 이 사상이 이탈리아 북쪽으로 들어가면서 사상의 체계를 갖추게 되고, 항상 예술이 먼저 오고 사상이 체계를 갖추게 되는데 이것이 인문주의입니다. 유신론적 인문주의와 무신론적 인문주의가 생겨나게 됩니다. 유신론적인 인문주의에서도 전통적인 기독교의 사상의 체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인문주의를 통해서 로마 카톨릭의 인휴머니티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탈출해서 성경에서 그리는 인간의 참된 모습을 복원하게 되는데 이것을 기독교 인문주의라고 합니다. 르페블, 데따블,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프랑스에서 주도되던 기독교 인문주의, 그 사람들의 제자가 존 칼빈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종교개혁자들에게 예외 없이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됩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인문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기독교 인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무주의에 대한 이해가, 인문주의를 북부이탈리아의 인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르네상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특히 피렌체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고 이 사상을 가져왔던 아시시에 프란시스나 피렌체에 연구가 필요하다. 그것을 이해하게 될 때 17세기 중반에 나타나는 데카르트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에 접어들게 도비니다. 데카르트는 획기적으로 인류 사상사에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데카르트 한 사람이 한 것은 아닙니다. 데카르트가 가지고 있는 사상들이 멀리는 11세기 사유하고 스콜라주의가 무너지게 되면서 니콜라스 쿠자, 윌리암 오캄이라든지 이런 사람들, 더 멀리 10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면 아비체 알파라기, 이런 이슬람 사람들의 영향 속에서 새로운 사유의 방식이 전해오게 되는데 이것을 소위 역사적으로 비아 모데르나라고 합니다. 비아 모데르나를 라틴어로 직역하면 새로운 길, The New Way of Studying 혹은 Thinkling이라고 합니다. 옛방식이라는 것은 비아 안티쿠마라고 하는 것은 옛날에 학문하던 방식,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본으로 해서 중세가 세워졌으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식으로 연구를 하는, 중세 전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십자군 이후에 들어오면서 확 꽃을 피우면서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의 사상은 9세기, 8세기, 7세기, 6세기, 5세기, 4세기, 이때까지의 사상은 대단한 것이 못 되었고 이슬람국가와 비교하면 지적인 체계가 비교도 되지 않게 열악했습니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대학의 시작이 12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캠브리지나 옥스퍼드가 수도원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약간의 이설이 있기는 하지만 이슬람 사회에서 대학의 기원은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학문적인 격차입니다. 십자군 운동을 통해서 그것을 보면서 기독교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짐승 같은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왜냐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문명을 구가 하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때 발견하게 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4세기경에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배교적인 책으로 취급하면서 모두 분쇄해버립니다. 그러면서 중세의 어두운 그림자가 들어오게 됩니다.
계몽주의는 중대한 전환이 나옵니다. 꼬기또 에르고숨이라는 말에서 나옵니다. 꼬끼또 생각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꼬기따레라는 동사에서 나오는데 그냥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적으로 의심하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의심하면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이미 1200〜1300년 전에 어거스틴이 말합니다. “내가 만약 오류에 빠진다면 나는 존재한다.” 내가 오류에 빠지더라도 오류에 빠지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꼬기또 에르고숨이라는 말로 발전을 시킵니다. 설명을 하면 굉장히 길지만 집에 가서 데카르트에 대해서는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데카르트 속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반하는 사고방식의 모든 씨앗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상을 이해하면 칸트를 이해하기 아주 쉽고, 칸트를 이해하면 계몽주의 전체를 이해하기 아주 쉽고, 계몽주의를 이해하면 근대주의를 이해하기 쉽고, 근대주의를 이해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건너뛰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려면 엄청난 혼란이 오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사회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깊이 물들어 있는 사회이고, 내가 그것을 알던지 모르던지 상관없이 그 정신에 감염된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돌보아야 할 교회의 회원들이고 양떼들인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냐하면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모든 것을 회의적으로 생각하라. 그 무엇도 당연히 그러하다고 믿지 말라. 모든 것을 의심하라. 그래도 마지막에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의심하는 내가 존재하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 그 하나만 확실하고 나머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가 메르슨이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의 중요한 사상을 밝힙니다. 