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 살아계신 하나님 2
녹취자: 신요섭
‘하나님이 계신다.’라고 할 때 그 계신 것이 어떤 의미에서 계신 것이냐는 문제를 우리들이 먼저 생각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 내려오는 길에 전도를 했습니다. 전철에서 어떤 사람이 큰소리로 저에게 묻는 것입니다. “당신, 지금 하나님을 전하는데, 하나님이 살아 있는 거 봤어?”라고 물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질문을 받으셨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아, 제가 보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나는 봤다.” 라고 답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봤다는 것일까요? 우리가 보는 대상에 따라서 ‘봤다’라는 의미는 다릅니다. 여기에 있는 물컵을 봤다고 할 때의 ‘본다’의 의미와 ‘네 안에 있는 사랑을 내가 본다’라고 할 때 에 ‘본다’는 의미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해서 생각할 때 우리들이 익숙해져있는 많은 사물들, 돌, 물, 칼, 공책, 책과 같은 것들과 같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디에든 계시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더욱이 계몽주의 시대 이래로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엄격한 인과법칙을 따라서 존재하는 그런 물질적인 사물들만이 진정으로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압도된 나머지 하나님의 존재가 이 모든 물질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들이 생각해야 될 것은 언제나 과학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하신다고 할 때에 우리들이 생각해야 될 것은 사물의 존재 방식을 고려해야 합니다. 과학과 이성은 언제나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물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이해해야 합니다.
사물의 존재방식들에 대해서 이런 구분을 여러분들에게 제시해 보려고 합니다. 17세기 제네바에서 활동했던 프란시스코 투레틴(Francis Turretin)이라고 하는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사물들이 존재하는 세 가지 방식을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는, 한정적(circumscriptively)으로 있는 것입니다. 즉, 특정한 공간에서 일정한 넓이와 부피, 길이와 높이를 가지고 시간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을 말합니다. 우리들이 흔히 볼 수 있는 펜이나 옷이나 컵이나 접시나 탁자나 칠판이나 이런 것들이 거기에 속합니다.
두 번째는 제한적(definitively)으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장소는 한정되어 있는 사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의 영혼이 대표적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의 몸에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 영혼은 내 몸 안에 있지 다른 사람의 몸 속에 있거나 혹은 저 산꼭대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혼은 제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내 밖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은 있는 곳이 있고, 그 경계선이 지나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 천사, 마귀, 귀신과 같은 사물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충만적(repletively)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해당되는 것인데, 하나님의 존재는 분명히 있지만, 시간과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제한되어있는 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존재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없지만, 충만적인 존재 방식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어디에나 안 계신 곳이 없으신 분이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물질이 아니시며 인간의 영혼도 아니시면서도 어디에나 계시고, 물질적인 관점에서는 어디에도 계시지 않으시지만 모든 만물 속에 계시면서도 모든 만물을 초월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은 온 우주에 충만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관점을 가지고 이 세계를 바라보면 이 세계는 하나님의 살아서 이 모든 우주 안에 존재하고 계신다는 위대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지구라고 하는 하나의 행성에 살고 있고, 이 작은 지구는 은하계라고하는 별들의 한 집단속에 있습니다. 바람개비처럼 되어 있는 이 별들의 무리는 항성만 수천 억개 정도 되고 돌고 있는 항성까지 모두 포함을 한다면 칼 세이건(Carl Sagan)의 계산에 의하면 수조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또 이런 어마어마한 은하계와 같은 별들의 무리가 우주에는 일천 억개나 넘게 존재한다고 합니다. 특별히 우리은하계는 태양을 기준으로 초속 220km의 속도로 우주 공간을 향해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별들이 아주 일정한 규칙을 따라서 움직이며 회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라는 사람은 자신의 책『우주의 조화』(The harmony of the world) 제 5권에서 천체 궤도의 질서와 조화를 음악적인 관점으로 설명했는데 지구를 포함한 6개의 행성들의 공전주기를 계산해서 음표로 기입하였더니 특정한 음계와 선법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우주의 모든 질서와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조화를 미루어 생각 할 때, 이것은 결코 우연적인 것이라고 볼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가 바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고 그 하나님이 이 모든 우주의 계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만 겨우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다른 곳에서는 결코 그것을 느낄 수 없다면 그는 충분히 좋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정말 좋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디서든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느끼고 알 뿐 만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고백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것이 좋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우리는 말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유럽의 한 철학자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무신론자로서 전 세계에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영국의 철학자 안토니 플루(Antony Flew)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런던의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이 사람은 옥스퍼드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때에 기독교 변증가였던 C. S. 루이스가 이끌던 소크라테스 클럽에 참석했지만 그는 루이스가 제시하는 신 존재의 증명에 동의할 수 없었을 뿐 만 아니라 신에 대한 전통적인 기독교의 개념들은 무언가 그럴듯한 증거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무신론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특별히 그는 <신학과 위증성>(Theology and Falsification)이라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했고, 이후에도『신과 철학』(God and Philosophy),『무신론 추정』(The presumption of Atheism)등을 포함해서 36권이 넘는 무신론의 책을 출판하면서 무신론의 원리와 이론을 공교히 세워갔고, 옥스퍼드와 에버딘, 리딩대학 등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전 세계의 무신론자들의 대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2004년에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선언을 합니다. 자신은 이제 신의 존재를 받아들인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자신의 책『존재하는 신』(There is a God)에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20년 동안 내 사고체계 전체는 서서히 움직였고 그것은 내가 자연의 증거를 평가한 결과였다. 내가 마침내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라고 말입니다. 이 책을 펴낸 뒤 3년 뒤인 2010년 4월에 그는 자신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일까요? 이전에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자신이 계시 종교를 믿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딸 중 하나가 이제는 식사할 때 기도를 해야 하는거냐고 묻길래 나는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흥분하는 이유는 이해 할 수는 있지만 내가 조만간 그리스도께로 회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신의 존재를 믿지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하나님은 인간과 상관없이 하늘 높이 계신 하나님이실 뿐입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을 리가 없겠지요. 결국 자연적인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을 아는 최고의 성과는 기껏해야 하나님의 존재를 핑계를 할 수 없다는 정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주기도문을 따라 기도하면서 믿어야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하나님은 온 땅과 만물에 초월하여 전적으로 이 모든 세계를 넘어 계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이 세계에 일부일 수 없고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일부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진 이 모든 세계는 피조물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다음과 같은 사실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초월하여 계신 그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우리 안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주 작은 일에도 간섭하시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성공과 실패, 좌절과 슬픔, 기쁨과 희망,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친근히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그 삶이 바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 예수님이 누렸던 생활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본 받아서 주기도문의 삶을 산다면 얼마나 복된 성도들이 될까요?
이렇게 저는 첫 시간에 하나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주기도문을 공부해가면서 위대하고 엄위하신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을 만나서 그 분을 사랑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음 시간에 여러분들을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Point: 깊이 읽는 주기도문 1강, 오늘의 두 번째 포인트 과학과 이성만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 할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보고 손을 만져지는 사물과 달리 하나님은 충만적으로 존재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만물을 초월하여 존재하십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복된 삶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