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하나님, 뜻을 정한 인간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니 대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광대하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 미치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으시기를 원하나이다”(시 108:1-5)
녹취자: 장유민
무슨 문맥에서 이 시를 썼는지는 우리가 지금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시편 108편의 내용을 보면 무엇인가 시인이 흔들리는 상황 속에 있었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시편에 보면 우리의 대적을 치게 해달라는 기도라든지 용감히 행하겠다는 기도라든지 혹은 하나님이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것이라든지 하는 이런 모든 기대들은 시인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삶의 상황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상황이 어렵고 요동치면 우리의 마음도 요동치게 마련이고 삶의 상황이 감사하고 평안하면 우리의 마음에도 평안이 오는 법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삶의 상황과 함께 맞닿아서 계속 요동친다면 우리의 삶의 평안이 없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안전하고 이 세상 풍파에 시달리는지 우리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저 자연 중에 우유자적하면서 은신하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에게 요동칠 것이 별로 없지만 뜻을 가지고 무엇인가 목표를 이루면서 살려고 할 때에는 끊임없이 우리의 삶이 요동칠 수밖에 없는 것 입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평정을 유지하며 사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그에 대해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무슨 마음을 정했다는 것일까요? 대적들이 주위에 계속 있고 삶의 상황은 요동치는데 그가 ‘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무엇을 정했다는 것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를 오늘 보여주는데 이것이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위에 광대하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 미치나이다 하늘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이 뜻을 정한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큰 위엄과 존귀 영광 그 지혜와 능력 그것을 생각하면서 이 신이 하나님 앞에 자기의 마음을 정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삶의 아주 작은 국면들을 보면 모순도 보이고 또 불의가 승리하는 것 같고 혹은 폭력이 사랑을 이기는 것 같고 때로는 우리의 불순종이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제 더 커다란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은 거기에 영향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늘 높이 계셔서 그렇게 모순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을 사용하셔서 결국은 자기의 뜻들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 신비하고 오묘한 것들은 우리들이 모두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당한 불의와 어려움, 억울함, 정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들이 대답 없이 흘러갔습니다. 그런 걸 마음에 품으면 상처가 되고 억울한 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어떻게 사용됐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여러분의 몸속에 살과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예화)엊그제 저는 귓병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너무 쑤시고 아픈 것입니다. 귀에서 피까지 나옵니다. 그래서 말로만 듣던 중이염이 걸렸나보다. 균이 들어가면 머리도 돈다는데 큰일 났구나 근데 의사선생님이 뾰루지라고 했습니다.
한 방울의 피는 언제 먹어서 생긴 피입니까? 그런 것은 밝힐 수가 없습니다. 삶의 모든 것들은 해명을 해서 그것이 이성에 납득하게 답을 얻으려 하면 잘하면 교만해지고 잘못하면 상처가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그래서 인간들은 악하게, 모순되게, 잘못되게, 오류가 있게 그렇게 했지만 그것을 하나님은 모두 사용하셔서 인간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당신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 것 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신학적인 문제지만은 신앙적으로는 아주 명료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모순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아름다움을 전달하시는 수단입니다.
저는 저의 태생을 이렇게 보면 칼빈하우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는 내성적이고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이끌어 가는 형이 아닙니다. 조용히 혼자 있기 좋아하고 그런데 그런 것들을 수없이 겪으면서 상처가 회심하기 전에도 그렇고 굉장히 많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인생의 무게를 최초로 느끼면서 논둑에서 한없이 울고 난 그 다음부터는 선생님이 없었습니다. 책이 유일한 낙이고 벗이었지 우리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주위의 누구도 선생님이 없었습니다. 그런 시절을 보내다가 회심하고 나니까 내게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 때문에, 상처가 된 일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때는 신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은 형언할 수 없는 말하자면, 내가 아프고 억울하고, 고통 받고, 상처받고, 이해 안 되던 모든 삶의 발자취들이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오게 하시기 위하여 이것들을 사용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운사람이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나쁜 뜻을 가지고 나쁜 일을 행했지만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사용하셔서 결국은 나에게는 좋은 것이 되게 하셨다 그러한 신학적인 깨달음이 처음 회심 때 왔습니다. 나중에 신학을 공부하면서 터득하게 된 것이 그 경험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그 설명이 경험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 시인이 시련과 역경을 당하고 원수들이 막 에워싸고 고통줄때마다 그때 자기마음을 정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내가 만민 중에 주께 감사하며 열광 중에 찬송하오리 하늘 위에 주는 높으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에 미치나이다”
신앙은 그런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책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창조하신 것 가운데 나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실 수 없고 인간이 나쁘게 만든 것들도 하나님이 좋게 사용하실 수 없다면 그렇게 무능한 분이라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말 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선이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해주심으로만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인간의 오류와 잘못 ,불공평, 그 다음에 불의 이런 것들은 모두 나쁜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그래서 당신의 그 계획과 뜻들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건 오늘날 우리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면서 이 시인이 마음을 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을 정하니까 찬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정하고 나니까 미운 사람도 사라지고 다 사라지면서, 불안도 사라지면서 그 하나님 한분을 우러르면서 살 수 있는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드디어 그 마음에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특별히 음악에 띄어난 재능과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음악의 힘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음악으로 마음을 달래며 다시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희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그러는데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아마도 이런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밤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처음 난 장자들을 다 쳐서 하나님이 사자들이 죽이실 때도 그 일이 밤에 일어났습니다. 밤에 온 땅에 어둠이 내린 그때에 일어나는 적입니다. 그 밤을 찬양을 부르면서 새벽을 깨워서 그 새벽과 이어오는 광명이 어두움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의 당시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찬양을 통해서 새벽을 깨우므로 여기서 새벽은 어두움이 절망과 불의, 대적, 위험, 무지 이런 것들의 상징이라면 새벽은 거기로부터 깨어남이고, 이김이고, 승리이고, 밝음이고 정의고 이런 것입니다. 그것이 시인의 마음에서부터 일어난 하나님을 향한 의존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놓여있던지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