영원 진리 창조설입니다. 하나님은 자연계와 모든 사물 속에 하나님의 법칙을 영원 전에 창조하셨고 이것들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이 그것을 발견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면 인간이 끊임없이 의심을 합니다. 아무리 의심을 해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명료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명석 판명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은 진리로 그냥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 같은 것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을 만한 것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이성에 토대를 두고 다음 사유를 펼쳐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 보이는 이 화려한 물질문명의 진보는 데카르트가 초석을 놓은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무엇을 하나 발견을 했어도 그것이 궁극적인 발견이라고 믿지를 못했습니다. 우르르 쾅하고 천둥이 치면 하나님이 노하셨나보다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도대체 그 안에 무슨 진리가 있기에 저 법칙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물질의 세계 속에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할 수 없이 축출되고, 그 하나님을 인정하던지 하지 않던지 그것은 상관이 없는 문제이고, 자연의 세계 속에는 물질의 법칙이 존재하고, 이성으로 하나님에 관해서 존재를 논하고 증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해서 신학이 학문의 영역에서 잘려서 종교 쪽으로 넘어가는 일을 데카르트의 사상에 기초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변화입니다. 어떤 변화냐면 강강술래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돕니다. 전에는 하나님이 술래처럼 가운데에 서있었습니다. 사람이나 자연, 사물들이 빙글빙글 돌아갑니다. 궁극적인 판단자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이 누구인가라는 의미를 하나님이 인간이 무엇이라고 하는 데에서 찾고, 자연세계는 돌멩이, 금, 혹은 별은 무슨 존재인가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데카르트에 와서는 하나님을 빼서 밖으로 돌아가고 인간이 들어가는데, 인간도 자기 자신이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 자체도 인간에 의해서 판단을 받아야하는 그런 존재가 됩니다. 이전까지는 존재론이 중심이었는데 데카르트를 기점으로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학문이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매우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상 속에서 계몽주의가 일어나게 됩니다. 계몽주의의 층차도 전통적인 기독교를 받아들인 계몽주의, 이신주의, 하나님을 이 세계에서 추방시켜 버린, 하나님은 하늘 높이 계시지만 이 세사상은 시계태엽처럼 움직이는 세계이다. 하나님을 추방시킨 이신론부터 하나님은 아무데도 없다는 무신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체의 계몽주의가 일어나는데 일반적으로 계몽주의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면서 유럽을 휩쓸었던 것입니다. 이미 이때에는 전통적인 기독교는 영향력을 현저하게 상실했고 기껏해야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한 세기 후에 경건주의운동도 결국은 합리주의에게 자리를 내주고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당시 18세기 뉴잉글랜드, 아메리카라고 하는 땅은 아주 미개한 곳으로 여겨졌고 이 사람들 자신이 유럽에 대해서 많은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할 때에 선진국인 유럽에서 새로운 사상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옵니다. 1620년에 메이플라워를 타고 미국에 건너올 때만 해도 신앙의 열기가 상당히 뜨거웠고, 그것이 1690년 될 때까지도 대단했습니다. 프린스라고 하는 당시의 목회자가 글을 썼는데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가 신대륙에 와서 7년 동안 어떤 사람도 욕을 하거나 남을 헐뜯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고 경건한 신앙적인 분위기를 고백합니다. 그런 것들이 18세기에 들어오면서 심각하게 훼손되기 시작했고 에드워즈 때에는 말할 수 없이 심각한 상태에 도달한 때였습니다. 이런 속에서 계몽주의의 물결이 들어와서 수많은 목회자들을 오늘날로 말하면 자유주의자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적인 전통주의, 조나단 에드워즈 때만 해도 거기에는 이단도 없었고 로마 카톨릭교회가 신대륙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법으로 금지를 했기 때문에 용납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신앙의 땅이 이미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고 영적인 가치들이 선진 유럽에서 밀려오는 문물들에 의해 피폐화 되어가는 상황에서 전통적으로 칼빈주의를 주장하고 개혁신앙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적절하게 당시의 사회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탁월한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독교 한 귀퉁이에서 설교나 함으로써 자유주의자들과 싸우는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밀려오는 모든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과 혈혈단신으로 어마어마한 저작들을 쏟아내면서 전쟁을 합니다. 그 흔적들이 바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 25권에 샅샅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아직까지도 신학공부가 통합적인 성격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통합적인 성격이라고 하는 것은 유럽에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김나지움에 들어가서 3학 4과를 공부했습니다. 3학은 문법, 논리학, 수사학, 4과는 수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 이것이 학문의 기본이었습니다. 