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강 하늘에 계신 하나님 2
녹취자: 김경애
그러면 인간을 포함한 피조세계와 하나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를 우리들이 먼저 생각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이 피조물과 구별된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편 19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나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의 장막을 베푸셨도다.’ 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은 모든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시지만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예술작품과 같기 때문에 초월해 계신 하나님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별된 존재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의 흔적들을 찾아내고, 찾아낸 것들을 잘 연결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는데 이것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서 자연의 세계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그 지식들을 체계화해서 세상에 알려줌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온 땅과 만물위에 초월하신 분이시면서도 이 세계 속에 계시다는 사실, 만물이 또한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이 세계 안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아무리 많이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이것들과 하나님 사이에는 여전히 무한한 격차가 존재합니다. 저는 앞으로 각광받을 산업 중의 하나가 로봇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에서 살아가는 외로움이나 이런 것들을 달래기 위한 용도로 로봇을 사용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힘든 일을 대신하는 기계로써 뿐만이 아니라 이제 인간과 서로 교통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로봇과 함께 교통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자, 그렇게 될 때에 아주 정교한 로봇이 나와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지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로봇을 만든 인간과 로봇 사이에는 제작자와 생산된 물품이라는 차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이 세계도 역시 구별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의 두 번째 의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잘 쓰는 말입니다. 우리가 거룩하다고 할 때에 사용하는 ‘거룩’이라는 말 자체가 형용사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거룩’이라고 그냥 쓰면 안 되고 명사로 쓰고 싶으면 ‘거룩함’이라고 써야합니다. 그렇다면 거룩하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세상적인 것의 반대가 아닙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존재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도덕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고 할 때에 첫 번째는 존재에 있어서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을 초월하신다는 뜻이고, 두 번째는 도덕에 있어서 인간과는 비교되지 않게 완전하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씩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비록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알프스나 에베레스트 산 같은 곳에 선다면 그 웅장한 자연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정말 하찮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자연의 장엄함, 자연의 그 위대하고 끝없는 유장함 속에 하나님의 흔적이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인간은 아주 숭고한 어떤 마음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고 할 때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을 초월해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인식될 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아주 미천한 존재라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부복하게 됩니다. 이 감정이 바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존재 앞에서 느끼는 떨리는 두려움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 하나님이 인간과 상관없는 분이 아니라 인간, 특히 자기와 관계를 맺고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지만 하나님에게도 사랑이 있고 인간에게도 사랑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모를 때는 자기 사랑이 꽤 놀라운 사랑이라고, 아주 큰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나서는 자기 사랑이 아무것도 아닌 그저 더러운 사랑일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도덕적 성품에 있어서 그분은 우리와는 비교되지 않는 완전한 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데 이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 바로 자신이 비천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존재에 있어서 미천한 인간임을 느꼈다면 도덕에 있어서는 비천한 인간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개가 바로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개념입니다.
요약을 하면,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뜻은 온 땅과 만물위에 뛰어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인 우리 자신이 아주 하찮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시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죄인은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자, 하나님은 이렇게 거룩하신 분일 뿐만 아니라 직접 인간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통치하신다고 할 때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왕이 수많은 백성들을 다스립니다. 이것을 통치라고 부릅니다.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법을 만들고, 규칙을 만들고, 잘한 사람들은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들은 벌을 줍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 왕이 원하는 질서대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왕의 머릿속에는 어떠한 세상이 정말 질서롭고 좋은 세상인지에 대한 관념, 말하자면 이데아가 있을 것입니다. 그 관념을 따라서 왕이 자신의 나라를 통치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온 땅과 만물을 통치하시기 전에 이미 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 멸망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구원하셨는지에 대한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 계획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교회가 만들어졌고, 성령님이 오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었으며, 또 선교를 하는 많은 계획들이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보기에 아주 무질서해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이것들은 차질 없이 수행됩니다. 어렸을 때에 우리 동네에 비단을 짜는 공장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가보면 기계에서 비단이 계속 직조되어서 나옵니다. 이 비단이 짜여지는 앞면을 보면 산이 나오고, 사슴이 나오고, 학이 나오고, 예쁜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것으로 이불도 만들고 옷도 만들고 하는데 예쁜 무늬가 놓인 앞판과는 달리 그 뒤는 온갖 지저분한 색실들이 보입니다. 이것을 보면 아주 무질서해보이고 지저분해보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주 정교하게 옷감이 짜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보면 너무나 무질서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 세상이 왜 이런 모양일까’라고 회의를 품게도 되지만 사실은 이 아래에서 아주 정교하게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계획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가시면서 당신의 뜻들을 성취해 가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세계를 경륜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계 전체의 역사를 정치적으로 움직이실 뿐만 아니라 문화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치시고, 나아가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스스로의 의지로 돌이켜 선을 행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법의 질서를 모르고 살던 무지한 사람들을 돌이켜 참된 질서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던 사람들이 추하게 살다가 참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질서 있는 아름다운 생활로 돌아오게 되는 것도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셔서 모든 만물위에 뛰어나 모든 만물과 비교될 수 없는 위대한 하나님이시면서 당신의 그 위대한 능력을 이 모든 세계 하나하나를 움직이는데 사용하셔서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는 뜻대로 이 세계를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낙심되는 시련을 만날지라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 주기도문은 하나님을 안 믿는 불신자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신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왜 그러면 신자들에게 주신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할지, 또 어떤 생활을 하며 살아가야할지, 그것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이 세상은 어떤 세계가 되어야 될지에 대한 그림을 그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모든 계획에 이런 커다란 디자인을 보여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2장 강의를 요약하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는 모든 만물들을 초월하여 계시다는 의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계신 그 하나님이 위대한 권능으로 모든 하늘들을 다스리고 땅도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모든 즐거움은 하나님이 그렇게 온 땅과 만물위에 계셔서 이 모든 하늘과 세계를 통치하시는 것을 즐거워하는 데에 있고, 또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살아가는 삶속에서 성취하도록 이바지하며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에서 마무리하고 다음시간에는 ‘우리 아버지’라는 이 말씀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온 땅과 만물위에 높으신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어린아이가 자기 아빠를 부르듯이 우리들이 친근히 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에 대해서 살펴봄으로 주기도문 전체에 대한 전망을 갖고자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의 Point: 깊이 읽는 주기도문 2강, 오늘의 두 번째 포인트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과 피조세계 사이에는 무한한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는 3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하나님은 피조세계와 구별되시는 분이십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존재적으로 도덕적으로 거룩하십니다. 세 번째, 하나님은 모든 피조세계를 다스리시고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기도문을 통해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