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2팀실장수련회
2016
6-1강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3
녹취자 : 이경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 가운데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하는 말은 주기도문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개념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것일까요? 첫 번째는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두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적인 차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십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오셨고, 이 하나님의 나라가 전개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적 차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시고 그 후에 영원한 세계가 계속될 때에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명은 이 땅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전망하면서 그 일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깊이 읽는 주기도문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주기도문을 이해하는데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에 대한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하는 이 기도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도입하는 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복된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늘 있는 일을 가지고 기쁜 소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주 뜻밖의 소식, 그러면서도 자신을 매우 행복하게 할 만한 소식을 가리켜서 기쁜 소식이라고 부릅니다. 자, 그러면 뭐가 그렇게 기쁜 소식일까요?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 전의 인간의 상태와 하나님의 나라가 온 다음의 인간의 상태가 매우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에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아주 핵심적으로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우리에게 왜 기쁜 소식이 됩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표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고, 그분의 죽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할 모든 형벌과 죄에 대한 징벌을 대신 하나님께 갚고,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한 충만한 생명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기쁜 소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곧 이 복음을 통해 죄 사함과 영생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기쁜 소식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이해를 기초로 우리는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복음과 하나님님의 나라에 관한 경륜입니다. 복음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사이의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에서 복음으로 갑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그 율법은 그것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율법을 통해서 복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그 율법을 인간이 다 이행할 수 없습니다. 그때에 비로소 그 율법을 지키면서 다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자신의 힘으로는 이 구원을 성취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반대로 복음에서 율법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알게 하시는 것이 바로 신약시대의 경륜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죄로 말미암아서 병들어 있는 사회를 보게 됩니다. 많은 불행들이 바로 죄라고 하는 질병으로부터 나옵니다. 죄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그 증상이 이런 인간의 많은 실제적인 불행과 악으로 나타납니다. 그런 비참 속에서 사람들은 복음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구원을 얻고 나면 이제 이런 모든 불행을 극복하면서 살 수 있는 놀라운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왜 이런 죄인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해주셨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에 율법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복음을 통해서 율법을 주신 진정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게 만들어서 이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어떻게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에서 살아야 될 것인가 하는 소명의 문제 앞에서 율법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 사람들에게는 모두 소명이 있습니다. 자기를 이렇게 살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인식이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소위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인데 모든 인간은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하든지 행복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데 진정한 행복은 이런 소명 안에서 발견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 은혜를 주신 목적이 있으며, 은혜를 주신 목적은 소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 소명 때문에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며 사는 사회가 되도록 이바지하며 살게 됩니다. 이 소명을 따라 살 때에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과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은 모순되거나 충돌되지 않고 일치됩니다.
자, 그러면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그래서 기독교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인 어거스틴은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설명 시작) 여기가 창조이고 여기가 종말이라고 해봅시다. 그리고 이것을 눈에 보이는 세상의 역사라고 합시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사이에는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세상의 나라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하나의 역사 속에서 살면서 이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세상의 역사 속에서는 어느 왕이 지배했고 얼마나 큰 영토를 차지했으며 하는 것들이 관심사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세상나라 사람이고 저기에는 하나님의 나라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각각 다릅니다.
첫째로 사람이 다릅니다. 두 나라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입니다. 세상나라 사람들은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하나님 없이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고, 여기 하나님 나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뜻을 꺾고 더 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면서 살기 때문에 한 왕에 의해서 모든 질서들이 이루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서로 다른 질서가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거기더라도 각각의 사람을 중심으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 나라는 자신의 질서를 각각 포기하고 하나님 질서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나라와 같은 그런 부딪힘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완성되기 전까지는 이런 부딪힘이 계속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삶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이런 갈등들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신앙이 깊고 많이 성화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려고 애씁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순종하면서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기 일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이런 갈등은 그치지 않습니다.
셋째로 서로 다른 동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평화를 이룹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끊임없는 파괴를 가져옵니다. 다툼과 살인이 무한정 허락된다면 이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공포 속에 살게 될 것이고 누구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타협이 이루어집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익을 전제로 한 타협입니다. 이 균형이 깨지고 나면 평화로웠던 나라에도 갈등이 생기고 평화로웠던 나라 관계에도 다시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동기 자체가 자신의 이익과 자기의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회개하고 온전한 신앙을 가지면 가질수록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잘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