그 위에 공부를 해 나가서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이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선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자신도 행복하고 이웃에게도 행복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하는 것이 모든 학문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학문들이 모두 통합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전통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대학 졸업할 때 사각모를 쓰는데 철학, 법학, 의학, 신학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수학을 공부해도 Ph. D, 의학을 해도 Ph. D, 사회학을 공부해도 Ph. D, 신학을 공부해도 Ph. D를 주는 이유는 이런 지식의 산에 각기 다른 곳에서 올라가도 일단 그 학위를 받으면 산꼭대기에서 모든 인간의 삶을 내려 보면서 삶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생의 목적과 의미, 참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관한 탁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흔적들이 그런 관습 속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인문학과 자연학을 공부하고 그 위에 신학을 공부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지혜가 무엇인가가,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신학의 임무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아르떼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레떼는 직역하면 탁월함입니다. 예를 들어 물이 있다고 하면 물에서 탁월함이라는 것은 물의 원래의 성분을 잘 간직해서 물이 우리의 몸에 주는 작용을 가장 잘 할 때 그것을 가리켜서 탁월한 물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보면 추신수가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추신수가 야구선수로서 탁월함은 무엇입니까? 타자라면 공을 잘 쳐야하고 투수라면 공을 잘 던져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군인의 탁월성은 용감하게 전쟁을 해서 승리하는 것, 학생의 탁월성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전쟁하는 사람의 탁월성을 용기라고 하고, 공부하는 사람의 탁월성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야구선수의 탁월성은 공을 잘 치는 것, 도기장이의 탁월성을 도기를 잘 만드는 것이라고 했을 때 도기장이, 군인, 학생, 야구선수는 우연적인 것입니다. 추신수가 백년 만년 야구를 언제까지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은퇴를 하고 사람으로서 살아갑니다. 야구선수로서의 탁월성, 도기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탁월성, 사람 자체로서의 탁월성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이 신학입니다. 그래서 선교 중에서 최고의 선교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속적인 의미에서 잘 먹고 잘 사는 행복 아니라 옆에서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짖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평안함, 죽음의 칼날이 목에 들어와도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평안함, 진리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려도 아깝지 않은 용기,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한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신학의 임무입니다. 철학은 인류역사 내내 이것이 무엇인가를 규명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그것을 규명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이 책을 읽지 못했다면 반드시 읽기를 바랍니다.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한 학기동안 가능하면 두 학기 정도공부를 해야 하는 책입니다 그런 책이 많지 않은데 그 책이 플라톤의 『국가론』이란 책입니다. 참 탁월한 사람이 누구냐를 설명할 때 설명할 수가 없으니 국가를 예를 들어 참으로 탁월한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사유에 필요한 모든 이야기가 그 한 권 속에 모두 나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담론의 기본적인 얼개를 제공해주는 책입니다. 특히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삶의 지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신학의 임무였습니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 때 이런 전통적인 학문이 와해되고 있었습니다. 저의 취미 중에 유명한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고 가르침을 받는 것이 저의 취미인데, 제가 최근에 미국에 와서 캘빈 대학에 있는 리차드 멀러 교수를 만났습니다. “신학에 있어서 철학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개혁신학자가 딱 잘라서 말했습니다. “철학을 모르고는 신학을 공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화란에 갔습니다. 우리시대의 마틴 부처의 최대의 연구가라고 말할 수 있는 윌리암스 페이커르 교수를 만나서 대화를 했습니다. 그분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신학과 철학이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그 할아버지 개혁신학자가 안경 너머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철학을 모르는 사람이 신학을 공부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신학의 방식과 전통적으로 교회가 모든 성도들에게 인간들에게 참된 인간으로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칠 수 있었던 신학의 시대의 방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내가 여러분에게 강조합니다. 