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강 하늘에 계신 하나님 1
녹취자: 김경애
안녕하십니까? 김남준 목사입니다. 깊이 읽는 주기도문 두 번째 시간입니다. 두 번째 시간의 공부를 들어가기 전 지난 시간에 공부한 것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형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주기도문 안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애에 이 세상에서 이루고자하는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이 담겨있고 그것은 곧 신약교회의 이상이기도 하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신 계획을 성취하려고하는 위대한 구도를 보여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기도문이 크게 네 토막으로 나뉘는데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간구, 우리를 위한 간구, 마지막은 하나님을 향한 찬송으로 나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특별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는 구절 중에서 ‘계신’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지난시간에 말씀드렸고 이것이 우리의 모든 기독교신앙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가르쳐드렸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입니다. 이제 이 두 번째 시간에는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여러분들에게 우리의 기독교신앙의 기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묘사하는 수식어가 많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사용하신 수식어가 바로 ‘하늘에 계신’이라는 용어였습니다. 여기에는 상당히 깊은 신학적인 그리고 철학적인 뜻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먼저 명심해야합니다. 누가 보더라도 ‘하늘’ 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의 존재의 초월성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늘에 계신’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늘의 개념에 대해서 살펴보아야합니다.
유대인의 하늘 개념은 몇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의 원전인 헬라어 성경에는 이 단어가 ‘그 하늘들’ 이라고 복수로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그 하늘들 안에 계신’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의 시대와 유대민족의 고대 시기에는 하늘을 여러 개로 구분하는 생각들이 유행했습니다. 하늘이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단어가 ‘샤마임’()인데 두 개를 의미하는 쌍수형입니다. 두 개, 쌍둥이, 젓가락, 혹은 바퀴, 안경알 두 개, 이런 것을 표현할 때 이런 쌍수를 사용하는데 이것이 복수이기 때문에 헬라어에서도 복수 표현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늘이 세부분으로 이루어졌다는 견해에 따르면 대기층의 하늘, 즉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 별들이 있는 하늘, 그 다음에 하나님이 계시는 무한한 혹은 영적인 하늘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68편 33절에 하늘들의 하늘을 하나님이 타고 다니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던 세 하늘, 곧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 영적 권세를 잡은 마귀가 장악하고 있는 공중,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이 홀로 계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태복음 23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는 한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그런 점에서 모든 만물들 위에 너무나 뛰어나신 전적으로 구별되는 분이시기 때문에 초월적인 존재로서 하늘에 계시다는 묘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만물들 위에 뛰어나 하늘에 계시지만 그 모든 하늘들을 또한 다스리시고 이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늘은 곧 하나님과 동의어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온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이렇게 물을 때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 역시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냐? 혹은 사람의 권위로부터 온 것이냐?’ 라고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고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 기원을 하늘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왕들이 자신을 하늘의 아들 즉 천자라고 불리기를 원했으며 스스로를 하늘이 보낸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서 뭇 나라와 이웃백성들과 구별된 자신의 민족의 독특성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고 했을 때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근접할 수 없는 무한한 질적인 차이를 보여줍니다. 철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서 전적인 타자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Point: 깊이 읽는 주기도문 2강, 오늘의 첫 번째 포인트 주기도문중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떠한 존재로 생각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구절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당시 유대인들이 이해하던 하늘의 개념을 살펴보아야합니다. 헬라어 성경에서 하늘은 ‘그 하늘들’이라는 복수표현이며 유대인들의 고대시기에는 하늘을 여러 개로 구별하는 관념이 유행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하늘은 하나님과 동의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늘로부터는’ ‘하나님께로부터’ 라는 의미였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창조세계와 만물을 초월하여 계시는 위대한 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