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강 살아계신 하나님 1
녹취자: 신요섭
우리가 늘 외우고 있는 주기도문에 관해서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에는 우리가 모임을 끝날 때에 마지막 헤어지기 전에 암송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은 아닙니다. 본래의 그 의미는 많이 잊혀지고, 이 주기도문은 우리의 모임을 폐하거나 기도를 대신하는 그야말로 주문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자기가 쓴 책 “기도에 이르는 쉬운 길” 이라는 책에서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끔찍한 순교자가 바로 주기도문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 주기도문은 그러면 기독교 신앙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 내용일까요?
핵심적으로 말한다면 주기도문의 내용을 알아야지만 신약성경의 의미가 파악이 되고, 신약성경의 의미 중에서도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의 의미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성경전체에 담겨진 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을 이해하는 지름길 입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지만, 이 주기도문은 제자들이 기도해야할 기도의 패턴을 가르쳐주신 것이지, 결코 그 내용 전체를 가르쳐 주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패턴을 따라 늘 기도 하셨던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그 내용에 핵심을 간추려서 제자들에게 이러한 형태로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크게 4토막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토막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고, 두 번째 토막은 하나님을 위한 기도의 제목이 나옵니다. 세 가지로 등장하는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라는 기도입니다. 세 번째 토막은 우리를 위한 기도제목인데 4가지로 나옵니다.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토막이 하나님을 향한 찬송인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라는 송영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내용을 가지고 주기도문을 깊이 있게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자, 이제 첫 시간입니다. 제일 먼저 우리들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라고 하는 대목에서 ‘계신’ 이라는 단어입니다. 핵심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신이 없다고 믿는데 이것은 신이 없다는 어떤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 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그 마음에 하나님 없는 것을 훨씬 자유롭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이것을 가리켜 무신론이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 제가 영국에 갔을 때, 2층 버스에 붙은 광고판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없을 걸요, 걱정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세요.”(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 영국 인본주의 협회가 리처드 도킨슨(C. Richard Dawkins)과 함께 그 광고를 위한 기부금을 모은다고 하자 불과 나흘 만에 우리나라 돈으로 약 1억 4천만원이 모금이 되었다고 합니다. ‘회의’라고 하는 것은 뭔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데 증거가 없기 때문에 판단을 유보하거나 중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불신앙은 명백한 근거가 있는데도 그것을 외면하고 안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죄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과학적인 사고는 무신론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이 무신론을 지지한다기 보다는 과학에 대한 신앙이 없는 해석이 무신론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자녀교육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교회 와서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배우고, 학교에 가서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며 교회의 가르침이 거짓이라고 설득됩니다. 이로 인해서 특별한 회심의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하나님의 존재자체에 대해서 회의를 품게 되고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신념으로 굳어져 불신앙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뿐 만 아니라 과학을 가르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무신론은 실천적인 무신론입니다. 실천적인 무신론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삶으로써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존재의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그들의 삶과 행동, 무엇보다도 이 세계를 바라보는 그들의 인생관을 통해서 보여주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이 약해져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고 살아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회의를 품게 되고, 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부도덕한 생활, 그리고 뚜렷한 기독교적 사상을 따르지 않는 일관성이 없는 생활은 바로 이러한 아주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존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세상 바깥 저 먼 하늘에 계실 뿐 아니라 또한 이 세상 안에 계셔서 우리의 삶에 간섭하시고 역사를 움직이시고 이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의 생명을 지탱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피조물들을 향한 하나님의 하나하나의 간섭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실 때 의도하셨던 위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실현해 가는데 아주 놀랍게 조화롭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라고 하는 사람이『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자연의 진화를 말하면서 이 진화는 맹목적인 물리학의 힘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만약 진화론에서 말하는 자연의 선택을 하나의 시계공에 비유한다면 이 시계공은 눈이 먼 시계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이 끊임없이 진화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 진화 속에서 어떤 규칙이나 어떤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계획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찾지만, 그러나 그것은 모두 잘못된 생각이고 이것은 맹목적인 힘에 의해서 우연히 이렇게 진행되는 것일 뿐 우리 눈에 보기에 아무리 숙련된 장인이 그 모든 것들을 주관하는 것 같아도 그런 것은 없다는 주장입니다. 누적된 자연 진화의 힘이 무의식적인 자연 선택과 함께 이루어져가는 것이 진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진화되어가는 이 세계가 신비해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막상 들어가 보면 결국은 자연의 우연적인 힘의 끊임없는 발산을 통해서 이루어져가는 우연적인 현상들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Point: 깊이 읽는 주기도문 1강, 오늘의 첫 번째 포인트 세상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은 두개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믿는 사상적 무신론과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으면서 삶으로는 신이 없음을 나타내는 실천적 무신론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에서 계신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