에드워즈 때 이미 계몽주의가 팽배해지게 되었고, 전통적으로 철학이 이런 모든 학문들에 다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신학은 철학이라는 시녀의 섬김을 받으면서 보다 궁극적으로 높은 위치에서 이 모든 학문들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철학 쪽에서 구도를 깨고 그리고 신학을 주도하신 하나님보다 인간이 최종적인 판단의 기준이라는 구도 속에서 인문주의라는 학문을 세운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 시대가 가르쳐주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18세기 당시에도 그 시대와 상당히 동떨어진 방식으로 학문을 공부하고 그것을 신학과 통합시켰던 보편신학자였습니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을 살펴보면 그가 인용해내는 책들이 방대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항상 자기 시대의 신학자들이 아니라 희랍의 철학자들은 물론이고, 중세의 교부들, 스콜라주의 이후의 17세기의 개혁파 전통주의, 칼빈을 비롯해서 잔키우스,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히트 같은 많은 사람들을 인용해내고 18세기 도덕적 심미주의자들, 심지어 조나단 에드워즈가 시경, 역경, 예기, 춘추를 영어로 모두 읽었습니다. 중국의 도 철학까지 이해를 하면서 계몽주의를 통해 들어오는 광범위한 물결들에 전면적으로 대항하면서 우리들이 전통적으로 믿고 있는 기독교와 성경의 이 진리야 말로 모든 인간을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진리이고 자유의 길이라는 것을 설파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만납니다.
이제 막 펼쳤는데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하나만 맛을 보여드리고 오늘 강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모든 사상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점은 그가 가지고 있는 사상의 위대성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럴 정도로 위대한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시고, 오늘날 미국에 있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문가들은 많이 있지만 그분들의 관심과 저의 관심 분야가 다릅니다. 그렇지만 그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위대한 사상가라는 점에서는 모든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문가들이 일치하게 합의하는 바입니다. 2년 전 쯤 제가 왔을 때는 시카고의 그랜드래피지에 방문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하고 학자들과 대화를 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다양한 평가가 주어지는데 누구 얘기도 쉽게 믿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직접 조나단 에드워즈를 공부하면서 터득해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20여년 공부하면서 받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 나열할 수 없고 제가 매주 월요일마다 학생들에게 조나단 에드워즈를 가르친 지도 8년이 지났습니다. 그렇지만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주는 것이 지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첫째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 25권, 실제로는 26권입니다. 왜냐하면 1,2 이렇게 되어있는 책이 있기 때문에, 그 중에서 저에게 에드워즈의 사상에 눈을 활짝 열어준 책은 4권으로 된 조나단 에드워즈의 미셀러니라는 책입니다. 그 다음은 에드워즈가 필사본으로 기록을 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 책은 여러분이 도서관에 가서, 다 읽지는 못해도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 펼쳐 봐서 이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극찬을 하는지 한 번만 보시기 바랍니다. 한 페이지만 봐도 어디 가서 봤다고 이야기 할 수 있으니까. 미셀러니는 여러분이 아는 말과 같이 우리가 흔히 수필을 에세이와 미셀러니로 나누는데 에세이는 골격을 갖추어 쓴 것이고 미셀러니는 생각하는 대로 흘려서 쓰는 기록이고 어떤 사람은 잡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번역이 잡스럽고 이것은 신학적인 묵상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을 읽다가 떠오르는 내용을 기록하기도 했고, 뜬금없이 별의 움직임을 보면서 묵상을 하면서 성경의 이야기를 같이 풀어나간 것입니다. 이 사람을 보면서 항상 떠올리는 사람이 테르툴리아누스라는 인물입니다. 주후 160년부터 220년까지 살았던 인물이고, 이 사람이 한 유명한 이야기가 “예루살렘과 아데네가 무슨 관계가 있나?” 라는 말을 남긴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대단한 사변가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용어, 페르소나, 트리니티, 스브스단띠아, 이그제스덴띠아 이런 신학 용어들, 위격, 삼위일체, 실체, 본질, 실존 이런 말들에 대한 신학용어를 160개나 넘게 정리해서 후대에 신학이 수립되는데 아주 크게 이바지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 분이 재미있는 것이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지팡이가 산신령 지팡이처럼 생긴 지팡이었는데, 그 지팡이를 돌려서 열면 잉크와 펜이 나오는데 생각나면 메모를 했습니다. 에드워즈도 말을 타다가 생각이 나면 메모를 하고 핀으로 꽂았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아내가 그것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다 떼었습니다. 이렇게 기록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그것들을 모두 모아서, 이것이 완성된 책이 아닙니다. 조각으로 되어있고, 어떤 것은 서너 줄 밖에 안 되고 어떤 것은 몇 페이지 계속되는데 여기에 역사, 신학, 철학 모든 학문이 동원이 됩니다. 그러면서 아주 깊은 사색에 들어갑니다. 이런 것에서 그 속에서 어떤 하나를 알았다는 것이 아니라 신학자로서목사로서 어떤 방식으로 사유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 사유가 무엇에 집중하는 사유인가, 그 사유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꽃피워야 하는가, 그 모든 지식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어떻게 성경으로 돌아가게 만드는가를 아주 심오한 방법으로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일생일대에 아주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후배들과 제자들을 만나서 말합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질퍽거리지 말고 매달려서 존 오웬이든지, 칼빈이던지, 한글밖에 읽지 못하면 스펄전이라든지, 에드워즈라던지 누구 위대한 사상가 한사람이라도 만나서 지독하게 사랑하고 탐구하라. 그러면 너희들이 체계를 갖춰진 설교를 할 수 있을 것이고 통일된 사상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책들을 읽고 다른 사상을 접하면서 내가 공부한 선생님 중에서 어떤 것이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면 빼버리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골격을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해본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20년을 목회를 하면서 이번 주 설교를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거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희귀한 일이었습니다. 언제나 설교하고자 하는 양이 설교해야할 의무보다 많았습니다. 항상 열혈 했던 40대에는 주일이면 항상 시름에 잠겼습니다. 이제 헤어지는데 언제 한 주일을 기다리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창기에 주일 낮 설교 시간이 평균 100분이었습니다. 그런 교회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온 것이 기이하지 않습니까? 물론 떠나간 사람도 많습니다. 그 사람들을 다 모으면 5만 명 정도 될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나에게 설교 방식을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설교가 싫으면 당신이 떠나라. 나는 마이웨이를 간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설교의 기록이 쉬지 않고 5시간 15분, 주일 낮 공식적인 예배의 기록이 2시간 24분 17초, 평균 100분, 그렇지 않으면 90분입니다. 60분하고 내려오면 교인들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목사님, 어디 아프세요?”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4번의 같은 설교를 하고, 700대의 차가 오고 나갑니다. 슬픕니다. 그래서 60분 정도로 많이 줄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양의 설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재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이런 사상들을 섭취하고 어떻게 이 세상을 보고, 인간을 보고, 역사를 보고, 무엇을 공부해야할지를 에드워즈를 통해서 많이 터득했습니다. 그러면서 철학이라든지, 천문학은 제가 1년 동안 선생님을 초빙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천문학이 나의 신학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심리학, 역사학, 생물학, 의학 등을 공부를 하고 결국은 존 칼빈이 기독교 강론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모든 만물에 대한 지식이 하나님 안에 있었기 때문에 만물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모든 지식의 기원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그 사물에 대한 참된 지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머리가 똑똑해서 엄청나게 많은 컴퓨터를 팔았습니다. 그래서 떼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됩니까?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서 물건을 많이 사서 편리한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행복합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물질생활에 진보를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삶 자체를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미국의 중산층의 소비 생활이 17세기 왕족들의 생활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행복합니까?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신학은, 목회는,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주는 무엇이 본질적 사명이 아닙니다. 세상이 도저히 줄 수 없는 그 무엇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과 같이 물질이 발명한 시대에 이것 때문에 인간이 불행해지는구나. 다 뿌리치고 숲 속으로 들어갑니다. 완전히 세상과 절교한 생활을 하면 개인의 경건을 유지할 수 있겠지요? 죄짓지 않고 TV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없이. 핸드폰만 없이 살아보십시오. 제가 매일 얘기 하지만 그런 것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색을 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무언가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만 2세 전에 컴퓨터에 중독된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돌을 지나면 똑바로 앉아서 TV 광고를 유심히 쳐다보는데, 아이들이 15초짜리 광고를 무척 좋아합니다. TV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독서의 능력이 뚝 떨어집니다. 그것을 조절하면서 못하게 해야 합니다. 책을 보면서 사색을 하게 만들어야지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그런 것에 있어서 도가 튼 사람입니다 그런데 Thinking을 하지 않습니다. 만나서 10분만 대화를 해 보면 이 사람이 누구인지 금방 알게 됩니다. 그 위에 신학을 합니다. 그 위에 많은 지식을 집어넣습니다. 그게 자기 것이냐는 것입니다. 남의 것 가득 집어넣은 것이지 뱃속에 구슬처럼 들어간 것입니다. 그 속에서 우그륵 우그륵 소리가 납니다. 마치 밤을 통째로 먹은 것 같습니다. 다음 날 변을 보면 밤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자기화 된 것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많이 한 사람의 설교가 별로 들을 것이 없습니다. 차라리 강의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것은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는 사람들이 가야할 기본 적인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런 사유의 방식을 미셀러니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아마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 중에서 가장 어려운 책이 1권, 오죽하면 이 책을 마크 트웨인이 집어 던지면서 미친놈이 쓴 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어려운 책이 8권입니다. 윤리학적인 저술입니다. 세 번째 어려운 책이 미셀러니입니다. 미셀러니를 통해 받은 유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적인 신학이구나.’ 여러분은 신학자의 사명, 목회자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년 전에 제가 그랜드래핀스에 가서, 마침 노트르담대학교에서 은퇴하시고 칼빈신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조나단 에드워즈 연구가입니다. 조지 마스턴 교수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두 시간 정도 대화를 했습니다. 그 분이 하는 얘기가 “오늘날 미국 기독교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피상성이다. 아무 깊이가 없는 쇼 같은 예배, 뭔가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설교와 가르침, 이런 것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종교적인 인간은 만들지만 깊이 있는 인간은 만들지 못한다.” 그런 대화를 한참 나눴습니다. 저도 그런 대가와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저도 그 분 못지않게 조나단 에드워즈를 사랑했으니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목회의 사명은 무엇인가? 저는 목회적인 사명이란 하나님의 Beauty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찬양)
온 땅과 하늘 위에 계셔 홀로 영원하신 이름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 분인지 그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끔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는데 화가 납니다. 왜 화가 나냐면 아주 아름답고, 현숙하고, 영리하고 탁월한 내 애인이나 아내를 내 친구가 아주 후지게 소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차라리 소개를 하지 말고 가만히 있지,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보면서 예쁘시구나, 똑똑해보이시는구나, 그리고 대화를 하면 박식하시구나, 마치 자기가 그 사람을 꽉 잡고 있는 것처럼 소개하는데 되지도 않는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그 사람 자신이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가, 그리고 그것을 느낀 적이 없는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 대부분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제임스 패커의 책 『하나님을 아는 지식』 첫 페이지를 넘기면 20세 때 한 스펄전의 설교가 나옵니다.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고 정말 놀랍다. 코에 솜털이 송알송알 나올 나이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니 19세, 20세 때 그렇게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목회다.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직관하면서 그 하나님 때문에 어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자기가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고, 그 아름다운 하나님을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도구는 신학만이 아닙니다. 음악, 사회, 경제, 정치, 해양, 법학, 의학, 약학,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도 에센스는 아닙니다. 에센스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진수입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감동이 마음속에서 일어나게 합니다. 미셀러니는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셀러니를 읽으면서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 이 신학을 공부하면서 다른 학문들에 대한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부터 신학을 공부해서 신학으로 끝내는 막대기와 같은 공부를 하면 안 됩니다. 미셀러니를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10대 후반부터 쓰기 시작하면서 죽기 직전까지 씁니다. 굉장히 많은 양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인류의 마음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성서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야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집이 7, 8권이 되는데 어디를 읽어봐도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의 강의를 곱씹어 보면서 지금 내가 무엇을 위해서 공부하고 있는가, 내가 이 공부를 마치고 나면 나는 쓸모 있는 사역자가 될 것인가, 학문이 깊어지는 것만큼 나는 하나님 앞에 행복한 사람인가, 정말 나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있는, 그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격 이 세상을 보면 갑갑한데 그 아름답고 사랑스러우신 주님을 모르는, 아름다움은 인식론적으로 사랑의 원인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뜨거운 열애에 빠진 차가운 지성, 그것이 가장 아이디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학을 공부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는 영혼들을 다 끌어안고 그 품에서 그가 무슨 사상을 가지고 있든지, 이 위대한 하나님의 진리의 깊이와 넓이로 녹여 내려서 그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읽고, 구속사를 읽었을 때 구속사라는 책 제 구권입니다. 이것이 저에게 준 신학적이고, 역사, 철학적인 개안은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당신의 눈을 떠 보이게 만들었습니까? 다음 시간에 계속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